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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극장 다큐를 보는 느낌으로 이경란 작가의 "오로라 상회의 집사들"을 읽었다. 5부작 다큐로 치자면 2부 정도까지 봤을까? 작중 '집사들'이 다하지 못한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어깨를 툭툭치는 것 같아 오늘은 지하철로 출근하며 그들의 얘기를 마지막까지 읽기로 했다. 이경란 작가는 여러 단편에서 보여준 것처럼 사람과 관계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을 '집사들'로 표현된 복수의 인물을 통해 우리에게 다시 보여줬다. 실업급여를 받으며 생활하는 실업자 민용,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연후, 학교를 휴학하고 2~3개의 알바를 뛰는 고단한 고학생 저커, 거기에 쉼없이 돌아가는 세상의 톱니바퀴에서 떨어져 나온 퇴직자 이안이 '집사들'로 등장한다. 인물 소개에서 보듯이 이들의 조합이 즐겁거나 흥이날 리 없다. 어쩌면 보는 것조차 답답하고 무거워 고개를 돌려야 맘이 편한 조합이라고 표현하는 게 어울릴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작가가 굳이 '집사'라고 표현한 것처럼 무엇인가를 돌보고 있다. 고양이 유로일 수도 있고, 함께 생활하는 서로일 수도 있다. 그리고 결국엔(가장 중요하게) 스스로를 돌볼 수 있게 성장한다. 무언가를 돌본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래서인지 세상의 끝에 몰린 것 같은 이들의 공동체 생활이 마냥 어둡고 지쳐보이지 않았다. 길고양이 유로와 함께 각자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출발하게 된 이들의 색다른 동거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승자 독식의 경쟁사회를 살며 승자들의 이야기를 듣는데 익숙한 우리. 승자가 되라고 강요하는 가족과 사회. 늘 타인의 성공 스토리에 익숙해져 자신을 주연이 아닌 조연. 아니 조연에도 못미치는 엑스트라 정도로 스스로의 좌표를 찍게 만드는 사회. '집사들'은 이런 현실을 함께 살고 있는 우리의 투사물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보며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떠올렸다고 한다. 가까운 가족 대신 낯선 인물과 동거하며 위로하고 위로받는 이야기라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 "오로라 상회의 집사들"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가족보다 트리나 폴러스의 나비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맹목적으로 산을 오르는 수많은 에벌레들. 올라가기만 하면 삶의 목적과 성취감을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동료를 밟고 또 밟으며 올라간 꼭대기에는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공간! 그 때 올라가기를 거부했던 에벌레 친구가 고치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나비로 성장한 모습. 내겐 나비로 성장하기 위해 고치로 몸을 감싸는 에벌레와 자전거로 대륙을 횡단하겠다는 저커가 다르게 보이지 않았다. 꿈이라곤 오로지 어린시절 '닌자'가 유일했던 연후에게 똑딱이처럼 스스로를 갉아먹으며 살아왔던 과거의 자신을 죽여달라고 청부하는 이안. 과거의 이안과 현실의 이안을 보며 상실감과 소외는 어쩌면 성공과 관계없이 우리가 마주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란 걸 느끼게 될 때, 이안 또한 낡은 LP판을 통해 변태를 준비한다. 연후의 목소리로 카카오 프로필 사진을 거슬러 올라가는 이안의 회복과 성장도 저커 그리고 나비와 다르지 않았다. 고양이 집사에서 서로의 집사로, 서로의 집사에서 자기 삶의 집사로 성장해 가는 '집사들'의 모습은 승자독식의 사회에서 승리하지 않는 삶을 택한다 하더라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자전거를 타고 중국 대륙을 횡단하는 저커의 변화를 보여주기 위해 표현했던 '달달하고 쌉싸름한 천 삼백원어치의 맛'은 확실히 "일체의 욕망을 거세한 상태보다 확실히 짜릿한 맛이 있다"란 문장과 함께 저커의 삶의 변화를 미리 얘기한다.(정말 멋진 문장이다)천 삼백원어치의 맛을 통해 작가는 꿈을 강요당하고, 화려한 꿈과 미래의 내가 등치해야만 존중받는 세상에 자신을 맞출 필요는 없다고 우리에게 말한다. 정말 멋진 '맛'을 느껴보라고. 지하철에서 모두 읽지 못해 마지막 몇 페이지는 지하철 계단에 기대서 읽었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50대 중반의 남자가 지하철 계단에 기대 책읽는 모습! (재미도 있다는 얘기를 이렇게 전달해 봅니다~ㅎ) 이경란 작가가 안내하는 '집사들'의 세계를 경험하며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집사로 함께 성장해 보는 것도 멋진 일이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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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입대 한 큰아이와의 첫 외출. 부랴부랴 정신없이 준비해서 다녀오긴 했지만, 그날 나의 컨디션이 제로였다. 그런데 아이의 첫 외출이라니. 다녀와 몸져누워도 다녀와야 할 판. 정신없이 차표를 예약해서 지난 일요일에 다녀왔다. 해군 복장을 한 아이를 보니 행복하면서도 마음이 짠했다. 마음 안에 뭉클한 그 뭔가가 몽글거리며 나를 안아주는 느낌. 아이를 보자마자 꼭 안아줬다. 아이가 먹고 싶은 것을 사주고 아이와 두런두런 얘기를 했다. 군에 가기 전에 늘 하던 산책과 이야기. 그걸 다시 할 수 있다는 게 이렇게 행복한 것이구나 싶은 마음.
20대 초반의 남자 아이. 군 제대를 하고 나면 대학에 복학해야 하고 취직을 해야겠지만, 아이는 고민이 많은 것 같다. 자신은 부모님께 받은 게 많지만 그래도 미래는 여전히 불안하고 두렵고, 무섭다는 것. 복학하는 게 맞는지, 취직은 할 수 있을지, 자신은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이 되고 싶은지, 자신의 진짜 꿈은 무엇인지, 생각이 많고 고민이 많고, 군에 있기에 더 자신에게 몰입할 수 있는 시간. 나의 20대도 힘들었다. 아무것도 이룬 게 없고, 또한 과연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이 늘 내 주변을 맴돌았으니까. 그런 마음이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고 아이에게 말했지만, 아이는 그 말을 다 이해할 수 있을까?
고시원에서 몰래 고양이를 키우다 걸린 민용. 그는 자신과 함께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연후 그리고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는 저커와 함께 재개발을 앞둔 강남의 오로라 아파트에 입주한다. 월세는 1/n로 하기로 하면서 이들은 가족처럼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며 지내게 된다. 부의 상징이라고 하는 강남의 한복판 재개발 아파트. 이 아파트를 조금만 벗어나면 모두 성공한 것 같고 다 잘살고 있는 것 같다. 화려하고 부티 나는 그들 앞에 더욱 초라해지는 청춘. 그리고 자신의 집이 있지만, 찜질방을 전전하며 사는 이안 아저씨까지 합류하게 된다. 이들은 서로에게 기댈 언덕이 되어주며 각자의 길을 갈 수 있을까?
이 시대를 살아가는 20대, 그리고 중년의 아저씨.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라는 말. 맞는 말이다. 고통 속에서 우린 나름의 행복을 찾고 즐거움을 찾으며 살아간다. 내가 인생이 고통인 것은 참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내 아이가 인생이 고통이라고 느낀다면 슬플 것 같다. 하지만 아이에게도 그 시간이 지나가야 한다면, 그 또한 지나가야겠지. 20대나 중년이나, 아니 모든 세상의 사람들은 적당히 힘들고 아프고 어렵다. 사는 것이. 어느 하나 쉽고 재미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들 중 노력하지 않은 사람 있을까? 모두 나름의 방법으로 노력하고 자신의 인생을 꾸리며 살아간다. 나도 내 아이. 혼란한 20대를 지나고 있는 내 아이에게 응원하고 충고를 해줄 수 있을 뿐. 대신 아파할 수 없다. 나도 내 나름의 인생 정답을 찾아가듯 내 아이도 자신의 인생 정답을 찾게 될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런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거나 인정하고 응원해주는 것.
혼란한 내 아이. 불안한 내 아이. 20대의 내 아이.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는 거야. 어른이 되는 과정이 힘들고 화나고 열 받는 날도 있겠지만, 괜찮아. 어떤 해는 온 행운이 너에게 다가올 때도 있지만 어떤 해는 그렇지 않을 때고 있어. 인생은 그런 거니까. 그런 굴곡들 잘 이기자.
저커의 소망 중 하나는 선택의 미로에 빠져보는 것이었다. 선택이란 얼마나 달콤한 말인가. 스물넷이 되기까지 무엇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나. 출생도 자신의 선택이 아니었고 부모를 골라 태어난 것도 아니었다. (중략) 결국 어떤 상황도 자신의 선택이었던 적이 없다. 여건상, 또는 불가항력적으로 누가 봐도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36)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 이게 달콤한 일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선택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의 젊은이들이 많다는 게 답답하면서도 슬프다. 나도 무언가를 선택하게 된 것이 20대가 넘어서였던 것 같다. 그전에는 엄마가 하라는 대로 했고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건 없었다. 그나마 엄마한테 반항(?)하면서 내 인생을 살게 된 것 같다. 내 아이에게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함을 주고 싶지만 쉽지 않다.
세상 모든 20대 그리고 중년들. 그들 모두 나름의 고민이 많을 것이다. 그 고민이 해결되는 날이 오기는 할까? 아마 그런 날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살아가는 것 아닐까? 나와 내 주변. 그리고 이 사회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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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JTBC에서 방영된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라는 드라마와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 <어느 가족>을 인상깊게 보았다. 두 영상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가족의 의미이다. 전자는 몇십 년을 한 지붕 아래서, 한솥밥을 먹으며 지낸, 피를 나눈 가족들이 정작 서로의 아픔과 상처, 질곡에 대해서 너무나 모르는 채 살아가고 있다는 가족의 허상을 그린 드라마이다, 이와는 달리 후자는 비록 피 한 방울도 섞이지 않았지만 우연한 기회에 만난 사람들이 적당히 자유하며 ?가족이 아니기에 처음부터 기대도, 부담도, 구속도 없었던- 새로운 가족을 형성해나간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경란 작가의 <오로라 상회의 집사들>은 내가 본 위의 두 영상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소설이다. 자신이 무언가 불편한 상황에 놓였을 때, 계층이든, 학벌이든, 직업이든 주변부로 밀리고 마이너의 삶으로 전락할 때 가족은 가장 불편한 관계가 되기도 한다.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고, 안그래도 깊은 상처에 소금을 뿌린다. 그럴 때 가족은 궁극적으로 힘이 되어주는 관계로 회복될 수 있을까. 드라마에서나 일어날 법한 따뜻한 결말은 실상 현실에서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자주 목격했다. 가끔은 좋을 때도 있지만, 좋을 때 보다는 실패와 좌절로 점철되어온 구질구질한 내 역사를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있는 지인은 또 어떨까. 역시나 불편할 수 있다. 내 경험으로도 그런 때는 나를 아예 잘 모르는 익명의 존재가 훨씬 힘이 되고, 위로가 되었다. 또는 현재 나와 가장 비슷한 영역에 머무는, 그래서 내 현재의 생활을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오로라의 상회의 집사>들은 따뜻함을 주는 책이다. 실업자, 공시생, 가난한 청년 가장 등 3명의 젊은이와 열심히 살았지만, 단 한 번도 자기가 꿈꿨던 삶을 살아보지 못한 중년의 가장 등 네 사람이 우연히 한 지붕아래 살면서 겪게 되는 쓸쓸하지만, 따뜻한, 힘이 되는 이야기들. 때로는 타인같은 가족보다 가족같은 타인이 필요하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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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마음이 따스해지고 재미있는 소설을 읽었다. 주인공 청년들의 처지도 짠하고 퇴직한 이안의 마음도 잘 드러나있다. 이 작가의 소설집도 아주 좋았는데 이번 소설은 단편과는 다른 장편소설 특유의 이야기의 힘이 느껴진다. 인물들이 모두 살아 움직이는것 같아서 마치 내가 오로라아파트에 살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오로라상회가 우리 동네에도 있을까? 언젠가 그런 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 작가의 다음 작품이 벌써 기다려진다. |
| 청년세대를 보면 막막하기도 하고 그래서 더 애틋한데, 이경란 작가는 그들의 현재를 유머로, 서로를 보살피는 마음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요즘 같은 시절엔 재미있고 따뜻한 소설을 읽으며 지금의 청년들의 마음과 현실을 돌아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이 소설 속엔 그들의 지친 마음과 방황과 연대와 미래를 향한 새로운 출발이 있고, 이미 그들 세대를 지나온 중년의 마음도 있습니다. 오로라 아파트라는 낡은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