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는 어려서부터 당신이 겪어온 고난과 아픔을 밖으로 표출하는 법을 몰랐던 사람이다. 60여 년 인생을 그렇게 살아왔고, 그런 삶을 사는 동안 엄마에게 책이란 그러한 상처들을 달랠 수 있는 창구였나 보다. 나는 그저 당신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책 속에는 우리가 몰랐던 지혜가, 더 넓은 세상이 있고 그것들을 알아가는 데 흥미가 있어서라고 생각했다. 한 1순위 취미 정도쯤으로 알고 있었단 말이다. 엄마를 그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했던 나인데 참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엄마의 글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나는 참 엄마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구나 싶다. 엄마는 말 수가 적다. 항상 남이 하자는 대로 한다. 하고 싶은 말이 없어서도 아니고 모든 게 항상 좋아서도 아니다. 엄마는 어려서부터 싫은 내색을 하는 방법을 모른 채 자라왔던 것이고 그렇게 삼킨 고통들은 수십 년간 책 그리고 일기 속에 담아두었었나 보다. 그 때문에 당신의 모든 글에는 곳곳에 아픔이 묻어있다. 특히 “시간을 어찌 보내야 할지 몰라서 책을 읽었고, 고단한 세상살이를 하며 들키지 않은 수치심에 벌벌 떨 때조차 책 속으로 숨어들었다”라는 구절에서 가슴이 쿡쿡 쑤셔왔다.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을 몰라 책 속으로 숨었다는 당신에게 책이란 마음의 안식처가 아닌 도피처가 되었겠구나. 지난날의 당신이 너무 가엽게 느껴져 눈물이 차올랐다.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귀촌 생활의 환상만이 담겨있을 것 같은 책 제목과 달리 엄마는 귀촌 생활을 시작하며 겪었던 애환을 책 속에 고스란히 눌러 담으셨고, 나는 엄마가 결코 쉽게 귀촌을 결심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엄마의 귀촌 생활에 대한 고단함을 헤아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한낱 식물에게조차 부러움과 연민을 동시에 느끼는 섬세한 당신이기에 오히려 귀촌 생활에 어울리는 가장 적합한 인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함께 들었다. 쓰다보니 책의 내용이 본격 ‘귀촌 희망 퇴치’ 도서인 것처럼 묘사가 되었지만 막상 읽어보면 또 그렇지도 않다. 오해는 없었으면 좋겠다. 귀촌 생활의 막연한 꿈을 품은 사람이라면 꼭 한번 읽어봤으면 하는 도서이다. 이 책을 읽는 모두가 귀촌은 결코 혼자서만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누군가의 희생이 반드시 수반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하길 바라며, 막연했던 귀촌의 꿈을 조금 더 구체화시키고 꿈에 대한 책임감을 갖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하지만 그러한 애달픔 속에서도 그들은 자연이 선사하는 고귀한 기쁨이 더 크기 때문에 그 속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