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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카미유 클로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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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카미유 클로델을 만나기 이전까지 내가 카미유 클로델에 대하여 얕고 비루한 지식으로 밖에 알지 못하고 평가했던 과오에 대하여 얼마나 후회스러웠는지 모른다.당시 천재적인 예술적 감각과 여성이라는 성별, 외모에 치중된 시기와 질투로 인한 고통은 그녀를 평생 따라다녔고, 이는 사후에도 편견을 갖고 있는 이들로 인해 끝나지 않았으리라는 추측을 하니 가슴 한 켠 깊은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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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카미유 클로델을 만나기 이전까지 내가 카미유 클로델에 대하여 얕고 비루한 지식으로 밖에 알지 못하고 평가했던 과오에 대하여 얼마나 후회스러웠는지 모른다.

당시 천재적인 예술적 감각과 여성이라는 성별, 외모에 치중된 시기와 질투로 인한 고통은 그녀를 평생 따라다녔고, 이는 사후에도 편견을 갖고 있는 이들로 인해 끝나지 않았으리라는 추측을 하니 가슴 한 켠 깊은 곳에서부터 송구스러운 마음과 묵직한 슬픔이 올라오는듯했다.

특히나 죽기 전까지 정신병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끔찍한 상황과 어머니의 사랑은 커녕 관심조차 받지 못하며, 예술가들과의 교류가 있던 베르트 모리조와 달리 고립되어 스스로의 예술만을 탐닉하며 이를 섬세하고 구체적인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키기만을 탐구하던 그녀에게 세상은 너무나 가혹하고 잔혹했다.

비극 클리셰의 모든 비극을 때려 넣어 오히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이야기가 되어버린 그녀의 삶.

그 어떤 이가 찾아오는 이 없이 30여 년의 정신병원 생활 속에서도 자살시도조차 없이 기다림과 그리움만으로 버틸 수가 있을까.

떨어지는 외모와 스물네살이라는 나이 차이, 조강지처까지 있는 로댕은 책 한 권을 다 읽기도 전에 엄청난 분노를 유발했으며 작품을 파괴하며 궁핍 속에서 조각과 로댕만을 바라보며 살아간 안쓰러운 생애는 모든 독자를 침잠시키기에 충분했다.

정신병원에서조차 낡은 옷을 뜯어낸 천 조각으로 조카의 이불을 만들어 보내는 따스한 성정의 인간 카미유 클로델을 비참함과 고독의 극한으로 밀어낸 어머니와 동생은 어떠한가.

부쳐지지 못한 수많은 편지들에서 안타까움이 극에 달했고 충분히 카미유를 지지해 줄 수 있을 동생 폴 클로델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동생에 대한 원망조차 없었던 카미유.

아버지가 돌아가시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로댕을 만나지 않았다면?, 이루어지지 못할 가정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른다.

최악의 상황으로 인하여 그녀의 부서진 작품들과 입원으로 인하여 더 이상 진행되지 못한 작품 활동들이 안타깝기만 하다.

남겨진 기록이 부족해 저자가 카미유의 심경을 추측하는 독특한 형식이 오히려 매력적이었고, 카미유의 일생과 더불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곳곳에서 벨 에포크의 파리 역사를 그려낸 부분도 흥미로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카미유 클로델에게 푹 빠져있다 나왔다.

당신이 때로 지리멸렬한 삶 속에서 지쳤다는 생각이 든다면, 카미유 클로델을 통하여 일상의 소중함과 살아갈 희망과 힘을 얻길 바란다.



l*****9 2022.07.21.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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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총량이 아무리 무겁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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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유 클로델은 로댕의 제자이자 연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카미유를 전부 설명할 수 없다. 여성의 역할이 가정에서의 헌신이 최고 미덕이었던 19세기에 조각가로 인정받기 위해 그녀가 얼마나 분투했을지는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여성이라는 사실만이 유일한 아킬레스건이었던 프랑스 조각가, 카미유 클로델. 예술가들의 집결지인 파리에서 카미유가 로댕을 만나는 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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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유 클로델은 로댕의 제자이자 연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카미유를 전부 설명할 수 없다. 여성의 역할이 가정에서의 헌신이 최고 미덕이었던 19세기에 조각가로 인정받기 위해 그녀가 얼마나 분투했을지는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여성이라는 사실만이 유일한 아킬레스건이었던 프랑스 조각가, 카미유 클로델. 예술가들의 집결지인 파리에서 카미유가 로댕을 만나는 건 이미 정해진 운명이었을 것이다. 나이 어린 젊은 여성이라는 세간의 시선 앞에 당당히 조각가로서 인정받고자 했던 카미유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고 이미 조각가로서 명성을 가진 로댕과의 대화에서도 물러섬 없이 당당했다. 카미유의 빛나는 눈을, 조각을 향한 열정을 그녀의 작품 속 분출하는 에너지를 제대로 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카미유에게 빠져들었을 것이다. 로댕도 예외는 아니었다.

카미유와 로댕은 수많은 작품을 함께 만들었다. 완성한 작품은 로댕의 이름으로만 남겨졌기 때문에 어디부터 어디까지 카미유가 작업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구분이 무의미할 만큼 둘은 한 몸이 되어 조각상을 완성했다. 카미유는 로댕을 존경했지만, 로댕의 아류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적지 않은 로댕의 작품을 작업하면서도 각종 살롱에 자신의 작품을 출품한 이유다. 카미유의 조각상은 로댕의 조각상보다 부드럽고 유연했다. 또한 그녀의 작품에는 “금지된 꿈으로 가득 찬 내면을 최초로 표현한 조각가”라고 칭할 정도로 내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녀만의 에너지가 있었다.

로댕은 카미유의 영혼을 탐미하고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고자 했지만, 카미유를 아내로 맞이하겠다는 약속도 앞으로 어떤 여성도 모델로 세우지 않겠다는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로댕은 서서히 멀어졌고 카미유는 영혼에 상처를 입었다. 카미유가 임신했었다는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그녀가 잠시 떠나 있었던 것과 사진을 통해 추측할 뿐이다. 연인의 배반은 카미유가 성숙한 사람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영혼의 숲길을 마구 헤집어 놓았다.

로댕과의 이별 후 둘을 둘러싼 추문에 로댕은 침묵했고 카미유는 직접 맞섰다. 늙은 여인이 나이 든 남자를 끌고 가고 그 뒤로 젊은 여자가 무릎을 꿇고 매달리는 모습이 담긴 조각상 <성숙의 시대>는 로댕과 카미유의 관계를 설명하는 작품이었다. 카미유가 증언의 방식으로 선택한 조각은 결국 그녀를 더 큰 고통 속으로 끌고 갔지만 <성숙의 시대>가 아니었다면 세상이 그녀를 기억할 수 있었을까.

‘예술이 자기 자신의 비밀에 맞설 때 가장 활기차고 위험해질 것임을 카미유는 알고 있었다. <성숙의 시대>는 바로 그 모든 것을 말하고 있었다. 욕망과 질투, 상실과 배신 사이에서 그녀의 연약한 삶이 찢기고 있음을 숨김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사랑과 운명에 대해 여러 겹의 의미와 질문을 던지는 조각상은 보이는 그대로의 그녀 인생을 대변했다. ‘이 작품은 로댕 당신이 나를 기억하도록 나중까지 남겨질 가장 확실한 것이 되겠죠.’ 그녀는 이 작품이 삶에서도 사랑에서도 기념비적인 존재가 되리라고 생각했다. (p.66)’

카미유는 로댕과의 관계가 끝난 후 서서히 영혼의 빛을 잃어 갔다. 그녀가 조각으로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닿지 못했고 그녀의 어머니에게까지 외면받았다. 어머니는 카미유로 인해 작은딸에게 해가 미칠까 염려했고 카미유를 아꼈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녀를 정신병원에 수감시켰다. 그녀가 쓴 편지는 병원 밖을 나서지 못했다.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카미유는 점점 세상으로부터 멀어졌다.

카미유는 병원에서 절대로 오지 않을 이들을 기다렸다. 로댕을 기다렸고 동생 폴 클로델을 기다렸고 어머니를 그리워했다. ‘너에게 닥친 모든 불행은 어쩌다 보니 일어난 일일 뿐이라고. 그러니 너의 책임이 아니라고….’ 가만히 등을 쓸어 줄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을 기다렸지만, 어머니는 단 한 번도 찾지 않았다.카미유가 오랜 시간 기다렸던 어머니가 한 번이라도 그녀를 안아 줬다면 그렇게 오랫동안 누군가를 미워하고 의심하면서 세상과 멀어지지 않았을 텐데. 어떤 슬픔이 찾아오더라도 “가슴을 맞대고 믿어줄” 이가 있었다면 그녀의 삶과 사랑, 예술은 멈추지 않고 어떤 형태로든 이어지지 않았을까.

시인의 눈으로 해석한 카미유 클로델의 삶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드라마 같다. 한 문장 한 문장이 아리고 아파서 그녀가 느낀 고통의 감정이 내게도 밀려오는 듯하다. 카미유 클로델의 생애를 읽으면서 프리다 칼로와 나혜석이 생각난 건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자신에게 고통을 가져다준 교통사고보다 남편을 만나게 된 게 더 큰 고통이었다고 말했던 프리다 칼로, ‘여자도 사람이외다’를 외쳤지만 가족과 철저히 고립된 채 행려병자로 생을 마감해야 했던 나혜석, 빈 껍데기만 남은 채 영혼은 이미 꺼져버린 카미유 클로델. 정신병원에서 사망해 지금은 어디에 묻혔는지 기록으로도 남아 있지 않지만, 긴 세월이 흘러 그녀의 생애와 작품을 다시 조명하게 되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시인은 ‘어떤 것이든 진실하게 창조된 것은 그것을 만든 사람뿐 아니라 그것을 감상하는 사람의 마음에도 공통된 감정 상태를 만들어 낸다’고 했다. 첫 번째 슬픔을 나눈 사이. 카미유 클로델의 첫 번째 슬픔을 시인의 눈을 통해 만났고 나에게도 그녀가 느꼈을 깊은 슬픔과 고통이 새겨졌다. <성숙의 시대>, <애원하는 여인>보다 벽난로에 지친 몸을 기대고 앉아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여인이 조각된 <벽난로가에서의 꿈>이 더 아프게 다가오는 건 그녀의 지친 내면과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어머니의 사랑을 그리워하는 그녀의 내면 아이가 느껴져서 일 것이다. 경험하지 못한 감정을 그리워하는 건 어떤 의미일까. 생의 고독을 새긴 조각가, 카미유 클로델. 그녀의 슬픔을 나눠 가지는 이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슬픔의 총량이 아무리 무거울 지라도 그것을 나눠가진 이들이 많아지면 슬픔의 무게는 가벼워질 테니까.
d****n 2022.09.2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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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의 것도 아닌 카미유, 지독히도 외로웠던 한 사람의 생의 노래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카미유, 지독히도 외로웠던 한 사람의 생의 노래" 내용보기
카미유 클로델이란 이름은 항상 그 옆에 꼬리표처럼 붙어 있는 ‘로댕'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했던, 근현대 조각미술의 1인자의 이름 옆에 붙어 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었던 한 명의 예술가였다. 적어도 이운진 시인의 말을 빌려 읽어내려간 그녀의 생의 시간을 읽어보기 전에는. 몇년 전 페미니스트 예술가에 대한 세간의 높아진 관심에 여성 예술가들에게 조명이 쏟아질 때도 간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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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유 클로델이란 이름은 항상 그 옆에 꼬리표처럼 붙어 있는 ‘로댕'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했던, 근현대 조각미술의 1인자의 이름 옆에 붙어 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었던 한 명의 예술가였다. 적어도 이운진 시인의 말을 빌려 읽어내려간 그녀의 생의 시간을 읽어보기 전에는.

몇년 전 페미니스트 예술가에 대한 세간의 높아진 관심에 여성 예술가들에게 조명이 쏟아질 때도 간혹 언급되는 카미유의 이름은 단지 한 위대한 조각가의 여성 제자로서 멋진 작품을 남겼으나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한 비운의 삶을 산 한 사람으로, 카미유 클로델이라는 이름만이라도 기억되는 ‘영광'아닌 영광을 누리는 한 여성 예술가로 여겼었다.

세기말 어지러운 분위기와는 정 반대의 찬란하고 화려했던 예술사조의 시대 벨 에포크.

시인의 눈과 말을 통해 함께 걷는 빌뇌브에서 파리까지의 여정. 그리고 카미유 클로델이라는 한 사람의 마음 속에서 뿜어 나오는 열정과 사랑, 동시에 그 속에 커다란 구멍으로 존재했던 결핍과 외로움. 그 모든 것들이 글 한 자 한 자에 담겨 고스란히 마음으로 전달 되는 순간, 커다란 환희와 가슴을 저릿하게 쥐어짜는 슬픔의 감정이 동시에 큰 바도처럼 밀려왔다.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의 결핍은 있었으나 그를 상쇄할 만큼의 아버지의 사랑이 빈틈을 채워주고 있었고, 스승으로부터 그 능력을 인정 받아 당시 예술가들의 성지 파리까지 진출. 그곳에서 당대 최고의 조각가라 인정받던 로댕의 사랑을 받아 함꼐 예술적 동반자로의 새로운 출발까지. 카미유의 손에는 신으로부터의 엄청난 축복과 성공이 쥐어진 듯 했다. 하지만 그의 동생 폴 클로델의 말에서 처럼 신의 내린 축복 같았던 그녀의 능력은 신이 내린 파멸로 그녀를 이끌고 갔다. 장미가 될줄 알았으나 가시가 되어버린 카미유는 온전히 사랑했다고 믿은 로댕에게서 반쪽짜리 사랑이였음을 알게 된 후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으며, 그 누구의 제자 혹은 남성 예술과와는 다른 여성으로서 평가받는 것이 아닌 카미유 자신, 한 명의 예술가로서 평가받기를 원했으나 세상은 그녀를 외면했다. 결국 그녀는 정신병원에 감금된 채 살아있는 죽음의 삶을 살며 세상과 단절되어 남은 생을 그 누구보다 지독한 외로움과 싸우며 보내게 된다. 그 어떤 드라마나 영화의 인물보다도 더 극적으로 찬란하게 빛났다가 지독하게 아프고 괴로운 끝을 맞이하게 된 인물. 그 사람이 바로 카미유였다.

세상은 그녀를 뛰어난 재능을 가졌으나 병적인 집착과 광증으로 스스로 나락으로 떨어진 인물이라 비하하지만, 그 누구보다 자신의 사랑과 예술에 대해 열정적이었고, 좌절했고, 결국 자신의 손으로 직접 자녀와 같은 작품을 부숴야 했던, 그리고 그 작품을 싣고 센 강을 걸어가는 그녀의 모습을 그려본다면, 마냥 ‘비운의 여자'라는 단순한 단어로 쉽게 말할 수 있을까.

길 위의 카페에선 예술가들이 삼삼오오 모여 열띤 토론을 하고, 밤 늦게까지 북적이던 화려했던 시기와는 너무나도 대조적이었던, 그래서 더더욱 도시로부터,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그리고 자신으로부터 점차적으로 고립된 그녀의 삶이 더욱 더 선명하고 아련하게 느껴진다.

자주 화려한 파리 속의 외로운 그녀의 방이, 그리고 그리움을 그리움으로 달래며 살았던 그녀, 카미유가 자주 생각날 것 같다.

YES마니아 : 로얄 d*******6 2022.07.2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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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카미유 클로델 - 스스로를 고독에 가둔 조각가...
"여기, 카미유 클로델 - 스스로를 고독에 가둔 조각가..." 내용보기
누구의 삶이든 다를 바 없겠지만, 카미유 클로델의 삶에는 여성으로서의 한계, 예술가의 소명과 욕망, 그리고 사랑과 실패, 병과 소외, 급변하는 시대의 풍경이 큰 물살로 어우러져 소용돌이치고 있다.   카미유 클로델에 대한 지독한 감정 이입이 도입부부터 느껴지는 <여기, 카미유 클로델>. 미술사에서 카미유가 차지하는 자리가 얼마만큼인지 모르지만 그녀가 로댕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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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삶이든 다를 바 없겠지만, 카미유 클로델의 삶에는 여성으로서의 한계, 예술가의 소명과 욕망, 그리고 사랑과 실패, 병과 소외, 급변하는 시대의 풍경이 큰 물살로 어우러져 소용돌이치고 있다.

 

카미유 클로델에 대한 지독한 감정 이입이 도입부부터 느껴지는 <여기, 카미유 클로델>.

미술사에서 카미유가 차지하는 자리가 얼마만큼인지 모르지만 그녀가 로댕에게 끼친 영향력은 알아챌 수 있었다.

많은 여성들이 미술계에서 자취도 없이 사라졌기에 어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카미유 클로델에 대한 이 책에서 직접적인 표현보다는 간접적인 표현 때문에 로댕에 대한 생각들이 많이 바뀔 거라는 생각이 든다.

 

카미유는 자신의 엄마에게 애정보다는 애증을 얻었다.

어릴 때부터 진흙을 빗으며 자신의 재능을 표현했던 카미유는 가족들을 파리로 이주시켰다.

이것마저도 그녀의 엄마에게는 카미유를 미워할 충분한 이유를 더 가져다주었다.

 

채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자신의 욕망을 정확하게 깨닫는 일은 어쩌면 불운이며 어쩌면 행운이고 혹은 둘 다인지도 모른다.

파리에서 그녀는 그녀 자신이 되고 싶었다.

 

로댕을 만나기 전부터 자신의 작품이 로댕과 비슷하다는 말을 듣은 카미유에게 로댕은 어떤 식으로 각인되었을까?

아버지 나이의 로댕과 열렬한 사랑을 한 카미유.

그것은 정말 사랑이었을까?

사랑으로 포장한 종속의 관계였을까?

로댕은 카미유의 재능과 열정을 모두 가져갔다.

허울뿐인 약속은 종이 쪼가리에만 남았을 뿐.

어린 영혼을 갉아먹었던 건 아닐까?

 


 

당신이 이것을 보면서 느끼는 분노보다 이 형상을 빚으면서 느꼈던 내 고통이 훨씬 더 크니까요. 당신이 보고도 보지 못하는 것, 즉 당신의 맹세와 약속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네요. 이 피투성이 돌 어딘가에서...

 

 

로댕과의 관계는 소문으로 번져 카미유에게는 상처로만 남았다.

가족들도 외면했고, 가십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입방아는 그녀 편이 아니었다.

철저하게 외톨이로 남은 카미유는 돌에 자신을 새겼다.

하고 싶은 말, 자신을 해명하는 말, 로댕에 대한 사랑과 울분과 분노와 애절함까지 모두 돌에 새겼다.

 

가능성에 한계를 긋는 시대의 관습에도 불구하고, 온 세상이 다 막아서더라도, 인생이 전혀 우호적이지 않을 때조차도 포기할 수 없는 것. 그녀에게 그것은 조각이라는 사실만은 바꿀 수 없었다.

 

 

19살 처음 파리에 도착한 그녀는 매년 전시를 가졌다.

로댕을 존경했지만 로댕과 같다는 말은 듣기 싫었으니까.

그녀는 사람들이 자신과 로댕을 구별하는 법을 찾아냈다.

하지만 여자이기에 그녀를 인정하지 못한 사회적 환경이 그녀에게는 더 없는 모독이었다.

온전한 자기 자신의 작품들이 부당한 처사를 받는 것도 그녀에게는 모욕이었다.

틀린 것을 바로잡는 것이 그 시대에는 틀린 것이었기에...

 

"이것들은 로댕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들이다."

"이것은 로댕의 것과는 전혀 다르다."

 

로댕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것이 카미유의 바람이었지만, 세상은 늘 로댕의 그늘 아래 카미유를 놓아두었다.

그 모든 것들이 카미유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분노하고, 절망하고, 절규하며 그녀는 스스로를 고독에 가두었다.

 

가난과 자격지심은 그녀를 파괴로 몰아갔다.

그녀를 세상으로부터 고립시킨 사랑은 그녀 스스로 자신의 작품을 파괴하게 만들었다.

카미유 혼자 얼마나 외로웠을까?

 

예술적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 무너져가는 과정을 보는 것이 아프다.

카미유의 입장에서 카미유를 그려낸 작가의 글들이 그 아픔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그래서 관심 없었던 내가 카미유 클로델이라는 이름을 로댕의 연인으로 밖에 생각하지 못한 나를 그 시대 카미유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과 동급으로 보이게 했다.

 

나는 <여기, 카미유 클로델>에서 카미유를 처음 알았다.

로댕의 뮤즈가 아니라, 예술가 카미유 클로델을 처음 만났다.

 

가난과 무지의 시대가

한쪽의 영혼에 빨대를 꽂아 쭉쭉 빨아먹은 사랑이

여자라는 꼬리표에 달린 세상의 편견이

이미 명성을 얻은 남자의 그늘에 가려진 외로운 예술혼이

철저하게 파괴되는 과정을 보았다.

 

표지에 담긴 결연해 보이면서도 어딘지 어두운 표정의 카미유 클로델의 모습은

그녀가 살았던 세상의 모든 짐이 담긴 표정이다.

완고했던 예술가의 불행은 어쩜 예견된 것인지도 모른다..

 

21세기에 그녀가 환생한다면 가장 자기다운 모습을 살아갈 수 있을 텐데...

시대가 그녀를 묻어 버린 거 같다.

그녀의 작품을 직접 보면서 그 손길과 열정을 느껴보고 싶다.

이 책이 그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대변해 주는 것이기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

 

 

 

w******2 2022.07.2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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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카미유 클로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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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카미유 클로델』-생의 고독을 새긴 조각가이운진 지음 / #아트북스..??영혼이 자유롭게 숨 쉬어도 어떤 해악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두려워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믿었다. 그녀는 이미 알았는지 모른다. 자신을 다 소진해서 예술가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진정한 예술을 하는 일과 진정한 일생을 사는 일이 하나이고 같은 것이라는 걸. 그녀의 작품이 그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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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카미유 클로델』
-생의 고독을 새긴 조각가
이운진 지음 / #아트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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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이 자유롭게 숨 쉬어도 어떤 해악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두려워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믿었다. 그녀는 이미 알았는지 모른다. 자신을 다 소진해서 예술가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진정한 예술을 하는 일과 진정한 일생을 사는 일이 하나이고 같은 것이라는 걸. 그녀의 작품이 그녀 삶의 이야기가 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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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유 클로델을 떠올릴 때면 으레 오귀스트 로댕이 함께 뒤따른다. 혹은 로댕의 커다란 이름 앞에 클로델의 작은 존재감이 드러나거나. 이 책에서도 그렇다. '비운'과 '천재'라는 단어를 걷어내고 그녀를 바라볼 순 있겠으나 로댕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것을 다른 이름으로 바꿔 말하자면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게 전부라고는 할 수 없다.

요람에서부터 외로웠던 클로델은 자연속에서 진흙을 만지며 자랐다. 온가족이 파리로 거처를 옮긴 뒤 스승 알프레드 부셰가 이탈리아로 떠나게 되자 제자들을 로댕에게 맡겼는데 둘은 그때 처음 마주하게 된다. 마흔두 살의 로댕에게 열여덟의 클로델은 그야말로 "오, 나의 천사, 나의 열정이여."이었다. 혼인신고는 안했지만 로댕에게는 이미 헌신하는 아내와 아들이 있었음에도 클로델에게 끊임없이 구애를 했다. 이성적인 판단보다 그녀가 더 가치있게 여긴 것은 예술적인 열망과 공감이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녀의 본성"과 닮은 로댕의 감수성과 감각때문이었을까, 그녀도 차츰 로댕에게로 마음이 기운다.

??우리는 우리가 되고 싶은 모습을 지닌 사람에게 더 쉽게, 더 많이 마음이 끌리는 법이므로. 한 남자가 돌을 다듬는 방식 때문에 한 여자는 사랑을 시작할 수도 있었다.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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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함께 작업하기 시작하면서 클로델은 단순한 제자와 조수의 역할에 머물지 않는다. 실제로 로댕의 작품에서 클로델의 손이 어디까지 영향을 미쳤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미미하지는 않다고 예측할 뿐이다. 더욱이 그들이 만지는 돌, 석고, 청동보다 단단한 사랑으로 빚어진 관계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 무렵엔 식어가는 로댕에 비해 불꽃처럼 피어나는 클로델을 볼 수 있다.

??만약 누군가를 알려고 하면 그가 사랑하는 방식뿐 아니라 괴로워하는 방식까지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인생에 대해, 예술에 대해, 세상에 대해 그가 견뎌낸 혹독하고, 아름답고, 미숙한 모든 것을...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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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동안 반복되는 결별과 재회, 누군가는 회피하고 누군가는 애원하고, 증오와 연민이 한데 뒤섞인 이들의 관계속에서도 클로델은 쉬지않고 작품을 탄생시켰고 그만큼 빠르게 무너졌다. 파국이자 붕괴였고 곧 체념에 이르렀지만 그녀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든건 당시의 여성에게 갖는 편견과 차별이었다. 특히 그녀의 작품성과 별개로 "로댕의 뮤즈" 또는 "외교관이자 시인"으로서 이름을 드높이던 남동생 폴 클로델의 꼬리표였다. 그래서 그녀는 살면서 이 말을 제일 자주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들은 로댕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들이다."

돈이 많이 드는 조각이건만 재정상태는 최악이었고 가난이 덮쳤으며 클로델이 받는 타격은 어마어마했다. "그녀의 방식대로" 한 인간이 으스러질 때도 파리는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벨 에포크. 1913년 파리에서 마흔아홉의 클로델은 동생의 의해 정신병원에 봉인된다. 코코 샤넬이 최초로 인공향수를 만들고 헤밍웨이의 아내가 기차역에서 그의 단편 소설 모음집 원고가 든 여행 가방을 잃어버렸던 때, 모네와 릴케가 죽고 미국에 로댕박물관이 개관하고 전쟁도 일어났던 30년동안 그녀는 "파리로 돌아오지 못했다." 또, 다시는 흙을 만지지도 않았다. 오직 기다림만 있었는데 그건 엄마였을까, 죽음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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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생각을 해보았다. 로댕을 만나지 않았다면, 재능이 없었다면, 엄마에게 사랑받았다면... 어떤 가정을 세워본들 그것이 클로델의 존재를 온전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멀찍이 서서 이 얼마나 안타까운 삶인가 겨우 말할 수 있겠지만 그녀의 작품 앞에서는 어울리지 않다. 어떤 삶이었건 그녀가 새긴 조각은 그녀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아직은 이것만을 기억하고 싶다. 읽는 내내 아물지 않던 그녀의 고통이 시인의 아름다운 문장을 통해 고스란히 전달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고... 그녀는 삶을 포기하지 않았음을 이제는 알기 때문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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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카미유클로델
d*******a 2022.07.2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