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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7편을 모은 소설집이다. '나는 한 사람의 이웃으로 이 글을 썼다.' 라는 표지의 글귀처럼 관찰자의 시각으로 우리의 이웃을 표현했다.
간첩으로 누명을 쓴 이웃, 성폭력 가해자를 아들로 둔 이웃, 노숙자 이웃, 고시생 이웃, 군인 이웃 등. 평범하면서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의 사연이 있고 나와는 먼 사람들같으면서도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 같다.
감정이 실리지 않은 서술로 무미건조하게 문장을 종료하지만 그러한 표현들이 나를 그 현실로 들이고 내가 그 이웃들을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매개가 된다.
역시 또 김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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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내 취향이 아니나 문체가 아주 마음에 들어서 읽는 소설집. 이런 내용은 읽는 일 자체가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안 읽고 싶고 모르고 싶고 외면하게 되고. 할 수만 있다면 영영 모르고 살았으면 좋았을 내용들. 그래서 반대로 더더욱 알아야 할 내용들. 알아서, 끝내 알아내어서, 이웃으로 당사자로 부딪히고 깨지면서도 헤쳐나가야 할 고단한 일상의 상황들. 소설이지만 끝내 소설로 남을 수 없는 현실의 아픈 상처들.
작가는 한 사람의 이웃으로 이 글을 썼다는데, 그렇다면 나는 한 사람의 이웃으로 이 글을 읽어야 하는 것인데, 읽는 동안에도 읽고 난 후에도 나는 자신이 없다. 내가 누군가의 이웃이라고 감히 말할 수가 없는 까닭이다. 나는 비겁한 방관자로 살 때가 많고(아니, 대체로 삶이 이러하고) 아주 가끔 흥분하고 분노하지만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미치지도 못한다. 그래서 더 모른 척하고 싶은 것일 테다. 내 무능과 내 무기력이 나를 더욱 주저앉히곤 하니까.
그래도 읽는다. 읽고 아파한다. 아파서, 쓰려서, 미안해서, 부끄러워서, 울지도 못한다. 울 자격도 없지 않나? 편하게 앉아서 글 몇 줄 읽는 주제에 무슨 염치로...... 차갑게 그러면서 간결하게 쓰여 있는 글은 끝도 없이 나를 때린다. 책은, 글의 힘은, 이렇게 줄곧 매맞는 기분으로도 계속 읽고 싶도록 하는 데에 있다. 적어도 느끼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나, 아무 행동으로 나서지는 못하더라도, 이만큼의 사회적 양심이라도 가지라면서.
어쩌면 나처럼 이만치 혼자서 물러 나와 있는 이들에게, 이웃으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말을 전하려고 쓴 책인지도 모르겠다. 나에게는 고마운 각성이다. 작품 속 인물들을, 이와 비슷한 처지의 우리네 이웃들을, 조금이라도 깊이 바라봐 줄 수 있어야 한다. 어쩌자고 모든 배경 묘사는 아름답기만 한 것이었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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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딱히 읽을게 없어서 이 책을 골랐다. 김훈 작가의 책은 '내 젊은 날의 숲'을 너무 좋아했고, '화장'같은 단편들도 좋아하긴 했지만... '남한 산성'처럼 모두가 좋아하는 책들은 살짝 너무 무거운 느낌이 들어 부담이 되었고, 또 작가의 에세이집은 너무 딱딱하거나 꼰대 느낌이들어 별로 공감이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모두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책장에 남아 있는 책은 '내 젊은 날의 숲' 한 권 뿐이다.
그래도, 작가의 칼 같은 글 쓰기의 아우라는 공감하는 터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읽어봤는데, 나름 괜찮았던 것 같다. 그의 에세이보다는 소설이 좋고, 소설 중에서는 살짝 힘을 뺀 글을 좋아하는데...이 소설집이 딱 그랬다.
김훈 작가의 글을 읽다보면, 신기하게도 글이 그림이되고 풍경이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이 하나같이 그랬다. 그래서 괜히 아련해지기도 하고...삶의 여러 모습을 보고 나의 것과 비교를 해보기도 하였고, 또 내가 경험하지 못한(혹은 못할) 일들에 대해서 푹 빠져볼 수 있었다. 하지만, 살짝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48GOP'의 도입 부분은 김훈 소설에서 많이 보여지는, 배경에 대한 묘사라고 해야할지...여하튼, '공무도하'에서도 비슷하게 보여지는 과장된 혹은 억지스러운 거룩함(?) 혹은 장엄함(?)을 이끌어내는 게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소설집의 표제작인 '저만치 혼자서'는 살짝 '이건 뭐지??' 하는 당혹감. 대충은 뭘 말하고자하는지는 알겠는데...살짝 생뚱맞은 이야기의 전개가 내 마음에 와닿지 못한 것 같다.
전반적으로 '김훈 작가니까...'하는 마음에 그의 명성에 걸맞은 글빨이 매혹적이지만... 또 어떻게 보면 '그래도 김훈 작가인데...?'하고 보면, 단편 소설에서 보여지는 갑작스러운 마무리가 살짝 걸리기도 했다. 그래도 요즘 같이 읽을 거리가 없는 때에 단비 같은 작품이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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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렸던 장편도 아니고, 새롭게 발표한 소설도 아니다(전부 다는 아니지만). 이 책, 소설집 '저만치 혼자서'는 2006년 첫 소설집 '강산무진' 이후 16년 만이다. 2013년부터 문학동네 계간지에 발표한 6개의 작품과 1개의 미발표작을 모은 것이라 한다. 좀 아쉬움이 있는 이유다... 그럼에도 손에 넣은 이유다. 고통과 번민, 그리고 인간의 아픔이 여전히 고스란히 물들어 있다. 좀 아리다... 김훈의 인물들은... 주위에 이런 사람도,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라는걸 알고 있으라는 듯하다. 나도 살펴야 하지만 내 주위도 살필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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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이란 무엇일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누구에게나 읽기 쉬워야 한다. 이와 함께 평소 자주 마주쳐서 익숙해버린 풍경과 사물을 다른 관점으로 관찰할 수 있는 사고를 글로 풀어낼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러한 점에서 김훈 작가님은 그동안 읽었던 작품 중에서 가장 으뜸이기에 가장 존경하는 분이다. 2009년 본격적인 독서를 시작하면서 집에 있었던 '자전거 여행', '강산무진'은 완독은 하지 않았지만 아끼는 책이고 이후에 나왔던 작품은 대부분 읽었다.
강산무진 이후 16년 만에 나온 '저만치 혼자서'는 2013년부터 9년이라는 시간 동안 문학동네 계간지에 발표한 6개 작품과 미발표작 1개로 총 7개의 단편소설을 묶었다.
김훈 작가의 첫 번째 단편소설 '명태와 고래'는 어래진에서 어래호 선장으로 일하는 이춘개가 북한 항일포로 잘못 승선했다가 붙잡혀 30년이라는 세월 동안 복역을 한 이후 다시 어래진을 찾은 내용을 담아냈다.
김훈 작가님은 2010년 당시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에서 발간한 '종합보고서'를 읽고 그 야만적인 폭력과 상처를 '명태와 고래'를 통해 풀어낸 것이었다.
1948년생인 작가님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의 시절을 모두 거쳐 현재를 살고 있다. 나 역시 만약 그때 태어나 '명태와 고래'에 나오는 이춘개처럼 자신이 잘못이 아닌데도 30년 동안 복역하고 가족까지 잃는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생각해보니 상상도 하기 싫을 정도다.
두 번째 단편 소설 '손'은 한철호라는 특수강간죄로 경찰에 붙잡힌 남성의 보호자였던 여성의 1인칭 시점으로 풀어냈다. 그녀는 한철호의 친아버지 전아내로 과거에 있었던 이야기가 주로 나온다.
소설 '손'은 김훈 작가님이 오래 전 오영환 소방사에게 들은 이야기의 느낌을 담아낸 글이라고 한다. 소방관의 이야기와 특수강간을 저지른 한철호와 그의 보호자의 이야기가 어떤 부분에서 연결되는지는 읽으면서도 선뜻 이해하기가 어려웠지만 제목 그대로 사람의 인생에서 빠질 수 없는 '손', 그 손이라는 관점에서 읽으니 소설가란 무엇이고 어떻게 영감을 얻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세 번째 단편 소설 '저녁 내기 장기'는 외환위기로 운영했던 구두공장이 부도나고 아내마저 떠나보냈던 이춘갑과 그의 장기 상대인 오개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저녁 내기 장기'는 장기를 두는 두 독거 노인뿐만 아니라 오개남이 키우는 개에 대해서도 나오는데, 사람이나 동물이나 더 이상 희망을 가질 수 없지만 그래도 묵묵히 살아갈 수 밖에 없는 현실의 모습을 보면서 우울감이 드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저녁 내기 장기'는 김훈 작가님이 일산 호수공원의 장기판을 기웃거리면서 보고 들었던 내용을 이야기로 입힌 소설이다. '저만치 혼자서' 뒷부분의 풀이 내용을 보면 형용사를 쓰지 않으려고 애썼다고 한다.
네 번째 단편 소설 '대장 내시경 검사'는 일흔 살이 넘은 주인공의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이다. 주인공인 그는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기 전 지방 소읍의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이자 첫사랑이었던 나은희와 재회하는 내용도 담겼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고 한때 사랑했던 여성을 만나는 과정에서 주인공이 생각을 김훈 작가님만의 문체로 풀어낸 내용을 보면서 작품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볼 수 있었다.
다섯 번째 단편 소설 '영자'는 노량진 고시텔에서 9급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있는 주인공과 그의 동거녀 영자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실제로도 노량진은 공무원에 합격하기 위해 밥만 먹는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종일 공부에 몰두하는 사람들(일명 구준생)로 붐비는데 '영자'라는 단편소설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그들의 삶을 볼 수 있었다.
여섯 번째 단편 소설 '48gop'는 김훈 작가님이 약 10년 전 언론사 취재팀과 함께 전방 군부대를 취재하면서 느꼈던 생각을 소설로 풀어낸 작품이다.
'48gop'는 작가님이 1948년생이라 제목을 그렇게 지었다고 하는데 자신이 잘못이 아닌 오랜 옛날 벌어진 일들로 인해 영하 20도 가까운 추위 속에서 고생하는 군인들의 모습을 보며 하루빨리 통일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일곱 번째 단편 소설이자 이 책의 메인이라 할 수 있는 '저만치 혼자서'는 2012년 10월 23일 작고한 천주교 사제 양종인 치릴로 신부의 생애를 생각하며 담은 작품이다.
'저만치 혼자서'에서는 죽음을 앞두고 도라지수녀원(성녀 마가레트 수녀원)에 모여 살고 있는 늙은 수녀(손안나 수녀, 김루시아 수녀 외))와 그들을 보살피는 김요한 주교, 장분도 신부의 이야기가 나온다.
김훈 작가님의 7개 단편 소설을 담은 '저만치 혼자서'는 모두 하나같이 비극적인 내용을 담아냈기에 읽는 동안 마음이 먹먹해졌다. 하지만 여기에 나오는 내용은 모두 현실에서 벌어졌거나 혹은 벌어질 일상을 담아냈기에 나 역시도 비슷한 상황이 왔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보통 소설이라고 하면 한 번 읽고 마는 경우가 많지만 김훈 작가님의 작품은 읽을수록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관점을 알 수 있다. 20대 초반에는 어려워서 읽지 못했던 그의 작품을 30대 중반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는 것처럼 40대가 됐을 때 '저만치 혼자서'를 다시 읽는다면 어떤 기분과 생각이 들지 기대를 모으는 작품이라 할 수도 있겠다.
※기억하고 싶은 구절
먹통노인이 죽었을 때 이춘개에겐 다섯 살 난 딸과 세 살 난 아들이 있었다. 그때가 서른여럽인가 마흔인가, 바다에서 이춘개는 제 나이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스무 살인가 싶기도 하고 쉰 살인가 싶기도 했다. 태어날 때부터 서른 살이었거나, 태어날 때부터 딸과 아들을 데리고 왔던 것 같기도 했다. 바다에서 시간은 구획되지 않았고, 북서에서 남동으로 풍향이 바뀌어도 바람은 늘 물위를 달려가서, 물은 제자리에서 출렁거렸다.
더위와 추위는 사람의 것이었고 계절을 더위나 추위와 상관없이 한데 붙어서 흘러갔다. 아버지의 죽음이나 자식들의 출생도 그렇게 구획되지 않은 채 이어져 있을 것이라고 이춘개는 생각했다. 생각은 안개처럼 뿌예서 말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 명태와 고래 p.25
장롱을 들어낸 자리에 바퀴벌레들이 죽어 있었다. 바퀴벌레의 주검은 말라서 바스러졌다. 바퀴벌레의 주검에는 지질시대를 살아온 듯한 늙음이 있었고, 그 늙음의 전리품처럼 날개가 돋쳐 있었다.
시멘트 벽 틈새를 기어다닌 한 생애에 날개가 돋쳐야 할 까닭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얼마나 기어야 날개가 돋치는 것인지, 날개는 고생대에 이미 사라진 비행 기능의 흔적 같기도 했고, 수억 년 세월이 지난 후에 돋아날 기능과 조직의 그림자 같기도 했다. 삭아서 바스러진 날개에 가는 핏줄 같은 맥이 어른거렸다 - 손 p.59
저녁 내기 판이 길어져서 이춘갑은 시장했다. 차, 마가 모두 죽은 들판에서 초상이 포의 엄호를 받으며 좌변을 치고 들어왔고, 한병이 힘겹게 상 길을 끊어내고 있었다.
오개남이 졸을 옆으로 밀자 초포가 한궁을 바로 겨누었다. 사를 올려서 포 길을 막으면 초마가 달려들 것이었고, 왕을 모서리로 옮기면 두어 수를 더 버틸 수는 있겠지만 마가 입궁해서 사직의 모양새는 허물어질 것이었다.
모양새가 반듯해도 사직이 무너질 수가 있지만 모양새가 비틀리면 사직은 반드시 무너진다. 이춘갑은 왕을 움직여서 죽음을 미루었다.
멀리서부터 한 걸음씩 다가오는 초졸들을 이춘갑은 빤히 들여다보면서도 막을 수가 없었다. 졸들은 한 칸씩 기어붙었고 좁은 길을 뚫어서 복병을 불러들였다.
장기판에서는 갈 수 없는 길들이 빤히 보였다. 갈 길은 못 갈 길 뒤에 숨어 있다가 빼도 박도 못하게 되면 비로소 보였고 보이면 갈 수 없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한 칸씩 다가와서 흘러가고 또 흩어지는 것들이 쌓여서 아내와 헤어진 십육 년이 지나갔을 것이다.
잔전은 썰렁했다. 수들은 말로가 드러났고 중원은 비어 있었는데, 거기에는 아무런 힘도 작동시킬 수 없었다 - 저녁 내기 장기 p.97
이춘갑은 비닐 랩을 벗기고 나무젓가락으로 짬뽕 국물을 휘저었다. 오개남의 말대로 짬뽕 면발은 불어서 엉겨 있었다. 이춘갑은 그릇에 입을 대고 국물을 먼저 들이켰다. 지난 겨울 짬뽕값이 오천원에서 육천원으로 오른 뒤에 쭈꾸미가 더 들어가기는 했지만, 국물 맛은 그대로였다.
이춘갑이 아내와 헤어지기 전, 십육 년 전의 맛과 똑같았다. 식재료를 우러낸 국물이 아니라 맹물에 인공 조미료를 풀어서 끓인 국물이었다. 국물 맛은 사나웠고, 목구멍이 불을 지른 듯이 화끈거렸다.
그 맛에 인이 박혀서 이제는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국물을 한 모금 넘길 때마다 지나간 모든 이물감이 되살아났다. 석양에 그림자가 늘어졌다. 이춘갑의 그림자가 이춘갑을 따라서 먹었다. 이춘갑은 먹는 그림자를 들여다보면서 먹었다. 그림자에도 젓가락이 있었고 움직이는 입이 있었다 - 저녁 내기 장기 p.99
사랑이라는 말은 이제 낯설고 거북해서 발음이 되어지지 않는다. 감정은 세월의 풍화를 견디지 못하고 세월은 다시 세월을 풍화시켜간다. 그렇기는 하더라도 그때 내 마음속에 자리잡은 나은희의 온도를 사랑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나은희 쪽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 대장 내시경 검사 p.129
나는 계속 졸았다. 대장 속에 생각이 닿지 않았다. 수억만 년의 시간 속에서 종유석이 돋아나는 자연 동굴이 내 마음에 떠올랐다. 그 어둠 속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싶었고 한 오라기의 빛도 없는 암흑 속에서 무안구가 유전되는 작은 물고기들이 떠올랐다.
졸음 속에서, 종유굴은 나의 대장과 연결되었다. 나와는 사소한 관련도 없는 그 암흑 속에서 용종이 자라나고 있었다 - 대장 내시경 검사 p.143
저녁 여섯시 무렵에 노량진에서는 각자, 저마다, 혼자서 시장했는데 다들, 너나 없이 골고루 시장했다. 시장기는 개별적이면서 전체적이었고, 보편적이면서 고립무원이었다.
거리 전체가 시장했지만 수많은 시장기들 사이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저녁 여섯시 무렵에 시장한 구준생 백여 명이 컵밥 노점 앞에 줄을 선다고 할 때 그 중 1, 3명 정도가 9급 시험에 합격했다. 경쟁률을 따지면 그렇다. 다들 시장하다고 해서 경쟁률이 바뀌지는 않는다.
저녁반 완저정복 9급 영어 시간에는 분사구가 길게 늘어지는 영어 문장이 예문으로 나왔다. 동사와 목적어 사이가 멀어서 의미의 전개 방향을 종잡기 어려운 문장을 강사는 기어이 분석해냈다.
억센 문장구조에 짓눌려서 동사는 사물을 장악하지 못했고 먼 목적어에 닿지 못해 허우적거렸다 - 영자 p.162
도라지꽃 하얀색의 먼 저쪽에서 삶이 죽음에 스며 있다는 늙은 수녀의 환상은 죽음 안에 신생을 약속하신 하느님의 뜻을 벗어난 것이 아닌가를 생각하다가 김요한 주교는 생각을 그만두었다.
신학생 시절에 기숙사 뒷산에 도라지는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김요한 주교는 그 하얀색을 떠올렸다. 하얀색이 아니라, 이름 지울 수 없는 색이었다. 색은 멀리서 흔들리면서 다가왔다.
색은 보이지 않는 강물에서 시간과 공간을 흘러서 사람의 시선이 닿을 수 없는 곳에서 자진하고 있었다. 김요한 주교는 도라지꽃에 대한 늙은 수녀의 환상에 대해서 아무런 사목 지침을 내놓지 않았다 - 저만치 혼자서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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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혹시 김훈 작가의 이야기는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6~70대 이야기가 많다. 그래서 읽으면서 그 세대들의 섬세한 감정을 알 수 있었다. 젊은세대들을 어떻게 읽었을지 궁금한 책이다.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인데, 간혹 나오는 밑줄 문장이 많이 기억에 남는다. 이래서 문장가 김훈 작가라고 하는구나. 어쩜 나도 이런 부분을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샀고 바로 읽었는지도 모른다.
7편 중에서 '저만치 혼자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아마도 책의 띠지를 벗겨내면 나오는 소제목 목록처럼 읽다보면 하나씩 소환되는 기억들과 앞으로의 일을 기대와 걱정이 한데 어울리는 롤리팝 같은 감정때문인것 같다
출판사의 의도었을지 모르나, 나에게는 이렇게 나오는 제목과 소제목이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저만치 혼자서'는 어쩜 작가의 고민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리고 40대중반인 내가 7~80대인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요즘 중요한 이슈이기도 하다. 서해안 바닷가 호스피스 수녀원에서 수녀님의 죽음과 삶, 인간의 죄와 신의 용서에 대해서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다.
신자들은 고해때마다 다들 똑같은 죄를 고백했다. 사람이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죄가 저절로 빚어지는구나' p.232
'병은 이름으로 지칭되는 것이 아니었다.' p.237
'삶은 죽음을 베재할 수 없지만 죽음은 치유 불가능한 몸의 유한성을 극복하는 구원의 문이다. 그러므로 부활한 예수의 빈 무덤에서 그리스도와 사도는 만나는 것이다.' p.243
그의 문장을 읽다보면 자꾸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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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과 고래」
「손」
「대장 내시경 검사」
「영자」
「저만치 혼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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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김 훈 문학동네 2022년 6월1일 출간 -차례 명태와 고래 손 저녁 내기 장기 대장 내시경 검사 영자 48GOP 저만치 혼자서 군말 작가란 본디 그런 사람이겠지만... 너무나도 사실적인 표현과 내 이웃의 모습이. 책 구석구석에 담겨 있어서 이것은 허구라고, 지어낸 이야기라고 말할 수가 없을 때가 있다. 작가 김훈의 소설이 그렇다. 인간과 밀착하여 그렁그렁 숨소리 하나까지도 예리하게 포착한다. 툭툭 던지듯 어렵지 않은 문장 속에는 단순함이 주는 힘이 있고 읽으며 떠올리게 하는 연쇄적으로 불러일으키는 반응이 자연스럽다. 일곱 편의 단편들이 한 권의 책이 되었다. (명태와 고래) 2010년 '진실*화해를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보고서를 읽은 후 두려움과 절망감 속에서 쓴 글이다 (손) 오영환 소방사한테서 들은 이야기를 의지하여 쓴 글이다 (저녁 내기 장기) 호수공원 장기판을 기웃거리면서 보고 듣고 겪은 것들에 이야기를 입힌 글이다 (대장 내시경 검사) 병원이나 빈소에서 들은 이야기의 파편들을 엮은 글이다 (영자) 노량진 9급 학원 동네의 젊은이들을 관찰하면서 쓴 글이다 (48GOP) 십 년쯤 전에 언론사 취재팀과 함께 전방 군부대를 취재 여행하면서 느낀 것들을 소설로 쓴 것이다 (저만치 혼자서) 2012년 10월23일 40세의 나이로 작고한 양종인 신부의 생애를 생각하며 쓴 글이다 이렇게 모든 시간속에서 살아가는 이웃의 모습을 관찰하고 그 삶의 시간을 가늠해 본다는 것... 작가는 인생에 대해 누구보다 애틋한 시선을 가짐이 마땅한 이유이다. 일 곱 편의 이야기 모두 가슴 먹먹하고 함께 억울하고 꺼져가는 삶의 시간이 안타까웠다 그 중에서 세 번째 이야기인 저녁 내기 장기를 보며 고단한 인생살이.. 가장 현실감 묻어나는 인생이야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춘갑은 예순여덟이다. 외환위기때 마지막 남은 재산을 지키기위해 위장 이혼을 했다. 오개남은 흰 개를 데리고 다닌다. 4년 전 손수레를 끌며 쓰레기 작업을 할 때 개가 손수레를 따라왔다. 두 사람은 내기 장기를 둔다. 각자의 삶의 시름과 문제들을 가득 안고.. 오개남이 초를 잡고 이춘갑이 한을 잡았다. 오늘은 오개남이 졌다. 저녁 값으로 짬뽕값 육천원을 이춘갑에게 준다. 지폐 다섯장과 오백원짜리 동전 두 개였다. 호수공원 장기판에서 나는 해체되는 삶의 아픔을 느꼈다.저마다의 고통을 제가끔 갈무리하고 모르는 사람끼리 마주앉아서 장기를 두는 노년은 쓸쓸하다.-군말 중에서- 공원 여기저기 나무 그늘 아래에서는 어김없이 어르신들이 앉아 계신다. 하루가 저물도록 . 지나가는 사람을 쳐다보고 하루해가 너무도 더디 가는 듯... 장기판이 벌어지면 구경꾼이 한 가득 재미난 구경거리가 벌어진다. 급할 것도 바쁜 것도 없는 노년의 하루가 모여든 사람들의 시간위에 함께한다. 이야기를 읽으며 자신의 괴로움과 개인적 상황을 가진채로 장기판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두 사람과 구경꾼들을 생각했다. 모르는 사람끼리 두는 쓸쓸한 노년이 그려졌다. 우리네 사는 모습을 꼭 닮은 소설 속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생각했다. 사람의 인생과 각자의 삶을 더욱 애틋하게 바라보아야겠다고.. 작가의 눈까지는 되지 못하겠지만 다양한 삶을 존중하고 인생에대한 애틋함으로 사람들을 바라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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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훈 작가님의 저만치 혼자서를 읽고 작성하는 리뷰입니다. 인생에서의 불행은 누구나 겪을 수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는 사람마다 태도가 다를 것입니다. 큰 좌절을 겪고 삶이 우울함으로 점철되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부분에 대해 생각하게 되네요.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겠지만 흔적이 조금씩 사라져가고 상처가 조금씩 아물어가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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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작가님의 이야기를 오랜만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김훈 작가님을 통해서 인생에 대해 다시한 번 생각해 보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뭔가를 인생에서 이야기하고 뭔가를 한다는 것은 한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꼭 거창한 것이 아닌 자신이 인생에서 뭔가를 하고 그것이 다른사람에게 뭔가를 줄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에게 전세계적인 전염병이 돌아서 그것이 자신에게 미치고 그것만으로가 아닌 주변의 사람들도 영향을 받고 돌아가는 인생사에서 김훈 작가님의 이야기는 조금의 위안을 얻고 조금은 힘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