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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과거의 잘못된 실수로 인해서 그 잘못을 바로잡지 못한일이 지금 현재에 크나큰 사건이 되어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 버리는 남자의 이야기다.
단란한 가정,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는 야마쿠라 시로 어느날 아내로부터 아들이 유괴를 당했다는 급한 연락을 받고 집으로 간다. 그러나 아들은 감기로 인해 집에 있고 납치를 당한것은 이웃에사는 아들의 친구 시게루이다. 범인은 야마쿠라의 아들인줄 알고 몸값을 요구하는 전화를 하게 된다.
야마쿠라 시로는 사실 유괴당한 아들이 불륜으로 인해 생긴 친아들이고 아내와의 사이아들은 양자이다. 이사실을 알고있는 사람은 불륜상대 미치코와 자신뿐이기 때문에 아들의유괴에 안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이 직접 현금수송역할을 자청한다.
범인과 약속장소에 도착해서 가는도중 어이없는 실수로 인해 전달하지 못하고 범인은 이에 화가나서 아이를 죽여버린다.
야마쿠라 시로는 절망하는 한편 자신의 조금의 나쁜 마음 " 차라리 없어졌으면, 죽었으면 하는 마음이 자신의 실수로 이어진것이 아닌가? 하는 자책감을 가지게 되고 혼자서 범인을 잡기위해 조사를 시작한다.
나쁜범죄, 나쁜 범인, 불쌍한 피해자로 양분되는 범죄소설에서 이책은 슬픈 가족사의 이야기에서 부터 순간의 실수로 가정이 파괴되는 이야기를 한아이의 유괴라는 사건으로 보여준다.
친아들보다 양아들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야마쿠라 시로의 양심을 보여주면서 인간의 이중성 심리를 자세히 보여준다.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가족을 슬픈 이야기와 슬픈 결말이 조금씩 보여지고 너무 늦은 후회와 바로잡지 않은 진실이 어떻게 다른 사람의 마음에 나쁜 씨앗을 심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사람의 마음은 때로는 한없이 착해지기도 하지만 잘못 먹으면 한없이 나쁜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이책을 통해 확인하게 되는것 같다.
사실 탐정의 역할은 아주 미미하다. 이야기의 주는 주인공 야마쿠라 시로의 1인칭 시점을 통해서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그가 보여주는 시선속에서 범인도 추론하고 때론 자기 반성을 하는 그를 읽으면서 마치 내가 그의 잘못과 과거의 비밀을 알고 있는 공범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범인을 알아가는 과정도 자연스럽게 혹시 하면서 예견하게 되는것 같다. 제목이 비극이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는 범인이 아니었으면 하는 기대감을 만들게 하는 내용이었다.
때론 범인을 알아가는 것이 별로 기쁘지 않을때도 있다는것을 .... 그러나 이야기는 놓칠수 없고... 좋은 것과 안좋은 것은 항상 동시에 온다것과 얼마전 미생에서 나온말처럼 과거가 발목을 잡는것이 아니라 때론 본인이 과거를 잡고 있다는 사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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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내 의사와 상관없이 나의 아이가 태어났다면, 그리고 그 아이가 내 인생을 위협한다면 보통의 사람들은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할까?
아들 다카시가 유괴되었다는 아내의 전화를 받고 집으로 달려가지만, 아들은 침대에서 자고 있다. 대신 다카시라 오인한 아들의 친구 시게루가 납치되었고, 야마쿠라의 집으로 아이의 몸값을 요구하는 전화가 걸려온다.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던 야마쿠라는 경악한다. 사실 다카시는 양자이고, 시게루는 미치코와의 불륜으로 태어난 야마쿠라의 진짜 아들인 것. 이 비밀이 누설될까 야마쿠라는 전전긍긍하고 다카시 대신 유괴 된 시게루를 위해 몸값을 전달하는 일을 맡겠다고 자처한다. 야마쿠라는 유괴범이 말한 장소로 향하던 중 넘어져 정신을 잃게 되고 시게루는 싸늘한 주검이 된다. 시게루의 주검 앞에 미치코는 절망하고, 그 모습을 보면서 야마쿠라는 은연중에 자신이 안도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 한쪽이 불편하다. 지금의 내 가정. 사랑하는 아내를 지키느냐, 죽은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느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야마쿠라, 그런 야마쿠라를 보면서 심한 배신감을 느끼는 미치코와 선한 얼굴을 한 채 나는 모르쇠로 일관하는 야마쿠라의 부인 가즈미에게는 어떤 결말이 함께 할까?
내가 모르는 내 아이가 이 세상에 있다면? 엄마인 경우에는 내가 모르는 내 아이는 없다. 내가 직접 낳으니까. 하지만 아버지의 경우는 어떨까? 한때의 실수이고, 한때의 불장난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 대가 치고는 좀 잔인하다. 양자를 지키고자 내 아이를 죽음 앞에 내 던진 꼴이라니..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남자 입장이고 여자 입장은 좀 다르지 않을까? 남자는 아니 남편은 아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의 내 가정을 지키기 위해 양심의 가책을 느낄 행동을 하지만, 아내의 입장에선 그것마저도 위선으로 보이지 않을까? 임신할 수 없는 아내는 언니 동생하면 챙긴 그녀의 배를 통해 낳은 내 남편의 아이를 마냥 따스한 눈으로 바라 볼 수 없을 것이다. 이웃에 사는 그 아이가 커가면서 점점 내 남편의 모습을 닮아간다면, 어떻게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지 않을까?
‘그래서 남자는 내 아들이 이 세상에서 사라져주길 바랬을까?’ 남들 보다 빠른 승진, 같은 회사의 전무로 있는 장인어른, 따스한 장모님, 아름다운 아내, 그리고 내 아이는 아니지만 죽은 아내의 동생이 남긴 아이까지. 제 3자가 봤을 때 이 가정은 너무도 평화롭고 안정적인 모습일 것이다. 이 평온함을 누군가 깨려고 한다면 그게 설령 내 아들이어도 그 아이가 없어지길 바랄까? 모르겠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말하지만 정말 그런지, 이만큼 살고 보니 더 어려운 질문이 되어 버렸다. 예전에는 자식을 가능하면 거두려고 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내 앞길에 걸림돌이 된다면 아무렇지 않게 “네가 키워.” 이렇게 떠넘기기도 하고, 보육원에 버리(?)기도 하니까. 그 아이가 지금의 내 안정적인 지위에 위협을 가한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 아들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이 책을 읽으니 그는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혼외 아이가 아닌데 언론에서 채 총장의 아이가 맞다고 우긴다면 억울할 테고, 만약 혼외 아이가 맞다고 하면 그 중심에 있는 아이는 얼마나 상처 받을까? 내 가정의 평화를 위협하는 존재가 된 시게루가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어떻게 이렇게 지독하게 이기적인 생각을 했을까? (중략) 시게루는 자신이 바라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나와 미치코의 도리에 어긋난 관계가 시게루라는 존재를 탄생시켰을 뿐이다 (146) 서로에겐 사랑이었고, 한 순간의 열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상처 받는 게 누구인지 좀 더 신중하게 생각했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아이들은 차별 속에 내 던져진다. 태어나 누군가는 재벌의 아이가 되고, 누군가는 미혼모의 아이가 되고, 누군가는 가난에 찌든 폭력 가정의 아이가 된다. 그 아이들은 부모를 선택할 수 없었고, 부모 또한 아이를 선택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보다 더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
마지막에 갈수록 반전을 거듭하는 이 책을 보면서 집에 있는 내 아내는 아무것도 모를 거라 착각하는 남편들이 반성하면 좋겠다. 다른 건 모르겠고, 불륜에 관한 ‘촉’은 아내라는 입장이 되면 최고조에 달해 있다는 사실을. 아내는 몰라서 참는 게 아니라, 가정을 깨지 않으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참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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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 시리즈로 잘 알려진 작가 노리즈키 린타로의 작품은 아직까지 읽어보지 못했다. '1의 비극'을 통해서 내가 저자의 작품을 처음으로 만났다. 저자와 이름이 같은 탐정 노리즈키 린타로 시리즈라 기대감을 안고 읽었다.
자신으로 인해 아이가 죽었다. 죽음을 막지 못해 마음이 아픈 주인공 야마쿠라에게 살해당한 소년의 어머니 미치코의 원망이 쏟아진다.
아내의 다급한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들려온다. 자신의 아들이 유괴를 당했다고... 허나 그의 아들은 감기로 인해 집에 있고 아들과 함께 등교하는 다른 소년이 납치 된 것이다. 소년을 구해야 한다. 허나 유괴범이 요구하는 엄청난 금액의 돈을 들고 나가지만 예상치 못한 사고로 돈을 전하지 못한다. 이로 인해 소년이 그만 죽음을 맞게 된 것이다.
야마쿠라는 모든 것이 자신의 실수라고 생각한다. 야마쿠라의 임신한 아내 가즈미가 커다란 아픔을 겪게 되면서 찾아 온 우울증... 입원한 병원에서 가즈미를 도와주던 학교 후배 미치코와의 만남이 자연스러워지면서 불륜에 빠지게 된다. 한순간의 실수라고 말하기엔 한 생명이 태어나고 만다. 이 아이가 죽은 소년이다. 한 번도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자식의 죽음으로 자신의 이기적인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는 야마쿠라....
경찰이 찾아낸 단서를 통해서 누가 범인인지 떠올리게 되는 야마쿠라... 이 사람으로 인해 탐정 노리즈키 린타로가 알리바이를 증명해 주는 인물로 등장한다. 이로써 그가 이 사건에 연루된다.
아내 가즈미의 도움으로 범인의 집을 수색하던 중 집주인과 마주치게 된다. 허나 정신을 잃은 야마쿠라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집주인은 죽음을 당한 후다. 살인범으로 몰리게 된 상황... 도대체 누가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지... 야마쿠라는 짐작하게 되는데....
반전이 있지만 그다지 충격적인 반전은 아니다. 범인으로 연상되는 사람이 범인이라 어느 정도 예상되는 인물이다. 다만 범인의 마음에 악의를 심게 한 원인은 다른 사람에게 있다고 볼 수 있다. 오해와 진실이 한군데 얽히면서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만다.
사실 탐정 노리즈키 린타로의 활약이 두드러진 작품이란 느낌은 별로 받지 않는다. 완벽해 보이는 밀실의 수수께끼를 풀고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그를 만날 수 있긴 하다. 아직은 그의 매력이 무엇인지 확실히 느껴지지 않아 3권으로 이루어진 비극 시리즈의 나머지 2권을 읽으며 탐정 노리즈키 린타로의 매력이 무엇인지 확인해 볼 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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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코를 위해> <킹을 찾아라>로 나의 심장을 마구마구 두근거리게 했던 노리즈키 린타로의 작품이 또 나왔다! 작가에 대한 신뢰가 웬만큼 쌓인 터라 노리즈키 린타로의 작품이라고 하면 일단 사게 된다. 이번 작품은 <요리코를 위해>와 이어지는 ‘비극 삼부작’의 두 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제목도 멋있다. <1의 비극>! <1의 비극>에서 전작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노리즈키 린타로가 조연으로 출현한다는 점이다. 늘 린타로의 관점에서 사건을 풀어가고 그 과정에서 그의 고민이 그대로 전해졌는데 이번에는 사건의 중심에 놓인 ‘야마쿠라 시로’라는 인물의 관점에서 그의 답답한 심경과 고민들(도저히 풀리지 않는다!ㅜㅜ)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처음엔 작품에 빠져 읽다가 노리즈키 시리즈라는 것을 까먹었었다. 그러다가 중간에 ‘노리즈키 린타로’ 라는 이름이 나오자 때 풉, 하고 뿜게 됐다. 익숙한 이름이라서 그런지 뭔가 반갑고 괜히 웃음이 나온다. 야마쿠라는 아내와 아들을 끔찍이 사랑하는 다정한 아버지인데 어느 날 아들이 유괴 당했다는 아내의 말을 듣고 회사에서 달려온다. 이내 아이를 착각한 유괴범의 실수였다는 것이 밝혀지지만 그때부터 야마쿠라의 진짜 수난이 시작된다. 수난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닌 것이, 소설에서 야마쿠라는 내내 달리고 넘어지고 구르고 야단맞고 심지어 죽을 고비에도 여러 번 처한다. 그렇게 죽기를 각오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야마쿠라가 저지른 한 번의 실수 때문에 범인의 손에 있던 아이가 진짜 죽임을 당한다. 죽은 아이의 엄마의 오열하고 경찰은 야마쿠라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린타로의 작품을 즐겨왔던지라 ‘범인 검거’에 대한 웬만한 자신이 있었다! 처음부터 의심이 가는 두 사람을 범인으로 찍고 둘 중 하나는 맞겠지 하고 살짝 야비한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읽다보니 나의 예상이 점점 맞아떨어지는 것 같았으나... 결국엔 보기좋게 틀렸다ㅜㅜ 나의 야비한 수를 알고 노리즈키가 복수한 것 같은 기분까지 들었다ㅠ_- 솔직히 마지막의 반전에 살짝 멘탈이 붕괴..ㅠ0ㅠ!! 그렇지만 이 맛에 추리소설을 읽는 거 아닌가!(하고 위로하고 있다ㅜ_ㅜ) 본격추리소설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아주 시원하고 재밌는 책이었다. 읽으며 느낀 긴장감과 경쾌한 속도감 뒤에, 처지는 전혀 다르지만 같은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주인공에 대한 공감과 연민도 있었다. 뒷날개를 보니 다음 작품에 대한 예고도 있다. <또다시 붉은 악몽>이라는 책이다. 이 작품만 나오면 드디어 노리즈키 린타로 ‘비극 삼부작’이 완성되는구나. 어서 나왔으면 좋겠다. <요리코를 위해>는 작품도 좋았지만 앙증맞은 사이즈에 뭔가 휑하고 불길한 표지가 참 마음에 들었었는데 <1의 비극> 역시 같은 포맷으로 가고 있다. <또다시 붉은 악몽>도 기대된다.(표지도!!) 좋아하는 작가의 다음 책을 기다리는 것은 행복하다. 더군다나 출판사에서 이렇게 예고까지 해준다면 기대는 배가 된다.ㅎㅎ 어서 나왔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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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코를 위해]를 잇는 비극 삼부작의 두 번째 [1의 비극]입니다. [요리코를 위해]에서 인간이 지닌 비뚤어진 욕망을 음습하게 그려낸 작가의 마력에 이끌려 바로 읽게 되었어요. 왜 ‘1’의 비극인가, 내내 궁금했지만 마지막에서야 그 의문이 풀리네요. 이 작품을 원서로 읽었다면 읽는 도중 바로 알아챘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나라 출간본을 읽은 사람 중에 이 트릭(?)을 알아챈 사람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범인은 중간 즈음부터 짐작했지만요. [1의 비극]에서도 역시 작가는 인간이 간직한 잔혹한 이기심, 순간의 선택이 불러온 비극적인 운명, 내면의 일그러진 고통으로 한 인간의 삶이 어떻게 망가질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문체나 표현 면에서 뛰어난 작품은 아니지만 인간의 심리를 냉철하게 분석하고 묘사하는 능력은 대단한 것 같아요. 이렇게 마음 한 구석을 파고들 수 있다니, 어쩐지 제 안에 존재하는 보기 싫은 부분이 밝혀지는 것 같아 두렵기도 합니다.
-요리코가 죽었다-로 시작했던 [요리코를 위해]. 그처럼 임팩트있는 시작을 보이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유능한 샐러리맨인 야마쿠라 시로에게 아내로부터 전화가 걸려와요. 아들 다카시가 유괴당했다는 충격적인 말에 당장 집으로 달려간 그에게, 아내는 뜻밖에 오인 유괴라는 소식을 전하죠. 유괴당한 것은 다카시가 아닌 옆집 도미사와 가의 아들 시게루. 도미사와 고이치와 미치코의 아들 시게루는 사실 야마쿠라 시로의 아들입니다. 야마쿠라의 아내 가즈미가 아이를 잃고 그녀 자신마저 놓아버릴 무렵, 힘들었던 야마쿠라가 간호사였던 미치코와 관계를 가졌고 그로 인해 시게루가 생겼죠. 하지만 오히려 그 일로 아내를 사랑하고 있음을 느낀 야마쿠라는 미치코와의 관계를 청산하기 원했지만 미치코는 오히려 집요하게 그를 압박했고, 결국 그의 옆집으로 이사오기에 이른 겁니다.
어찌됐든 아이를 살려야했기에 유괴범이 요구한 금액의 전달을 맡았지만 그에게 돈을 전달하기 직전 순간의 방심으로 일은 실패했고, 결국 시게루는 처참한 시신으로 발견됩니다. 미치코의 원망은 말할 것도 없고, 주변으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게 된 야마쿠라. 그를 더욱 괴롭히는 것은, 시게루의 죽음에 자신의 이기심이 작용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죄책감입니다. 처음 시게루의 일을 듣고 아이가 태어나지 않았기를 바랐던 그 마음이, 자신의 마음 한 구석에 여전히 자리잡아 무의식적으로 아이를 죽음으로 몰아갔던 아닌가 하는 죄책감. 그 죄책감을 짊어지고 야마쿠라는 범인을 붙잡아 응징하기로 결심합니다.
유력한 용의자로 떠올린 사람은 아내 가즈미의 여동생인 쓰구미의 남편 야스시. 하지만 그의 알리바이를 소설가이자 명탐정인 노리즈키 린타로가 증명하면서 야마쿠라와 노리즈키의 인연이 시작됩니다. 야마쿠라는 노리즈키로부터 야스시가 예전 꿈이었던 소설가의 길을 다시 걷기 위해 밀실트릭을 이용한 추리소설을 집필하려 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죠. 그러나 얼마 후 야스시 또한 밀실에서 살해된 채로 발견되고, 사건은 야마쿠라를 더욱 곤경으로 몰아넣습니다.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숨겨졌던 진실이 밝혀지는 가운데, 최후의 최후까지 경악하게 만드는 결말이 그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 여기서부터는 스포가 있습니다.
사건 자체가 잔혹하기 이를 데 없지만 저는 같은 여자로서 범인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됐어요. 내 안에 있던 아기는 죽었고 나는 이제 아이를 가질 수 없는데, 남편과 부정을 저질렀던 여자는 남편의 아이를 낳아 버젓이 키우고 있는 상황. 그들 부부 사이에 있는 아들 다카시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다카시는 엄연히 동생 쓰구미의 아들이고, 내 안에 있던 아이와는 다르다는 인식. 게다가 남편과 불륜을 저지른 여자가 이웃집으로 이사오고, 그녀의 아이가 점점 남편과 닮아가는 것을 보는 여자의 마음이 과연 어떨지 상상이 가시나요. 저는 감히 짐작도 할 수 없지만 가즈미가 어떤 지옥을 살고 있었을지, 생각만으로도 그녀의 고뇌와 괴로움이 전해져오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서 그녀의 내부가 서서히 부서져갔겠죠. 내면의 붕괴가 일어나지 않는 이상 그렇게 잔인한 방법으로 시게루를 죽일 수는 없었을 테니까요. 시게루에게는 아무 죄도 없지만, 그래서 시게루의 죽음이 더 안타깝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진다 해도 일방적으로 가즈미를 탓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그 모든 일의 시작은 야마쿠라였어요. 가즈미가 힘들어하던 시간에 야마쿠라가 그녀의 곁을 지켰다면, 위로를 미치코가 아니라 가즈미를 돌보는 것에서 구했다면 시게루가 태어나는 일도, 시게루가 잔혹하게 살해되는 일도, 가즈미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일도 없었을 거예요. 마치 나비효과처럼, 순간의 잘못된 선택이 파도처럼 그의 인생 전체를 장악하고 삶의 모든 무게를 그의 어깨에 지워놓았죠. 작품 마지막에 자신과 혈연관계가 없는 아들 다카시와 나누는 대화 장면의 주는 무게란.
아쉽지만 이번 작품에서 노리즈키 린타로의 매력발산은 조금 적었다는 느낌입니다. 노리즈키가 아닌 야마쿠라의 시점에서 일이 진행되었기 때문일텐데요, 게다가 노리즈키의 아버지 등장 분량은 극도로 미약해서 [요리코를 위해]에서 보여주었던 만담같은 장면은 찾아볼 수 없었어요. 작가는 독자들로부터 ‘왜 매번 작풍을 바꾸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하는 모양으로, 아마 매번 다른 시점을 사용해서 작품을 쓰고 있지 않을까 추측할 뿐입니다. 비극 시리즈의 마지막은 [또다시 붉은 악몽]입니다. [1의 비극]이 2013년 9월에 출간되었으니 이제 슬슬 [또다시 붉은 악몽]이 출간되지 않을까 기대되네요. [요리코를 위해]의 속편이기도 하다니, 이 여름이 가기 전에 나와준다면 기쁘게 읽겠습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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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명 노리즈키 린타로의 탐정 노리즈키 린타로 시리즈 4탄 (1991년)이다 (3탄이 1990년 [요리코를 위해]이고, p.154에서 '..작년에 일어난 신흥종교 교주의 목없는 사체 살인사건...을 해결한게 노리즈키 린타로라더군요.'는 바로 2탄 [誰彼(1989)]를 의미한다). 전작 [요리코를 위해]에서 딸을 살해당한 니시무라 교수의 '수기'가 전체를 지배하듯, 여기에서 이어진 '자매편'이자 '안티테제 (작가의 후기에서의 말인데, 읽어보면 왜 자매편이자 안티테제라는 말을 썼는지 알게된다)'가 되고 또 이는 5탄 [ふたたび赤い悪夢 (1992)]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흠, 그럼 [2의 비극]은?).
11월 9일 아침 중견광고회사 신토애드에서 요즘 제일 잘나가는 SP (Sales Promotion)팀장이자 회사의 실세인 가도카와 료이치의 둘째사위인 야마쿠라 시로는 아내 가즈미의 전화를 받는다. 초등학생인 아들 다카시가 오늘 아파서 학교에 안갔는데, 아들을 유괴했다는 전화를 받았다는 것. 도대체 뭔소린가 하며 집으로 당황하여 간 그는 아들은 무사하며, 유괴된 것은 아이와 친하게 지낸, 엔지니어 도미사와 고이치와 미치코의 아들 시게루라는 것을 알게된다. 야마쿠라의 이름은 시로(白)이지만 실제로 과거에 아내가 유산과 병으로 힘든시절 간호사였던 미치코와 불륜으로 낳은 실제의 아들이 시게루라는 비밀이 있어 미치코에게 협박받고있으며, 그의 호적에 오른 다카시는 실상 죽은, 아내의 여동생 쓰구미와 소설가 미우라 야쓰시의 아들이라는 복잡한 가정사를 갖고있다.
그렇다, 오인유괴이다. 아니면, 동기를 숨기기 위한 또다른 공작이었을까? 흑과 백을 통해 guilty와 innocent를 의미하는 일본인데, 과연 야마쿠라는 시로이일까 쿠로이일까.
유괴범이 시로로 하여금 인질의 몸값이 든 가방을 들고 전화로 이곳저곳을 방황하게 만드는 등의 구성은 작가가 밝히지않아도 (후기에서 밝혔지만) 읽다가 떠오를 정도로, 하라 료의 사와자키 시리즈 2탄 [내가 죽인소녀 (존재감강한 작가의 강철개성의 탐정 )]에서 가져왔다. 근데 그러지 말지. 넘 비교되잖아~ 도저히 후반부를 짐작할 수 없는 것과 달리 동기, 수단, 방법중 한가지가 너무나도 뻔하고 강한데다, 후반부에 탐정의 설명대로 요리하게 편하게 모든 것들이 다 감춰져있다. 치밀하도록 여기저기 뿌려놓아야할 실마리들은 간데없고.
제목 [1의 비극]이 암시하듯, p.363에서의 다잉메세지의 해석이 매우 중요한데 귀에걸면 귀걸이 코에걸면 코걸이인식이라 정말 허무하였다. 치밀함은 어디로 간것인가? 그리고 보면 작가가 엄청 좋아한 (그래서 엘러리 퀸 부자를 본따 노리즈키 린타로 부자를 만들었지), 엘러리 퀸의 [Y의 비극]이 참으로 생각난다. 물론, XYZ에다 나쓰키 시즈코의 [W의 비극 (오마쥬 대상보다 난이도는 낮지만 뚝심있는 차분한 진행이 은근한 재미를 던져준다)]까지도 연상이 되는데, 이 모든 작품보다 뻔하고 재미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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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쿠라. 처 가즈미와 아들 다카시가 있고 신토ad의 국장이다. 어느 날 아들이 유괴됬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알고보니 옆집 친구애. 그러나 범인은 야마쿠라를 아빠로 생각하고 돈을 요구하고 전달하려 애썼지만 납치된 애 시게루는 시체로 발견된다.
그러나 사실은 친부는 간호사 미치코와의 불륜에서 비롯된 야마쿠라. 야마쿠라는 범인을 찾기 위해 동서 미우라와 장인인 신토ad전무,흥신소등을 추적하지만 진범은 의외의 인물로 밝혀 진다...
전에 노리즈키의 다른 소설을 보고 그를 다시 봣던 적이 있다. 번역 2번째인 데 제목이 생각이 안난다. 잘린머리를~보고 한참 실망했었는 데 두번째 번역소설을 보고 수준급으로 인정했던 기억..
다시 한 번 노리즈키가 수준급 작가라는 것을 인정하게 만들어 준다. 돈을 전달하는 긴박감과 스피드는 다카노 가즈야키의 90%에 육박한다.제법이다. 글구 진짜 마지막까지 진범을 알 수 없는 글자 그대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정교함. 미야베 미유키보다 낫다. 물론 기시 유스케나 미치오 슌스케에겐 못 미치지만..
한편 제대로 된 구성, 갈등, 스토리로 지루함이 하나 없이 시종일관 긴장감과 집중을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여자들의 한... 우리 아버지 세대가 저지른 베트남,라이 따이한, 라스 팔마스와 수많은 아버지없는 한국애들.. 특히나 한국놈들 이런 짓좀 하지 말자.. 무책임한 남자를 응징하는 이야기..
소설중 알프렛 히치콕처럼 노리즈키 경시를 등장시킨 게 옥의 티랄까.. 출판사에서 잘 몰랐던 같다. 잘린 머리~는 노리즈키의 가장 졸작이라는 것을.. 이제 와서 그의 수작들이 수면에 떠오른다. goo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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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의 비극’의 배경은 저주받은 미치광이 일가의 저택으로 한정된다. 등장인물들은 하나 같이 정신적, 신체적으로 문제가 있다. 이는 소설 후반에서 매독으로 인한 질환으로 밝혀진다. 고립된 공간과 비정상적인 인물은 1930년대 추리소설(수수께기 풀이형)에서 즐겨 사용했던 설정이다. 'Y의 비극‘과 ’1의 비극‘의 시간적 간극은 60년이다. 추리소설을 처음 읽는 독자가 아니라면 이런 진부한 설정에 몰입할 독자는 없다. 노리즈키 린타로는 ‘Y의 비극’의 설정을 세련되게 재창조했다. 비밀이 병리적인 것에 기인하는 게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산, 불륜, 아내와의 사별, 입양에서 찾아냈다. 주인공의 아내는 유산하고, 남편은 우울한 시기에 잠시 불륜에 빠지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2세가 태어난다. 아내의 동생은 죽고 동생을 대신해 조카를 양자로 입양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작가는 두 가지를 충족시켰다. 첫 번째는 주인공 집안에 독자들이 수긍할 수 있는 그럴 듯한 사연(비밀)을 부여했다는 점. 두 번째는 강렬한 범행의 동기를 부여했다는 점이다. 다만, 주인공의 불륜 대상이 복수를 위해 주인공 집 근처로 이사 오고, 아이들이 같이 학교를 다닌다는 설정은 다소 무리해 보인다. 사건의 시발점이 되는 필수불가결한 설정이기에 어쩔 수 없었겠지만 개연성이 부족했다. 하지만 소설에 몰입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었다. 우타노 쇼고의 ‘밀실살인게임’에는 이런 설정들이 전혀 필요 없다. 트릭을 사용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다는데 어느 독자가 이의를 제기할까? 그냥 유희로서의 추리. 작가나 독자나 말하지 않아도 룰을 알고 있다. 진정한 본격을 추구하는 소설의 극단적인 형태이다. 여러 가지 트릭을 만드는데 우타노 쇼고의 천재적인 능력이 발휘되었지만, 글쎄? 남의 나라 기차 시간표를 보며 환승 열차들의 시간을 체크하면서 책을 읽는데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본격도 어떤 트릭을 실행해서 살인에 이르기까지에는 독자들이 수긍할 수 있는 동기가 부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본격 마니아가 아닌 폭넓은 독자들이 읽을 수 있는 추리소설을 쓰려고 하는 작가라면 많은 고민이 필요한 지점이다. 이 소설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이다. ‘나’가 서술하고, 탐정 노리즈키 린타로는 제3자이다. 작가의 1인칭 주인공 시점 서술의 의도는 무엇일까 그 답을 찾기 전에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게 있다. 가독성이 좋았다. 문장을 보니 짧다. 작가의 의도했을 것이다. ‘나’는 위기에 빠진 사람일 뿐, 경찰도 탐정도 아니다. 유괴, 살인과 같은 형사 사건과는 전혀 상관없이 살아온 인물이다. '나’는 과거 불륜 관계로 난 친생자를 살려야 하고, 불륜 관계를 은폐해야 한다. 하지만 주인공의 실수로 말미암아 유괴된 친생자는 시체로 발견되고, 불륜 사실은 탄로 나기 일보직전이다. 위기를 헤쳐 나오려다 오히려 살인사건에 휘말려 살인범으로까지 몰린다. 위기가 꼬리를 문다. 많이 보던 형식이다. 스릴러풍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주인공 ‘나’의 불륜에 대한 죄책감, 유괴된 친생자를 죽였다는 자책감, 친생자 살인 용의자인 과거 동서에 대한 복수심, 가정이 지키고 싶은 의무감 등이 독자에게 그대로 전해진다. 눈에 많이 띄는 현재형의 서술은 주인공과 독자의 거리를 좁혀주고, 현장감을 살린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장점을 작가가 제대로 살렸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은 독자가 소설 속 주인공의 감정, 태도 등에 쉽게 동화된다. 여기까지 정리해 보면 작가가 1인칭 주인공 시점을 선택한 이유를 유추할 수 있다. 1인칭 주인공 시점에 위기가 계속되는 스릴러 구조에 짧고 간결한 문장. 긴박감을 살리기 위해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작가의 의도는 또 하나 있다. 소설 속에서 탐정 노리즈키 린타로가 등장하는 건 중반부터다. 독자들은 이미 ‘나’에게 동화되어 있는 상태로 리얼리티에 빠져들었다. 여기에 작위적인 설정이 있어야하는 본격을 리얼리티가 잘 차려진 밥상에 슬쩍 얹는 것이다. 말하자면 투톱 시스템이다. 주인공 ‘나’의 이야기는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스릴러 구조로, 탐정 노리즈키 린타로의 추리는 본격에 대한 판타지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본격 미스터리로 치닫는다. 접합점이 없을 것 같은 두 지점이 만나는 부분이다. 「구로다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명탐정이라니 아무래도 정상적인 인간은 아닌 듯하다. 소설 속에서라면 몰라도 현실에서까지 명탐정이라 자칭하다니 과대망상증 환자거나 성격파탄자일지도 모른다. 지금 같은 시대에 그런 인종이 서식한다는 것 자체가 믿기 힘들었다.」 (본문 중 ‘나’의 노리즈키 린타로에 대한 생각) 우리는 주인공 ‘나’를 통해서 탐정인 노리즈키 린타로를 바라본다. 노리즈키 린타로를 보는 ‘나’는 비아냥거림으로 시작했다. 때론 비판적이고 의심하기도 하며, 그가 하는 말을 외계어처럼 전혀 이해하지 못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건이 전개될수록 ‘나’는 탐정 노리즈키 린타로의 명석함과 영민함을 신뢰하게 되고 결국 그에게 의지하게 된다. 이와 더불어 이미 위기에 빠진 ‘나’에게 동화되어 있던 독자도 ‘나’와 마찬가지로 탐정 노리즈키 린타로를 신뢰하게 된다. 이런 신뢰는 탐정 노리즈키 린타로가 ‘나’에게 했던 밀실살인에 대한 설명과 뜬금없이 나오는 과거 동서의 소설에 대한 추리(‘Y의 비극’ 오마주로서의 소품이겠지만)도 큰 위화감 없이 이야기 속에 녹아들게 한다. 「밀실이란 추리소설에서 쓰는 기법의 하나로, 닫힌 공간에 타살 시체가 있지만 범인이 없고 심지어 침입이나 탈출 흔적도 없는 상황을 가리킵니다. 단단한 벽과 문과 창이 있는 상자 같은 방에서 모든 잠금장치가 안으로 잠겨 있는데 범인이 없다는 게 전형적인 도식이죠. 물론 범인이 연기처럼 사라질 수는 없기 때문에 거기에는 속임수, 트릭이라 불리는 게 존재합니다. 추리작가라는 사람들은 무슨 영문인지 이 밀실트릭이라는 걸 무척이나 좋아해서 동서고금에 걸쳐 밀실 테마를 다룬 추리소설을 엄청나게 많이 썼죠. 그 셀 수 없으리만치 무수한 트릭을 분류하고 정리해서 이 잡듯 샅샅이 항목을 정리해가는 작업을 추리소설 팬들은 밀실 강의라고 관용적으로 부르곤 합니다.」(본문 중 노리즈키 린타로의 밀실과 밀실강의에 대한 정의) 소설 속에서 리얼리티와 판타지의 접합점을 찾은 작가는 주인공과 탐정 노리즈키 린타로와의 대화를 통해 본격 추리소설의 여러 클리셰들을 핥고 지나간다. 신본격 1세대라는 분류가 무색하지 않게 본격에 대한 열망의 온도가 뜨겁다. 소설 후반부 과거 동서의 살인에는 실제 밀실살인(진정한 의미의 밀실은 아니지만)이 등장하고, 다잉 메시지도 등장한다. 이런 소재나 소품이 이 소설에서는 전혀 어색하지 않다. 본격을 위한 본격의 작위적인 설정이 아닌 크로스오버와 같은 리얼리티와 판타지의 결합 위에서 융합됐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동기가 중요시되는 사회파 추리소설과는 전혀 상관없다. ‘Y의 비극’에서는 범행동기 부분이 사건 추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축이었다. 우타노 쇼고의‘밀실살인게임’은 트릭을 쓰기 위해 살인을 한다는 동기는 있지만, 우리가 말하는 일반적인 의미의 범행 동기는 아닐 것이다. 이 소설의 동기는 동기를 위한 동기일 뿐이다. 하지만 인간 본연의 감정에서 나오는 그럴듯한 동기 때문에 이 소설은 리얼리티를 획득했다. 이런 리얼리티를 바탕으로 본격 추리소설의 중요한 설정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었고, 미스터리의 하위 장르라고 말할 수 있는 두 개의 장르가 크로스오버할 수 있었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읽어 볼만한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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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 비극>은 노리즈키 린타로의 본격미스터리 '비극 삼부작' 중 두 번째 작품이다. 내가 예전에 리뷰를 올렸던 <요리코를 위해>가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다. 비극, 복수, 심판 등 이런 단어와 내용을 좋아해서 그런지 '비극 삼부작' 시리즈 이름이 참 마음에 든다. 시리즈의 이름 답게 내용도 비극이다. 그것도 소화하기 힘들 수 있는 끔찍함까지 포함된 비극. <요리코를 위해>에선 딸아이의 죽음으로 사건은 시작되고 이번엔 아들의 죽음으로 이야기의 문을 열어 젖힌다.
자신의 아들이 납치됐다는 부인의 연락을 받고 회사에서 부랴부랴 집으로 오는 남편(야마쿠라). 집에 도착하자 자신의 아들(다카시)은 2층에서 자고 있는 게 아닌가? 알고 보니 아들의 친구(시게루)가 아들 대신 납치된 것이다. 유괴범은 그 집 아들인 줄 알고 납치했는데 사실은 다른 아이였던 것이다. 아침마다 다카시는 시게루와 함께 등교한다. 하지만 그날은 다카시가 아파서 시게루 혼자 등교하게 됐고 유괴범은 그 아이가 다카시인 줄 알고 납치한 것이다. 유괴범인 원하는 건 두가지였다. 돈, 그리고 경찰에 연락하지 말 것. 여유가 있었던 야마쿠라는 유괴범이 원하는 돈을 준비하여 원하는 곳으로 혼자 간다. 자신의 아이가 아니지만 아이의 생명이 달린 일이기에 유괴범이 원하는대로 행동했다. 유괴범이 이동하라는 곳으로 질질 끌려다니가 어이없는 실수를 하고 만다. 도착하라는 시간에 맞춰 뛰다가 넘어져 기절하고 만것이다. 몇 시간을 기절해있다가 깨어 집으로 돌아가보니 유괴범이 아이를 죽였다는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유괴범의 목적은 돈이 아니었던가? 황당한 상황에 야마쿠라는 자신의 행동으로 아이가 죽었다는 죄책감을 가졌고 죽은 아이의 부모는 야마쿠라 탓이라며 원망한다. 유괴범이 돈많은 집 아들을 납치했는데 늦게 도착했다는 이유로 아이를 죽였다? 그리고 시체까지 친절하게 주고. 어딘가 석연치 않은 이 사건에 거미줄같이 꼬이고 꼬인 진실이 숨겨져 있었다. 작가는 말한다. 한번 잘 풀어보라고....
노리즈키 린타로의 작품들을 다 보진 않았지만 한가지 특징이 있다. 결말을 위한 소설을 쓴다는 것이다. 모든 작가들이 그렇듯 처음과 마지막 큰 줄거리를 쓰고 살을 입힌다. 추리소설의 경우는 스토리보다 트릭을 우선 결정할 텐데 린타로의 경우는 끝을 정해놓고 트릭과 모든 스토리를 맞추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스타일을 알아서 그런지 반전이 무척 궁금해진다. 도대체 이 사건이 왜 일어난 것이며 어떻게 된 것인지, 과연 범인은 누구인지.....이런 스타일의 추리소설은 반전이 생명이지만 반대로 말하면 실마리를 독자들에게 던져준다는 것이 재밌는 요소로 작용한다. 유괴살인사건을 보면 곳곳에 빈틈이 보인다. 완벽한 사건은 없지만 그렇다고 완벽해 보이려 하지 않는다. 그 빈틈을 체크하며 읽으면 작가가 범인을 잡기 전에 독자인 우리가 추리해서 얼마든지 잡을 수 있다. <1의 비극>에서도 범인의 단서는 처음부터 던져주고 있다. 난 마지막에서야 알아차리고 아쉬워했지만 세 번째 작품이 나온다면 얼마든지 범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쯤에서 궁금한 게 있어야 할 것이다. 왜 이 책이 비극 삼부작인지, '이정도가 비극이면 보통의 책들은 비극, 씨극, 디극이게?'라고 할 수 있다. 내용을 조금 말하지 않을 수 없는데 스포로 중요하진 않지만 원치 않으면 건너뛰어도 될 것이다. 살아 있는 아이 다카시, 그의 아빠 야마쿠라와 엄마 가즈미, 죽은 아이 시게루, 그의 엄마 미치코. 이 관계가 참 묘하다. 간단한 팩트만 전달하자면 다카시는 친자식이 아니고 죽은 시게루는 야마쿠라의 아들이다. 뭔소린가 하면 다카시는 피가 섞이지 않은 양아들, 시게루는 야마쿠라와 미치코 사이의 불륜으로 낳은 진짜 아들이다. 야마쿠라는 미치코와는 잠깐 바람이었고 미치코는 야마쿠라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래서 복수의 심정으로 시게루를 다카시의 친구로 붙여준 것이다. 매일 자신의 자식을 보며 슬퍼하라는 것이다. 자신의 진짜 친아들을 보며 그는 어떤 마음을 가졌을까 상상만 해도 슬프고도 무섭다. 이런 배경을 알고 유괴사건을 보면 스토리가 달라질 것이다. (표라도 작성해주고 싶다.) 이것으로 '비극'의 기본 조건은 완성된다.
매번 느끼지만 인간은 참 안타까운 존재들이다. 나 역시 그들 중 하나인데, 무엇을 하든 실수 한 번으로 인생이 180도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비극. 우리들에게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들. 우울하지만 받아들이고 집어삼켜야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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