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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가면을 벗긴 제자의 심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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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좌파 철학자 미셸 옹프레의 지적인 삶에는 적어도 세 명의 스승이 있었다. 『적그리스도』의 니체, 『공산당 선언』의 마르크스, 그리고 『성욕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의 지그문트 프로이트다.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를 보내던 우울한 미셸에게, '니마프'는 진정한 친구, 즉 시대를 초월한 그의 소울메이트가 되었다. 그는 니체에게서 기독교를 반박하는 방법을 배웠고, 마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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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좌파 철학자 미셸 옹프레의 지적인 삶에는 적어도 세 명의 스승이 있었다. 『적그리스도』의 니체, 『공산당 선언』의 마르크스, 그리고 『성욕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의 지그문트 프로이트다.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를 보내던 우울한 미셸에게, '니마프'는 진정한 친구, 즉 시대를 초월한 그의 소울메이트가 되었다. 그는 니체에게서 기독교를 반박하는 방법을 배웠고, 마르크스에게서 자유인과 노예의 변증법적 관계를 배웠고, 프로이트 덕분에 은밀한 성욕과 관련된 죄책감과 공포심을 해소할 수 있었다. 그런데 훗날 진정한 친구의 진면목을 알게 된 미셸은 『우상의 추락』(글항아리, 2013)이라는 책을 통해 프로이트에 대해 매우 매서운 평가를 내리게 된다. 

 

미셸 옹프레는 캉대학에서 스탈린주의를 신봉하던 어떤 교수에게서 정신분석학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도라, 한스, 늑대인간, 쥐인간, 슈레버 박사 등 프로이트 이론에 등장하던 익명의 환자들을 알게 되고, 히스테리, 병적인 공포, 유아 신경증, 강박 신경증, 망상증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배우게 된다. 그리고 훗날 철학교사로 일하면서 프로이트 이론에 대한 강의를 줄곧 하게 된다.

 

"지난 20년 동안 철학 과목을 가르치면서 내게는 의식적으로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는 주제들이 생겼다. 어린아이의 성적 발달이 구순기에서 가학성의 항문기를 거쳐 생식기로 바뀐다는 이론, 이 변화과정에서 인간에게 트라우마가 형성된다는 것, 불가피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신경증을 유발하는 성적 병인학, 심리적 기제와 관련된 두 가지 장소론, 억압과 승화의 상관성을 비롯해 신성함에 대한 기술, 억압의 의식화, 여러 가지 증후의 소멸, 치료 양상이 그것이다."(18쪽)

 

옹프레는 프로이트를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철학계보를 잇는 생명주의 철학자로 해석한다. 비록 프로이트가 자신의 담론에서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흔적을 지우개로 말끔하게 지우려고 했지만 말이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을 내세워 계몽주의 철학의 이성주의를 부정한 새로운 형태의 철학, 이른바 반철학을 내세웠다.

 

거칠게 말해서, 프로이트는 과학자가 아니라 철학을 혐오한 해석학자였다. 프로이트의 이론은 임상경험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자신의 자전적인 존재론적 경험에 바탕을 두고 이론을 구성했다. 프로이트의 추종자들과 순진한 후계자들은 프로이트가 임상사례를 조작하고 환자를 가상으로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졸도할지도 모른다. 프로이트는 평생 근친상간의 판타지로 갈등을 겪었는데 이런 근친상간에 대한 자신의 경향을 모든 사람에게 투영시켜 보편적인 심리기제인 것처럼 주장했다. 

 

z***a 2014.01.08.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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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가 이 책을 읽었으면 뭐라고 했을까..
"프로이트가 이 책을 읽었으면 뭐라고 했을까.." 내용보기
이 책 <우상의 추락>의 저자 미셸 옹프레는 그의 반反철학사 시리즈중 한권인 <계몽주의 시대의 급진철학자들>을 통해서 만나 보았다. 그는 다양한 저술 활동을 통해서 아감벤, 알랭 바디우, 슬라보예 지젝, 마이클 샌델과 함께 이 시대의 가장 위험한 철학자들중 한명으로 선명된바 있다. 그리고 다양한 저술 활동을 통해서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그의 저서들이 몇권 소개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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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우상의 추락>의 저자 미셸 옹프레는 그의 반反철학사 시리즈중 한권인 <계몽주의 시대의 급진철학자들>을 통해서 만나 보았다. 그는 다양한 저술 활동을 통해서 아감벤, 알랭 바디우, 슬라보예 지젝, 마이클 샌델과 함께 이 시대의 가장 위험한 철학자들중 한명으로 선명된바 있다. 그리고 다양한 저술 활동을 통해서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그의 저서들이 몇권 소개된 바 있다. 나는 그의 다른 책을 읽어보지는 못했는데 <계몽주의 시대의 급진철학자들>이라는 책을 통해서 그가 정상적인(?) 철학자라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책을 통해서 받은 그의 인상은 급진적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뒤틀린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시대를 만들어간 주류 철학보다는 잘 알려지지 않은 철학자들의 업적을 소개하면서 주류 철학을 부수고 틈새의 철학을 소개한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지나치게 가학적이며 엽기적이라고 할만한 사람들을 소개하며 그것들을 급진적인 철학이라고 소개하였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는 그러한 주류에 대한 반철학이 학문적인 검증을 통해서 철저하게 밑바닥까지 사유함으로 길러올린 책임있는 논리가 아니라 자신의 뒤틀린 영혼에 대한 투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평가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옳지 않는 것이라고 할수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껴졌다. 그래서 이 미셸 옹프레가 20세기 사유의 지형을 바꾸어 놓고 모든 영역에 있어서 엄청난 영향을 미쳐온 정신 분석학자 프로이트를 비판적으로 평가한다는 책인 <우상의 추락>을 썼다고 했을때 바로 위에서 말한 그에 대해 형성된 나의 평가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일단 그가 바라보고 편단하고 비판하는 프로이트가 과연 제대로 된 평가일까, 또 마찬가지로 비판을 위한 비판 자신의 사유에 대한 투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그가 쓴 프로이트 비판서인 <우상의 추락>을 읽어가면서 역시나 내가 그에 대해서 형성한 판단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 <우상의 추락>은 거의 모든 면에서 프로이트를 비판한다. 아니 비난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듯하다. 거의 모든 영역을 까부수기에 바쁜것 처럼 보였다. 프로이트는 보이지 않는 정신의 영역을 과학의 영역으로 끌어올려 '무의식'이라는 개념을 통하여 정신의 구조를 수면위로 떠올리게 한 사람이다. 이러한 개념은 그의 최고의 업적으로 수많은 환자들의 상담과 임상실험의 자료를 가지고 내린 결론으로 지금까지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무의식'의 발견은 20세기의 모든 사고방식을 바꾸어 놓았다. 그만큼 프로이트의 업적은 대단하다는 평가를 넘어서 그가 없이는 20세기가 설명되지 않을 정도인 것이다. 그러나 저자 미셸 옹프레는 이러한 사실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그는 프로이트가 과학자로써 정신분석학자가 아니라 자신이 현실에서 이루고자 하는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한 '정복자'라고 보았다. 나는 도대체 그가 어떻게 프로이트를 보고 이러한 결론을 내릴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물론 프로이트가 그가 사생활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고 그의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같은 이론은 모든 욕망의 근원을 성적인 욕망으로 환원시키는 오류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대 이론가들이 겪을 수 있는 부분적인 것들이고 누구나 인정할 수 있고 후대에 그의 이론을 통해서 더욱 진실에 가까운 이론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미셸 옹프레는 그러한 그의 오류를 전면에 내세워 전면적으로 프로이트를 부정해버린다. 그가 쌓아올린 모든 업적을 무너뜨린다. 이것은 그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고 21세기의 모든 근간을 무시해버리는 것이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프랑스에서는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고 한다.

 

그가 발견한 여러 가지 히스테리증상, 꿈의 해석, 정신분석방법, 자아를 에고, 이드, 슈퍼에고로 정립한 것은 보이지 않는 정신의 세계에 실체를 부여하고 개념을 만들어 주므로 정신의 이해와 치료에 지대한 영향이 아니라 혁명적인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사실은 오늘날까지도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더불어 시대를 바꾼 가장 혁명적인 이론으로 인정받고 있다.

 

미셸 옹프레의 <우상의 추락>은 프로이트의 빈틈을 비평을 통해서 매꾸려는 그의 의도가 실패로 드러났음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그의 작업을 통해서 나는 상대적으로 프로이트의 이론을 더욱 잘 이해하게 되었으며 그것이 그의 비평작업이 나에게 준 유익이라면 유익이라고 할 수 있겠다. 프로이트가 미셸 옹프레의 자신에 대한 비판적 평전인 <우상의 추락>을 읽어보았다면 아마도 정신적인 자기방어나 히스테리, 투사와 같은 증상으로 진단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 뒤 나는 프로이트가 직접 쓴 책을 읽으면서 프로이트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그의 제자들이 쓴 저서, 프로이트 이론에 대한 주석, 여러 설명이 곁들여진 책들이 헌책방의 진열대를 가득 채웠지만 정자가 프로이트가 주장하는 핵심과는 거리가 먼 오류도 많았다. <성욕에 관한 관한 세 편의 에세이>는 내가 처음으로 프로이트의 생각을 이해하고 그와 소통하게 된 책이다. 프로이트는 어린애들에게도 성욕이 있고, 자위는 인간의 신체가 성장하면서 거치는 필수 과정이라고 말했다. 또 동성애 경험을 통해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결정하는 시기도 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어린 시절, 일주일에 한번씩 고해실에 들어가 신부에게 자위를 한 적이 있는지, 어떤 성적 경험을 했는지 모두 털어놓아야 했던 끔찍한 과거를 지울 수 있게 되었다. 나를 포함한 600명의 고아원 아이는 그러한 행위가 마치 저주받아 마땅한 행위인 것처럼 세뇌받으며 자랐다. p.11



YES마니아 : 골드 f****1 2013.11.18.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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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흑역사에 대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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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는 자신의 바람대로 됐다. 아니, ‘바람’이라는 표현보다 더 강력한 무엇이었다. 철저한 기획의 승리라고 볼 수도 있겠다. 코페르니쿠스, 다윈과 같이 이름만 대면 세상 누구나 알 수 있는 명성가. 그는 전리품을 챙긴 정복자가 됐다. 프로이트라는 이름이 주는 힘은 그만큼 강력하니까. 의학계나 학계뿐 아니다.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인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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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는 자신의 바람대로 됐다. 아니, ‘바람’이라는 표현보다 더 강력한 무엇이었다. 철저한 기획의 승리라고 볼 수도 있겠다. 코페르니쿠스, 다윈과 같이 이름만 대면 세상 누구나 알 수 있는 명성가. 그는 전리품을 챙긴 정복자가 됐다. 프로이트라는 이름이 주는 힘은 그만큼 강력하니까. 의학계나 학계뿐 아니다.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인간을 설명하는 거대한 테제가 됐다. 프로이트라는 이름이 주는 권위와 권능은 그의 업적 이상으로 여전히 힘을 발하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 권능을 가능하게 했을까? 책을 보고 좀 놀랐다. 책이 꼼꼼한 사실에 기인해서 쓰여졌다면, 프로이트가 행한 엄청나고 방대한 조작(!) 때문에. 그것은 거의 신적 왕권을 획득하기 위한 처절하고 치밀한 몸부림이었다. 더구나 세상을 상대로 그것이 먹혔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놀랐다. 세상의 위대한 것들이 반드시 고귀한 품성이나 인격을 토대로 구축되는 것이 아님을 새삼 확인했다. 그러니까, 나도 프로이트의 이 말을 그대로 인용할 수밖에 없다! 프로이트, 이것만큼은 당신이 옳았어!

 

“위대한 발견이 꼭 고귀한 사람의 머리에서 나오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은 콜롬버스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냥 모험가였을 뿐이에요. 에너지가 많은 사람이지만 결코 그를 훌륭한 위인으로 볼 수는 없지요. 한마디로 발견자가 위대한 사람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중요한 발견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예요.” (p.97)

 

《우상의 추락》은 나처럼 프로이트에 대해 표피적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에게 새로운 접근을 하게끔 만든다. 정신분석학과 인류사에 ‘위대한 업적’을 이룬 이에 대한 그야말로 반전. 이 양반, 반전 있는 사람이었어! 프로이트는 그야말로 공작의 대가, 평생 ‘중2병’에서 벗어나지 못한 ‘허세 킹’? 물론 설핏 듣고 칼럼 등을 통해 읽은 적이 있었다. 프로이트의 업적이 과장됐으며, 지나치게 성(性)에 근거한 치료방식에서 틀린 것이 많다고. 그의 업적 가운데 지금 적용할 수 있는 치료법이 많지 않다고.

 

“오늘날 현대인들은 프로이트의 치료 성공 사례가 서류상에서만 성공적이었지 실제로는 환자들의 상태를 호전시키지 못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p.524)

 

책은 그것을 세심하고 꼼꼼하게 확인시켜준다. 흥미롭다. 위대한 업적 뒤에 부각되지 않은 이야기였기 때문이었으리라. 우리는 대개 위인들의 큰 업적에 압도된다. 덕분에 사소하고 작은 이야기를 놓친다. 이미 권위와 권능에 이미 잠식됐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삶의 흥미로운 지점은 디테일에 있음에도 말이다. 많은 우리는 프로이트를 잘 모르지만, 안다고 생각한다. 고전을 읽지 않았으면서 읽었거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래서 더 소홀하게 되는 지점도 있다. 프로이트는 그런 심리를 꿰뚫고 그렇게 자신의 업적을 부풀릴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 면에서 저자인 ‘미셸 옹프레’의 이 비판적 평전의 시도는 높이 살만하다. ‘니체, 마르크스, 프로이트를 만나면서부터 비로소 내 진정한 친구를 찾았노라고 확신했’었던 그가 친구의 구린내를 캐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을 터. 친구를 더 알고 싶은 생각에 프로이트의 저작물과 접근 가능한 서간을 꼼꼼하게 살피다가 잘못된 것을 발견했는지도 모르겠다. 배신감에서 비롯된 것인지, 감정적인 혐오나 비꼼을 눌러 담은 흔적도 엿볼 수 있다.

 

“정신분석학이 유효한 학문으로 남기까지 플라시보 효과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p.329)

“프로이트는 과학 용어를 빌려 인간의 심리 현상을 설명하려고 했다. 하지만 왠지 그의 방법론에는 문학적인 분위기가 배어 있다.”(p.333)

“프로이트가 만든 세계에 우연은 없다. 다만 순수하고 신비로운 필연성이 존재할 따름이다.”(p.433)

 

그런 한편, 책은 동어반복이 종종 눈에 띤다. 비슷한 내용을 돌려서 말하기도 하고, 중언부언한다. 했던 비판 반복하고, 비판을 위한 비판으로 보이는 지점도 있다. 사실보다는 미셸 옹프레의 해석이 도드라지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책 부피만 괜히 커졌다는 생각도 들게 한다. 뭣보다 번역 때문인지, 원문이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종종 걸리는 부분이 있다. 저자, 번역자와 편집자의 조율이 좀 더 필요해 보인다.


어쨌든 프로이트의 속살을 엿보면서 ‘권능’의 불찰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공명심. 아마 프로이트를 살게 한 가장 큰 동력이었던 것 같다.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고 싶다. 유리한 배경을 갖고 싶다. 돈 역시 포기할 수 없다. 그것이 결코 나쁜 건 아니다. 문제는 유명세나 돈의 축적의 폐해를 생각하지 않은, 즉 성찰하지 않는 것이다. 명성을 가질수록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돌아봄’이건만, 프로이트는 화려함에만 몰두했다. 명성과 돈에 집착했다. 원하는 말만 듣고, 자신에게 돌아올 이익을 공적이 아닌 사적으로만 취득한 사람으로 보인다.

 

프로이트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생활고에 시달리며 바쁘게 살기 때문에 신경쇠약과 같은 병에 걸릴 시간마저 없을 것”이라고 했다는 발언은 충분히 그의 속물적 시선을 반영한다. 속물적이면 어떠냐고? 맞다. 그럴 수 있다. 그런데 그토록 갈망하는 권위와 권능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사회적 책임은 불가피함을 그는 몰랐을까. 몰랐더라도 그것은 죄다. 무지해서 나쁜 사람이다. 자기 위치에 대한 정치적 자각이 없었다는 증명이다. “가난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과 싸우고 있”는 지금-여기의 대통령처럼 말이다. 그가 했다는 동성애나 여성 차별적 발언 또한 남성우월적 시선이 창궐하고 있던 시대의 탓으로만 돌릴 문제는 아니다. 

 

물론 그런 자각은 쉽지 않다. 자신만의 지식과 이론으로 기득권과 권위, 명예 모두를 가지고 싶은 사람일수록 더욱 어렵겠지. 더불어 세상과의 갈등을 피하면서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듣기 싫은 말에 대해선 ‘종북’(프로이트는 어떻게 불렀을까?)으로 몰아붙이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프로이트가 앎을 추구한 것 같진 않다. 그래서 저자는 그를 철학자라고도 일컬었지만, 동의하진 않는다. 한편으로 불가능한 가정이지만, 궁금하다. 프로이트가 자각하고 성찰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그의 업적은 가능했을까? 미셸 옹프레도 그것은 쉽게 말 못할 것 같다. 인간을 파악하는 것이 그만큼 어려운 이유다. 


누군가에겐 지금의 대통령이 우상일 수도 있겠다. 반신반인의 자손이니까. 특정 셀러브리티나 아이돌을 우상으로 여길 수도 있다. 이 책이 아주 잘 쓰인 평전은 아니다. 그럼에도 내게 주는 시사점이 있다면, 우상을 통해 투영해야 하는 현실의 자각이다. 그것이 비판을 통한 추락이든 외연의 확장이든, 우상을 향한 팬심이 뻗어나가야 할 지점을 사유하게 만든다. 감정적 혐오자이든 빠돌이이든, 가장 중요한 것은 우상이 아니다. 정희진의 말(나의 육체여, 나로 하여금 항상 물음을 던지는 인간이 되게 하소서)을 빌어 살짝 바꾸자. 


나의 우상이여, 나로 하여금 항상 물음을 던지는 인간이 되게 하소서.  




j******2 2014.02.16.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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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면글면 추락시킬 것 까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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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OL은 우상이다. 우상은 찬양과 숭배의 대상이 되는 존재다. 태고의 조상들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상은 가득하다. 90년대 중반부터 한국이라는 사회에서는 IDOL이 10대 중후반부터 20대 중반 정도 까지 소속사에 속한 남·여 댄스그룹을 가리키게 되었다. 유별난 현상이다. 처음에는 ‘길어봐야 10년 가겠어?’ 싶었다. 그런데 HOT가 없어지고 G.O.D가 없어져도 계속해서 IDOL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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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OL은 우상이다. 우상은 찬양과 숭배의 대상이 되는 존재다. 태고의 조상들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상은 가득하다. 90년대 중반부터 한국이라는 사회에서는 IDOL이 10대 중후반부터 20대 중반 정도 까지 소속사에 속한 남·여 댄스그룹을 가리키게 되었다. 유별난 현상이다. 처음에는 ‘길어봐야 10년 가겠어?’ 싶었다. 그런데 HOT가 없어지고 G.O.D가 없어져도 계속해서 IDOL이라는 댄스그룹들이 탄생하고 그만큼 빠르게 사라졌다. 그리고 언제 어떤 그룹이 사라졌는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새로운 그룹들이 탄생하는 순환을 20년 가까이 지속하고 있다. 게임시장이 K-POP시장보다 몇 배나 많은 돈을 벌어다 주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게임을 규제하려는 유아적인 발상을 하는 국회의원들이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적어도 10대의 여자 아이들이 핫팬츠와 탱크탑을 입고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요상한 춤을 추는 것이 PC방에 틀어박혀 밤새도록 게임을 하는 것보다 더 유해하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이런 상황들이 코미디다.

요즘 가장 핫한 IDOL그룹은 SM소속의 엑소라고 한다. 으르렁이라는 곡은 무한도전에도 나올 만큼 대단한 인기를 끈 것 같다. 나는 엑소가 몇 명인지 그 아이들의 노래가 어떤지 전혀 관심이 없다. 엑소도 몇 년 후에는 그들 소속사의 대선배인 슈퍼주니어나 동방신기 형들처럼 외국을 다니며 콘서트를 하고 TV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에 나오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내가 낳은 딸내미가 이런 댄스그룹 IDEL(아이들)에게 빠지지 않았으면 싶다. 발에 채일 정도로 넘쳐나는 IDOL이라는 댄스그룹 IDEL은 뮤지션이나 아티스트가 결코 될 수 없다. 그들은 철저하게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회사의 제품에 불과하다. 그런 제품이 부르는 노래와 춤에 내 딸아이가 결코 현혹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아니 태교 때부터 줄곧 다른 장르의 음악을 들려줘야겠다.

한국의 IDOL은 반드시 없어진다. 한류다 어쩌다 해서 드라마나 영화와 끼워 팔기 식으로 우르르 몰려가 공연을 하고 아무리 그래도 트렌드는 변하기 마련이다. 앞으로도 수도 없이 많은 IDOL이라 자칭하는 댄스그룹 IDEL이 만들어지겠지만 어떤 비관적인 비평가들의 비관적인 전망처럼 한국의 전체 음악시장이 이들로 인해 파멸의 길로 가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상은 무너지지만 이성은 쓰러지지 않기 때문이다(내가 스스로 좋은 표현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했는데 쳇! 고 리영희 선생님의 아주 아주 유명한 책 제목의 차용에 불과하다)

 

 

우상은 추락하게 마련이다.

 

“전기 작가들은 프로이트가 출간한 책에 쓰인 텍스트를 있는 그대로 믿는다. 프로이트의 자택에서 오랜 세월 하녀로 일했던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집주인 프로이트는 돌푸스 수상이 추진한 오스트리아의 파시스트 정권에 동정을 표했다.” (p.640)

 

이 책을 쓴 미셸 옹프레는 하나의 우상이 된 프로이트를 추락시킨다. 물론 그는 책의 초반부에서 자신은 결코 프로이트의 생각을 무효화시킬 생각이 없다고 말하지만 이 두꺼운 책을 힘들게 다 읽고 나면 꼬장꼬장하게 생긴 덥수룩한 수염의 학자가 이미 거대한 성채와 같이 인류의 보고가 된 인물 하나를 끌어 내리기 위해 갖은 애를 쓰고 있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어쩔 수 없다. 나는 저자가 왜 책에서 줄곧 이 책에 대한 변명을 하는지 모르겠다. 겁이 나는 것이라면 애초에 이런 책을 쓸 이유가 없을 테고, 자신의 논리가 자신이 없다면 그것도 앞의 이유와 동일할 텐데 말이다. 우상은 어쨌든 무너진다. 추락한다. 프로이트라는 인물을 놓고 전기 작가들과 저자인 미셸 옹프레, 책을 읽는 독자인 나는 다른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전기 작가들은 돈을 받고 프로이트의 삶을 기록하는 것이 일이다. 옹프레는 프로이트를 연구하고 그 연구에 대한 또 다른 발전을 위해 그를 추락시키려 하는 것이고 나는 별로 관심이 없었던 인류의 우상, 프로이트에 대한 비판적 평전을 읽게 된 것 자체에 의미를 둔다. 만약 돈을 받고 프로이트의 전기를 쓰는 작가가 의뢰인인 프로이트의 구술과 여러 저작을 참고로 하지 않고 자신의 주관적으로 프로이트를 만나고 대화하며 느낀 것으로 전기를 쓴다면 그 책은 출간되지 못할뿐더러 의뢰인이 이 사실을 알게 된 즉시 해고될 것이다. 프로이트에 대한 비판적 평전인 이 책을 쓴 옹프레 교수 또한 만약 자신의 전기를 쓸 기회가 온 다면 스스로 이런 전기를 쓸 수 있을까? ‘나는 평생 동안 이런 이런 잘못을 저질렀고 여러분들이 우상으로 떠받드는 내 연구와 저작은 형편없는 쓰레기요~!’ 라고 절대로 말할 수 없다. 그런 말을 하기 위해서 전기를 집필하는 바보는 세상 천지에 없다. 나는 엑소에 관심이 없듯이 프로이트에 관심이 없다. 아무리 유명하고 새로운 학문을 개척한 위대한 IDOL이라 할지라도 내가 흥미를 가질 만한 분야가 아니었기에 찾아 읽지 않았다. 좋은 기회를 통해 이 책을 읽게 되었지만 사실 프로이트의 다른 저작을 읽고 싶은 마음은 이 책을 읽고도 전혀 생기지 않았다.

그러니까 프로이트에게 돈을 받고 그의 전기를 쓴 수많은 직업 전기 작가들이나 전적으로 프로이트와 그의 학문에 대한 경탄과 찬사로 그의 위인전을 쓴 제자나 작가들이나 이 책의 저자처럼 많은 이들에게 이미 우상이 된 프로이트에 대한 비판적 평전을 쓰는 사람들이나 내겐 별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있으면 저런 사람이 있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나와 같은 독자도 섣불리 한쪽의 편을 들어서는 안 된다. 뭐 물론 그것도 독자들 마음이다. ‘아~ 이런 책이 있구나.’ 이 정도에 그쳐야 한다. 내게는 그것이 이 책에 대한 가장 솔직한 느낌이다.

 

 

“프로이트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의 무의식은 이러한 것들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다고 한다. 숨겨진 것들을 속으로 억제하는 것이 무의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진실을 은폐한다. 정신분석학에 대한 거부는 곧 자기 자신에 대한 앎을 거부하는 행위와 같다.” (p.551)

 

나는 옹프레가 프로이트에 대한 숨길 수 없는 질투와 열등감을 가진 게 아닐까 싶었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의 세계와 억눌린 성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현상을 사회병리 현상으로 풀어낸 사람이다. 당시의 철학 사조와 사상 안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이었다. 프로이트와 나는 살아간 연대도 엄청나게 차이가 있고 사는 세상도 그만큼 차이가 있으며 생각하는 수준과 학문에 이른 수준 또한 그만큼 차이가 있다. 하지만 무의식의 세계, 꿈의 세계, 근친상간이나 사회·종교적으로 억눌리고 배제된 성의 문제에 대한 접근에 있어서는 비슷한 성향을 가진다. 특히 꿈과 무의식의 세계가 더욱 그렇다. 최면이나 수면요법 등은 프로이트 보다는 이후 학자들에 대해 더욱 발전된 개념이지만 출발은 어김없이 프로이트다. TV에서 많이 방송되는 프로그램 중 가족 간, 특히 부부 간 갈등과 갈등의 해소를 가감 없이 보여주는 것들이 있다. 많은 경우 갈등의 소지는 과거의 경험에 기인한다. 그래서 자신의 과거 특정 시점으로 돌아가 그때의 자신과 마주해 갈등과 상처의 기억을 치유하는 과정을 그려내고는 하는데 이때 많이 사용되는 것이 최면이나 무의식 세계로의 경험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의 요지는 프로이트의 접근과 창조적인 학문의 발견과 발전이 지금에까지 유용하게, 아주 유용하게 전 세계적으로 쓰이고 있다는 것이다. 비록 프로이트의 책을 읽지 않았다 할지라도 말이다. 일정 부분 현재의 인류는 프로이트에게 신세를 지며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물론, 저자가 프로이트의 학문적 열정과 실험의 집요함 전부를 지적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렇게 책의 여러 곳에서 변명인 듯 보이는 언급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프로이트에 대한 열등감의 발로라면 좀 더 솔직히 속마음을 드러냈으면 좋을 뻔 했다.

 

 

“철학자들은 무의식에 대해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꿈이라든가 최면술, 실질적인 의학 치료에 대한 노력이 부족했다. 프로이트와 달리 철학자들은 문자화된 책들의 세상에 머무는 이론가들에 불과했던 것이다.” (p.99)

 

고대와 중세시대 내내 연금술이나 마술, 신비주의 종교와 철학은 횡행했다. 오죽하면 중세에는 멀쩡한 여성을 마녀로 몰아 태워 죽이고 찢어 죽이고 돌로 쳐 죽이는 일도 일어났다. 르네상스를 거쳐 유사 이래로 가장 이성적인 사회를 만들었다는 중세에 마녀 놀음이 전염병처럼 광풍이 되었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그래서 중세의 끄트머리와 근대의 입구에서는 병적으로 이성과 합리에 천착했을 것이다. 음료수는 종류와 브랜드대로 일렬종대로 세워 놓고 보도블록의 테두리는 절대로 밟지 않는 것 같은 것에 버금가는 편집증이다. 수백 년 동안의 암흑시대를 막 벗어난 인류는 발전과 진보의 방향으로 뱃머리 전체를 돌렸다. 산업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각종 이념과 철학과 사상이 창궐했다. 그런 시대에 프로이트의 이야기는 오히려 다시 암흑의 중세시대로 돌아가자는 것으로 들렸을 것이다. ‘아니 지금 말이야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꿈 타령, 무의식 타령이야~!!’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이성의 시대를 펼쳤지만 아직 선뜻 그 위에 올라타 뒹굴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 없었다. 언뜻 저자는 프로이트를 칭찬하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상한 빵을 먹었거나 지나치게 많이 먹어서 배탈이 났을 수도 있는데 그런 평범한 원인은 프로이트에게 별로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 (p.188)

 

그런데 이런 내 의도는 여지없이 깨진다. 저자는 복잡하고 자세하게 프로이트가 이룬 업적과 알려진 성공에 대한 오해를 설명한다. 사실 나는 읽어도 잘 이해가 안 되는 내용이 많았다. 프로이트에 전혀 관심이 없고 이쪽 분야에 전혀 소질이 없는 순수하고(?) 수준 낮은(?) 독자의 눈에서 해석하자면 프로이트는 평생 근친상간의 판타지 속에서 살았고 그것을 해소하거나 해소하지 못하는 욕망 사이에서 갈등했으며 1개를 발견하면 100개를 발견했다고 부풀리고 과장하는 측면이 많았으며 일부 실험과 연구에 있어서는 그의 도덕성과 인간성을 심각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을 정도로 위험한 측면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세상에 존재하는 이론과 학문 중에 완전한 것이 있나? 나는 모르겠다. 나는 학사 학위를 가진 것이 전부이고 그 학사 학위도 먹고 사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인생을 살고 있다. 학문이라 해봐야 학부 시절 4년 동안 전공 공부 한 것이 전부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박사학위를 가지고 일정 분야에서 일정 정도 이상 학문적 성취를 이룬 저자와 같은 사람들의 생각을 미루어 짐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그래서, 뭐! 어쩌라는 말인가?! 나와 같은 일반인들에게 프로이트나 저자나 니체나 베버나 촘스키는 그저 대단한 사람들이다. 감히 그들의 학문과 논리를 부정은커녕 의심조차 한 번 해본 적 없이 겸손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그들의 책을 고이 읽는다.

저자가 생각하기에 프로이트가 가진 한계와 빈약함이 많았을지 모르지만 그런 것은 내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잘 알고 전문적이며 탁월한 저자와 같은 학자님들께나 유효한 문제이지 이런 두꺼운 책을 읽는 것 자체로 나 자신에게 상을 주고 싶을 만큼 만족하는 나와 같은 독자들에게는 저 위에 진하게 표시된 문장의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빈 출신인 의사 프로이트가 자신의 전설적 이야기와 경험담을 전기 작가들에게 쓰라고 직접 요구한 것이다. 그는 문학적인 담론과 신화나 주술에 가까운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p.51)

 

사람은 누구나 IDOL이 되고 싶은 욕망이 있을 것이다. ‘아이고~ 저런 저런 어린 애들이 TV에 나와서 다리 다 내놓고 위에도 다 내놓고 뭐 하는 거야~’ 라고 하면서도 만약 내 아이가 IDOL 댄스 그룹의 일원이 되고자 한다면 모든 것을 내어 놓으며 뒷바라지를 한다. 아역 배우들의 드라마나 영화 출연과 CF출연은 전적으로 부모들의 욕심이다.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살다보면 징그럽게 현실과 마주한다. 까마득히 높아 보이는 이상과 괴리된 채 하루하루 지쳐 잠드는 ‘나’를 문득 발견했을 때의 절망이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모른다. 그래서 적어도 내 자식만큼은 나보다 더 IDOL에 가까운 삶을 살기를 바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한국이라는 사회에서는 10대와 20대 초·중반에 IDOL이라 칭해지는 댄스그룹 IDEL(아이들)만큼 돈을 많이 벌고 인정받고 인기 있는 직업이 없기 때문이다. 춤추고 노래하다가 운이 좋으면 드라마나 영화에도 나올 수 있고 CF를 찍을 수도 있다. 김준수라는 젊은 친구는 120여억 원을 들여 제주도에 호텔을 건설한다고 한다. 그 젊은 나이에 말이다. 그러니 IDOL, 아이돌 하는 것이다.

어쩌면 프로이트도 IDOL이 되고 싶은 욕망에 충실한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인류와 미래를 위해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아 부어 연구하고 실험하는 것에 만족하는 일개 영웅이 아니라 더 미화되고 칭송받고 대대로 인세를 받아먹고 살 수 있는 IDOL, 우상이 되고 싶었을 것이다. 이 책에서도 여러 번 언급되고 프로이트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알고 있을 그의 가정환경과 평탄하지 못했던 결혼 생활로 인한 내적 혼란은 그런 인정과 과시와 욕심으로 투사되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에 대해 옳다 그르다 판단할 수 없다. 이 책의 저자와 같이 생각할 수도 있고 나와 같이 단순하게 생각할 수도 있는 문제다.

 

 

 

 



l****h 2013.11.18.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