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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나는 이름이 있었다..
"[104] 나는 이름이 있었다.." 내용보기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을 이해하고 사람을 오해했습니다 사람이라 이해하고 사람이라 오해했습니다 사람을, 마침내 사람됨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시인의 말 中    [ 손을 놓치다 ] 분침이 따라잡지 못한 시침 마음과 따로 노는 몸 체형을 기억하는 데 실패한 티셔츠   매듭이 버린 신발 끈 단어가 놓친 시 추신이 잊은 안부   그림자가 두고 온 사람 아무도 더듬치
"[104] 나는 이름이 있었다.." 내용보기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을 이해하고 사람을 오해했습니다

사람이라 이해하고 사람이라 오해했습니다

사람을, 마침내 사람됨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시인의 말 中 

 

[ 손을 놓치다 ]


분침이 따라잡지 못한 시침

마음과 따로 노는 몸

체형을 기억하는 데 실패한 티셔츠

 

매듭이 버린 신발 끈

단어가 놓친 시

추신이 잊은 안부

 

그림자가 두고 온 사람

아무도 더듬치 않는 자취

 

한 명의 우리

 

[ 서른 ]

 

뜬구름을 잡다

어느 날 소낙비를 맞았다

생각 없이 걷다가 길을 잃기도 했다

생각이 없을 때에도 길은 늘 있었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그런데 머리는 왜 안 돌아갈까?

 

너무 슬픈데 눈물이 한 방울도 나지 않았다

다음 날, 몸 전체가 통째로 쏟아졌다

 

어른은 다 자란 사람이란 뜻이다

한참 더 자라야 할 것이다

나이를 먹어도 먹어도

소화가 안되는 병에 걸렸다

 

[ 한발 ]

 

이 사람아, 지금 오면 어떡해!

이 사람아, 벌써 가면 어떡해!

 

시침과 분침과 초침

정확히 두번 만나는 동안

 

늦거나 일렀다

 

아무리 간발에 다가가도

감정을 에누리할 수는 없었다

 

[ 사람 ]             
 

이 사람아 이게 대체 얼마 만이야!

우리는 길에서 만났다

처음으로 교복을 벗고 만났다

 

서로의 이름을 잊은 채

 

어딘가 낯이 익고

익숙한 냄새가 나고

사람임은 분명해서

 

너는 쫙 편 손바닥을 내밀었다

손바닥에는 이름 대신

손금이 구불구불했다

 

어떤 길을 따라가도 순탄 할 것 같았다

 

눈이 있는 사람

사람 보는 눈이 있던 사람

 

재물선이 선명해서

나는 네가 큰사람이 될 줄 알았지

 

너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손금이 목구멍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사람을 좋아하던 사람

사람 좋은 사람

 

잘못을 해도 쉽게 인정해서

나는 네가 새사람이 될 줄 알았지

 

손금 하나를 무작정 따라가다

갈림길에 섰다

 

등을 댈 것이냐 돌릴 것이냐

 

내가 뱉었던

네가 들었던

모진 말이

등줄기로 흘렀다

 

어딘가 귀에 익고

친근한 말맛이 나고

 

억양마저 확실해서

나는 쫙 편 손바닥으로 얼굴을 덮었다

양 볼이 뜨거워서

손금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손바닥을 맞추곤 하던 사람이

가차 없이 손바닥을 뒤집어버리듯

 

등을 돌리고 비틀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이 사람아 벌써 가면 어떡해!

 

사람이 사람을 불렀다

 

방금 전까지는

사람이었던 사람을

이 사람을

 

...  소/라/향/기  ... 

s******8 2022.07.24. 신고 공감 16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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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름이 있었다》 사람의,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시집
"《나는 이름이 있었다》 사람의,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시집" 내용보기
<왼손은 마음이 아파>에 이어 두 번째로 읽은 오은 시인의 시집. 같은 시인이 썼고 비슷한 시기에 나온 시집이건만, 왠지 나는 두 시집이 서로 많이 다르다고 느꼈다. <왼손은 마음이 아파>에 실린 시들이 간결하고 담백한 느낌이라면, <나는 이름에 있었다>에 실린 시들은 왠지 모르게 묵직하고 진한 느낌이랄까.  그러고 보니 순백의 표지와 진녹색의 표지가 각 시집의 느낌을
"《나는 이름이 있었다》 사람의,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시집" 내용보기



<왼손은 마음이 아파>에 이어 두 번째로 읽은 오은 시인의 시집. 같은 시인이 썼고 비슷한 시기에 나온 시집이건만, 왠지 나는 두 시집이 서로 많이 다르다고 느꼈다. <왼손은 마음이 아파>에 실린 시들이 간결하고 담백한 느낌이라면, <나는 이름에 있었다>에 실린 시들은 왠지 모르게 묵직하고 진한 느낌이랄까.  그러고 보니 순백의 표지와 진녹색의 표지가 각 시집의 느낌을 미리 알려주는 듯도 하다.


<나는 이름에 있었다>에는 33편의 시와 2편의 글이 실려 있다. 이중 제목이 '~사람'인 시만 21편이다. '도시인', '애인', '무인공장', '주황 소년'처럼 사람을 뜻하는 한자 '인(人)'과 사람의 하위 분류에 속하는 '소년'이 제목에 들어있는 시를 더하면 총 25편이 사람에 관한 시다('58년 개띠'도 사람의 특성을 나타내는 단어가 포함된 제목이지만 여기에는 포함하지 않았다). 그만큼 시인이 사람을 만나 사람을 겪고 사람을 생각하고 관찰하여 쓴 시가 많이 담겨 있다. 시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람답게 사람을 궁리하'여 쓴 시들이랄까.


이중 가장 마음에 남는 시는 '유예하는 사람'이라는 시다. 시 속 화자는 새벽에 고등학교 동창의 죽음을 알리는 부음을 받는다. 장례식장에 도착한 화자는 그제야 친구와 '친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둘은 한때 같은 축구부에서 공을 찼고, 부활동이 끝난 후 옷을 갈아 입으며 장래에 뭘 하고 싶은지에 관해 이야기하곤 했다. 졸업 후 화자와 친구는 오랫동안 소원했다. 화자는 그 시절 그 추억은 그대로인데 친구는 더 이상 지금 여기에 없다는 사실이 야속하다고 느낀다. 멀리 있다고 느꼈던 죽음이 이만치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고 허기가 진다.


이 시가 유독 마음에 남는 건 시 속 화자와 거의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작년 여름에 고등학교 때 친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등학교 시절 가장 친하게 지낸 친구였고, 서로의 사정으로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기에 장례식장에서 영정 사진을 본 순간 슬픔과 미안함과 원망과 죄책감의 감정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장례식장에서 친구와 이별한 후 오늘까지 단 하루도 친구 생각을 안 한 날이 없다. 친구와의 추억은 그대로인데 정작 친구는 지금 여기에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읽는 사람'이라는 시도 좋았는데, 이 또한 시 속 화자가 나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취미가 뭐냐고 묻는 질문 앞에 작아지기 일쑤였던 화자는 독서가 가장 무난한 취미라는 말을 듣고 읽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다. 그 날부터 화자는 언제 어디서나 읽었다. 벤치에서든 식당에서든 지하철에서든 화장실에서든 계속 읽었다. 책이나 잡지나 신문이나 벽보나 전단이나 우윳갑 뒷면에 적힌 영양 성분까지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공원에서 자주 마주치던 사람이 그에게 다가와 물었다. '근데 읽지 않을 땐 대체 무얼 하세요?' 그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수만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을 읽었지만 그는 정작 제 마음만은 읽지 못했다'


처음엔 이 시를 낄낄거리며 읽었다. 언제 어디서나 닥치는 대로 읽는 화자의 모습이 너무 나 같아서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마지막 문장을 읽고서는 도저히 웃을 수가 없었다. 읽는 것 말고는 다른 취미가 없어서, 이제까지 수천 권에 달하는 책을 읽었지만 정작 내 마음만은 읽지 못해서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어쩌면 이제 나에게 '읽는 사람' 말고 다른 별칭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쓰는 사람', '만드는 사람', '하는 사람' 등등.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이 될까. 나부터 기대된다.   

이달의 사락 j****y 2019.04.2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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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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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리하는 사람 : ... 이야기가 났으니 말이지. / 사람에게는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지/ 숨기고 싶고/ 들킬까 봐 전전긍긍하고/ 그래도 누군가는 알아줬으면 하는 이야기...- 도시인 : #지하철 - 훗날을 기약하는 마음으로 갈아탄다/ 막히지 않기를/ 이따금 숨 고를 수 있기를/ 땅 아래로 들어가/ 강 위를 달리기도 한다...- 손을 놓치다 : 분침이 따라잡지 못한 시침/ 마음과 따로 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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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리하는 사람 : ... 이야기가 났으니 말이지. / 사람에게는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지/ 숨기고 싶고

/ 들킬까 봐 전전긍긍하고/ 그래도 누군가는 알아줬으면 하는 이야기...

- 도시인 : #지하철 - 훗날을 기약하는 마음으로 갈아탄다/ 막히지 않기를/ 이따금 숨 고를 수 있기를/ 땅 아래로 들어가/ 강 위를 달리기도 한다...

- 손을 놓치다 : 분침이 따라잡지 못한 시침/ 마음과 따로 노는 몸... 매듭이 버린 신발 끈/ 단어가 놓친 시/ 추신이 잊은 안부/ 그림자가 들고 온 사람/ 아무도 더듭지 않는 자취/ 한 명의 우리.

- 주황 소년 : ... 소년이 주황 소년에서 성장하려고 할 때마다/ 노을은 밤새 볼을 붉혔어/ 길을 가다 난데없이 오렌지가 후두둑 떨어졌어/ 능소화는 겨울에도 피어났어/ 꿈속에서도/ 체리 껍질과 바나나 껍질을 밟고 미끄러졌어...

- 58년 개띠 : 앞만 보며 달려 왔어요/ 뒤를 볼 겨를도 없었어요... 더 이상 갈 데가 없어서 멈췄어요/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속마음을 들키기라도 한 듯/ 그림자가 꿈틀거렸어요/ 뒤를 돌아보니 거울이 있었어요/ 내가 있었어요/ 잊고 있었던 얼굴에는 물굽이가 가득했어요/ 어디로 흘러도 이상할 게 없는 표정이.

k****6 2018.11.2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