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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우리는 이 기독교 신앙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 가지 신학 분야 중에 역사신학은 우리가 믿는 진리가 어떤 흐름을 거쳐서 형성되어 왔던 것인가를 생각하게 해줍니다. 이 역사신학을 제시한 알리스터 맥그래스 교수는 기존에도 기독교의 역사와 관련해서 여러 가지 책을 써왔고 이번 글에서는 어떤 부분에서 역사신학이 필요한지에 대해서 살펴보는 것으로 책 소개를 해보고자 합니다. "신학은 역사성을 지닌다. 이 사실이 너무 쉽게 간과될 때가 많다. 철학적 성향이 비교적 강한 사람들의 경우는 특히 더 그렇다. 기독교 신학은 각각의 시대와 세대 사이에서 가장 훌륭한 방법으로 여겨지는 것을 토대로 믿음의 근본 요소들을 이해하려는 시도로 간주될 수 있다. 이것은 지역적인 상황이 신학의 형성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독교 신학은 하나님의 구원 행위를 역사의 모든 시대에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는 보편적인 학문으로 간주될 수 있지만,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대한 경험이 특정한 문화 속에서 이루어지고,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복음에 따라 살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의 통찰력과 한계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는 특수성을 띨 수밖에 없다. 이처럼, 기독교의 보편성은 구체적인 적용과 모순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완된다." (서론, 34쪽, 역사신학의 목적과 위치 中) -> 저자는 이 역사신학이라는 것은 기독교의 보편성을 보여주며 구체적인 적용과 모순을 보완한다고 제시합니다. 보편성과 특수성이라는 것은 나타날 수밖에 없고 진리가 어떤 부분과 환경에서 구성되어왔는지는 우리가 중요하게 살펴봐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떤 부분에서 신앙을 가졌는지에 대한 지식을 간과할 때는 타 교단의 전통에 대한 무시로 나타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부분에서라도 우리는 이 신학이라고 하는 것이 어떤 역사와 흐름 가운데서 나타났는지를 알고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역사신학은 현재의 신학을 위한 자료를 제공한다. 많은 비평가가 지적하는 대로, 현대신학은 마치 스스로가 어떤 주제를 최초로 다루는 것처럼 행동하거나 그 문제를 파헤치고자 했던 이전의 모든 시도를 깡그리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전에 한 번도 다루어지지 않은 문제를 다룬다는 식으로 신학을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어깨너머로 뒤를 돌아보는 것처럼 과거에 어떤 일들이 있었고, 또 어떤 대답이 주어졌는지를 항상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다. '전통'이라는 개념에는 기꺼운 마음으로 과거의 신학적 유산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37쪽, 교육적인 수단으로서의 역사신학 中) -> 시대의 거인의 어깨 위에서 볼 때 우리는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볼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우리는 그런 부분에서 온고지신이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안다는 것처럼 이전에 우리가 어떻게 이 진리들을 다뤘었는지 살피는 가운데에서 전통에 대한 존중과 과거에 관해 대화하는 태도를 보일 수 있다고 봅니다. 특별히 우리가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그런 태도를 배우는 부분에서도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역사신학은 기독교 신학의 중요한 문제들에 대한 답변을 소개하고, 그런 답변들이 형성되는 과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요인들을 설명한다. 이 작업은 그 답변을 제시한 사람들이 그런 요인을 인지했거나 어떻게 평가했는지와 상관없이 이루어진다. 역사신학은 신학자들이 '그 시대의 자화상'(앨러스데어 매킨타이어)에 의해 얼마나 쉽게 미혹되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체제 전복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하겠다. 이것은 비단 과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현대신학의 추세도 단기적인 문화적 유행에 조건반사적으로 반응할 때가 많다. 역사 연구는 과거의 실수를 일깨우고, 그것이 현재에 다시 되풀이되지 않도록 경고한다. 우디 앨런은 '역사는 반복한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처음 한 번만으로는 아무도 듣지 않으니까.'라고 말했다." (43쪽, 비평적인 도구로서의 역사신학 中) -> 이스라엘 백성은 포로기 가운데 자기 조상들이 섬겼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하려면 역대상을 기록했다고 하기도 하고, 특별히 구약에서는 지속해서 그 백성에게 역사의 중요성을 되새깁니다. 이와 관련해서 신약에서 베드로전서의 저자는 이런 말을 합니다. "이 구원은 여러분에게 내려 주실 은혜에 대하여 말한 예언자들이 열심히 찾고 깊이 연구하던 것입니다. /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 속에 계신 성령님이 그리스도의 고난과 그 뒤에 올 영광을 미리 알려 주신 대로 그 일이 언제 어떻게 일어날 것인지를 알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10~11절, 현대인의 성경) 이처럼 기록은 중요하고 우리가 믿는 진리와 신앙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볼 때 우리는 반성과 동시에 도전을 받으며, 과거의 사건을 현대의 문제와 연관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우리가 다니는 한국교회가 어떤 바탕 가운데 세워졌는지를 그런 의미에서 살펴보고 아는 것이 저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의 내용이 너무 많아서 글에는 다 담을 수 없었지만, 이 책을 보는 가운데 우리가 믿는 진리가 많은 역동과 시간을 거치는 가운데 보완되어 전수되었고, 그 전수된 진리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힘들고 어려운 현실을 이겨나가게 하는 선진들의 증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역사의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서, 그 흐름 가운데서 우리의 신앙의 자리와 과제를 발견하고 살아갈 수 있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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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기독교가 어떻게 역사 속에서 존재해 왔는지를 아는 것은 기독교를 바르게 이해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치한다. 교회가 남겨온 역사의 발자취와 앞으로 걸어가야 할 미래의 방향을 알아가기 위해서는 바른 신학이 정립되어 있어야 세상을 향해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독교 사상의 역사 전체를 개괄한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책 <역사신학>이 나왔다는 것은 신학함에 있는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 초기 교부 시대(100-451년)에서부터 중세 시대와 르네상스(500-1500년), 종교개혁과 종교개혁 이후(1500-1570년), 현대(1750년 이후부터 현재까지)에 이르기까지 기독교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책이 출간되어 매우 기쁘다.
그는 역사의 흐름을 개관할 수 있도록 독자들로 하여금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으며, 큰 역사의 줄기 아래 중요한 부분들을 매우 세밀하게 조명해줌으로써 심도 깊은 관찰을 하도록 이끌어 준다. 주제들을 연대순에 따라 역사적으로 생동감있게 전하고 있으며, 중요한 신학자들과 여러가지 신학적 용어들을 잘 정리해 두었다.
이 책은 역사신학에 대해 깊이 고찰해보고자 한다면, 각 장을 순서대로 읽어나가면 좋다. 그러나 분량이 방대하기에 각 시대를 개괄적으로만 살펴보기를 시대적인 개관만 읽어나가도 이 책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독자들의 사용 용도에 따라 읽는 방법을 달리한다면, 더욱 효과적인 독서가 가능하다.
역사신학이란 기독교 교리의 역사적 발전 과정을 탐구하고, 교리들이 형성되거나 채택되는 데 영향을 미친 요인들을 찾아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학문이다. 신학적 주제가 역사적 발전에 따라 각기 다르게 해석되고, 관점의 변화가 일어나는 경우들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신학은 역사성을 지닌다.
기독교 신학은 하나님의 구원 행위를 역사의 모든 시대에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간주될 수 있지만,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대한 경험이 특정한 문화 속에서 이루어지고,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복음에 따라 살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의 통찰력과 한계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는 특수성을 띨 수밖에 없다.
역사신학은 단지 과거를 이해하도록 돕는 역할에 그치지 않으며, 현재의 신학을 위한 자료로 제공한다. 또한 현재의 신학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역사신학의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이 책은 기독교에 대한 바른 이해와 앞으로 기독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심도있는 고민을 하도록 이끌어주기에 신학을 배우는 신학생들, 목회 현장에서 치열하게 신학적 논쟁을 감당해야하는 목회자들의 필독서라고 생각하기에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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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게 책을 처음 받고, ‘아 잘못 선택했네, 망했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600페이지가 넘는 A4 사이즈의 책이라……. 어쩌면 책의 형태보다도 내용이 더 걱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신학 관련 학과도 아닐뿐더러 역사가 섞인 역사신학이라니……. 물론 책은 두껍고, 내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들이 잔뜩 나왔지만 그럼에도 기본 구조는 역사를 골자로 하고 있어 흥미 있게 읽혔다는 점이 다행이었다. 책은 과거인 교부시대부터 시작하여 현대까지의 흐름으로 지나오는데, 읽을수록 내가 얼마나 새 발의 피 같은 존재였는지 깨닫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온전히 알려는, 그리고 잘 설명하려는 노력에 의거한 신학자들의 열띤 논쟁들은 읽을수록 그들의 열정에 존경심까지 갖게 했다. 책의 후반부인 현대 시대에 나오는 페미니즘이나 해방신학, 다원 철학 주의 같은 내용은 지금의 나 역시 교회 속에서 고민하고 있는 내용이었다. 사실 나는 굉장한 불만쟁이 청년이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교회가 현대의 흐름을 반영하지 않고, 예전의 것만을 고수하는 고집쟁이 단체라는 생각을 해왔다. 그런데 책을 통해 예수님의 승천 이후로 이루어진 진리를 향한 이천년의 갖은 논쟁을 보고 전통에 대해 새롭게 이해하고 인정하게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교회의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고, 나의 모든 불만이 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현대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는 여전히 궁금해하고, 정리되지 않은 내 안의 또 다른 나와 싸우며, 그리고 세상에 동조했다가도, 선을 그으며 나아갈 것이다. 그래도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나보다 훨씬 더 성령 충만하고 분별력 있는 여러 사람들이 수년간 의견 교환을 함을 통해 그동안 교회가 지켜온 가치와 전통을 책을 통해 지켜봤고, 이다음 교회를 짊어갈 세대로서 그 이야기 나눔에 나도 기쁜 마음으로 겸허하게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타고나길 말썽꾸러기라 예배 중 이해되지 않는 말씀이나 예시에 귀를 닫곤 했는데 오늘부터는 그래도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기도해서 요만큼의 진리도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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