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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처럼 자라는 책
<나무처럼 자라는 집>은 저자인 임형남과 노은주 부부가 20년 전인 2002년에 출간한 책으로, 10년마다 개정판을 내고 있다. 2011년 첫 번째 개정증보판을 내면서 새로 쓴 글을 모아 ‘오래된 시간이 만드는 건축’[2022년 판의 2장]을, 2022년 두 번째 개정증보판을 내면서 새로 쓴 글을 모아 ‘집은 땅과 사람이 함께 꾸는 꿈’[2022년 판의 1장]을 각각 추가했다고 한다. 덕분에 초판의 1장과 2장이었던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들’[2022년판의 3장], ‘나무처럼 자라는 집’[2022년판의 4장]은 각각 3장과 4장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표지도 앞 표지는 20년 전인 2002년의 표지를, 뒤 표지는 20년 후인 2022년의 표지를 담았다고 한다. 말 그대로 ‘나무처럼 자라는 책’이 아닐까?
집은 사람이 짓지만 시간이 완성한다
집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집을 짓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집’이라고 했을 때, 그 공간은 사람이 사는 공간, 즉 생활공간을 의미한다. 따라서 집을 짓는다는 것은 기초를 깔고 기둥을 세우고 벽을 붙이고 지붕을 덮는 물리적인 일에 머무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순히 하드웨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컴퓨터를 써 본 사람이라면 알듯이 하드웨어만 가지고 컴퓨터를 사용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집도 사람의 삶이란 소프트웨어가 덧대어야 비로소 온전해진다. 사람이 살던 곳에는 시간의 퇴적물만 쌓입니다. 사람이 머물렀던 것은 그저 흔적으로만 남을 뿐입니다. [p. 128]
그래서 저자들은
집은 사람이 짓지만 시간이 완성합니다. 집이란 짧은 시간 동안 단번에 지을 수 없는 이야기라는 의미이기도 하고, 집 자체가 스스로 완성을 유보한 채 시간을 두고 천천히 완성되어 간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p. 125]
라고 말한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집을 경제적 가치로만 본다. 생활공간인 집[家]이 아니라 투자했다가 되팔아 수익을 창출하는 재산증식의 수단인 부동산(不動産)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의 종류, 위치와 평수 등에 집착할 수 밖에. 물론 집만 그런 것이 아니다.
현대의 집은, 오늘의 건축은 기능과 과시적 형상, 놀라운 조형과 효율에 기본적인 가치를 양보하고 있습니다. 그러 인해 건축의 성공과 실패를 판단하는 기준에 경제성과 데이터, 경이로운 외관이 앞서고, 건축은 점점 온기도 없고 성찰도 없는 기계와 닮아가고 있습니다. [p. 39]
일단 글을 쓰면 그 글에 대한 감상과 해석은 읽는 이의 몫이라고 한다. 집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일단 집이 지어지면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의해 스토리텔링이 이루어지고, 집이 완성되어 간다.
이제는 집도 사람도 다시 자신만의 이름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은 자신이 만드는 것입니다. 집은 ‘껍질’이기도 하고, ‘재산’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입니다. 산다는 것은 자신을 구체적인 의미로 실현하는 과정이 아닐까요? 사회생활을 하고, 일에서 성과를 거두고, 자식을 낳아 기르는 일들이 자신을 실현하는 일입니다. 말하자면 세상에서 존재를 확인하는 일입니다. 저는 집을 짓는 것도 그 범주에 든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생각을 담아, 자신의 꿈을 담아 집을 지을 때 가능한 이야기지만 말입니다. 제가 옛집을 좋아하는 것은 옛집에 가면 그 주인을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만한 집, 겸손한 집, 작지만 생각이 큰 집. 저에게는 집을 읽는 즐거움을 주고, 그 집에 사는 자손들에게는 말로 표현되지 않는 집안의 이야기가 전해질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을 담고 자신의 손을 거쳐 집을 지을 때 그 집은 바로 자신이 될 것입니다. [pp. 251~252]
한국식[Korean Style]이라는 것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는 같은 문화권이고 오랜 시간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문화가 섞이기도 해서 구분이 쉽지 않습니다. [p. 51]
하지만, 한국적인 것, 아니 다른 두 나라와 구별되는 특징은 존재합니다.
가장 눈에 띈 것은 공간의 경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두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는 공간의 경계가 약간 모호하며 서로 넘나듭니다. 가령 정원을 예로 들어보면, 중국이나 일본의 정원은 그 경계가 칼로 자른 것처럼 선명하고 명확합니다. ‘여기까지는 정원이고 여기까지는 사람이 앉아서 감상하는 곳’ 그런 식입니다. 경계뿐만 아니라 각 공간의 프로그램도 아주 정확합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의 정원은 그 경계를 손으로 선을 뭉개놓은 것처럼 아주 흐릿합니다. 심지어 그곳이 정원이지 그냥 풀들이 자라서 만들어진 풀밭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을 때고 있습니다. 자연의 일부가 인간의 영역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공간이 정지해 있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고 살아 있는 것 같은 역동성이 느껴집니다. [pp. 51~53]
좋은 집이란
좋은 집이란 어떤 집일까? 저자들은 현학적으로 얘기하는 대신 구체적인 사례들을 들어 얘기하고 있다.
2011년 한국공간디자인대상을 안겨준 금산주택의 모델인 도선서당을
아주 작은 집이지만, 큰 생각을 담고 있습니다. 퇴계는 자신을 낮추고 남을 존중한다는 ‘경(敬)’의 사상을 바닥에 깔고 단순함과 실용성과 합리성을 추구했습니다. 즉, 그 집은 퇴계 자신이라는 현실과 자신을 만들어주고 지탱하게 해주는 책이라는 과거와 그에게 학문을 배우는 학생들이라는 미래를 담은 집입니다. 그리고 참 아름다운 집입니다. 작고 소박한 집에 우주가 담깁니다. 그 말만 들어도 마음이 두근거립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달에서도 보일 정도로 큰 신전과 같은 거대한 집이 아니라, 생각이 담긴 집입니다. 게다가 그 생각이 높고도 향기롭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요. 도산서당은 우리가 건축가로서 늘 꿈꾸던 그런 집이었습니다. [pp. 57~58]
라고 설명하고 있다.
저자들이 최고의 집으로 손꼽는 산천재의 경우에도
산천재는 남명 조식 선생의 서재였고, 생을 마감한 장소라고 합니다. 지리산이 덕산 쪽으로 흘러내려오다가 덕천강가로 들어가는 흐름대로 집을 앉혔습니다. 아무런 자기 주장도 없어 보이는 낮은 집이지만, 집을 드러내지 않고 산의 흐름에 몸을 맡긴 그 모습이 근엄합니다. 그리고 절대 낮아 보이지 않더군요. 격이 있습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주위와 어울리는 품위가 있습니다. [p. 240]
라고 말한다.
한편으로는 요즘 각광받고 있는 나무집이나 흙집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통해, 좋은 집이 좋은 재료로만 만들어지지 않음을 피력하기도 한다.
저 역시 숨 쉬는 집이란 내외부 공간이 서로 숨 쉬듯 호응하고 동네의 집들과 함께 호흡하는 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중략 ~ 흙집이든 나무집이든 건강에 좋다고 하더라도 주변과 유리되고 일반의 수준과 유리된 과시용 집이 된다면, 그 집은 결국 땅과 주위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 ‘숨 막는’ 집이 될 것입니다. 숨 쉬는 집이란 주위와 호응을 하고 공간끼리 호응을 하며 시대와 호응을 하는 집이라고 생각합니다. [pp. 312~315]
따라서 저자들은 자연스럽고 유기적인 집을 좋은 집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제는 존재할 수 없겠지만 그런 집들이 모여 있는 동네가 좋은 동네가 아닐까?
자연스럽고 편안하고 의도가 없어 보이는 집들. 의도 없이 자연스레 형성된 마을. 그러나 유기적으로 소통되고 아무런 문제없이 잘 돌아가는 동네. 사는 것에 대한 욕망, 아름다운 것에 대한 욕망, 그런 것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 없이 자연스러움만으로 구성된 집들, 무위의 집들. 산에 길이 나듯이 집들이 한 채씩 지어져 동네를 형성하고 길들이 만들어진 듯합니다. 벽을 세우고 창을 뚫고 문을 만들고 마루를 깔고 표정을 주어가며 집들이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p. 263]
옥의 티
p. 125 집이란 짧은 시간 동안 단번에 지을 수 없는 이야기라는 의미이기도 하고, 집 자체가 스스로 완성을 유보한 채 시간을 두고 천천히 완성되어 간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 집이란 짧은 시간 동안 단번에 지을 수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집 자체가 스스로 완성을 유보한 채 시간을 두고 천천히 완성되어 간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 집이 이야기가 아닌 이상 문맥상 ‘없는 이야기라는 의미이기도 하고’보다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하고’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고’가 적절하지 않을까요?
p. 128 사람이 살던 곳에는 시간의 퇴적물만 쌓입니다. 사람이 머물렀던 것은 그저 흔적으로만 남을 뿐입니다. ⇒ 사람이 살던 곳에는 시간의 퇴적물만 쌓입니다. 사람이 머물렀던 곳은 그저 흔적으로만 남을 뿐입니다. : 문맥상 ‘머물렀던 것’보다 ‘머물렀던 곳’이 적절해 보인다.
p. 247 자신을 다른 계층과 구분 짓고, 누군가에게 군림하려는 그런 ‘사(斯)’가 끼어 있는 당당함은 단지 엘리트 의식이나 선민의식으로밖에는 읽히지가 않습니다. ⇒ 자신을 다른 계층과 구분 짓고, 누군가에게 군림하려는 그런 ‘사(私)’가 끼어 있는 당당함은 단지 엘리트 의식이나 선민의식으로밖에는 읽히지가 않습니다. : 의미상 이 것, 잠시, 모두 등의 뜻을 가진 사(斯) 보다는 사사롭다는 사(私)가 적절해 보인다.
* 이 리뷰는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위 도서를 소개하면서 ‘인물과사상사’로부터 무료로 도서를 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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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한국에서는 아파트가 보편적인 주거 공간으로 자리를 잡았고, 또한 그것이 오로지 경제적 가치를 따지는 척도로 작용하고 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의 위치와 평수가 그 가치를 재는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네모반듯한 몰개성적인 아파트를 집으로 여기면서, 그것의 경제적 가치로만 따지는 관점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자신만의 개성을 추구하는 건축물을 짓고자 노력하는 이들도 적지 않은데, 그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건축가들과의 호응을 통해서 비로소 사람들이 원하는 집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부부인 이 책의 저자들은 ‘책머리에’ 붙인 글을 통해서 ‘여전히 집을 짓고 있습니다’라고 밝히면서, ‘땅과 만나고 사람과 만나고 집을 그리는 건축의 즐거움을 누리며 살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한 관점이 건축가로서 저자들을 신뢰할 수 있는 요인이라고 하겠으며, 더욱이 단순한 건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나무처럼 자라는 집>에 대한 생각을 이 책에서 풀어놓고 있다. 이 책의 초판을 20년 전에 출간했고 10년 마다 개정판을 냈다고 하니, 이번에 출간한 책은 ‘두 번째 개정판’이라고 하겠다. 초판과 개정판을 보지 못해서 비교할 수는 없으나, 아마도 저자들은 건축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지점을 포착하여 개정판을 낼 때마다 그에 걸맞은 내용들을 더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초판의 1장과 2장이 이번 책에서는 3장과 4장으로 옮겨지고, 새롭게 쓴 글들은 ‘집은 땅과 사람이 함께 꾸는 꿈’이라는 제목의 1장과 ‘오래된 시간이 만드는 건축’이라는 2장으로 개정판을 새롭게 엮어내면서 덧붙여졌다고 밝히고 있다.
책의 제목은 서울에서 교사로 활동하다가 ‘천등산 박달재’로 낙향을 하려고 저자들에게 의뢰했던 ‘상산마을 김 선생 댁 이야기’의 사연들을 그대로 취한 것이다. 국가적으로 닥친 IMF라는 경제 위기의 국면에, 저자들에게 맡겨진 건축 의뢰와 현장을 답사하고 설계와 건축을 진행하면서 ‘땅과 사람’에 의해 달라질 수밖에 없었던 과정을 4장의 글들에서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처음 지형을 탐색하고 어떻게 주위와 조화를 이루며 설계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의뢰인과의 교감 속에서 설계가 바뀌기도 하고 때로는 시공 과정에서 다양한 이유로 설계와 다르게 완성되어가는 모습을 그대로 적시하고 있다. 이처럼 설계와 시공 과정에서 건축가의 애초 의도와는 다르게 바뀌어 지어지고, 또한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집의 쓸모가 완성되는 것을 일컬어 <나무처럼 자라는 집>이라고 했다고 이해된다.
저자들은 건축을 의뢰받고 그것을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한다면 그대로 책 한권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자신들이 설계하여 지은 집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하고, 때로는 여행을 하거나 우연히 마주친 색다른 건축물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풀어놓기도 한다. 아마도 10년 전의 개정판에 덧붙여진 것으로 여겨지는데, ‘집은 땅과 사람이 함께 꾸는 꿈’이라는 1장의 제목이 건축가로서의 철학을 그대로 대변해주고 있다고 이해된다. 일단 지어진 집은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통해 와성되어 가는데, 때로는 낡은 집을 손질하면서 느낀 건축가로서의 생각은 ‘오래된 시간이 만드는 건축’이라는 2장에 수록된 글들에서 강조되고 있다.
건축이 단순히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주위의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통해서 완성된다는 저자의 지론은 3장의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들’에 수록된 글들을 통해서 잘 드러나고 있다. 지금은 시간을 뒤로 미뤄두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몇 년 전 집을 짓고자 터를 구입하고 설계를 의뢰하며 건축가와 긴밀히 대화를 하던 과정이 떠오르기도 했다. 건축은 단지 건물을 설계하고 완성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땅과 사람들에 의해 지어지고 그곳에 사는 사람에 의해 완성되어가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차니)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개인 독서 카페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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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근교, 담양 소쇄원을 조금 지나면 텃밭이 있다. 무등산 자락이라 기온 차가 심해 다른 지역보다 1~3주가량 꽃피는 시기나 수확이 늦어지기도 하는 곳이다. 그곳에 이동식 건물을 가져다 두었다. 우리는 주말 주택이라며 애지중지하고 있다. 주말 주택이 자리한 마당에 잔디를 심고, 꽃을 가꾸고 있다. 이른 봄이면 수선화가, 조금 지나 꽃양귀비와 안개초가 피었다. 지금은 수국이 꽃망울을 조금씩 내밀고 있다. 수국을 기다리며 잡초를 제거하고 주말마다 물을 뿌려준다. 방부목을 사다가 대문과 비슷한 것을 만들고 점점 우리가 원하는 모양새를 갖춰가고 있다. 집이란 모름지기 가꾸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 자연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가꾸려니 속도는 아주 느리다.
10년 전에 심어 놓은 나무가 꽤 자라서 사람들의 시야를 제법 가려준다. 물론 열매도 맺긴 하지만 수확은 적은 편이다. 나무가 자라는 모습을 보며 감동하곤 하는데, 집도 나무처럼 자란다는 표현이 마음에 와닿았다. 땅과 어울려 사람에 따라 조금씩 자라는 집을 생각하게 했다. 땅과 건물을 대하는 저자의 마음가짐에 숙연해졌다. 당당한 것과 군림하는 것의 차이는 우리가 건물을 바라보는 시각을 달리하게 만든다. 건물의 쓰임새를 떠나 땅과 어울리지 않고 조화롭지 않은 것. 건축하는 사람으로서 지양해야 할 거로 보인다.
건축가의 땅에 대한 생각과 건축에 대한 노하우가 녹아있는 작품으로, 집을 짓는다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된다. 집을 짓고자 하는 사람은 자기가 살고 싶은 집을 설계하고 꿈에 부푼다. 직접 집을 짓다 보면 처음의 생각과 다르다. 함께 사는 사람의 나이와 생각대로 바뀌기도 하고 편리성과 쓰임새에 따라 다른 집이 된다. 이상과 현실은 이처럼 다르다. 우리가 텃밭에 들여놓은 주말 주택처럼 말이다. 이동식 주택을 구입하기 전 수없이 찾아보고 살펴보았으나 막상 그곳에 머물게 되면서 불편한 점들이 생겼다. 벽체가 조금 두꺼워도 좋았겠다, 유리창이 조금 더 컸어도 좋았겠다, 복층을 양쪽으로 해도 좋았겠다. 아쉬운 면이 없잖아 있지만 적응하기 마련이다. 탁자에 앉아 차를 마시며 유리창으로 보이는 초록의 향연이 좋다. 그 눈부심이 좋아 눈을 가느스름하게 하여 풍경을 음미한다.
작고 소박한 집에 우주가 담깁니다. 그 말만 들어도 마음이 두근거립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달에서도 보일 정도로 큰 신전과 같은 거대한 집이 아니라, 생각이 담긴 집입니다. 게다가 그 생각이 높고도 향기롭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요. 도산 서당은 우리가 건축가로서 늘 꿈꾸던 그런 집이었습니다. (58페이지)
저자의 말처럼, 집의 크기에 집착하고, 집을 채울 가구들에 욕심을 부렸었다. 지금도 그런 생각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비우는 연습을 하고 있다. 우리가 거주하는 공간을 다 채울 수는 없다. 그럼에도 사람은 왜 욕심을 부릴까. 정리할 건 정리한다고 해도 다음에 보면 또 쌓여있다. 집을 짓는 작업도 마찬가지인 거 같다. 처음에 하나를 보고 시작하였으나 채우다 보면 또다시 고민하게 되리라.
저자가 건축 설계한 금산주택은 한국공간디자인대상 및 한국건축가협회상을 수상했다. 산이 마주 보이는 언덕에 위치해 조망이 특히 좋다. 한옥을 닮은 건물은 소박하고 자연과의 조화도 좋은 집이다. 굳이 화려할 필요는 없는 거 같다. 기본 바탕 위에 살아갈 내력을 덧붙이면 될 것 같다. 상산마을 김 선생의 주택 건축 작업이 꽤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었다. 초기 건축물이기도 하고, 오랜 시간에 걸쳐 수정하고 지은 집이라 더욱 기억에 남을 만한 집일 것이다. 비록 건축가의 뜻대로는 되지 않았으나 가족이 시간을 공유하며 나무처럼 자라는 집이라 설계도를 수정했을 것이다. 건축가의 그림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그 집에서 살게 될 사람이므로 그렇다.
최근의 건축물을 보며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 옛 건물을 헐어버리고 새로운 건물을 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변과의 조화도 상당히 중요한 거 같다. 오래된 골목길, 옛집의 고즈넉한 정서를 보존할 수는 없을까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저자가 바라보는 땅과 건축물에 대한 다정함과 곧은 시선이 좋았다.
건축에는 시간이 담깁니다. 어떤 찰나일 수도 있고, 어느 길고 긴 시간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들의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건축은 타임캡슐입니다. 좋은 시간이든 나쁜 시간이든 건축에는 그런 시간들이 담기고 천천히 들여다보면 그 시간들이 읽힙니다. (147페이지)
낙서할 때면 세모와 네모를 그려 집을 그리곤 했다. 네모 안에는 네모가 네 개인 창문과 문, 문손잡이를 그려 넣는다. 1년 동안 직장을 쉴 때 주변에서 염려가 많았지만 나는 우울증에 걸리지 않고 잘 지냈다. 너무 잘 지내서 생각보다 집순이라고 여겼다. 혼자서도 잘 지내는 사람. 그 시간이 소중한 사람. 아마 내가 좋아하는 집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다른 집들과 같은 네모난 집이지만 낮은 건물들이 보이는 풍경이 마음을 편하게 한다. 20년 전에 처음 출간했고, 10년 뒤에 증보판을, 이후 10년 뒤에 다시 증보판을 펴냈다. 새로운 생각과 건축에 대한 마인드, 여전히 집을 짓는 게 좋다는 저자의 글과 그림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있을 거 같다.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무처럼자라는집 #임형남 #노은주 #인물과사상사 #책 #책추천 #책리뷰 #도서리뷰 #북리뷰 #예술 #건축 #건축이야기 #가온건축 #건축에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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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건축의 본질은 기록이라는 저자의 인문학적 성찰을 통해 누구든 의뢰하는 고객이든, 의뢰를 받은 건축가로서 비지니스든 각각의 삶의, 꿈의, 고객의, 자부심의, 내 주특기와 업적의 기록이라는 의미를 생긱해보게 한다. 그럼으로서 먼저 건축가 내면을 돌아보고 고객에게 가족이 함께 행복과 안락함을 주는 좋은 집이란 무엇인지를 들여다보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는 의미일 듯 하다. 즉, 집에대해 어떤 가치관을 가지느냐라는 측면에서 임형남, 노은주 부부건축가인 두저자의 건축 철학과 깊은 연관성을 가지는 Plain living and high thinking의 그 본질을 이해할 건축을 바라보는 철학적 시선을 살펴보고자 한다.
O Friend! I know not which way I must look
#본문, 나무처럼 자라는 집은 이미 10여년 전에 발표된 책으로 매해마다 조금씩 개작을 통해 새로운 글들을 추가해 발표하고 있는 책이다. 즉 저자들의 건축에대한 철학에 시대 트렌드를 반영하여 글로 나오는 것이다. 건축에대한 부부 전문가적 시각으로 설득력있는 집, 건축에대한 관점을 다각화해보기 바란다. 저자의 저서로는 내가 살고 싶은 작은 집, 생각을 담은 집 한옥, 그들은 그 집에서 무슨 꿈을 꾸었을까, 집, 도시를 만들고 사람을 이어주다, 사람을 살리는 집, 작은 집 큰 생각, 이야기로 집을 짓다, 서울 풍경 화첩, 집주인과 건축가의 행복한 만남 등 여러권들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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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건축가 부부의 에세이 집이다.
저자 임형남과 노은주는 건축은 땅이 꾸는 꿈이고,사람들의 삶에서 길어 올리는 이야기라고 한다. 둘은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동문이다. 1999년부터 함께 '가온 건축'을 운영하고 있다. 가온은 가운데, 중심이라는 뜻과 집의 평온함이라는 의미를 함께 갖고 있다. 가장 편안하고, 인간답고, 자연과 어우러진 집을 궁리하기 위해 이들은 틈만나면 옛 집을 찾아가고, 골목을 거닐고, 도시를 산책한다고 한다. 그 여정에서 집이 지어지고, 글과 그림이 모여 책으로 엮인다고.
땅과 삶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둘 사이를 중재해 건축으로 빚어내는것이 건축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며 금산의 어느 언덕에 박공지붕으로 된 소박한 집을 짓고, 충남 금산의 외곽, 진악산을 마주한 언덕에 금산주택을 지었다.
건축은 땅에서 시작되므로 땅과의 타협이 중요하고,건축가는 땅에 대한 존경을 가져야한다고도 한다. 제주 감녕 바닷가에 지은 까사 가이아(대지의 여신)라는 집의 이름만 봐도 저자의 생각을 충분히 느낄수 있었다.
건축이 기록이 되고, 많이 쌓아두지 않아도 살림살이가 되고, 물을 잘 흘러가게 하여 자연을 거스르지 않음을 중시하며, 처음도 과정도 결과도 중요한 중도의 집을 지으며 세상과 개인을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건축은 결국 사람과 땅의 관계이고, 건축가는 그에 대한 매개체이다.
시간이 스며든 오래된 건축들에는 궁궐이 있고, 옛 집들이 있고, 명당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곳도 있다. 동네에는 느티나무 그늘이 있고, 좋은 주인들은 좋은 집을 짓고, 좋은 집에는 이야기들이 품어질것이다.
저자는 지리산 산천재를 격이 있고 향기가 있는 최고의 집으로 꼽는다. 산천재는 남명 조식 선생의 서재였고 생을 마감한 장소이며 지리산이 덕산쪽으로 흘러내려오다가 덕천강가로 들어가는 흐름대로 집을 앉혔는데 아무런 자기주장도 없어보이는 낮은 집이지만 집을 드러내지않고 산의 흐름에 몸을 맡긴 모습이 근엄하다고한다. 한번쯤 저자의 느낌을 직접느껴보고 싶은 곳이다.
건축이란 땅과 같은 리듬을 가져야하고, 주인과 같은 리듬을 가져야하며 ,무엇보다도 성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셋이 기분좋게 배합이 되기도하고,마구 충돌해 아무도 만족하지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건축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땅의 이야기를 듣고 둘사이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는것이라고. 집은 자기의 실현이며 자기손으로 지어야한다. 건축가는 집주인의 이야기를 정리해주는 역할에 머물러주면 집이 나무처럼 자랄것이라고한다.
책을 읽으며 공감가는 부분도 있었고,반론하고 싶은 부분도 있었다. 소비자의 입장과 집을 짓는 건축가라는 입장차이이리라 여겨진다. 저자의 제안처럼 집의 이름을 지어보아야겠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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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중요하다. 이제 집에도 이름을 붙여줄 때가 됐다. 아파트에 살면서 무슨 당호냐고 딴지를 걸 수도 있겠지만, 달팽이 같은 반려동물에도 이름을 지어주는 판국인데, 십 년 넘게 산 집에 이름이 없다니 곤란하다. 솔직히 집은 사물이 아닌 일종의 생물이다. 나무처럼 집도 세월이 흐르면 고유의 나이테를 남긴다. 집은 거주하는 이의 삶의 흔적과 온기를 기록하기 때문이다. 같은 호수의 아파트라고 해도 가족, 개성, 인테리어에 따라 집이 자아내는 나이테는 얼마든지 다양하고 독특할 수 있다.
집의 이름을 지을 땐 집주인의 개성이나 지향점, 인생관 등을 참고하기 마련이다. 가령 여유당, 수오재, 선교장, 산천재, 서백당, 무첨당, 관가정, 향단이 고전적인 당호라면, '존경과 행복의 집', '적당과 작당의 집' 등은 매우 현대적인 당호다. 집이란 생각의 집적체이며, 집의 이름을 짓는 것은 그 생각을 정리해서 집의 토대를 만드는 일이다. 그래서 집의 이름을 짓는 것은 자신이 살아가는 동안의 자세를 정하는 것이고, 가족의 미래를 꿈꾸는 일이다. 우리집의 경우엔, 반드시 들어가야 할 한 글자가 있다. 바로 공경할 경(敬)이다. 나는 수기치인의 기초가 되는 경의 태도를 중시한다.
십년 전쯤 부부 건축가인 노은주와 임형남의 『나무처럼 자라는 집』을 처음 접했다. 그러다 강산이 한 번 바뀔 즈음에, 보다 두툼해진 개정판을 다시 정독하게 되었다. 책도 나무처럼 자랐는지, 더 멋지고 더 아름다워졌다. 부부는 좋은 집이란 자연과 사람의 교감을 통해 생명을 얻은 집이라고 강조한다. 집은 땅과 사람을 이어주고, 현실과 꿈을 이어주고, 시간이 갈수록 아름다워지는 생명체와 같다.
"건축에는 시간이 담깁니다. 어떤 찰나일 수도 있고, 어느 길고 긴 시간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들의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건축은 타임캡슐입니다. 좋은 시간이든 나쁜 시간이든 건축에는 그런 시간들이 담기고 천천히 들여다보면 그 시간들이 읽힙니다."(147쪽)
"좋은 집은 주인을 닮는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결국 좋은 집이란 거주하는 사람과 주위환경과의 조화가 중용에 도달한 집, 한마디로 말해서, 자연과 인간을 모두 편안하게 하는 집이야말로 이상적인 집이 아닐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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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건축가 두 명의 이야기가 나온다. 하나는 하산 파시라는 실존했던 이집트 건축가고, 하나는 박경리의 소설 『토지』에 나오는 윤보라는 목수다. 하산 파시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흙집을 지었고, 윤보 목수는 대목으로서 자신의 솜씨보다 진정한 의인으로 평가받는다. 나느 이 두 건춝가가 '가온건축'이 추구하는 건축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나무처럼 자라는 집은 시간이 갈수록 아름다워지는 집이다. 수군거리는 뒤란처럼 깊어지는 집이다. 우리 모습도 꼭 그랬으면 좋겠다. (-9-)
우리의 조상들은 오랜 경험으로 그런 지혜를 터득했고 생활에 적용했습니다. 물이 흐르는 자리를 피해서 집을 앉히고 욋자리를 찾았습니다. 그런 지혜가 우리나라의 땅에 대한 사상으로 발전했습니다. 한국의 풍수는 발복 發福하고 장수하기 위한 미신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터득한 자연과의 공존을 위한 지혜입니다. 물길을 인위적으로 도리고 두터운 콘크리트 옹벽으로 막아놓은 방어막이 어느 날 하루 내린 비에 힘없이 스러지던 모습을 보며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82-)
"지리산은 올라가는 산이 아니고 들어가는 산이야."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산이라면 모르는게 없는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산이 포근해서 사람이 안지는 기분이 들게 한다는 이야기인지, 산이 너무 깊어서 한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다는 이야기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즐겨 쓰는 역설적인 수사 같기도 하고, 밑도 끝도 없는 잠언 같기도 해거 이야기가 길어지기 전에 슬그머니 뒥걸늠쳐서 빠져나왔던 적이 있습니다. (-188-)
오래전 어느 새벽 동트기도 전에, 부석사 무량수전 앞 안양루의 난간에 기대어 무량수전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새벽 에불은 방금 끝났습니다. 사위는 적막하고 어슴푸레한 형체만이 둔하게 어른거렸습니다.어둑어둑하던 색이 푸르스름한 색이 되고 금세 붉은 기운을 조금씩 타기 시작하더군요. (-209-)
김 선생이 내놓은 집의 조건들은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었습니다. 밤하늘의 별을 보는 창을 달아다라거나 벽 뒤에 방을 숨겨달라는 그런 요구는 없었습니다.오히려 이곳에 집을 앉히는 작업의 준비 과정이나 그 행위에 큰 의미를 두는 것 같았습니다. (-281-)
그러나 사실 철골로 집의 뼈대를 세우는 것은 우리의 옛 건축 방식과 상당히 유사한 방법입니다.우리의 옛 방식이란 나무를 짜나가며 집의 골격을 만드는 가구식 架構式입니다. 뼈대를 조립하느 방식인 셈입니다. 그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의 추이에 따라 벽돌로 쌓아나가는 조적식 組積式 이 쓰이다가 요즘은 콘크리트로 기둥, 벽,지붕을 일체로 만드는 방법이 흔히 쓰입니다. (-345-)
시골 집을 가면, 어떤 공간에 그 마을을 상징하는 나무가 서 있다.사골 집이란 단순히 먹고 자고 , 슴쉬는 평범한 삶의 공간이 아닌 복이 드나들고 나가는 특별한 공간이었다. 집에 대해 설명할 때 , 집 주변의 나무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무는 자연에 가깝다. 산과 인접하고, 가까운 곳에 나무가 있는 그공간에 집이 들어서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한다. 현대에 들어와서 전원생활을 하더라도, 나무를 심고 집을 짓는 것도 이와 비슷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단순히 집을 짓는 건축이 아닌 집과 나무와 삶을 일치시키는 특별한 장소에서 시간을 보내는 개념이다.
그래서 삶도 자라고, 나무도 자라며, 집도 자란다. 나무가 죽는다는 건 집에 우환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죽은 나무를 다시 사리거나 고사된 나무를 제거하고 다시 나무를 심는 작업을 반복한다. 수맥이 있느 곳을 피하고, 건축가의 시선으로 집이라는 물질도 아닌, 장소나 시간도 아닌 특별한 가치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으며, 우리가 가지고자 하는 것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다. 건축설계사가 누군가의 집 주문에 대해서, 집의 장향이나, 차문의 위치, 방의 구조에 대해서 꼼꼼히 신경쓰게 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으며, 겉축가 임형주 노은주 부부는 집에 대해 이야기 하기 전에 땅의 본질을 짚어 나간다. 땅과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서로 다리르 놓아주는 것, 건축가가 가지는 건축철학의 본질이다. 그래서, 어떤 공간에 집을 지을 때, 집 주인이 누군지에 따라서 집의 성격이나 기질이 달라져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 책에서 말하고 있으며, 우리가 콘크리트나 아스팔트로 이루어진 천편일률적인 집구조에서 탈피하여, 자연친화적이며며, 자연과 공존하는 돌과 바람, 시간이 스며드는 집과 건축을 말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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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임형남 노은주의 집, 땅, 사람이야기 부제 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임형남, 노은주 라고 하면 EBS에서 보던 집이라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출연하시는 건축가 부부아니신가? 이 책은 무려 출간 20주년 기념판이다! 20년 전에 발간된 책이 아직도 찾는 이가 있어서 20주년 기념판을 낸 것이다. 그 20년 동안 두 부부는 더 유명해지셨을 지도 모른다. 먼저 내 호기심의 의식의 흐름에 따라 작가님 부부에 대해서 알아본다. 1999년부터 함께 가온건축을 운영하고 있는데, ‘가온’이란 순우리말로 가운데·중심이라는 뜻과, ‘집의 평온함(家穩)’이라는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다. 가장 편안하고, 인간답고, 자연과 어우러진 집을 궁리하기 위해 이들은 틈만 나면 옛집을 찾아가고, 골목을 거닐고, 도시를 산책한다. 그 여정에서 집이 지어지고, 글과 그림이 모여 책으로 엮이곤 한다. 나도 뭔가를 이렇게 키워가고 싶다.
p132 오래전 신문에서 읽기를 전라도 어느 절에 가면 어떤 신흥종교 집단이 그 절에서 자기내 식대로 예배를 드린다는 것. 이유는 그 종교를 만든 이가 죽어 이 절에서 미륵으로 다시 환생한다는 말을 남겼고, 신도들이 그 말을 믿어서라고. 기자가 당시 그 절 스님께 이 상황이 괜찮은지 물어보니, 스님 왈 "절은 누구나 다 받아줍니다."라고 했다고. p133 인사동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가 조계사가 보였습니다. 조계사는 원래 거기 있었지만 저는 그날 처음 보았습니다. 큰 도로변에 서 있던 건물을 헐어버리고 나니 절이 드러나게 된 것이었습니다. 절의 한적함은 없었고 분주함이 가득할 뿐이었습니다. <일탈의 공간> p138 아이들에게 (가능하다면 집안에) 일탈의 공간을 만들어 주고 싶다 아이와 함께 이 공간 저 공간 가보아도 좋다고 - 설령 경비원이든 누가 나가라고 해도, 좀더 있어도 된다고 알려주고 싶다.
저는 학교 수업 시간에 기계적으로 외워야 했던 '강박'들은 보지도 않고 휙휙 지나쳤습니다. 그 대신 천장은 높고 복도는 넓으며 외부의 기온과는 무관하게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는 그곳을 아주 천천히 걸어다니며 그 냄새를 맡았습니다. 그것은 참선을 하는 것과 비슷한 경험이었는데, 이런저런 생각은 저절로 지워지고 여러 가지 욕심은 소리 없이 바닥으로 가라앉고 몸은 흐르는 물처럼 그 안에서 저절로 흘러갔습니다. 세상은 점점 빨라지고 모두 한군데 모여 살다 보니 갈수록 사람들은 엽기와 신경질에 칡넝쿨처럼 엉켜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20년전 글이 마치 방금전 쓰여진 듯한 느낌이 드는게 신기하네~~~^^ p145 시간의 더께와 사는 사람의 욕심이 보태져서 집은 얇고 앙상한 뼈대 위에 많은 군살을 얹고 있었습니다.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그 살들을 덜어내는 것이었습니다. 하나씩 덜어내면서 후련해하고 시원해하는 집을 보며 저도 머리가 개운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거실 벽을 둘러치고 있는 나무판을 떼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 나무판은 처음에는 금강석처럼 단단하고 늘씬했겠지만 바니시(니스)로 숨을 쉬지 못해 속은 텅 비어 있었고 겉만 반질반질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나무판들이 우수수 쏟아져내리고 그 안쪽으로 집을 지탱하고 있는 벽돌들이 드러났습니다. p150 경기도 여주 신륵사에 가보자 우리나라 풍수지리의 큰 스승인 무학 대사가 자신의 선생님을 위해 자리를 잡아놓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 명당. 부도가 있는 자리. p154 아이가 학교에서 그려온 그림 맑고, 엄마한테 보여주어야지~ 하며 그린 그림 말고 그냥 아무생각없이 어쩌다 끼적인 그림을 액자에 넣어 고이 간직해주어야겠다. 기교 없이 솔직한 아이들의 그림을 보면 언제나 감동을 받습니다. 기교가 없고 장식도 없지만 무언가 예민한 마음의 급소를 푹 하고 찌르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에너지를 발산하는 데 그림보다 좋은 것은 없을 것입니다. 조기 축구가 더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그리느냐에 따라 그림은 달라집니다. 학교에 제출하기 위해서,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그리는 그림은 언제나 '후지게' 마련입니다. 그냥 그리는 그림이 좋습니다. "yes24리뷰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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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방송에서 방영중인 <건축탐구-집>이라는 프로그램은 짬 날때마다 즐겨보는 프로그램이다. 다양한 유형의 집을 들여다보는 재미도 있고, 그 집을 짓게되는 과정과 집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재미있기 때문이다. 집 도슨트?!!인 임형남 소장과, 노은주 소장의 집에 대한 관도 여유로와서 건축전공 부부의 책도 찾아보고 있다. <그들은 그 집에서 무슨 꿈을 꾸었을까> <도시 인문학> 이후로, 이번에 만난 책은 < 나무처럼 자라는 집 > 이다! - 건축은 결국 사람과 땅의 관계이고 그에 대한 매개체로서 건축가가 존재하게 됩니다. 땅을 이롭게 하고 사람을 이롭게 하며, 지금 이 시간에 충실한 삶을 영위하게 하는 역할, 그 만남과 그 주선이 저의 가장 큰 즐거움입니다.- 이어주는 작업!!! 이를 위해 만남이 전제가 된다. 이 부부의 건축을 매개로한 만남의 이야기,, 기대된다. 부부의 글쓰는 필력이,, 그 이음과 연결의 방식이 범상치 않다. 건축가가 아닌 문인의 글을 읽는 느낌이 전해진다. 수많은 책과 영화와 경험 그리고 건축을 위해서 여기저기 외부로 많이 다니면서 익힌 인문학적 편력도 종횡무진~!!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으로 시작하는 이야기 살강,, 옛날 부엌에 부뚜막이 있던 시절.. 부뚜막 위에 간략하게 나무판자로 걸친 선반 지칭 하는 말!! 글의 lead-in 에서부터 내공이 묻어난다. 이야기 보따리 풀어주세요 하면서 성큼 다가가 앉게하는 힘이 있다. - 살강 또한 무척 아름다운 말입니다. 입에 넣고 굴리면 어린 시절 어른들에게 졸라서 얻어낸 알사탕은 입안에 넣고 또르르 굴리던 느낌이 살아납니다. - 더하여, 페이지에 생기를 불어넣는 일러스트레이션도 한 몫 한다. 건축 사무소를 운영하면서, 각계 각층의 건축의뢰인을 만나게 되고, 집에 들어갈 지형과 지세를 보는 안목이 트이고 건축의 과정에서 의사교류와 협업의 작업의 기록도 함께 이야기로 전한다.
이 책에는, 부부가 금산 땅에 올린 집 - 금산주택과 관련된 이야기를 풀어가는가 하면, 상산마을에 집을 올리던 일련의 과정도 그 집을 키워나갈 집 주인의 이야기와 함께 풀어나간다. 사실, 집을 짓는 과정 자체가 단기간에 끝나는 과정이 아니기에 오랜 시간 동안 차곡차곡 싸여가는 이야기의 깊이도 이에 더해가지않을까.. 저자의 말처럼 집 한채를 마칠 때마다 책 한권이 나올만할듯.... 제주의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욕실,, 요 몇년간, 집장만 하면 영끌이란 단어가 떠오르고,, 집과 관련된 정보라 하면, 오로지 숫자의 증감에 예민해지고 갑갑해지는 세태 속에서 이에 거리를 두고 집과 그 집이 담아내는 집의 역사, 그리고 공간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니 편안하고 푸근해지는 느낌이다. 삶의 기억을 담고 있는 집!! 살면서 기억 속에 존재하는 이사의 횟수는 그리 많지 않다. 세 번의 이사로 나의 과거의 추억이 묻어나는 집을 연대기 삼아 유년시절을 소환하곤한다. 지금까지 살던 4채의 집에 한옥은 없다. 그렇기에 한옥에 대한 동경도 조금은 남아있다. 저자는 한옥의 상량문에 대한 서술을 통해서 한옥에 집의 탄생과 역사를 기록을 품은,, 집의 내력을 전한다. 기억을 담은, 기록을 담은 집 속에 전하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이집은 싯가 얼마..라는 메마른 정량보다 더 가치롭지 않은지... 저자의 말에 백분 동감이다.
집은 사람이 짓지만 시간이 완성합니다. 집이란 짧은시간 동안 단번에 지을 수 없는 이야기라는 의미이기도하고, 집 자체가 스스로 완성을 유보한 채 시간을 두고 천천히 완성되어간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집을 통해 풀어내는 글 속에서 저자의 삶과 철학 속으로 여유롭게 산책한 느낌이 남는 책~!!! =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을 읽고, 자유로이 작성한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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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나무처럼 자라는 집 저자 : 임형남, 노은주 인물과 사상사
집을 짓는다는 것은 기초를 깔고 기둥을 세우고 벽을 붙이고 지붕을 덮는 물리적인 일이기도 하지만, 가족의 생활을 깔고 가족의 이야기로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덮는 일이다. 그 이야기는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땅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집은 사람이 짓지만 시간이 완성한다고 한다. 집은 엄마 혹은 고향 같은 단어처럼 온도를 가지고 있다. 건축은 어딘가 차갑고 무뚝뚝한 구석이 있지만, 집이라는 이름이 붙으면 따뜻해진다. 특히 ‘우리 집’이라는 말처럼 좋은 말이 또 있을까? 집은 땅과 사람이 함께 꾸는 꿈이다. 지금도 집은 자라고 있다. 아이들이 자라듯이 집은 자랄 것이다. 그리고 그 집은 나무처럼 열매를 맺고 자랄 것이다.
이 책은 총 4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제1장 집은 땅과 사람이 함께 꾸는 꿈 제2장 오래된 시간이 만드는 건축 제3장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들 제4장 나무처럼 자라는 집
제1장 ‘집은 땅과 사람이 함께 꾸는 꿈’은 두 건축가의 온기와 고뇌가 들어 있다. “인간이 추구하는 궁극의 목적인 행복이다..... 제 생각에 행복은 ‘먼 훗날’을 담보하는 추상적이고 모호한 무언가가 아닌 구체적인 어떤 장소입니다. 바로 집이라는 공간이고 집이라는 단어이고 집이라는 온도입니다.”(책 37페이지 집의 온기, 건축의 온기 중에서)
“직업이란 생계를 이어주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완성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세상과 개인을 이어주는 하나의 매개체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훌륭한 삶은 즐기는 일을 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이라는 것은 늘 의무가 따르고 책임이 따르게 되어 즐긴다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책 109페이지 건축의 즐거움 중에서)
제2장 ‘오래된 시간이 만드는 건축’은 집은 시간을 담고, 그늘을 준다. 집은 시간을 담습니다..... 집은 사람이 짓지만 사람이 완성합니다. 집이란 짧은 시간 동안 단번에 지을 수 없는 이야기라는 의미이기도 하고, 집 자체가 스스로 완성을 유보한 채 시간을 두고 천천히 완성되어 간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책125페이지 집을 생각한다 중에서)
제3장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들’ 상산마을로 땅을 보러 갔습니다. 충주에서 제천으로 가는 길로 빠져 들어가면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이 나옵니다. 한가한 시골 마을입니다. (중략) 드문드문 초록을 비껴난 집들과 교회 창고들이 있었고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중략) 물을 머금고 쑥쑥 자라고 있는 벼들, 담 옆에서 누워 심드렁하게 바깥을 보고 있는 개들, 발에 스치는 건강한 풀들, 집 안에서 집 밖에서 분주한 벌레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모두 분주했지만 나는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제4장은 집이 ‘나무처럼 자라는 집’입니다. 충주 산척면 상산마을의 김 선생 댁의 이야기입니다. 김선생은 지적도와 자신이 직접 공책에 볼펜으로 그린 어눌한 평면도를 보여주었습니다. 기역자 모양의 2층집이었습니다. (중략) 그러나 저를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아름다운 꿈’을 꾸는 분들이 문득문득 풀어놓은 장면들을 하나의 그림으로 엮어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책 271페이지)
건축가의 고심의 흔적은 여기에도 나옵니다.
“제가 한 것이 맞는지 틀리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해 제가 하는 퍼즐 놀이는 다 맞추어놓고도 끝까지 불안해합니다. 집이 다 지어지고 나서야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지요.”(책 287페이지) “사과가 익기 시작할 때 상산마을에 놀러 갔습니다..... 김 선생은 사랑채에 만들어 놓은 이불장을 보여주었습니다. 문이 잘 닫히지 않는 엉성한 이불장이었습니다. 사랑채에 불을 지피고 뜨뜻한 아랫목에 앉았습니다. 호롱불 대신 백열전구가 달린 스탠드를 켰습니다. 땅과 건물이 만나는 부분에 만들어 놓은 화단....., 집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집은 그렇게 주인의 숨을 불어넣어주는 것이고, 또 그만큼 자랄 것입니다. (책 359페이지)
『나무처럼 자라는 집』은 부부건축가 임형남, 노은주가 생각하는 함께 꿈꾸는 집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두 건축가는 지난 20여년 전부터 가온건축을 운영한 이래 지금까지 집에 대한 철학과 생각을 그대로 옮겨 집을 짓고 있다. 두 건축가는 건축 즉 우리들이 거주하고 살고 있는 집에 관해 과감없이 드러낸다. 사실 건축이란 직업은 인류의 역사와 같이한 유서깊은 직업이다. 인간에게 집이란 매우 독특한 의미를 가진다. 단순히 비와 바람을 피하는 물리적인 껍질만이 아닌, 자아의 실현이라는 의미를 함께 가진다. 그런 집을 짓는 행위가 건축이며, 그 일을 직업적으로 수행하는 사람이 건축가이다. (책 360페이지) 라고.
마지막으로 두 부부건축가의 말이 뇌리에 맴돈다 “집은 자기의 실현입니다. 집은 자기 손으로 지어야 합니다. 건축가는 집주인의 이야기를 정리해주는 역할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러면 집은 계속 자라날 겁니다. 아이들이 자라듯이 집도 스스로 자랄 것입니다. 체세포 증식을 하듯 집이 동쪽으로 뻗어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집은 나무처럼 열매를 맺고 나무처럼 자랄 것입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체험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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