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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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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두번째 시집 『온다는 믿음』이 출간될 때 시인이 직접 자신의 시를 낭독하는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영상 속에서 자신의 시를 읽는 시인과, 그의 시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흑백으로 제작된 영상이었는데, 뭐랄까. 이제는 고대의 유물처럼 사라진 '믿음에 관한' 시들처럼 이해됐다. 흑백의 이미지라는 점에서 그건 과거의 것이지만, 시인의 담담하지만 또렷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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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두번째 시집 『온다는 믿음』이 출간될 때 시인이 직접 자신의 시를 낭독하는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영상 속에서 자신의 시를 읽는 시인과, 그의 시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흑백으로 제작된 영상이었는데, 뭐랄까. 이제는 고대의 유물처럼 사라진 '믿음에 관한' 시들처럼 이해됐다. 흑백의 이미지라는 점에서 그건 과거의 것이지만, 시인의 담담하지만 또렷한  목소리와 자세에서, 그것의 도래에 대한 믿음('믿음의 도래를 믿음'은 동어 반복일까? 그렇게 여겨지기도 하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이 영상 바깥의 나에게까지 고스란히 전달됐다.
흔히 '믿음'은 종교적인 것과 연결되지만, 이 경우엔 좀더 넓고 포괄적인 의미에서의 '신념'이나 '희망'과 관련된 것이라고 해석하거나 혹은 인간간의 (상호) 신뢰를 의미하는 믿음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온다는 믿음」이야 말로 정재율을 대표하는 시라고 생각한다.

정재율의 시들은 슬픔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슬픔에 함몰되거나 질식되지 않는다. 자기연민에 빠지지도 않는다. 그는 슬픔을 말하지만 담담하다는 점에서 '애이불비(哀而不悲)'하고, 그로 인해 자신이나 타인에게 상처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애이불상(哀而不傷)'하다. 이런 점들이 시인을 품위 있게 하고, 그의 시들을 돋보이게 하는데, 나는 이것이 시인으로서 정재율이 가지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얼마전에 김혜진의 『축복을 비는 마음』이란 소설집을 읽었다. 모두 '빈곤'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어린 아이인 '세미'를 주인공으로 한 「20세기 아이」를 읽은 후에, 계속 꿈에 세미가 나왔다. 어려서부터 빈곤을 경험한 세미가 어떻게 성장해서 어떤 어른이 될지, 그 과정에서 '빈곤'이 그 아이에게 얼마나 지대하고 막대한 영향을 미칠지를 계속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그게 안타까워서(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세미처럼 빈곤에 노출되어 있는가), 그럼에도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없어서 지속적으로 꿈에까지 나왔던 것 같은데, 그래도 안심이 되었던 건 이 소설집의 맨 마지막에 배치된 「축복을 비는 마음」이란 표제작 때문이었다. 어찌 보면 정재율의 시집 역시 김혜진의 소설들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들이야 말로 어린 세미 혹은 성장한 세미가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살 수 있게 곁을 내어줄 수 있는 '누군가', 그들의 축복을  빌어주는 사람들이다.

이 시집엔 유독 「축복받은 집」이라는 제목을 단 시들이 많이 있는데, 어찌 보면 이것은 역설이고, 사실은 그렇지 못한(혹은 못했던), 그래서 (과거나 현재에) 슬픈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이 그 슬픔에 장악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온다는 믿음'에 있을 것인데, 그것은 개인이 홀로 기다리는 것일수도 있겠지만, 서로에게  축복을 빌어주는 누군가의 존재와 함께 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개인적으로 소설가로서 김혜진을 무조건적으로 신뢰하고 지지하는 것처럼, 앞으로 정재율의 시들을 무한한 신뢰를 가지고 계속 읽게 될 것 같다.
이 두 젊은 작가들이 사는 현실은 '포스트 아포칼립스'처럼 절망적이지만, 어쩌면 그래서 그들만의 '창세기'를 새롭게 쓸 수도 있지 않을까. 그 믿음을 독자로서 함께 하고 싶다.


YES마니아 : 로얄 c*****g 2024.06.0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