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의 정신 강창래 북바이북/2022.6.1. sanbaram
<책의 정신>은 한국출판평론상 대상을 수상한 <책의 정신>의 개정 증보판으로, 고전이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라는 실체를 밝히고, 좋은 콘텐츠의 기준을 이야기할 수 있는 마당이 펼쳐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고 한다. 저자는 “이 세상 모든 책은 하나하나가 편견이다. 인간은 모두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듣고 싶은 것을 들을 뿐 아니라 쓰고 싶은 것만 쓴다. 사실은 없다. 해석만 있다. 게다가 그 해석조차 당대 패러다임의 지배를 받는다.(p.9)”고 강조한다. 이 책에서는 고전이라고 알려진 책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다섯 개의 질문을 하나씩 이야기로 엮어 고전에 담긴 뜻을 설명하고 있다. 첫 번째 질문은 ‘좋은 책이란 어떤 의미인가?’이다. 두 번째 질문은 무엇이 그런 혁명적 생각의 기원이 되었을까? 세 번째 질문은 ‘고전은 정말 위대한가’이다. 네 번째 질문은 ‘객관성의 칼날에 상처 입은 인간에 대한 오해’이다. 다섯 번째 질문은 책의 운명에 관한 것. 책은 고대로부터 학살의 대상이 되었다고 하며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저자 강창래는 20년 넘는 출판 편집기획자와 대학 강사 생활을 거쳐 지금은 다방면의 글을 쓰며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위반하는 글쓰기> 등을 썼다.
첫 번째 이야기-포르노설과 프랑스 대혁명 “사실 장 자크 루소의 대표작은 <사회계약론>이 아니라 <신 엘로이즈>라는 연애소설이라 해야 할지 모른다. <신 엘로이즈>는 1761년에 출간되어 40년 동안 115쇄를 찍었다.(p.29)” 이런 종류의 소설을 읽은 독자들은 등장인물과 동일시되었고, 그럼으로써 “전통적인 사회적 경계, 즉 귀족과 평민, 주인과 하인, 남성과 여성, 아마도 성인과 아동 간의 경계마저 넘어 공감”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이 개인적으로 모르는 사람들까지 자신과 비슷한 감정과 이성을 가진 ‘같은 존재’로 보게 되었다. 이런 배움의 과정이 없었다면 프랑스대혁명은 평등이라는 낱말에 깊은 의미를 담지 못했을 것이며 정치적 성과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성적인 감정을 일으킬 목적으로 성기나 성행위를 노골적으로 묘사하는’ 포르노소설이 프랑스 대혁명의 지적인 기원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니 놀랍지 않은가! 프랑스대혁명만이 아니라 ‘인권의 발명’에도 유명한 계몽사상가의 위대한 저작물은 없다. 대신 조금 음란한 연애소설들이 자리 잡고 있을 뿐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첫 번째 이야기는 프랑스대혁명의 지적인 기원에 포르노그래피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책의 저자들 가운데는 볼테르나 디드로처럼 유명한 계몽사상가들도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그 포르노그래피는 하층민들에게 계몽사상을 전파하는 역할을 했다.(p.77)” 포르노그래피에서 묘사되는 성행위 과정을 따라가 보면 신분의 차이가 완전히 사라진다. 그래서 그것은 지배층의 위선을 폭로하고 평등사상을 담아낼 수 있는 최고의 이야기 소재가 될 수 있었다. 아레티노는 시와 희곡, 에세이를 쓰는 당대 최고의 풍자작가였다. 그는 음란한 그림으로 구속되었던 마르칸토니오가 풀려난 뒤 그 그림들을 보았고, 거기에 맞춰 <음란한 소네트>를 썼다. 그 내용은 매우 외설적이고 대단히 정치적이며 사회 비판적이었다. 특정 인물의 이름을 거론하거나, 누구나 그 인물이 누군지 알 수 있도록 글을 썼다. 당시 지배층의 위선을 신랄하게 까발렸던 것이다. 그리고는 한술 더 떠서 마르칸토니오의 그림과 <음란한 소네트>를 함께 편집한 책을 찍었다. 이것이 이른바 책으로 출간된 최초의 포르노그래피다.
두 번째 이야기 -아무도 읽지 않은 책 “두 번째 이야기는 근대과학의 시작인 코페르니쿠스에서부터 뉴턴에 이르는 과정을 살펴본다.(p.78)” 중세를 지배하고 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천체 물리학은 신의 의지가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지상의 모든 것은 신이 정해준 제자리가 있으며, 운동이란 신의 의지에 따라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갈릴레오가 19세 때 피사대학 예배당 천장에서 흔들리는 샹들리에를 보고 진자의 동시성을 발견했다는 이야기도 근거 없어 보인다. 그 예배당의 샹들리에는 갈릴레이가 19세 되던 해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기록에 따르면 그보다 몇 년 뒤에 설치되었다고 한다. 사실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 인물이나 고전은 실제의 모습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고정관념에 가깝다.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그 고정관념들은 어떤 논의의 출발점으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거의 모든 과학책에서 갈릴레오를 다루는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닐까라고 말한다.
세 번째 이야기 -고전을 리모델링 해준다는 이야기다. “이상하게도 우리에게 전해진 소크라테스의 이미지는 거의 플라톤의 소크라테스다. 플라톤이나 크세노폰이나 둘 다 소크라테스의 애제자였는데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렇다고 플라톤의 소크라테스가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보다 훨씬 더 믿을 만한 실재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p.130)” 그런데 학자들은 늘 플라톤의 소크라테스만을 이야기한다. 플라톤의 <대화편>들은 소크라테스가 죽은 뒤에 쓴 것이다. 플라톤의 소크라테스는 오래된 기억을 바탕으로 조각된 인물일 확률이 높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철인 독재국가를 꿈꾸었고 민주주의를 바보들의 정치체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은 잘 모른다. 플라톤의 책에서 소크라테스가 그랬다고 하니까 그랬다고 믿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민주주의를 혐오했고, 나치만큼이나 끔찍한 전체주의 국가였던 스파르타를 선망했다. 실제로 그의 제자 가운데 하나는 역사 이래 최고의, 최초의 민주주의 국가였던 아테네에 독재정권을 세우고 민주주의자들을 살육했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를 고발한 실질적인 주인공은 바로 그 독재정권 치하에서 핍박받던 민주투사였다고 한다.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플라톤의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졌고 플라톤 역시 그 작품들을 통해 자신의 철학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렸다. 그러니 어디까지가 소크라테스의 철학이고 어디까지가 플라톤의 철학인지 판단할 길이 없다. 그런 사정을 두고 소크라테스의 문제라고 하는 것이다.
“삼국의 하나인 위나라의 하안이 <정현본>을 바탕으로 해설을 붙여 다시 편집해낸 것이 <논어집해>다. 이것이 지금까지 전해진 최초의 <논어>다. 공자가 죽은 뒤 700년 쯤 지난 뒤의 일이다.(p.140)” 여러분은 필자가 고려 말 누군가의 어록을 마음대로 편집해서 내놓는다면 얼마나 믿겠는가. 더욱이 공자는 기원전 6세기의 인물이다. 최초의 <논어>는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상상하기 힘들 만큼 원시적이었던 세월이 700년이나 흐른 뒤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게 정말 공자의 어록일까? 고려시대에 들어온 <논어>는 그것도 아니었다. 12세기 송나라 사람인 주희가 주를 달고 다시 엮어낸 <논어집주>였다. 소위 주자학이다. 그리고 조선이 건국된 뒤에는 15세기초 명나라 때 만들어진 것이 들어와 자리 잡는다. 그 역시 주자학이었지만 맹자의 역성혁명처럼 정권이 거북해할 만한 내용은 삭제된 것이었다. 조선에서 유통된 <논어>는 ‘공자님 말씀’도 아닌 세탁된 ‘주희의 해석’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보면 소크라테스의 문제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훨씬 더 ‘공자의 문제’는 심각해 보인다고 저자는 말한다.
네 번째 이야기 -객관성의 칼날에 상처 입은 인간에 대한 오해에 대한 이야기다. “객관성이란 주관성의 페르소나이기도 하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인간의 감각은 사실이 아니라 해석을 인지할 뿐이기 때문이다. 결국 좋은 책이란 명확한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질문을 던짐으로써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겠는가.(p.208)” 인간의 성심리는 태어날 때 중립적이고, 두 살 이후에 성 정체성이 발달한다. 그러니 그 이전에 성을 지정하고, 지정된 성의 정체성에 맞게 아기를 키우기만 하면 된다는 존 머니의 이론에 설득된 의사들은 비정상적인 성기를 가지고 태어난 남자아이를 여자아이로 바꾸는 수술을 정당화했다. 그런 아이들은 대개 여성으로 ‘재지정’을 받았는데 그것은 남자 성기보다 여자 성기를 만드는 것이 더 쉬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의 됨됨이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의 의한 것이라는 이른은 ‘빈 서판’으로 표현 된다. 백지상태로 태어나 경험을 통해 그 백지가 채워지고 그 내용이 그 사람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됨됨이는 선천적인 것도 후천적인 것도 아닌 그 둘의 조화로 발현된다고 요즘 학자들은 이야기 한다.
다섯 번째 이야기 -책의 학살, 그 전통의 폭발에 대한 이야기다. “고대 책 파괴 현장을 보면 대개 ‘종교적 이유’였다. 물론 이전 왕조의 장서를 없애는 것은 ‘정치적 이유’라고 할 수 있지만, 그때의 정치는 아직 종교와 분리되지 않았다.(p.324)” 예를들면 이집트의 아벤호테프 4세는 스스로 아크나톤이라고 부르며 수도를 옮기면서 그 이전 “아몬의 사제들이 지녔던 저작을 파괴하도록 명”했는데, 그것은 그 이전의 전통적인 종교를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이집트를 침략했던 이슬람이 알렉산드리아도서관을 파괴할 때의 명분이나, 중세의 기독교가 책을 파괴할 때의 명분 역시 종교적인 이유였다. 진시황이 유가의 책을 파괴하려고 했던 것도 법가의 상앙이나 한비자의 생각을 받아들인 것인데, 그것 역시 종교에 가까운 신념 때문이었다.
“한 권의 책을 다 읽었다고 말할 수 있는 시점은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길 때가 아니라 독후감 쓰기를 끝낼 때다.(p.7)” 그런데 그 독후감 쓰기는 부담스럽기 때문에 사람들이 싫어한다. <책의 정신>에서는 단순한 독후감 쓰기에 대한 것이 아니라, 고전의 생존 배경과 그 이면을 들여다보는 방법을 이야기 하고 있다. 결국 살아남은 고전에서는 그 시대의 정치,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포함되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고전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만 몰두했던 것을 반성하게 될 뿐만 아니라, 시대적 상황까지 살펴야 됨을 알게 된다.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
『책의 정신』 세상을 바꾼 책에 대한 소문과 진실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책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편견을 알리는 책이다. 또한 책을 읽는 태도와 가이드라인을 피터지게 알려주고 싶어하는 저자가 쓴 메타북이다. 독서운동에서 독서는 빠지고 운동만 남은 상황에 개탄하며, 어떻게 하면 주관적 페로소나의 결정체인 책을 스스로 선택해서 읽는 기쁨, 독서를 통해 편견을 없애 나가는 기쁨, 타인과 나누는 기쁨을 경험하게 할 것인가에 대해 깊게 고민한 흔적도 보인다.
책을 학살하는 큰 이유인 이 두 가지는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이다. 책은 적의 상징물이었고, 피통치자에게 자기 권리를 깨치게 하는 것이어서 통치자에게는 성가신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책은 통치자에게 더 잘 통치하기 위한 지혜를 주는 생명과 영혼의 샘물 같은 것이었고, 잘만 활용하면 피통치자를 길들이는 데에도 더 없이 좋은 도구였다. (p.306)
문맹률이 아주 높았던 시절에는 책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책을 발간하고, 또 이해하지 못한 책들을 학살하는 역사의 반복이 일어났다. 권력에 의해 일어나는 당연한 이유이기에 그 시대상을 잘 이해하고 책을 읽어야 한다. 더구나 소크라테스나 공자처럼 예수처럼, 제자들에 의해 쓰여진 책들의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하는데 이 부분이 특히 흥미롭다.
오래된 고전을 제대로 읽어내기 위해서는 학문을 연구하듯 읽어야 한다. 그래야 책에 먹히지 않고 책을 잘 먹고 소화시킬 수 있다. 향기로운 커피 한 잔을 마시듯 읽을 수 있는 동시대 소설과는 매우 다른 종류의 책들, 고전이다. (p.168)
문학을 읽어야 하고 특히, 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인간이 겪는 실존적인 문제는 역사를 따라 반복되고 여전히 그 책이 살아 남아 있는 이유는 그럼직한 이야기 있다는 설명이 따라붙는다. 하지만 고전을 읽을 때 가독성의 문제에 직면한다. 저자는 그것은 고전 속 글의 행간 사이를 공부하면서 읽으라고 전한다. 그 시대의 역사, 상황을 모르고 무작정 좋은쪽으로 해석하려고 하거나, 나쁘게만 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책을 읽을 때 반드시 갖추어야 할 비판적 태도다.
뉴턴은 “어중이떠중이들이 집적거릴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 독자층을 좁히는 쪽을 선택했다. 대단한 전문가만이 읽어 낼 수 있도록 책을 어렵게 쓴 것이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프린키피아』를 읽은 ‘한 줌도 안 되는’전문가들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역학”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물론 보통 사람들은 책을 읽은 엄두를 내지 못하고 그런 찬사를 믿고 받아들였을 뿐이다. (p.116)
비판적 사고를 갖고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책은 어느 시대든 정치적으로 목적으로 이용되었기 때문이다. 프랑스혁명 시절 하필 유행했던 루소의 포르노소설이 사람들을 계몽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 하겠지만,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프랑스혁명이 미친 영향은 미비하다. 저자는 지배층이 피지배층을 이용하려고 포르노그라피를 이용한다고 한다. 그것은 노동의 문제와 결부되며 사회구조속에서 문제화 되어가는 것이다. 살인을 아주 자세하게 묘사하는 것과 포르로그라피 또는 전쟁의 모습과 누드의 모습 중 어떤 것이 더 외설적인지에 대해 묻는다.
객관성이랑 주관성의 페르소나이기도 하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인간의 감각은 사실이 아니라 해석을 인지할 뿐이기 때문이다. 결국 좋은 책이란 명확한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질문을 던짐으로써 생각하게 만드는 것 아니겠는가. (p.208)
이 책을 읽어보면 브렌다는 과학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와 탐욕, 권위의 희생자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본성과 양육이라는 과학에서는 이데올로기에 봉사하려는 저들의 자료 조작이 드문 일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잘못된 인용, 왜곡된 인용, 의도적인 엉터리 해석, 잘못된 해석도 자주 발견된다. 그런 지뢰밭을 피해 가기 위해서는 과학책 역시 신중하게 논거를 검증하며 비판적으로 읽어야 한다. (p.223)
과학적 사고는 현 시대의 우리에게 가장 합리적인 태도로 각광받는다. 하지만 최신 정보가 늘 옳은 것은 아니다. 과학책을 읽을 때에도 균형감각을 갖고 책을 마주해야 한다. 과학책은 정치적인 목적과 부합될 때만 인정 받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다. 매틀 리들리의 <본성과 양육>이라는의 책을 통해 우생학과 유전학이 정치적으로 이슈가 맞물렸을 때를 자세히 설명하고, 행동주의 심리학의 맹점, 멋진 신세계의 세계관에 대하여 신랄하게 파헤친다.
물론 이 책에서 언급한 책들은, 커피 한잔 마시며 조용한 까페에서 읽는 책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을 뒤엎을 만큼 세상을 변혁을 일으킨 책들의 운명과 그것을 비판적으로, 또는 좋은 쪽으로 해석하는 메타북들을 같이 소개함으로써 책을 읽는 균형감각과 비판적인 태도를 갖추라고 전한다. 그래야 진정 책이 갖는 정신을 이해하고, 그것을 읽는 기쁨을 만끽하게 된다고 한다. 우리더러 어서 거인들의 어깨 언저리로 오라고 손짓한다.
|
|
책을 읽는 내내 내가 알고 있었던 - 책을 통해 얻었던 지식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절대적 진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나 의심없이 받아들였던 지식. 교과서에 실려 있으니까, 오래 전부터 그렇게 알고 있었으니까, 믿음이 가는 선생님이나 저자가 그렇게 말하니까 등의 이유로 당연한 듯 받아들이지 않았었나 자문해 본다. 유튜브의 편파적인 내용들을 지속적으로 듣다가 그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해서 편협한 사고를 내뱉는 사람들이 떠오른 건 어쩌면 자명한 일인지도 모른다. 좋은 책의 의미가 사고의 확장과 전환을 꾀하는 것이라면 이 책은 좋은 책이다. 갈릴레오가 종교 재판 "마지막 장면에 "그래도 지구는 돈다"같은 중얼거림은 없었다. 정말 그랬다면 더 멋져 보였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굳이 '기록'같은 것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p.98) 뉴턴의 "<프린키피아>는 '전문가들에게 위대한 책이었던 것이다." (p.116) " "<프린키피아>는 너무 어려운 책이었기 때문에 일반인을 위한 해설판이 필요했다. 그런데 해설판은 영국이 아니라 경쟁 상대국이었던 프랑스에서 먼저 등장했다.(......) 1759년 출간된 번역판은 매우 훌륭한 것이어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프랑스어판의 표준으로 쓰인다. 그리하여 영국 사람들이 난해하기 그지없는 <프린키피아> 원본을 들고 씨름하고 있을 때 프랑스 사람들은 이 해설판으로 고전역학을 쉽게 배울 수 있었다." (p.117) "극단적인 예가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하고 사형당하는 것조차 감수했다는 이야기 말이다. 한국의 군사독재정권에서는 이 이야기를 인용하며 학교에서 준법정신을 가르쳤다." (p.146)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그 사실을 밝힌 강정인과 권창은의 논문 두 편이 1993년에 발표되었고 언론에서도 크게 다뤘지만, 교과서에서 그 내용을 삭제하라는 헌번재판소의 권고는 2004년 11월에야 내려졌다." (p.147) <책의 정신>(2002. 북바이북)은 우리게게 끊임없이 질문을 한다. "당신이 알고 있는 지식은 어디까지 진실일까요" 우리 세대의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소크라테스가 죽으면서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했고, 갈릴레이는 종교재판을 하고 나오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말했다고 알고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 학교와 위인전에서 그렇게 배웠는데 내용 수정의 업그레이드의 기회를 만나지 못 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장점은 그런 우리의 오해를 바로 잡아준다. 그것도 "에밀리 뒤 샤틀레가 썼다는 <프린키피아>의 해설서처럼 아주 쉽게"말이다. 이 책은 2013년 출판되었던 <책의 정신>의 개정증보판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총 다섯 개의 큰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대답을 찾아간다. 목차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좋은 책은 어떤 것인가" - "포르노소설과 프랑스 대혁명" "무엇이 그런(프랑스 대혁명 같은) 혁명적 생각의 기원이 되었을까?" - "아무도 읽지 않은 책" "고전은 정말 위대한가?"- "고전을 리모델링해드립니다" "과학혁명 이후 현대사회를 규정한 과학은 어떤 것이었을까?" - "객관성의 칼날에 상처 입은 인간에 대한 오해" "책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 "책의 학살, 그 전통의 폭발" 과거 기득권자이 저자들에게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저자가 가지는 가치관이 어떤 형태로 책 속에 녹아 있는가 가 아니라 저자의 글이 자신들의 권익에 도전적이냐, 아니냐였던 것 같다. "갈리레오가 쓴 <두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는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일반인도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쓰였다. 그것도 라틴어가 아니라 이탈리아어로! 학술어인 라틴어가 아니라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속어로 썼다는 것은 대단히 심각한 문제였다." (p.89) 동.서양을 막론하고 기득권자들은 정보의 대중화보다는 독식을 원했던 것 같다. 정보를 갖는다는 것은 동일한 선상에서 경쟁을 한다는 것인데 기득권자들은 자신들과 대중들이 동일선에 서 있는 것 자체를 불쾌해 했다. 이 책은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참인지, 거짓인지 궁금한 사람,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접근한 책에 대한 정보를 알고 싶은 사람, 자신의 분야와 다른 글을 읽고 싶은 사람, 세계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그리고 책 속에서 말한 책들을 찾아 읽으며 저자의 말에 동조하기도 하고, 반론을 제기해 보는 시간을 가져도 좋겠다. |
|
책에서는 단순히 고전들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기 보다는 하나의 컨샙과 그에 맞는 고전들을 선택해 그 컨셉에 맞는 이유나 이 고전과 그당시의 사회상과의 연관성에 대해 설명해 준다. 읽을 수록 서평단을 신청할 때 생각했던 나는 이제 고전을 제대로 읽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얼마나 짧은 식견이었는지 깨닫는다. 나는 아직도 고전을 온전히 이해하고 제대로 보지는 못하겠지만 '책의 정신'에서 설명해 주는 만큼의 배경지식은 가지고 고전을 읽어나갈 수 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
이책의 서문에 " 한권의 책을 제대로 다 읽었다고 말 할 수 있는 시점은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길때가 아니라 독후감을 끝낼때이다" 라는 문장이 나를 읽는 사람에서 쓰는 사람으로 이끌었다. 이 책을 10년 전에 읽었는데도 기억이 안난다. 그래서 다시 읽었고 나는 이렇게 독후감을 쓰고 있다. 읽는다는 것에 대한 정의를 다시 하게 해주었고, 좋은 책이란 어떤 책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내가 읽어야 하는 책에 대한 부감감을 덜어 주었다. 내가 재미있게 즐겁게 읽을 수 있다면, 그 책은 내 인생의 책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책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참고도서와 메타북의 리스트를 읽어보며 한탄했다. 읽어본 책이 단 한권도 없다. 나는 도대체 무슨 책을 읽어 왔던 것일까. 작가는 책읽기가 즐거워야 한다고 했는데. 리스트에 나오는 책중에서 내가 읽고 싶어지는 책은 단 한권도 없다. 작가는 어떤 즐거움을 책에서 찾는 것일까. 작가가 이야기 하는 재미는 무엇일까. 나의 그것과는 다른 것 같다. #연말리뷰 |
|
개정판 <책의 정신>에는 추천글이 거의 빠졌지만 2013년도 최초 출간되었을 때는 추천사들이 쟁쟁했다. 얼마 전 별세하신 이어령 선생님께서는 '거의 모든 분야에 대한 박학과 깊은 통찰이 감탄스럽다'라고, 내가 무척 좋아하는 서평가 이현우는 '책장을 여는 순간, 깊고 넓은 책 세상으로의 도약과 지성의 거침없는 모험이 펼쳐진다'라고 이 책을 칭찬하였다. 또 전 서울도서관 관장이자 한국 도서관계에선 큰 역할을 하고 계시는 사서 이용훈은 '다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알지 못하는 책과 책 읽기에 대한 새로운 여행을 떠나고자 제안한다'고 하였다. 나의 어쭙잖은 글보단 이름난 분들의 추천글이 이 책의 진가에 대하여 더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기에 그분들의 문장을 가져왔다.
<책의 정신>은 메타북이다. 메타북이란 책에 대한 책을 말한다. (대충 세어보니 내 책장에 꽂혀있는 메타북도 대충 열권이 채 못 되는 것 같다) 이 책에서는 제목은 들어봤거나 도전할 엄두가 나지 않았던 책들, 읽기는 했지만 완독을 하지 못했던 책, 존재조차 모르고 있는 수많은 동서양의 고전과 양서들이 등장한다. <책의 정신>이 내가 가지고 있는 다른 메타북들과 차이를 보이는 것은 엄선된 고전 목록의 이면을 들추는 데 있다. 읽기 어려운 고전을 잘 소화해서 독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데 그치지 않고 실은 그 고전 목록이 오류와 소문 위에 쌓아올린 것일 수도 있다는 주장을 펼친다. 한방을 먹이는 것이다. 인간의 사고체계나 정신 과정이 생각보다 심오하고 신비롭지 않고 어쩌면 반자동적 기계적 허점 가득한 것일 수 있다는 최근의 연구결과들처럼 이 책은 고전에 대한 나의 얄팍한 편견을 깨부순다. 저자는 책에서 '편견은 수많은 편견을 접함으로써 해소된다'라고 했다. '편견'을 하나의 '책'으로 치환해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내 얄팍한 앎을 깨트리는 또 다른 '책'들을 많이 만날수록 나의 생각은 넓어질 것이다. 이 책은 독서에 대하여 진지한 애정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추천할 책이다. 특히 도서관 계통에 일하는 사람들은 필독서가 되어야 할 것이다.
p. 39 이렇듯 문학의 역사는 여러 세대에 걸쳐 조각조각 잇고, 여기는 자르고 저기는 잡아늘이고, 어떤 곳은 닳아빠지고, 다른 것에 덧대고, 어디에나 시대착오로 장식해서 교묘하게 꾸며낸 작품이다. 따라서 그것은 과거 사람들이 실제로 경험한 문학과는 별 관계가 없다 - <책과 혁명> 35~36쪽
p.162 소크라테스는 민중들을 목자가 필요한 양 떼라고 생각했다. 그 목자는 "다스리는 방법을 아는" 철학자여야 하며, 사회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사상을 철저하게 통제해야 한다고 했다. 그의 생각은 이처럼 끔찍했다.
p.193 본성과 양육을 다루는 책들은 조심스럽게, 비판적으로 읽어야 한다. 스티븐 제이 굴드의 말대로 과학에 대한 지식 역시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강하게 받기 때문이다. (중략) 본성과 양육에 관한 책들은 대게 분야를 아울러낸, 종합적일 뿐 아니라 전문적인 지식을 다룬다. 그래서 박식하지 않은 독자가 비판적으로 읽어내는 것이 쉽지 않다.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상식과 교양을 넓힐 수 있는 종류가 아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
한국출판평론상 대상 수상작 [책의 정신]의 개정 증보판이 나왔습니다. '세상을 바꾼 책에 대한 소문과 진실'이라는 부제목과 고전을 제대로 읽고 싶다는 열망에 선택한 책이라 기대를 하고 첫장을 열였습니다. 최근에 읽은 슈테판 츠바이크의 소설 [체스 이야기]가 들어가는 말에 나와 반갑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이 책을 읽어야만 하는 당위성을 얻은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소문의 책들이 가진 충격적인 진실을 만났습니다. 저자는 첫 번째 이야기-포르노소설과 프랑스대혁명을 통해 교과서에서 배운 세계사의 한계와 충격적 진실을 제시합니다. 많은 이들이 프랑스대혁명이 왜 일어났는가?라는 포괄적인 질문을 할 때 로버트 단턴은 왜 '프랑스'에서 대혁명이 일어났는가?에 중점을 두고 혁명이 일어나기 전 당시 프랑스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 되는 세 종류의 책을 찾아내 대혁명의 실마리를 역으로 찾아갑니다. 정치적 중상비방문과 SF소설은 현재를 비판하고 새로운 세계를 갈망하는 장르소설이니 시민들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포르노소설이라니,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위대한 고전들'은 어디로 가고 '프랑스' 계몽사상가들에 의한 혁명이 아니었다는 말인가 싶을 때 간과하고 있던 사실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바로 문맹률 입니다. 프랑스혁명의 성서로 불리는 장 자크 루소의 대표작 [사회계약론]을 많은 사람들이 읽고 대혁명이 들불처럼 일어났을 것이라는 착각은 [사회계약론]이 처음 출간 된 1762년 이래 딱 한 번 더 1791년에 찍었을 뿐 이며, 프랑스혁명의 지적인 기원을 연구했던 다니엘 모르네의 조사 결과에도 당시 사람들이 읽었던 개인 장서의 경매목록 2만 권 중 단 한 권이 포함 되어있다는 사실에 의해서 깨어집니다. 오히려 루소의 연애소설인 [신 엘로이즈]는 출간 된 이후로 40년간 꾸준히 115쇄를 찍었으며 가난한 평민 출신의 남자 주인공과 스위스 귀족의 외동딸인 여자 주인공의 비극에 가까운 사랑이야기에 공감한 독자들은 루소에게 편지를 쓰면서 귀족과 평민, 주인과 하인, 남성과 여성, 성인과 아동 간의 경계를 넘어 같은 인간으로 여기는 '평등'의 사상이 자라나기 시작하고 이는 곧 공감을 이루며 기존의 관습적인 사회이념에 대한 반론이 태동했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을 쓴 코페르니쿠스를 통해, 과학혁명이 그동안 숨기고 있던 비밀을 폭로하는 두 번째 이야기에 이어서 서양 철학의 고전하면 떠오르는 플라톤의 [변명]과 공자의 제자들에 의해 집필 되었다는 [논어]에 대한 생각을 송두리채 뒤엎어버리는 세 번째 이야기, 여성으로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관찰을 중심으로 우리가 사실을 바라보고 있음에도 거짓된 정보에 휩싸여 혼란의 세상에 걸어들어갔던 이야기들을 들려줍니다.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사람은 상대방의 말을 믿었기에 자신에 대해서도 그의 말을 전적으로 믿고 평가합니다. 더욱이 상대방이 권위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병에 대한 진단을 내리듯 나에 대해 말을 해 주면 믿게 되어 있습니다. [책의 정신]을 읽고 느낀점은 고전에 대한 찬양 일색의 권위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허상 또는 프레임에 갇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국가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옵니다. 국가 권력을 지배하는 이들은 국민에게 악법도 법이라고 말합니다. 그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 조차 믿고 지켜나간 정신이기에 민주사회에서 법은 혼란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니 이미 만들어졌다면 그 법이 악법이더라도 지켜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배웠고 다음 세대에게도 이렇게 배우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사용 되고 소용된 시절이 유신정권과 군사정권 때라는 사실은 잊고 말입니다. 더욱이 소크라테스는 책을 쓴 역사가 없습니다. 우리는 소크라테스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하는 플라톤의 책을 통해, 그리고 플라톤의 사상이 필요한 국가권력자들의 맞춤식 필요에 의해 그렇게 배우고 지배당해 왔습니다. [책의 정신]은 프레임에 갖힌 우리 자신을 프레임 밖에서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습니다. 틀을 깨고 나와야 자신이 틀 안에 있음을 발견할 수 있듯이, 기존 세대가 그어놓은 권장소설 목록의 경계선 밖에선 21세기인 현재에도 분서갱유가 진행 되고 있음을 깨닫게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세상이 몇초면 연결 된다는 초미디어 시대지만 오타까지도 복사해 붙여넣는 정보를 의심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로 가득해졌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야 무엇을, 어떻게, 왜 읽어야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책의 정신] 꼭 읽어보시길, 우리가 알던 세상이 어쩌면 트루먼 쑈의 세트장이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출판사 제공 도서 #책의정신 #강창래 #북바이북 #개정증보판 #세상을바꾼책에대한소문과진실 #책추천 #책스타그램 #한국출판평론상대상수상작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
- 소크라테스가 재판정에 불려 나가 '변명'을 해야 했던 당시는 공포정치를 펼쳤던 30인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정권이 들어섰던 때다. 공포정치의 주역이었던 크리티아스는 소크라테스의 제자였고 플라톤의 숙부였다. 더욱이 그는 소크라테스가 찬양해 마지않던 전체주의국가 스파르타의 후원을 받고 있었다. (154쪽) 장을 거듭할 수록 기존에 읽어왔던 책들은 무엇인가? 내가 제대로 읽었던가?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제 네 번째 이야기 읽다보니 책이란 이렇게 읽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길로 토끼몰이 당하고 있음에도 전혀 몰랐다는 소름끼치는 사실을 발견한 느낌입니다. 세상이, 사회가 잘 짜놓은 프레임 안에서 책을 읽었다는 생각을 하도록 [책의 정신]이 일갈 합니다. #책의정신 #강창래 #북바이북 #책추천 #책스타그램 #오늘읽는책
|
|
‘세상을 바꾼 책에 대한 소문과 진실’ 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 이 책은 알지 못했던 책에 대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책을 읽기에 앞서 ‘메타북’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면 책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메타북’이라는 말이 있다. 메타비평이 비평에 대한 비평을 말하듯 이 메타북은 책에 대한 책을 이른다. ‘메타meta’라는 접두사는 뒤에 오는 명사를 ‘탐구하는quest of 어떤 것’이라는 의미로 만든다. 이 개념은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책을 분류할 때 사용하지는 않지만 진지한 독자에게는 무척 중요하다. (본문 11p. 중에서) 이 책 또한 ‘메타북’이다. 책 본문에 들어가기에 앞서 들어가기에 나와있는 내용을 읽으면 저자가 왜 이 책을 쓰게 되었는지 더듬어 볼 수 있다. 저자는 독서는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 또한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으로 이 책의 목차를 보면 꽤나 호기심을 불러 일으킬만한 내용이 많지만 자칫하면 지루할 수 있는 주제를 어떻게 흥미롭게 담아 냈을지 궁금해졌다. 책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타인에 의해 주어진 것일 때 그것을 좋아하기는 쉽지 않다. 자발적으로 그 텍스트에 빠져들어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권장도서목록’같은 것은 독서를 괴로운 경험으로 만들 가능성이 크다. 아무리 좋은 경치라고 해도 억지로 끌려가 보고서는 감동하기 어렵듯이, 아무리 좋은 책이라고 해도 억지로 읽고 감동하기는 어렵다. (본문 8p. 중에서) 당신에게 좋은 책이란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나는 좋은 책이란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고, 즐거움을 주는 책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감동까지 더하면 더 좋고! 본인에게 좋은 책은 어떤 책인지 생각해보자.) 책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저자는 ‘좋은 책이란 어떤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사람들이 많이 참고하는 ‘권장도서목록’은 특정 타이틀이나 주제를 권장하고 독서의 즐거움을 빼앗는 원흉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실제로 ‘권장도서목록’을 참고해 독서해본 적이 있는 나는 저자의 말에 심히 공감했다. 역시 책은 쉽고 재미있게 읽고, 읽혀야 한다. 그렇게 읽었던 책이 도움이 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즐거운 독서시간은 아니었다. 아이들의 독서습관도 ‘권장도서목록’보다는 흥미위주로 시작해야 꾸준할 수 있는 것처럼!) 저자는 좋은 책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답을 첫 장에서 설명하고 있다. ‘포르노 소설과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첫 번째 이야기의 주제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이었지만 책의 영향력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였다. (익히 알고 있는 사상가들의 상반된 작품들을 알 수 있어서 조금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앞선 프랑스대혁명의 영향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두 번째 이야기 ‘아무도 읽지 않은 책’에서 볼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약이라고 해도 누구에게나 좋을 수는 없다. 특정시점의 나에게 좋은 약이 있을 뿐이다. 나에게 맞지 않으면 독약이 될 수 있다. 그러니 고전을 꼭 읽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고 해도 내가 잘 소화하고 받아들이면 최고의 약이 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읽고 싶은 책이라면 무엇이든 상관없다. (본문 9p. 중에서) 이렇게 저자는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책을 풀어나간다. 각각의 질문이 연결되어 있으면서 그에 대한 이야기들을 책을 통해 들려주는데, 그것이 단순히 질문에 대한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관련된 책에 대한 호기심까지 더해져 한 권의 책으로 엄청난 양의 책을 읽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책을 읽는 중간중간 호기심으로 관련서적을 찾아보기도 혹은 작가를 찾아보게 되는 일도 빈번하다. 이것이 메타북의 장점이라면 장점이겠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미시적인 관점에서 그렇다. 세상은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그렇다.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끊임없는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인간은 변하지 않는 사실에 대해 많이 알면 알수록 풍요롭고 여유 있는 삶을 구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주제도 그런 것 가운데 하나이다. (본문 5p. 중에서) 작가는 이 책으로 ‘세상을 바꾼 책에 대한 소문과 진실’을 밝힘으로써 이 책이 세상을 바꾸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고 밝혔다.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들이 더 크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참고목록 중 ‘메타북 총목록’을 따로 기술해 놓아 독자가 관심 있는 분야의 책을 따로 찾아볼 수 있게 해 놓았다. 책에서 책으로 계속해서 연결되는 독서의 즐거움을 ‘책의 정신’을 통해 시작하길 바란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
<책의 정신>은 책에 대한 책을 말하는 메타북이다. 작가는 도서관 운동을 시작하면서 한국에 불어닥친 운동열풍과 그 방식에 의문을 품었고, 효과를 의심하면서 나름대로 대안을 제시하고 싶었다고 밝힌다. 자기가 보고 듣고 쓰고 싶은 것만 쓰는, 편견 속에서 “해석조차 당대 패러다임에 지배를 받는다”(p.9)고 말하며, 그 패러다임 속에서 즐거운 독서에 대해 말한다. 과연 작가가 말하는 달콤한 독서는 무엇일까
이 책은 세상을 바꾼 책에 대한 소문과 진실이라는 부제로, 한국출판평론상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절판되어 중고서점에서 비싼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었는데, 2013년 초판 이후 9년 만에 개정증보판이 새로 출간되었다. 작가는 같은 저작물이라도 새로운 번역서가 더 좋다고 판단되면 근거자료를 수정했고, 논리를 뒷받침하는 데이터도 추가했다. 기존에 이 책을 읽었던 독자들도 재독하기를 권한다. 초판에 실렸던 사진 일부 중 더 적절한 내용의 이미지가 있다면, 해상도도 더 높은 것으로 교체하며 수정했다.
작가가 말하는 책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질문 중 ‘고전은 정말 위대한가?’라는 부분이 인상 적이다. 작가는 고전 중의 고전으로 꼽히는 플라톤의 <대화편>중 소크라테스와 공자의 <논어>를 선택해서 어떻게 읽어야 즐거운지 말한다. 특히 ‘비판적 독서’라는 가장 즐거운 방법의 독서 방식을 소개한다. 고전이라고 해서 무조건 읽어야 하는 건 아니며,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니라는 것을 책에서 증명한다. 이 책은 소개된 고전을 나쁘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내 생각을 바꾸게 만드는 책을 무조건 수용하며 억지로 읽는 것이 옳을까에 대해 생각해보길 권한다.
책의 구성은 프랑스대혁명의 지적 기원으로 작용한 포르노소설, 출간 당시 너무 어려워서 읽을 수 없었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지배계급의 생각을 대중에게 전파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된 공자의 『논어』와 소크라테스의 『변명』, 학자로서의 입지를 굳히기 위한 수단으로 연구에 희생된 아기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에서 우생학을 떠올린 지리학자 골턴 등 고전이라 알려진 책에서 소개하는 지식과 정보에 관한 소문들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첫 번째 이야기인 포르노 소설과 프랑스대혁명 관한 부분이 인상 깊다. 대중 매체가 등장하기 전 그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바꾼 것이 책이라면, 그 당시 프랑스 사람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포르노 소설을 이야기하며 책의 소문과 가치를 말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독서’ ‘책’ ‘고전’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들을 정리해보게 되었다. 특히 고전을 읽으며 나는 나만의 해석을 하고 있는지도 말이다. 고전을 읽으며 타인들이 말하는 진리라고 포장된 것들을 무작정 받아들이려고 한 것은 아닌지 고민해야 한다. 작가가 이 책에서 언급했던 여러 테마들을 다시 곱씹어 가면서 나만의 해석이 담긴 책읽기를 해야겠다. 그게 책의 정신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