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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도라 덩컨의 영혼의 몸짓]은
이 책, <이사도라 덩컨의 영혼의 몸짓(원제: The Art of the Dance)>은 이사도라 덩컨(Isadora Duncan, 18771)~1927, 이하 ‘덩컨’)의 무용에 관한 생각과 자신의 예술철학에 관한 글들을 묶은 책이다. 덕분에 마치 조선시대 선비의 문집(文集)을 읽고 그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파악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왜 토슈즈를 벗었을까?
이사도라 덩컨. 실제 영화는 보지 못했지만, 어디에서가 들은 <맨발의 이사도라[원제: Isadora]>(1968)라는 영화제목은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그 때문인지 나는 그녀가 토슈즈(toe shoes)2)를 벗어 던지고 맨발로 춤을 추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렇다면 왜 그녀가 토슈즈와 튀튀(tutu)3) 를 벗었다는 것이 화제가 된 것일까? 19세기 후반, 유럽의 무용계는 춤이라고는 정형화된 형식의 발레가 전부였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덩컨은 폭스트롯(Foxtrot)이나 찰스턴(Charleston) 같은 사교춤[ballroom dance]가 아닌 ‘미국의 춤’을 추구했다. 그녀가 꿈꾼 ‘미국의 춤’은 단지 미국인이 추는 춤이 아니라 ‘자유시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월터 휘트먼(Walter Whitman, 1819~1892)4)이 들은 미국의 노래에 어울리는, 미국 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런 춤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기존의 춤을 ‘미국의 춤’이 아니라고 비판했다.
비틀거리며 원숭이처럼 경련하는 찰스턴이 아니라, 높은 곳에 성큼 올라서기 위한 씩씩한 출발, 이집트의 피라미드 위와 그리스의 파르테논 너머로 향하는 힘찬 등반이자, 어떤 문명사회에서도 알려진 적 없는 아름다움과 힘의 표현, 그것이 미국의 춤일 것이다. [p. 24]
미국이 정확한 동작을 강조하는 스웨덴 체조와 발레를 장려하다니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진정한 미국이라면 발레 무용수가 될 수 없다. 꾸며낸 우아함과 발끝으로 걷는 발레를 하기에는 다리가 길고, 몸은 너무 유연하고, 정신은 더없이 자유롭다. 이름난 발레 무용수는 하나같이 체격이 보잘것없고 키가 작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키가 크고 몸매가 늘씬하다면 결코 발레를 할 수가 없다. 미국을 가장 훌륭하게 표현하는 사람이라면 결코 발레를 하지 않을 것이다. ~ 중략 ~ 왈츠와 마주르카는 퇴색한 감상주의와 로맨스를 표현한 것일 뿐으로, 젊은 세대는 이미 그런 것에서 한참 앞서가 있다. 그리고 미뉴에트는 프랑스 루이 14세 때 궁정 사람들의 비굴함과 크리놀린 차림의 답답함을 표현한다. 이런 춤이 미국의 자유로운 젊은이들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pp. 24~ 25]
덩컨에 있어서 춤 추는 것은 직업이 아니라 삶이었다. 그래서 구속당하는 삶을 원하는 이가 없는 것처럼, 그녀도 춤을 억압하는 모든 것에 저항했다.
춤추는 것은 사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삶의 학교다. 인간의 가장 큰 부는 영혼과 상상력에 있다. 다음 생이 있을 수도 있지만, 다음 생에 무엇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은 단 하나, 이 땅에서 우리의 모든 가치는 우리의 의지와 내면적 삶에 있다는 사실뿐이다. [p. 74]
따라서 그녀는 인위적이고 기교에 치중하는 발레의 동작을 답습하는 대신 표현의 창의성을 강조하면서 자신만의 생각, 감성을 자유롭게 표현했다. 이를 위해 그녀는 토슈즈와 튀튀를 버린 것이다.
인간의 문화는 자연의 힘을 이용하되, 자연을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힘과 조화를 이루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더구나 모든 예술은 자연에서 비롯하고 자연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화가, 시인, 조각가, 극작가는 저마다 자연 속에서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능력으로 작품을 표현할 뿐, 작품을 위해 자연을 고치지 않는다. 자연은 언제나 모든 예술의 위대한 원천이었고, 마땅히 그래야 한다. 그런데도 오늘날 무용가의 동작은 자연의 움직임에서 너무 멀리 있다. [p. 65]
불꽃처럼 타오르다
형식주의적 기교에서 벗어나 내면의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그녀의 춤은 시대를 앞선 것이었다. 비록 그녀의 춤으로 그녀에게 ‘현대 무용의 선구자’, ‘자유무용의 창시자’라는 칭호가 붙었지만 시대를 앞서나간, 선구자의 삶은 신산(辛酸)할 수 밖에 없다.
내가 예술에 조금이라도 혁신적인 방법을 도입하면 평론가들은 그런 나를 비난하지만, 10년 후에 그들은 같은 말로 나를 모방한 이들을 칭송한다. [p. 143]
선구자이기에 받아야 했던 비난은 곧은 신념이 있으면 감수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개인적인 불행은 견디기 쉽지 않다.
사회적 금기에 끈질기게 저항한 그녀는 사생활에서도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그녀는 무대디자이너 고든 크레이그5)와 함께 첫아이인 테어드로를 낳았지만, 둘 다 결혼은 원하지 않았다. 둘째 패트릭의 아버지는 재봉틀 기업 가문의 상속자이자 예술후원가인 패리스 싱어6)였다. 1913년 덩컨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비극이 일어났다. 그녀의 두 아이와 보모가 탄 차가 파리 센 강에 추락해 모두 목숨을 잃은 것이다. ~ 중략 ~ 그러나 그들이 도착했을 때 미국은 공산주의의 위협에 대한 두려움이 극에 달해 있었고, 덩컨 부부는 볼셰비키 조직원이라는 부당한 꼬리표를 얻었다. 덩컨은 다시 모국을 떠나며 씁쓸한 심경으로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안녕, 미국이여. 다시는 볼 수 없겠군요.” 이후 그녀는 미국에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으며 유럽에서 예세닌7)과 불행한 나날을 이어갔다. 불안정한 정신 상태가 악화된 예세닌은 덩컨에게 등을 돌렸고, 소련으로 혼자 돌아가 1925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프랑스 리비에라의 니스에서 위태롭게 지내던 덩컨은 1927년 9월 14일 니스에서 자동차 뒷바퀴에 스카프가 엉키며 목이 졸리는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었다. [pp. 13~14]
대담하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했던 덩컨은 자신의 삶도 이렇게 파격적이고 극적으로 마무리했다.
뿐만 아니다. 자유와 사랑을 갈구하는 그녀에게 사랑하는, 아니 사랑한다고 믿은 이와 가치관의 차이로 헤어지는 것도 큰 상처였을 것이다. 이 책에는 없지만, 첫 번째 남자인 고든 크레이그는 배우를 연출가의 의지로 움직이는 존재로 보았기에 무용수의 자유의지를 추구하는 그녀와 함께 할 수 없었다. 두 번째 남자인 패리스 싱어는 그녀에게 댄싱스쿨까지 지어줄 정도로 넉넉하게 지원을 했지만, 그녀가 끝내 결혼을 거부하자 그녀의 곁을 떠났다. 패리스 싱어가 결혼 후에는 무용활동을 하지 않기를 바랬다고 하니 그런 점도 두 사람이 결혼이 이르지 못한 이유였을 지도 모른다. 세 번째 남자인 세르게이 예세닌은 죽은 자신의 아들과 닮은17세 연하의 시인이었는데, 자신의 예술은 영속하지만 그녀의 예술은 사라질 것이라고 여겼다고 한다. 게다가 그가 신경 쇠약, 간질, 알코올 중독에 시달렸으니 그들의 결혼생활이 불행할 수 밖에.
이처럼 그녀의 삶에 존재했던 세 남자는 모두 그녀의 가치관과 충돌, 끝내 모두 헤어졌다. 아마도 그래서 그녀는
나는 평생 두 가지 원동력, 사랑과 예술만 알고 살아왔다. 그리고 종종 사랑은 예술을 파괴했다. 게다가 예술의 오만한 부름은 사랑에 비극적인 종지부를 찍곤 했다. 둘 사이에는 일치란 없으며, 끊임없는 전투만이 계속될 뿐이다. [p. 164]
라는 말을 남겼나 보다.
옥의 티
본문과 달리 들어가는 글 부분의 위쪽 여백이 너무 좁고 아래쪽 여백은 너무 넓다. 내가 받은 책만 그런 것인지 일부러 그렇게 편집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읽으면서 조금 불편했다.
p. 24 진정한 미국이라면 발레 무용수가 될 수 없다. ⇒ 진정한 미국인이라면 발레 무용수가 될 수 없다.
* 이 리뷰는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위 도서를 소개하면서 ‘이다북스’로부터 무료로 도서를 받았습니다 1) 일반적으로 1878년 5월 27일에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1976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발견된 세례증명서에는 1877년 5월 26일로 기록되어 있다. 2) 토슈즈는 발가락 끝이 뾰족하게 되어 있어 지면에 발끝으로 설 수 있게 되어 있는, 발레리나가 신는 신발이다. 3) 튀튀는 주로 고전/클래식 발레 공연에서 발레리나가 입는 스커트 모양의 무대 의상을 말한다. 4) 월터 휘트먼은 자유시 형식의 미국적 서사시를 꿈꾸던 시인으로 대표작은 <풀잎(The Grass)>이다. 5) 에드워드 고든 크레이그(Edward Gordon Craig, 1872~1966). 상징주의적 양식무대의 초석을 만든 연출가, 연기자, 작가, 무대디자이너, <연극예술 (The Art of the Theatre)> 등의 저서를 남겼다. 6) 패리스 싱어(Paris Eugene Singer, 1867~1932) 7)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 예세닌(Sergei Alexandrovich Yesenin, 1895~1925). 러시아의 시인. 덩컨과 이혼 후 1925년 레프 톨스토이의 손녀 소피야 안드레예브나 톨스타야와 재혼했다. |
한 인간이 시대정신이라 부르는 것, 세상이 너무도 자명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돌파하고, 새로운 무엇을 인식시킨다는 것은 실로 어렵고 고통스러운 행보가 아닐 수 없다. 형식과 인위적 규칙들로 구성된 동작으로 표현되는 ‘발레’, 춤을 추어 시대의 지성들에게 인정받는다는 것은 이것의 기교를 세련되고 능숙하게 구현하는 것인 세계에서, 알려진 적 없는 새로운 표현을 내밀며 이것이 진정한 춤이라고 선언 할 수 있다는 것은 단지 춤, 무용 예술의 혁명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새로운 시대정신으로의 전환이라는 인간의 정신 혁명이라고까지 할 수 있을 터이다.
책은 이 새로운 정신, 새로운 표현을 세계에 실현하려는 한 인간의 ‘힘의 의지’, 시대를 초월한 인류 예술을 향한 집념의 기록이라 할 것이다. 반감과 외면, 비난과 질시의 시선 속에서 인간사회의 그 오래된 믿음의 사슬을 끊어버리고 이것이 바로 지금 인간 정신의 올바른 반영이요! 라고 선언하는 것은 단지 용기를 뛰어넘는 것 정도가 아니다. 덩컨은 자신의 무용가로서의 사명을 말하는 가운데 “내게는 의지가 있다.”고 천명한다. 이 의지는 인간 “개체 안에 응축된 움직임”이며, “춤은 이 의지의 자연스런 표현”이라고 부연(敷衍)한다. 어쩌면 덩컨은 이 문장을 쓸 때 쇼펜하우어와 니체를 이미 체화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여기서 덩컨은 단지 춤추는 여성 무용수의 차원을 넘어선다.
덩컨의 야망은 미국의 정신을 담아낼 진정한 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겼으며, 거대한 대륙을 개척하던 불굴의 용기, 하늘 높이 머리를 치켜들고 위대한 생명의 진동을 담아대는 아름다움과 힘의 춤을 꿈꾸었다. 덩컨에게 “스커트와 타이츠 안에서 춤추는 일그러진 근육, 근육 안에 변형된 골격이라는 몸에 무리한 변형을 강요하는(39쪽)” 발레에 대한 혐오가 흐른다. 인간의 몸, 그 자연을 구속하는 감금과 위선의 표현은 “예술의 퇴보이자 살아있는 죽음일 뿐“이다, 자연의 본질과 조화하지 못하고 이를 파괴하는 경직된 육체를 해방시켜 유연성과 자유로운 영혼으로 회복시키는 것이 그녀의 소명이 된다. 그녀에게 자연을 닮은, 자유로운 영혼의 표현인 춤, 자연(自然)인 무용은 곧 코르셋과 구두로 변형되고 조여진 허위와 위선으로부터의 탈출, 여성과 인간 정신의 해방이다.
덩컨은 이러한 정신을 고대 그리스의 힘의 응축과 힘의 전개를 자연으로부터 재현한 조각들, 신전들, 화병의 그림들에서 발견한다. 그것은 바다의 물결과 바람의 흐름과 대지의 변화, 그리고 건축과 회화, 조각의 선 및 형태에 대한 인식을 반영한 인간의 몸짓, 즉 자연의 파동이다. 그녀는 대체 어떤 예술이 작품을 위해서 자연을 고치는가? 라고 묻는다. 시인도, 화가도, 조각가도, 극작가도 어느 누구도 자연을 고치지 않는다. 이것은 인위적으로 변형시킨 발레를 비롯한 왈츠, 마르주카, 미뉴에트 등 기성의 춤들에 대한 비판이다. 음악과 춤추는 인간의 기형적 어긋남, 퇴색한 감상주의, 비굴함과 답답함에 얽매인 표현으로부터의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다.
설명한다. 생명의 고양감과 자연과 합일이라는 황홀경, 힘에의 의지를 표현하는,자연스럽게 육체를 통해 표현되는 최고의 춤 동작이었던 듯하다. 1899년 92번째 Street Performance의 한 장면】
덩컨은 인간의 고유한 몸짓, 본성에 대응하는 자연 본질과의 조화를 위해 대지와 자신의 몸이 일체화되는 맨발의 춤을 춘다. 또한 춤은 육체인 자연의 동작이기에 당시 유행하던 화려한 의상은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가벼운 한 겹의 천이면 족한 것이다. 그녀는 쓴다. “2천 년간 감금된 예술에 자유를 돌려주려 애써왔다.(85쪽)”고.
한편 덩컨의 글에는 그녀의 정신에 깊게 스며든 바그너와 니체의 영향이 곳곳에 드러나는데, 특히 디오니소스 축제의 황홀경에 빠진 영혼을 반영하는 육체의 표현처럼 니체의 『비극의 탄생』은 제자들에 보내는 편지에서 주요 참조 문헌으로 거듭 숙독해야 할 지표로 당부하기까지 한다. 지상의 세계보다 더 높은 영혼의 고양(高揚)을 향한 염원으로서 춤을, 진정한 예술로서의 무용을 위해 일생을 바쳤던 숭고한 인간 정신의 진지한 술회를 읽는 것은 어떤 숙연한 존경과 인류애를 느끼게 한다. 덩컨의 글은 감정적으로 정제되어 있어 어떤 수다스러운 사적 감정의 표현이 지극히 절제되어 있어 그녀가 겪었던 삶의 고통을 제한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
덩컨은 1913년 자신의 두 아이 디어드라와 패트릭을 자동차 추락사고로 잃는데, 아주 짧게 당시의 고통이 표현되고 있다. “두 아이를 잃은 이후로 내가 어떤 고통을 당했는지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146쪽)” 그것은 “착란에 빠질 정도”로 “억제할 수 없는 고통”이었음을, 음악과 하나 된 영혼, 이로부터 탄생한 자신의 춤이 주는 위로를 제자들에게 말하는 글에서 흘리듯 언급할 뿐이다. 아이들의 아버지인 각기 다른 두 남자, 그리고 유일한 결혼 배우자였던 시인 예세닌의 자살 또한 그녀의 글에는 얼씬 거리지도 않는다. 다만 다음의 문장과 같이 지극히 담백한 언어로 순탄치 않았음을, 그녀의 조화에 대한 철학과 달리 불화하였음을 상상할 수 있을 뿐이다.
자연의 고유한 언어, 자연과 합치하는 내적 충동의 춤을, 그 자유의 몸짓을 추구했던 새로운 시대의 정신을 지펴냈던 한 인간의 기록에서 진정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 기꺼이 인생을 바칠 삶에 대한 소명의식을 생각게 된다. 성숙한 인간으로서 스스로 의식하고 자각하는 아름다운 한 영혼의 응축된 의지를 거닐며 자유로운 춤, 그 숭고한 이상을 표현하는 동작을 그려본다. 아마도 책은 현대 무용을 기획하고 공연하는 이들에게 귀중한 사상적 바탕을 제공해 줄 것이겠지만, 나아가 시대정신을 개척하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매혹적인 지표가 되어 줄 터이다. 진솔하고 아름다운 정신을 읽는 것은 항상 기쁨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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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도라 덩컨의 영혼의 몸짓』 오라고 손짓하며
1.
나는 단순히 무용을 위한 무용에는 흥미가 없다. 내게 무용은 일련의 체조 곡예나 예쁜 동작이 아니라 생명의 표현이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부자연스러운 자세를 취하도록 강요하고 감정의 자유로운 표현을 막는 춤을 싫어한다. - P.027
2.
진정한 무용은 평온을 표현한다. 평온은 내적 감정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리듬으로 제어된다. 감정은 갑작스럽게 격앙되지 않는다. 감정은 마음에 품고 있다가 씨앗에 든 생명처럼 잠들고 그런 뒤에 천천히 펼쳐진다. - P.132
3.
이 책은 무용가 이사도라 덩컨의 에세이다. 무용에 대해 이사도라 덩컨이 갖고 있는 생각들을 표현해 놓았다. 그녀가 추구하는 추구하는 춤은 자유로우면서도 편안을 추구하는 추미다. 그래서 그의 무용에는 평안이 깃들어 있다. 그 영혼의 몸짓을 보면, 아마도 이사도라 덩컨의 세상이 보일 것이다.
4.
그래서 유튜브를 뒤져 보았다. 이사도라 덩컨의 춤은 흑백이 많았다. 이미 오래 전에 작고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책을 받아보고 나서야 알았다. 내게는 별로 유명하지 않았지만, 이사도라 덩컨은 이미 무용계에선 유명한 사람이었고, 이사도라 덩컨의 춤은 현대 무용의 시초가 되었다. 그리하여, 그 춤들이 나를 막 적막함의 편안한 그리움 너머로 데려가곤 한다.
5.
죽은 사람의 영혼에게 절을 하는 것이 죄는 아닐 것이다. 죽은 사람의 영혼은 귀신이 아니므로. 나는 그녀가 죽은 그곳에 하나의 영혼을 기린다. 비록, 이사도라 덩컨의 무덤을 찾아가 절을 할 수는 없을지라도, 이사도라 덩컨이 남긴 그 업적에 경의를 표한다. 오늘 하나의 무용이 있기까지 우리 앞에서 업적을 이루고 간 많은 사람들의 노고를 헛되이 할 이유는 없다. 그 노고를 영원히 기릴 필요도 있지 않을까.
6.
나의 작은 이정표에 “삶”을 새기고, 자유롭고 편안함을 추구했던 “이사도라 덩컨”을 새겨본다. 그 새김의 어딘가에선 반드시 새로운 무용의 미소가 내게로 다가오겠지. 그 미소의 어딘가에서 건져내는 삶. 그 삶의 구원이 나를 향하여 오라고 손짓하고 있는 지금이다.
- 이다북스에서 도서를 증정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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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영혼에서 나온 자유로운 춤으로, ‘현대무용의 어머니’라 불린 이사도라 덩컨의 춤, 무용 그리고 예술에 대한 정신이 오롯이 살아있는 책이다. 1877년에 태어난 이사도라 덩컨의 학력은 공교육은 초등 5년이 전부였다. 1899년 시카고 초연을 하였으나 전통 발레가 아니라는 이유로 배척당하자 유럽으로 건너갔다. 1927년 프랑스 니스에서 지내던 중 자신의 상징과도 같은 긴 스카프가 자동차 뒷바퀴에 감기는 불의의 사고로 질식사하기까지 활동기간은 30년이 채 못 되었다. 그녀의 활동시간에 비하여 그리스풍의 영감을 받아 창작무용을 예술적 경지로 끌어올리며, 무용학교를 건립하여 혼을 담은 후대를 위한 교육까지 힘쓴 그녀의 불꽃 같은 인생은 파노라마처럼 강력하게 펼쳐졌다.
이사도라 덩컨은 당시 유럽의 발레에 깊이 빠져든 미국 무용계에 대한 끊임없는 진심의 질타를 보내며, 가장 미국적인 춤의 미래를 내다보며, 자연의 경지에 근접한 예술로서 더 자유롭고 더 조화로우며, 더 자연스러운 삶으로까지 이해한 진정한 예술인이었다.
# 나는 미국이 춤추는 것을 본다. 아름답고 강인하게, 한 발은 로키산맥의 최정상에 올려놓고, 두 팔은 대서양에서 태평양까지 뻗고, 건강한 머리를 하늘 높이 치켜들고, 이마에 별 백만 개가 박힌 왕관을 쓰고 춤추는 것을 본다. 미국을 가장 훌륭하게 표현하는 사람이라면 결코 발레를 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엉뚱한 사람이라도 자유의 여신이 발레를 하는 모습은 상상할 수 없을 테니. 그런데도 왜 미국은 발레를 받아들이려 하는가.
아이들을 성큼성큼 걸으며, 펄쩍펄쩍 뛰고, 훌쩍 뛰어넘게 하라. 이마를 추켜올리고 팔을 활짝 벌려, 우리 개척자들의 언어를, 우리 영웅들의 용기와 정의와 관대함을, 우리 여성들의 순수성을 그리고 우리 어머니들의 사랑을 춤추게 하라. 이것이 미국의 춤이다.
# 모든 것의 무용 나는 단순히 무용을 위한 무용에는 흥미가 없다. 내게 무용은 일련의 체조 곡예나 예쁜 동작이 아니라 생명의 표현이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부자연스러운 자세를 취하도록 강요하고 감정의 자유로운 표현을 막는 춤을 싫어한다. 예술가에게 아름다움은 표현이다. 로댕의 <발자크상>은 일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는 추하지만, 예술가들은 그것이 완벽한 표현력을 가졌기에 완벽한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안다.
사교춤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해볼까? 나는 그들이 보여주는 대단한 자제력에 놀랐다. 서로 껴안은 채 가장 선정적인 음악에 맞춰 가장 보수적인 태도로 몸을 움직인다는 것이 너무나 놀라웠다.
# 스스로 우러나게 하라. 영혼은 우리를 일깨우며, 그것이 육체를 완전히 물들일 수 있다. 나는 아이들을 가르칠 때 무엇보다 아이들이 자신에게 깃들어 있는 이 힘을 스스로 깨닫고, 자신과 우주가 한데 어우러지는 리듬을 느끼고 깨우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아이들이 황홀함에 흠뻑 물들고, 이 깨달음이 얼마나 아름답고 자연스러운지 알게 해주고 싶다. 이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스스로 찾거나, 영혼에서 우러나와 다시 영혼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리라.
# 디오니소스와 아폴론 사람은 두 가지 모양으로 춤을 출 수 있다. 하나는 ‘디오니소스’로 무용의 정신에 몸을 내맡겨 춤 그 자체를 추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아폴론’으로 무용의 정신을 생각해보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으로 춤을 추는 것이다.
# 미래의 무용 우리가 무용의 근원을 찾아 자연에 이른다면, 미래의 무용은 과거의 무용이자 영원의 무용이며, 그것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변함없으리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바다의 물결과 바람과 대지의 움직임은 언제나 똑같이 지속하고 서로 조화를 이룬다. 우리는 바다가 옛날에는 어떻게 움직였고 미래에는 어떻게 움직일지 바다에 물어보지 않는다. 자연의 고유한 운동은 영원히 자연 속에 있다.
미래의 무용가는 높은 곳을 지향해야 하며, 가장 도덕적이고 건강하며 아름다운 것을 예술로 표현하는 그것이 예술가의 사명이며, 그것을 위해 나는 내 삶을 바친다. 미래의 무용은 그리스인이 그랬듯이 고귀한 종교적 예술이어야 한다. 종교적이지 않은 예술은 예술이 아니라 단지 상품에 불과하다.
# 무용가와 자연 이것이 무용을 연구하는 첫 번째 원칙이다. ‘자연의 움직임을 연구하라’
# 내가 꿈꾸는 무용 고대의 춤을 되살리는 일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일이다. 무용이 우리에게 예술이 되려면 우리 자신, 우리 시대의 감정과 생활에서 태어나야 한다. 이것은 고대의 무용이 고대 그리스인의 생활과 감정에서 태어난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무용이 종교이며, 삶의 표현이고, 삶이 뿌리라면, 예술은 꽃이라고 단호히 말하는 그녀의 자유로운 춤이, 실은 그 얼마나 처절히 극복해낸 영혼의 몸짓이자 한숨 섞어 피어난 눈물의 기도였던가를 느끼게 해주었다. 그녀의 말대로 다시 살기 위해 죽는 모든 것의 리듬과 영원히 계속되는 일출 같은 무용을, 읽-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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