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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에 나온 책이고, 내가 읽은 책 중 2022년 최고의 책이었다. 그런데 기록을 이제서야 하는 건... 막상 이런 대단한 책을 읽고 나서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막막해서지. 그래도 그냥 넘어갈 수 없는지라 거의 1년이 지나서야 몇 자 남기려 한다.
저자인 미셸 쿠오는 타이완계 이민자 가정에서 자란 미국인. 공부 잘했다. 하버드대에서 사회학과 젠더학을 공부한 뒤 2004년, 터치포어메리카 프로그램에 지원해 아칸소주 델타로 간다. 퇴학생들을 모아 놓은 대안학교에서 2년간 영어를 가르쳤다. 당시 그녀는 사명에 불타 있었다. 세상을 바꿔야겠다는 사명. 책, 글, 교육의 힘을 믿었다. 델타는 흑인 해방운동이 거셌던 곳. 그러나 지금도 델타에 사는 흑인의 처지는 위태롭다. 흑백차별이 문제가 아니다. 그냥 일자리가 없다. 산업 기반이 없다.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미셸은 학생들에게 너희의 선조가 얼마나 멋졌는지, 자유와 평등을 위해 노력했는지를 가르치려 한다. 학생들은 관심 없었다. 오히려 불쾌해 하기도 했다. 빡치는 나날도 이어졌다. 이성을 잃고 화내기도 한다. 그러면서 점점 더 델타에서 학생들과 지내는 법을 알게 되고, '패트릭'이라는 애제자를 찾아낸다. 착하고, 문학에 관심이 있던 남자. 그렇게 2년이 흐르는데, 미셸은 로스쿨 진학으로 진로를 틀고 델타를 떠나기로 한다.
델타를 떠난 뒤, 로스쿨 과정을 모두 끝내고 변호사 시험을 준비하던 중. 충격적인 소식을 듣는다. 애제자 패트릭이 살인죄로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패트릭을 돕기 위해 다시 델타로 향한 미셸. 그곳에서 마주친 현실은, 세상은 바꿀 수 없다는 절망이었다. 패트릭만이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미셸이 떠난 뒤 변변한 직업을 찾지 못하고 감옥을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어쨌든, 수감된 패트릭을 만나러 가는 미셸. 미셸의 수업 때 문학적 재능을 드러냈던 예전의 패트릭이 아니었다. 그의 글쓰기는 이전으로 퇴보한 상태. 재판을 준비하면서 패트릭과 미셸의 문학 수업이 재개된다. 희망도 보인다. 패트릭은 좌절하지 않고 형량을 마친 이후의 삶에 관해 꿈꾸고 준비하기 시작한다.
대략 이런 내용이다. 젠더와 사회학을 공부한 미셸은 자신의 경험과 미국 사회의 구조와 역사를 병렬적으로 잘 설명해낸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대목은 저자의 20대 초반 시절. 세상을 바꿀 수 있으리라는 과대망상. 그 힘이 지식에서 온다는 착각. 정확히 내가 20대 초반에 품었던 생각이었다. 연애를 멀리 하며, 책만 파던 미셸. 뭐, 물론 세계 최정상급 하버드생 미셸과 비빌 수는 없겠지만 말이지.
하지만 내 일기장의 내용은 나를 여실히 드러내 보였다. 내가 정말로 중요하게 여기는 게 무엇인지 말해 주었다. 그건 패트릭, 오로지 패트릭이었다. 경악스러웠던 처음 상태와 현저히 대비되는 그의 손글씨, 울고 있는 파우누스의 삽화를 들여다보던 모습, 시를 외우는 일과 그것이 그토록 중요해 보이는 이유, 가르치는 건 얼마나 어렵고 퇴보는 얼마나 쉬우며 배움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들. 이 모든 것의 중심엔 나와 패트릭이 있었다. (279쪽)
이 책을 요약한 대목이라고 할 수 있겠다.
교육이 무너져버린 게, 불평등이 엄청나게 심한 미국만의 상황이 아닐 터. 한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더라. 학군지에서는 몇년씩 선행 학습을 하고, 모두 다 의대를 노리고 달려가는 한편. 다른 쪽에선 『패트릭과 함께 읽기』의 주무대인 델타와 같은 상황이 펼쳐진다. 지역 사회 산업 기반이 없고, 아이를 돌봐줄 부모님이 부재하며, 학교마저 딱히 학생들을 챙길 여력이 없는 환경. 지역 소멸이 진행되고 있는 많은 지역에서 비슷한 풍경이리라.
책이 사람을 바꿀 수 있을까?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교육은? 쉽지 않다. 어렵다. 그렇게 어렵게 바꿔놓았다고 해도, 퇴보는 얼마나 쉬운가.
이 책을 여러 지인들에게 추천하고 다녔더랬다. 그 지인들 역시 이런 저런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다닌다는 이야길 들었다. (물론 소수다.) 혹시 아직 이 책을 안 읽으셨다면. 꼭 읽어보시길. 정말 멋진 논픽션이다. --- 책은 나를 변화시켰고, 내게 책임을 안겨 주었다. 그리고 나는 책이 학생들의 삶도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 믿었다. 염치없이 낭만적인 생각이었다. 나는 스물두 살이었다. (19쪽)
단지 읽고 배우는 것, 흑인 문필가를 경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경탄은 무의미했다. 열정이 행동으로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한낱 역할 놀이일 뿐이었고, 무엇을 칭송하고 무엇을 배척해야 할지 안다는 걸 보여 주는 데 불과했다. 내게 교육은 구체적이고 영적인 의미를 띠게 되었다. 교육이란 책을 읽으면서 나를 불편하게 하는 관념들에 관해 숙고하는 것을 의미했다. (24쪽)
그런 희망의 원천이 무엇인지 물었을 때, 아이들은 대개 하나님이라고 답했다. (31쪽)
두 번째 해에 접어든 후로 나는 이미 실리적인 관점에서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른의 관심이 약간만 더해져도 엄청난 성과를 보여줄 아이가 누굴까? 이 물음에 패트릭만큼 부합하는 학생은 없었다. (55쪽)
그것은 물리적인 변화를 일으킨다. 글 쓰는 사람은 숨쉬기를 잊고, 손이 아프고, 어깨가 결린다. 글쓰기에는 정서적인 도전 역시 동반된다. 글을 쓰기로 결심한 사람은 많은 위험을 감수한다. (83쪽)
백인 경찰의 폭력은 델타에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헬레나에서 경찰은 델타 지역 대부분에서와 마찬가지로 서장까지 빠짐없이 흑인이었다. 흑인은 이곳에서 소수 인종이 아니었다. 아이들을 정말 화나게 하는 건, 경찰이 마약을 거래한다는 것과 친구들이 살해당한 사건을 수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91쪽)
그렇게 대이주 이야기는 떠나지 못했거나 머무는 쪽을 선택한 사람들을 지워 버렸다. 그들은 아마도 가장 궁핍한 사람들, 외부 세계와의 접촉이 가장 적었던 사람들, 패배에 가장 익숙했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바로 그런 특징들 덕분에, 그들은 견뎠다. 그들은 나이를 먹고 자녀를 낳았으며, 그 자녀들이 마주한 세상은 암울했다. 일자리는 거의 없고 학교는 형편없었다. 폭도와 린치 이야기는 아득히 멀게 느껴졌다. 어떤 부모는 자녀들에게 말했다. 결국 너희는 혼자 힘으로 일어서야 한다고. (103쪽)
어머니는 계속했다. "넌 대학에 간 뒤로 변했어. 널 하버드로 보내는 게 아니었어. 거기 사람들은 다들 자기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네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신문을 봐.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네가 그렇게 특별한 것 같아? 네가 엄마 아빠보다 더 낫다고 생각해? 그런 책들을 다 읽고, 다른 사람들을 돕고 싶어 하니까?" 어머니는 같잖다는 듯이 웃었다. "엄마 아빠는 아무도 안 돕는 거 같니? 우린 널 돕고 있어. 널 학교에 보냈잖아. 널 대학에 보낸 게 누구니. 네가 집에서 편히 잘 수 있던 건 누구 덕분이니. 그리고 우린 매일 일해." (109쪽)
나는 내가 외롭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중략) 대학 시절에 나는 연애는 평범한 애들이나 하는 짓이라 치부하면서, 그것이 내 자신의 강도와 사소한 것들에 대한 초연함을 보여 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굴었다. (중략) 내 선언은 지나치게 소란스러웠던 것 같았다. 나는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중요한 방법 하나를 놓치고 있었다. (116쪽)
"선생님, 선생님은 좋은 변호사가 못 될 거예요." "어째서?" 나는 부러 화난 척 두 손을 허리로 가져갔다. "왜냐하면 선생님은 너무 착하니까요." (119쪽)
사람은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서 직시할 수 있는 것만을 타인에게서 직시할 수 있다, 라고 그는 썼다. 공통된 인간상이라는 이상, 즉 사랑에 대한 믿음은 올바른 출발점이 아니었다 - 믿음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을 무너뜨리고 완전히 해체해야 했다. 노력을 기울이고 고통에 맞서야 했다. 볼드윈이 그랬듯이, 애써 절망을 다잡아 우리 모두가 불가분의 운명을 함께한다는 믿음을 만들어 내야 했다. (121쪽)
진부한 말이지만, 정말로 내가 준 것보다 얻은 게 더 많았다. 내가 얻은 것은, 하루가 의미 있었다고 판단하게 해줄 한 가지 척도였다. 나와 환경이 전혀 다른 사람과 어렵지만 온전한 관계를 맺을 수 있었나 하는 게 그 척도였다. (123쪽)
W.E.B. 듀보이스가 1935년에 한 말에는 선견지명이 담긴 듯하다. 그는 분리된 학교든 통합된 학교든 마법은 없다고 경고했다. 흑인에게 필요한 것은 분리된 학교도 통합된 학교도 아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교욱'이다. (137쪽)
타이거 맘은 규율이 엄격한, 보통은 아시아계 부모를 이르는 약칭이 되었다. 내가 보기에 이 말은 완전히 틀렸다. 연약함을 힘으로 오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 어머니가 배움에 대해 권위적이었던 이유는 달리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기 때문이다. 그것은 교수법상의 선택이 아니라 어떤 절박함이었다. 자녀들의 성공이 아니라면 그녀가 어디서 자신을 확인할 수 있었겠는가? (177쪽)
그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법을 배운 건 내 인생에서 무척 중요한 일이었다. 그래도 내가 자신들을 소중히 여긴다는 걸 그들이 알았으면 했다. (179쪽)
그리고 이제 남은 인생에 내가 성적을 받을 일은 없어진 지금, 우리에게 성적을 대신해 줄 수 있는 건 단 하나, 이야기인 것 같았다. (180쪽)
나는 2년 동안 가르친 60여 명의 흑인 남학생 중에서 구치소에 수감된 전력이 한 번이라도 있는 아이들을 꼽아 보았고, 손가락이 모자랐다. 그 사건 일람표는 '퇴교 현황 보고서'의 종지부였다 - 퇴학생들은 결국 카운티 구치소에 이르렀다. 헬레나에는 일자리가 없었고, 그들에게는 기술이 없었다. 대부분 장애가 있거나 정서적 혹은 정신적 질환이 있었다. 나는 그들이 달리 어디에 있을 거라 생각했던 걸까? (321쪽)
나는 그에게 말하고 싶었다. 그건 네 잘못만은 아니야. 그건 사회의 잘못이야. 부실한 학교, 열악한 동네, 가족, 역사, 인종주의, 한 세기 동안 흑인 노동력에 의존하다 나중에는 그것을 내팽개친, 이제는 유물이 된 경제구조. (341쪽)
특별히 나라서 패트릭의 인생행로를 바꿀 수도 있었다는 혹은 특별히 패트릭이라서 내게 반응했을 거라는 말이 아니다. 그보다 나는, 사람은 서로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어떤 장소 - 너무 많은 이들이 떠나 버린 곳 - 와 어떤 시기 - 우리가 아직 다 자라기 전, 닳거나 굳어 버리기 전 - 에는 더더욱 그렇다는 것을 믿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 때 그런 곳에서 우리는 연약하고 열려 있다. (407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