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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권위에 기대지 않고, 인용 없이 쓰인 시(들)
"(과거의) 권위에 기대지 않고, 인용 없이 쓰인 시(들)" 내용보기
요정은 필요없음   3인용소파: 행복은 미덕을 엉기게 해야 생기던데, 게다가 나를 다루는 건 쉬워. 벤자민옆에서건조대: 이제는 통합적 사고를 해야 해. 햇빛 아래 서 있자. 그럼 보송보송해져. - Jia     무려 300쪽에 육박하는 두꺼운 시집을 읽으면서 내내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혔다. 왜 시인은 시 쓰기에 SF라는 형식을 가져왔을까? 이지아 시인은 희곡으로 문단에 데뷔
"(과거의) 권위에 기대지 않고, 인용 없이 쓰인 시(들)" 내용보기

요정은 필요없음

 

3인용소파: 행복은 미덕을 엉기게 해야 생기던데,

게다가 나를 다루는 건 쉬워.

벤자민옆에서건조대: 이제는 통합적 사고를 해야 해.

햇빛 아래 서 있자. 그럼 보송보송해져.

- Jia

 

 

무려 300쪽에 육박하는 두꺼운 시집을 읽으면서 내내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혔다.

왜 시인은 시 쓰기에 SF라는 형식을 가져왔을까?

이지아 시인은 희곡으로 문단에 데뷔했는데, 그래서인지 시 전반에 걸쳐 극시적인 요소들이 많다. 그런데 그런 특성과 아울러 두드러지는 것이 바로 SF라는 형식을 차용한 점이다. 'SF'가 '사이언스 픽션(Science Fiction)'의 약자라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SF는 과학소설, 즉 소설 장르의 하위 범주로 인식되는 게  보편적인 통념이다. 물론 여기서 파생된 SF영화도 있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지아의 시들은 시 쓰기에 SF를 가져왔다. 왜일까?

흔히 SF는 우리가 몸담고 있는 현실 세계를 이해하고 성찰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그런 측면에서 이지아의 시들을 이해할 수도 있겠다.

혹은 SF는 판타지와 구분없이 혼용되어 사용하기도 한다. 그런 차원에서도 이지아의 시들을 이해할 수 있겠다.

그러나 내가 가장 주목한 것은, 장르로서의 SF는 기타 여느 문학에  비해 덜 권위적이라는 점이다. 평론가들이 (철학)이론가나 그들의 이론에 기대지 않고서는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지 못하듯, 어떤 문학들은 기존의 권위에 기대어서만 존재 가능하다(혹은 그런 것처럼 보인다).

 

어슐러 K. 르 귄이 쓴 글 등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물론 그 세계에서도 권위적인 남성 작가나 비평가들이 여성 작가들을 무시하고 인정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은 꾸준히 있지만, 여타 문학계에 비해 SF가 여성 작가들에 대한 진입 장벽이 낮고, 많은 여성 작가들이 활발히 활동하는 이유 역시 기존 문단에 비해 덜 권위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지아는 기실 뽀송하고 발랄한 방법으로 모든 권위의 무게와 그 짓누름에서 스스로 벗어난다. 권위 따위에 의지하지 않고도 본인과 본인의 문학이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 기존의 언어에 기대지 않고 본인이 새롭게 찾아낸 언어로 이야기를 '창조한'다. 

그것은 우리의 통념상 '시'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자신의 언어를 획득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 차용한 것이 SF라고 한다면, 이것은 고도로 전략적인 방식이라 할 수 있을텐데, 나는 시인의 이러한 영리함이 아주 맘에 들었다. 자고로 이것이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방법이기도 하다.

 

재밌게도 이 시집은 '사랑하는 두 딸에게'라는 헌사로 시작하는데, 이 또한 매우 의미심장하다. 스스로의 목소리를 가질 수 없었던 여성(들)이 본인(들)의 목소리와 언어를 가지려고 시도하는 다양한 노력의 일환으로 이 시집을 이해한다면, 자매들간의 연대만큼 중요한 것은 어머니에게서 딸에게로 이어지는 내력(來歷)이기도 할테니 말이다. 새롭게 쓰여지는 창세기처럼, 이 이야기는 어머니에게서 딸에게로, 여성들의 계보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 가능성을 모색하고 탐색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시집이 이룬 성취는 충분하다.

  

YES마니아 : 로얄 c*****g 2023.07.0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