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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류층 부인인 마르그레트는 호텔바에서 여동생 니나를 우연히 만났다. 둘은 자매이긴 하지만 나이차가 열두 살이나 나고 성격이 달랐기 때문에 서로 오랫동안 소식을 끊고 살았다. 연락처를 나눈 자매는 곧 헤어졌지만 니나가 자신의 생일날 집으로 방문해달라는 부탁을 하자 마르그레트는 기꺼이 동생의 집으로 갔다. 월요일 아침에 동생의 집에 도착한 마르그레트는 수요일 저녁까지 니나와 함께 있으며 자신이 잘 알지 못했던 여동생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게된다. 그러니까 이 책은 니나의 이야기다.
니나는 지금은 성공한 작가지만 19살 때 많은 빚을 남기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한 동안 생활이 무척 힘들었다. 니나의 곁에는 나나에게 도움을 아끼지 않으려는 슈타인이 있지만 니나는 그것을 거절한다. 니나가 원하는 삶은 주체성을 갖고 자유롭게 사는 거였다. 니나는 슈타인에게 "삶의 의의를 묻는 사람은 그것을 결코 알 수 없고 그것을 한 번도 묻지 않는 사람은 그 대답을 알고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슈타인처럼 생각으로만 알려는 사람보다 몸으로 부딪쳐가며 살아가는 사람이 더 진실 되게 사는 거라고 말한 것이다.
니나는 언제나 기존의 법칙에 매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쪽으로 행동했다. 위험한 줄 알면서도 나치를 피해 달아나는 사람들을 도와주었고, 반대로 도망치는 나치 군인을 치료해주기도 한다. 먹고 살기 위해 시골의 작은 가게에서 일하기도 하고, 책방직원이 되기도 한다. 아이를 둘 낳는 동안 이혼을 하고 자살기도도 하고 소설을 써서 발표하기도 한다. 반면에 슈타인은 끊임없이 니나 주변을 맴돌면서 생각에 생각을 더하며 자신을 소모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나나가 자신에게 살아갈 힘을 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니나를 잡지 못하고 니나를 떠나지도 못한다. 18년이라는 긴 시간을 니나 만 바라보며 살아가는 슈타인의 모습은 답답하다. 그러나 슈타인이 니나를 보며 고통을 느끼고, 그것을 통해 삶의 의미를 깨달아가는 모습은 독자에게 삶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니나의 주체적인 모습, 슈타인의 지성적 성실함 , 그리고 마르그레트의 평탄한 삶을 보면서 사람은 어디에 꼭 맞춰져 있는 것이 아니라 살면서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을 알게 해준 내용이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안한 삶을 사는 것보다는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생의 질문에 온몸으로 대답해보라는 니나의 말은 좋은 삶을 위해서 지금도 기억해 볼 내용들이다. 1950년에 발표된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이 2019년의 모습을 본다면 도무지 믿기지 않는 신세계라고 눈이 휘둥그레지겠지만 그것은 잠깐일 뿐, 곧 인간의 본질은 별로 달라진 게 없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삶의 의미를 되풀이해서 묻는 사람과 그 질문이 있는지도 모르면서 온몸으로 대답해가는 사람들이 섞여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줄친 문장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운명이 없어. 그리고 그것은 그들의 잘못이야. 그들은 운명을 가지려고 하지 않아. 커다란 단 한 번의 충격을 피하고 그 대신 몇 백 개의 작은 충격을 받아들이고 있어. 그러나 커다란 충격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거야. 작은 충격은 우리를 점점 비참 속에 몰아넣고. 그러나 그건 아프지 않거든. 타락은 편한 일이니까. (136)
나는 오래전부터 악한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형법 때문도 아니고 십계 때문도 아니라 다만 악한 일을 하는 건 수지가 안 맞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야. 악은 그렇게도 비생산적이야. 160
누구나 용기를 내어보기만 한다면 누구에게나 용기는 있을 수 있는 거야. 161
80세가 되어가지고 악의에 넘치고, 고집불통이고, 시기심에 넘쳐 이기적이고, 파렴치할 정도로 탐욕스러워진다면 도대체 인생이란 무엇이에요? 179
우리는 추악한 것을 보지 않으면 중요한 것도 보지 못하는 것이다.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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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6펜스가 나에 대한 정체성을 찾으려는 시도를 하도록 해주었다면 그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는 이 시점에서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 를 만나게 된것은 정말 크나큰 축복이었다. 기억하고 싶은 구절에 붙여놓는, 책 표지에 붙여놓고하던 간지는 셀 수없이 떨어져 나갔으며 한구절 한구절이 가슴속에 부끄러울 정도로 적나라하게 다가 왔다.
주인공 니나는 정말 자신의 생의 한가운데에 있었지만 타인에 대한 연민또한 남달랐다. 니나의 언니에 의해서 서술되는 니나라는 인물은 모든것에 담담 한것 처럼 보인다. 루이제 린저는 니나의 언니가 니나에게 온 슈타인의 편지를 읽어가는 것으로 소설을 진행시킨다. 니나의 언니를 지금 시대의 평범한 한 인간이라고 한다면 슈타인은 니나에 대한 사랑으로만 뭉쳐져 있는 사람이며 니나 자신은 이들과는 달리 어느 누구로 부터도 자유로운, 자신의 생의 절대적인 위치에 있는, 마치 조그마한 은빛쟁반이 있으며 그 위를 굴러다니는 구슬이라고 하고싶다. 구슬은 은빛쟁반 위를 굴러 다니지만 절대 떨어 지지 않는다. 떨어 지려고 하면 다시 쟁반은 균형을 이루어 원위치로 다시 가게하는, 이렇게 밖에 표현을 못하지만 근접한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니나 역시 한 인간이기 때문에 흔들릴수도 있지만 타인과 다른점은 일정위치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반면에 타인에 대한 연민또한 가지고 있다. 어찌보면 타인과의 관계에서 나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것과 타인에 대한 연민을 가지는 것은 어떻게 보면 서로 극단(?)의 위치에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나로써는 알수없는 니나의 심장속에 있는 저울이 앞에서도 말한것 처럼 단 한치의 오차도 없이 작동하고 있는것 같다.
"책을 읽을때는 거기에 등장하는 이 사람이나 혹은 저 사람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해. 또 다른 책을 읽을 때는 또 다른 모습의 자기와 만나게 되고, 이런일이 끝없이 이어지지. 사람은 누구나 시선을 안으로 돌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면 수백가지 모습을 한 자기를 볼 수 있어. 하지만 그중의 어느 하나도 진짜는 아니야. 어쩌면 그 수백개를 다 합치면 진짜가 될 수도 있겠지. 결정된건 아무것도 없어. 그러면서도 우리는 최소한 스스로 원하는 것이 될수있으리라 믿고 있어. 문제는 우리가 택할 수 있는 것은 이 수많은 것 중에서 미리 정해진 어떤 하나일 뿐이라는거야."
자신을 모두 아는 것이란 불가능 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안의 수많은 자신의 모습중에서 하나를 택하지만 나중에는 후회하는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왜 그래야 하는 걸까. 니나처럼 자신안에 있는 생의 한가운데를 떠돌아 다니면서 어느것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자기 스스로 가지면 될것을... 나를 포함한 모든 이 시대의 사람들이 단 하나의 자신을 가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심지어는 남들이 가는대로 따라가는, 어쩔수 없는 선택이라고 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나 자신만은 내 속의 좀더 많은 나 자신을 발견하고 죽을때까지 멈추지 않는 세포의 탄생과 소멸 처럼 끝없이 새로운 것을 만날 수있는 그런 좀더 많은 나 자신을 만나고 싶다. 니나는 니나의 언니를 구원했고, 또 그녀를 생의뿌리로 두고있는 슈타인을 구원했으며, 또한 이 책을 읽은 나를 구원했다. 생에대해 한발자욱 다가가면 갈 수록 멈추지 않는 행복으로 감싸진 나를 발견할 수 있고 그렇다고 해서 자기안에 갇힌 내가 아닌 니나의 연민을 닮을 수있는 따뜻한 사람이 될수있으리라 믿는다. 내 생의 안에는 이 모든 가능성들이 있다고 믿기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평가 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자기 자신도 모르면서 타인을 평가하며 단정짓고 반대로 나 자신을 깍아 내리며 나 자신또한 단정짓는것 더더욱 어리석은 짓이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안에 셀수없이 많은 자신을 가지고 있다. 절대 평가할수가 없다는 것이다. 타인의 모든 평가를 무시하며 충고는 오직 충고로써 받아들이며 어디까지나 내 생의 근처에 그들의 평가를 접근 시키지 않을 것임을 다시한번 다짐한다.
생의한가운데를 통해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잠깐 언급하자면 니나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결코 자기 자신에 관해 말해서는 안됩니다. 전적인 이기주의로 보더라도 그건 안 될 일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설령 마음을 털어 놓았다고 해도 결국은 그 순간 부터 완벽한 고독 속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털어 놓았다고 해서 그와 가까워진다는 것은 한낱 환상일 뿐입니다. 누군가와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차라리 침묵 속의 공감이 훨씬 나을 것으로 여겨 집니다."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지만 침묵 속의 공감을 겪어 보지 못한 나로써는 이것을 이해할수가 없다. 하지만 정말 간절히 바라는 바로는 이런 경험을 한번 해 보고 싶다. 가슴 한가운데를 달궈진 쇠막대로 깊숙히 찌르는 듯한 문장이었다.
누구나 자신을 한 부류의 인간으로 취급한다면, 또 그런 길로 향하고 있다면 불행을 언제나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안에 있는 모든 가능성을 시험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렇게 무한한 가능성을 제쳐두고 왜 한 부류의 인간을 고집하는지, 더더욱 어리석은건 그런 나자신을 찾으려는 노력도 없이 남들을 좇아가는 그런 가장 어리석은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세상의 나를 포함한 모든 인간에게 바라는 바이다.
[인상깊은구절] "나와 같은 종류의 인간에게 새로운 시대의 운명을 맡겨서는 안된다. 나는 명백한 통찰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전적으로 따라가는 힘을 갖지 못한 그런 부류에 속하는 인간이다. 만약 미래가 있다면 니나처럼 힘차고 때때로 가혹하긴 하지만 일방적인 결단을 내릴 수 있는 그런 사람들만이 미래를 갖게 될것이다. 나와 같은 부류는 필요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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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한 명성을 지닌 소설가이며 동시에 여성적인 매력이 넘치는 니나 부슈만이 주인공이다. 니나를 통해서 린저는 당대의 지성 계급에 속하는 여자가 자기의 의식체계를 주위와의 분쟁 속에서 얼마나 지킬 수 있는가를 시험해 보았다. 이러한 의도는 니나가 어떤 괴로움과 고독함 가운데서도 자기의 일에 대한 성실 및 대인관계에 있어서 타협이나 자기만을 두려워하는 나머지 극단적인 괴로움을 고의로 불러오는 것 같은 데에서 단적으로 나타나 있다. 언제나 순간마다 판단을 내리는 니나의 본래의 성실성은 연애에 있어서도 수많은 남성과의 순간에 불과한 만남 밖에는 허용하지 않는다. 그와 대조적으로 슈타인은 충실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표현되어 있다. 영혼과 영혼이 맞부치는 한순간에 불과한 매혹을 의지의 힘으로 몇 번이라도 반복해서 원하고 지속시킴으로써 슈타인은 일생 동안 충실을 구현했던 것이다. 완전한 자의식의 화신 같은 슈타인에 대조되는 인물이 니나의 첫 남편이었던 할이다. 그는 아무런 복잡성도 영혼도 깊이도 지니지 않은 건강한 심신의 기관을 지닌 소유욕과 관능이 왕성한 청년으로서, 사랑은 불가능한 그러나 결혼은 언제나 하는 즉자적인 존재의 화신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외에도 여러 인물과의 갈등 및 그녀의 언니의 의견 등을 통해서 신,죽음, 인간, 사랑… 그리고 무엇보다도 생에 관한 작가의 신념이 하나의 총체를 이루고 얽힌 구성물을 이루고 있다. (작품 해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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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의 한가운데'는 한동안 나의 동반자였다. (지금도 나의 깊숙한 곳에는 니나의 형체가 살아있다.) '생의 한가운데'의 '니나 부시만'은....내 어린시절의 주축이 되는 몇않되는 인물중 하나였다. 나는 그녀를 나와 동일시했고, 그녀에게 나를 여과없이 투사했다. 그것은 참으로 잔인한 일이었다. 현실에 몸을 담그고 살고있는 인간에게, 이상적인 자유를 소유한 한 픽션의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한다는것..... 예나지금이나 그것은 괴리감과 불붙는듯한 질투를 불러오는 잔인한 일이다. 그녀와 나는 쌍동이인데도 같은 모습으로 ,같이 살아갈수없는 것이다. 나는 니나와 비슷한 언어와 사유로 세상과 충돌해야했고, 세상을 비웃었다. 책속에 숨어, 평면적인 하나의 얼굴만을 가지고 충분히 살아갈수있는 니나와는 달리, 나는 여러각도의 (또한 여러개의) 얼굴을 가져야 하는 현실속의 인물이었던 것이다. 여러개의 페르소나를 가져야한다는 것은, 퍽 고달픈 일이다. 지리멸렬하게 인생을 기워내야하는 삶의 작업들속에서 , 어떻게 니나에게 매력을 느끼지 않을수있단 말인가. (오히려 그녀가 논픽션이며 , 우리가 픽션처럼 보인다. 우리의 삶을 보라, 우리의 감정을 들여다보라.... 도대체 어느쪽이 픽션같은가?....) 이리하여 픽션처럼 복잡한 삶을 사는 우리들은, 명쾌하여 넌픽션과도 같은 '책속의 니나'를 사랑할수밖에 없는 계산된 숙명에 놓여져있다. 오죽했으면..우리들이 사용하는언어중에 "이게 차라리 꿈이었으면..."이라는 말이 있겠는가...- -;;) 그녀의 당돌함. 단순함.영민함. 오만함. 치열함. 깨끗함. 열렬함....... 아직 완성되지 않은 채 앓아야만하는 , 준비되지 않은 작은 인간들에게 .....말쑥한 하나의 얼굴을 가진채 살아갈수있는 그녀는 분명, '이상형'이다. 작가가 그려낸 나나 부시만은 ....본래...우리의 초상이다.(이쯤되면, 니나 예찬은 물러가고, 작가의 안목에 대한 예찬을 보낼 순서인것 같다..). 알이 먼저인가, 닭이 먼저인가 처럼 꽤 복잡한 문제인데.... 그녀가 나와 닮아있기에 그녀에게 끌렸는지, 아니면 매력적인 그녀에게 나를 투사시켰기에...나와 닮았다고 느꼈는지....정확히는 당신도 나도 아무도 모를일이다...... 하여간 닭과 알이 형태만 다를뿐,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녀와 내 안에 있는 것들이 동일한 것임은 두말할나위 없이 여전히, 아직도 확실하다.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려한 노력한 니나...그녀는 그녀의삶 앞에, 몹시 '인간적'이다. 이 ...인간적이라는표현은 지금 이지면에서만큼은 매우 주관적인 나만의 언어로 사용되었는데.... ...자신의 삶에 있어 그만큼 치열하기에 - "인간적"이라는 뜻으로 사용한 것이다..반대로 나에게, 자신의 삶에있어 치열하지않다는것은 몹시 '비인간적'이라는 뜻으로 대치된다. 최소한 인간이라하면...저정도의 치열함과 열렬함. 오만함은 있어야하지 않겠는가..... 소설에서 주목해야할 위대함은, 시타인 박사에게서 찾아볼수있다. 니나 부시만이, 존재론적 기쁨을 우리에게 선사한다면.... 시타인박사는 그 존재가 이룰수있는 거룩하고 지순한 '고지'를 차지하고있다. 그는 사랑의 이름으로 그녀를, 삶을 감싸안는다. 그 사랑은 때론 그를 침몰하게도하였고, 하잘것없게도 만들어버렸지만.....그 긴 목마름속에서도 그는,........ 끝내 자신을 잃지 않는다. 자신을 잃지 않는다는것........시타인에겐 '사랑'과 '자신'은 동의어였다. 곧 자신의 사랑을 놓아버리지 않음으로써.... 사랑의 어려운 난공식을 풀수없어 늘 끙끙대며 악전고투하는 "우리"앞에서, 우리를 구한다는 수퍼맨을 제끼고 진정한 영웅(?... ! )으로 등극하며 하나의 신화를 만들게되는 것이다. 시타인과 같은 사랑을 하고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사랑이라는 감정은 형이상학적인 감정이다. 언어로도 표현할수없는 이것을...우리는 ....."하고있다"고 생각한다. 시타인의 사랑법은, 몹시 순결하고 아무런 계산이 없다. 이러한 사랑법은 현실속의 우리에겐 결여되어있는 것이고, 따라서 동경의 대상은 되나......우리들의 연예에 적용하여 사용하기엔 너무나 버겁고 ....또한 입을 열어 말하고싶진 않지만......시타인의 사랑법 또한 검증된바 아니다. 단지 그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다" 는 것이고.... 그 길고 긴 목마름끝에 그는 , 사랑 그 이상의것을 얻을수있었다. 그것은 그토록 기다리던 대상인, 니나로부터 온것이 아니고 오히려, 시타인이 제삼자로 제껴두었던 '인생'이 그의 몫으로 남겨놓은 선물이었던 것이다. 그와 니나의 가슴에 남은 것은.... 종국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답답하게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사랑이라는 틀을 넘어서는 존재의 '교통'이다. 니나는 좌절을 모르는 여자이고, 시타인박사는 니나로인해 (사랑이주는 달콤한) 좌절을 하는 인물. 두인물은 ...각각 깊은 고통의 심연에 있지만..... 그들에겐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것을 헤쳐나갈 각자의 방식이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마침내 각각,자신의 방법대로 존재의 의미를 완성시킨다. 이 두인물앞에..."그래서... 둘이 끝에 어떻게 됐어? ..." 라는 결과적 질문은 무의미하다 . 저런 결과론적 질문은 어린이동화에 적합할 질문이다. 마찬가지로...사랑에 있어 "완성"과 "결과"에만 의미를 두는것 또한 몹시 유아스러운 발상이다. 만일 당신이 사랑이란것을 하고싶다면.....스스로를 위해 자신에게 진실하고 , 상대를위해 파트너에게 '인간에대한 예의' 를 지켜주시길 바래본다. 상대는 당신에게 사랑받아야할 '대상'이 아니라, 피와 인격이있는 '존재'인것이다. 현대의 우리들에게 이러한류의 작은 룰이 지켜진다면, 결과에 상관없이사랑에 관해 ,(상대로부터가아니라) "인생'으로부터 작은 상을 받게될수 있지않을까싶다. 루이제린저는 후에 이 "생의 한가운데"의 속편쯤 되는 글을써, 니나를 다시 등장시킴으로.."생" 을 넘어서 "신앙"의 존재론에 다가가고자한다. |
| 다들 인생책 물어보면 딱 한 권만 뽑는 거 못하잖아요. 물론 나는 뽑을 수 있음. 이사벨 아옌데의 영혼의 집. 올타임 베스트임. 어나더 레벨인 영혼의 집을 제외하면 줄줄 나오는 인생책 리스트에 생의 한가운데가 있다. 민음사 판 삶의 한가운데로 읽었고. 왓챠피디아에서 어떤 분이 이건 꼭 전혜린 버전으로 읽어야 한대서 생의 한가운데도 샀다. 여기저기 선물도 많이 한 책. |
| 중고등학생시절에는 이해가지 않았던 니나의 판단에 대해 독자로서 삶의 경험이 풍부해져서인지 모르겠으나 그때와는 다르게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지는건 사실이다 용기있는 멋진 삶이라기보단 숙명이랄까 아무튼 그렇게 생겨먹은대로 선택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인 것같고 이에 거스르는 것이 자유롭지 못한 삶이라는 의미로 본다면 니나는 진정한 자유인이어야 할텐데 막상 그렇지도 않아보여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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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제목에 끌렸어요. <자기 앞의 생>이 괜스레 떠오르는 제목이었습니다. 전반적으로 사랑이라는 것에 대한 자매의 다른 관점을 보는 듯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사랑을 소재로 한 책을 좋아하진 않아 조금 지루하긴 했지만,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어 진중하게 읽고자 노력했습니다. 자매를 비롯하여 나오는 인물들의 성격이 작품에 잘 녹아든 것 같습니다. 다만 오탈자가 많아 읽는 데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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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한가운데 / 루이제 린저 * 전혜린 역
생의 한가운데, 많은 책이 있지만 나의 픽은 전혜린의 번역본이다. 전혜린이 좋아했던 루이제 린저의 글, 생의 한가운데이니... 나의 픽은 늘 전헤린의 글이다. 주인공 니나와 그녀의 언니 사이의 오랜 기간을 건너 뛴 만남과 대화로 이루어진 책이다.
인생을 살면서 부딪히는 사랑, 좌절 그리고 인생에 대한 집념이 보인다. 그러니 이렇게 시대를 초월해서 여전히 읽히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그 누구도 아닌, 전혜린의 글로 읽는 생의 한가운데는 처음 읽었던 중학생 때 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나에게는 참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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