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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도를 하면 분란을 일으킨다고 불온시된다. 가만히 있으면 네가 그러고도 교사냐고 비난한다. 교사는 묻고 싶다. 어쩌라고?"
엄기호님의 전작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 “이게 사는 건가” 싶을 때 힘이 되는 생각들" http://minihp.cyworld.com/20966544/284931073 이 원론을 이야기하는 책이었다면 이 책은 그 이야기를 교육에 적용해보는 시도다.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에서 교육에 대한 책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기다리다가 잊고 있었는데 정책아카데미 유경샘께서 이 책을 읽고 계시다고 말씀하셔서 반가워하면서 얼른 주문했다. 공교육 밖에 있는 사회학자가 한국 교육을 읽는 시각이 꽤나 날카롭다. 비교적 객관적인 그 시각으로 내린 해석은, 안에 있는 우리가 보는 것보다 훨씬 정확하고 통찰력 있어보인다. 책 전체가 너무 공감되는 내용이라 빨리 읽었지만, 절대 쉽고 가볍게 읽어치울 수 있는 책이 아니다. 힘들 때마다 두고두고 꺼내보고 싶어질 것 같다. 한 문장 한 문장을 곱씹으면서.
2학기에 겪은 일 속에서 나쁜 '의도'를 가지고 움직인 선생님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소통의 미숙함과 생각의 차이 때문에 선생님들과 아이들은 지금까지도 상처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분히 글 쓰고 있는 내 입장에서의 서술이 될 수 있겠지만, 작년부터 지속적으로 폭력을 당해왔고(그 과정에서 피해자들이 '얻었던 바'도 있었던 건 인정하지만), 올해 2학기에 폭력이 다시 시작될 것 같은 느낌을 감지하고 불안해진 피해자들이(언어폭력, 사이버폭력을 같은 학교 언니와 다른 학교 언니에게 당함) 학폭위를 열고 싶다고 신고했다. 그런 관계는 그만 맺고 싶다, 더 큰 폭력을 당할까봐 불안하다는 아이들 이야기를 듣고 바로 부장님께 연락 드리고 공론화하려고 했으나 뒤에서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넘어갈 것 같은 위기감을 느꼈고, 학폭위를 열어야만 공론화가 가능하리라 판단했다. 그 후 담임들은 학폭위를 열지 않아도 될 사소한 일로 관련자를 가해자 같은 피해자로 만들었다는 비난을 듣고 있고, 피해학생들은 일부 어른들께 말과 시선으로 암묵적인 보복을 당하며 힘들어하고 있다(고 여기에 써도 될지 모르겠고, 당사자가 알고 계실지는 더더욱 모르겠다). 학교를 안전하고 평화적인 공간으로 만들고 싶고, 잘못된 상황에 대해서는 분노하고 공론화하려고 노력해야한다고 배운 대로 실천하고 싶었으나 나는 사건의 중심에서 공동체에 분란을 일으킨, 생각 없는 나쁜 교사가 되어 있었다. 요즘 학교에서고 퇴근해서 집에 왔을 때고, 어떤 강의를 듣거나 책을 읽을 때에도 그 사건에 대해 계속 생각이 난다. 내가 잘못했던 게 대체 무엇이었는지, 우리는 왜 이렇게 되었는지, 끝난 듯하지만 끝나지 않은 이 사건 속에서 앞으로 나는 아이들을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에 대해... 힘들었지만 같은 상황이 발생한다면 나는 똑같이 행동할 것 같다. 정년까지 이런 학교 속에서 상처받지 않고 올바르게 살 수 있을까, 라는 의미에서 교사인 나는 학교가 두렵다. 이런 고민 속에서 읽는 이 책이 그냥 가볍게 읽히지 않았다.
이렇게 많이 옮겨 적어두는 게 저작권 상 문제가 없을지 모르겠으나, 힘들 때마다 꺼내봐야할 것 같아서 다소 길지만 옮겨 적어둔다. "침묵, 자신과 타인을 지키는 방법
나는 이 책에서 학교라는 공간에서 교육적 만남이 어떻게 점차 불가능해지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학생과 교사의 관계는 아예 무관해지거나, 적당히 공모하거나, 혹은 적대적으로 변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학교는 계몽의 공간으로서, 신분 상승의 도구로서, 혹은 다양한 능력을 발견하고 연마하는 공간이나 생활의 공간으로서 모두 무의미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몸은 절대 다수의 시간을 학교에 매여서 물리적으로 다른 존재들과 충돌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수업 붕괴와 학교 폭력은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학생들의 관계까 점점 더 폭력적으로 되고 있지만 정작 그 폭력이 일어나는 공간인 학교와 교실은 문제 해결의 단위가 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학생들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학교와 학급이 그것을 해결해줄 것이라고 전혀 믿지 않는다. 대신 혼자서 견딘다. 그러다 임계치에 이르면 자신의 몸을 던져 사건을 폭로한다. 학교가 위기에 처했다는 것은 수업 붕괴나 학교 폭력이 일어났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학교는 강제적인 생활 공간이지만, 그 생활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단위는 되지 못하는 것이 위기의 실체이다. 이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교사들이 교무실에서 서로 머리를 맞대고 활발히 토론하며 지혜를 모아야 한다. 하지만 정작 교무실은 침묵에 빠져 있다. 민주화와 함께 '침묵의 교단'을 넘어서자고 했지만 침묵은 더 깊어지고 있다. 위기를 감지하고 그것을 공론화하려는 교사들은 오히려 불온시된다. 학생들을 두고 무책임하게 실험하는 교사로 낙인찍히고 있다. 공연한 분란을 일으키고 가뜩이나 피곤한 삶을 더 수고롭게 하는 '설치는 존재'들로 기피된다. 이 때문에 무엇인가를 시도하려는 교사들의 삶은 더욱 분주해지고, 자칫 사고라도 벌어지면 '독박'을 쓰게 된다. 아무도 나설 수 없는 구조, 나서면 망하는 구조, 그것이 지금 학교의 모습이다. 그러다 보니 공개적으로 문제제기하지 않고 서로 책임질 말을 안 하는 것이 상책이 되었다. 당연히 교무실은 침묵에 빠지고 교사들은 서로 소통을 차단하고 자신의 발언을 검열하고 행동을 단속하게 된다. '차단'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내 삶에 타자가 개입하는 것에 대한 경계이고, 다른 하나는 타자로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경계이다. 특히 교무실의 침묵이란 자기자신을 상대방에게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자, 즉 타자로 드러내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 공적으로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것을 넘어, 다른 교사의 교육철학이나 교육 방식에 대해 다른 의견을 제시하거나 조언하는 것 자체가 개인적인 공격이자 예의 없는 행동으로 여겨진다. 동료 교사가 학교 평가와 관련하여 열심히 학생들을 독려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말을 했다가 "샘이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냐?"는 항의를 듣고 관계가 어색해진 후, 임 교사가 다른 교사가 하는 일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게 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임 교사가 그런 말을 한 것은 동료 교사의 부지런함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교사의 부지런함이 때에 따라서는 반교육적이 될 수도 있음을 상기시킨 것이었다. 하지만 동료 교사는 그것을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였다. (이 문단은 이래야 한다는 당위가 아니라, 지금 상황이 이렇다는 저자의 사실적인 해석으로 보인다, '잘하고 있다'가 아니라 '문제다'라고 이야기하는 부분- 리뷰작성자 주) 따라서 관계는 타자성이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세심하게 배려되어야 한다. 이것은 결코 이기주의의 문제가 아니다. 다른 교사의 문제에 가급적 개입하지 않는 것은 자신에게 닥칠 피해를 피하는 것이자 동시에 그 교사를 존중하며 관계를 유지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삶에 관여하지 않는 것을 넘어, 남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 자기 삶을 제어하고 행동해야 한다. 교육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견해 차이는 명백히 정치적인 것이지만, 그것은 문화적 차이 혹은 취향의 문제로 순치되어야 한다. 정치적 차이가 토론과 논쟁을 통해 조정되는 것이라면 문화적 차이는 관용과 개성의 존중으로 조정되기 때문이다. 타인의 견해를 개성이자 취향으로 존중하는 것, 그것이 예의바른 행동이다. 장 교사나 강 교사가 교육과 학생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후배 교사들이 부담스러워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장 교사나 강 교사가 고뇌하는 모습 자체가 그들에게는 자신의 '교사 됨'에 대한 공격이 된다. 문 교사가 혼자서 지문인식기 도입에 반대했을 때 그를 압박한 사람도 관리자가 아니라 동료 교사들이었다. 왜 혼자서 튀느냐는 것이 그들이 문 교사를 못마땅하게 바라본 이유였다. 교육현장에서 받는 상처와 고통을 드러내고 그것을 그 자리에서 달느 사람들과 공통의 것으로 나누는 일은 의식적으로 기피된다. 이처럼 서로의 삶에 개입하지 않고 문제제기를 하지 않기 위해 자기를 검열하고 단속하는 것은 서로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믿었던 사람이 언제 나를 공격할지 모른다는 경계심을 늘 가지고 살아간다. 바우만은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 세 가지 수준에서의 신뢰가 다 붕괴하였다고 말한다. 첫 번째는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 두 번째는 타자에 대한 신뢰, 세 번째는 제도에 대한 신뢰다.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자기 자신조차 믿지 않으며, 자신이 속한 제도가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도 믿지 않는다. 사람들은 아는 사람들만 자기 주변에 배치하려고 하며, 모르는 세상과의 접촉을 될 수 있는 한 끊으려고 한다. 제도와 타자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조차 불신할 때, 안전을 위해 자기가 자신을 감시하고 검열하는 자기 단속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개인들은 침묵함으로써 스스로를 세계와 단절하여 고립한다. 이런 세상에서는 취향만 남게 된다. 이처럼 다른 사람의 감시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공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강도가 강해질수록 사람들은 사적으로 '친밀한 관계'에 집착한다. 취향이 같거나 사적으로 친밀한 관계에 자신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상받으려는 것이다. 이른바 '사교'만 남게 되었다. 이 시대가 가진 취향과 사교에 대한 강박은 바로 이것을 말하고 있다. 이 책에서 소개한 교사들이 동료 교사들과 대화하면서 아무 재미도 느끼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 교사들은 드라마나 쇼핑에 대한 이야기만 하고 학교와 교육에 대한 이야기는 가급적 피하려고 한다. 내가 만난 교사들은 바로 그 이야기를 해야 동료가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동료 교사들에게 의식적으로 기피되는 부담스러운 주제이다. 따라서 동료 교사들과 '정치적'으로 접속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이 별로 흥미로워하지 않는 '문화적'인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강 교사가 후배들과 함께 대화하려고 노력하다 결국 뮤지컬에 대한 이야기만 나누게 되는 데 지쳐 대화 자체를 그만둔 것이 대표적이다. 또한 동료 교사들과 함께 학생들에 대해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험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이러한 험담은 "걔는 원래 그래"라거나 "그 새끼는 인간이 글렀다" 같은 반교육적인 언사로 이루어지는 것이 대부분이라 공감하거나 동의하기가 힘들다. 오히려 장 교사는 "그런 식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가 동료 교사들에게 배척받는 경험까지 했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 다르게 살아갈 수 있는 자유'라는 자유주의의 개념은 다름/차이를 드러내는 것 자체가 타인의 삶에 대한 개입이 되는 것으로 급진화되었다. "자기 자신을 타자로 드러내서는 안 된다"라는 말이 급진적으로 의미하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튀지 않는 것'은 나를 보존하는 것만이 아니라, 나아가 남을 배려하는 방식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오히려 이질적인 존재가 되고, 사람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보다 자기 검열하며 찬-반의 목소리 뒤로 숨게 된다.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공적으로 내보이기를 두려워하게 된 것이다. 현재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성찰하려는 요구가 결속과 유대를 낳는 것이 아니라 이질적인 집단과의 만남을 방해하고 단절시키며 또한 개인들을 자기 검열-단속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 그 결과 학교는 타인에 대해 말해선 안 되는 사회가 되었다. 타인에게 심려를 끼칠 만한 이야기는 '그 공간'에서 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뒤에서 수군거리거나 다른 데 가서 떠들 수는 있지만 결코 정면에서, 혹은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거나 공론화를 시도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상처라는 개인적인 경험을 교사들 모두의 "공적인 이슈들을 다루는 언어로 새롭게 해석하고" 교사 개인이 교실에서 겪은 "사적인 곤란들에 대해서 공공의 해결책을 모색"하는 과정으로서 정치는 불가능해졌다. 대신 그 자리를 대체한 것은 사적인 위로와 맞춤형의 상담이다. 이런 관점에서 왜 교사들이 자신의 고통과 상처를, 그 상처와 고통이 만들어지는 공간에서 함께 겪고 있는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전문상담소나 방송 같은 곳에 나가서 이야기하는지 비로소 알 수 있다. 권 교사가 교사로서의 고통을 나눌 사람을 학교에서는 도저히 찾지 못해 결국 점집을 찾아간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제 상처와 고통은 일상적인 것이 아니라 병리적인 것으로 취급되고, 그에 따라 상담소나 정신과 같은 전문적인 곳에서 다루어지게 되면서 학교라는 장소는 현장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교사로서 자신의 고통과 상처를 나누는 공간이 학교 '안'이 아니라 학교 '밖'이 되었고, 교사들 사이에서조차 교육적 만남의 공간으로서 학교는 점차 공동화되고 있다...(289-295쪽.)
교사와 교사 사이 교사들 사이의 관계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를 해석하기 위해 저자는 아렌트의 생각을 곳곳에 인용하고 있다. 교무실은 사적영역화 되었다. 교사들의 대화는 문화적 취향에 대한 잡담 뿐이다. 타자끼리는 되도록 깊은 관계를 맺고 싶어하지 않으며, 비슷한 사람들끼리만 비슷한 취향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힘든 일이 있으면 뒷담화 하며 개인적으로만 위로한다. (사실판단) 그러나 아렌트에 따르면 우리는 교무실을 공적영역화 해야한다. 학교에서 발생하는 각종 고통에 대해 '공통감각'을 가지고 정치적으로 공론화해야 한다. 서로의 생각이 다른 타자끼리 이야기해야 한다. 생각의 차이를 확인할 때 개인적인 인격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가치판단)
책 전체는 전교조 선생님을 중심에 두고 선배교사와 후배교사의 세대차이가 교무실 속 갈등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라고 꼬집는다. 아직 거대담론이 살아있던 시절에 전교조가 제시하곤 했던 참교육을 위한 주장들이 지금은 학교에서 더이상 공론화되지 못한다. 시대가 변했고 교원 임용 시스템이 달라졌다. 안정적인 직업을 위해 '고시'와도 같은 임용시험을 어렵게 통과한 신규 교사들은 성공을 위해 끊임없이 불안해한다. 이는 구체적으로 성과급이나 승진을 위한 스펙 쌓기(업무 완벽하게 해내기)와 눈치보기(자기검열)로 이어진다. 한편 관리자-부장-평교사(-신규 교사)-기간제교사-시간강사라는 위계에서 자신들도 모르게 상위 서열은 하위 서열을 압박하고 착취하며, 하위 서열은 상위 서열에 대해 눈치를 본다. 누가 시키거나 의도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결국은 그렇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평교사인 누군가가 문제제기를 위해 예전처럼 '배째라'는 식으로 분란을 일으키면 피해는 하위 서열에 있는 교사가 보게 되는 시스템이라 더이상 예전처럼 공론화를 하기가 어려워졌다고 저자는 해석하고 있다. 참 날카롭고 일리 있는 지적이라 답답하다.
교사와 학생 사이 교육으로 학생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수업과 생활지도에서 교사가 잘 가르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 저자는 교사가 오히려 학생에게 타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이 때의 타자는 우리가 보통 사용하는 부정적인 의미의 타자는 아닌 듯하다). 꼰대 같은 당위적인 '말'을 일방적으로 쏟아내지 말고, 서로가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고 배우는 학생이 '모르고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하고 서로 이야기하는 게 가르침과 배움이라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내가 잘 못하고 있는 부분이라 앞으로 많이 배우고 싶다.
올해의 책을 뽑을 수 있다면 기꺼이 이 책을 뽑고 싶다. 이 책을 잘 가지고 있다가 10년 후에 다시 꺼내 읽었을 때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느끼게 될지 궁금하다. 우리 모두가 어떻게든 교육과 연관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 이런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어야 마땅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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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세밀하고 정교하다. 학교 시스템과 학급 구조, 학생과 교사의 관계까지, 매우 세밀하게 접근했다. 현직 교사와 재학생이 아니면 알기 힘든 부분들까지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어 정말 놀랍다. 학교 현장이 어떻게 파편화되어 가고 위계화 되어가는지 리얼하게 정리했다. 글이 술술 읽힌다. 그것은 엄기호 박사(이하 엄기호)의 글력때문이기도 하다.
질적 연구 방법으로 연구했다. 현직 교사들에게 자료를 수집하는 데 있어 면접법과 참여관찰법으로 한 것 같다. 특히 일일이 인터뷰하여 정리한 내용들은 같은 교사로서 처참한 마음으로 읽어갈 정도로 사실적이었다. 마치 나의 고민을 나열해놓은 것 같았다. 나만 이런 고민과 갈등을 하는 것이 아니다 싶은 것이 오히려 위안이 될 정도였다. 학교에서 어쩌다 교사 간의 관계도,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도 무너지고 말았는가. 질적 연구를 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엄기호는 감정적 단절과 타자에 대한 이해 부족, 공감력 상실 등을 강조한다. 삶의 연속성, 관계의 연속성을 강조하던 엄기호의 평소 발언 등에서 이미 예상했던 것이기도 하다.
전교조가 법외 노조가 되었다. 전교조가 합법화된 이후 노조 가입자 수가 폭증했던 때가 있었다. 전교조라는 타이틀의 후광효과가 컸다. 그 타이틀 뒤에 서서 나도 '참교육' 외치는 교사다라는 이미지 메이킹용으로 많이 쓰였다. 어느새 몸집이 줄어들더나 전 정권부터 지금까지 정부 차원의 압력이 커졌고 이젠 교섭단체에도 끼지 못 할 정도로 위세가 축소되었다. 엄기호는 주로 전교조 교사들을 인터뷰했다. 전교조 소속 교사라서 인터뷰한 것은 아니다. 학교 현장이 어디서부터 피폐화되었나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이 과정을 긴 시간 겪고 변화를 분석하고 의견을 피력하는 교사들 대부분이 전교조 소속이었을 뿐이다. 속칭 학생 운동의 시절을 지나온 학번 대의 교사와 외환 위기 이후 교사들의 극명한 대조는 눈에 띄는 부분이었다. 같은 전교조 소속이더라도 이제는 공명심이나 사명감보다 개인 능력을 업무 처리나 일의 과중함이 평가의 척도가 될 수 있다고 보는 교사들이 많아졌다.
(미완성)
171p 집필고사 -> 지필고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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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렵냐? 나도 두렵다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엄기호 지음. 따비 출판사(2013) 망한 교육 얘기야 어제오늘 일도 아니지만, 그 내밀한 속살을 들여다 볼 눈과 용기가 과연 있을까? 특히 교육의 주체인 교사들이 삶을 우리는 알지 못 한다. 하지만 학생도 학부모도 교사도 두렵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서로의 불안을 달래는 것이 아니라 맞닥뜨리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오히려 모여서 서로의 불안과 두려움을 고백하는 그 순간에 옅은 희망은 시작되지 않을까. 학교는 망해가고 있다가 아니라 이미 ‘망했다’에서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 최근 경향신문에서 선정한 뉴파워라이터 20인에 선정되기도 한 불온한(?) 문화학자 엄기호가 교사들을 곁에서 지켜보고 개입하면서 쓴 책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는 우리가 몰랐던 학교 현장과 교사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 학교가 위기에 처했다는 것은 수업 붕괴나 학교 폭력이 일어났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학교는 강제적인 생활의 공간이지만, 그 생활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단위는 되지 못하는 것이 위기의 실체이다. 이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교사들이 교무실에서 서로 머리를 맞대고 활발히 토론하며 지혜를 모아야 한다. 하지만 정작 교무실은 침묵에 빠져 있다. 위기를 감지하고 그것을 공론화하려는 교사들은 오히려 불온시된다. 공연한 분란을 일으키고 가뜩이나 피곤한 삶은 더욱 분주해지고, 자칫 사고라도 벌어지면 ‘독박’을 쓰게 된다. 아무도 나설 수 없는 구조, 나서면 망하는 구조, 그것이 지금 학교의 모습이다. -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중에서” 저자는 이 책을 망한 학교와 교육에 처방전을 내리고자 한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한다. 오히려 지금의 우리 교육 현장이 얼마나 반교육적이고 교육이 불가능한 파국적 상태로 치닫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지금의 교육현장에 팽배한 냉소를 비판한다. 오히려 폐허를 응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고 그 응시에서 희망은 시작된다고 말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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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 2학년 때의 담임은 정말 돈을 밝히는 교사였다. 그는 공부는 잘하지만 단칸 셋방에 사는 통에 촌지를 바칠 여력이 되지 못하던 나를 많이 미워했다. 학생들의 선거로 반장이 되었지만 그는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고 모욕했다. 심지어 다른 학생들 앞에서 나를 모욕하며 저런 '나쁜 어린이'가 되지 말라는 말도 했었다. 울며 집에 돌아온 나를 본 어머니는 며칠 후 화장품을 사서 담임을 찾아가셨다. 나는 아직도 그날을 똑똑히 기억한다. 어머니가 돌아간 다음 그 교사는 "누가 국산 화장품을 쓴다고......" 하면서 어머니가 놓고 간 화장품을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p.7) 이 이야기는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의 저자 엄기호가 서문에서 밝힌 경험담이다. 이 책을 읽다보니 학창시절의 안좋은 기억들이 스멀스멀 떠올랐다(평소에도 시도때도 없이 떠올라 날 괴롭히는 기억들이기도 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벌써 십 년 가까이 되었건만, 내가 다니던 때의 학교와 지금의 학교는 별로 달라진 게 없는 모양이다. 책의 1장 <교실이라는 정글>을 보면 수업을 듣지 않고 널브러져 있는 아이들, 입시에 도움이 되는 수업만 골라 듣는 아이들의 이야기부터 학교 폭력, 교사와 학부모 간의 갈등 문제가 나오는데 내가 고등학생이었던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학교 폭력이나 왕따는 다행히도 목격한 일이 없다. 하지만 내가 모르는 곳에서 벌어지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2장 <교무실, 침묵의 공간>과 3장 <성장 대신 무기력만 남은 학교>의 내용들은 처음 보는 것이 많았다. 내가 지금 교사도 아니고, 교대나 사범대를 나온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교사의 교, 선생의 선 자만 들어도 치를 떨 만큼 관심도 없다보니 권위적인 교직 내 분위기, 선후배, 동료 교사 간의 갈등 같은 일은 알 길이 없었던 탓이다. 구세대 교사들과 신세대 교사들의 갈등은 어렴풋이 이해가 된다. 저자가 지적한대로 최근 임용되는 교사들은 수능 성적 상위권이고 (수능 성적이 좋게끔 사교육을 받을 수 있었을 만큼) 가정 형편도 좋다. 내 친구들 중에도 교대, 사범대를 나왔거나 하다못해 교직이수를 한 친구들은 대개가 그렇다. 게다가 이런 친구들은 대학 시절에도 임용 준비를 하느라 색다른 경험을 하거나 교대, 사범대 출신 외의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별로 없다. 그런 아이들이 소위 말하는 문제아, 꼴통을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그런 선생들이 있는 학교에 나는 내 아이를 보내고 싶지 않다. 내가 겪어본 구세대 교사들은 더더욱 싫다. 아직 아이는커녕 결혼도 안 했지만, 가능하다면 대안학교에 보내거나 홈스쿨링을 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런데 이게 비단 교사들만의 문제일까?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김두식 교수가 <불멸의 신성가족>에서 지적했듯이 사법부에서도 그럴 것이고, 행정부, 의학계, 학계 등 점점 엘리트화, 세습화, 경직화, 폐쇄화되는, 소위 말하는 '순혈집단'에서는 공통적으로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본다. 우리나라 엘리트 중에서도 엘리트라고 할 수 있는 사법부와 의학계가 폐쇄적, 경직적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직업 또는 직위가 할아버지에서 아버지, 아버지에서 아들로 세습되고, 다른 분야, 다른 계층의 인간들과 전혀 소통이 없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 이후에는 그런 현상을 행정부, 학계가 겪었고, 이제는 철밥통으로 불리는 교사, 공무원 또는 대기업이 겪고 있다. 고인 물은 썩는다. 다양성이 없는 집단은 환경의 변화에 쉽게 망한다. 사법부, 의학계의 병폐, 행정부, 학계의 폐단을 생각한다면, 앞으로 교사, 공무원, 대기업 임원 집단이 어떤 문제를 낳을지는 뻔하다. 그들은 각종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것이며, 사람들은 그들을 욕하면서도 자기 자식들은 거기에 집어넣으려고 갖은 애를 쓸 것이다. 사법부, 의학계를 욕하면서 제 자식은 판검사, 의사가 되기 바라고, 정부와 교수 사회를 욕하면서 제 자식은 고시에 패스하고 교수가 되기 바라며, 이제는 학교라면 치를 떨었던 사람들이 제 자식을 교대에 보내 선생 만들려고 하고, 공무원, 대기업 직원이 되기를 바라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악순환을 끊는 곳이었어야 할 학교는 악순환을 만드는 곳이 되었고, 이제는 그 자체가 악순환에 편입되었다. 그동안의 악순환이 점점 더 확대되고 심화될 것이 분명하다. 학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정을 벗어나 처음으로 만나는 사회다. 학교에 대한 기억이 대부분 좋지 않다는 것은 개인으로서는 비극이고 사회적으로는 큰 손해다.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두렵다면 좀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내 아이를 아무 걱정없이 학교에 보낼 수 있게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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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학교는 꼰대들의 왕국이었다. 학창시절 꼰대들은 우리를 무지하게 때렸다. 때리는 방식도 다양했고 그 이유도 다양했다. 그렇게 선생은 학생에게 자신의 권력을 마음껏 휘둘렀다. 그런데 그곳은 그동안 많은 변화를 겪었다. ‘학교의 위기’, ‘교권 추락’, ‘개성 말살’, ‘학원 폭력’, ‘왕따’와 같은 말이 사용되는 것 또한 급격히 늘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에 관해 나의 첫 번째 반응은 언제나 꼰대들에 대한 막연한 거부로 나타났다. 이는 곧 학교에 관한 문제를 그들의 문제로 단순하게 환원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사회학자 엄기호가 쓴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따비, 2013)는 그런 나의 인식을 흔드는 계기가 되었다. 책을 통해 바라본 우리 시대의 학교는 생각보다 다양하고 복잡한 층위의 문제가 얽혀있는 장소였다. ‘교사 대 날라리’의 구도가 주를 이루던 교내 갈등 관계도 상당히 폭넓은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책 속에 등장하는 학교는 이제 꼰대들의 왕국이 아니었다. 오히려 사회 현상의 한 부분으로서 사회 문제의 또 다른 거울이자 정거장이었다. 제목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책은 교사의 입장에서 바라본 학교를 이야기한다. 이는 ‘학생’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학교 담론에서 조금은 비켜나고자 하는 시도이면서, 진보적 의제와 보수적 의제 사이에 끼어버린 교사의 입장을 항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저자가 실제 교사들과 진행한 인터뷰는 책을 구성하는 데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저자는 교사들의 다양한 의견과 이야기를 기록하면서 그것을 토대로 이 시대의 학교를 읽어내고 학교와 사회에 관하여 질문을 던진다. 저자가 읽어낸 여러 가지 현상과 문제점은 거칠게 하나로 수렴된다. 바로 ‘소통 부재’, ‘지체된 성장’이라는 전 사회적 현상이다. 바로 이런 현상이 교실 안에서도 가장 중요한 문제로 자리한다. 권위주의적 꼰대들의 지배가 무너진 것처럼 보임에도 학교 문제가 이전보다 더 심각하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러한 점 때문이다. 이전에는 어떤 권력에 대항하여 일정한 수준의 유대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면 지금의 교실에서는 그것이 완전히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저자가 말한 바로는 이질적인 존재들은 서로 만나고 부딪히면서 성장하게 된다. 그것을 통해 서로가 지닌 차이를 확인하고 각자의 경험을 확장하게 된다. 학교는 바로 이것을 제공해주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의 학교는 만남과 발견의 장소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방해하는 벽이 되어버렸다. 무한 경쟁으로 인해 교사와 학생들의 관계는 입시를 향한 도구가 되었다. 학생들은 ‘노바디’와 ‘섬바디’로 나뉘어 극심하게 분절된 관계를 경험하고 있다. 교실은 만남의 장이 아니라 경쟁을 위한 사각 링이 되었다. 그리고 교사들은 그 링 위에서 코치도 심판도 아닌 애매한 자리에 무기력하게 남겨졌다. 소통은 교사들의 관계에서도 사라져간다. 저자는 지금 소통이 아니라 침묵이 학교의 교무실을 지배하고 있다고 말한다. 소통이 어쩌다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그것은 지엽적인 주제에 머물거나 각자의 벽을 확인하게 되는 증거가 될 뿐이다. 이 때문에 가르치는 일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잡무들이 공유되지 못하면서 공정치 못한 노동 구조가 양산된다. 어떤 교사들은 무한 책임 회피를 일삼지만, 또 어떤 이들은 무한히 몰려드는 책무에 소모되어버리고 만다. 또한 수업에 관한 공유도 철저히 봉쇄되었다. ‘가르치는 방식의 공유’가 곧 ‘나의 방식에 대한 참견’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로써 교사들의 경험이 축적되지 못하게 된다. 경험의 확장이 멈추면서 교사들도 성장하지 못하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우리는 수많은 질문을 떠올리게 된다. “권위와 권력 사이에서 교사의 자리는 어디일까?”, “‘책임’이란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공유되어야 할까?”, “‘냉소’라는 괴물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드러나는 것의 두려움을 어떠한 방식으로 극복할 것인가?” 와 같은 질문들이다. 그러나 저자 엄기호는 이러한 질문들을 이끌어내고 학교의 문제들을 짚으면서 구체적인 해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는 해답보다는 질문을 위해 쓰인 책과도 같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질문만 잔뜩 던져놓고 떠나는 건 아니다. 이 질문들의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전제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에게 드러냄과 대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자기 검열보다는 차이를 드러내면서 ‘사적인 곤란들에 대해서 공공의 해결책을 모색’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타자와 만나고 경험을 확장하며 비로소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제안은 극도로 개인화된 자본주의 경쟁사회에서는 이루어내기 힘든 과제 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이 사회와 학교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를 느끼는 사람이라면 그 과제를 거부할 수는 없을 듯하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
우리의 진정한 교육은 뭘까? 요즘 학교 교육에 많은 문제와 아이들의 행동과 학습 때문에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고 하니 참 막막함을 느낄 수 있다 읽으면서도 그냥 마음이 답답하다 학교란 그저 가방 들고 꼬박꼬박 다니는 곳인지 그렇다면 그런 학교 꼭 다녀야하는것인지 또한 의문을 가지게 된다 교사도 학교를 두려워 한다니 왜 교사가 학교를 두려워해야하는지 그것 또한 교사가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화도 나고 짜증도 나는 것이 학교의 현실인 듯 합니다 교실속에서 이뤄지는 공부하는 아이들과 널부러져 있는 아이들 또 왕따로 인해 상처 받고 학원에서 선행이 다 되어 학교 수업은 하찮게 여겨 오후 내내 돌아다니는 학원의 피곤함을 잠시 쉴 수 있는 학교에서 그시간 잠을 자는 모습 이모두가 누가 만들었는 것일까 하는 한숨도 나옵니다 부모 또한 학교안의 교사를 믿지 못하고 행해지는 현실에 결국 상처를 받게 되는 것은 우리 아이들 사실 교사라고 다 같은 교사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촌지부분에서도 행해지는 교사는 암암리에 이미 학교밖에선 소문이 다 돌고 있죠 누가 돈을 밝히는지 그래서 교사가 학부모 임원도 이미 교사들 입에서 오르내리고 있는 학부모를 선택을 합니다 이 또한 소문이 자자하게 펴지고 있습니다 아마 당사자인 교사는 더더욱 잘 알겠죠 이또한 교사가 만든 모습이 아닐까 하지만 이런 교사는 간혹인것이 아닐까라고 믿는다 이책을 읽으면서 참 교사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게 되고 교사를 옆에서 지켜보고 지지해 주어야할 학부모의 모습도 생각하게 됩니다 학교를 계속 무너지게 내버려 둬야하는건지 교사들이 당차게 한번 일어서길 바랄뿐입니다 교육현실이 그렇다고 그냥 손을 놓는 것이 아니라 마음 맞는 교사들이 한두명 새롭게 다진다면 학교는 일어설거라 믿습니다 학교가 이렇게 계속 무너지고 있다고 계속 학교 교사만 욕할 것이 아니라 학부모들도 함께 깨어 정말 지금 현실에 무엇이 먼저인지를 알았으면 합니다 제일 상처가 큰 사람은 우리 아이들 아이들은 부모들의 큰 욕심에 그저 교사를 교사로 인정하지 못하고 짧은 지식으로 교사를 믿지 못하는 것 또한 문제가 아닐까요 교사들도 자기 욕심이 앞서 많은 일들을 일으키고 상처를 주고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현실이 비일비재합니다 저도 어릴때 교사로 인해 상처가 있습니다 사실 그때를 생각하면 참 너무 하구나 하는 생각과 그 교사는 생각도 하길 싫더라구요 그런데 감사하게 우리 아이들은 아직까진 정말 좋은 교사만 만나서일까 너무나 행복합니다 그런데 이책을 읽으면서 교사로 인해 또 학부모로 인해 아이들로 인해 서로서로가 상처를 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학교가 다시 가르침의 공간이 될 수 있을까요 전 가능하다고 봅니다 서로서로 욕심을 내려놓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짧게 나마 가지게 됩니다 교사들과 함께 쓴 학교 현장의 이야기 정말 무섭고 두렵군요 하지만 이또한 극복 가능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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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무겁게 가라앉고 저릿하다. 한숨을 깊게 쉬어보지만 좀체 시원해지지가 앉는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러하였다. 도서관에서 빌려 첫 몇 페이지를 읽다가 반납하고 내것으로 산 책 중에 이것도 포함되었다. 그래서이기도 하겠지만 참 천천히 오랜 시간을 두고 읽은 책 중의 하나이다. 요즘 '학교'라는 주제에 관한 책들을 연달아 여럿 읽고 있는데 학교의 문제가 단순히 학교 안에 소속된 학생,선생님 그리고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 점점 더 나를 절망스럽게 만든다.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다. 사회의 현상과 흐름들이 고스란히 학교안에서도 다른 듯 닮은 모습으로 재생되고 있다. 단순히 교육부가 입시제도 교육제도를 바꾼다고 변할, 그런 단순한 문제와 현상이 아닌것이다. 이놈의 사회가 이놈의 나라가 어쩌네 저쩌네 해도, 결국 희망은 백년대계 교육에 있을것인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달라져야 희망을 끈을 놓지 않을 수 있는 것인지.... 하나의 모래알에 불과한 나 개인이 어떻게 해야 이 잘못가고 있는 세상이 달라질 수 있는지......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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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어찌 학교만의 이야기일까?
엄기호, 2013.9 . 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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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교육에 대해, 학생들을 만나는 것에 대해 열정을 가지고 교육현장에 뛰어든 교사들이 어떻게 소진되며 고립되고 있는지를 이 책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이를 통해 우리 교육현장이 얼마나 반교육적이며 교육이 불가능한 파국적 상태로 치닫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학교가 망했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어떻게 망했는지, 그 망한 폐허에서 교사와 학생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는 잘 모른다. 이런 안다는 착각이 알아야 하고 보아야 하는 것을 보지 못하게 한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게 하고 그저 냉소에 머물게 한다. 그 냉소에 도전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이 폐허를 응시해야 한다. 희망은 그 폐허에 대한 응시에서 나온다. 나는 그 폐허를 같이 응시하며 희망을 만들고자 하는 분들과 이 책을 같이 읽고 싶다. << 프롤로그 중에서 >>
우리는 학교에 무엇을 기대하는가 1 교실이라는 정글 104 서로를 믿지 못하는 교사와 학부모
2 교무실, 침묵의 공간
3 성장 대신 무기력만 남은 학교 309 교무실의 세대 갈등, 이어지지 않는 경험 310 학교는 다시 가르침의 공간이 될 수 있을까
이 책은 '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 의 저자이기도 한 - 이 시대의 핫한 저자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 엄기호의 박사 논문을 바탕으로 이미 붕괴되어 무너져 내렸다고 평가되는 교육 현장을 들여다 보며 현실을 기록한 책입니다. 엄기호의 어머니 시대에 학교란 공부하고 계몽하고 성공하고 지위를 높이는 도구가 되기도 했지만 오늘날의 학교는 더 이상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있다고 말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교육의 이상이란 타자성을 인지하고 적응해 가는 과정임에도 오늘날의 학교에서는 타자성이란 존재하기가 어렵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차라리 군대가 더 타자성을 배울 수있는 공간이 된다고 말합니다 ) . 이는 비단 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학생과 학생, 학생과 교사, 교사와 학부모, 교사와 교사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책 속에서 오늘날 교무실에는 더 이상 벌떡 교사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교사들은 더 이상 교육을 논하고 의견을 제시하며 논의를 하지 않습니다. 파편화되고 개별화된 되면서 각자 홀로 떠있는 섬처럼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어찌 학교와 교실만의 일일까요 ?
그러나 저자는 이 책의 서문을 통해 이 세상을 모두 다 잘 알고 있기에 그저 체념하고 안될 거라고 냉소하는 것 만으로는 바뀌거나 개선될 수 있는 현실은 없으며 그 냉소에 도전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는 것을 깨닫고 " 이 폐허를 응시해야 한다. 희망은 그 폐허에 대한 응시에서 나온다. " 고 역설하고 있는 저자 .. 현실을 응시하고 알게되는 현실 앞에 무력함을 느끼게되 되지만 그래도 우리 모두가 타자성을 인지하며 함께 배우고 의견을 나누며 공론화 할때 더 나은 미래가 열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바램을 가져봅니다. 우선 저부터 패배주의에 가까운 냉소주의가 아니었나 반성해 보고 더 열린 마음과 깨인 눈을 가져보려고 마음 먹었습니다. 이 시대의 교사들 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한 번 쯤 읽어봤으면 하는 그런 책이네요 .
* 이 책을 읽으며 다시금 사회학에 대한 매력을 느낍니다. 학교 다닐 때 들었던 사회학에 대한 느낌은 너무 방대하고 막연하여 " 그래서 어쩌라고 ? " 라는 생각이었는데 참 매력적인 학문이네요 . 조한 혜정 선생님에게 수학한 조주은 님의 << 기획된 가족 >> 도 흥미롭게 읽었는데 이 책도 참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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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현장이야기가 굉장히 충실히 쓰여 있어서 생동감이 있어 좋았다. 무엇보다 인터뷰 형식의 글을 올려 읽기가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쉬운 내용이 앞에 있고 이후 학술적이고 분석 내용이 들어와서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저자가 아이들에게 강의하고 아이들을 저자에게 질문세례를 퍼붓던 장면이다. 아마도 우리 아이들은 원래 공부보다 게임에 관심있던 것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공부가 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다만 우리 어른들은 세상에 대한 공부를 가르친 것이 아니라 오직 좋은 학교를 가기 위한 공부만 가르치고 있었던 것 아닐까?
이 책은 학교를 둘러싼 우리 모두를 반성하게 하고 있다. 적나라한 현실 앞에 우리가 무엇을 반성해야 하는지 과감하게 꼬집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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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와 함께 쓴 학교 현장의 이야기라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교사의 일상을 자세히 서술하고 분석한 것이 마음에 든다. 학교폭력에 대항하여 고군분투하는 교사와 학생들의 절망적인 상황이 담긴 사례들도 많이 소개된다. 즉, 학교라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학생, 교사, 학부모의 현재 모습에 대해 깊게 파고들어 날카롭게 진단하고 분석한다. 교직에 있지 않은 사람들이 학교의 상황을 일정 부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이 바로 "교사의 진짜 업무"다. 얼핏 생각하면 교사의 진짜 임무는 간단해 보인다.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교사에게 정작 중요한 임무의 하나는 학생들을 감시하고 돌보는 일이다. 사람들은 학생을 학교에 보내고 나면 나머지는 다 학교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생각하기에 따라서 교사의 업무 범위는 대단히 좁을 수도 있고 무한대로 늘어날 수도 있다. 극단적으로 말해 학생의 성적을 올리는 것만 교사의 업무라고 할 수도 있고 반대로 학생이 배탈이 나서 병원에 가는 것도 교사의 책임이 될 수 있다. 이처럼 교사의 바쁨은 교사의 진짜 업무가 무엇인지가 모호하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이런 요구와 저런 요구를 합치다 보면 교사들은 학생들의 삶 전체에 대해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중에서
그러나 교직 경력이 꽤 있는 선배교사와 요즘 들어온 후배교사의 모습이 성급하게 일반화되어 있는 것 같아 아쉽다. 동감하는 부분이 많았으나, 좋은 교사란 어떤 교사인지 작가의 생각이 뚜렷한 상태에서 시작한 글이기 때문에 한 쪽으로 치우쳐진 듯한 서술에 불편함을 느끼기도 하였다.
작가는 학교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진정한 동료성을 구축할 것을 제안한다. 사적인 고민과 고통을 공적인 것, 그러므로 가치있는 '문제'로 수면에 띄워 함께 공유하고, 토론하고, 해결방법을 찾아보는 것이다. '교사들끼리 둥그렇게 모여 앉는 것'의 의미를 다시 한번 곱씹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