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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아르타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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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현자의 여행기"헨리 반 다이크의 <아르타반> 을 읽고"후회 없는 삶이었다고 합니다."-성경에는 없는 동방박사 이야기- 교회에서 성탄절 연극 속 소재로 많이 등장하는 성경 속 동방박사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에게 귀한 보물을 진상한 세 명의 동방박사처럼 예언의 별을 보고 긴 여행을 떠난 사람이 있다. 그도 세 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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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현자 여행기"

헨리 반 다이크의 <아르타반> 을 읽고





"후회 없는 삶이었다고 합니다."



-성경에는 없는 동방박사 이야기-

 


교회에서 성탄절 연극 속 소재로 많이 등장하는 성경 속 동방박사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에게 귀한 보물을 진상한 세 명의 동방박사처럼 예언의 별을 보고 긴 여행을 떠난 사람이 있다. 그도 세 명의 동방 박사처럼 예언의 별을 보고 동쪽에서 출발하여 긴 여행을 떠났다. 그러나 끝내 아기 예수 앞에는 도착하지 못했다.
수많은 시련과 고난을 걸려 넘어지면서도 순례의 길을 떠난 그는 바로 아르타반이다.



우리는 성경 속 동방박사 이야기는 알지만, 정작 아르타반 이야기는 알지 못한다. 그는 왜 예언의 별을 보고 순례의 길을 떠난 것일까? 그가 어떤 열정과 갈망을 품었기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긴 여정을 시작한 것일까? 그는 영혼의 방황과 같은 갈등을 겪으며 긴 순례의 여정 끝에서 무엇을 얻게 되었을까? 

이 책 『아르타반』을 통해 아르타반의 순례 여행에 관해 이야기해보면서 그 이유와 순례 여행 목적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자아 탐구 여정의 긴 여정을 떠난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 속 주인공처럼 아르타반 또한 안락하고 배부른 일상을 포기하고 광야로 나아간다. 자신의 부와 명예를 버린 싯다르타처럼 아르타반도 영혼 탐구의 여정, 구원자를 찾는 순례 여정을 떠난 것이다. 

아르타반은 성경 속 동방박사처럼 하늘에 떠오른 별을 보고 구원자의 탄생을 예견했다. 그 구원자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팔고 순례의 길을 시작한다. 사람들은 그런 그의 맹목적인 행동에 대해 지혜롭지 못하다고 비난하고 손가락질 한다. 아르타반이 자신의 부와 명예를 버리는 것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다. 아르타반은 왜 그런 순례의 길을 떠난 것일까? 그는 어떤 믿음에 기반해서 이 순례 여정을 시작한 것일까?


그 순례의 여정은 갖은 고난과 시련의 연속이었다. 맹목적인 믿음이 개인의 신념으로 변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그 과정은 너무나 더디고 괴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때는 지쳐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든다. 
하지만, 끝내 아르타반은 포기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비판을 묵묵히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이 가진 믿음이 진정 진리일지 의심하고 또 의심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최선을 다해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물론 그는 베들레헴애서 태어난 나사렛 가족의 아이를 찾아 헤맸지만, 결국 그는 구원자의 본질을 찾으려고 애쓴 것은 아닐까.
결국 33년 간의 긴 순례의 시간 속에서도 그는 끝내 그 나사렛 가족의 아이를 만나지 못했다. 죽음을 앞둔 순간에서도 말이다. 비록 그는 그 목표를 이루지 못했지만, 그는 지난 삶을 돌이켜보면서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고 말한다.


여정은 마침내 끝이 났고,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고 아르타반은 결론 내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사실이 모두 받아들여졌다. 마음이 그저 평온했다. 체념이나 굴복 같은 감정이 아니라, 훨씬 더 심오하고 면밀한 감정이었다. 매일을 충실하게 최선을 다하며 살았기에 아르타반은 그 모든 것이 충분히 괜찮다고 느끼고 있었다. 빛을 보았고 그 발자취를 쫓았으며 더 먼 곳으로 나아가기 위해 있는 온 힘을 다했다. 그리하여 얻은 것이 실패뿐이라면, 실패야말로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최선이 분명하리라고 그는 확신했다. 
-p. 136-137


아르타반의 순례 여정을 살펴보면서 '과연 무엇이 후회 없는 삶인가?'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비로소 아르타반의 순례의 길 끝에서 그 순례 여행의 이유와 목적을 비로소 알 수 있었다.  또한 이 책  『아르타반』 덕분에 나 또한 나의 삶을 돌아보면서 성찰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YES마니아 : 골드 s*******4 2024.09.0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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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타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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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본질에 이르는 여행"종교인은 아니지만 예수 탄생 때 동쪽에서 별을 따라 찾아와 아기 예수를 경배하고 황금, 유향, 몰약을 바친 사람들=동방박사 의 이야기를 한번 쯤 들어 봤을 것이다.정확히 몇 명 인지 알 수 없지만 그중에 한 명이었던 '아르타반'의 이야기"만나지 못 할거다"라는 주변의 비판에도 혼자서 예수를 만나러 떠났지만 긴 여행 끝에서 예수를 만나지 못했다.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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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본질에 이르는 여행"

종교인은 아니지만 예수 탄생 때 동쪽에서 별을 따라 찾아와 아기 예수를 경배하고 황금, 유향, 몰약을 바친 사람들=동방박사 의 이야기를 한번 쯤 들어 봤을 것이다.

정확히 몇 명 인지 알 수 없지만 그중에 한 명이었던 '아르타반'의 이야기

"만나지 못 할거다"라는 주변의 비판에도 혼자서 예수를 만나러 떠났지만 긴 여행 끝에서 예수를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p.119
지난 날을 돌이켜 봤을 때 즐거웠거나 슬픈 기억들 사이에서 선한 삶에 숨겨진 어떤 비밀스러운 목적이 어폄풋이 느껴졌다. 걸림돌이라고 생각했던 순간까지도 목적의 본질에 다가가기 위해 꼭 필요한 순간이었던 것을 어렴풋이 깨닫게 된 것이다. 손에 쥔 보석이 세상 그 순수한 본질에 대한 상징처럼 느껴졌다.

p,137
여정은 다 끝이 났고,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고 결론 내렸다. 그런데 이사하게도 그 사실을 모두 받아 들여졌다, 마음이 그저 평온하다. 체념이나 굴복같은 감정이 아니라 훨씬 더 심오하고 면밀한 감정이었다. 매일을 충실하게 최선을 다하여 살았기에 아르타반은 그 모든 것이 충분히 괜찮다고 느끼고 있었다. 빛을 보았고 그 발자취를 쫒았으며 더 먼 곳으로 나아가기 위해 있는 온 힘을 다했다. 그리하여 얻은 것이 실패 뿐이라면 실패야 말로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최선이 분명하다고 확신했다.

만일 시간을 돌려 인생을 처음부터 다시 살게 된다 하더라도 아르타반은 이번 생에서 내린 선택을 똑같이 반복 할 것이다.

??
어쩌면 세상에는 목표가 아니라 그 목표를 향해가는 여정이 중요한 것이고, 이미 여정에 정직했다면 그 목표는 이뤄진 것이라는 진리를 아르타반은 보여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굳이 끝을 보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 목표가 이뤄졌는지, 이루지지않았는지는 그 사람의 마지막의 모습을 봐야지만 알 수 있는 게 아닐까?

p.13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로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 이니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 입니다 


YES마니아 : 로얄 k*****2 2024.08.2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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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타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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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탄생설화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동방박사 세 사람 얘기는 교회에 나가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교회에 나가지 않는 사람들도 영화나 문헌을 통해서 익히 알고 있는 유명한 얘기입니다. 이 책은 그 얘기의 연장선상에서 시작됩니다.   조로아스터교의 사제인 ‘아르타반’이라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조로아스터교는 본질을 추구하는 종교라고 설명하며, 이 이야기도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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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탄생설화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동방박사 세 사람 얘기는 교회에 나가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교회에 나가지 않는 사람들도 영화나 문헌을 통해서 익히 알고 있는 유명한 얘기입니다.

이 책은 그 얘기의 연장선상에서 시작됩니다.

 

조로아스터교의 사제인 아르타반이라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조로아스터교는 본질을 추구하는 종교라고 설명하며, 이 이야기도 기독교의 본질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유복한 기독교 집안에서 출생하였고, 그의 아버지는 유명한 장로교 목사입니다.

저자는 교수이고, 목사이고, 저술가이고, 행정가이고, 시인이며, 작가이기도 합니다. 이 책의 이야기는 저자가 뉴욕에서 목회자로 사역하던 1895년 설교를 통해서 발표한 내용입니다.

 

특히 이 책의 이야기는 연극과 오페라 등으로 각색되어 공연되었다고 하니, 꽤 유명한 작품인 듯합니다. 주인공은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서 사파이어, 루비, 진주 세 보물을 갖고 예루살렘을 향합니다.

 

그러나, 가는 중에 어려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예수님께 드릴 귀한 선물 중 두 가지를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사용합니다. 그리고, 이런 선행을 하다 보니, 예수님의 출생을 놓치게 됩니다.

그리고 33년 세월이 흘렀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는 처형을 받는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접하게 되고, 그 처형 장소에서라도 가야겠다고 서두르는데, 가는 중에 또 다른 어려운 형편에 처한 사람을 만나게 되어서 마지막 선물인 진주까지 다 써버립니다.

 

예수님의 출생과 마지막을 보지도 못하고, 준비한 귀한 선물도 전달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만난다는 목적만 두고 본다면 주인공은 실패한 사람이겠지요. 그러나, 저자는 예수님의 본질에 부합한 성공한 사람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사람들을 돌아보고 돕는 일이 곧 예수님께 하는 일이라는 성경을 제시하며, 주인공은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이상의 성공자임을 깨닫게 합니다.

이 책은 영어 원문 대역으로 되어 있어서, 영어 원문을 통해서 우리나라 말에서 느낄 수 없는 뉴앙스와 향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때에 귀한 책,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h*******0 2022.10.0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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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강렬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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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강렬한 이야기가 있다. <아르타반>이 그렇다. 영어제목은 The Other Wise Man이다. 네 번째 동방박사라니. 시작부터 흥미롭다.우리가 계획한대로 인생이 흘러가지 않는 듯해도매순간 최선을 다한 삶은 아름답고 고귀하다.그 결국은 목표했던 삶의 모습과 닮아있다.#도서협찬#주간심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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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강렬한 이야기가 있다. 
<아르타반>이 그렇다. 

영어제목은 The Other Wise Man이다. 
네 번째 동방박사라니. 시작부터 흥미롭다.

우리가 계획한대로 인생이 흘러가지 않는 듯해도
매순간 최선을 다한 삶은 아름답고 고귀하다.
그 결국은 목표했던 삶의 모습과 닮아있다.

#도서협찬#주간심송

p****2 2024.08.3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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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타반의 열정과 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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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내로라』 시리즈의 마지막 이야기<아르타반 The Other Wise Man>은 영문 고전을 번역하여 담은 단편 소설 시리즈.여기 맹목적으로하늘에 떠오르는 별을 보고구원자의 탄생을 예견했고,유대인의 왕이 되시며, 만인의 구원자가 될 분을 만나기위해자신이 가진 모든것을 팔아진상할 세가 지 보석 사파이어, 루비, 진주를 준비하여순례길에 오른 조르아스터교의 사제 '아르타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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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내로라』 시리즈의 마지막 이야기

<아르타반 The Other Wise Man>은 영문 고전을 번역하여 담은 단편 소설 시리즈.




여기 맹목적으로

하늘에 떠오르는 별을 보고

구원자의 탄생을 예견했고,

유대인의 왕이 되시며, 만인의 구원자가 될 분을 만나기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것을 팔아

진상할 세가 지 보석 사파이어, 루비, 진주를 준비하여

순례길에 오른 조르아스터교의 사제 '아르타반'이 있다.




당연하다고 전제된 것들의 거짓된 실체를 드러내기 위해 일생을 바쳐야 한다고 그들은 주장합니다. 

때가 되면 새로운 태양은 분명히 떠오를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위대한 빛의 광휘를 목격하게 되리라. 

아베스타 성서에서 예언한 것이 아닙니까. 35



친우들은 그저 퉁명스럽게, 의심과 불신으로 모두 함께하기를 꺼린다.


아르타반의 가장 빠른 말 '바스다'와 함께 

사제 가르파스, 멜키오르, 발타사르와 합류하기로 한 일정에 맞추려고

쉬지 않고, 모든 힘을 소진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죽어가는 유대인을  만난다.



이방인에게 선행을 베풀기 위해 중대한 사명과 신앙적 보상을 송두리째 포기해야 하는지, 

죽어 가는 유대인 한 명에게 물 한 컵을 내어 주기 위해서 예언의 별을 놓쳐야만 하는 것인지, 

아르타반은 고민 끝에 기도했다. 75



남자를 보살피며 시간을 지체하는 사이 친우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바빌론에 가서 사파이어를 팔아 낙타를 사고 사막을 건너기 위한 여정을 준비하고, 

죽음의 땅을 지나 베들레헴에 도착한다.

젊은 여인이 안고 있는 아이를 살리기 위해 루비를 건네며 거짓을 진실로 둔갑시킨다.

간발의 차로 놓친 나사렛 가족의 흔적을 찾기 위해  한참을 방황한다.



33년의 세월이 흘렀다.

여전히 순례자였다.

지치고 닳은 상태로 죽음을 목전에 둔 순간까지 나사렛 가족의 아이를 찾지 못했다.

결국 실패했다고 생각했으나 마음은 그저 평온했다. 

한치의 후회도 남지 않는다고 회고했다.

매일을 충실하게 최선을 다하며 살았기에 모든 것이 괜찮다고 생각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

139


걸림돌이라고 생각했던 순간까지도 

목적의 본질에 다가서기 위해 꼭 필요한 순간 이었음을 깨닫는

아르타반.


인간의 '본질'은 어떤 것일까?

아이들의 천진무구한 모습에선 선함을 볼 수 있지만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과연 선함만 있을까?


우린 선택의 갈림길에서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한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도움의 손길을 선뜻 주기란 쉽지 않다.



도움이 필요한 아이를 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의 실천이라는 확신이었다. 

사랑이야말고 영혼이 낼 수 있는 유일한 빛이 아니겠는가. 133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한 삶을 향한 우리의 마음이

죽어가는 인간을 못 본 척 할 수 없으며,

도움이 필요한 어린아이에게 손길을 내민다.


인간의 선함은 어디까지인가?

탐닉하게 된다.



첫 장을 펼치면서 맘에 드는 문구를 만났다.

다 읽고 난 뒤 첫 장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출근 시간 만원 지하철을 탔다.

환승역에서 내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붐비는 사람들의 행동을 보고

아르타반의 열정과 갈망이 떠올랐다.


내 머릿속에 남게 하는 그런 책이었다.


종교가 없지만 거부감은 크기 않았다.

삶의 자세를 넌지시 전달하고 있는 책이다.



======================



내로라출판사 @naerorabooks에서 지원받아

주간심송@jugansimsong에서

함께 읽고 필사합니다.



소중한 기회주신

@naerorabooks

@jugansimsong

@seri_booklover

@ekida_library

감사합니다.



#아르타반

#헨리반다이크

#내로라

#세계문학

#주간심송

#주간심송필사단

#영미소설

#도서협찬

#아띠스토리

#아띠북스

s*******4 2024.08.2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아르타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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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께서 오시고 계십니다. 마중을 나가야겠습니다. p55 아르타반 책을 단숨에 다 읽었다. 그만큼 이 책은 간편히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그런데 그 깊이가 남다르다. 이미 성서를 알고 있는 분들에게도 이 책의 내용은 그냥 읽혀지지 않고 새삼 깊이있게 울림을 주고 있다고 말하겠다. 이 책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와 함께 신약성경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양과 염소의 비유를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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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께서 오시고 계십니다.

마중을 나가야겠습니다.

p55 아르타반

책을 단숨에 다 읽었다. 그만큼 이 책은 간편히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그런데 그 깊이가 남다르다.

이미 성서를 알고 있는 분들에게도 이 책의 내용은 그냥 읽혀지지 않고 새삼 깊이있게 울림을 주고 있다고 말하겠다. 이 책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와 함께 신약성경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양과 염소의 비유를 모티브로 해서 만든 책이라고 본다. 그런데 저자가 말하듯 이 책은 지어낸 이야기나 구전이나, 어느 날 펑하고 나타난 이야기가 아닌 "누군가 저자에게 선물로 준 이야기"라고 말하고 있다.

어디에서 나온 이야기인지 정말로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허공에서 펑 하고 나타났을지도 모릅니다. 분명히 어느 책에 적혀 있던 것도 아니고 동방에서 구전되어 온 이야기도 아닙니다. 그러나 제가 지어낸 이야기라고는 도무지 생각이 되지 않습니다. 이건 누군가 제게 선물로 주신 이야기가 분명합니다. 그리고 어쩐지 저는 제게 이야기를 선물하신 그분을 알 것만 같습니다.

헨리 반 다이크 p.145

이 책은 그냥 줄을 치지 않고 소설처럼 읽으려 했다. 그런데 이 책은 독자에게 펜을 들게 했고, 줄기차게 줄을 긋게 하였다. 그리고 그 말을 마음과 뇌리에 새기게 하였다. 그만큼 이 책이 주는 영적 깨달음의 가지들은 독자의 마음에 이미 뿌리내려 성경에서 말하는 바를 다시금 되새겨 주고 있다.

이 책은 진리의 본질을 언급한다. 조로아스터교가 본질을 끝없이 추구하는 종교라고 하듯 주인공 아르타반은 조로아스터 사제의 모습으로 나타나 진리라는 본질을 향해 남들과 다르게 추구하며 열정을 내고 있다.(p21)

어느 날 아르타반은 함께하는 조로아스터교 사제들을 부른다. 그들을 향해 "여러분은 신을 숭배하고 본질을 갈망하는 그 마음을 다 잡기 위해 오셨을 거라면서, 제단의 불꽃을 다시 점화하듯 믿음도 이따금 불을 붙여야만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우리가 숭배하는 것은 이 불이 아니라 이 불은 단지 그분을 상징하는 것이며, 이 불은 빛과 진리에 관하여 말해주고 있는 것임을 말하며 스승과 같은 노학자 아브가르스에게 자신의 말이 맞는지 묻는다. 이에 그 노학자는 심오한 말을 하였다.

"그렇다, 나의 아들아. 깨달음을 쫓는다면 맹목적인 숭배자가 되는 것을 절대로 경계해야 할 것이니라. 형태라는 장막을 걷고 현실이라는 성전에 들어갈 때, 오래된 상징은 새로운 빛과 진리를 드러낼지니라." p.31

그렇다. 진리를 찾는 자는 맹목적인 숭배자가 되어선 아니 되고, 형태라는 장막을 걷어 현실이라는 장막에 들어가야만 진짜 진리를 맛보게 된다. 이 책은 그런 진짜 메시야를 찾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고, 진리의 실체가 눈에 보이는 그런 형태나 기대하던 어떤 대상이 아니라 지금 내 옆에서 아파하고, 괴로워하며, 배고파하는 자들이다.

"생사가 달린 갈등 앞에서 아르타반의 영혼이 욱신거렸다. 이방인에게 선행을 베풀기 위해서 중대한 사명과 신앙적 보상을 송두리째 포기해야 하는지, 죽어 가는 유대인 한 명에게 물 한 컵을 내어 주기 위해서 예언의 별을 놓쳐야만 하는 것인지, 아르타반은 고민 끝에 기도했다." p.75

우리는 신을 향해 예배하면서, 숭앙하면서, 사명을 감당하면서, 또는 성지 순례를 통해 좀 더 구원자와 가까운 은혜를 누리려고 비싼 돈을 들여 이스라엘이나 기타 성지로 떠난다. 그런데 그 성지가 어디에 있는가? 과연 구원자를 만나려는 노력이 기도를 많이하여 환상으로 주님을 눈에 보이게 만나는 것인가? 과연 고운 목소리로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주며 성가를 부르면서 고귀하게 신을 찬미하는 것이 신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며 종교적 행위로서 최선을 다한 것인가?

실제적 예수(구원자)는 우리 주변에 있음에도 다른 예수를 찾아서 예배당을 두드리고, 저 멀리 성지로 떠난다. 그러나 그 구원자는 아르타반이 그러하듯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분이다. 물론 개중에는 특별한 은혜로 구원자 예수를 보고 만난 분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책에도, 성경에도 그 구원자는 영광스런(권력을 얻은, 세상적 업적에 뛰어난 모습) 형태로 존재하거나 메시야처럼 나타나지 않고 우리 가운데 비천하고 가난한 모습으로 악압받고 고통받는 자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네가 찾는 왕은 성에 살지 않거니와 부자와 권력자들 사이에 있지도 않을 것이니라. 어떠한 빛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겠느냐. 이스라엘을 빛나게 할 참된 영광이 무엇이겠느냐. 그 영광이 사람들이 쉬이 바라는 위대한 세상적 업적과 동일했다면 이미 오래전 세상에 왔을 것이니라.(실제로 요셉은 아브라함의 어떤 아들도 다시 뛰어넘지 못할 권세를 이집트의 성에서 누렸음이오, 솔로몬은 역사에 다시 나오지 못할 장엄한 업적을 예루살렘의 사자들 사이에서 왕권을 다지며 세웠음이니라) 지금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완전한 새로운 빛이니라. 그 영광스러운 승리는 인내와 고통 속에서만 돋아날 것이요, 그가 새로 세울 나라는 결코 스러지지 않을 사랑으로 세워질 영원의 나라이니라. [...] 언약의 메시아는 그를 애타게 부르짖는 가난한 자들과 비천한 자들과 근심하는 자들과 억압된 자들 가운데 계실지니라." p113-115, 덕망 있는 유대교 율법학자 랍비

주인공 아르타반은 잔뜩 기대를 안고 동방박사처럼 세 가지 보물을 들고 즉 사파이어, 루비, 진주를 가지고 별을 쫓아 예루살렘까지 이르렀다. 그는 잔뜩 기대하며 열정과 갈망을 품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베들레헴으로 갔다. 그러나 아르타반은 거기서 예수를 보지 못했다. 어느 덧 33년이 흐르고 새카맣게 빛나던 머리카락은 눈 덮인 겨울 산처럼 희게 되었고, 불꽃 같은 눈도 이제는 타 버린 재처럼 흐려졌다. 지치고 닳은 상태 속에 그는 죽음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의 영혼은 여전히 왕을 갈망하고 있었기에 마지막 희망으로 다시 예루살렘을 찾게 된다. 그러나 거리는 유월절 분위기로 어수선하다. 더군다나 거대한 무리의 인파가 어디론가 향하는 모습이 보였고, 하늘에는 우중충한 어둠이 드리웠다. 소동의 원인을 알고 싶어 누군가에게 물었는데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는 자가 골고타라는 곳에서 십자가 처형을 당한다는 것이 아닌가? 땅도 진동하며 지진이 일어 났다. 이 가운데 아르타반은 묵직한 기와에 머리를 맞아 쓰러진다. 그리고 그는 그토록 기다리는 구원자를 죽어가는 그 순간에 만나게 된다. 음성으로 만난 것인지 환상으로 만난 것인지는 독자는 모르겠다. 마치 누군가에게는 그저 저무는 태양의 어스름한 빛 속에서 아주 작고 고요한 소리 같았고, 너무도 확실하고 분명하게 마음에 새겨지는 말 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 노쇠한 아르타반의 목소리였다. 페르시아 말로 그는 자신에게 말한 분에게 이렇게 대답을 했다.

"나의 신이시여. 저는 그러한 적이 없습니다. 제가 언제 굶주린 당신께 먹을 음식을 내어드렸습니까. 제가 언제 목마른 당신에게 물을 내어드렸습니까. 집 잃고 헤매는 당신을 품은 적도, 벌거벗은 당신을 입힌 적도, 감옥에서 병든 당신을 돌보아드린 적도 없습니다. 33년 동안, 당신을 찾아 헤매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당신을 왕으로 섬기기는커녕 당신 앞에 도착하지도 못했습니다."

이에 저 멀리에서 달콤한 소리가 들려왔다. 희미하게 들렸지만, 마음에 각인되는 소리였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이렇게 그의 여정은 끝났다. 창백하던 그의 얼굴에 잔잔한 경이와 기쁨의 빛이 서서히 차오르며 아주 길고 긴 안도의 숨을 내쉰다. 지혜로운 남자는 마침내 자신이 바라던 왕을 만났고, 그가 준비한 보물은 모두 왕께 진상되었다.

스토리를 중심으로 썼는데 그럴수 밖에 없다. 이 책은 스토리를 읽어야 한다. 그 스토리가 이 책의 서평이고, 이 책이 주고자 하는 날것 그대로의 모습이다. 바라던 왕(구원자)을 찾아 우리는 어쩌면 그 왕이 원하는 바와 다른 것을 추구하며 예배하며 추앙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 왕은 우리 곁에 도움이 필요로한 곳에 있건만 예루살렘에 있다고 착각하며, 헛된 것에 삶을 허비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주인공이 가진 세 가지 보물은 왕께 직접 드린 것은 아니지만 그 왕이 받았다. 그건 바로 눈물과 아픔으로 얼룩진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을 통해서 말이다. 어쩌면 아르타반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나사렛 가족의 아이를 찾아 헤맨 것이 아니라, 별로 상징되는 그 구원자의 본질을 찾으려고 애썼다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이 작품은 본질에 관한 이야기다. 종교를 초월한, 선한 삶을 향한 개인적 갈망과 그 갈망 깊은 곳에 내재되어 있는 우리 마음의 본질에 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이 책의 한 문장

오래전부터 발목을 잡아 온 영혼의 갈등을 다시 느꼈기 때문이다. 바벨론의 종려나무 숲에서도, 베들레헴의 초가집에서도, 아르타반의 영혼은 신앙적 기대와 실천적 사랑의 충동 사이에서 갈등했었다. 무려 두 번이나, 신을 위해 준비한 보물을 사람을 위해 사용하고 말았다. 만일 이것이 아르타반의 선택을 지켜보기 위한 일종의 시험이라면,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 것이다. 엄청난 기회인지 마지막 시험인지, 아르타반은 자신으로서 알 수 없겠다고 결론지었다. 즉 애초에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고, 그런 불가피한 선택이야말로 신이 주신 운명이라 말할 수 있지 않겠냐고, 아르타반은 생각했다. 그러자 갈등하던 마음에 한 가지 확신이 차올랐다.

"도움이 필요한 아이를 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라의 실천이라는 확신이었다. 사랑이야말고 영혼이 낼 수 있는 유일한 빛이 아니겠는가."

"딸아. 이걸로 너 자신을 자유롭게 하거라. 왕께 드리기 위해 소중히 간직해 온 나의 마지막 보물이란다." p.131-133

"최악의 상황 속에서 최대한 만족하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최선의 그림자라도 쫓는 것이 더 나은 것이 삶 아니겠느냐? 게다가, 위대한 무언가를 목격하기 위해서 때로는 홀로 떠나야 하는 법이니라" p. 51

- 이 글은 책과 콩나무 카레를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s****x 2023.04.2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아르타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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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기독교 집안에서 나고 자라 평생을 목사로 산 헨리 반 다이크의 창작 이야기이다.   에크바타나의 아르타반은 40대의 키가 크고 어두운 피부를 가진 조로아스터교 사제였다. 그는 다른 조로아스터교 사제들처럼 평소 깨달음을 쫓아 자연의 비밀을 연구했고, 모호하고 난해한 단어로 쓰여진 예언서를 읽었으며, 생명의 신비를 풀어낼 실마리를 얻기 위해 별의 움직임을 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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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기독교 집안에서 나고 자라 평생을 목사로 산 헨리 반 다이크의 창작 이야기이다.

 

에크바타나의 아르타반은 40대의 키가 크고 어두운 피부를 가진 조로아스터교 사제였다. 그는 다른 조로아스터교 사제들처럼 평소 깨달음을 쫓아 자연의 비밀을 연구했고, 모호하고 난해한 단어로 쓰여진 예언서를 읽었으며, 생명의 신비를 풀어낼 실마리를 얻기 위해 별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9월의 어느 날 밤, 아르타반은 자신의 집에 아홉 명의 조로아스터 교 사제들을 불러 모임을 가졌다. 거기서 아르타반은 자신의 친우 세 명과 함께 칼데아의 고대 명판을 보고 시간을 계산하여 지속적으로 밤하늘을 관찰한 것과 지난봄 두 개의 행성이 가까워지는 동시에 새로운 별이 떠오른 것을 목격한 것을 이야기했다.

모임이 있는 그날 밤 다시 그 광경이 포착된다면, 아베스타 성서에 나온 예언처럼 위대한 이스라엘의 왕이 태어난다는 확실한 표식이니, 열흘 후 자신은 바빌로니아의 보르시파 지구에서 친우 세 명과 합류하여 새로운 왕을 만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순례의 길을 떠날 것이라 했다.

 

아르타반은 이미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팔아 왕에게 진상할 세 가지 보석을 마련하여 떠날 준비를 마친 뒤였다. 그는 그 모임에 모인 다른 사제들에게도 함께 떠날 것을 제안했으나, 다른 이들은 각자의 사정으로 같이 떠날 수 없음을 말하며 되돌아갔다.

 

사람들이 돌아간 뒤 회의장에서 제단의 불꽃이 사라지는 것을 잠시 지켜본 아르타반은, 얼마 후 옥상으로 올라가 밤하늘을 응시했다. 곧 컴컴한 하늘에선 전에 목격했던 광경이 다시 나타났고, 그것을 표식이라 깨달은 아르타반은 친우들과 합류하기 위해 홀로 보르시파 지구의 성탑으로 출발하는데….

 

 

이야기는 아르타반이라는 조로아스터교 사제가 별의 움직임으로 예수 탄생을 예견하고 친구인 세 명의 동방박사와 새로운 유대의 왕을 만나러 가는 순례길에 오르려 하지만, 길이 엇갈려 홀로 낙오되며 일생 동안 유대의 왕을 만나기 위해 헤매는 이야기이다.

길지 않은 글이지만 읽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아르타반이 친우들을 만나러 가는 길에 지나치는 중요하지 않은 대추야자나무숲을 '창백한 모래 바다에 덩그러니 떠 있는 새카만 섬 같은 모습이었다'라고 세세하게 묘사하는 등, 열흘 동안 친우들을 만나러 가는 여정에서 지나가는 들판과 나무들에 대한 묘사 등이 과하게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과도한 수식어와 비유법은 이야기를 다소 산만하게 만들었다.

 

책을 읽는 내내 성경의 한 구절을 목사가 살을 붙여서 설명하고 설교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찾아보니 역시 이 책 『아르타반』은 작가가 목회자로 사역하던 중 설교를 통해 처음으로 발표했다고 한다.

 

아르타반이 33년 동안 나사렛 예수를 만나기 위해 헤매면서도 현자로서 어떠한 고민들을 했는지는 자세하게 나오지는 않는다.

다만 <본질> 편에서 예수를 찾아 헤매는 과정에서 아르타반은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 짧게 언급된다. 그리고 바빌론의 종려나무 숲과 베들레헴의 초가집, 예루살렘에서 거리에서 겪는 신앙적 기대와 실천적 사랑의 갈등이 언급된다.

마침내 아르타반은 이러한 일들이 왕을 만나는 것을 방해한 걸림돌이 아닌, 왕을 만난다는 목적의 본질에 다가서기 위해 꼭 필요한 순간이었음을 깨닫는다. 바로 왕 앞에 도착하지조차 못한 아르타반이 33년간 왕을 찾아 헤매며 행했던 선행들이 결국은 모두 신에게 한 일들이라는 것을.

 

결국 마지막에 기독교 신의 목소리를 들으며 선한 삶을 산 것에 대한 기독교적 구원을 암시하며 마무리된다.

기독교에 대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읽으면 깊은 감명과 깨달음을 얻을 책인 것 같다.

 

 

 

 

g********5 2022.10.20.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아르타반(The Other Wise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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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 is too slow for those who wait, too swift for those who fear, too long for those who grieve, too short for those who rejoice, but for those who love, time is eternity.   시간은 기다리는 자에게는 더디고, 두려워하는 자에게는 쏜살같으며, 슬퍼하는 자에게는 끝나지 않을 것 같고, 기뻐하는 자에게는 찰나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영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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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 is too slow for those who wait, too swift for those who fear, too long for those who grieve, too short for those who rejoice,

but for those who love, time is eternity.

 

시간은 기다리는 자에게는 더디고, 두려워하는 자에게는 쏜살같으며, 슬퍼하는 자에게는 끝나지 않을 것 같고, 기뻐하는 자에게는 찰나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영원하다.

아르타반 중

 

책을 열고 처음 맞이한 글을 읽었을 때는 아! 좋은 글이다 하고 지나갔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다시 읽은 첫 장은 여러 생각을 하게 하였다. 이미 읽은 두 권의 내로라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책이어서 아르타반 역시 그러한 이야기인지 알고 읽었다.

 

예수의 탄생을 예언한 별의 움직임을 과연 세 사람의 동방박사만 보았을까? 세 동방박사 이외에 다른 사람도 있었다. 언뜻 보면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이야기인듯하다. 하지만 아르타반은 성경 이전에 인간의 본질, 삶의 본질을 이야기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존경받고 풍요로운 삶을 살던 아르타반이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앞으로 찾아올 왕에게 바칠 세 가지 보석만을 가지고 길을 떠난다.

 

왜 세 가지 보석이었을까? 그리고 많은 보석 중 사파이어와, 루비, 진주였을까? 하고 읽는 내내 궁금하였다. 진리를 추구하는 자신의 진정한 왕을 찾기 위해 사막을, 베들레헴을, 이집트를, 수없이 많은 곳을 헤맨다. 헤매는 동안 왕에게 바칠 보석들을 차례로 다른 이를 위해 쓰이는 과정들에 아르타반은 미련을 두지 않는다. 보석이 가지는 상징성만을 골똘히 생각하며 읽었지만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보니 중요한 것은 보석이 아니었다.

 

아르타반은 배고픈 이를 만나면 빵과 물을, 아픈 이를 만나면 회복제를 주고 치료를 해주고, 헐벗은 이를 만나면 옷을 주었다. 자신이 가진 것을 하나하나 내주었다. 그가 걸어온 여정에는 그들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 비록 함께 왕을 찾아가기로 한 세 친구들을 만나지 못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도착한다.

 

어떤 삶을 살아야 마지막을 맞이했을 때 후회 없이 살았다 말할 수 있을까? 예수나 아르타반처럼 많은 이들에게 베풀고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일까? 질문을 끊임없이 되풀이해 보았다. 책을 읽는 중에도 하였지만 마지막 장을 덮고도 계속하였다. 서평을 쓰려 책상에 앉았지만 다시 일어나기를 몇 번 반복하였다.

 

<본질>, 아르타반이 찾아 헤매던, 그의 영혼이 바라던 본질이 무엇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한 삶을 살아왔다는 사실은 알게 되었다. 그는 마지막까지 만나고자 하던 자신의 왕을 만나지 못한다. 그럼에도 지난 삶을 돌이켜 단 한치의 후회도 남지 않아다 말한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그가 지나온 길을 같이 걸어야 알 수 있을 듯하다. 다시 한번 책을 들어본다.

 

내로라 출판사에서 이번에 선보인 책들은 영한 합본이다. 영어울렁증이 있는 사람으로서 책장을 넘기기 망설여졌다. 하지만 넘긴 책장의 영어들 중 가끔 모르는 단어들이 있었지만 무난히 읽을 수 있었다. 신기하고 이상한 경험이었다. 뜻을 알든 모르든 일단 영문을 읽은 후 해석된 글을 읽으니 더 읽기가 쉬웠다. 그럼에도 본질에 대한 답은 찾지 못했지만 답을 찾을 때까지는 몇 번이던 계속 읽어보면 된다. 진리를 찾고자 하는 아르타반의 마음이 조금 이해가 될 것도 같다.

 

살아감에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본질>을 탐구하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만약 헨리 반 다이크가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알게 된다면 알려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책은 실화가 아니다 온전히 헨리 반 다이크에 의해 만들어진 책이다.

 

 

리뷰 총점 종이책
아르타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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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 빠진 월간 내로라 시리즈의 마지막 이야기 <아르타반(The Other Wise Man)> 우리말 제목 ‘아르타반(Artaban)’은 주인공의 이름이다. ‘아르타반(Artaban)’은 당연한 진리란 존재하지 않으며, 일생을 바쳐 진리를 찾고자 한다. 이 이야기는 저자 헨리 반 다이크가 목회자로 사역하던 1895년 설교를 통해 낭독한 이야기이며, ‘네 번째 동방박사(The Fourth Wise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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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 빠진 월간 내로라 시리즈의 마지막 이야기 <아르타반(The Other Wise Man)>

우리말 제목 ‘아르타반(Artaban)’은 주인공의 이름이다. ‘아르타반(Artaban)’은 당연한 진리란 존재하지 않으며, 일생을 바쳐 진리를 찾고자 한다. 이 이야기는 저자 헨리 반 다이크가 목회자로 사역하던 1895년 설교를 통해 낭독한 이야기이며, ‘네 번째 동방박사(The Fourth Wise Man)’와 같은 제목의 영화도 있다고 한다.

주인공 아르타반 ? The Other Wise Man ? 네 번째 동방박사 ? The Fourth Wise Man, 모두 동일 인물이다. 동방박사는 말구유에서 태어난 아기 방문한 세 명의 동방박사를 말한다. 네 번째 동방박사인 아르타반은 왜 성경에 등장하지 못했을까?

 

아르타반은 조로아스터교의 사제로 등장한다. 실제 조로아스터교랑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설명과 함께, ‘나사렛 가족’을 만나러 가고자 할 뿐이다. 아르타반은 순례를 같이 하기로 한 친우인 동방박사들과 합류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죽어 가는 유대인 한 명으로 인해 일행을 놓친다.

그는 가진 것을 모두 팔아 반짝이는 밤 하늘 같은 사파이어와, 태양보다 찬란하게 빛나는 루비, 황혼녘 설산처럼 희고 맑은 진주를 준비하였으나, 이 세 보물은 끝내 봉헌되지 못한다. 각 장의 제목은 보물인 사파이어, 루비, 진주이다. 이 보물이 봉헌되지 못하고 소진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신비롭고 아름다운 이야기, 다시 살더라도 똑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는 아르타반의 회고는 깊은 깨달음을 준다.

영어는 영어 성경을 읽는 듯한 느낌이다. 영어성경을 읽을 때의 난관인 지명과 인물 이름, 생소한 어휘들이 영한합본의 이점을 통해서 쉽게 극복되어서 무척 편했다. 교수이자 목사, 저술가, 행정가이면서 시인이자 작가였던 헨리 반 다이크의 유려한 문장과 매끄러운 번역을 동시에 만날 수 있는 선물같이 좋은 이야기!

 

이야기 자체가 깊은 울림을 주고, 시어같이 아름다운 영어도 읽어볼 수 있어서 좋았다.

 

 

원서를 나란히 담고 있는, 단숨에 읽고 깊어질 수 있는 ‘월간 내로라’ 시리즈 책 세 권을 함께 하면서 깊은 경험을 할 수 있었음에 감사했던 시간이었다. <어느 개 이야기>는 받자마자 영어도 무척 즐기며 읽었고, <마음의 연대>는 대화가 많아서, 읽는 재미가 색달랐다. <아르타반>은 정말 성경읽기 같은 느낌이라 내용도 어휘도 곱씹으며 읽을 수 있었다.

 

마음에 드는 책으로 한번쯤 접해보면 너무 좋을 ‘월간 내로라’ 영한 합본시리즈. 앞으로도 단편은 꼭 원서로도 찾아 읽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앞으로도 ‘월간 내로라’에서 좋은 책이 많이 나왔으면 한다~!

 

y****1 2022.10.1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헨리 반 다이크 「아르타반」 (내노라, 2022)
"헨리 반 다이크 「아르타반」 (내노라, 2022)" 내용보기
조로아스터교 사제 아르타반은 별의 움직임을 연구하면서 경전 <아베스타>에 예언된 말씀이 이루어질 것을 확신합니다. 그는 태어날 왕을 만나기 위해 누구도 동행하지 않는 외로운 여정을 시작합니다. 그는 왕을 만나러 가는 길에 동행하기로 한 세 명의 동방박사들이 있는 사원을 향해 달려갑니다. 하지만 도중에 죽어가는 유대인을 만나 그를 보살펴주느라 지체하고 말았습니다. 그
"헨리 반 다이크 「아르타반」 (내노라, 2022)" 내용보기

조로아스터교 사제 아르타반은 별의 움직임을 연구하면서 경전 아베스타에 예언된 말씀이 이루어질 것을 확신합니다. 그는 태어날 왕을 만나기 위해 누구도 동행하지 않는 외로운 여정을 시작합니다. 그는 왕을 만나러 가는 길에 동행하기로 한 세 명의 동방박사들이 있는 사원을 향해 달려갑니다. 하지만 도중에 죽어가는 유대인을 만나 그를 보살펴주느라 지체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사파이어를 팔아 낙타를 사서 친구들을 따라잡으려 했습니다. 그는 낙타를 타고 사막을 건너 왕이 태어난 베들레헴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막 출산한 아기 엄마를 만나고, 그가 만나기를 원했던 왕의 가족은 이미 떠났음을 알게 됩니다. 그때 헤롯의 군인들이 아기들을 죽이려 집마다 쳐들어갔습니다. 아르타반은 군대장에게 루비를 주고 요셉 가족이 떠났다고 알려준 여인의 아이를 구합니다. 이제 주인공은 왕을 만나기 위해 이집트로 갑니다. 많은 세월이 흐르고, 그는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유대인의 축제에 나사렛 예수가 십자가에 처형당한다는 이야기를 듣는 그 날, 그는 노예로 팔려 가는 아이를 위해 왕에게 드릴 마지막 보석인 진주까지 내어 줍니다. 그때 하늘이 어두워지고 땅이 흔들렸습니다. 왕에게 드리려고 준비한 보석은 모두 없어졌고 그는 이 여정이 실패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도 이상하리만치 마음에 평온이 찾아왔습니다. 노쇠한 아르타반에게 달콤한 소리가 들립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태복음 2540). 그렇게 그의 여정은 끝났습니다. 그는 자신이 바라던 왕을 만났고, 왕은 아르타반이 준비한 보물들을 이미 기쁘게 받으신 것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참된 믿음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믿는 자들은 자신이 믿는 신에게 최고의 예배를 드리기를 원합니다. 가장 귀한 보물을 바치기를 원합니다. 신은 과연 어떤 보물을 가장 귀하게 받을까요? 고통당하는 이웃을 위해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내어 주는 것이 신에 최고의 보물을 드리는 것은 아닐까요? 참다운 신은 신자의 어떤 종교적인 의식(儀式)보다 사랑과 섬김의 삶을 가장 기쁘게 받을 것입니다. 목사인 헨리 반 다이크의 대표 소설, <아르타반믿음의 본질에 대해 깊은 울림을 줍니다. 종교를 초월하여 모두가 읽어볼 만한 아름답고 귀한 이야기입니다.

 
l******y 2022.10.1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