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것들과 죽음은 눈에 보이지 않아야 했다. / p.203
예전에는 얼른 어른이 되게 해 달라고 빌었지만 지금은 한 살이라도 젊어지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러면서 부모님과 다른 어른들의 이야기 하나가 크게 공감이 된다. 세월은 갈수록 빠르게 흐른다는 말. 그때는 이해도, 공감도, 그렇다고 실제로 빠르게 흐르는 것 같지도 않았다. 끝이 없는 학교 생활이 계속 이어질 줄만 알았다.
지금은 너무나 하루하루 빠르게 흐르고 있음을 체감한다. 눈을 감았다 뜨면 일주일, 한 달, 그리고 일 년. 2023 년에 모 방송사의 연말 음악 축제에서 가수 장기하 님의 <새해 복>이라는 노래를 들은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 분기가 흘렀다. 아니, 아예 봄이 되어 벚꽃도 졌다. 옷차림도 많이 얇아졌다. 찰나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한 살 카운트가 오를 것임을 알고 있다. 더 빠르게 흐를 세월이 이제는 무섭기까지 하다.
이 책은 아니 에르노의 장편소설이다. 전에 아버지의 삶을 다룬 책이 꽤 인상 깊게 남았다. 다른 이성인 남성의 삶을 객관적으로 나열이 되었다는 점이 지금까지 읽었던 주제와 조금 다르게 느껴졌는데 주변에서 이 작품에 대한 추천을 많이 받았다. 분명히 좋은 기억을 받았다면 이 작품 역시도 만족할 것이라고 했다. 사실 이 책은 꽤 오래 전에 구매했는데 시간이 없어 미루다 이제서야 펼치게 되었다.
소설의 화자는 사진 또는 그림, 영상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1941 년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꽤 오랜 시간동안 전개가 된다. 남자를 만나 성애적인 사랑을 나누고, 전쟁과 종교, 사회적인 분위기에 대한 기술도 한다. 끝까지 이름을 밝힌다거나 드러내지 않고 '단지 그 여자는 사진의 누구다.' 정로도 표현된다. 한 사람의 생에서부터 사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읽으면서 여성으로서, 프랑스라는 국가의 국민으로서, 당시 사회를 살고 있는 한 인간으로서 혼란스러운 사회상과 감정을 어렴풋이 경험할 수 있었다. 나름 기대를 가지고 읽었던 책이었는데 생각보다 책장이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그것도 묵직하게 와닿았다. 그 지점이 감정적으로 감당하기 조금 힘들었으며, 작품의 문체를 떠나 어려웠다. 어려움과 별개로 화자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두 가지 지점이 조금 어렵게 느껴졌다. 첫 번째는 공간적인 배경이었다. 소설이기는 하지만 겪은 이야기를 집필한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작품 역시도 읽으면서 저자의 세월을 다루었다는 생각을 가지고 읽게 되었다. 주된 무대가 프랑스인데 세계사를 배운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디테일하게 배우지 않다 보니 용어들을 이해하는 게 조금 힘들었다. 아래 주석을 보지 않는다면 더욱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
두 번째는 여성에 대한 시각이었다. 소설에서는 성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낙태는 하나의 죄악이 되고, 여자는 성적인 욕구를 내비치거나 결혼하기 전 남자와 관계를 가지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시대상과 함께 여성으로서의 감정을 이야기한다. 이런 부분에서 조금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직접적인 단어들이 자주 보였는데 아무래도 보수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이기에 이 부분은 익숙하지 않았다. 그러나 외설적인 느낌을 받은 것과 별개로 화자의 감정과 생각 자체는 많은 공감이 되었다.
도전이자 과제를 한다는 생각으로 하나하나 꾹꾹 완독을 했던 것 같다. 작품을 통해 한 여성의 진실된 삶을 보게 되어 참 인상 깊었다. 그러나 아직은 감정을 받아낸 것보다 어렵게 느껴져서 이 부분은 많이 아쉬웠다. 추후 조금 더 문학적인 발전을 하게 된다면 온전히 이해하고 싶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의 작품이라 관심이 갔고, 첫 책으로 젊은남자를 먼저 읽고서, 이 책을 선택했다. 얇은 책이어서 두 번을 내리 읽었다. 얇다고 결코 가볍지 않은 책이다. "나의 종(種)을 배신하기 위해 나는 글을 쓰겠어?" 라는 작가...기억, 시간, 사랑과 글쓰기... 고령의 작가의 경험과 정수를 녹인 작품들 쉽지 않았다. 번역이 다소 부자연스러워 매끄럽게 넘어가지 않아 여러 번 읽었다. 책은 1984books 책들이 그러하듯 소장 욕구를 일으키니 예쁘다. 그러나 조금 인내와 시간이 필요한 책이었다. 조금 더 나이들어 읽어보면 그때는 이 책이 어떻게 다가올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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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달 독서모임 책들 중 '아니 에르노'의 책이 있다. 지나칠 정도로 솔직한 그녀의 글은 좀 불편하고 부담스러워서 썩 좋아하기 어렵지만 이참에 좀 읽어보려 한다. 이 책은 자전적 글쓰기를 하는 아니 에르노가 쓴 책 중 가장 포괄적인 이야기를 담은 책이 아닌가 한다. ''1941년에서부터 2006년까지, 노르망디에서 노동자 계급으로 태어나 자란 것에서 시작해 파리 교외의 세르지에서 프랑스 문학을 가르치던 교수 그리고 작가인 현재에 이르기까지, 가족 사진첩을 넘기듯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변화하는 자신의 굴곡진 전 생애를 다룬다.'' 소설이라고 하지만 전혀 소설 같지 않다. 작가 자신의 다큐멘터리 같았고 '나는'이 아니라 '우리', '그녀는'이라고 표현할 뿐이이었다. '공동의 기억', '비개인적인 자서전'. 정말 적합한 말이다. 이런 스타일의 자서전은 처음이다. 역사와 사회 속의 개인을 소설인듯 소설 아닌 소설 같은 형식의 글로 쓰다니. 자연스레 나의 성장과 나의 배경과 나의 역사를 떠올려 보게 되었다. 아니 에르노의 사실적 글쓰기는 부인할 수 없는 진정성이 있다. 그 묵직한 진정성에 공감과 감동이 느껴진다. |
아니 에르노 그녀 인생의 파편이 문단 덩어리가 되어 툭툭 무심하게 나열되어 있다.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는 문단들, 불친절하게 배치된 문단들이 툭툭 지면 위에 그려져 있다. 그러나 동시에 꼼꼼하고 세밀하게 묘사되어 하나의 문단은 곧 하나의 장면이 된다. 때론 생생하고 때론 강렬한 장면이 되어 다가온다.
가장 개인적인 경험들이 가장 솔직한 문체로 가감 없이(숨김없이 그리고 꾸밈없이) 쓰여 있다. 그렇기에 보편적이다. 솔직하게 파고드는 깊이가 본질에 닿아 공감 가능한 보편성으로 확장되는 인상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동시에 지극히 보편적인 이야기, 아마 아니 에르노 소설의 가장 큰 한 가지 매력이 아닐까 생각 든다.
생생한 개인의 경험 속에서 발견하는 보편성, 나아가 짧고 강렬한 각각의 장면들이 남기는 깊은 여운까지. 독특하고 신선한 매력으로 가득한 아니 에르노의 소설을 리뷰 작성 기회를 통해 소개 및 추천 드려본다. |
아니 에르노의 책을 여러권 사서 읽었다. 왠지 깊은 주름이 진 손으로 커피잔을 든 여인의 모습이 생각나는 작가. 세월에서 보여주는 아니 에르노는 여전히 지극히 개인적이고 자작적인 이야기를 끌고 간다. 이어지지 않는듯한 사건이나 스토리의 연속. 어쩌면 세월이라는게 그런것 아닐까 내 기억속의 모든 세월도 하나씩 단편적으로 끊어진채로 기억되고 소장되어있다. 어쩌면 새로운 상상이 덧입혀진 기억도 있겠지. 그녀가 살아있었기에 기록할 수 있었던 단편적이지만 길고 지난했던 그녀의 역사들 때로는 비참하고 때로는 부끄러웠던 세월의 나열. 그것을 바라봄으로서 살아있었음에 대한 확신. 얼마나 세월이 지난후에 나는 쌓여진 나의 기억을들 바라볼 수 있을까. 역사속에서 그녀의 내면과 그녀의 외부에 흐르는 시간을 느끼게 해주는 모파상의'인생'같은 어떤 것, 존재와 사물들의 상실, 부모, 남편, 집을 떠나는 자식들, 팔아버린 가구들 속에서 끝이 날 완전한 소설을. 그녀는 손에 쥐어야 할 다수의 물건들과 현실 속에서 자신을 잃어가는게 두려웠다. 그녀는 어떻게 중요한 사건들과 잡다한 사건, 그녀를 오늘날까지 이끌어 온 수천 번의 나날들이 쌓인 이 기억들을 정리할 수 있을까?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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