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 없이, 발췌문만으로 영업을 당해 잡게 된 책. 제주 사투리에 대한 발췌문이어서 관심이 가게 된 것이었는데, 알고 보니 작가님 본인이 제주 출신이었다. 제주에서 나고 자라지는 않았지만 제주도의 피를 잇고 있는 명예 제주도민.. 재외도민으로서, 그리고 언어에 민감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으로서 읽기에 좋은 책일 것 같아 펴보았고 선택은 괜찮았던 것 같다. 사실 언어학자의 책이라 하여 조금은 전문적인 내용, 어려운 내용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을 했지만 의외로 책은 소화가 어렵지 않았다! 주제도 세심하게 나뉘어 있는 편이었고,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담, 학자로서 다뤄온 다양한 사례를 소개해주고 있어 보다 쉽게 주제가 말하고자 하는 걸 파악할 수도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좀 더 깊이있는 내용이었어도 좋겠다 싶지만.. 더 많은 사람들에게 언어에 대한 생각 거리를 던져주기에는 나쁘지 않은 접근법이었던 것 같다. 책 표지가 무척 세련되고, 문단이나 여백 등이 편안하게 정렬돼있어 읽는 내내 피곤하지는 않았던 책. 다만, 앞서 말했듯 다양한 사례가 튀어나와 한 번에 모두 읽지는 못하고 조금 끊어 읽었다 ^-^; |
|
우리가 일반적으로 지워버리려고 하는 언어들, 그 언어와 함께 소외된 약자들에 대해서 언급하고 그 필요성에 대해서 성토하는 책이었다. '하나의 민족', '하나의 언어' 를 기반으로 한 정규교육을 받고, 수도권에서 자라 서울말을 표준어로 배우고 자란 나 역시 이 책에서 비틀고 지나가는 모든 편견들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나라가 한 개라고 해서 언어도 한 개일 수 없다는 것, 방언(사투리)들도 모두 같으면서 다른 이 나라의 언어라는 것, 이 땅에 살고 있는 이주민들의 언어도 이 나라의 구성원이 쓰는 언어로 인정해 주어야 한다는 것. 이 모든 명제들이 원래는 당연한 것이어야 하는데,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별로 없었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참 신선하다고 느꼈다. 신조어는 자연스러운 욕망의 발현이며 이것을 언어의 오염으로 볼 게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따라 생겨나는 새로운 규칙일 뿐이라는 관점도, 신조어를 만드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우리말의 형태를 잘 이해하고있는 사람이기에 가능하다는 평가도 신선했다. 또한 노동현장의 단어들 역시 순화해야될 오염의 대상으로 보지않고,이 노동언어들을 능숙하게 쓸 수록 직업인으로서의 숙련도가 높아진다는것을 반증한다며 우리가 가졌던 '바른 우리말'에 대한 고정관념을 한번씩 비틀고 지나갔다. 생각보다 우리는 이런 다양한 말들이 내는 소리를 자주 잊는다.각각의 말들이 가진 힘이 다 달라서, 어떤 약한 말들은 말들의 지형 틈새로 주르륵 미끄러져서 보이지 않게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작가는 언어가 가진 권력, 그리고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힘의 균형에 대해 계속해서 언급한다. 언어학에서 주로 관심의 대상이 되는 단어들은 자본을 움직이는 자들의 언어, 자본을 만들어낼 수 있는 단어, 자본을 대변하는 국가의 정상 언어이다. 이런 식으로 언어가 범주화되기 시작하면 언어의 범주가 그 자체로 권력으로 작동하게 되고, 이 때 비정상적인 범주에 있는 언어는 교정과 순화의 대상이 된다. 이 메커니즘을 국어교육방식에 심어놓은 한국 사회는 자연스럽게 힘없는 언어를 소외시키고, 힘없는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소외시킬 뿐만 아니라 허울 좋은 단어들로 이들을 포장해 지워버리거나, 심지어는 공격해서 입을 막아버리기까지 한다. 그러므로 힘이 약해서 다른 이들이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고유한 언어를 빨리 버리고 힘센 언어를 빨리 장착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나마 이것은 '한국어를 할 줄 아는 한국인' 범주 안에 속해 있어야 가능한 것이고, 한국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이주민, 난민의 경우에는 언어의 힘을 빌리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언어 때문에 생존을 위협받고 사회에서 제공하는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게 된다. 언어적 불평등이 정보의 소외를 불러오고, 사회의 불평등까지 이어진다는 점은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점이었다. 코로나 관련 정보를 알려주는 재난 문자가 오로지 한국어로만 제공된다는 점은 단 한 번도 이상하게 생각해본 적 없었다. 오직 하나의 언어만을 인정하는 경향이 강하게 흐르는 이 나라에서, 그 언어를 못하는 사람들은 그 사회에서 지워지고, 그 어떤 선택도 할 수 없고, 그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작가는 우리나라가 단일민족, 단일언어라는 허울 아래 얼마나 폐쇄적인 문화를 가지고 살아왓는지 굉장히 신랄한 어조로 비꼬면서 강조했다. 말들은 공간과 얽히며 인간의 신체와 행동을 규율한다. 공간과 얽힌 말들을 하나로 이으면 말들의 '지형'이 된다는 표현이 참 감각적이어서 기억에 남는다. 이 지형이라는 단어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 역시 너무도 중요한 시사점이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요즘 우리나라에 유독 분노를 참지 않는 사람들이 만연한 이유, 자연스럽게 혐오와 차별이 전시되는 이유를 작가는 언어에서 찾는다. 한국인들이 한국이라는 공간 안에서 서로 주고받으면서 만들어내는 언어들, 서로에게 가르치고 배우고 있는 말들이 혐오와 차별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힘을 가진 사람들이 말에 담긴 힘을 이용해서 약자를 혐오하고 차별하고 지워버리기 때문이다. 여성,장애인,성소수자,이주민,난민들에게 말하지 말 것을 강요하고, 이 행위를 '정당한 분노, 정의를 위한 분노' 처럼 허울 좋은 단어들로 포장하고 전시해서 자기들끼리 하하호호 웃고 떠들며 분노를 팔아넘기고 평화로운 세상이라고 뿌듯해한다. 이렇게 약자들을 아예 지워내는 행위는 비단 언어의 풍경뿐 아니라 최근 사회 전반에서 벌어지고 있는 행위다. 작가는 이제부터 목소리를 굳이굳이 내서 이 단단한 인공구조물과 같은 말들의 지형을 깨뜨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마 이렇게 소리를 내면, 우리들이 서 있는 땅이 흔들리고 무너질 것처럼 혼란스럽고 불편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수많은 말들이 내는 다양한 소리를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다함께 웃으면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
|
실제로 사용된다고 밝혀낸 말들을 부끄러운 말이라며 사전에서 삭제하는 행위는 과연정당한가? P39 고무다라이 라는 말은 부끄러운 말도 오염된 말도 아니다, 좀 못나고 세련되지 못했지만 고무 다라이는 우리의 일상과 함께 하는 말의 요정일 분이다. 우리의 진짜 삶속에는 이런 요정들이 함께한다. 그러나 부디 밀쩡한 방언사전에 "빵꾸"내지 않기를 p87 이주민들이 긴근재난지원금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은 자연의 법칙처럼 자명하게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우리안의 '외부'는 자기기만이요 허상이다. 이사회의 진짜모습이란 긴 의자에 이주민을 포함한 수많은 '우리'들이 뒤섞여 함께 앉아 있는 것에 가깝다. 우리는 분리되어 있지 않고 분리될수 도 없다. p108 한국인이라는 문제적 집단 SNS에는 무슨사건의 내막을 두고 알고보니 00더라 '소오름' '알림' 좋아요 가 만연한다. 한국사회의 새로운 구성원들과 갈등하지 말아야 한다거나 그런 갈등을 모른척 하자는게 아니다. 낯선건 나와 다른것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나와 다른 문화 다른 세계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만났을때 해결해야할 문제는 반드시 생겨난다. 그런데 이런문제로 인한 불편함과 갈등을 '혐오의 헛소리'라는 눈가리개로 덮어 버리면 진짜 문제를 볼 수 없게 된다. 무엇보다도 이런헛소리는 텍스트는 슬로베니아 철학자 레나타살레끌이 말한 '무지에 대한 열정'을 출족시켜준다. 어지럽게 꼬여 있는 갈등의 현장을 보면 우리는 이렇게 속으로 되될것이다, '알고 싶지 않아' '알고 싶지 않아' 이때 혐오의 허소리 텍스트는 난마처럼 얽힌 현상을 다음과 같이 간결하고 선명하게 정리해준다. '복잡할거 하나도 없어'다 재네만 없어지면 돼 . 어때 참 쉽지? 나는 한국 사회전체가 이처럼 무지에 대한 열정을 공유하는 담화 공동처럼 되어 가는 것이 두렵다.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늘 그랬듯이' 라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인터라스텔라에 나오는 문구 그러나 지금처럼 혐오이 헛소리가 활개를 친다면 나는 비장하게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한국사회는 결국 답을 찾지 못할 것이다' 내말은 그러니까, 질문도 하지 않는데 어떻게 답을 찾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