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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그 내용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지만, 이번 기회에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완역판을 비로소 꼼꼼하게 읽을 수 있었다. 대체적인 줄거리로 알고 있을 때와 작품을 직접 읽는 것의 차이점을 분명하게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죽을 날을 얼마 남기지 않은 늙은 돼지인 소령(메이저)의 열정적인 연설에 의해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는 깨우침을 얻고, 그가 만들어 부른 <영국의 동물들>은 소령이 죽은 후에도 동물농장을 지배하는 하나의 이념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마침내 인간을 쫓아내고 동물들에 의해서 농장이 장악되고, '동물주의'에 입각한 삶을 추구하면서 중세적 의미가 반영된 '장원농장(메너농장)'이 드디어 '동물농장'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된다.
이제 농장은 인간의 착취가 없는 `모든 동물이 평등한 이상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목적으로 새롭게 조직되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다른 동물들보다 지능이 높은 돼지들이 농장의 변화를 앞장서서 이끌어가고, 돼지들 중에 우두머리라 할 수 있는 명민한 스노볼과 무능한 나폴레옹의 의견 차이로 인한 갈등이 전개되기 시작된다. 진정한 농장의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스노볼이 또 다른 돼지 나폴레옹에 의해 쫓겨나면서, 동물농장은 서서히 나폴레옹의 독재적인 체제로 바뀌게 된다. 이후 나폴레옹을 추종하는 스퀼러의 선동과 맹목적인 구호를 내뱉는 양들의 여론 조작으로 인해, 독재로 변해가는 현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동물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부분적으로 이에 맞서기 위한 동물들의 움직임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끝내 나폴레옹에 반대하는 움직임은 그가 기르는 사나운 개들의 위협에 묵과되는 경우가 다반사였던 것이다. 끝내 돼지들이 다른 동물보다 높은 지위를 차지하여 지도자로 행세하고, 돼지의 지도자인 나폴레옹은 스노볼을 내쫓은 후에 동물들은 과거 인간이 경영하던 때보다 더 혹독한 여건에 놓이게 된다. 결국 ‘동물농장’은 돼지들에 의해 독재 사회로 전락하게 되었으며, 지도자로 군림한 돼지들은 인간들의 악습을 되풀이하고 동물들을 이전보다 더 심하게 착취하는 현실이 그려진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인근 농장의 주인들인 인간들과 파티를 하면서, '동물농장'의 명칭을 다시 '장원농장'으로 바꾼다는 나폴레옹의 선언은 주인이 인간에서 돼지로 변했을 뿐, 여전히 나머지 동물들은 가혹한 노동에 시달릴 것이라는 미래상을 예견하게 한다.
이 소설은 대체로 정치권력을 부패하게 하는 근본적 위험과 모순에 대한 빼어난 우화로써, 조지 오웰의 기념비적 풍자 소설로 평가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동물농장에서 축출된 스노볼은 혁명 이후 권력투쟁에서 패배해 소련에서 쫓겨난 트로츠키에 비유되며, 나폴레옹은 가혹한 독재자로 변신하는 스탈린을 연상시키고 있다. 아울러 이들에게 혁명의 이론을 제공하고 이내 죽음을 맞는 늙은 돼지인 소령은 사회주의 이념을 주창한 마르크스로 비유될 수가 있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성공한 혁명이 권력을 앞에 두고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 어떻게 변질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일단 권력을 얻은 지도자들이 어떻게 대중들을 현혹시키면서 자신들의 논리를 펼쳐나가는지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미 현실 사회주의가 몰락한 지금의 시점에서, 독자들은 이 작품을 읽으면서 어느 시대이든지 입바른 소리를 앞세운 정치권력은 언제나 쉽게 자신들만의 권력을 독점하기 위한 ‘독재’에 빠질 수도 있음을 경고하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줄거리로만 이해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작품의 의미와 형성화의 면모가 잘 드러나고 있다고 여겨진다. 이 책의 진가는 후반부에 수록된 ‘역자노트’의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 번역본의 문제점들을 지적하면서, 번역자가 왜 직역이라는 방식을 택했는가를 역설하는 내용은 독자들로 하여금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역자는 기존 번역서에서 21개의 오역 사례를 제시하고, 그것이 작품 독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서 ‘번역, 1%의 진실과 99%의 오해’라는 제목의 글에서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고전을 읽으면서 번역자의 의역으로 인해서 그 뜻이 잘못 전달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느끼기에, 저자의 이러한 문제 제기는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후반부에 ‘나는 왜 쓰는가’라는 조지 오웰의 글을 아울러 수록하면서, 이것을 기반으로 <동물농장>과 <1984>에 대한 번역자의 해설을 덧붙이고 있다. ‘조지 오웰의 연보’까지 수록되어 있어, <동물농장>이라는 작품과 작가인 조지 오웰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 있는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 하겠다.(차니)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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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껏 적어도 다섯번은 읽은 듯 하다. 나에게 이런 책이 딱 세 권있는데, 어린왕자와 노인과 바다 그리고 동물농장 바로 이 책이다. 물론 읽은 그 시기에 따라 느낀점은 달랐을 것이지만, 읽고 나서 남는 여운과 감동은 여전하다. 동물농장은 아마도 학창시절 필독서여서 억지로 읽었던 기억이 있지만, 역시나 그 인상은 강렬했다. 읽고 나서 많은 여운이 남아 꿈도 꾸었던 기억이 있다. 언제나 이 책을 읽고 느끼는 점은 그저 복서는 행복했을까? 그렇게 계산없이 맡은 바 충실하면 나중에 복을 받아야 하는데 그의 결과는 실로 충격이었다. 과연 그런 존재가 이 사회에 있기에 독재자가 존재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럼 복서는 바보고 멍청이고 한심한 존재인가? 복서로 인한 나의 선과 악, 맡은 바 일에 대한 책임과 충실에 대해 혼란이 오기도 했다. 이로 인해 마음이 답답하다. 이 책으로 인해 처음으로 독서클럽에 가입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싶다는 생각까지도 했었다. 물론 그렇게 하진 않았지만 말이다. 그만큼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했다는 거다.
새움출판사의 이정서 번역의 동물 농장은 다른 동물 농장책과는 다르게 번역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나는 번역의 차이까지는 잘 모르겠다. 이 책의 반은 "동물 농장"이고 나머지 반이 아래와 같은 차이점과 다른 책들의 오역을 꼬집어 내는 부분을 책 뒷편에 마련했는가하면 조지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 역시 부록처럼 뒷부분에 있다. 원서를 볼 실력이 되지 않는 나에게는 "장원 농장"이나 "매너 농장"의 차이점을 모르겠고, 이 책의 시작을 이끌어 준 늙은 돼지 "메이저 영감"을 "소령"이라 해야 하는 이유도 모르고 이제껏 읽어 왔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다시 읽어도 농장 이름이나 늙은 돼지의 호칭, troublesome 이 골칫거리가 맞는 건지 말썽꾸러기가 맞는 건지 등은 나에게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그저 아 ~~~ 이 책은 정말 대단하다 라는 느낌을 다시한번 받았다. 집에 있는 다른 출판사 다른 번역가의 동물농장과 나에게는 그다지 큰 다른점 없이 읽혔고, 역시나 읽고 나서 마음이 먹먹하고 풀리지 않는 숙제가 남아 있는 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원작의 구두점 하나까지 살리고자 노력한 저자의 노고에는 한없는 존경을 표하는 바이다. 어쩌면 이렇게 하나하나 설명해주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갔을 21가지의 다른 해석(오역은 아닌 것 같다.) 을 읽는 재미도 있었다. 이렇게 자부심을 가지고 본인의 번역에 자신감을 드러낸 이정서 번역가님의 다른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YES24 리뷰어 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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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의 책들을 계속해서 만나고 있다. 길지 않은 소설이다.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소설이지만 상당히 큰 파장을 일으키는 소설임에는 분명하다. 읽다 보면 『1984』 작품을 연상시키는 장면들이 등장하면서 섬뜩함을 다시금 떠올려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작품은 매끄럽고 몰입도가 매우 높았던 소설이다. 양장본이라 소장 가치도 높은 책이다. 책의 상당한 분량이 <역자 노트>를 차지하고 있다.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 글도 만나볼 수 있다. 조지 오웰의 작품인 『동물농장』과 『1984』 작품을 함께 떠올려볼 수 있는 사유의 시간으로 초대되는 책이기도 하다.
결코 불평하지 않고, 비판하지 않으면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문제 삼지 않던 145쪽
이 소설의 시작부터가 강열했다. 몇 번을 멈추면서 작품이 흘러갈 방향이 어디를 향하게 될지, 어떠한 과정을 거치게 될지, 어떠한 결말로 작품이 마무리가 될지 많은 생각들을 하면서 읽었던 작품이다. 생명의 본질과 삶의 본질을 직시해보게 한다. 누구나 존중받고 평등한 대우를 받고 사랑받는 삶을 떠올려보게 한다. 긴 세월의 삶 속에서 스스로 깨친 것들을 연설하는 자가 있다. 비참하고 고된 노동을 강요당하는 삶을 노예 생활이라고 행복과 여가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노예 생활을 제대로 보게 해주는 순간이기도 하다. 명료한 진실들이 소설의 첫 부분에서 흐른다. 이 연설을 듣는 자들에게는 어떠한 변화가 생길까?
우둔한 짐승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깨닫기에 너무 무지했고. 135
급변하는 시대를 살았던 조지 오웰의 시선에 어떠한 것들이 보였을지 짐작해보면서 읽게 된다. 반란, 전쟁, 희생, 사상자들, 부상자들을 목격하면서 누명을 씌우고 사형당하는 장면들이 이 소설에서도 만나게 된다. 1984 작품에서와 다르지 않는 장면이기도 하다. 끊임없이 정적을 상대로 비방하고 유포하면서 대중의 사고를 두려움과 공포로 이용하는 지략들을 이 작품에서도 만나게 된다. 다양한 군중들이 있기에 우둔한 무리들을 이용해서 권력을 유지하는데 이용하는 모습들이 다수 등장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현대사회 속에서도 심심찮게 목도하는 광경이기도 하다.
정치적으로 영국에서 출간이 거부당한 이유를 책은 언급해 준다. 더욱 또렷하게 그려지는 작품이 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된다. 7계명을 읽지도 못하는 무리가 있다. 읽지만 우둔한 무리도 있다. 노동을 하지 않는 무리도 있다. 일하지 않지만 배급이 지급되는 무리도 등장한다. 불평을 드러내는 무리는 죄를 고백하며 사형을 당한다. 공포와 두려움이 엄습하기 시작하면서 질서와 규율이 엄격하게 수정되고 권력을 가진 계급들이 유리한 방향으로 계속 수정된다. 하지만 우둔한 노예 무리들은 그저 일만 할 뿐이다. 더 많은 노동 시간과 배고픔 속에서 말이다.
굵주림,고난, 그리고 실망... 삶의 변함없는 법칙이다. 142쪽 하층 동물들은 더 많이 일하면서 먹을 것은 더 적게 받고 149쪽 낮은 배급. 긴 노동 150쪽
상황을 직시하면서도 비판이 없고 묵묵히 일만 더 하는 자도 등장한다. 그의 노고는 공평했을까? 두 다리로 걷고 술을 마시면서 농가에서 생활하는 돼지 무리들과 개들은 많은 상징적인 의미가 된다. 노예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무리들이 무엇을 놓치고 무엇에 눈을 감고 있었는지 되묻게 하는 소설이다. 동물들 자체는 전혀 부유해지지 않았음에도 농장은 마치 부자가 된 것처럼 여겨졌다. 140쪽 사람과 동물들은 공동의 이익을 가지고 있고, 한쪽의 번성이 다른 쪽의 번성이라는 말을. 그것은 전부 거짓말입니다. 인간은 자신들 말고는 어떤 피조물의 이익에도 기여하지 않습니다.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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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거리 줄거리는 간단하다. 존스의 농장에 있던 동물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동물들 중 가장 똑똑한 돼지가 우두머리가 되었다. 초기에 돼지 스노볼과 나폴레옹 사이에 의견이 분분했고, 나폴레옹에 의해 스노볼은 축출당한다. 그리고 나폴레옹은 프로파간다의 역할을 하는 돼지와, 군대의 역할을 하는 개들을 데리고 독재를 시작한다. 나폴레옹은 무슨 일만 있으면 축출당한 '스노볼'의 탓이다. 존스가 돌아온다. 이런 이야기로 동물들을 끌어들였다. 그동안 많은 동물들이 죽임을 당했다. 하지만 농장의 동물들 중 그에게 반항할 수 있는 이는 없었다. 반항은 커녕, 너무 우매해서 그냥 돼지들이 그렇다고 하면 다 믿었다. 소설은 그 나폴레옹과 측근들이 인간과 함께 도박하고 파티하고 건배를 하는 모습이 등장하면서 끝난다. 책 뒤의 나머지 부분은 역자가 지금껏 한국어로 번역된 동물농장의 책들에서 오역을 지적한 페이지 반과 조지 오웰이 '나는 왜 글을 쓰는가'를 주제로 쓴 에세이같은 글이 반이다. 단편치고는 길지만 장편 치고는 짧은 이야기이다. 근데 책이 252페이지라, 처음에는 그냥 읽었다. 읽다가 딱, 마지막 장면에서 잠시 독서를 멈추고 수업을 듣고 왔는데 다시 읽으려고 봤더니 다음 장이 마지막이었다. 그냥 그렇게 끝났다. 뭔가 허무했다. 모든 일을 꿰뚫고 있는 당나귀를 중심으로 나폴레옹에 대한 반란이 또 일어나고 또 똑같은 일이 반복되고 그러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냥 정말 그렇게 열린결말처럼 끝났다. 동물농장을 왜 이제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출판사에서 책을 받아서 이번에 읽게 되었다. 나폴레옹과 돼지, 개들이 하는 짓들이나, 다른 동물들이 행동하고 대화하는 내용들을 읽으면서 정말 참 잘 쓴 글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이렇게나 사회풍자적인 책이라니. 어느 시기를 비판하고자 하는건지는 알겠는데 1차세계대전 전후부터 지금까지의 현대사에 대해서는 대륙을 막론하고 아는게 거의 없는 터라 생각의 고리가 연결되지는 않았다. 아는게 있으면 이 짧은 이야기에서 더 많은 생각들을 이끌어낼 수 있을텐데. 자료를 찾아보니 스탈린주의를 비판한 책이라고 한다. 조만간 더 공부해봐야겠다. 조지오웰의 또 다른 작품인 1984도 사실 영어 원서로 읽어보려다가 고1 3월에 그만뒀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이런저런 수업시간에 하도 많이 들어서 Big brother라던가, 1984가 사회비판적 소설이라는건 알고 있다. 동물농장을 읽어보니 1984역시 굉장한 책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도 다시 읽어봐야겠다. 조지오웰은 이 책 뒷쪽에 실린 글에서도 자신이 글을 쓰는 이유를 4가지정도 제시한다. 그 중에서 예술적인 이유와 정치적인 이유가 기억난다. 조지오웰의 책들은 사회에 분노가 담긴 책이라는 느낌이다. 그 분노를 이렇게 하나의 이야기로 표현해내다니, 멋있다. # 번역 출판사는 이 책이 '직역'으로 원서를 살렸다고 홍보했다. 역자도 '직역'에 꽤 큰 프라이드를 가지고 계신 것 같다. 쉼표 (,) 까지 살린 번역이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진짜 그랬다. 그냥 읽으면서 영어문장을 그대로 떠올릴 수 있을 정도였다. 다만, 한국어에는 쉼표를 사용한 동격의 용법이 없지 않나?싶었다. 예를들어, 영어에서는 "사과, 빨간." 이런식으로 쉼표를 사용해서 뒤에 설명을 덧붙이는 문장구조가 흔하다면 한국어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읽다가 좀 어색한 부분이 있기도 했다. 그래도 읽다보면 적응된다. 이야기 자체가 워낙 강렬해서 그런걸 신경쓸 겨를이 없는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역자가 앞에 서문에서도 이야기하고 뒤에서 따로 오역들을 모아놓은 챕터에서도 이야기하듯 단어의 뉘앙스나, 인물들의 어투는 참 잘 살리신것 같다. 영어는 프랑스어나 독일어처럼 존칭이 없으니까, 그 미묘한 차이를 번역할때 신경써야 하는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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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미래사회를 그린 디스토피아 소설중 하나인 조지오웰의 <1984>를 도전했지만 중도 포기 중이다. 올해 꼭 읽고 싶은 책이라 몇번을 시도했지만 쉽지 않아 조지오웰의 다른 책 <동물농장>을 먼저 도전했다. 읽는 내내 버릴 문장 하나 없이 한글자 한글자에 빠져들었다. 그렇다고 어렵거나 심오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가볍고 날지도 않았다. 어찌 그시대에 이런 사회상을 그려냈는지 감탄에 감탄을 하면서 읽어내려갔다. 스탈린의 공산국가를 그린듯하지만 제국주의와 독재사회를 어찌 이리 잘 표현했는가 싶었다. 돼지 나폴레옹의 모습에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떠올랐다. 히틀러부터 우리나라 몇몇 지도자, 그리고 북한, 중국의 지도자 등등 자신의 우월감을 과장해서 앞세워 사람들의 눈과 귀를 막고 독재를 한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특히 나팔수역할을 하는 스퀄러의 모습을 보면서 지금 정부의 나팔수 노릇을 하는 언론이 얼마나 문제가 되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나머지 동물들은 그런 뉴스에 속아 사리판단력이 떨어지고 그 시대가 분명 옳은 시대라고 생각하는 모습이 안타깝기 그지 없었다. 우린 분명 그런 시대를 살아내었고, 순응하고 살아왔다. 하지만 독재에 앞서서 민주주의를 쟁취했고, 앞으로도 그럴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귀막고 눈막고 판단력을 막는다 해도 우리는 귀를 활짝 열고, 눈을 크게 뜨고, 제대로된 판단을 통해 비판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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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다시 동물농장을 읽었다. 학생 때 이후 정말 오랜만이다. 그래서 그런지 작품의 의미도 더 새롭고 깊게 다가왔다. 잘 읽혀서 하룻밤만에 훌쩍 읽었는데, 생각을 정리하느라 서평이 조금 늦어졌다. 특히 이 책이 참 좋았던 것은, 원전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번역, 각주와 더불어 책 말미에 있는 조지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라는 글이었다. 함께 읽으니 엮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동물로 표현한 현대 사회, 알레고리 아직도 이 소설이 의미를 가진다는 데에서 여러 감정과 생각이 피어올랐다. 세계의 무너짐(장원농장)을 떠올리고, 상상하게 된다. 그러니까 이런 것. 내가 믿는 것 내가 믿는 세계, 더불어 사는 나라와 삶들이 비록 조지오웰이 나타낸 동물농장과 꼭 그대로가 아니라 하더라도 - 이 세계가 그렇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말하고, 따르고, 믿고, 나아가는 일련의 것들이 과연 진짜인가, 바라보고 노력하는 이 삶 속에서 그것들을 취하는 존재는 누구인가? 당대 시대를 비판하고 사유하며 거울보듯 보여주는 이 동물농장이라는 작품에서 다시금 알 수 있는 건 아직도 우리가 동물농장을 읽는 까닭은 우리가 이 농장을, 세계를 다시 보아야 한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조지오웰이 좋은 작품은 창유리와 같다고 말한 것 처럼. 그리고 짧게 덧붙이자면, 원전으로 읽는 움라우트 시리즈는 이 동물농장이 처음이었는데 주석도 그렇고, 번역가의 원전에 대한 마음이 그대로 느껴져 다른 작품들도 기대가 되는 시리즈였다. 감사하게도 새움출판사에서 위대한 개츠비도 같이 보내주셔서 조만간에 읽어보고 또 새로운 생각들을 하게 될 듯 하다. #도서협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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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농장의 수퇘지 소령 영감이 전날 밤 이상한 꿈을 꾼 후 다른 동물들에게 동물들의 삶의 본질에 대해 연설을 한 후 동물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그 반란은 예상보다 일찍 쉽게 일어났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깨닫기도 전에 성공을 거뒀다. 농장주 존스 씨는 축출되었고, 장원농장은 동물들 소유가 되었다. 그들은 장원농장이라는 이름을 '동물농장'으로 바꾸었다. 동물들 중 가장 영리한 존재인 돼지들, 그중에서도 나폴레옹과 스노볼, 스퀼러의 연구와 지도하에 동물들은 하나로 뭉쳤고, 돼지들은 소령 영감의 가르침을 체계화한 '동물주의'의 원리를 정리한 7계명의 원칙을 동물들에게 반포했다.
모든 동물들 스스로가 농장의 주인이라는 생각으로 자신의 능력에 따라 일했다. 어느 누구도 훔치지 않았고, 어느 누구도 자신의 배급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으며, 거의 모두가 태만하지 않았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공평할 것만 같았던 농장의 일에 불평등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그것의 발단은 암소가 짜낸 우유와 바람에 떨어진 사과들을 처리하는 문제였다. 스노볼과 나폴레옹, 스퀼러는 돼지들이 우유와 사과를 좋아하진 않지만 두뇌 노동자인 자신들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독점하여 먹는 것이라며, 자신들의 의무가 실패하면 농장주 존스가 돌아올 것이라며 위협했다. 이에 존스가 돌아오는 것을 원치 않던 동물들은 돼지들이 우유와 사과를 독점해야 된다는 말에 동의한다.
이렇게 돼지들은 합심하여 자신들의 의도대로 동물농장을 운영해 나갔는데, 풍차 건설을 계기로 돼지들 간의 권력 투쟁이 수면 위에 떠오르게 된다. 스노볼의 풍차 건설 계획이 완성된 날 풍차 건설에 대한 찬반 투표를 실시할 예정이었으나, 스노볼의 연설이 끝났을 때 나폴레옹의 신호에 맞춰 아홉 마리의 개가 헛간으로 뛰어 들어와 스노볼을 공격했고, 그렇게 스노볼은 나폴레옹에 의해 축출된다. 스노볼을 축출한 나폴레옹은 이제부터 일요일 아침 회의는 없앨 것이라고 공표하며, 앞으로 모든 농장 문제는 자신이 위원장으로 있는 돼지들의 특별위원회에서 해결할 것이라고 했다. 위협적인 아홉 마리 개들 때문에 다른 동물들은 불만을 드러낼 수 없었다.
나폴레옹은 간교한 스퀼러를 대변자로 내세워 동물들을 선동하고 세뇌시켰고, 불평하거나 불만을 드러내는 동물들은 공개 처형하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며 독재 체제를 구축하였다. 동물농장의 동물들은 존스가 운영할 때와 같은 상황, 어찌 보면 더 힘든 상황에 처해지지만, 나폴레옹을 비롯한 지배 계급인 돼지들은 존스보다 더 호의호식하는 사치를 누리는데….
1945년 발간된 『동물농장』은 권력과 스탈린 주의에 대한 비판적 풍자소설이다. 이 소설에서 조지 오웰은 동물들의 의인화를 통해 독재 체제를 풍자하였는데, 어찌 보면 <이솝우화>나 <라퐁텐 우화>처럼 아이들을 위한 동화 같아서 재미있게 읽히면서 이해하기가 더 쉬운 것 같다. 하지만 동물들을 통한 재미있는 이야기 전개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당시 스탈린 주의에 대한 공격과 비판이라는 정치적 의도가 담긴 것은 명백한 사실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동물농장』에서 동물들은 농장주 존스 씨를 몰아내고 동물 공화국을 세우지만, 이후 지배층인 나폴레옹과 스노볼의 권력 다툼이 일어나고, 이 과정에서 '스탈린'을 암시하는 '나폴레옹'이 '트로츠키'를 암시하는 '스노볼'을 축출하고 모든 권력을 독점하며 진정한 독재자로 거듭나게 된다. 반면 스탈린 체제 하의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나타내는 동물들 중, '복서'는 우직하고 열성적이지만 우매하여 나폴레옹의 정권 아래서 죽을 때까지 착취당하며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지만 결국 쓰임이 다하자 제거 당하고 만다. 이 밖에도 나폴레옹이 권력을 얻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개와 양의 역할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새움>에서 출판된 '원전으로 읽는 움라우트 세계문학'의 『동물농장』은 작가가 쓴 문장 구조와 원문의 묘미를 살려 최대한 자연스럽게 직역에 가까운 번역을 하여 독자들이 진정한 고전의 묘미를 느낄 수 있게 하고 있다. 물론 영어와 한국어라는 언어에서 오는 근본적 차이점에서 발생하는 어쩔 수 없는 의역은 제외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이전에 내가 읽었던 타 출판사의 『동물농장』과는 달리 긴 설명 없이 간략한 문장임에도 막힘없이 부드럽게 잘 읽혔다. 그리고 예전에 읽었던 책에서는 스노볼도 스퀼러같은 선동가로 보였는데, 이 책은 원문의 섬세한 뉘앙스를 그대로 잘 전달하다 보니 예전 책에서 그렇게 보였던 것이 지나친 의역으로 인한 오역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원문을 읽지 않더라도 원문을 읽는 것처럼 원문의 감동과 재미를 그대로 전달해 주며 고전의 가치를 느끼게 해주는 <새움>의 『동물농장』을 강력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지원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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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의 저자 조지 오웰은 1903년 인도 벵골의 모티하리에서 에릭 아서 블레어라는 이름으로 영국 아편국 직원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그는 조지 오웰이라는 필명으로 파리와 런던의 노숙자 신세를 출간한 후, 버마 시절,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카탈로니아 찬가, 동물 농장, 1984를 출간하였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인 이 책 동물농장은 우화의 외피를 두른 정치적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문학작품으로서의 위트와 품격을 잃지 않은 뛰어난 작품이라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고 한다. 이 책은 동물농장 일러두기, 동물농장, 역자노트 번역, 1%의 진실과 99%의 오해: 21가지 오역 사례, 나는 왜 쓰는가: 조지 오웰, 역자 해설: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를 통해 본 동물농장과 1984, 조지 오웰 연보로 이루어져 있다. 동물농장은 장원 농장의 동물들이 늙은 수퇘지인 소령의 부추김에 농장주인 존스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킨다. 동물들은 인간의 착취가 없는?모든 동물이 평등한 이상사회를 건설한다.?그러나 돼지들이 지도자가 되고,?돼지의 지도자 나폴레옹이 스노볼을 내쫓은 뒤로부터 동물들은 옛날보다 더 혹독한 여건에서 혹사당하기 시작한다. 이 책 동물농장은 역사적 정치 풍자라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1917년 볼셰비키 혁명 이후 스탈린 시대에 이르기까지 소련에서의 정치 상황을 재현하고 혁명을 호소하는 늙은 돼지 소령은 마르크스를,?독재자 나폴레옹은 스탈린을,?나폴레옹에게 내쫓기는 스노볼은 트로츠키를 상징한다고 한다.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을 풍자한 우화소설 동물농장은 영국에서 정치적으로 출판 거부를 당하다 1945년에 출간되어 처음으로 조지 오웰에게 나름의 경제적 안정을 가져다 주었다고 한다. 1949년 요양원과 병원 생활 중 1984년이 출간되었고 그리고 1950년 조지 오웰은 폐결핵으로 사망하였다. 나이와 세대를 불문하고 반드시 읽어야 할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자 영원한 스테디셀러로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우리 곁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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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동물농장 작가: 조지 오웰 / 이정서 옮김 출판: 새움 나이와 세대를 불문하고 반드시 읽어야 할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이자 영원한 스테디셀러 조지오웰의 동물농장, 고전중에 고전으로 어린날의 필독서였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용은 깊이 있게 생각이 안났던 아이러니함이 있었지요. 작년 티비프로그램 요즘 책방, 책을 읽어드립니다를 통해서 설민석선생님의 강의를 통해 만나보고 나서 이 도서가 만이 궁금했었는데요, 이번 컬처블룸 리뷰단을 통해서 만나 볼 수 있었답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울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출처 입력 인간에 맞선 동물들의 반란. 하지만 혁명의 기쁨은 짧고.., 다시 동물들을 억압하는 독재와 무자비함!!!! 시대적인 배경을 담아내고 있는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을 다시 읽어보니 역시 고전 중에 고전이라는 말을 다시 한번 더 실감하며 읽게 되었습니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다시 읽으면서 미처 생각하지 못 역사적 배경과 정치, 사회적 문제에 무관심했던 모습을 발견하고 관심을 갖게된 계기가 된것 같아요. 스포일지는 모르지만 등장하는 복서의 죽음을 보면서 노동의 가치와 그의 삶으로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는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고 기억에 가장 남았던것 같아요! 내용이야 이미 많이들 알고 계셔서 접어두기로하고 이책은 ☆책의 구성 구성중 도특했던 부분이기도 하고, 특색있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역자의 노트였습니다. 알베르트 카뮈의 이방인의 오역을 지적하는 새로운 번역서를 내놓으면서 학계의 충격을 가져왔다는 이정서 작가의 번역으로 직역된 조지오웰의 동물농장. 오역된 부분이 어떤 부분이고 어떤 의미를 주는 문장들인지 다시 한번 자세하게 볼 수 있게되어서 좋았던것 같아요. 처음 읽을때는 큰 의미인가 싶었는데 원문장의 의미와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그리고 차이를 두어 이야기 하려했던 의미를 알 수 있게되어서 좋았던거 같아요. 고전문학을 옮기는 데는 무엇보다 등장인물, 즉 캐릭터에 대한 번역이 중요합니다. 사실 그 인물이 어떤 성격이냐에 따라 작품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문장이 맞는 것 같아도, 사실 뉘앙스가 틀리면 그것은 틀린것 입니다. 동물농장_직역판 175p 이 문장을 보더라도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오역된 부분을 찾아내고 의미를 잘 전달하시려는 의지가 보이죠? 시간이 없어서 급히 읽느라 미처 전에 책과 비교해 보지는 못했는데요, 개인적인 급한 시즌이 끝나면 전에 갖고 있던 도서와 비교해서 읽어도 재미있을것 같아요. 참, 그리고 요즘 책방, 책을 읽어드립니다 안보신분 계시면 보시길 추천을 드려 봅니다. 책을 읽고 싶게 만들기도하고 책을 읽으면서 장면이 그려지는것 같아서 좋더라구요~ 설민석 선생님의 강의를 통해서 꼭 읽고 싶던 책을 다시 깊이 있게 읽어 볼 수 있도록 좋은 책 만나게 해주신 컬처블룸 감사합니다. [해당 서평은 컬처블룸을 통해서 출판사에서 도서 무상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되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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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쁘다. 네 대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쁘다. - '동물농장' 양들의 외침.
2019년 어느 밤 반쯤 깨어 있고 반쯤 잠이 든 상태로 팟캐스트에서 흘러나오는 [동물농장]의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저 귀가 심심해서 틀어 놓은 팟캐스트라 내용은 거의 기억이 나질 않지만 공산당, 소련, 영국 그리고 돼지 책의 내용에 관한 이야기 가 잡담에 섞여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도 난 왜 오래오래 이 책의 제목을 기억하고 있었을까.
잠결에도 '나중에 꼭 읽어봐야지..' 했었다. 1984의 저자 조지 오웰이 쓴 책이라서 그런가. [동물농장]이라는 제목이 흥미롭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 책을 읽고 이렇게나 슬프고 안타깝고.. 절망에 빠지게 될 줄 미리 알았던 걸까.
[동물농장] 말 그대로 동물농장이다. 동물들만이 존재하고 그들에 의해서 운영되는 농장.
줄거리를 적어야 할까 고민이 된다. 책을 읽고 난 후의 나의 감정은 슬픔과 옅은 분노였는데 책의 내용이 일반적인 의미와는 다르게 '생생'했기 때문이었다. 이건 책을 실제로 읽어야만 알 수 있는 느낌이고 미리 내용을 다 알아버리면 재미가 반감될 수도 있기 때문에 등장인물과 그들의 특성 그리고 그들이 했던 모든 일들을 내가 읽은 대로 써버려도 될지 모르겠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이 거의 없을 거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렇지만 조금은 얘기해도 괜찮겠지..?
[동물농장]의 첫 문장에는 "장원 농장" 과 " 존스 씨"가 나온다. 제목이 동물농장인데 장원 농장이라는 단어가 나오니 의외였다. 존스 씨라니..? 동물들은 어디로 갔고...? 게다가 장원 농장이라니 이건 무슨 뜻이지?
책을 펴자마자 읽게 되는 옮긴이의 '일러두기'를 보면 '장원 농장'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별 뜻이 없는 Manor 농장인 줄 알았더니 의외로 중요한 뜻이 담겨 있다.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장원 농장-동물농장'이라고 부르는 이 호칭 안에 담긴 뜻이 결국은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한마디로 표현해 주는 것과도 같다. 존스 씨가 운영했던 'Manor 농장과 동물들이 운영했던 동물 농장' 이 얘기만으로도 알게 되는 사실. 본래 인간에 의해 운영되었던 농장이 인간이 없이 동물로만 운영되게 된 것이다.
그렇다. 존스 씨는 자신의 농장으로부터 쫓겨났다. 그가 관리하던 동물들에 의해서.
반란. 동물들은 존스 씨를 몰아내고 농장을 차지했다. Manor 농장에서 동물농장이 되었다.
드디어 새로운 세상인 자신들의 농장에서 행복하고 편안한 날들을 꿈꾸며 7계명을 적었다. 리뷰의 맨 첫 줄, 양들이 끊임없이 외치던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쁘다" 가 이 7계명으로부터 나왔다.
농장에는 많은 동물들이 있었다. 당나귀, 말, 소, 양, 개, 닭, 오리, 비둘기, 까마귀 등등 각 동물들이 바라는 세상은 조금씩 달랐지만 그들 모두 두 다리로 살아가는 '인간'의 가축으로 혹사당하면서 사는 것을 벗어나고 하는 열망은 같았다. 이제 그들은 자유의 몸이었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농장을 꾸려갈 수 있었다.
동물들 중 가장 똑똑한 돼지들이 머리를 맞댔고 말과 당나귀가 힘이 필요한 궂은일을 했다. 닭, 오리, 암소들에게서 얻은 알과 우유로 돈을 벌었다. 비둘기들이 주변의 농장들과의 연락책이 되었고 개들이 사납게 짖어대며 호위를 맡았다.
각자가 할 일들을 했다. 할 수 있는 것들을 했다. 그러나 존스 씨가 관리하던 농장에서 살던 때보다 나아진 것은 없었다. 변한 것은, 자유를 얻었고 스스로 일했으므로 전보다 상황이 나아졌다고 믿는 마음뿐이었다.
영국의 짐승들이여, 아일랜드의 짐승들이여, 온 나라와 지역의 짐승들이여, 황금빛 미래에 대한 즐거운 소식에 귀 기울여라. 조만간 그날이 오리니, 폭군 인간은 허물어지고, 영국의 비옥한 들판은 짐승들만 홀로 디딜 수 있을 테니. 고리가 우리의 코에서, 마구가 우리의 등에서 사라지고, 재갈과 박차는 영원히 녹슬고 잔인한 채찍은 더 이상 철썩이지 않을 테니. 마음속에 그릴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부가, 밀과 보리, 귀리와 건초, 클로버, 콩과 사탕무들이 그날 우리의 소유가 될 테니. 빛이 영국의 들판에 비추고, 물들은 더 맑고 산들바람은 더 달콤히 불어올 테니, 우리가 자유로워질 그날에. 그날을 위해 우리 모두는 노력해야만 하네, 비록 그것을 이루기 전에 우리가 죽는다 해도, 소와 말, 거위와 칠면조들, 모두가 자유를 위해 힘써 일해야만 하네. 영국의 짐승들이여, 아일랜드의 짐승들이여, 온 나라와 지역의 짐승들이여, 황금빛 미래에 대한 즐거운 소식에 귀 기울여라. >>> page 20-21 <영국의 짐승들>
힘들 때면 <영국의 짐승들> 노래를 몇 번씩이나 부르며 그래도 우리는 자유롭다고, 우리의 힘으로 농장을 일구고 있다고, 좀 더 열심히, 좀 더 수용적으로.
그러나 존스 씨가 떠난 자리에는 돼지들이 앉았다. 시작은 함께였으나 곧 계급이 생겼다. 동물농장이 되었을 때 7계명을 쓰고 혁명의 노래를 부르고 희망찬 미래를 꿈꿨었는데 어느새 조금씩 조금씩 두 다리 인간이 지배하던 시절과 다를 바가 없게 되었다. 인간의 자리는 돼지가 차지했다. <영국의 짐승들>을 부르는 것도 결국 금지되었다.
결말을 말하고 싶다. 동물들의 죽음에 대해 말해주고 싶다. 어느 구절에서 실제 죽음을 목격한 듯 울었던 것을 말해주고 싶다.
나는 책을 읽으며 마치 그 안의 동물들 중 한 마리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말이 되어 돌더리를 날랐다가 닭이 되어 시장에 내다 팔 알을 낳고 있다가 책에 한 줄 자리 차리도 못하고 사라져버린 오리가 된 것 같기도 했다. 나 또한 그곳에서 정직하게 낱알 하나까지 수확해서 창고에 쌓이는 것을 보며 뿌듯해했을 것이다.
어느 세상이든 '돼지'는 존재할 테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반란도 끊임이 없다. 그래서 슬펐다. 태어나면서부터 어느 정도 정해져있는 것 같은 보이지 않는 계급이 항상 존재하고 있고 그것은 세상이 앞뒤로 뒤집어져도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비슷한 모습으로 돌아간다.
말이 돼지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양들이 돼지들을 배신하지 않는 것처럼. 돼지가 될 수 없는 대신 어떻게든지 이해해 보려고 한다. 이 상황을 살아내야 하니까. 굶주리고 피곤해도 그래서 늘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아도 어쩔 수 없다.라고 되뇌며 불행을 이해하려고 애쓴다.
지금의 내가 그렇고 과거의 내가 그랬고 미래의 내가 여전히 그럴 것이다.
돼지와 나는 다르다. 이 다름을 메꿀 방법은 없다. 그러니 돼지들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행복의 세계로 가고 있으니.
이 시대의 국회의원들이, 과거 양반들이, 어느 국가의 어느 왕족들이, 지도자들이 다 그렇다. 그런 게 정말 슬픈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들만을 손가락질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 깨어있어야만 하는데. 그래야만 하는데.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겠지만 그래야 하는데. 양들의 외침처럼 무조건 외칠 수만은 없다.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쁘다. 맞고 틀리다. 네 다리든 두 다리든 언제든지 좋아질 수도 나빠질 수도 있다. 그걸 알아차리려면 깨어 있어야만 한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아마도 [동물농장]의 복서나 양들이나 암탉이나 혹은 개들일 것이다. 깨어있지 않으면 언젠가 7계명이 조용히 교묘하게 바뀌어도 제대로 알아차릴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고는 누군가 이렇게 말하겠지.
"이해할 수가 없어. 이런 일이 우리 농장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는 게 믿지기 않아. 틀림없이 우리가 잘못해서일 거야. 해결책은, 내가 보기엔, 더 열심히 일하는 거야. 이제 앞으로 나는 아침에 한 시간을 꽉 채워 일찍 일어나야겠어." >>> page 97 중에서
이 책은 소련의 사회주의를 비판, 풍자한다고 설명된다. 동물들의 대사, 동물농장에서의 전투들, 농장이 경영되는 방식, 결국은 부패와 공포만이 존재하는 동물농장의 상황 등 모든 것이 당시의 소련의 상황을 비꼬며 저격하고 있다. 하지만 넓게 보면 민주주의, 자본주의, 부족사회라 할지라도. 어디에 적용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책의 내용이 가볍고 대중적이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가 한없이 무겁다.
책의 분량도 생각보다 많지 않다. 분량에 관한 이 책의 특징은, 옮긴이가 '이정서'라는 분이다. 예전에 이 분이 번역한 [이방인]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유명한 고전 중 오역이 된 것이 너무 많다며 이것을 조목조목 짚어주셨는데 [동물농장]도 '일러두기'를 보자마자 '어...? 혹시 그분...?'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1/4에 해당하는 분량이 '역자노트'이다. 앞서 번역되었던 [동물농장]의 오역이 꽤 많은 듯하다.
사실 해외 작품들을 보다 보면 매끄럽지 않은 문장들이 꽤 있긴 하다. 그래서 책을 좋아하는 분들 중에는 좀 더 나은 번역본을 찾아서 출판사별로 책을 찾아보거나 어느 번역이 더 매끄러운지에 대해 비교한 글을 올리기도 한다. 나도 가끔 그런 글들을 찾아본다.
그래서 자칫 지나칠 수도 있는 타 출판사/타 번역가의 오역에 대한 지적이 나로서는 반갑다.
더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음에 틀림이 없으니.
** 장원 : 유럽의 중세기에 귀족이나 사원에 딸린 넓은 토지. 봉건 제도에서의 토지 소유의 한 형태이다.옮긴이의 말처럼 단순히 '매너 농장'이라고 부르기보다는 '정원 농장'으로 부르는 것이 좋은 듯하지만 장원 농장이라는 단어 자체가 좀 생소하니 각주를 달아주면 좋을 듯. 아니면 '매너 농장(장원 농장)'으로 표기하던지. 내가 들었던 팟캐스트에서도 그냥 '매너 농장'이라고 불렀었다.
** 영어 외의 언어로 번역된 최초의 국가는 '남한' 이었다고 당시에는 반공 소설로 읽혔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희한한 데서 1등 하더라..
** 옮긴이 이정서님을 응원한다. 좋은 작품들이 좋은 번역본으로 더더 많이 발간되었으면 좋겠다.
※ 위의 글은 도서리뷰단에 선정되어 해당 출판사가 무상으로 제공한 책을 읽고 쓴 개인적인 소감문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