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W매거진의 <여자들이 사는 동네>를 읽고 작성 하는 리뷰 입니다. 작가님들의 고향이나 현재 살고 있는 동네들에 대하여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데 생각보다 무거운 이야기를 하시는 분도 있고 가볍게 재밌게 이야기를 풀어 나가시는 분도 있었습니다. 이 번호도 재밌게 보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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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사는 동네를 읽고 쓰는 리뷰입니다. 비혼의 입장에서 이 글을 읽는건 정말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저기에서 남자 없이는 어떻게 살아가냐고 그러는데 이런 글을 보니 어람나 반가웠느지 몰라요. 이렇게 여자들끼리도 연대가 깊고 잘 지낼 수 있는 모습을 보니 저도 그렇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 드네요. 이 글을 읽으면서 계속 기분이 좋았던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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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세월 한결같은 동네를 추억하면서 사랑한다. 그곳은 생각만해도 아늑하고 평온했다. 이사를 가도 근처라서 거리의 풍경은 달라지지 않는 셈이다. 월세나 전세살이가 그렇듯 정주 본능은 경제력이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그런데는 꼭 부동산 시세가 제자리걸음인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태어나 자란 곳은 계절을 따라 기억한다. 어른이 되고 다시 그곳을 찾아가도 익숙한 데 가길 마련이다. 복잡한 감정을 풀러 피난처를 찾아가듯 가는 것이다. 목적없이 가는 산책은 기분을 풀어준다. 똑같은 길을 가도 4계절이 주는 변화 덕분에 새로움을 느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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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앙’이라는 명대사를 남긴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15화에서, 염창희가 자신이 운영하는 편의점 카운터에 앉아 서울의 역사에 대해 말하는 걸 들으며 알바생이 말한다. “시험봐요? 뭘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 사장님 서울사람들 그런 거 하나도 몰라요. 그리고 3대가 살아야 서울 사람이래요.” 알바생의 뼈 있는 말에 나는 염창희와 같은 생각을 했다. ‘그러면 내 손자부터 서울 사람인거네.’ 서울에 산지 22년차다. 그래도 난 여전히 서울사람 같지 않다. 태어난 곳은 강원도, 엄마는 전라도, 지금 사는 곳은 서울. 어디에 나의 뿌리를 두어야 할지 몰라 더 외로웠다. 고향이 뭐라고, 본가가 뭐라고, 그런 게 없다는 것이 부평초마냥 여기저기 떠다니느라 삶이 고단했다. 나의 외로움은 누구보다 고독하다 생각했다. 사람을 만나도 정주기 무섭고, 줄만한 정도 없었다. 그것이 서울에 살아도 서울 사람이 아닌 나의 마음이었다. 이번 2W매거진 24호 주제를 보며 지금은 내 마음의 고향인 ‘안도’를 떠올렸다. 그곳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에 행복이 차올랐다. 그곳에 대해 써야지. 주제는 쉽게 정했지만 마지막까지 어려웠던 건, 그곳에 대해 쓸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분량을 덜어내는 일이었다. ‘안도’에서의 추억이 20년째다. 나는 여전히 그곳이 새롭고 사랑스러워서 구석구석 남겨진 추억과 늘 새롭게 다가오는 바다의 풍경을 말하고 싶어 난리도 아니었다. 이런저런 궁리 끝에 ‘안도’와 첫만남의 순간을 썼다. 내가 사랑하는 동네 ‘안도’는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배로 한시간 반을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섬이다. 남편의 고향이며, 지금 그곳에는 남편의 부모님이 민박과 식당을 운영하며 살고 계신다. 남편의 부모님과 그분들의 부모님과 전 세대들이 ‘안도’에서 태어나 살았으므로 남편의 본가는 ‘찐 안도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남편 덕분에 나도 이제는 안도사람이다. 그곳에서 쌓은 추억은 지금의 나를 충만하게 해준다. 내가 ‘안도’를 사랑하게 된 것은 남편의 부모님 때문이었다. 남편의 집은 말이 없지만 자상한 아버지와 살가운 어머니와 함께 화목했다. 두 분의 모습을 보며 내가 가질 수 없었던 소속감을 남편과 함께라면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안도(安島)의 명칭은 선박이 안전하게 피항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한 데서 유래한다고 했다. 그곳에 부평초 같던 내 마음도 정박했다. 그 후 나는 외롭지 않았다. 어디를 가도 나를 받아줄 곳 없다고 여겼던 불안한 마음도 들지 않았다.? 부평초 같던 마음의 정박지 - 표경희 ‘여자들이 사는 동네’에는 여러 추억이 담긴 장소가 나온다. 해밍 작가의 ‘두 마을 이야기’는 여섯 살부터 스물한 살까지 살아온 동네, 긴 세월 한결같은 고향 구로 1동과 스물여섯부터 마흔이 넘은 지금껏 살고 있는 프랑스 장티(Gentilly)에 대한 이야기다. 그녀가 정착한 두 마을의 공통점은 눈 뜨면 바뀌는 것이 많은 지역에서도 웬만하면 큰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나 또한 두 번째 고향이 주는 의미가 크기 때문인지 자신과 꼭 닮은 고향을 떠나 지금은 두 번째 고향이 된 장티에 살고 있는 해밍 작가의 삶을 응원하게 된다. 나와 함께 자라난 구로 1동은 어떤 것에도 변함없이 내 곁을 지키는, 심심하고 진지한 것까지 나를 꼭 닮은 말없는 벗 그 자체였다. 70대 집주인은 열 살 무렵 이리로 이사 와 같은 집에 여전히 거주하고 골목길에서 그의 학창 시절 친구들을 마주친다. 건물과 풍경만큼 사람도, 마음도 그대로다. 고달픈 외국 생활을 혼자 어떻게 이토록 오래 버티는지. 이번엔 활짝 웃으며 말할 수 있다. 어쩐지 내 고향 구로 1동을 닮은 장티에 살면서 여기가 두 번째 고향이 되었다. 두 마을 이야기 ? 해밍 한지현 작가의 ‘그가 사는 동네’를 읽으며 그를 사랑하며 반짝반짝 빛나던 동네가 살아가면서 퇴색되는 장면에서 마음이 아팠다. 사랑은 떠났지만 ‘가끔, 그 동네가 그립다’는 마음이 남아있어서 더 쓸쓸하게 느껴졌다. 그가 반짝반짝 빛났다. 그가 서 있던 그의 동네도 반짝반짝 빛났다. 그리고 이 모습을 지켜보는 내 모습이 가장 눈부시게 빛났다. 갑자기 나의 빛이 꺼졌다. 그러자 그도 그의 동네도 빛이 꺼지면서 온 세상이 깜깜해졌다. 그가 사는 동네에는 아직 그가 산다. 다만 그때의 내가 없을 뿐. 그가 사는 동네 ? 한지현 고은아 작가의 ‘걷다, 살다’에서 인상 깊었던 건 성곽길을 걸으며 삶의 위로를 받는 작가의 모습이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 가끔 홍인지문 공원 쪽에 있는 성곽길을 걸었다. 지금은 고등학교 3학년과 중학교 3학년이라 각자 사는 게 바빠서 주말에도 얼굴 보기 힘들지만, 어릴 때는 주말이면 아이들과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북촌과 서촌, 동대문과 청계천, 창덕궁, 경복궁, 남산한옥마을 등 아이들이 가볼만한 곳이면 어디든 갔다. 나의 주소지는 서울시이지만 같은 서울이라도 각 구마다 분위기라던지 골목길 풍경이 달랐다. 특히 사대문 안의 풍경은 고즈넉하고 여유로워 보여서 그곳 토박이로 사는 진짜 서울사람들은 어떤 마음일까 궁금했다. 그런데 고은아 작가의 어린시절과 현재를 이어주는 성곽길에 대한 글을 읽으며 내가 상상했던 마음이 맞구나 하는 생각에 괜히 기분이 좋았다. 성곽길에서 4계절을 보냈다. 매주 두 세 번은 같은 길을 걸었지만, 매번 새로움을 느낀다. 혼자여도 함께여도 늘 좋았다. 물론 평지만 걸을 수 있는 산책로도 있고 도보 20분만 나서면 창경궁, 창덕궁 등 걷기 좋은 궁도 근처에 있다. 하지만 성곽길이 나에게 주는 깊은 위안을 다른 곳에서 얻기는 어려웠다. 어린 시절을 보낸 놀이터였던 이 길이 어른이 된 나에겐 위로와 기쁨을 주는 곳이 되었다. 걷다, 살다 ? 고은아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걷는 것을 좋아하는 제가 적당히 걸을 수 있는, 그런 동네에 살고 있다’는 고백으로 시작한다. 권수현 작가는 아이가 등교한 날, 집안 일을 마치고 한숨 돌리다 갑자기 뛰쳐나가고 싶어 동네 산책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홀린 듯 들어갔던 골목길’에서 27년 동안 같은 지역권에 살며 새로운 골목을 발견했는데 그곳은 이미 유명한 000길이라고 한다. 마치 처음 온 동네처럼 그곳을 탐방하며 걷다가 고등학교와 중학교와 초등학교를 지나치며 아이의 성장과정을 압축해서 보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그녀의 글을 읽으며 나도 한동안 육아에 시달리다 혼자 거리를 걸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언제나 아이들의 보폭에 맞춰 걷다가 나 혼자, 나만의 보폭으로 자유롭게 걸으며 만난 고등학교와 중학교와 초등학교. 그때는 아직 아이들이 미취학 상태라 앞으로 학교에 다닐 아이들을 상상하며 혼자 감동에 벅찼었다. 어느덧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어 ‘홀린 듯 들어왔던 그 골목’으로 되돌아 걸어 나왔습니다. 골목 끝 지점에 닿아 뒤를 돌아봤어요. 마치 이상한 나라에 다녀온 기분이 들었습니다. 제가 오늘 걸었던 그 골목에는 점심시간에 후배들과 산책하던 사회인 버전의 저도 있었고, 미혼일 때 맛있는 밥집과 카페를 찾아 데이트하고 친구를 만나던 ‘까르르’ 버전의 저도 있었으며, 아이의 안녕을 바라는 지금의 저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걸어야 보이는 것’을 눈에 담기 위해 저는 오늘도 우리 동네 골목을 걸어갑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 ? 권수현 ‘All that coffee : 커피는 핑계일 뿐’의 드므 작가는 보고 싶은 언니들을 만나러 간 이야기를 담았다. 커피는 핑계일 뿐, 언니들과 만나 수다를 떨고, 밥을 먹고, 카페에 앉아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는 하루. 정말 별일 없는 하루였지만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얻은 에너지로 자기 안이 가득채워진 경험을 말한다. 그런 평범한 일상 속에서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는 충만함을 나는 알 것 같았다. 나도 주말이면 나의 집과 거리가 오분 안에 사는 친정엄마와 여동생과 큰오빠 가족, 작은오빠를 만나 카페에 앉아 수다를 떤다. 바쁜 사람은 참석하지 못할 때도 있지만,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일주일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떤 안도와 충만함을 느낀다. 친정가족과의 만남은 엄마가 아프면서 엄마를 위로하기 위해 만든 자리였는데 지금은 서로 간의 유대가 더 끈끈해졌다. 인간(人間)은 괜히 인간이 아니다. 사람(人)과 사람(人) 사이(間)에 있어야 사람이다. 동네 어귀에서 편안한 옷차림으로, 커피를 앞에 두고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것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일. 새벽에 잠이 깼을 때부터, 어쩌면 나도 모르게 이런 ‘충동’을 큰 그림으로 그렸었는지도 모르겠다. ‘언니들 보면 좋겠다’라고. 아무 생각 없이, 특별한 계획 없이, 슬렁슬렁, 그저 동네를 같이 걷다가 무엇을 먹고 커피로 마무리하는 일. All that coffee : 커피는 핑계일 뿐 ? 드므 ‘나비효과’를 쓴 조하랑 작가는 교통의 요지, 산책하기 좋은 천과 백화점과 마트가 있는 편리한 동네에 자리 잡은지 10년만에 뉴스 기사의 이미지로 접한 곳의 모습을 직접 보게 된다. 집에서 도보로 20분이 걸리는 ‘맥도날드’에 ‘공짜 커피 쿠폰’을 쓰기위해 가던 중이었다. 앱에서 안내하는 최단거리를 걷다가 쪽방촌에 들어선 것이다. 그녀는 그곳을 최대의 속도로 걸어 지나치며 무섭다고 생각한 것에 대해 당혹감을 느낀다. 그 분위기도, 어두운 표정의 사람들도 무서웠지만, 사실 난 계속 가난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 내가 가난해지지 않을까 두려웠고, 그렇게 살지 않기 위해 해야 하는 끊임없는 노력이 두려웠고, 그럼에도 함께 잘 살기 위해 나누어야만 하는 의무들이 두려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정체불명의 죄책감을 느끼는 스스로의 오만함이 두려웠다. 나비효과 ? 조하랑 공짜 커피 쿠폰을 쓰려고 했던 것뿐인데, 갑자기 어둡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의 쪽방촌골목에 들어섰다. 그곳을 최대한 빨리 벗어나며 느낀 당혹감 속에 가난해지지 않을까하는 두려움과 마주했다. 그 두려움은 돈을 벌어도 가난하다는 느낌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실과 맞닿아 있는 것 같다. 적어도 난 최하층민은 아니라는 어리석은 자부심. 나누기에 내 가족 먹고 살기도 어렵다는 이기적인 마음. 그런 것들을 외면하다 마주한 현실이 ‘쪽방촌’의 모습일 것이다. 그 안에 사는 사람들 중 어느 누가 자신의 모습이 그곳에 갇힐 것이라 생각했을까. 그런 씁쓸함이 느껴졌다. 어딘가를 가고 싶다는 말은, 지금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말이다. 과거의 나는 늘 살던 곳에서 벗어나는 방식으로 자라왔다. 어딘가에 정착했다는 말은 내게 어딘가에 매여 있다는 말이었다. 매여 있는 공간은 지옥이었고, 반복되는 시간 역시 지옥이었다. 딛고 있는 발이 아닌 다른 곳을 보았다. 다른 곳에 가고 싶었다. 나를 상처 입히고 지겹게 만드는 현재의 시간과 이별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를 통과한 시간과도 이별하고, 나를 남겨왔던 공간과도 이별했다. 존재했던 곳을 떠나왔고, 살았던 과거를 지나치며 나는 지금 이곳에 왔다. 나는 이제서야 저 멀리 있는 지평선이 아닌 내 발끝을 본다.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지금 여기 이곳. 더 이상 어딘가로 옮겨가는 삶을 꿈꾸지 않는 나는, 드디어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의 시간을 사는 듯하다. 나는 낙원을 꿈꾸지 않는다 ? 해일 한 곳에 정체된 느낌은 그곳을 지옥으로 만든다. 정착을 원하지만 그곳에서의 삶이 지긋지긋해지면 금방 떠나고 싶다. 더군다나 좋은 추억보다 나쁜 기억이 더 많은 곳이라면. 해일 작가의 글을 읽으며 과거의 고향 생각이 났다. 십년 전 한번 가보고 다시는 가지 않았던 곳. 그곳은 내 기억만큼 을씨년스러웠다. 고등학생이 되어 고향을 떠나며 나는 마음이 홀가분했다. 당장 엄마 없는 생활을 시작해야 했지만 그곳을 떠날 수 있어서 마냥 좋기만 했다. 그래서 지금 정착한 이곳에서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어 주고 싶었다. 다행히 아이들은 지금 사는 이곳을 좋아한다. ‘낙원을 꿈꾸지 않’지만 내가 있는 곳이 편안한 곳이길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같을 것이다. 이 외에도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공간, 과거부터 현재까지 살고 있는 동네, 일본과 탄자니아의 므와송가에서의 생활에 대해 쓴 글도 있다. ‘여자들이 사는 동네’라는 주제로 다양한 곳의 추억을 살펴볼 수 있어서 마치 나도 그곳에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 들었다. 목요일 그녀 작가의 ‘산책을 상상하는 밤’에서 소개하는 산책과 관련된 책들도 궁금했다. 그냥 걷기 보다 산책을 하며 주변 풍경을 눈에 담고 마음의 찌꺼기를 소화시키는 걸음을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책하듯 천천히, 잊고 지냈던 ‘나’를 되돌아보며 걷는거다. ‘걸으면서 내 몫의 환멸을 아주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다’라는 이광호 평론가의 문장이 떠올라 책꽂이에서 책을 찾아 다시 아이 옆에 앉았다. 걷는다는 게 단순히 행위로 끝나는 게 아니라 힘든 하루를 직시하고, 피할 수 없었던 절망을 마주하며 다시 힘을 내는 방법이라는 걸 작가는 직접 걸으며 들려준다. 이광호,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 난다, 2014 작가의 글은 산책로처럼 이어진다가 산책로를 빠져나올 때쯤엔 ‘그래, 오늘은 끝. 하루치의 불행도 슬픔도 끝. 내일부터는 다시 시작!’하고 주먹을 불끈 쥐게 한다. 피할 수 없는 날은 피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불안한 마음을 애써 떼어내려 발버둥 치지 않고 그냥 오늘치의 삶을 살아내고 싶어진다. 박선아, <어른이 슬프게 걸을 때도 있는 거지>, 책읽는 수요일, 2020 모니터 속 안산 지도를 다시 들여다본다. 지금 내가 사는 동네에서 가장 먼 곳을 마우스를 움직여 선으로 그어봤다. 화면 안에서는 선 하나일 뿐이지만, 내 걸음으로 천천히 걸으며 만나게 될 무수히 많은 사람과 건물들, 풍경들을 상상해 본다. 그렇게 걷다 보면 돌아가고 싶지 않은 유년의 불우함을 다시 마주한다고 해도 괜찮을 것 같다. 내 몫의 환멸을 조금씩 내려놓으며 걷는 산책을 상상하는 밤, 아이의 숙제가 길어질 것 같다. 산책을 상상하는 밤 ? 목요일 그녀 김혜지 작가의 ‘안녕, 엄마’ 세번째 이야기 ‘엄마의 가발’을 읽고 이번에도 눈물을 뚝뚝 흘렸다. 항암 치료로 인한 부작용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몸의 털이 빠지는 증상이다. 특히 머리카락이 스치는 곳마다 뭉텅이로 빠지는 걸 눈으로 확인하게 되면 암투병 중인 당사자의 아픔을 확연히 느끼게 된다. 항암 치료를 했던 나의 엄마도 그랬고, 현재 암투병 중인 시아버지도 그랬다. 시아버지는 결국 머리를 밀었는데, 남자여도 갑자기 대머리가 된 모습을 보며 당사자와 가족들 모두 마음이 무거웠다. 하얗다 못해 푸른빛이 감도는 대머리 엄마는 거울을 보다가도 자꾸만 눈물을 흘렸다. 평생 나의 보호자였던 엄마, 이제는 내가 그녀의 보호자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던 순간이었다. 우리 엄마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기가 막히고 서러웠지만, 보호자인 내가 더 강해져야겠다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엄마는 ‘맞춤 가발’ 덕분에 다시 당당하게 거울 앞에 그리고 사람들 앞에도 설 수 있게 되었고 삶에 대한 욕심도 점점 더 늘어갔다. 먹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리스트를 만들어 하나씩 실행해 나갔다. 나는 엄마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해주고 싶었다. 엄마가 이렇게라도 살아갈 수만 있다면. 엄마의 가발 ? 김혜지 작가의 다짐을 읽으며 나도 마음 속으로 응원을 보냈다. 한가지 다행한 일은 항암이 끝나면 빠졌던 머리카락이 더욱 풍성하게 나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작가의 연재는 끝나지 않았고, 어머니의 항암 치료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어 앞으로의 이야기가 전개될 동안 어머니의 모습이 어떻게 그려질지 마음을 졸일 수 밖에 없다. 박호연 작가의 ‘얼어붙지 않는 마음’ 세번째 연재글 ‘한여름 밤의 꿈이라는 듯’도 인상깊게 읽었다. 전편은 그녀가 캐나다 퀘백 남자를 만나 그곳에 정착한 이야기였다. 이번에는 그녀가 잠버릇 심한 아이들에게 시달리다 이른 새벽에 잠에서 깬 이야기로 시작된다. 동이 트기 전 산책을 나선 작가는 도심 한가운데서 일출을 맞이하는 순간의 경이로움에 대해 묘사한다. 노란 중앙선을 밟고 선 나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국회 맞은편 청동 분수대의 물줄기가 타원형을 그리며 조형적으로 낙하하고, 그 분수대 뒤 저편에는 긴 성벽이 거리를 횡으로 가르고 있었으며, 그 성벽 너머 하늘에 솟은 첨탑 위로 선홍빛 일출이 비현실처럼 나타난 것이었다. 게다가 이 장관을 지켜보는 이는 나밖에 없었다. 몇 시간 뒤면 관광객으로 붐빌 이곳에 지금은 거짓말처럼 아무도 없었다. 갑자기 벌떡 일어날 때 느끼는 현기증처럼 순간 내가 이 시간 이곳에 서 있다는 사실이 아연했다. 대체 어쩌다 이런 곳에 흘러든 걸까? 잠을 설친 새벽에 이곳을 홀로 산책하는 내가 타이인 양 생경했다. 여기는 정확히 지구 반대편. 대서양을 건너 유라시아 대륙을 넘으나 북미 대륙을 횡단해 태평양을 건너나 비슷하게 머나먼 동아시아, 그곳에서 온 나는 정말이지 관광객을 제외하며 내 모국어를 쓰는 이 없는 이 도시에 살러 왔다는 게 불쑥 나타난 일출처럼 현실로 감각되지 않았다. 한여름 밤의 꿈이라는 듯 ? 박호연 도심에서 갑작스럽게 맞닥뜨린 일출과 생경한 자신을 감각하며 느끼는 현기증. 모국이 아닌 타국에서 살아갈 그녀의 앞으로가 궁금해진다. 그곳 생활이 부디 외롭거나 슬프지 않길 바라게 된다. 어떻게 살든 사랑으로 충만했으면 좋겠다. 박호연 작가가 일출을 맞이한 국회의사당 앞 분수대는 드라마 <도깨비>의 주인공 공유와 김고은이 함께 신을 찍었던 ‘도깨비 순례지’였다는 작가의 덧붙이는 말을 읽고 그때의 풍경이 더욱 낭만적이었을 것 같다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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