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을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다면 제대로 사는 게 아니라는 저자. 심리치료사가 쓴 ‘코끼리 같은 걱정 한입씩 먹어치우자’는 불안에 대해 논한 책, 나아가 그 해결책으로 글쓰기에 대해 논한 책이다. 저자는 불안보다 더 무서운 것은 미래에 대한 끔찍한 상상이라 말한다. 불확실성이 불안을 가져오지만 불안을 부풀리는 진짜 주범은 미래에 대한 부정적 예측이다.
인간은 부정적 소식에 민감하다. 이는 진화적 원인을 갖는 문제다. 인간은 진화를 거치면서 강력한 위험 감지 능력으로 적자생존을 터득했다. 부정적 마음은 편협한 사고를 낳는다. 저자는 글쓰기를 처방으로 제시한다. 저자는 분노, 눈물, 상심, 무기력 등으로부터 평정심을 되찾을 때까지 글을 썼다고 한다. 수많은 노력 뒤에 불안감이 자리한다.
노력이 진정한 효과를 얻으려면 자신을 잃지 않았는지, 노력이 자의적인지 타의에 의한 것인지 알아야 한다는 말을 전한다. 이는 한 심리연구가의 말이다. SNS의 부정적 영향력은 어떤가? 매체는 파편화된 글을 쏟아낸다. 저자에 의하면 파편화된 정보는 감각을 흐트러지게 한다. 자극 후 상당한 공허감이 밀려오고 결국 불안과 자기 역량 결핍을 낳는다.
자아 역량이 부족해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면 불안감에 휩싸이고 경솔한 생각에 빠진다. 그 결과 자아가 견고하게 세워지지 못하고 파편적인 인지로 기울어진 자아가 세워진다. 악순환 또는 늪에 빠지는 것이다. 저자는 존재감은 고독함 속에서 완성되는 자아 훈련이라 말한다. 가장 좋아하는 일, 가장 끌리고 가장 잘하는 일을 선택해 독립적으로 행함으로써 존재감을 높일 수 있다. 손으로 만드는 것, 창작 작품을 쓰거나 책을 낭독해 인터넷에 올리는 일로도 가능하다.
저자는 스스로 하는 글쓰기를 예로 들며 문자의 축적으로 자기 감각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덧붙인다. 물론 글쓰기에 몰입하기는 쉽지 않다. 저자는 누구나 잘 쓰고 싶어 하지만 글쓰기 연습에는 ‘잘 썼다‘라는 기준은 없다고 말한다. 머리를 쥐어짜 무엇을 쓸지 계획할 필요가 없고 일단 펜을 들고 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삶을 멀리 보고 오늘을 살아야 욕망을 다스리는 자기 통제력이 실행될 수 있다. 불안 극복의 단초를 말하는 대목이다.
저자는 글쓰기에 대해 몇 가지 ’하지 말라‘는 말을 한다. 1. 글쓰기를 행동의 대안으로 생각하지 말라. 2. 자기애를 글로 만족시키지 말라. 3. 글쓰기에 지나치게 분출하지 말라. 4. 글쓰기를 유일한 친구로 삼지 말라. 5. 글쓰기를 지나친 반성문으로 삼지 말라 등이다.
몸을 황폐하게 만든 결과 얻는 것은 끝없는 공허감과 허망함, 불안 등이다. 삶은 그로 인해 생동감을 잃는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남보다 더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두뇌에 자신을 둘러싼 감각적 에너지를 받아들이자. 자아도취가 아닌 자아발견에 도전하자. SNS는 나르시시즘을 조장한다. 저자는 최첨단 과학, 느슨한 대출정책 등이 부추기는 전능감에 대해 비판한다.
나르시시즘에 바진 이들의 자존감은 외부 조건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 자기애가 높아지고 외부 조건이 좋을 때는 자기애에 상처를 입는다. 자신의 우월감을 유지하기 위해 현실 검증을 차단한다. 진실한 모습이 밝혀지는 것에 공포와 불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오로지 자신에게 꽃과 박수를 안겨주는 세계에만 머물고 싶어 한다.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은 수없는 좌절에서 자신이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배워가는 것이다.
배우겠다는 자세로 차곡차곡 쌓은 노력만이 자신을 배신하지 않는다. 삶에 대한 경외심은 자신을 위한 최선의 방패다. 저자는 어릴 때부터 타인의 희망이 되고 기대를 한 몸에 받다가 정작 성공을 거둔 뒤 내면의 공허함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을 예로 든다. 성공의 출발 자체가 자신이 간절히 원하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글쓰기 모임에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글쓰기 연습의 집단 형식이다. 치료 목적의 글쓰기 모임과 비치료 목적의 모임이 있다. 치료 목적의 모임에는 전문성이 요구된다. 내면의 세계를 깊이 탐구하려는 욕구가 있고 심리적 상처를 치료하고 싶은 사람에게 적합하다. 우리는 어린 시절 어떤 상황에 처했었는지 알 수 있다. 관건은 어린 시절은 이미 지나온 시절이므로 자신이 상처 입은 아이라고 한탄할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뇌과학자들은 출생 후 첫 기억이 편도체에 남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구체화되지 않는 비언어적 기억이 새겨지는 것이다. 어린 시절 부모가 격렬히 싸우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면 그 긴장된 분위기와 초조함이 기본 정서에 깊은 흔적을 남긴다. 심각한 충돌로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난 사람은 당시의 상처를 평생 잊지 못한다. 이런 정서와 신체의 직감은 모두 암묵 기억이 되어 대뇌의 편도체에 저장된다.
암묵 기억 중 불안과 공포는 어느 순간 은밀하게 드러난다. 상대와 충돌이 일어날 때마다 과장되게 당황하게 되거나 친밀한 관계를 대할 때 감정이 제어되지 않고 사소한 일로 배우자와 싸우게 되는 일 등이다. 그 원인은 마음 깊은 속에 싸우는 소리가 떠나지 않고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애착이 중요하다. 안정 애착, 회피적 애착, 양가적 애착 등이 있다.
개인의 독특한 경험 구조를 스키마라 한다. 이는 세상이 뒤바뀔 정도의 영향력이 아니면 바뀌지 않는다. 저자는 상처 받은 어린 자신에게 글을 쓸 것을 권한다. 어린 시절 아름다웠던 추억을 써라. 자신에게 쌓인 원망을 어떻게 처리하고 표현하는지가 중요하다. 위기의 순간에 가정은 중요한 정서적 가치를 제공하지만 현대 가정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
젊은이들은 결혼에 앞서 자신의 기회비용을 따진다. 결혼에 상응하는 항목으로 자기 계발, 커리어 손실, 자유를 꼽는다. 기회비용이란 하나의 재화를 선택했을 때 그로 인해 포기한 것들 중 가장 큰 것의 가치를 말한다. 결혼 대가로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면 결혼 문턱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미성숙한 방어기제 중 가장 흔한 것이 투사(投射)다.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원시적 방어기제를 쓴다. 분열, 부정, 폄하 등 본능적이며 낮은 수준의 반응 상태를 보인다. 트라우마는 올가미가 아니다. 아들러는 트라우마의 관점을 지지하지 않았으며 트라우마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트라우마를 겪은 후 이전과 똑같이 선택할 수 있고 새로운 방식을 택할 수도 있다. 모든 것이 자신에게 달려 있다.
상황에 대한 통제력 상실은 트라우마를 유발하는 핵심 요소다. 위험은 지나갔지만 뇌리에 박힌 장면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그 일이 반복해서 상기된다. 비슷한 일에서도 그때를 떠올리며 두려워 한다. 그의 시간은 사건이 일어난 시점에 멈춰 있다. 그 일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고 강렬한 감정만 재현된다.
엄청난 재난과 위험에서 평온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은 간과되기 쉬운 피해자다. 그들은 이상하리만치 침착하다. 공포, 분노, 고통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충격이 너무 강렬하면 마음을 설명할 수 없고 강렬한 감정이 순간적으로 굳어져 언어 기능을 상실하게 만든다. 이런 피해자는 시간 감각을 잃고 해리 상태가 되거나 긴 우울증에 빠지기도 한다.
트라우마는 사람을 과거의 거센 물결에 좌초시키고 그의 정신 세계를 연옥으로 떨어뜨린다. 트라우마는 우리의 정신세계를 망가뜨려 우리를 생명의 폐허에 가두지만 사랑과 상상력은 이 폐허 위에서 새로운 미래를 건설하도록 돕는다. 아동기의 트라우마는 무의식에 깊게 뿌리내려 심리적 강박으로 좌절을 불러오고 발달을 후퇴시킨다.
현실에서는 어린 시절과 유사한 고통과 콤플렉스를 반복한다. 하지만 이는 다른 각도에서 보면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려는 본능적 노력이다. 왜 심각하고 강렬한 경험을 만드는 사람과 만나고 비슷한 상황에 매료되어 자신도 모르게 애증의 관계를 맺는 것일까? 트라우마의 기억이 즐거움이나 고통의 깊은 감정이 교차하는 과정에서 옛 원한을 달래고 보상을 얻어 통제감을 회복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대부분 실패로 끝난다. 실패는 또 한 번 자신을 자극하고 계속 반복하도록 채근한다. 아버지에 대한 양가감정을 가진 소녀는 아버지는 원래 착한데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술주정과 폭력에 의존한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좀 더 잘했다면, 아버지를 더 사랑했다면 아버지는 분명 좋아졌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무의식에서 아버지를 구할 수 있기를 갈망했다. 그 감정이 아버지와 아주 닮은 남자 친구에게 이입되었다.
저자는 글쓰기는 안전한 자아 표현 방식으로 치유의 가능성을 높여준다고 말한다. 감정을 글로 쓴다고 당장 정서적 이완이나 쾌락으로 전환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심리적 불안정 문제로 건강센터를 찾는 비율이 낮아졌다. 저자는 글쓰기 과정에서 감정 상태를 조절하기 어렵다면 멈추라고 조언한다. 준비가 덜 되었다면 억지로 마주하지 않아도 된다. 심각한 트라우마 사건을 겪었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트라우마를 보는 것은 생며에 대한 자각이고 트라우마를 마주하는 것은 인생에 대한 무거운 수용이다. 트라우마를 남긴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위대한 자비다. 트라우마에서 자신을 구하는 것이 불안감을 해소하는 근본적 해결책이다. 저자는 친밀한 관계, 신뢰 관계, 사회적 관계를 논한다. 친밀한 관계는 사적으로 연결된 밀접 관계다. 신뢰 관계는 안정에 기반을 둔 관계로 서로 지지하고 협력해서 목표를 달성한다.
사회적 관계는 상호 우호적, 호혜적이어야 한다. 척도가 필요하다. 경계가 너무 경직되면 간격이 벌어지고 모호하면 독립된 공간을 잃고 서로 침해하고 피해를 주게 된다. 스스로 하는 글쓰기 연습은 1) 프리라이팅, 2) 자아 관심, 3) 자체 창작 등의 단계를 갖는다.
삶의 질을 추구하는 사람은 에너지가 넘친다. 자연을 숭상하며 자율적이고 의미 있는 삶을 영위한다. 어떤 이들은 하루 하루 퇴화한다. 의존적이면서 독립된 인격 없이 정신세계가 공허하면 삶이 불안해진다. 타인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고 조금씩 관계의 울타리를 좁혀가며 삶이 허투루 소모되지 않도록 불필요한 관계는 정리해야 한다. 세상이 정한 행복 모델은 내 삶의 의미가 될 수 없다. |
인생을 살아가면서 걱정은 없을 수 없겠지만 또 생각보다 그 걱정들이 다 일어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지요. 어쨌거나 걱정은 인생의 각 단계마다 만나지 않을 수 없고 그에 따른 불안한 마음들을 잘 다스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그런 걱정과 불안들을 잘 다스릴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 이런 책을 만났네요. <코끼리 같은 걱정 한입씩 먹어치우자> 제목도 참 인상 깊지요? 걱정은 코끼리일 수 있지만, 결국 그것도 한입씩 먹어치우다 보면 결국은 사라지지 않겠어요? 이 책은 장신웨라는 분이 쓴 책으로 베이징사범대학 교육심리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정신동력치료 및 게슈탈트 심리치료를 공부했다고 합니다. 글쓰기 치료 단체 대표로 활동 중인데, 언어와 스토리텔링이 현대인의 걱정을 덜어내고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데 어떻게 도움을 주는지 연구해 왔다고 합니다. 이 책은 상황에 따른 불안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한 뒤 그런 불안들을 잠재울 수 있는 글쓰기 연습을 제안하고 있다. 불안증후군, 인터넷 불안 시대, 불안 탐구 생활, 불안 뛰어넘기라는 총 4파트로 나뉘어진 이 책은 자신을 정말 깊이 있게 바라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평점심을 찾을 때까지 글로 나를 만나고 표현하면서 불안이라는 이름의 코끼리를 하나씩 먹어치우자고. 글쓰기의 다양한 방법도 제시하고 있는데 테마 글쓰기 중 '사춘기 자녀가 있는 가정의 10가지 테마' 요런 부분은 지금 내가 닥친 생활과 연관이 깊어서 더더욱 한 번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글쓰기의 힘을 믿기에 이 책이 참 괜찮은 책으로 다가왔다. 결국 만날 수 밖에 없는 여러 가지 인생의 불안들을 평정심을 되찾을 수 있을 때까지 글로 나를 만나고 표현한다면 불안을 없애는 것 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글쓰기 실력까지 키울 수 있겠다 싶어 1석 2조라는 생각도 들었다. 곁에 두고 차분하게 따라 해 보고 싶은 <코끼리 같은 걱정 한입씩 먹어치우자> 특히 불안이 많은 젊은 세대의 친구들에게도 꼭 한 번 추천하고 싶은 책이기도 하다. |
기우(杞憂) 하늘이 무너질까 봐 걱정이 돼서 밥도 못 먹고 잠도 잘 자지 못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뜻하는 유명한 고사성이다.
학창 시절에 이 고사를 배울 때만 하더라도 '세상이 이렇게 밝고 아름다운데 왜 저런 이해할 수 없는 걱정을 하고 있지' 하며 공감 제로의 시각으로 바라봤었는데, 세월이 흐르며 나이를 먹을수록 걱정과 불안이 많아지는 나 자신을 바라보며 서글픈 감정을 느끼곤 한다. 과거의 나쁜 경험이나 안 좋았던 기억이 현재에 나를 힘들게 하는 경우도 많지만 걱정과 불안에 대한 대부분은 미래에 대한 것들이다.
특히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므로 이러한 불확실성이 불안의 주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확실성이 안 좋은 일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항상 머릿속에는 긍정적인 생각보다는 부정적인 생각이 더 많이 자리 잡으며 걱정과 불안의 몸집은 시간이 갈수록 커져만 간다.
과거 인류가 제대로 된 문명을 이루기 전 선사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위험 감지 능력으로써의 불안에 대한 민감성을 높였다곤 하지만 요즘과 같은 현대 사회와는 맞지 않는 부분이 분명히 있어 보인다. 걱정과 불안을 떨쳐버리는 첫걸음은 아마도 자기 자신에 대한 정확한 파악일 것이다.
세상에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분명 나 자신이겠지만 내가 누군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해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 상대방이 바라보는 나의 모습이 객관화된 시각으로 치부하며 진지한 자아 인식 없이 받아들이고 마는 것이다.
"자기 주관을 확고히 세우지 않으면 위험에 빠진다. 쉽게 무리를 따르고, 쉽게 무감각해지고, 쉽게 거대한 분노와 불안에 휩싸이며,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면 체내 감각은 희석된다. 독립적인 개체로서의 존재감이 상실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의 내면은 쉽게 외부의 영향을 받는다."
아무리 사람이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지만 요즘 사회는 집단 그리고 타인의 영향을 너무나 많이 받고 있는 것 같다. 특히 SNS와 같은 1인 미디어의 등장과 발전은 얼핏 보면 자아의 독립성을 표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적으로는 대리만족이나 내적 불안에서 벗어나려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불안과 걱정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 있다. 바로 '트라우마'다.
과거의 안 좋고 끔찍했던 경험이나 사건이 무의식 기억 저편 뇌리에 강렬하게 남아 현재의 나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의미한다. 관련하여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뜻하는 PTSD도 자주 언급된다.
많은 사람들이 이 트라우마를 벗어나기 위해 자신이 노력하여 감정을 제어할 수 있으면-자신이 감정의 통제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즉 나 자신의 문제만 해결하면 다시는 이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간다.
회복되기 위해서는 회복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아니라 '방치'가 필요하다고 책은 얘기하고 있다. 통제를 좇기 위해 더 노력하지 말고 트라우마를 일으킨 인지와 행동 방식을 버려라고 말이다. 이러한 인과를 깨야 다시는 그 상황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무대 위에서 자유분방한 연기로 관중을 사로잡던 코미디의 거장 중에는 예민하고 우울했던 사람이 많다. 어느 예술가와 철학자가 고통을 겪지 않았을까? 위대한 작품은 고통에서 나온다. 어떤 사춘기 소년이 막막한 길을 걷지 않았을까? 세상의 모든 사랑은 웃음과 눈물로 완성된다. 지진, 홍수, 전염병의 고통은 오히려 힘겹게 행복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모든 마음의 고통이 생명의 지혜와 잠재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삶은 늘 우리를 상처투성이로 만들지만, 나중에는 상처받은 곳이 가장 강해질 것이다.' 헤밍웨이의 말처럼 ‘트라우마’는 스스로 생명을 구할 ‘힘’이다."
불안과 걱정을 잠재우기 위해 저자가 제시하는 방법은 바로 '글쓰기'다. 일기가 됐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을 돌아보는 글쓰기를 꾸준히 하게 되면 분명한 효과를 보리라고 확신에 찬 어조로 얘기하고 있다. 바쁜 현대인의 일상 속에서 과연 우리는 남이 아닌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얼마나 갖고 있었나 되돌아보자.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의 모든 시선과 생각은 밖을 향하고 있다. 이제는 방향을 우리 내부로 돌려야 할 때가 되었다. |
『코끼리 같은 걱정 한입씩 먹어치우자』불안의 희망
1.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많은 걱정들을 하고 산다. 그 걱정들이 처음에는 사소한 것이었다가 걱정이 걱정을 낳으면서 코끼리 같이 커져버리면서 비로소 불안감이 엄습해 오기 시작한다. 『코끼리 같은 걱정 한입씩 먹어치우자』는 이렇게 커져버린 불안감을 한입씩 조금씩 잘라내고 최소화시키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리고, 가장 현명한 방법은 글쓰기를 통해 불안감을 해소하는 것이다. 하지만, 글쓰기가 모든 걸 해결해 준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글쓰기를 통해서 현실 속에서 불안을 해소할 방안의 길을 찾을 수 있다.
2.
나도 한 때는 한아름 걱정만 달고 사던 때가 있었다. 세상의 모든 것이 걱정이었다. 아침에 출근하는 것이 걱정, 돈이 없어서 걱정, 밥 먹는 게 소화 안될까 봐 걱정. 온통 걱정 투성이었다. 사람은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을 때, 그리고 정말 인생에서 소중한 것을 만났을 때 변한다. 나는 예수님을 통해 내 인생이 바뀌었고, 또한 글쓰기를 통해 내 인생이 편안해질 수 있었다. 한아름 걱정들은 예수님과 글쓰기가 해결해 주었다. 한아름 걱정을 안고 기도하던 때가 있었다. 아무것도 안 해 주시는 것 같은 예수님께서는 나의 미래를 이미 준비해 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내가 글쓰는 시간은 희망의 시간이었다.
3.
『코끼리 같은 걱정 한입씩 먹어치우자』는 불안과 함께 해 나가는 방법을 알려준다. 살면서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 불안 때문에 나를 기죽이는 것보다는 불안과 함께하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어떨까. 나의 경우는 그 불안이 글을 쓰게 했고, 글을 쓰면서 행복할 수 있었다. 다른 어떤 이에게는 그 불안이 사람을 만나게 할 것이고, 그렇게 만나는 사람들을 겪으면서 점점 더 성장해 나갈 것이다. 어떤 이는 불안이 일을 하게 할 것이고, 그 일이 나의 불안 섞인 삶에 희망을 줄 것이다. 불안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오늘의 불안이 나의 삶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4.
불안의 삶에서 벗어나려 애쓰지 말자. 나 역시도 그러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불안이 닥쳐올 때마다 그 불안을 안고, 이 불안과 함께해 나가는 방법을 생각해 볼 것이다. 그랬을 때, 불안은 나를 잠식하지 못할 것이고, 불안 덕분에 행복해질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불안이 내일의 나에게 아주 큰 희망을 가져다 줄 것을 오늘 나는 믿기로 한다.
- 리드리드출판에서 도서를 증정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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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걸까? 주위의 시선으로 내 안에 불안을 만들고 말과 행동을 스스로 제한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주변을 의식해 행동하다 보면 저절로 스트레스가 쌓이게 된다. 뿐만 아니라 살면서 진학, 취업, 결혼 그리고 매 순간 찾아오는 성공 vs 실패는 불안을 만든다. 아무렇지 않게 살지만 사실 불안의 정도가 강하고 장기간 유지되면 사회적 공포, 공황발작, 강박장애, 외상후스트레스장애 등 심리문제로 발전하게 된다. 세상을 먼저 산 사람들의 조언은 무디게 살면 그냥 살아지더라.. 그럼 그렇게 무디게 살면 행복할까? 왠지 행복에서 멀어지는 삶이 될 거 같다.
쉽게 풀리지 않는 걱정거리, 인간관계, 가족 간 갈등 등 이 불안을 뛰어넘고 풀어내기 위해서는 마음치료를 위한 의사와 심리학자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현실 여건상 여의치 않을 땐 [코끼리 같은 걱정 한입씩 먹어치우자]을 읽으며 불안한 마음 분석과 감정 치유를 해 본다.
책의 저자는 장신웨, 베이징 사범대학 교육심리학과를 졸업하고 세계의학교육연맹(WME)으로부터 국제 최면술사 및 IPA 소통 코치 인증을 받았고 경영 컨설턴트 겸 전문 트레이너이자 심리 자문가로 활동하고 있단다.
경쟁 사회에서 일의 성패나 인간관계에서 우리는 불안 증후군에 빠져있는 지도 모르겠다 상황에 따라 찾아오는 불안감을 이야기하면서 치유 방법을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풀어보고 있는데 특히 인터넷과 SNS, 스마트폰 등 뉴미디어 환경이 우리의 불안을 증폭시켰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사실 심리서들을 보면 불안이나 우울증을 설명하면서 명상이나 정신 수행 등 마음을 내려놓는 방법들을 권하다면 저자는 [글쓰기]를 제안한다. 현실에서 말하지 못하고 마음에 담아두었던 그것이 우울감으로 밀려올 때가 있는데 침묵했던 내 안에 있는 불안과 답답함을 글로 표현해 보면서 자신과 마주해 보는 것이다.
스스로 하는 글쓰기로 불안감과 친구되기
그래서 책은 인생의 단계마다 찾아오는 불안한 마음 분석과 감정 치유를 이야기하면서 각 장 말미에 글쓰기 방법을 안내하고 있다. 글쓰기는 필기구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고 우리가 문학작품을 창작하는 것이 아니니 글 재주가 없어 무엇을 써야 할지 막막할 땐 그냥 일상을 메모 형태도 괜찮다. 글쓰기는 자신과의 대화와 같아서 자신에게 건네는 인사로 시작해서 보고, 듣고, 느낀 바를 자신의 속마음을 진솔하게 드러내면 된다. 솔직한 내면을 쓰면서 자기를 탐색하게 되다 보니 자아성장과 치유가 되는데 글쓰기를 위한 시간을 정해서 계속해서 쓰면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머릿속이 온통 회사일에 집안일로 복잡하고 골치 아플 때 글이 떠오르지 않는다.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어서 글쓰기가 쉽지 않지만 이럴 땐 조용한 카페나 평소의 일과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장소나 혹은 잔잔한 음악으로 마음을 안정시켜 노력해 본다.
이렇게 글쓰기는 무심하게 썼던 글들이 가지런해지며 그 순간의 자신의 감정을 담아내면서 자신의 심리나 정서를 엿볼 수 있다. 그리고 내면이 성장하면서 삶의 변화를 이끌어 내면서 나를 웃게 만든다. 조급증이 사라지고 갈등하는 일이 줄어들면서 관계가 조화로워진다.
지금 불안과 걱정에 괴롭다면 글쓰기를 루틴으로 반복해 보면 어떨까?
글쓰기를 통한 마음 연마 글쓰기는 자신을 연마하는 과정이다. 차분하게 글을 쓰면 욕망이나 흩어진 마음을 수련할 수 있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글쓰기에 의존해 모든 일을 쓰고 기록하며 되새긴다면 문제를 되레 껴안는 꼴이 되므로 간단한 일들은 직접 행동해서 상황을 바꿔야 하며 글쓰기 형식에 심취해 화려한 수식어나 명언 등 가기 감동이 되기보다는 소박한 자신을 보여주자. 특히 감정을 지나치게 쏟아내고 분출하면 오히려 부정적인 생각으로 습관을 만들고 무기력하게 만드니 글쓰기에 지나친 분출을 자제하고 글쓰기에 너무 빠져 현실과 멀어질 수 있으니 친구나 가족, 사회적 관계가 우선되어야 한다. 물론 지나친 반성문 형식도 금물.
스스로 하는 글쓰기 연습은 오감을 활용한 몸의 감각을 쓰거나 다양한 감정을 표현해 보는 등 다양한 글쓰기 방법 등을 소개하고 있는데 꾸준히 감정을 표현해 보면 마음의 평정심을 찾게 된다.
불안은 스스로 몸집을 불린다 모두의 마음 속에는 코끼리 한 마디가 산다. 우리는 끊임없이 걱정을 한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은 인지, 감성, 인식을 한 쪽으로 치우치게 만들어 생각의 범위를 좁게 만든다,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놓이면 이에 대응하면서 그 상황을 벗어나려고 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행동을 안전행동이라고 하는데 이 안전행동이 더 많은 가능성을 잃게 한다는 것이다. 안일하게 안전 행동의 범위 안에 머물면 노력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자신을 돌아보면 공허함과 결핍에 힘들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 주관을 확고히 하고 나다워져야 한다. 기준을 상실한 채 외부 세계와 충돌하면 자아인지는 혼란에 빠져 아주 사소한 자극에도 엄청난 불안을 느끼기 때문에 타인의 영향력에 흔들리지 않도록 자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
가끔 자기 삶을 공허하고 무의미하게 느끼며 '나는 누구인가?'라는 고민을 끝없이 한다. 누군가는 인터넷상에서 익명으로 폭력적인 표현과 선을 넘는 언행을 한다. 그 순간 해방감을 느낄지 모르지만 이는 필연적으로 '정체성 상실'이라는 부작용을 낳는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는 집단 속에서 자신의 경계를 지키라고 조언한다.
자아 역량을 발현할 자아는 발달의 기초이자 자아인지의 재료이며 나아가 자아경계를 지키는 힘이 되니 타인의 인정이 없더라도 자신이 유일한 존재임을 인식하고 자아 역량은 자기 통제로 상승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의식주에서부터 자기 통제를 시도해 보면서 부단히 자아 역량을 넓히고 긍정함으로써 자기 역량을 확인하고 신뢰해야 한다. 이렇게 존재감, 통제감, 확신감을 쌓아야 한다.
행복한 사람은 일생을 어린 시절에 의해 치유를 받지만, 불행한 사람은 어린 시절을 치유하는 데 일생을 보낸다. 불안은 잠재의식에서 생기는 것일까?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과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은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 저자는 참 재미있는 표현을 한다. '마음 깊이 자리 잡은 어린 시절의 경험은 블랙박스에 숨겨진 비밀.' 알게 모르게 우리의 생각화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생리적, 심리적 경험은 생명의 기초가 된다고.
나는 행복한 사람인가? 불행한 사람인가? 자신의 생각과 기분, 감정, 행동이 가물가물한 어린 시절에서 비롯되었음을 깨닫기만 하면 된다. 어린 시절의 비밀이 밝혀지면 삶에서 다양한 경험을 한 뒤에도 결국 어린 시절의 토양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 부모가 격렬히 싸우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면 긴장된 분위기와 초조함이 기본 정서에 깊은 흔적을 남기게 되는데 암묵 기억 중의 불안과 공포는 어느 순간 은밀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상대와 충돌이 일어날 때마다 과장되게 당황하거나 사소한 일로 배우자와 싸우게 되는데 그 원인은 마음 깊은 곳에 싸우는 소리가 떠나지 않고 남아 있기 때문이란다. 안정된 애착을 형성한 사람은 두려움과 곤경에 쉽게 빠지지 않는다. 인간관계를 편안하고 친밀한 경험으로 발전시키지만 회피적 애착과 양가적 애착을 형성한 사람은 내면 깊은 곳에 불안을 잠재우고 있어 평생 자신을 치유해야 한다.
책에는 자신을 돌보며 부정적 정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이 나온다. 그리고 원망에서 자기 마음과 화해하는 방법 등으로 나를 찾게 해 준다.
재미있는 표현, 품위 있는 가난.. 우리는 SNS에 올리는 사진에 부러움을 산다. 자기 돈을 자기 마음대로 쓴다는 데 뭔 상관일까? 아니면 과소비라 해도 품위를 유지하는 것은 자신의 존재감을 살리기 위함일까? 생각의 차이가 분명한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인생에 대한 자신의 통제력을 상실하면 안 된다는 것이 아닐까?
책은 삶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그리고 아픈 상처를 극복하고 회복시켜 성장으로 바꿀 수 있도록 인도한다. 불안을 지혜롭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나에 대한 글쓰기'로 평정심을 찾는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불안을 다스리게 된다.
#코끼리같은걱정한입씩먹어치우자 #리드리드출판 #불안 #걱정 #심리학 [저는 이 책을 해당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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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단계마다 찾아오는 불안한 마음분석과 감정치유법 『코끼리 같은 걱정 한입씩 먹어치우자』
모두의 마음속엔 불안이라는 이름의 코끼리가 산다 평정심을 되찾을 때까지 글로 나를 만나고 표현하자.
사랑, 이별, 진학이나 취업, 성공이나 실패 등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상황들은 모두 불안의 도가니이다. 불안은 내면의 균형이 깨지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이를 긍정적으로 보면 적절한 경각심을 갖게 해주고, 내면 상태를 조절하여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와준다. 그러나 불안의 정도가 강하고 장기간 유지되면 사회적 공포, 공황발작, 강박장애, 외상후스트레스성장애 등 심리 문제로 발전하게 된다.
고통스러운 경험이 반드시 성장을 가져온다고 보지 않는다. 고통은 성장의 서곡일 뿐이다. 불안감이 초래한 자기만족은 어렵고 완벽한 과정을 거쳐도 성장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성장에는 정답이 없다. 한계치도 없고 기준도 없다. 용감하고 진솔하게 자기 내면과 마주 할 때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진리만 자굥한다. 그러므로 내면의 진실한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성장의 길을 걷고 있다면 마음은 언제나 풍요롭고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의 내면은 충돌과 갈등으로 가득 차 있다. 사람의 인생도 예술과 같다. 고통을 인내하고 이겨내는 일은 '만족을 지연'시키며 자기를 통제하는 과정이다. 불안이 생명의 잠재력을 일깨우며 큰 불안감을 견딜 힘을 준다. 불안의 이면에는 안정과 도약이 있다. 불안을 통제하는 것은 창조와 인간성의 승화를 의미한다. 욕구를 충족하고자 지나치게 목표지향적인 삶을 산다면 결코 이루어낼 수 없는 과업이다.
길고 긴 양육의 과정에서 끊임없이 자아의 성장을 돌아본다. 이 모든 과정에는 수확과 발전이 있다. 이를 즐기는 과정은 자연히 좋은 결과를 낳는다. 자신의 꿈을 잊지 않는 한 인생은 헛되지 않다. 한 걸음 한 걸음 모두 의미 있다.
자신의 나약함과 무력함을 받아들이고 갈망과 필요를 인정하자. 자신이 모르는 것, 할 수 없는 것, 지금 없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 어느 부분에 더 두각을 나타내는지 알고 어떻게 노력해야 꿈을 실현할 수 있는지 깨달아야 한다. 자신을 사랑하는 전제는 진실한 자아 상태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조금씩 더 나아지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이상만 추구하다 공허함과 초조함에 빠지지 말자. 자기 내면에 기쁨을 채우는 것이 자신을 사랑하는 길이다.
글쓰기는 자신과의 대화이다. 진실한 자신과 솔직하게 만나 허심탄회하게 나누는 이야기가 글이 된다. 우리는 불안을 지혜롭게 이해하고 받아들여 함께 공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 책에 제시된 글쓰기 방법으로 이성, 평화, 자존감, 자신감을 형성하고 우호적이고 긍정적인 삶의 태도로 발전하도록 '나에 대한 글쓰기'로 불안을 한입씩 먹어치워 보자! |
무엇인가가 걱정될 때,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나 같은 경우 다른 일에 몰두하면서 불안을 잠재우는 편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 자신도 진정되면 생각보다 걱정이 별일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은 그 시간을 다른 일을 하면서 넘어가려고 한다. 걱정이나 불안을 무시하면서 넘어가는 나와 달리 작가는 글쓰기를 통해 불안을 해소한다. 그리고 그런 내용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써서 독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물론, 책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글쓰기라는 것에 부담감을 가질지도 모른다. 글쓰기를 통해 무엇인가를 새롭게 창조해 내고 거창한 결과물을 만들어야 할 것처럼 생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가 말하는 글쓰기란 그런 거창한 것이 아니다.
글쓰기를 통해 자아 성장과 치유를 할 수 있다는 점은 너무나 명백해 보인다. 못 믿겠다면 최근에 나온 자기 계발서를 몇 권 펼쳐보자. 우울증이나 다양한 이유로 힘들어하는 많은 사람들이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어떻게 성장할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 쉽게 눈에 띌 것이다.
목차를 읽고 책을 읽어나가다 보니 이 책의 구성이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 작가가 풀어놓은 이야기의 흐름은 일상생활 속에서 불안이 생기는 이유가 무엇인지, 현대인들은 어떤 불안에 노출되어 있는지를 소개하고 있다. 예를 들어 SNS나 미디어를 통해 보이는 이미지가 불러온 부러움이 어떻게 불안을 유발하는지, 가정을 이룬 젊은 세대가 어떤 갈등에 노출되어 있는지 등을 다루고 있다. 또, 그런 불안이나 갈등이 심리에 어떤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지도 다루고 있다. 나아가 작가는 각각의 장에서 이런 불안을 다스리기 위해 주장하는 글쓰기 방법을 조금씩 제시하고 있다. '글쓰기로의 초대' 부분에서는 글재주가 없거나,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 쓰여 있으며, 나아가 글쓰기를 위해 어떤 도구를 활용할 수 있을지도 소개하고 있다. 나아가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어떤 내용을 쓸 수 있을지도 소개하고 있어 부담 없이 글쓰기를 시작해 보도록 돕고 있다. 평소 걱정이 많거나 불안감을 해소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읽고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책이다. -그래플 서평단 활동을 통해 읽게 된 책 |
단 하루도 불안하지 않았던 적이 있을까? 애써 기억해본다. 힙겹게 쥐어짜본다. 아주 가끔씩은 찾아와 주었던 행복이란 놈. 또렷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떠올려본다. 행복함이 익숙치 않은 우리였기에 그 낯선 감정 앞에 허둥대느라, 그 기분이 무엇인지 낚아 채기도 전에 떠나버리고는 했다. 놓치고 나서야 떠나버린 그 놈의 정체를 알아버렸지만 이런 바보같은 일상은 매번 반복되었다. 그 찰나의 시간 마저도 행복이란 것을 오롯이 느낄 겨를 없이 바빴다. 아니 어쩌면 그 방법을 몰랐던 것 같다. 괘종시계의 저울추와도 같은 인생사라 삶의 어떤 순간에도 온전하게 집중하지 못한채 갈팡질팡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왜냐고? 바로 '불안함' 때문에. 실체가 보이지 않아 더욱 두려운 존재. 이래도 불안 저래도 불안이다. SNS에 넘쳐나는 타인의 일상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의 불안에 차곡차곡 돌덩이를 얹어 놓고 있다. 자비 따위는 없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막막함은 불행히도 나에게만 해당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더 불안하기만 하다. 시지프 신화 속 시지프의 형벌처럼 나의 불안은 네버엔딩으로 계속될 것만 같다. 만약 평생 떨쳐낼 수 없는 불안이라면, 이것이 결국 인간의 운명이라면, 대체 어떻게 이 놈팡이와 공생할 수 있는 것일까? 도무지 환영할 수 없는 초조함과 걱정들. ? ? 가시밭길 같은 삶이라도 모든 순간에 기쁨이 깃들어 있다 ? p.91 ? 건강한 나르시시스트는 외적인 성과를 잃더라도 삶을 만끽하고 용감하게 사랑할 수 있다 ? p.102 ? ? ? 다양한 기술력과 1인 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전능감에 물든 우리는 과거 대비 더욱 외부조건에 휘둘리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가랑이가 찢어져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황새를 따라잡기에 급급하다. 당장 필요한 것은 치료와 휴식인데도 불구하고 타이밍을 놓쳐 버린다. 도약할 기회를 져버린다. 도저히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나서야 깨우치고 후회한다. ? ? ? 다른 사람의 기준으로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 ? p.103 ? ? 과학 문명의 발달로 개방적이고 다원화된 시대를 살지만, 개인의 이상은 오히려 단순화되고 직관적으로 변했다. ? p.113 ? ? 현실이 불안할수록 미래를 꿈꾸며 이상이 이루어졌을 때를 상상한다 ? p.116 ? ? ? 내면의 결핍과 현재의 상황에서 도피하는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미래로 유보시키는 것만큼 쉬운 합리화는 세상 어디에도 없으니까. ? ? ? 행복한 사람은 일생을 어린 시절에 의해 치유를 받지만, 불행한 사람은 어린 시절을 치유하는 데 일생을 보낸다 ? p.124 ? ? ? 기대와 환상 자체를 버려야 한다 ? p.137 ? ? 내면세계가 약하면 자기 현실을 이상화한다 ? p.172 ? ? 트라우마가 부르는 또 하나의 문제가 바로 학습된 무기력이다 ? p.202 ? ? 그들은 살아 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각성의 순간이 필요하다 ? p.225 ? ? 자유로운 개인이 더 초조한 이유는 뭘까? 삶을 온전하게 책임질 의무를 떠맡기 때문이다 ? p.230 ? ? 알고도 행하지 않는 것은 전혀 모르는 것과 같으며 오직 행동만이 현실에서 변화를 일으킨다 ? p.230 ? ? ? 불안은 스노우볼 같아서 순식간에 몸집을 키운다. 어차피 불안없는 인생이란 없으므로 동반자로 인정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스노우볼로 신나게 눈싸움을 할지 그 크기에 압도당해 질식사 할지는 모두 내 손안에 달렸다. 그 엄청난 것이 내 손 안에 있다는데, 어찌보면 우쭐할만한 일이다! 피하거나 없애버릴 방법은 없지만 잘 다룰 수는 있는 것이 불안이다. 이왕이면 적으로 등돌리기 보다는 친구로, 동지로 곁에 두고 잘 활용해 보는 것. 이것이 바로 숙명을 받아 들이는 인간의 지혜아닐까. |
인생의 단계마다 찾아오는 불안한 마음 분석과 감정 치유법 현대인이 시달리고 있는 가장 큰 병증이라고 한다면 아마도 불안이라고 이야기를 해야 될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보자면 그들 중에서 어느 정도의 불안감을 가지고 살지 않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불안은 우리의 일상을 차지하는 가장 큰 감정의 하나가 된 것 같다. 사실 그렇게 말하고 나니, 조금 서글픈 생각이 들기는 했다. 현대인을 대표하는 감정이 자존감이나 만족감이나 행복감이 아니라 불안이라는 사실말이다. 불안이라는 감정이 전근대사회에서도 흔한 인간의 감정이 아니냐는 반문은 할 수 있다. 그것을 현대인만 가지고 있는 특정한 신경증이라고 말할 근거가 없다고 주장할 지도 모른다. 이러한 반대되는 생각이 절대적으로 틀린 것은 아니다.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역사를 시작하기 이전의 선사시대에 있어서 아마도 공포와 불안감은 너무나도 보편적인 감정이었을 것이고 생존에 필수적이었을 것이다.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감지하고 미리 피할 수 있다면 좀 더 자신의 안전을 챙길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다. 인간이 역사시대에 들어와서, 철학과 종교를 통해서 가치관을 정립하고 사회를 이룬다. 이제 광양에 내던져진 외로운 존재가 아닌 것이다. 우리가 가지는 가장 근원적인 불안은 아마도 우리 모두는 결국 죽는다는 사실이다. 전근대에 있어서 죽음은 지금보다 휠씬 가까웠다. 생산력의 한계와 사회구조의 부조리 인해서 대부분은 40세를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영아 사망률은 지금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았다. 아마도 종교가 사회를 지탱하는 기반이 된 것은 그러한 현실이 반영된 것은 아닌가 생각되었다. 그러나 현대인은 이제 종교라든지 정치적 구호에 자신의 정체성을 맡기지 않는다. 전근대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태어난 촌락을 벗어나지 못했다. 여행이라는 개념은 없었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 되는지 심지어 자신이 누구인지도 알 필요가 없었다. 민족이라는 개념도 현대와 같은 국민국가의 개념도 없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어쩌면 전근대사회의 사람들이 오늘날 우리가 겪는 불안과는 다른 감정을 가지고 살았다는 것은 이러한 사실에서 유추해볼 법하다. 현대인이 가지는 자유는 이제 우리에게 스스로의 가치관과 길을 찾도록 주문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그러한 주문을 잘 이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집단주의에 빠지고 정치적 구호와 종교적 근본주의에 빠진다. 그 모든 것은 결국 나와 마주한 모든 것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다. 이 책의 저자가 말한 것처럼, 무엇인가 쓴다는 것. 그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쓴다는 것은 단순히 글자를 쓰는 행위가 아니라 그 행위의 과정에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이 좋다. 문득 대학시절부터 했던 습관이 생각났다. 기분이 우울해지고 불안해지면,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 끄적거리기 시작했다. 지금처럼 미세먼지가 심하지 않았던 그 때 잔디밭에 누워서 햇빛을 맞으며 맥주를 마시던 일들, 좋아했던 선후배들과 축제기간에 모여 앉아서 막거리를 마시던 일들, 그런 일들을 글로 적으면 어느 순간부터 기분이 좋아졌다. 불안감이라는 감정을 다스리는 데 어쩌면 글쓰기가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은 현대인이 가지는 불안을 이기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본인의 주관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를 괴롭히는 불안에서 조금은 더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 책의 저자처럼 글쓰기는 그 과정에 있어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아닐까? 일독을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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