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 여섯 편의 『철학의 고전』은, 철학이라는 불확실하고 난해한 문체를 파헤치는 가교 역할을 하는 안내서이다. 철학은 우리들에게 삶을 향한 근본적인 성찰을 가져오지만, 어쩔 수 없이 맞게 되는 원문은 절망과 비참을 넘어 고통을 넘어 낭패까지 수반한다. 철학에 다가가고 싶어도 어렵고 방대한 분량 때문에 식겁하는 다수의 독자들을 위해 이 책은 새롭게 단장하고 버선발로 맞이한 고전 워밍업 단계다. 고등학교 윤리 교과서에서 자주 접했던 익숙한 철학자들의 이름과, 더불어 따라다니는 그들의 저서 제목들이 반갑다. 뚜껑을 열어보면, 반가움은 저만치 사라지고 고전을 해석해 놓은 것이라지만,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는 참으로 더디다. '영원불멸'을 부정하며 '영원회귀'라는 개념을 심어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보면서, '자라, 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로 고쳐가며 철학을 웃어 넘기려 했던 시절이 실소하게 만든다. 그러나 철학을 넘어, 한 시대를 풍미하고 지금까지도 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저자들의 삶과, 시대의 조류와 사회적 역할과 배경, 사상의 흐름 등을 엿볼 수 있는 계기가 되고 배경지식을 쌓게 되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측량할 수 없는 무게감에서, 모든 활자를 다 읽었다는 안도감에 가벼운 만족감을 느낀다.
1. 플라톤 <국가론> 기원전 399~ 기원전 347 사이 유럽 철학의 유토피아적 사상 전반에 걸쳐 결정적인 영감을 불어넣었고, 르네상스 때는 수많은 국가 유토피아의 모범이었으며, 현명하고도 금욕적으로 살아가는 권력자들의 모습이 커다란 역할을 했다. 플라톤은 정의가 말이나 요구에 그칠 것이 아닌 한 사회의 모델에 구체적인 생각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요청을 수용한 것이다.
2.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약 400년경 한 지식인이 어렵게 종교적 믿음으로 나아간 기록물이자 지식인과 종교 둘 다 변화를 겪은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며, 다른 기독교적 노선에 대해 가톨릭 교회가 유일한 대표성을 띠고 있다는 요구를 관철시키려는 교회정치적 투쟁의 일부이자, 아우구스티누스가 교회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하려고 수행했던 투쟁의 일부이기도 하다.
3.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 1532 가장 중요한 정치철학서이면서도 여러 세기 동안 가장 많은 논란과 더불어 '악당 책'이라는 오명을 받았다.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추악한 행위를 정당화하는 사악한 정치적 입장을 뜻하는 '마키아벨리즘'이 여기에서 유례한다. 이유인즉, 도덕을 정치철학에서 배제시켰기 때문이다.
4. 미셸 드 몽테뉴 <에세> 1580~1588 몽테뉴가 죽을 때까지 항상 새로운 주석과 수정을 가했던 '진행 중인 작품'이었다. 책의 주제는 그 자신이며 그가 책에서 쓰고 있는 모든 것은 그의 자아의 표현이니, 대중에게 공개하기 위해 쓴 책이 아닌 자기 자신에 관해 해명하기 위해 쓴 것이다. 그는 유럽 문화의 우월성이라는 테제를 의문시했던 최초의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5. 르네 데카르트 <방법서설> 1637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이 개척해놓았던 좁은 길을 근대 유럽철학이 뒤따라갔다는 것은 오늘날 일반적인 상식이 되었고, 세계와 인간의 인식을 위한 새로운 통로로 마련했다. 하지만 그가 철학사에 끼쳤던 엄청난 영향은 항상 대중을 떠나 숨어 지내려 했던 그의 삶과 비교해볼 때 대조적인데, 교회의 검열에 대한 두려움과 관련이 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철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표어일 것이다. 이것이 데카르트가 말하는 근본적 확실성(근본-명제)이며 이 위에 다른 모든 확실성이 구축된다.
6. 블레즈 파스칼 <팡세> 1669~1670 합리성에 대한 사랑과 그것의 한계에 대한 절망, 이러한 분열이 팡세의 분위기를 지배한다. 팡세는 신을 찾는 자, 끊임없이 현실의 최종적 원리에 대해 탐구하고 이러한 탐구에서 결국 기독교라는 종교에 귀의할 수밖에 없었던 한 사람의 증언이다. 그는 '이성의 논리'보다 '마음의 논리'에 우선 순위를 부여함으로써, 이성의 한계성과 무능력을 보여준다. 현대에도 팡세는 인간 상황에 대한 꾸밈없는 묘사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의 정곡을 찌른다.
7. 존 로크 <통치에 관한 두 논문> 1960 로크는 인권과 시민권의 철학적 아버지이다. 로크는 지배자가 어째서 자신이 원하는 바대로 권력을 행사해서는 안 되는가에 대한 이유로 권력은 백성이 부여한 것이고, 또한 그것은 일정한 규칙에 의해서 행사되기 때문에 필요한 경우에는 백성에게 되돌려주어야만 한다는 이론을 내세우고 있다. "의심이 드는 경우에는 시민을 위하고 권력자에 반대하라." 국가가 시민의 도구이지 시민이 국가의 도구는 아니다.
8. 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판> 1781 순수이성비판은 방대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비전문가나 전문가 모두에게 똑같이 어렵다. 높은 정신적 집중과 인내를 요구하는 책이다. '인간은 무엇을 인식할 수 있는가?'라는 철학적 근본 물음을 진지하게 다룰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결코 피해갈 수 없다. 이 책은, 생애를 바쳐 이룩해낸 업적이자 오랜 인고의 세월을 거쳐서 나온 사유활동의 결과다. 근대적 인식 이론뿐만 아니라 현대의 언어 이론과 학문 이론에서 풍부한 열매를 맺었던 사상이다.
9.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1819 쇼펜하우어는 구닥다리 형이상학자였다. 그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세계를 가장 내적인 곳에서 하나로 묶어주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이 책은, 모든 존재의 뿌리가 비이성적인 것이라서 우울하다. 이성의 활력에 대한 계몽의 믿음으로부터 등을 돌린 것이다. 이것은 서른 살의 천재이자 아웃사이더였던 젊은 염세주의자의 대단한 모험이었다. 세상은 고통의 계곡이며 인간의 사악한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었던 그의 테제는, 철학이라는 살에 가시로 남아 전체주의라는 야만과 정치적 파국이 지배했던 20세기에 특별한 의미를 획득했다.
10. 쇠렌 키르케고르 <이것이냐 저것이냐> 1813 철학사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유명한 詩적인 작품들 가운데 하나인 작품이다. 일기, 메모, 편지, 에세이, 격언으로 구성된 포괄적인 이 책의 분량은 거의 천여 페이지에 달한다. 인간은 책임을 지고 개인으로서 자신의 행위를 하기 때문에 인간은 선택함으로써, 윤리적 실존과 더불어 비로소 고유한 삶에 들어간다. 신학자로서 그는 결혼이라고 하는 인간 사이의 결합을 넘어 신에 대한 인간의 결합으로 향한다. 여기서 그는 자유와 선택과 같은 핵심 개념들에다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11. 칼 마르크스 <자본론> 1867~1894 부피감 있는 주저인 자본론은, 세 권으로 된 이천오백 페이지에 분량에다가 복잡한 경제적 관계들을 다루며 도표와 계산과 수식으로 가득차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영향력 있고 가장 많이 논의되는 현대의 책들 가운데 하나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전체에 걸쳐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토대가 되었을 뿐 아니라 사회당과 공산당의 깃발 아래 사회 질서의 급진적 변화를 열망했던 정치적 대중 운동의 이론적 기초가 되었다. 본질적으로 이 작품이 성공할 수 있도록 기여했던 것은 정확히 말해 책이 가징 정치적 폭발력이었다. 자본론은, 이론일 뿐만 아니라 실천적 도구이며 정치적 투쟁의 도구였다. 이 책은 수많은 대중화의 작업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에 대항해 싸우는 마르크스주의자의 교과서가 되었다. 엥겔스는 이 책을 '노동자의 성서'라고 표현했다.
12.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883~1885 니체는 이 책을 통해 철학자로서, 시인으로서의 야망을 보여준다. 그는 자신을 구시대의 종말과 신시대의 시작을 알리려고 하는 철학적 예언자로 본다. 낡은 형이상학, 낡은 도덕, 무엇보다 피안에 대한 믿음을 무덤으로 가져가고,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인간이 다시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니체는 종교적 경건 대신에 세속적 경건을 내세우면서 전래된 종교, 특히 기독교에 대항하는 선포이며, 비기독교인의 성서이다. 인간은 초월이나 신이 없이도 의미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는 니체의 테제는, 현대 실존철학의 가장 중요한 계기 중의 하나가 되었다.
13.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논리철학논고> 1921 출간되자마자 전혀 이례적인 혁명적인 작품으로 취급되면서 매우 빠르게 독자들에게 숭배를 받은 동시에 혼란에 빠뜨리기도 했던 얇은 책이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추구했던 의도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오늘날까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수수께끼는 바로 서로를 배척하는 인식의 두 영역인 논리학과 신비주의의 독특한 결합에 있다. 책이 지닌 야누스와 같은 이중성은 저자가 가진 다층적이고도 모순적인 인격을 반영한다. "세계의 의미는 세계 밖에 있음에 틀림없다."
14. 마르틴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1927 독일 철학계에 젊은 마르틴의 등장은 음악계에 비틀즈 출현과도 같았다. 존재와 시간은, 대학 강단의 철학에서 사라진 지 오래된 '불안', '걱정', '죽음'과 같은 주제들로 향하고 있다. 우리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삶을 방해하는 것에서 탈피하라는 철학적 각성의 소리로, 실존철학을 이론적 기초로 하고 있다. 20세기 철학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품들 가운데 하나다.
15. 칼 포퍼 <열린 사회와 그 적들> 1945 전체주의적 철학적 창시자들을 포괄적으로 비판하고, 민주적인 전후 세계에 건설되어야 할 원칙들을 한 가지 공식으로 제시했는데, '열린 사회'라는 개념을 권력이 제한되고 개인적 자유의 기초 위에서 사회적 정의가 실현되는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핵심으로 삼았다. 이 책은, 20세기 이데올로기적 투쟁들에 대한 자유주의적 계몽주의적 정치철학의 응답이었으며, 억압에 맞선 자유 투쟁에서 철학이 커다란 영향력을 증명했다.
16. 존 롤스 <정의론> 1971 민주주의를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인 다음, 그 밖의 다른 복잡한 특수한 물음들에 몰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을 일반 대중들에게 설득시켰다. 민주주의가 성취되고 지속되려면 논리적 확신이 관습을 대신해야 한다. 정의론의 가장 중요한 공헌은, 공개적으로 논쟁을 하면서 한 사회에 있어 정의의 물음을 스스로 다시 제기하고, 민주주의가 현대 철학의 이론적 기초를 얻게 되었다는 점이다. |
|
고전철학의 이해를 돕는 길잡이! [철학의 고전]
철학은 어렵긴 하지만 보면 볼수록 재미있는 분야다. 세월을 거슬러가며 읽는 시대정신을 캐는 묘미가 있다. 보고 또 봐도 흥미로운 철학의 세계.
이 책에는 16권의 철학 고전들을 풀어 놓았다. 이름이 익숙한 철학자와 그의 저서들이기에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이 한 권의 책에 모두 담아내기에 버겁지 않을까 했는데 필요한 핵심 내용들을 작가의 해설과 함께 담아내서 물 흐르듯 읽혀진다. 물론 어려운 부분도 있다. 하지만 곱씹을수록 의미가 새롭게 와 닿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 아닐까.
플라톤의 <국가론>.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억울한 죽음, 아테네 시민들의 무지에 통탄해서일까. 플라톤의 국가론은 국가 유토피아다. 타고난 최상의 자질과 적성을 갖춘 사람들이 자기 위치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그렇기에 통치자는 지혜와 능력을 조화롭게 갖춘 철인이어야 함을 강조한다. 무지한 지도자가 이끌어가는 국가가 아니라 정신적인 지도자가 인도하는 이상향이다.
플라톤은 시인 경연대회를 참가하기 위해 디오니소스 극장으로 갔다가 소크라테스를 만났던 일화처럼 그는 시인이 되고자 했다. 그래서 그의 국가론은 철학을 대화체로 쓴 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문학적으로 아름답다. 유력한 정치 가문의 후손답게 그의 정치에 대한 고민은 깊어 보인다. 그가 정치의 길을 포기하고 철학의 길로 간 것은 소크라테스를 알게 되면서 부터다. 소크라테스는 거리에서 철학을 가르치던 소피스트 계열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는 인간 행위에 대한 보편타당한 척도가 존재하며 덕이 있는 행위는 인식과 지식에 기초한다고 주장한 점이 상대주의자인 일반 소피스트들과 다르다.
소크라테스 죽음 이후, 플라톤은 정치적 망명으로 보낸 10년의 세월동안 지중해에 있는 국가들에게 이상적인 국가론을 실험해 보지만 실패로 끝나게 된다. 그리고 그 이론을 확대하고자 아카데미아를 세우게 된다.
플라톤의 국가론의 중심은 이데아론인데, 동굴의 비유에서 이데아론은 빛을 발한다. 포로처럼 동굴에 갇힌 채 해를 등지고 있는 죄수의 모습이 인간이고 그림자가 드리운 일상의 감각적인 세계, 그게 현실 세계다. 감각의 현실을 벗어나 참된 현실을 보게 하는 것이 통치 지도자의 몫인데 철인 왕이어야 가능한 인식의 세계다.
하지만 플라톤은 서민이나 노예 계급의 삶과는 거리가 먼 엘리트적 보수주의여서 그의 국가론은 사회주의적이고 폐쇄적인 측면이 강하다.
통치자, 전사계급, 피지배자계급은 태생적으로 정해져서 각자의 역할에 맞게 교육받고 훈련 받으며 조화와 안정을 꽤한다는 거다. 가정을 떠나 사회가 공동 교육을 하며 최상의 후손을 생산해내기 위해 성적교류도 엄격하게 통제한다는 것이다. 물론 지배 계층은 섹스 파트너뿐만 아니라 소유까지도 일종의 사회주의적 숭단사회를 형성한다.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
20세기 전체주의 국가에서 시험적으로 실행되었던, 최상의 상속인을 기르는 이론인 정치적으로 동기화된 우생학을 선전한다. (본문에서)
플라톤의 국가론이 전제적이고 폐쇄적인 점은 있지만 정의로운 국가를 꿈꾸던 그 시절 플라톤의 고민이 느껴진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이상적인 국가, 정의로운 국가를 소망했다는 점, 여성평등권을 내세웠던 점, 통치자가 철학적으로 바로 서기를 원했던 점은 지금도 우리의 고민이지 않나.
모든 나라의 지도자가 도덕적이고 정의로운 철학자라면 지금 세상은 어떨까. 신뢰할 만하고 정신적으로 이끌어 줄 수 있는 지도자라면 지금 우리에게도 매력적인 지도자인데...... 윤리규범에 맞는 통치자가 다스리는 국가가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그때나 지금이나 정치와 윤리가 겉도는 물과 기름 같아서 말이다.
이 책에는 아우렐리우스의 <고백록>,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몽테뉴의 <에세>, 데카르트의 <방법서설>, 파스칼의 <팡세>, 로크의 <순수이성비판>,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키르케고르의 <이것이냐 저것이냐>, 마르크스의 <자본론>,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포퍼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 롤스의 <정의론>이 해설되어 있다.
철학서적들은 혼자서 보기는 어려운데 이렇게 요약정리와 더불어 해설까지 되어 있어서 좀더 쉽고 재미있게 다가설 수 있어서 좋다. 철학 고전을 이해하기 위한 친절한 길잡이 같은 책이다.
집에도 사놓고는 펼쳐보지 못한 철학서적들이 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 책들이 가깝게 느껴진다.
|
|
철학의 고전을 읽다보니 과거 학창시절이 생각났다. 철학책에 몰입했던 고등학교 시절이 있었다. 밤을 새우며 철학책을 보았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책을 읽었던 시절이 그리웠다. 철학적 사고보다는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 철학에 관련된 책을 보았다. 왠지 철학을 하는 이들이 멋있어 보였다. 자신에게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때 읽었던 책들도 만났다. 군주론, 팡세, 차라투스르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의 책이었다. 어려웠지만 무엇인가 매력에 끌려 읽었던 때였다.
인문학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철학에 대한 관심도가 많이 떨어졌다. 모대학에서는 철학과를 폐지내지 통폐합을 한다고 한다. 인문학의 사향길이 현실화됨에 많은 이들이 염려한다. 인문학은 모든 학문의 기초이다. 기초학문에 대한 중요성보다는 생산성이 높은 이공계부분을 활성화시키는 것은 기초없이 건물을 짓겠다는 것이다. 학문에 대한 기초가 인문학이다. 인문학을 멸시하는 나라는 다른 학문의 발전도 기대할 수 없음을 세계사에서 보여주었다. 그리하여 인문학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자 하는 노력들이 펼쳐지고 있다.
본서는 이러한 즈음에 발간되었다. 철학에 대한 어려움보다는 철학에 대한 흥미를 끌고자 함도 본서 출간에 대한 목적일 것이다. 대중들은 흥미를 잃은 분야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철학에 대한 이해모호한 것에 대한 오해가 결국은 철학을 멀리하게 되는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철학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을 바꾸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
본서는 15권의 책을 통해 철학의 흐름과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플라톤의 국가론은 국가가 무엇이며, 정의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많은 이들이 지금도 읽고 있다. 그렇지만 국가에 대한 역사적 현실에서 국가에 대한 정체성을 잃어버린 청소년들에게 국가에 대한 의미가 있을지 궁금하다. 다음세대를 이끌어갈 청소년들이 자신의 국가에 대한 정체성이 바로 세워져야만 나라의 미래가 밝을 것이다. 국가론은 민주주의에 대한 정치적 상황들을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한번쯤은 들어봤던 철학자들을 이책에서는 만날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책을 통해 어떤 것을 말하고자 했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조금은 해소될 것이다. 물론, 지금도 어려울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본서는 저자와 저자의 책을 통해서 철학의 내용과 흐름, 사상 등을 접할 수 있다는 것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한권으로서 철학을 말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철학에 대한 개요와 사상은 조금 알 수 있을 것이다.
본서는 철학에 입문하는 이들에게 기본적이며 중요한 입문서들을 소개하고 있다. 철학하는 이들에게도 중요한 고전이라고 생각한다. 철학의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가슴을 설레게 할 것이다. 본서를 통해 입문을 하게 되면 철학에 흥미를 갖게 되어 철학을 더욱 가까이 할 것이다.
|
|
16권의 철학 책으로의 여행, <철학의 고전> 로베르트 짐머 作
생각해보니 ‘철학’이라는 우리 말의 어원이 무엇인지 문득 궁금해진다. 잘 알려졌듯이 서양의 철학, 즉 필로소피는 ‘지혜를 사랑하다’라는 의미에서 비롯되었다. 그렇다면 고전이란 현재의 우리에게 어떤 뜻일까? 홍기삼의 정의에 따르면 고전(古典)이란 ‘인류가 발견하고 발전시켜 온 수없이 많은 지혜와 지식 중에서도, 세월의 마모를 견뎌냄으로써 그 유효성을 입증받은 소수의 것들이다.” 어떻게보면 현대의 수많은 사상의 흐름과 분류는 ’어떤 것들을 고전으로 삼고 있는가‘에 따라 나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문예출판사가 펴 낸 철학의 대표적 고전 16 작품을 다룬 <철학의 고전>은 로베르트 짐머가 서양 철학의 고전으로 선별한 철학가들의 저작물들로 이루어져 있다.
목차부터 일별하니 고전이라 칭해져온 철학가들의 주옥같은 작품들이 나열되어 있는데, 그 시작은 고대 그리스의 이론가 플라톤과 그의 대표작 『국가론』이다. 당대의 뼈대있는 귀족 가문 출신이었던 플라톤이 서술, 집필한 『국가론』은 ‘유럽 철학사에서 최초의 거대하고도 체계적인 (철학적) 기획’이었다.
존경했던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혼란스런 정치 속에서 처형되는 일을 겪으면서 현실에 실망한 플라톤은 정의란 무엇인가란 문제를 깊이 탐구하기 시작했다. 소크라테스에게서 배운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진 『국가론』을 통해 정의, 참된 지혜, 교육에 대한 자신의 치열한 사유의 결과를 펼쳐 놓았다.
정의란 영혼(psyche)의 건강한 질서를 의미하며, 한 국가를 지배하고 통치할 조건과 능력을 갖춘 계층이 정의, 지혜, 용기, 사려깊음(신중함)을 갖춰야만 그 나라는 이상적인 국가가 될 수 있다는 게 플라톤의 주장이다.
노예제도를 옹호했던 플라톤이기에 그의 주장들은 귀족주의의 틀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고, 그가 상정한 국가란 당시 인구 30만의 아테네와 같은 폴리스(polis)를 의미했기에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건 물론이다. 그러나 기원전(bc)의 인물로서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능력과 자격을 지닌 존재로 보았다는 건, 충분히 대단하고 획기적인 철학이었다는 것 또한 알 수 있었다.
엘리트주의를 지향하였으나, 최고의 통치자일수록 앞에서 말한 네 가지 덕목을 철저하게 수련하고 금욕적이어야 한다는 플라톤의 정치철학은 관념이 아닌 실천적인 주장이었다. 그렇기에 플라톤의 ‘폴리테이아’가 현재의 ‘politic’이란 말이 되었고, 아테네에 세웠던 철학자 교육기관 아카데미아가 현재의 대학(academy)의 모체가 될 수 있었다. 이 후, 르네상스 문화부흥 시대에 『국가론』이 다시 주목을 받고 조명됐고, 심지어 20세기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플라톤의 사상의 일부를 활용했다는 것은 이번 책을 통해 전해 들을 수 있었다.
플라톤의 국가론에 이어서 16세기에 이르러 독특한 정치철학을 제시한 철학자가 등장하는데 바로 이탈리아 피렌체의 니콜로 마키아벨리였다. 로베르트 짐머에 따르면 21세기인 지금까지도 혐오스런 악당이란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는 사람이 바로 마키아벨리라고 한다. 정치가이자 외교관 생활을 오래 하며 『군주론』을 집필한 마키아벨리는 당시에 논란의 중심에 있던 작가였다고도 전해진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위엄있고, 무력에 의존하는 지도자 상을 제시하는 뒷면에 조국에 대한 자신만의 뜨거운 애정이 자리잡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당시에 이탈리아는 지금처럼 한 국가가 아니었고, 피렌체, 로마, 나폴리, 베네치아, 밀라노로 분리된 상태였고 피렌체 공화국이 마키아벨리의 조국이었다. 이렇듯 국토가 여러개로 분리되면 각 나라는 주변 강대국의 먹잇감이기 쉬웠고, 당시 프랑스, 스페인은 기회만 되면 각 공화국들을 점령하고자 도사리고 있었다. 실제로 피렌체는 1512년 스페인 군대의 지배를 받기도 한다.
16세기 이전까지 그리스 철학은 여전히 유럽 지도층에 다방면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마키아벨리가 센세이셔널했던 것은, 종교, 전통, 도덕으로부터 분리되어 정치가 철저하게 자신만의 고유한 영역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에 있다. 키케로, 에라스무스 등 많은 현인들이 통치자들의 덕은 관대함, 백성들과의 친밀한 유대라고 강조해왔는데, 『군주론』에서 마키아벨리는 정반대로 그것을 뒤집는 급진적인 주장을 펼쳤다. 불행하게도 그 때 메디치 가문의 로렌초는 군주론을 완전히 외면했고, 은퇴 후 마키아벨리는 역사에 대한 글을 쓰며 생을 마쳤다.
몇 년 후에야 책의 가치가 인정받아 출판됐으나 또 한동안은 교황에 의해 금서 목록에 오르는 등, 마키아벨리는 사후에도 논란의 중심의 인물이었다. 로마 교회가 군주론을 배격했던 것은 단지, 책의 저자가 정치를 종교를 비롯한 어떤 것으로부터도 분리된 고유의 영역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인간은 뱀을 알기 위해서 여우가 되어야만 하고, 늑대에 겁을 주기 위해 사자가 되어야만 한다.”는,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통치론을 펼쳤던 『군주론』은 그러나 이후 수많은 유럽 통치자들에게 직접적이거나, 은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내 생각에는 얼마전 타계한 마가렛 대처 영국 전 수상 또한, 어쩌면 그의 서재에 군주론을 두고 읽지 않았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들었다.
르네상스 시대에 출현한 문필가들 중 우리나라에서 조명을 크게 받지 못한 미셸 드 몽테뉴에 관한 챕터는 처음엔 재미로 읽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그가 쓴 주저 <에세>가 현재의 ‘에세이’라는 고유어의 기원이 되었다는 것에서 몽테뉴라는 인물과 철학에 더욱 눈길이 가게 된다. 한 분야의 창시자는 수백년이 흐른 후세에도 인정을 받는 한편, 그 당시에는 전통을 깨는 파격으로 외면을 받기도 했다는 것을 <철학의 고전>을 통해 생생하게 되돌아볼수 있다.
몽테뉴의 혁신적인 점은 그 전까지 사상과 철학이란 것이 논문의 형식을 띄거나 근엄한 주제, 일관된 생각의 흐름 식으로 전개하는 게 당연시됐던 것에서 탈피했다는 점이었다.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에세>는 신문의 칼럼, 논설의 모음집이라고 볼 수 있었다.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고 배움에 치열했던 몽테뉴가 자유로운 형식 내에서 독특한 자신만의 방식으로 전혀 타협하지 않은 이론과 의견을 펼친 책이 <에세>였다.
경쾌한 필치로 모든 주제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몽테뉴가 <에세>를 10여년에 걸쳐 외로운 상황에서 집필했다는 것에 왠지 가슴 한 구석이 짠해져왔다. 그의 글은 당시 세태의 문제들을 날카롭게 비판했기에 사회적인 출세와는 거리가 멀었고, 지음인 가까운 친구가 요절한 이후에는 더욱 책 쓰기에 몰두했다는 일화에 인간적인 연민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말년에 현실의 일을 줄이고 실제로 성의 탑에 들어가 도서관을 구비해놓고 오로지 책 읽기와 그에 기반한 집필에 몰두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종교전쟁이 발발했고 몽테뉴는 구교도였으나 신교도와도 교류를 갖고 있었으며 이러한 관용은 그 당시에는 드물었고 이후의 계몽주의 시대보다 앞선 태도였다. <에세>가 결코 전기, 고백록은 아니지만 항상 자기 자신의 관점을 고수했다는 점이 특별했고, 1500년대로서는 드물게 개인의 경험에 가치를 두는 특성을 갖고 있었다. 전형적인 르네상스인으로서 인간을 중시하는 생각을 그도 견지했던 것이다. 한편 몽테뉴는 유럽중심주의, 즉 유럽 문화의 우월성이란 명제를 의문시했던 최초의 철학자로도 불리운다고 한다. 현대의 프랑스에 도도히 흐르는 관용의 정신이 몽테뉴의 저작들에서 발생하고 기인하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몽테뉴가 시작한 자아에 대한 진지한 탐구는 르네 데카르트로 이어졌고, 연약하고 불안한 인간에 대한 사유는 파스칼에 영향을 주었다. <에세>는 구체성, 가벼움을 철학에 부여했고, 결과적으로 보다 삶에 밀착되어 대중들에게 철학을 가깝게 느끼게 하는 거의 최초의 작품이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한 마디로도 여전히 회자되는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는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 할 만 하다. 몽테뉴와 마찬가지로 내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둘 다 모두 귀족 출신에 나름 기득권일 수 있었으나, 중요한 걸 다 포기하고 오로지 철학의 연구와 책 쓰기에 몰두했다는 점이었다.
수학자이기도 한 데카르트는 연역법을 개발해 내기도 했고 모든 학문의 근본을 수학이란 관점에서 증명하고자 했다. 당대에 코페르니쿠스의 혁명적인 과학 이론을 접하면서 철학에 눈을 뜬 데카르트는 고국을 떠나서 자유를 보장하는 네덜란드에 정착했고,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최대 걸작 <방법서설>이 네덜란드에서 쓰여졌다. 중세의 신학에 조금이라도 충격을 주는 연구가 그만큼 위험시되는 시대였는데, 데카르트의 철학이 신학과 철학, 과학적 측면에서 모두 새로운 발견을 제시할 가능성이 많았기 때문이다.
<방법서설>의 완전한 제목은 <이성을 잘 인도하고, 학문에 있어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방법서설, 그리고 이 방법에 관한 에세이들인 굴절광학, 기상학 및 기하학>이다. 이 책에서 유명한 그의 방법론적 회의(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도출되었다.
중세와 결별한 근세에는 무역을 중심으로 특히 이탈리아, 서유럽, 독일 지역에서 정신생활을 지배하는 힘이 최초로 성직자의 손에서 평민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모두가 사유하고 지식을 추구할 수 있게 된 이 상황에서 데카르트는 학문을 탐구하기 위한 방법으로써 보편적인 지혜, 즉 철학을 평생의 사명처럼 수행하고자 했고 이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철학을 이루어내었다.
당시에만 해도 인정받는 철학책은 대부분 라틴어로 쓰여지던 시대에 과감히 모국어인 프랑스어로 <방법서설>을 써냈다는 것도 대단한 측면이며 성취였다. 선배 몽테뉴처럼 그도 <방법서설>이 논문으로 읽혀지기를 원치 않았고 소설작품처럼 쓰고자 했고, 그러므로 교과서가 아니라 오히려 에세이와 철학적 자서선의 혼합물로 탄생했다.
데카르트는 자명하게 참인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의심했다. 감각은 우리를 기만할 수 있지만 ‘의심’은 확고하고 새로운 확실성을 생겨나게 한다. ‘나는 모든 것을 의심할 수 있으나 의심하는 행위 자체, 즉 사유 자체는 의심할 수 없다’. 데카르트에게 감각은 교량의 지위만을 획득했다. 감각은 사물의 본질과 실존을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사물과 관계를 맺어준다,
학문은 모든 사람에게 유용하고 진보에 봉사한다. 이러한 학문에 신뢰할 만한 기초를 제공해야 하는 것이 바로 철학이고, 데카르트는 필사의 정신작업으로 철학을 완성하고 증명하고자 했다. 참과 거짓을 분별하는 데 있어 판단은 기준과 방법을 필요로 한다. 데카르트는 학문을 나무로 비유하였다. 뿌리는 형이상학, 줄기는 수학, 그것에서 뻗어나가는 가지는 물리, 의학, 기계학 등이라고 하였다.
정리하면, 이성 자체에만 의심할 수 없는 진리가 있다는 <방법서설>, 이 한 권을 기초로 이후의 서구 근대 합리주의가 펼쳐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 계승, 형성된 합리주의는 서구인들의 지나친 이성에의 맹신이 빚은 폐해에 책임을 갖는 본의아닌 시초가 되기도 한다.
<철학의 고전>에서 나열한 순서는 따로 있지만, 비슷한 관점을 이어간 맥락에서 리뷰를 엮어보고 싶어서, 다른 시대의 파스칼과 키르케고르, 존 로크와 마르크스의 철학을 살펴보기로 한다.
AD 400년에 기록된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이 서양 철학의 기독교적 저작의 출발이었다면, 1670년의 블레즈 파스칼은 그 뒤를 잇는 텍스트 <팡세>를 썼다. 몇 년전 민음사의 <팡세>를 약간 읽은 적이 있는데 독해가 쉽진 않았으나 격언집으로 느껴져 마음에 와 닿는 문장들만 읽어도 좋았다. 데카르트처럼 실력있는 수학자였고, 계산기를 발명하기도 한 파스칼은 합리성을 지지하는 것과 그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는 것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했고, 격언과 메모, 논문의 혼합체 형식의 <팡세>는 분열적인 그의 내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1654년 11월 23일에서 24일로 넘어가는 밤에 종교적 회심, 각성의 체험을 한 이래로 그는 그간의 방탕과 방황을 종결짓고 자신만의 개인적인 신을 발견했다. <팡세>에서 펼치는 그의 철학은 과학, 이성적 사유를 통렬히 비판함으로써 신앙인으로서의 지성인으로 완전히 돌아섰다. 그의 글들은 지금의 시점에서 봐도 날카롭고 단호해서 놀라움을 준다. 합리적이고 수학적인 사유란 우리 인간의 본성의 가장 깊은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며, 가장 본질적인 물음에 답을 줄 수 없다는 인식을 그는 끝까지 고수했다.
인간의 본질적인 정체성은 불안이고 파스칼에게 있어 불안이란 오로지 신과 분리될 수 있다는 실존적 절망의 표현이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당신에게 안식을 찾기 전까지 나의 마음은 불안합니다”라는 고백을 한 것과 마찬가지 명제였고 이후 쇠렌 키르케고르의 불안의 개념으로 파스칼의 사상이 이어지게 된다.
파스칼은 아리스토텔레스, 에픽테토스 등 고대부터 내려온 합리주의 전통, 즉 최상의 진리들은 오로지 이성을 통해서 접근 가능하다는 것에 반대했다. ‘이성의 논리’보다 ‘마음의 논리’에 우선 순위를 부여함으로써 이성의 한계성과 무능력을 보여주고자 했다. (p.109)
“인간은 한 개의 갈대에 지나지 않으며 자연 가운데서 가장 약한 자이다. 그러나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다.” 인간은 우주 속에서 아무 것도 아니지만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로서 자신의 존엄을 가지고 있다는 파스칼의 인간학의 총체가 <팡세>이다.
키르케고르의 사상은 여전히 완전히 해독되지 않고 있는 듯 한데 확실한 건 그의 저작들은 시적인 동시에 심오하고, 섬세하며, 다면적이라고 로베르트 짐머는 말한다. 실존이란 개별 인간의 가장 내면적이고 파악하기 어려운 인격적 핵심이며 자아이다. 실존주의를 말할때 프랑스의 소설가를 떠올리지만 1800년대 덴마크의 철학자·신학자 키르케고르가 시작이었다.
진정한 철학은 인간의 인식 전체를 아우르고 인간에게 절실한 물음을 제기한다. 이전의 성실한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키르케고르도 신분의 이익을 뒤로 하고, 인생을 걸고, 목숨을 마치는 순간까지 철학을 했던 사람으로 느껴졌다.
<이것이냐 저것이냐>(1813)의 원제는 <이것이냐 저것이냐. 삶의 단상. 빅토르 에레미타가 편집함>이다. 몽테뉴, 파스칼처럼 일기, 메모, 편지, 에세이, 격언으로 구성된 본서는 1,000페이지에 이르는 야심작이었다.
삶의 자세, 자기 실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말하는 <이것이냐 저것이냐>. 인간이 삶 속에서 실천적으로 자기의 것으로 만든 진리만이 자신을 위해 중요한 것임을 강조한다. 키르케고르 이전까지 정신적 세계를 지배한 독일 관념론의 대부 헤겔과 그는 대립하게 됐다. 헤겔에 의하면 현실은 이성이 역사 속에서 자기를 드러내는 과정이다. 반대로 키르케고르는 개별자가 현실적으로 자신의 삶을 통해 실현할 수 있는 것에 관심을 집중했다.
학위 졸업 논문 <소크라테스와의 지속적 관계를 통해본 아이러니의 개념>을 시작으로 그의 뛰어난 문장력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것이냐 저것이냐>는 1841년 12월부터 이듬해 11월까지 11개월에 걸쳐 생겨났다. 잘 알려졌듯, 레기네 올센과 갑작스런 파혼을 한 후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쓴 그는 A와 B라는 화자를 등장시킨 책에서, 자신의 모습을 투영시켜 일부러 인격에 문제가 있는 남성처럼 가장했다고 한다. 그는 평생 독신이었고 올센을 잊지 못했지만, 그녀가 자신을 잊게 하기 위해 평판을 조작하기도 했다는 대목에서 안타깝기도 하고 잘 이해가 안됐다.
<이것이냐 저것이냐>로 돌아오자. A는 심미적 인간상을 드러내고 이 부분이 책의 2/3이고 나머지는 B란 화자를 통해 윤리에 대해 고찰한다. 향락에 가치를 두는 심미적 인간에게 모든 것은 ‘흥미가 있는가’ 그리고 그것이 ‘삶의 감정을 고양시키는가’로 모아진다. 이와 같은 삶의 형식은 우리가 예술과 관계할 때의 방식과 많은 유사성을 갖는다. 예술은 우리에게 유희적이면서 감각적이고, 동시에 정신적인 자극을 주는 대상이다. 심미주의자는 현재를 위해 살고, 미래를 위한 계획이나 과거에 대한 집착은 무의미하다.
현재의 만족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미래를 목표로 하고 있는 B의 윤리적 삶의 형식은, 인간이 타인과 의무적 관계를 맺는 것을 통해 확연히 드러난다. B가 추구하는 삶에서 저자는 결혼을 윤리적 삶의 형식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했다. 결론적으로 사람들은 심미적 삶의 방식과 윤리적 삶 사이에서 선택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독실한 개신교인이며 덴마크 국교를 신랄히 비판해서 거의 이단자로 몰렸던 키르케고르는 한 때 사교계에서 제대로 활동했던 전직(!)이 있었다. <이것이냐 저것이냐>에서 그는 자신이 직접 겪었던 생활과 그 후 성찰한 사색을 바탕으로 했기에 사회적으로 큰 파급력을 가질 수 있었다.
A는 아마 근세에서 최초로 시니컬한 인물의 시초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관능적, 본능적인 삶을 향유하는 자이나 그는 절망을 느끼고 있다고 키르게고르는 문학적 필치를 동원해 표현한다. 우울과 권태가 항상 동반되는 삶 가운데 처해 있는 게 A다. 대표적인 표본적 인물이 등장하는데 돈 주앙과 요한네스가 그들로, 돈 주앙은 <직접적인 관능적 사랑의 단계 또는 음악적·관능적인 것>이란 에세이를 썼다. 돈 주앙이 타고난 관능적 사랑의 대가라면, 요한네스란 남자는 <유혹자의 일기>의 저자로 나타났고, 그는 세련된 준비와 전략으로 그렇게 됐다고 표현한다.
결국 <이것이냐 저것이냐>에서 키르케고르가 이상적인, 최선의 인생으로 논증하고자 한 것은 B를 통해 제시된다. 빌헬름이란 이름의 법률가인 B는 A가 가진 장점, 즉 직관적이고 감각 지향의 삶이 윤리적 삶으로 수용, 통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결혼이란 형태를 통해 두 사람이 서로를 받아들이고 결합하는 선택을 하는 것이 향락에 내맡겨진 삶과 결별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선택’이란 주제가 키르케고르가 말하고 싶은 키워드였던 것 같고, 우울이 아닌 절망을 겪음으로써 양심을 깨닫고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다는 이론을 펼쳤다. 그가 사용한 단어인 ‘윤리’와 ‘자유’, ‘선택’의 의미가 무엇인지 깊이있게 느끼려면 역시 원서를 먼저 읽어야만 하겠다. (그런데 국내에는 키르케고르의 원저 번역이 거의 전무한 것 같다. 있어도 아주 오래전 출판된 것들만 ㅠ)
키르케고르는 후속작들 속에서 심미적이고 윤리적인 삶의 형식에 대해 최상의 어려운 삶의 형식으로서 종교적인 삶의 형식을 추가했다. 자국의 기독교계를 타겟으로 한 몇 작품은 본명으로 썼지만, 그 외 대부분의 저서들은 전부 다른 가명이나 익명으로 출판했다. 1844년. <불안의 개념>-비르길리우스 하우프니엔시스. <두려움과 떨림> - 요하네스 데 실렌테오. 1845년 <인생길의 여러 단계>-힐라리우스 부크빈더 1846년. <철학적 단상들에 대한 비학문적 후서>-요하네스 클리마쿠스 1849년 <죽음에 이르는 병>, 1850년 <기독교의 훈련> - 모두 익명
대부분의 저서들은 덴마크에서 격렬한 논쟁을 일으키면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고, 사후에 걸쳐 20세기 초 全 유럽에서도 큰 관심을 받으며 읽히게 되었다고 한다. 고독, 부조리, 인간 존재의 기본 사실로써의 불안의 개념이 키르케고르에서 유발되고 심화되었다고 한다. 실존주의 문학, 해체주의 철학에 이르기까지 영향력을 찾아 볼 수도 있을 듯 하다. “모든 모험은 불안을 낳는다. 하지만 모험하지 않는 것은 자기 자신을 아예 잃는 것이다.”(쇠렌 키르케고르)
책의 중반부에 놓여있던 존 로크의 철학은 그전까지 관념적인 사상을 쭉 읽다가, 실제로 공동체를 바꾼 사건들과 연결되는 일이 구체적으로 나와서 가장 이해하기 쉽고 몰입하며 읽었다. 영국에서 의회 정치의 근간을 만든 이론가였던 로크의 <통치에 관한 두 논문>(1689)은 명예혁명의 토대를 이룬 청사진이다. 오래전 사람들의 생각을 뒤흔들고 현실을 바꾸었던 철학들이 지금은 역사 과목 암기와 상식속에서 박제된 듯 존재하지만, 당시엔 수년에 걸친 사유의 결과이자, 신변의 위협을 감수하는 도전이었음을 <철학의 고전>으로 절실히 알 수 있었다. 존 로크도 마찬가지로 네덜란드 망명 생활을 하고 혁명의 파도 한 가운데 있던 인물이다. <통치에 관한 논문>은 통치론으로도 불리우며 이하 통치론으로 지칭한다.
로크가 스무살과 청년 시기의 학문을 배웠던 때 영국은 왕권과 청교도 사이 투쟁의 격동속에 있었는데, 그가 웨스트민스터학교에 재학할 때 창문으로 찰스 1세가 사형되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의학을 공부해 의사로 활동하다 샤프츠버리 백작이란 사람의 주치의가 되면서 인생의 전환기를 맞았다. 샤프츠버리가 휘그당의 열혈 멤버였던 것이다. 보수주의편에 있었고, 홉스의 사회 계약 이론을 추종하며 절대 권력을 왕에게 부여하는 걸 옹호했던 로크의 변신은, 이를테면 새누리당원에서 진보정의당으로 전향한 것에 다름없었다.^^ 정신사에 영향을 끼친 사람들을 보면 이렇게 누군가와의 운명적인 만남, 직접 겪은 몇가지 사건이 터닝포인트가 되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통치에 관한 두 논문 Two Treatises of Government>에서 로크는 지배자가 어째서 자신이 원하는 바대로 권력을 행사해서는 안 되는가에 대한 이유로 권력은 백성이 부여한 것이고, 또한 그것은 일정한 규칙에 의해서 행사되기 때문에 필요한 경우에는 백성에게 되돌려주어만 한다고 했다. 그의 주장은 봉건주의, 절대군주제의 체제에 반기를 걸었고 이후 근대의 민주적인 헌법 국가의 건국 이념에도 널리 영향을 주었다.
자연 상태의 인간은 세 가지 기본적인 권리를 가지는데 생명권, 자유권, 소유권이 그것이다. 개인들의 사적 소유는 정당하고 이와 더불어 새로운 시민 사회가 성립될 수 있다. 그래서 중세 봉건적 소유 제한과 무역 제한은 사라져야 한다. 서유럽 가운데 영국은 자유로운 상품 교환,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 새로운 원료 시장의 개척을 통해 마르크스가 150년 후 ‘자본주의’라 불렀던 것이 이제 막 싹트고 있었다.
자유, 생명, 소유에 대한 기본권을 보증하는 사회 계약은 타당하며 기본권을 관철하기 위한 권력을 국가 제도에 위임하는 계약에 동의할 수 있다고 로크는 보았다. 시민은 모든 권력이 시작되는 주권자의 지위를 얻었고, 존 로크는 독창적인 ‘시민 주권’ 개념을 만든 창시자가 된다. 개개인의 생명과 자유를 지키는 자발적 결사체로써의 국가관이 이렇게 탄생했다. 18세기의 프랑스 혁명, 토마스 제퍼슨의 이념과 미국의 헌법이 로크에게서 시작되었다 볼 수 있다 한다. 극단적인 신념을 가졌던 칼 마르크스 또한 로크가 철학에서 본격적인 정치경제학의 물음을 던진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기도 했다.
정리하면 <통치론>은 인간이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포기할 수 없는 자유로운 시민의 권리를 보여준 작품이다.
1867년에서 1894년에 쓰인 <자본론>의 주된 이야기 소재는 노동자의 참상과 소외계급의 빈곤이었다. 이는 경제학에서 완전히 새로운 철학을 하기 위해 영국 런던에서 생활했던 칼 마르크스가 경험하고, 대영박물관에서 독서에 파묻히며 사유한 연구의 결과물이었다. <철학의 고전>을 통해 자세히 접한 <자본론>은 간접적인 경로로 얻어들은 내용과 일치하기도 했지만, 교양 인문학과 대중 매체로 막연히 알고 있던 이미지와 사뭇 다른 내용도 있어 흥미로웠다.
이전의 철학들이 스타일과 추구하는 바는 달라도 데카르트와 칸트, 몽테뉴와 파스칼, 쇼펜하우어까지 형이상학적이고 개인의 각성을 요구하는 이론들이란 점에선 공통적이었다. 그에 반해 <자본론>은 개념을 바탕으로 이론을 실천적 도구로, 정치적 투쟁으로 사용하라는 맹렬한 촉구를 하는 저서이다. 단순히 개인의 깨달음을 넘어 만국의 노동자의 단결을 선동하는 작품이다.
산업 자본주의 사회가 도래한 이후, 인간은 노동에서 소외되었고 이는 자본가의 착취로 발전했으며, 노동이 상품 가치로 전락했다고 마르크스는 주장했다. 마르크스에게 역사의 추동력은 물질적인 과정, 다시 말해 한 사회의 경제적 과정에 있다. 그리하여 ‘의식’이 ‘존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
인간이 자기 실현을 하기 위해 자유로우면서 창조적인 노동을 해야만 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현재는 노동력을 파는 것에 기초한 임금 노동이 인간을 소외시키는 기본 뿌리가 되었다.
이전 저작인 <공산당 선언>에서 마르크스는 엥겔스와 함께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부르짖었고, 역사란 각 시대마다 지배하는 계급과 지배받는 계급 사이의 투쟁의 결과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자본론>은 단순한 책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미건조하지도 않다. 타고난 논쟁가이면서 저널리즘에 정통했던 마르크스는 생생하게 현대를 비판하고 문학적인 필치로 압도적인 설득력을 보여주었다.
노동계급은 노동력 외에는 가진 것이 없는 반면, 자본가는 공장, 기계, 원료, 노동력의 모든 생산 수단을 소유하고 있는 현실은 잘못이 있다. 그래서 사회적 부가 공정히 분배되기 위해 생산 수단에 대한 사적인 소유는 폐지되어야 한다는 게 마르크스의 생각이었다. 단적으로 <자본론>의 결론은 자본주의는 항상 위기를 생산해내는 필요악의 체제이기에 반드시 무너진다는 종말론을 예언하며 끝난다.
물론 우리 모두는 현재 마르크스와 레닌 등의 이념을 따라 건설된 국가들이 대부분 사라진 것을 직접 보았다. 노동계급의 혁명을 최상의 목표로 삼은 마르크스의 사상은 아쉽게도 공산주의 국가에서 독재가 만연하는 부작용은 예견하지 못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현재의 자본주의가 마르크시즘의 패착을 완벽하게 극복한 체제인 것은 또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단지 그나마 최선의 나은 제도인 것일 뿐.
<정의란 무엇인가>를 통해 국내에도 익숙하게 소개된 존 롤스의 <정의론>(1971)은 <철학의 고전>이 마지막으로 주목하는 철학책이다. <정의론>은 계몽주의 시대에 생겨난 정의에 대한 이해 즉 자유, 평등, 박애로 표명되었던 것을 새롭게 연구하였다. 롤스는 인종, 출신, 종교, 그 이외의 것들에 근거를 둔 소위 ‘출생’에 근거한 불평등을 해소해야한다는 인식에서 시작한다. 그것이 정의(正義)에 대한 중심 테제이고 사회적 기득권의 분배에 질문을 던지는 작업을 계속했다. 최종적으로 정의로운 사회의 제도 문제는 정치와 사회 철학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최대 다수의 최대 이익’의 벤담 공리주의에서 롤스가 발견한 맹점은 다음과 같다. 예를 들어 소수가 매우 많은 것들을 소유하고 다수가 거의 소유한 것이 없는 경우, 노예 노동을 통해 전체의 행복을 증가시킬 수 있을 경우가 용인되는 일이 벌어진다. 롤스에게 정의는 모든 시민들의 존엄성이 (이른바) 전체의 행복에 의해서 침해될 수 없어야만 성립한다고 봤다. 사회적 약자의 처지를 항상 고려하는 ‘분배의 정의’, 그리고 모든 시민에게 교육과 사회 참여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기회의 정의’가 주된 내용이다.
롤스는 이런 가정을 해본다. 만약 내가 2개의 사회 가운데 하나를 결정해야 한다고 치자. 첫째로 내가 매우 부자가 될 수는 있지만, 빈곤으로 추락할 수도 있는 사회와, 다른 한편으로 재산의 양이 제한되어 있지만, 가난한 자를 위해 사회적 안전 장치가 훌륭하게 마련된 사회 중에서 하나를 결정한다면? 나는 후자의 사회를 결정할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최상의 사회적인 안전 장치가 보장되는 사회가 선택될 수 있다는 것.
자유, 사회적 정의, 경제적 효율성에 있어 우선 순위를 정해야 한다면 롤스는 1. 자유, 2. 사회적 정의, 마지막으로 경제적 성장이라고 주장했다. 자유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자 전제는 믿음, 양심, 언론, 집회의 자유가 헌법은 물론 현실에서 보장되는 것이다. 또한 피부, 출신, 사회적 위치같은 이유로 차별되는 일은 완전히 철폐되어야 한다. 만일 정의의 원칙들이 한 사회 안에서 지속적으로 침해된다면 시민은 시민 불복종의 권리를 가질 수 있다고 밝혔다. 존 롤스에게 궁극적으로 시민의 자유권은 국가의 요구에 맞서 우선권을 가진다.
정의감은 인간의 기본 덕목이고, 타인들을 마찬가지로 동등한 권리를 가진 주체로 다루게 하며, 사람들의 개인권을 침해할 수 없는 것으로 보게 할 수 있다. 2013년에 볼 때는 북유럽과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서 실천되고 있는 이론이라 자연스러워 보이는데, 롤스가 60년대에 정의론을 구상하고 1971년에 발표했음을 주지하면 앞서가는 정치철학이었다. 이는 넓게는 사회복지로도 지평을 넓혔고, 그래서 <정의론>의 발표 후 유럽에서는 보편적인 사상으로 빠르고 광범위하게 수용되었다. 반면에 미국에서는 꽤 격렬한 논쟁을 일으켰는데 특히 롤스의 사회복지적인 관점이 미합중국의 국가관과 대립하는 지점들이 논란의 민감한 부분이었다고 한다.
현대에 와서 철학자도 쇼맨쉽과 마케팅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이 학계를 주도하는 현상이 벌어졌는데, 존 롤스는 철학이 아닌 주변적인 요란한 지식 산업과 거리를 두고 조용히 연구에 몰두하는 타입이었다. 70년대와 80년대에 주로 수용되었을 그의 정의론이 2000년대에 미국에서 다시 부상하고, 우리나라에서도 새롭게 조명을 받았다는 것에는 분명 유행을 넘어선 어떤 절실한 필요가 있었음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느끼게 됐다.
이밖에 아우구스티누스, 칸트와 니체, 비트겐슈타인, 하이데거, 칼 포퍼에 대해 독자들이 객관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책은 구성되어 있었다. 겉핡기식이 아닌, 작가가 중요하게 여기는 주제의식들을 중심으로, 철학자와 그들의 대표작을 전문가의 친절하고 정확한 해설로 탐험할 수 있었던 <철학의 고전>이었다.
로베르트 짐머가 고른 16명만이 철학에 입문할 때 알아야 할 철학자인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리고 혹은 어떤 철학자의 작품들에는 동의할 수 없는 요소들이 내게도 있었다. 그렇지만, 철학의 세계에 흠뻑 빠져드는 여행에서 믿을 수 있는 지도로써 훌륭한 고전 안내서였다고 감히 평가하고 싶다.
▷리뷰어 은령써니 |
|
『철학의 교양을 읽는다』 / 오가로 히토시저
|
|
로베르트 짐머의 [철학의 고전]은 서양 철학사 전반을 관통하는 명저 중의 명저들을 두루 톺아보고 있는 철학사 개론서라 하겠다.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부터 [정의론]의 저자 롤스에 이르기까지 그들 사상을 집약하고 있는 대표 저작들 16권을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그의 글을 조금만 읽다 보면 이건 단순한 철학사 개론서, 내지는 철학 고전 소개 정도가 아님을 느낄 수 있다. 우선 짐머는 매 편 이야기를 꺼내는 도입부에서 개인적인 인상을 들어 관심을 고조시킨 다음 철학 고전으로 자연스레 잇고 있다. 이를테면 플라톤의 [국가론] 편 앞 부분에는 약간 뜬금 없달 정도의 얘기로 실마리를 풀어 나간다. "꿈은 혼자 꾸는 것만이 아니다. 집단적인 인류의 꿈도 있다. 이 꿈은 고통에서 벗어난 행복하고도 자유로운 세계를 그리고 있다. 종교와 철학 그리고 예술은 항상 이러한 꿈을 표현하고자 노력해왔다."(10쪽) 이렇게 꿈 이야기를 하다가 이상적 국가에 대한 꿈으로 연결하며 플라톤의 [국가론]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특이한 것은 고전 저작물이 나오게 된 역사적, 사회적 배경 및 상황에 대해 장황하리만치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론]의 경우만 해도 고대 아테네의 정치, 사회적 상황과 플라톤의 개인사가 이리저리 엮이며 저작의 배경을 이해하도록 애쓰고 있다. 귀족주의와 민주주의가 교차하는 상황에서 귀족주의자, 엘리트주의자인 플라톤의 민주주의에 대한 혐오와 그에 따른 방황 및 저작 구상 등을 잘 설명하고 있다. 그런 다음 [국가론]의 본론인 철인왕, 사회 계층, 정의관 및 이데아론 등을 풀어나가고 있다. 그러니 이런 추상적인 철학 관념들도 어렵지 않게 윤곽이 그려지게 만든다. 매 편 마지막 대목에선 그 저작이 현대 사회에 미친 영향과 오늘날의 철학자들이 저작자에 대해 내리고 있는 평가를 곁들여 단순히 과거의 고전에만 머물러 있지 않게 배려하고 있는 점도 인상적이다. 그래서 이 책은 로베르트 짐머의 철학의 고전에 대한 개인적 에세이라 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철학사의 명저작들을 단순히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를 그의 사유와 감성으로 녹여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어려운 관념들도 쉬 읽히고 그 의미가 눈에 선하게 그려지고 있지 않을까 싶다. |
|
이 책은 접근하기 쉽지 않은 철학이라는 성채에 들어가는 현관문 역할을 합니다. 16편의 에세이는 단지 유명한 몇 몇 철학자의 철학이론을 알려주는 것을 넘어 일반인들의 삶과 사고(思考)에 지대한 역할을 한 철학들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예를 들어, 플라톤의 <국가론>을 말하는 1장에서 저자는 플라톤의 <국가론>이 유럽 철학의 유토피아적 사상 전반에 지대한 영감을 불어 넣어 주었다(p. 27)고 설명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오래 전에 읽었습니다. 그 때는 “당신에게서 안식을 찾기 전까지, 우리의 마음은 불안하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을 신앙의 관점에서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신을 인정하고 신을 의지하는 삶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었죠. 그런데 이 책에는 <고백록>의 철학적 가치를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고백록>은 매우 개인적이며 ‘실존적’인 방식으로 철학함을 보여주며”(p. 42), “아우구스티누스의 방식은 지적인 불안을 철학에 이입했고, 이렇게 해서 지적인 불안은 오늘날까지 열매를 맺고 있다. 그는 <고백록을 통해 유럽 정신사 속에서 위대한 불안의 정초자(定礎者)로 남게 되었다.”(p. 43). 얼마 전에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읽었었는데, 로베르트 짐머는 “국가 이성, 정치적 캠페인, 그리고 정치적 행위의 필요성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마키아벨리의 장화를 신고 서 있는 것”(p. 60)이라고 마키아벨리의 공헌을 한 문장으로 멋지게 표현했습니다. 이 책은 이런 식으로 중요한 철학자의 역사적 가치와 의의를 명쾌하게 정리해 놓았습니다. 데카르트적 사유는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인간과 자연을 분리하고 육체와 정신을 분리하는 서구적 사상을 상징하는 것이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파스칼의 <팡세>는 인간의 삶의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철학을 하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고전적 작품이라고 평합니다.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에는 경제적 분석을 넘어 “참된 가치와 인간의 존엄에 대한 철학적 변론이 숨겨져 있다”(p. 201)고 말합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니체의 테제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초월이나 신이 없이도 의미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p. 220)는 것이 니체의 테제이며, 이 테제는 현대의 실존철학의 가장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칼 야스퍼스, 마르틴 하이데거, 장 폴 사르트르, 카뮈 등이 이런 니체의 테제를 받아들여 철학적 사유를 하게 된 것이죠. 이 설명을 읽고 보니, 니체가 “신은 죽었다”는 말로 표현하고자 한 바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이 책은 정말 철학이라는 거대한 집에 들어가는 현관 역할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철학자의 사상의 진수를 매우 담백하게 보여줍니다. 그러나 짧은 지면에 위대한 철학자들의 사상을 요약하다보니, 이해하기 쉽지 않은 부분들도 있습니다. 나는 나름 꽤 많은 철학책을 읽었다고 자부하는데도 말입니다. 어쨌든 이 책만 한 철학 길잡이는 없겠다 싶습니다. 그리고 이 책은 16명의 철학자들의 주요 서적을 직접 읽어보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는, 철학의 세계로 독자를 유혹하는 초청장입니다. |
|
철학이라는 것이 쉽다고 쉽고, 어렵다면 어렵다는 건데 저도 그렇듯
누구나 어렵게 느끼는 쪽이 더 많은 거 같져?^^
누구나 추구하는 가치관이 있고 그것이 그 사람만의 어쩌면 철학이 될 수가 있을테니
쉬운 거 같으면서도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각들을 모아둔 책을 보다 보면
좀 머리가 지끈거리는 느낌.... 여러번 곱씹어서 읽어봐도 모르겠고 당최 뭔소린지....^^;;
저도 인문학에 관심이 많고 좋아하는지라 통찰력 있는 르네상스적인 인간들이
낸 책들도 많이 보고 고전도 봐왔지만 이렇게 정식으로 "철학" 이라는 것을
접근할 기회가 많지도 않았고 손이 잘 가지도 않더라구요.
그런데 이번에 나온 이 책은 <철학의 고전> 이라는 제목이지만
부제같은 말이 "철학 고전을 이해하기 위한 길잡이" 라고 붙으면서
동시에 청소년 권장도서 라고 하기에 어른이 읽기에도 좀 쉽겠다 싶어 용기를 내봤지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은 있으나 어렵다는 선입견 때문에 쉽게 발을 들이지 못하는 걸 작가도 알고
어쨌거나 독자들이 흥미롭게 느낄 수 있을만한 기회는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편안한 분위기에서 흥미롭고 새로운 것들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해 주려고 노력했던 거 같아요.
많은 철학자들과 작품들이 있지만 이 책에서는 주로 독자들에게 영향력을 미쳤던
작품들을 주로 다뤘다고 해요. 일단 뭐든 접해보는 것이 필요하니까 그런 용기로
저처럼 다른 분들도 이 책을 만나보길 바래봅니다.^^
플라톤, 아우구스티누스, 마키아벨리, 몽테뉴, 데카르트, 파스칼, 로크
칸트, 쇼펜하우어, 키르케고르, 마르크스, 니체, 비트겐슈타인, 하이데거, 포퍼, 롤스 !!!
모두 16명이네요. 이들과 작품을 간단히 짚어주면서 어쩌면 겉핥기 식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들의 철학 방향들과 우리가 어떻게 이 사람들과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고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나름 흥미롭게 얘기하려고 노력한 흔적은 보입니다.
물론 이론적인 설명에서는 당최 몇번을 돌려감기 식으로 읽어봐도 모르겠는 곳도 있긴 하지만
참으로 신기한게 이해 안되는 구절이 있으면 한번 읽는 것 보다는 두번이 이해가 되고,
두번 읽은 것 보다는 세 번 읽으면 더 잘 이해가 되더라구요.
이 책도 그런 약간의 끈기(^^;;)와 오기를 가지고 읽어볼 필요가 있는,
정복하고픈 맘이 솟구치게 하는 책입니다....ㅋㅋㅋ
철학자들이 말하는 것중에 제게 인상적인 내용들 간단히 짚어볼까 해요.^^
그래야 뭔가 정리되는 듯한 느낌적 느낌....ㅋㅋㅋ
# 철학자들과 그들의 이야기 #
플라톤이 그리고자 했던 <국가론>은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경계가 분명하게 설정된 사회였어요.
지배자의 권좌가 전통이 아니라 확고한 원리들에 의해 결정되는 사회를 꿈꾸면서
정치적 의견이나 혁명은 불의의 징표로 여겼답니다.
정의, 지혜, 용감함, 신중함을 플라톤은 네가지 덕목으로 뽑았어요.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은 완전한 타자이며, 신 앞에서 인간의 이성은 겸손해야만 한다고 말해요.
교만, 환락, 지식욕 이 세가지는 믿음을 방해하는 세 가지 덕이라고!
개종의 체험에서 <고백록> 의 집필이 완료되기까지 10년 이상의 세월동안
삶뿐만 아니라 사상에도 중요한 발전이 이루어졌는데요.
고전교육을 받은 수사학자에서 신학자로,
고대 문화의 애호자에서 세속적 교육에 반대하는 열광자로,
성공한 지식인에서 교회에 봉사하는 지식인으로 변모했답니다.
악당책이라는 평판을 얻고 있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군주론은 정치를 어떻게 효과적인 기술로 만들 수 있을까?
자신의 권력을 성공적이고 지속적으로 유지하려면 지배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에 대한 물음에 대해서 생각했던 책이예요.
마키아벨리의 정치세계는 신이 없어도 되는 세계였고
최초의 근대적 사상가로서 종교에 기초하지 않는 정치철학을 펴냈던 인물이랍니다.
도덕 가치로 군주의 정치적 행위를 통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으며
군주는 음모와 술수가 판치는 권력의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라며
군주에 대한 환상들을 접어두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지요.
그래도 이 책이 기여한 것은 "국가의 복지" 가 존재한다는 인식을 심어준 것이었습니다.
몽테뉴는 철학의 순수주의자들을 화나게 한 장본인으로 그가 쓴 <에세> 에서는
철학 전문가의 논문이 아니라, 어떤 철학가가 자신의 생각을 다듬어놓은 메모처럼 느껴져요.
몽테뉴를 읽는다는 것은 그의 길을 읽으면서
그의 사유과정을 함께 따라간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답니다.
데카르트는 <방법서설> 에서 세계와 인간의 인식을 위한 새로운 통로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요. 몽테뉴의 영향을 받은 데카르트는
"모든 개개인이 자신의 이성을 올바르게 인도하기 위해 따라야만 할 방법을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내 이성을 인도하기 위해 나 자신이 어떻게 했는가를
보여주려고 했던 것이다." 라고 말하기도 했답니다.
몽테뉴의 전통에 따라 정말 소설처럼 읽힐 수 있는 철학 작품을 쓰고자 하는 것이
데카르트의 목적이어서 교과서가 아니라 에세이나 철학적 자서전의 혼합물로 보이기도 하지요.
데카르트가 정리해둔 네 가지 방법이라면 이렇습니다.
1.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의 법칙들과 종교의 법칙들을 준수하라.
2. 한번 발을 들여놓은 길은 흔들림없이 끈질기게 추구하라.
3. 언제나 운명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가져라.
4. 각자는 자기에게 알맞은 삶의 형태를 발견하기 위해 노력하라.
저는 개인적으로 이 네가지 글귀가 참 공감이 많이 갔던거 같아요.
자신이 주체가 되어서 흔들림없고 견실하게 삶을 대하고 현명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귀에 대고 누군가 누누히 말해주면 바른 길로 갈 수 있을거 같은 느낌!!!
결국 데카르는 이런 말을 남기죠.
모든것을 의심할 수 있지만 의심하는 행위자체, 즉 사유 자체는 의심할 수 없으니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캬~~~~ 멋집니다!!!
이 외에도 파스칼의 <팡세>, 존 로크의 <통치에 관한 두 논문>,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마르크스의 <자본론>,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까지 할 얘기는 많지만
이렇게 책 속의 철학자들의 생각을 제가 대변한 까닭은
제가 발췌한 글들을 읽고 어렵지만 나도 철학 한번 도전해보자는 의지를
불러주고 싶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이 생각을 한다는 게 한없이 어렵게 생각하고 어렵기만 하고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말도 있듯이 철학, 뭐 그까짓거 한번 봐보지.... 라는 생각으로
도전의식 한번 꺼내 보세요!!!
그렇게 많이 들었던 철학자들과 그의 책들을 귀동냥으로 듣고 인생을 끝내기엔
왠지 너무나 허무할거 같은 생각에 저 역시 이번에 도전해봤고,
물론 백프로 이해하지 못하고 넘기기도 했지만 이렇게 발을 들여놓은 것이
나중에 이 중에 인상적이었던 데카르트나 마르크스의 책을 제가 언젠가는
서점가서 꺼내보게 될 날이 올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
|
철학자들, 지적 유희를 즐기는 사람들 같다. 그래서일까? 그들이 이야기하는 단어는 어느 순간 평범한 일상의 언어적 특성을 탈피하면서 보다 고차원적인 의미를 지닌 어휘가 된다. The way란 말이 어느 순간 방법이 되는 그런 상황이 전개되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중국어인 道가 이젠 길을 의미하는 단어로서의 흔적을 거의 찾기 힘들 게 됐다. 동서양의 공통점을 찾는 좋은 사례이긴 하겠지만 사실 공부 좀 덜 한 이들에게 이런 단어의 변화는 고역일 뿐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단순히 글자 하나의 폭넓어진 상징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튼 철학자들이 사용하는 단어와 문장, 그리고 그들의 사유를 의미하는 책들은 어렵기 그지 없게 됐다. |
|
내가 가장 어려워하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철학이 아닐까 생각한다. 철학은 내가 흔들릴때 나의 뿌리를 다져주었고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게 해 준 내게는 고마운 존재이다. 그 이후로 조금씩 내가 어려울지라도 다가서려고 노력했고 지금도 역시 내게 철학은 내것으로 흡수하고 싶고 평생 나와 함께 해주었으면 하는 또 어찌생각해보면 내 사유를 향상 시키고 싶은 지적도전이기도 하다. 철학의 고전은 이런 내 마음을 알기하도 하는 듯 내가 너무 이해하고 싶고 보고 싶은 책들에 대해 조금 더 편안하게 내딛게 해주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철학하면 떠올를만한 명서들을 이 책을 통해 만나보았다는 것으로 나는 마음의 충만감을 느끼고 또 한걸음 철학과 함께 시간을 채웠다는 것으로 기쁨을 느낀다.
저자는 쉬운 해결서를 통해 다양한 철학고전을 우선 이해하고 접근하는 것도 좋은 방도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사실 이 글을 읽고 철학에 대해 다가가는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이 책의 목차를 살펴보면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론, 이성의 내면으로의 여행 | 르네 데카르트 방법사설, 삶의 형식의 총보 | 쇠렌 키르케코르 이것이냐 저것이냐, 반기독교인의 성서 |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 모두가 알만한 정말 유명한 책들이 담겨져 있고 그 내용 또한 내게는 배움에 집중할수 있도록 하는 힘을 느껴졌고 이 책을 통해 그동안 몰랐던 기초와 기본에 대해서 알게 된 것들이 너무나 많다. 플라톤의 경우 정의, 지혜, 용감함과 신중함은 플라톤의 네가지 덕복이라는 점이 기억이 남는다.
삶의 형식의 총보 쇠렌 키르케고르 이것이냐 저것이냐는 언젠가 내가 꼭 한번은 읽고 싶은 책이었다. 제목 그대로에서 느껴지는 내게 필요한 부분들을 채워주고 질서를 찾아줄수 있는 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진리에 대해서, 윤리주의자와 같이 선택해 자기 동일성을 창조하는것과 심미적 선택에 대해 생각해 볼수 있었고 선택의 의미에 대해 돌아보았다. 이 책은 그들이 왜 그런 사유를 했는지에 대해 이해할수 있는 내용들이 담겨져 있어 더욱 좋았던 것 같고 그저 그것을 알고나니 그들이 가지고 있는 철학의 세계들이 좀 더 이해가 갔다. 세상에는 좋은 책들이 많지만 이 책에 담겨져 있는 책들은 내가 살아가면서 꼭 한번 읽고 싶은 책이었고 철학의 고전에 가까이 다가가게 해준 책이었기에 내게는 의미있는 책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