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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인 줄 몰랐다. 직업전선이라, 최근 직업과 관련한 책을 집필하고자 다양한 책을 읽고 있는데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가마꾼부터 저자까지'라는 부제 역시 신선했다. 과거 가마꾼의 근대화 시절 직업부터 현대 직업까지 소개하는구나., 하고 얼른 신청한 도서였다. 아마도 한승태 작가의 체험형 + 연구형 직업 탐구서가 아닐까 하는 묘한 기대감을 가지게 하는 책이었다. 표지도 담백했고 '전선'이라는 치열성이 내 눈길을 끌었다. 직업을 '전쟁터'로 비유한 이 책이야말로 직업의 귀천과 다양성을 한 번에 보여주는 책이리라. 허나 아뿔싸, 첫 직업 소개 '가마꾼'은 충분히 가마꾼의 입장어서 쓰느 글이라 쉽게 이해되었다, 허나 두 번째 직업 '노점상(아이스크림)'에 대한 소개글부터 글 쓰는 태도가 영 이상했다. '백 미터 앞 펼쳐진 바다가 보인다. 저 바다로 뛰어들고 싶다.' '선원' 편은 또 어떤가. '나는 왜 쓰는 자가 되지 않고 선원이 됐을까.' 꿈에서 깨어나며 부르튼 손으로 그물을 쥐었다. 그의 이야기는 조금씩 판타지화되어가고 있었다. 꿈에서 깨어나보니 선원이 되어 있었다는 설정이다. 그렇게 하나씩 읽다보니 우주묘지기도 나오고, 사이버 트럭기사도 나오고, 악몽수집가도 나오고.... 하나같이 현실에 있지 않는 상상력의 직업군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것도 직업을 소개한다기보다 작가의 넋두리에 가까운, 시도 아니고, 에세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소설도 아닌 이 황당무계한 무게의 글들. (교정자) 그럼에도 시체로서 나는 할 말을 하노니, 당신이 책을 구입하기를 바란다. 이는 나의 사후를 연장시키는 길이니 개인적인 요청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무엇보다도 당신의 주변을 여러 소세계들로 가득 채우는 일이며, 결국 세계를 좀 더 나은 공간으로 만드는 일이다. 그것이 내가 시원찮은 벌이를 하면서도 온갖 글들을 교정하는 이유이다. (51) 왜 자신을 '시체'라고 표현하냐면, 책 산업이 이미 죽었다고 하기에 그는 시체가 된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 중에서도 거의 시체나 다름없는 자라고 스스로를 평했다. 몇 개의 재미있는 글들을 더 읽어 보자. (사서) 왜 한국인들은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서점에서 책 읽고, 독서실에서 잠을 잘까요? (158) (직업 소개사)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거나 하지 못하게 된 이 세상이 행복한 세상인지 불행한 세상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히 알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내가 지금 인생 최대의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이다. (195) (결정자) "결정 사무소입니다. 무엇을 결정해드릴까요?" "제가 지금 중국집인데요. 짜장면을 먹어야 할지 짬뽕을 먹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뭘 먹는 게 좋을까요?" "평소 매운 걸 잘 드시는 편인가요?" "아뇨." "방문하신 곳이 어딘가요?" "돼지반점이요." "돼지반점은 짬뽕이 맵기로 유명합나다, ... 짜장면을 드세요.: "네, 감사합니다." 오늘도 이런 자질구레한 콜을 100통 가량 받았다. (197) (도망자) 올해로 도주만 20년쨰. 처음부터 이렇게 오래 도망 다닐 생각은 없었다. ... 어떻게 내가 보안팀을 뚫고 그 그림을 들고 나왔을까? 모든 게 거의 본능적이었다. ... 나는 내가 도둑질에 재능이 있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나는 도망에 재능이 있었다. 도둑질에 실패하더라고 언제나 무사히 빠져나왔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나의 도망을 응원해주는 팬이 생겼다. 부자를 털어 가난한 이에게 나눠주는 의적이다, 뭐 이런 식으로 소문이 난 모잉이었다. 나의 도망을 누군가가 응원해준다고 하니 어쩐지 기분이 좋고, 살면서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이 정도로 잘한 게 있는가 하면 딱히 없었으며, 이 정도로 나는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기에 나는 도망을 계속 다니기로 했다. 그리하여 언젠부턴가는 딱히 도둑질은 하지도 않고 도망 전문가로만 살고 있다. 액션캠을 장비해 도주 영상을 촬영하고, 인터넷에 동영상을 올리고, 후원을 받고, 활동비를 제외한 후원액은 기부하면서, (120) 가장 압권은 <귀금속 판매상>이다. 그의 고객은 도둑님이다. 금은방은 털리는 게 숙명이니까, 그가 기다리는 손님은 오직 도둑이다. 저자의 이런 기발한 망상에 기반한 이 책은 독서모임 손님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기에 딱 안성맞춤인 책이었다. 다 읽고나서 드는 생각은 저자의 무모함과 출판사의 대범함이었다. 이런 글을 쓸 줄 아는 천재 같은 작가와, 그 천재성을 버리지 않고 끝내 출판해서 책으로 빛을 보게 한 <봄날의 책> 편집부. 둘 다 독특하다. 결이 맞아야 출판을 할 수 있다. 출판사는 이 시인으로부터 이 책을 독촉했고, 시인은 더 쓸 직업군이 많았음에도 자신의 직업인 <저자>를 끝으로 이 책으로 마무리했다. (귀금속 판매상) 나는 오들오들 불안에 떨고 있다. 금은방 주인이니까. 내 가게는 곧 털릴 테고, 나는 땅을 치며 울겠지. 왜 그렇게 비관적이며 단정적이냐며? 금은방이니까 당연하잖아. 금은방 관련해서 좋은 소식 들은 적 있어? 없지? .... 전부 다 털리는 이야기뿐이라고! 금은방을 보면 늘 손님이 없지. 당연해. 금은방은 손님이 오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도둑이 오기를 기다리는 거니까. 그런 점에서 금은방의 진정한 손님은 도둑이라고도 할 수 있지. (93) 책을 다 읽고 생각한다. 시간을 버렸냐고? 아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시간을 버린 게 아니라.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떴다.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작가의 용감무쌍한 천재성과 그 천재성을 들여다볼 줄 아는 출판사가 있다는 사실에 고무되었다. 무슨 글이든 일단 쓰는 게 중요하구나. 그래서 다시 폴더 안에서 숨을 죽이고 있는 내 불쌍한 원고들이 생각났다. 너희들도 얼른 빛을 봐야 할 텐데. 내 언젠가 이 글의 천재성을 알아줄 출판사를 만나고야 말리라. 가뭄에 단비가 내리듯 내 안구와 뇌의 막힌 혈류를 시원하게 뚫어준 저자와 출판사에 감사를 표하며 엉뚱하면서도 기묘한 책의 서평을 마친다. (사실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쓰기가 무지 난감하여 포기할 생각을 했는데, 어제 수면제를 먹었음에도 새벽 세 시부터 잠이 깨어 비몽사몽 흐리멍텅한 상태가 오래 가기에 이 책 후기를 써보자 마음 먹고 커피를 옆에 놓고 쓰기 시작했다. 다행히 이제야 정신이 돌아왔다. 고맙다. 직업전선. 비록 내가 원했던 책은 아니었지만, 네 소임은 충분히 다했다고 본다. 내게 큰 도움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