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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원하는대로 이루어지는 깡꿈월드입니다. 요즘 뉴진스님이 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사실 그보다 더 놀라운 건 불교의 포용력입니다. 불교란 어떤 가르침을 주는 걸까요? 1332. " 철학자의 불교 공부 노트 " 입니다. ![]() ![]() 불교를 논하려면 먼저 불교 근본 목적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첫째, 불교를 배우는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성불'하는 것이다. 둘째, 불교를 배우는 가장 기본적인 목적은 '이고득락'이며 이는 번뇌와 고통으로부터 해탈을 얻는 것이다. 이른바 '불'이란 사실 깨달은 자이고, 깨달음의 근본적인 의미는 고통의 배후에 있는 것이 허환된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일단 진실을 똑똑히 보게 되면 고통에서 벗어나게 된다. 성불한 사람을 '이고득락'을 가장 완벽하게 이룬 자로 여긴다. 나와 성불한 자의 차이는 이고득락을 이룬 정도가 다름에 있을 뿐인 것이다. 불교를 배우기에 적합한 사람은 적어도 인생이 고통스럽다고 생각하고, 또한 이고득락하고 싶어 하며, 지금은 어떻게 이러한 목적을 달성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다.
현재 상태를 바꾸는 것에 있다. 그러나 생활하는 세계의 현실이 바뀌어나가는 것이 결코 아니라, 자신이 변화해가는 것이다. ![]()
두 측면에서 볼 수 있다. 외적 세계에 어떤 일이 발생하면 내적 자아는 고통을 느낀다. 이럴 때 외적인 현실 상황을 바꾸어버리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또 다른 방법은 내면에 고통의 근원을 찾아서 생각을 바꾸어 포용력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그러면 외적인 사건은 더 이상 방해가 되지 않는다. 불교는 후자를 더욱 중요시한다. 그러나 '마음속을 돌이켜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고통의 근원은 공(空)이기 때문이다. ![]()
고통은 도대체 어떻게 발생한 것일까? 정답은 무명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불교는 우리에게 고통의 근본은 '스스로 번뇌를 자초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고통 속에 빠져있는 사람은 자기가 스스로 자초한 번뇌에 빠져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미혹된 자와 깨달은 자의 차이다. 불교를 공부하다 보면 모든 고통이 사실 스스로 자초한 번뇌일 뿐임을 알게 된다. ![]()
그것은 일종의 집착, 즉 '자신이 반드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이 반드시 정확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실제로는 일종의 무지의 표현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무지가 화를 초래한다'는 말은 실제도 지당한 명언이다. ![]() 삶을 깊은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표준이 되는 정답은 결코 없다. 표준이 되는 정답이 없는데 어떻게 자신이 반드시 정확한지를 판단하겠는가? 자신의 지식과 지혜는 모두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기만 해도, 자신이 반드시 옳다고 여길 만큼 오만해지지는 않는다. ![]()
몸과 마음을 관조'해보자. 이는 내관법으로 자기 마음속의 화를 자세하게 관찰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 당신이 화내는 것은 상대방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화가 나면 불쾌해지고 벌받는 것은 자신이다. 자신이 화를 내지 않는 방법을 깨닫게 된다면 세상에서 가장 큰 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게 된다. ![]()
상대방이 움직여주길 바라는 것이, 나의 마음대로 내 인생이 흘러가길 바라는 것이 번뇌를 불러오는 '집착'이다. 고통이 당신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고통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행복하고 싶다면 인생을 그저 흘러가는 대로 바라보자. 과거는 이미 사라졌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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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강조되는 '이고득락 (모든 축생(畜生)이 삼악도(三惡道)에서 벗어나 고통을 버리고 기쁨을 얻어 해탈의 경지에 이르기를 바라는 뜻으로 쓰는 불교의 진언) 離 : 떠날 리(이) 苦 : 괴로울 고 得 : 얻을 득 樂 : 즐거울 락 : 모든 축생이 삼악도에서 벗어나 고통을 버리고 기쁨을 얻어 해탈의 경지에 이르기를 바란다는 의미인데 저자는 여기에 더해 깨달음의 ‘실천’도 비중있게 다룬다. (두산백과) 사찰에는 법당 앞이나 일주문 왼쪽에 범종각(梵鐘閣)이 보이는데, 새벽과 저녁 예불에 앞서 종을 친다. 종을 칠 때는 언제나 지옥을 없애는 뜻을 담은 '파지옥진언(破地獄眞言)'의 종송(鐘誦)을 한다. 특히 새벽 종송 때는 항상 지옥도(地獄道)·아귀도(餓鬼道)·축생도(畜生道)·수라방생도(修羅傍生道)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이 "이 종소리 듣고 고통을 여의어 기쁨을 얻을지어다(聞此鐘聲離苦得樂)"는 이고득락의 후렴 진언으로 끝을 맺는다. 이고득락은 모든 축생이 6개의 지옥, 이 가운데서도 특히 고통과 불행으로 가득한 지옥도·아귀도·축생도의 삼악도(三惡道) 윤회에서 벗어나 해탈하기를 바라는 뜻으로 외는 중요한 진언이다. 불교의 49재(齋) 의식 가운데 영혼을 천도하는 의식인 영산재(靈山齋) 역시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이 다 함께 불법을 깨달아 고통이 없는 기쁨의 세계에 이르기를 발원하는 데 목적이 있다. 중생들이 원하는 바에 따라 고통을 없애 주고 즐거움을 준다는 '발고여락(拔苦與樂)'도 같은 뜻이다. 철학과 불교, 표면적으로 보면 굉장히 어렵고 복잡하고 고리타분하여 따분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저자가 불교 입문자를 대상으로 책을 썼기 때문에 어려운 용어를 현 시국에 맞에 풀어 서술 하였고 그런 선입견을 돌파하고 나면 어느새 우리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변화를 갖는다. 불교는 그런 것 같다. 고통 속에서 헤매는 중생을 구제하는 일, 우선 우리가 불교의 깨달음을 배우려는 의지가 첫번째 순서다. 시작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는 것 처럼, 출판사 덕분에 마음수업을 다방면으로 깨닫고 있는데 읽는 도중에는 큰 일이 일어나지 않지만 다 읽고 나면 분명 나는 바뀌어 있는 나지막한 수업을 받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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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엔즈 교수가 불교를 바라보는 시각이 좋았다. 나와 비슷한 관점이었어서. 불교를 종교보다 철학에 가깝게 보는 관점.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떤 가치관을 가져야 하는가, 무위란 무엇인가.. 등 많은 질문들이 불교를 공부하며 쏟아져 나오고 그에 따른 또 다른 질문들이 계속 이어지며 머리가 복잡할 때가 있다. 처음 읽을 때는 쉽게 느껴지는데 더 생각하고 공부할수록 어렵달까. 불교를 철학과 연계해 생각의 지평을 넓혀준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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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인생을 살아가며 삶에 대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 때문에 철학과 종교는 어떠한 면에서든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학문이자 종교가 아닌가 싶다. 이번에 철학과 불교를 하나로 묶은 듯한 제목의 책이 나와 관심을 가지고 보게 되었다. 대만 철학과 교수인 지지엔즈의 신간 "철학자의 불교 공부노트"는 제목부터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누구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 두 분야를 하나로 묶어서, 게다가 공부노트라 하니 두 가지를 어떤 식으로 묶어가는 지 궁금해진다. 철학이라는 학문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아도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인식, 존재, 가치의 세 기준에 따라 나뉜다라고 되어 있다. 또 불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불경을 경전으로 삼아 결국 깨달음에 이르는 종교를 말한다고 한다. 이 두가지 사상을 어떻게 잘 접목하고 이야기를 펼쳐가는 지 책 속으로 들어가 본다.
책은 철학이 아닌 불교의 접근부터 먼저 말을 해준다. 모든 종교가 그러하듯 불교는 인간의 번뇌와 고통을 벗어나 해탈에 이르는 "이고득락"의 과정이라고 한다. 실제로 불교는 삶이 고통스럽고 어렵게 느껴질 때 그것을 바꿔보려고 사유하고 수행하는데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런 점이 철학과 다른 점이라고 한다. 철학은 호기심에서 출발해 진리를 탐구하고 문제의 해답을 얻고자 생각을 전개하여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서 기원했다고 한다. 책에서는 불교를 배우려는 사람을 각각의 예시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불교가 실제 사유하고 수행하는 데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들은 불교를 배우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에 안주하는 인간은 적기 때문에 불교를 배우고 사유하며 실천해 나가야 한다고 한다. 불교를 배우기에 적합한 사람은 적어도 인생이 고통스럽다고 생각하고 또 이고득락하고 싶어하며 지금은 어떻게 달성해야할 지 모르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고득락의 방법은 무수히 많다고 한다. 사유하고 실천하는 방법은 사람마다의 차이가 있어 접근법이 다 다르다고 한다. 하지만 불교를 배우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나 역시 불교에서 사용하는 용어들이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지지엔즈도 그런 점은 문제로 설명하고 있다. 난해한 불교용어들은 피하고 좀더 익숙한 현대어로 심도있는 불교의 지혜를 진술할 수 있는 책이 있기를 바란다고 적어 놓았다.
인생에서 핵심적인 것은 행복과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한다. 즉, 이고득락하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생활하면서 경쟁하는 스트레스, 업무스트레스, 경제적인 스트레스, 질병에 대한 스ㅣ트레스,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죽음에 대한 스트레스 등 현대생활을 하면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스트레스를 저자는 불교에서 말하는 첫번째 고통, 몸과 마음의 고통으로 표현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통을 벗어날 수 없을 때, 각종 쾌락을 추구하며 고통을 등한시 한다고 한다. 하지만 고통을 등한시 하는 것은 한시적 효과가 있을 뿐 고통을 해소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문제점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한순간의 즐거움은 오래갈 수 없고 권태로워지며 재미가 없어져 결국에 삶의 의미도 없는 허무함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이것을 불교에서 말하는 두번째 고통인 즐거움이 사라지는 고통이라고 하고, 잘못된 관념으로 인하여 야기된 고통을 세번째 고통인 집착하는 고통이라 표현했다. 옛 고승들은 이런 고통들에 대해 이고득락하기 위해 반드시 수행을 해야 한다는 점을 발견했다고 한다. 수행은 자신을 변화키고 지혜를 향상시켜 염원을 바뀌게 해주며 그를 통해 자신이 행복과 즐거움을 주관하는 하나의 담지체로 바뀐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혜와 수행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한다. 잘못된 지식이나 사고를 통해 발생하는 고통도 많기 때문에 제대로 공부하고 그에 따른 수행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한다.
현대인들은 집착에 빠지고도 알아채지 못한다고 한다. 심지어 고통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스트레스 속에 살면서 그것이 익숙해 지면 자신이 어떤 스트레스가 있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스트레스가 몸을 망칠 때가 되서야 상황의 심각성을 알아채게 된다고 한다. 현 상황에서 발견하지 못하는 것들이 한발 물러나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돌아봤을 때 그 혼란의 근원을 조금씩 찾아갈 수 있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고통의 근원을 '스스로 번뇌를 자초하는 데 있다'고 한다. 그것은 없는 것을 만들어 내고, 스스로 그 고뇌에 빠지는 것. 그것에서 모든 고통이 시작된다고 하여 고통의 근원은 공이라고 말한다. 스스로 자초한 번뇌를 없애는 것, 즉, 깨달음을 깨우친 자만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바로 이런 것을 수행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불교를 배우는 목적이라고 한다.
탐욕과 분노, 그리고 어리석음은 고통의 근원이며, 그것이 초래하는 혼란을 없애는 것이 이고득락하는 근본적인 방법이다 라는 견해는 그래도 이해하기 쉬운 불교의 주장이라고 책은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더 깊이 들어간 불교사상에서는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이 결코 고통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라고 한다. 그것들의 배후에 '나(我)'라고 하는 더 원초적인 기원이 있어서 불교에서는 '무아(無我)'를 깨우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고통의 근원이 되는 나를 없애는 것, 이것이 이고득락으로 가는 첫걸음이라고 말하고 있다. 처음엔 책의 제목에 끌려서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는데, 저자는 불교와 철학을 적절히 융화하여 현실을 살아가는 지혜를 알려주고 있었다. 평상시 너무 심오하게만 느껴지던 불교 용어들의 난해함을 함께 지적해줘서 괜한 긍정의 끄덕임을 하게 하고, 불교의 공사상이 어떻게 사유의 근원이 되는지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나아가 칼포터의 반증주의, 흄의 회의주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과 실천이성비판, 하이데거의 현상학, 유가의 중용지도, 장자의 대자재, 송나라 명리학 까지 동서양의 모든 철학사상을 인용해 불교학을 설명하고 있어서 사상가가 아닌 일반인으로서의 철학과 불교에 접근할 용기를 불어주고 있었다. 철학이라는 주제가, 불교라는 주제가 절대 고리타분하지 않고, 가독성이 좋아, 새로운 계절로 향해가는 요즈음 1독을 권장한다. 누구라도 부담없이 동서양의 철학사상의 바다로 빠져보기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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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에 만난 책 #철학자의불교공부노트 대만의 철학자 #지지엔즈 가 #철학 을 배운 입장에서 바라본 #불교 와 그 수행에 대한 이야기. 최근에 #불광출판사 에서 준 책들이 이렇게 불교라는 종교만이 아니라 다른 종교의 종사자(?)가 쓴 책이나 이처럼 철학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주어서 좋다. 나는 우리나라에서도 불교가 종교의 모습에서 확장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여주고, 수행이 하나의 실천의 모습으로 보여주는 영역이 되기를 바란다. 짧은 공부이지만, 책을 읽다보니 지금의 지친 우리를 위로해줄 수 있는 좋은 #인문 학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부동산, 코인, 주식, 물가, 정치, 선거, 크고 작은 바람들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 손가락, 발가락에 힘주고 버티고 서있으면서 생기는 질투, 절망, 허무함, 두려움들을 극복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는 가르침이 "불교"이기를 바라며, 나 또한 느리더라도 조금씩 수행하고 실천하는 인간이 되기를 바란다. -즐겁게 사는 사람이 되려면 약간의 수완이 필요하고, 조금의 지혜도 필요하다. 진정 즐겁게 사는 방법은 결코 성공해서 명성을 날리는 것이 아니고, 이러한 능력과 지혜를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이것을 교과 과정으로 전환하여 초중등 기초 교육에 적용할 수 있다면, 사회 전체가 착가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더 행복하고 즐거운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불교를 공부하는 목적이 이고득락의 효과를 얻으려는 것이라면 불교를 자기와 무관한 학문으로만 여겨 연구해서는 안되며, 반드시 시시각각 마음속으로 돌이켜 검증해야 한다. 따라서 탐욕, 분노,어리석음이 어떻게 번뇌의 근원이 되는지 알아야 하며, 반드시 자신의 내면의 탐욕, 분노, 어리석음을 살피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러나 사실 이것ㄷ 쉬운 일은 아니다. 내가 불교를 처음 접했을 때 나 자산은 어떤 탐욕, 분노, 어리석음도 없다고 생각했었다. -우리는 참는 것이 아니라 멈추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불법을 수행하여 자신을 변화시키면 분노는 더 이상 사람의 마음을 흔들지 못한다. -불교의 주된 목적은 이론을 수립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 수행을 통해 체험하는 데 있다. -어떤 부정적인 처지에 부닥쳤을 때, 잠시 부정적인 감정을 내려놓을 수 있으면 사람을 기쁘게 하는 인생의 큰길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것이 수행해야 할 가치가 있는 '일체개공'의 지혜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떠돌이 동물을 사랑하는 자비심이 얼마나 있습니까? -자비심의 가장 기본적인 의미는 대승불교가 중요시하는 '무연대비, 동체대비'이다. 이것은 '자신과 관계가 친밀하든 소원하든, 사이가 가깝든 멀든, 인연이 있든 없든 모두 중생의 고통이 없어지기를 희망하고, 내 몸과 같이 느끼며, 중생들이 기쁨을 얻기를 바란다'라는 뜻이다. -나와 남의 구별을 깨고, 남을 헤아림이 곧 자신을 헤아림이다. #서포터즈 #빛무리 #신간 #서평 #자기계발 #마음공부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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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그대로 철학과교수인 저자가 불교를 공부하며 깨달은 바들을 불교입문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한 책이다. 300페이지 남짓 되는 분량이지만 수십시간의 불교와 철학 강의를 듣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수많은 내용들을 배울 수 있었던 책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불교와 철학을 좀 더 깊이 공부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고 일단은 두번 세번더 이 책을 꼼꼼히 읽어야 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책의 구성은 이고득락의 사색을 다루는 전반부와 이고득락의 수행을 논하는 후반부로 나뉘고 그 아래 세부적인 챕터들이 엮여있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이고득락이라는 키워드의 뜻은 모든 축생이 삼악도에서 벗어나 고통을 버리고 기쁨을 얻어 해탈의 경지에 이르기를 바란다는 의미인데 저자는 여기에 더해 깨달음의 ‘실천’도 비중있게 다룬다.
특히 평소 불교를 종교적 관점보다 철학적 관점으로 들여다 보는데 흥미를 느꼈던 나로서는 더할 수 없이 즐거운 읽을거리였고그 중에서도 철학과 불교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명쾌하게 정리하는 대목들이 인상적이었다.
철학과 불교는 모두 지식에 대해서는 건설적이기보다는 파괴적이다. 철학과 불교 공히 기존 지식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춘다. 철학이든 불교든 모두 사람들이 여러 가지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있고, 또 그것들을 온힘을 다해 찾아내서 없애야 한다고 여긴다. 불교에서는 이런 잘못된 지식에 빠져 있는 상태를 ‘무명(無明)’이라고 정의하고 그걸 없애는 방법으로 ‘정견(正見)’을 제시한다.
철학은 보통 사고를 통해서만 잘못을 없애고, 아울러 가능한 한 다시 사고를 통해서 더 합리적인 해답을 제시한다. 불교는 사고를 통해서 잘못을 없애는 것 이외에 자신의 내면을 변화시키는 수행을 통해서 최종적인 해답을 직관하여 얻는다. 양자가 가장 다른 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개인적으로는 불교를 배우는 것은 사실 새로운 관점을 배우는 것이다는 대목도 인상적이었는데 새로운 관점을 배우는 것과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것은 다르다.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것은 이전에 알고 있는 지식을 기반으로 하지만 새로운 관점을 배울 때는 반드시 기존의 관점을 아예 제거해야 한다. 이런 학습 과정은 일종의 지식 전체에 대한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바다에서 낡은 배를 완전히 뜯어내고 새 배를 만드는 것만큼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이미 습관이 되어버린 기존의 낡은 관점을 아예 제거해야 하는 이러한 일 자체가 가장 어려운 단계이다. 이 어려움 또한 집착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불교를 이해하려면 반드시 진정으로 체득해 깨달아야 한다. 체득해 깨달으면 진정으로 새로운 관점을 깨달아 기존의 관점을 완전히 내려놓게 된다.
그 외에도 자비심 수행과 관련해서 저자는 마음에 남과 나를 구분하는 이러한 사유 구조를 가지고 있는 한 이 모순을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 모순을 해결하려면 반드시 먼저 이기와 이타의 절대적인 구분을 없애야 한다. 그것을 없앨 수 있어야 이 사유의 늪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날 길을 찾고 어리석음[無明]에서 깨어나 이 모순을 없앨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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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서 벗어나 행복을 찾는다는, 이고득락(?苦得?)이라는 단어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속세의 쾌락, 욕망을 좆는 방식으로 행복을 찾고자 한다. 하지만 불교의 관점에서 세상을 자라보면, 모든 것은 고통을 유발한다. 속세의 것들을 쫓는 것은 고통을 등한시하는 것일 뿐이고, 일시적일 뿐이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이고득락의 측면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흔히 말하는 불교의 공(空) 사상은 삶의 고통에서 멀어지기 위한 생각임을, 그리고 '색즉시공 공즉시색' 과 같이 공의 인식을 가지고 현재의 즐거움을 바라보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저자 지지엔즈는 다양한 예시와 서양 철학자들의 관점을 언급하여 쉽게 설명하고 있다. 흔히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 '일단 몸을 먼저 쓸 지' 와 '머리로 먼저 생각할 지' 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불교 역시 마찬가지이다. 지혜를 깨닫는 것이 우선일지, 수행을 통한 깨달음을 얻는 것이 우선일지 불교의 역사의 관점에서도 매우 중요한 논쟁이었다. 이에 대한 내용도 이 책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두 파트로 나뉜다. '이고득락의 사색' 과 '이고득락의 수행'.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두 파트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론과 실천은 둘 다 중요한 것임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철학자의 불교 공부 노트> 를 읽으며 가장 궁금했던 내용은, 철학과 불교의 관계는 어떠한가에 대한 것이었다. 흔히들 불교는 종교와 철학의 두 영역을 다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철학의 가장 큰 특징은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키고, 논리를 통해 기존의 이론보다 더 나은 이론을 정립하는 것이다. 불교는 이러한 철학의 속성을 가지고 있지만, 종교로서의 불교는 철학과는 달리 끊임없는 의심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향해 나아가는 종교로서의 불교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이라는 철학적인 관점에서도 충분히 흥미롭다. 불교에 대해 알아가고 싶지만, 신도의 입장이 아닌 사상과 철학의 관점에서 알아가고 싶은 분들이 이 책을 통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저자가 스님이나 불교철학 전공자는 아니시기에 전문적이고 심오하지는 않지만, 방대한 불교 세계관에 내딛는 걸음마를 위한 튼튼한 보행기의 역할을 해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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