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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시모토미야 마사코 혹은 이 방자 -나는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 이마사코입니다
"나시모토미야 마사코 혹은 이 방자 -나는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 이마사코입니다" 내용보기
어렸을 때 자그마한 체구에 한복을 입었던 이방자여사의 모습을 TV에서 본 기억이 어슴프레 떠오른다.그때 방송에서 '여사'라고 호칭하길래 난 이방자 여사가 꽃꽂이 전문가나, 요리연구가쯤 되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엄마가 일본 사람이 그래도 한복이 잘 어울리네 하시는 게 아닌가. 일본 사람이라고? 그제서야 이방자 여사의 정체가 궁금해져서, 일본 사람이  왜 한복을 입
"나시모토미야 마사코 혹은 이 방자 -나는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 이마사코입니다" 내용보기

어렸을 때 자그마한 체구에 한복을 입었던 이방자여사의 모습을 TV에서 본 기억이 어슴프레 떠오른다.그때 방송에서 '여사'라고 호칭하길래 난 이방자 여사가 꽃꽂이 전문가나, 요리연구가쯤 되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엄마가 일본 사람이 그래도 한복이 잘 어울리네 하시는 게 아닌가. 일본 사람이라고? 그제서야 이방자 여사의 정체가 궁금해져서, 일본 사람이  왜 한복을 입은거야? 하고 엄마한테 물었던 기억도 남아있다.

 

버스를 타고 창덕궁앞을 지나는 날에는 가끔씩 이방자 여사를 떠올리기도 했다. 이미 돌아가신지 20년이 넘었지만, 본인의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망해가는 나라의 왕세자와 결혼해야만 했던, 그리고 이국땅에와  낙선재에서 숨을 거둬야 했던 그녀의 운명과 파란만장했던 삶은 또 우리 근현대사의 굴절에 대해서 생각에 잠기게 만들었다.

 

   

 

왜 한국 이름이 이방자(李方子)일까? 하고 궁금했는데, 답이 의외로 간단했다. 일본에서의 이름이 나시모토미야 마사코(梨本宮 方子), 일본 이름을 한국 발음으로 하고, 남편의 성을 따른  것이었다.

어렸을 때는 조선을 망국에 이르게 하고, 강점한 일본의 왕족이기에 그녀를 곱게만 볼 수 없었는데, 조금 더 생각해보면 이방자 여사도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정략결혼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가녀린 여인이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운명은 1920년 4월 28일   조선 왕자와 정략결혼하는 순간부터 롤러코스터와 같은 인생이 돼버렸다.조선 말과 현대의 격동기를 온 몸으로 겪으면서, 그것도 일본 황족에서, 조선왕족으로, 또 망국의 왕족으로 또 조선의 해방 뒤에는 일본 황족도 조선왕족도 아닌 양쪽에서 다 버림받은 위치에서 생계를 걱정하며 그야말로 마음고생 몸고생을 겪어야 했다. 개인적으로도 아들을 잃기도 했고 말년에는 하나 남은 아들 구(久)와도 소원해졌던 외로운 어미이기도 했다.

 

 이 책은 이방자 여사가 운명하기 5년 전인 1984년 '경향 신문'에 6개월동안 연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펴낸 책인데, 생각보다 담담하게 당시의 상황을 들여다볼 수 있게 기술돼 있었다. 조선왕가, 마지막 왕세자의 입장에서, 조선말에서 1960년대 국내에 정착하기까지의 현대사까지겪고 보고 들은 이야기가 흥미롭게, 때로는 울분을 토하면서도 끝까지 읽게 하는 흡입력이 있는 책이다.

영왕 이은과 정략결혼을 했지만 두 사람의 사이는 아주 좋았나보다. 남편에 대해서 조선 왕세자로서의 품위와 자존감을 잊지 않으려 했다는 점을 강조하는데, 아내로서 존경심과 애정이 느껴졌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오락가락했다. 나라를 망하게 만들고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고 만 조선왕과 조선왕족들, 그 무능함이 넌더리나게 끔찍했지만 이책에서 만나는 조선왕과 왕족들의 속사정을 보면 그들도 일제의 굴레에 갇혀서 이러지도 못하는 그저 허수아비같은 존재였을 뿐이었다.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들도 나름대로 조선을 구하려고 백방으로 애썼을 것이고 백성들의 고통에 마음 아파했을 거라는,일말의 믿음이라도 갖고 싶어졌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열불이 나기도 했다. 일본 제국주의 시대 정치인들 이토오 히로부미나 테라우치 총독같은 이름을 봐야했으니.

 

해방이 된 뒤에도 이들의 고생은 끝나지 않았다. 전주 이씨 왕가의 종실인 이승만이 정권을 잡으면서 오히려 이들의 입장은 난처해졌다. 이승만은 이들의 귀국을 달가와하지 않았고, 패자가 된 일본의 경제적 지원이 끊어진 이들의 생활은 말이었다.

조선왕실 재산은 국유재산으로 편입됐고, 이 왕가의 귀국여부는 불투명해졌던 것이다.

그런 가운데 첫아들을 잃은지 9년만에 낳았던 아들 구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지만 이승만 정권은  여권조차 내주지 않을만큼 냉랭하게 이들을 대했고, 이들이 귀국할 수 있었던 것은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면서였다. 비로소 낙선재로 들어와 정착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유럽은 전후에도 입헌 군주국 형태로 왕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지만, 우리의 경우는 그렇지 못했다. 상징적으로도 존재하지 못했다. 해방후 좌우대립과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 과정에서 왕실은 전혀 개입할 수 없었고, 독립운동사 과정에서 일본의 감시와 일본화 정책 속에 왕실은 별다른 역할을 해내지 못한 탓에 이제는 대중들의 머리 속에서 왕실의 존재감은 옅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이방자 여사는  마지막 황태자비로서의 삶을 선택하고, 한국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녀는 한국이 남편의 나라이자, 아들의 조국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 제 2의 조국 혹은 새로운 조국으로 삼을 수 밖에 없었고,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런 선택을 한 셈이다.

 

이방자 여사는 한국에 정착한 뒤로  장애인을 위한 사회 활동도 하면서 여생을 보내다 1989년 낙선재에서 영면하게 된 것이다.

아마도 그녀는 눈을 감는 순간까지 그녀를 괴롭혔던 것이 유일한 자식인 아들 걱정이었을 것이다. 이 책에서 자신이 죽은 뒤에도 아들에게 관심을 가져 달라고 밝히는 대목이 있다. 여든 넘은 여인이 50대 아들의 방황을 걱정하는 그 심정이 어떨지, 아들 때문에 말년까지 마음 편안하게 살지 못하는 모정에 가슴이 찡해져왔다.

하지만 이런 어미의 걱정은 결국 수포가 돼버렸다. 어렸을 때 일본에서 자랐고, 사춘기에는 해방이 돼 조국의 보살핌을 받지 못했던 구, 그는 중년이 돼 미국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고국에 돌아온 부모와 함께 정착해보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그는 미국인 아내와도 이혼하고 조국을 떠나 방황생활을 하다 일본의 호텔에서 숨을 거두었다. 조선의 마지막 황세손은 그렇게 쓸쓸하게 생을 마치고 말았다.

가만히 보면 조선의 왕가에는 언젠가부터 비운의 인물이 많다. 덕혜옹주도 그렇고 히로시마 원폭시에

사망한 의왕 아들 우도 그렇고. 일본 제국주의라는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왕실 또한 피할 수 없었음을..아니 왕가였기에 일본의 감시를 받고 백성들의 눈초리도 감수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나시모토 미야 마사코, 혹은 이방자라는 여인의 삶도 한 여인으로서나 왕실 여인으로서나 파란만장하고 굴곡 많은 결코 평탄하지 못했다. 일본 제국주의와 조선의 망국, 일본 패전과 조선의 해방, 그리고 단독정부 수립, 5.16군사정권..그 격동의 삶을 조선과 일본, 그 경계인으로  헤쳐온 그녀는  조선 왕실의 마지막 황태자비로서 삶을 마감했다.

이 책을 통해 인간  이방자, 그리고 조선 왕실의 여인 이방자에 대해서 조금은 애정을 갖게 됐다. 조선 왕실에 대해서도 무능력했다는  관점을 한수 접고 보니 그들에게 연민이 느껴지기도 했다. 망해가는 나라의 왕자와 왕손으로 지배자인 일본의 감시와 억압 속에서 살아가야 했을 그들 역시나 불행했을 것이다. 조국과 일본 어느 곳에서도 마음 편하게 살지 못했을테니, 그들이 느꼈을 울분과 무기력감, 정체성의 혼란이 어느정도는 이해가 갔다. 

e****0 2013.09.08. 신고 공감 7 댓글 14
리뷰 총점 종이책
마농의 빨간구두님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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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보다 더 드라마 같은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 이방자 회고록1916년 8월 3일, 신문에서 자신의 약혼 사실을 접한 16세의 마사코는큰 충격을 받았다.. 상대는 조선의 왕세자 영왕 이은이다. 한일합방 2년 전, 11살 어린나이에 이토 히로부미 손에 끌려 일본에 온 망국의 인질이다. 마사코(李方子) 여사는 이 순간을햇살은 사라지고, 천둥 번개가 내 인생에 내리쳤다. 분노인지 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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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보다 더 드라마 같은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 이방자 회고록

1916년 8월 3일, 신문에서 자신의 약혼 사실을 접한 16세의 마사코는큰 충격을 받았다.. 상대는 조선의 왕세자 영왕 이은이다. 한일합방 2년 전, 11살 어린나이에 이토 히로부미 손에 끌려 일본에 온 망국의 인질이다. 마사코(李方子) 여사는 이 순간을

햇살은 사라지고, 천둥 번개가 내 인생에 내리쳤다. 분노인지 슬픔인지 모를 눈물이 줄줄 흘러 내렸다.
페이지 : 20

고 회고했다. 『나는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 이 마사코입니다』는 비운의 황태자비 나시모토미야 마사코 여사의 자전적 회고록이다. 대한민국과 일본의 두 조국을 가진, 그러나 어느 쪽으로부터도 환영 받지 못했던 경계인(境界人)으로서 한(恨)이 서린 삶의 기록이다.

아기를 갖지 못한다고하여 일본 황제의 비 간택에서 제외되고 조선 황실을 격하하여 왕족이 된 이은의 배필로 강제 결혼한다. 물론 이런 오진을 한 의사는 모두 처형되었다고 한다. 사실 영왕이 일본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조선 독립에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다는 비판도 있으나 이 회고록을 읽다보면 볼모 상태에서 그가 어떤 적극적 행동을 하기도 어려웠을 거란 생각도 든다. 특히 왕실 전통과 관련하여 이방자 여사는 가장 직접적인 증언을 하고있다. 꿩 138쌍을 수놓은 대례복은 올 2월에 국립고궁박물관 전시회에서 본 적이 있는데 이 복식을 이방자 여사가 착용한 사진을 보니 착잡한 마음이 든다. 주석에 의하면 이 옷들은 1990년대에야 도쿄국립박물관에서 돌아올 수 있었다. 순종의 두번째 부인 윤비의 알려지지 않았던 면모도 고스란히 쓰여있다. 왕조의 마지막을 살아낸 후예들이 삶이 가엾다.

내게는 두 조국이 있다. 하나는 나를 낳아준 곳이고 하나는 나에게 삶의 혼을 넣어주고 내가 묻힐 곳이다. 내 남편이 묻혀있고 내가 묻혀야 할 조국, 이 땅을 나는 나의 조국으로 생각한다.
페이지 : 뒷표지에서

한살도 안된 아들 진을 잃고 울부짖지도 못하고, 황실 예법 때문에 장지에 따라가지도 못하고 고개를 숙인채 서 있는 이방자의 모습에서 소리없는 눈물이 느껴져 가슴이 먹먹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영왕은 서거하고 냉대와 경제난 속에서 나이 70세에 사회복지사업에 매진하는 그녀의 모습이 가장 감동적이었다. 누가 그녀를 일본여자라고 매도할 것인가? 그녀는 한국의 어머니요, 한국인도 인내 하지 못할 어려움을 기품과 헌신, 희생으로 이겨낸 인간 승리자다.

그녀는 정말로 왕 이전에 인간 이은을 사랑했다. 정략결혼이었지만 여사의 사랑의 애틋함이 곳곳에 서려있다. 사랑, 그것은 가장 위대한 승리자가 아닌가? 이은을 기다리다 수절한 주영공사의 딸 민갑완 규수의 일생은 그야말로 드라마다. 그 사랑도 기막힌 사랑이다.

파란만장, 간난신고란 말이 떠오른다. 과거역사를 왜곡하는 일본 정치인들이 한번 읽어볼 책이다. 이방자 여사는 일본에 의해 강요된 삶을 산 또다른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마치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해 책을 단숨에 읽었다, 길잡이로 희귀한 자료사진과 풍부한 주석을 곁들이고 있어 현대사의 이면을 볼수 있어 좋았다.

한국의 여러분들이 나에게 베풀었듯이 내 아들을 따뜻하게 맞아부고 내가 세상을 떠난 후라도 사랑으로 보살펴 주기를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다.
페이지 : 355

이 말은 이방자 여사가 돌아가시기 5년 전에 마지막으로 지면에 남긴 글이다. 그후의 가슴 아픈 이야기는 직접 읽어보시도록 궁금증으로 남기려 한다.

e*****5 2013.08.20.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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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 이 마사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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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 살 때 한일간 정략결혼의 희생자가 되어  평생 두 개의 조국을 섬겨야 했던 운명의 여인"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란 말이 세삼 더오른다. 찬란하고 영광스러웠던 기록의 그늘에 가려져 역사의 희생양이 되어 힘겹게 살아온 이들의 아픈 삶의 흔적들은 지워지곤 한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비인 이방자 여사(나시모토미야 마사코)의 삶이 꼭 그런 것 같다. 우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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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 살 때 한일간 정략결혼의 희생자가 되어 

평생 두 개의 조국을 섬겨야 했던 운명의 여인"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란 말이 세삼 더오른다. 찬란하고 영광스러웠던 기록의 그늘에 가려져 역사의 희생양이 되어 힘겹게 살아온 이들의 아픈 삶의 흔적들은 지워지곤 한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비인 이방자 여사(나시모토미야 마사코)의 삶이 꼭 그런 것 같다.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힘들고 고단했던 일제강점기 시절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일본에서 볼모로 살아야 했던 대한제국의 황태자 이은의 삶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지만, 그의 아내인 일본 왕족 나시모토미야 마사코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듯 하다. 이 책 [나는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 이 마사코입니다]는 일본 왕족이지만 대한제국의 황태자비가 되어 두개의 조국을 가슴에 품고 살아야 했던 나시모토미야 마사코 여사의 이야기다. 회고록 형식으로 쓰여졌다. 마치 마사코여사의 증언을 듣는 듯 생생하게 당시 상황과 고민을 읽을 수 있었다.

 

저자는 대한제국 말기의 어지러운 정세와 이은 황태자가 일본에 끌려간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대한제국 말기는 격량의 소용돌이였다. 1863년 열강의 각축 속에 대원군은 고종을 즉위시켜 정권을 잡았다. 외세 침략의 틈바구니에서 민비와 대원군은 정치권력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한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1895년, 조선의 왕비 명성황후를 무참히 살해한다. 결국 고종은 러시아공관으로 피난을 갔고, 이를 도운 엄 상궁은 승은을 입어 귀비가 되었다. 1897년 고종은 대한제국 황제에 즉위하고, 아관파천에서 돌아온 지 8일 만인 10월 20일, 엄 귀빈의 아들 이은이 덕수궁에서 태어난다. 고종은 후사가 없던 순종의 후계자로 이은을 영왕에 책봉했다. 마지막 황태자 이은은 7년 후 이토 히로부미에 의해 볼모로 일본에 끌려간다. 그때 열한살 이었다." _  머리말. 중에서...

 

고종 황제가 헤이그밀사사건으로 첫째아들 순종에게 왕좌를 넘겨주고 가장 사랑했던 셋째아들 이은을 인질로 일본에 보내게 된다. 일본에 끌려온 이은은 정혼녀가 있었음에도 대한제국과 일본의 유대를 굳건히 한다는 명분으로 일본 왕족과 결혼을 강요당하게 된다. 더욱이 순종이 제위 19년만인 1926년 세상을 떠나고 이은이 다음 왕위를 물려받지만 이름만 조선의 왕일 뿐 일본군의 장교로서 삶을 살아야만 했다. 나라를 지키지 못한 구한말의 무능력한 왕권과 정치인들을 탓하면서도, 그들이 당한 모욕적 삶의 이야기를 접할때면 당시 우리민족이 격은 고초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사실 역사적으로는 1910년 8월 22일 '한일합방조약'으로 대한제국이 멸망하지만, 이 책에서는 대한제국이 멸망한 이후에 즉위한 영왕(이은)을 대한제국의 왕으로서 칭하고 있다. 대한제국의 연대기를 논하고자 한 것이 아니니 그대로 받아드려도 좋을 듯 하다.)

 

 

일본의 왕족으로서 대한제국 왕족 사람이 되어야 했던 고단하고 힘든 운명속에서도 평생 한 남자의 여인으로서 희생하며 살고자 했던 마사코의 개인적 삶 뿐만아니라 그녀의 눈에 비친 멸망한 한 나라의 왕실의 삶을 그대로 읽을 수 있었다. 일본이 대한제국을 지배하는 상황에서 일본인에서 한국인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피부로 느껴지지는 않지만 그 어려움 만큼은 어느정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특히 '관동대지진'이후 일본 내부의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 이른바 '조선인 사냥'을 저지르는 일본으로 인해 격는 그녀의 고뇌를 통해서 더욱 절실히 와 닿았다.

 

"나는 전하의 얼굴을 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나도 일본인이므로 이 모든 일이 내 잘못인 듯 죄책감으로 몸이 죄어드는 듯 했다. 전하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엄두도 나지 않았다. 전하와 나는 나라나 피를 초월한 애정과 이해로 굳게 맺어졌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 생각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절실히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과 조선 사이에는 도저히 메울 수 없는 깊은 도랑이 가로놓여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일은 나의 결혼 생활 중 여러 번 겪어야 했다. 그럴 때마다 나의 입장은 참으로 괴로운 것이었다. 일본은 나의 친정, 조선은 나의 시댁이다. 어느 곳도 공개적으로 편들거나, 비난하거나 할 수 없는 처지인 나는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이 나 자신의 운명만을 슬퍼하며 혼자서 숨이 막히도록 고통을 참아내야 하는 것이다." _ p128

 

일본이 패망하고 왕족이 몰락함에 따라 영왕과 마사코는 일본에도 속하지 못하고 고국인 조선에도 속하지 못하는 물에뜬 기름과 같은 신세가 되어버린다. 더욱이 1947년 왕족들은 신적강하(臣籍降下)를 당하면서 왕족의 특권을 잃고 평민이 됨으로서 생계마저 어려움을 받아야 했다.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이 된 이승만은 영왕과 같은 종친이면서도 오히려 영왕을 경계하여 그의 귀국을 거부한다. 6.25가 지나고 박정희장군이 대통령이 되고서야 일본에 볼모로 잡혀갔던 왕족들의 귀국이 받아들여 지지만 영왕은 이미 거동조차 힘들 정도로 쇠약해졌다. 나라를 잃고 자신과는 무관하게 일본행을 강요당했고, 일본에서 살았다는 이유로 해방 후 친일한 매국노로 손가락질 받아야 했던 그들의 안타까운 이야기에 가슴이 무거워졌다. 물론 다른 여러가지 이유로 무능한 왕족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 여지도 있지만, 한 인간으로서 그 시대 상황에 비추어보면 그들은 분명 역사의 희생자임에 분명하다.

 

 

이 책 [나는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 이 마사코입니다]에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인물도 있지만 가장 눈에 띈 인물이 덕혜옹주다. 고종의 고명딸로 태어나서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끌려가고 일본인과 원치않는 결혼까지 해야했던 덕혜옹주를 일본에서 가장 가까이 보살피고 살폈던 인물이 영왕과 마사코 여사라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가혹한 운명과 힘든 타지생활로 정신병을 앓아야 했던 비운의 공주에 대한 많은 증언을 읽을 수 있었다. 요즘 소설 [덕혜옹주]로 유명세를 타고있는 그녀가 제정신으로는 이겨낼 수 없을만큼 힘든 생활을 했음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책을 통해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패망해가는 조선왕실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왕족이라는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짊어지고 일본이라는 폭군에게 난도질 당해야 했던 그들의 삶이 안타까웠다. 그들 역시 누군가의 부모이고 자녀였을 것이고, 꿈과 욕망을 가진 그저 한 인간이었을 것이다. 그 시절 누구하나 힘들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을까? 어쩌면 왕족들의 이런 시련들을 그저 배부른 투정으로 치부해 버릴 수도 있겠지만, 그들의 무너진 삶이 무너진 우리나라를 그대로 비추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이제라도 그들의 이야기가 새로운 시선으로 비춰지길 바래본다.

 

 

j*******0 2013.09.24.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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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우리의 근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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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의 근대사를 읽다가 문득 궁금해진 것이 우리의 근대사이다.  역사에 관심도 있고 재밌어하는 나는 학교 다닐때 국사 과목이 젤 재미있을 정도 였는데, 근대사에대해 배운 기억이 별로 없다. 마지막 왕 고종 그리고 순종,  아관파천, 명성황후 시해 이후 .....에 대해 남겨진 세자나 왕족에 대해 배운 기억이 없다.내가 잘못배웠을 수도 있지만..... 이방자 여사를 알게 된건 '덕혜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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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의 근대사를 읽다가 문득 궁금해진 것이 우리의 근대사이다.  역사에 관심도 있고 재밌어하는 나는 학교 다닐때 국사 과목이 젤 재미있을 정도 였는데, 근대사에대해 배운 기억이 별로 없다. 마지막 왕 고종 그리고 순종,  아관파천, 명성황후 시해 이후 .....에 대해 남겨진 세자나 왕족에 대해 배운 기억이 없다.

내가 잘못배웠을 수도 있지만.....

 

이방자 여사를 알게 된건 '덕혜옹주'라는 소설을 통해서 였다. 그냥 소설로 읽었던 덕혜옹주.... 그 배경에 고종의 고뇌와 유학이라는 명목으로 일본으로 끌려가 억지 결혼에, 정신병까지 얻고 돌아왔다는 덕혜옹주를 읽고 한동안 아팠는데....그에 못지 않은 우리의 마지막 황태자 이은에 대해 그리고 그의 비인 이방자씨에 대해 최근에 알게 되었다.

 

근대사를 보고 고종을 힘이 없어서 나라를 뺏긴 무능한 왕이라 탓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고종은 누구보다도 진보적이고 진취적으로 나라를 위했던것 같다. 다만 흥선대원군의 집권에 대한 욕심과 그의 권력을 빼앗아오기위한 명성황후의 계락 , 그리고 을사오적을 포함한 자기의 잇권만 챙기고 나라를 팔아먹은 정치인들(신하)들이 있을뿐....

 

고종은 청의 힘이 약해진 것을 틈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근대적 문물을 들여오고, 황제칭호를 사용하는 등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다 일본의 을사늑약과 침입에 대항하여 마지막 승부수인 헤이그 만국박람회에 특사를 파견해 여러나라에 일본의 만행을 알리고 우리의 주권을 찾으려 노력했다. 이는 일본이 청일전쟁에서 이기고도 열강들의 압박에 의해 청에서 물러났던 것에서 지혜를 얻었던것 같다. 그러나 그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그는 황제의 자리를 순종에게 주고 쫓겨난다.  그렇게 우리나라는 일제에 빼앗겼고 그로 인해 볼모로 11살 황태자 이은은 일본으로 인질로 끌려간다.

 

그러면서 혼혈정책에 따라 일본의 왕족인 마사코(이방자) 여사와 결혼을 하게 된다. 망국의 한을 품고 , 황태자 이지만 일제에 의해 자신의 나라에 돌아갈수 없었고 해방후에는 이승만 정권에 의해 입국은 커녕 여권조차 나오지 않고 , 생활고를 겪어야 할만큼 냉대를 받으며 살아온 황태자 이은 !

 

그의 옆에서 평생을 인간적인 사랑으로 인내하며 지지해준 이방자 여사는 진정한 한국의 국모의 면모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국인이지만 우리의 전통에 맞추려 노력하고 남편 서거 후에도 국내의 장애인을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다 돌아가신 이방자 여사를 진심으로 높게 평가한다. 그러나 그의 아들인 이구씨의 방황과 일본에서의 죽음은  더더욱 우리나라의 따뜻하지 못한 관심과 배려때문인듯 하여 많이 부끄럽고 미안했다.

 

근대사에 대해 좀더 알아가고 싶어진다. 또한 누군가 왕족의 말대로 황실재복원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고, 황실역사 바로새우기에 대한 노력이 많이 필요한것 같다. 또한 일본에 가있는 우리의 황실문화재 만이라도 환수 받아서 당당하게 전시하고 복원하는 노력도 필요할것 같다. 독일 같은 경우 과거 전쟁 전리품이나 식민지시절 획득한 유물들을 돌려주며 과거사를 청산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일본에게도 그러한 면모가 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보통 사람이라면 견디기 어려웠을 일들을 황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또 일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인내하고 참아야 했던 이방자 여사와, 타국에서 외롭게 지내다 온전치 못한 정신과 몸으로 돌아와 낙선재에도 들어가 보지 못해 돌아가신 이은황태자, 그리고 일본땅에서 의문사한 이구황태손의 명복을 빈다.

 

9월의 어느날 퇴근길 라디오에서 추천해줘서 메모해두었던 책을 2013년의 마지막 달에 읽게 되었다.

y****m 2013.12.2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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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 이 마사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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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월전 읽었던 덕혜옹주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때 마치 내가 그 비운의 옹주인것처럼 나도 모르게 옹주의 삶을  마치 살아온 것 처럼 너무도 괴로웠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내가 마치 이방자 여사처럼 살아온듯한 감정이입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어린나이에 본인의 뜻과는 상관없이 한국의 마지막 황태자 영왕과의  정략결혼을 한 마사코여사.  그녀 또한 그 결정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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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월전 읽었던 덕혜옹주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때 마치 내가 그 비운의 옹주인것처럼 나도 모르게 옹주의 삶을 

마치 살아온 것 처럼 너무도 괴로웠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내가 마치 이방자 여사처럼 살아온듯한 감정이입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어린나이에 본인의 뜻과는 상관없이 한국의 마지막 황태자 영왕과의 

정략결혼을 한 마사코여사. 

그녀 또한 그 결정을 하기가 굉장히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처음엔 이 책을 색안경으로 끼고 보았다. 

일본침략기에 얼마나 일본인들이 한국의 왕실을 없애려고 

그 치밀함에 치를 떨었고 이방자 여사또한 그거에 가담한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와는 이 책은 한 여자의 개인 일생을 이야기 하지만 

그 일생이 하나의 역사가 되고 있었다. 

첫 아들을 잃어버린 슬픔 그리고 유산 어렵게 얻은 아들 이구 . 

해방 이후 왕실이라 경제관념이 전혀 문외한이라 여기저기 사기를 당하고 

한국에선 오히려 냉담함에 분노하지 않고 차근차근 아내로써 엄마로써의 

역할을 충실히 해온 이방자 여사. 

이승만 정권때는 왕실의 재산과 정권을 가로챌까봐 오히려 냉담하게 

굴었고 박정희 정권때 겨우 입국하여 일본에서 외로이 지내는 

영왕과 이방자 여사는 남은 여생을 낙선재에서 보내게 되었다. 

한 장 한장 넘기며 너무도 화가 나는건 

해방이후 왜 왕실에 대해 외면 하는거였다. 

아들 이구의 왕실종친가에 의해 강제이혼 당하고 

결국 한국으로 귀화하지 않고 외로이 호텔에서 인생을 마감한 

왕실의 쓸쓸함이 전해져 온다. 

인심쓰듯 낙선재에 필요한 물품등을 매달 정부보즈금15만원으로 생활하라니 

그래도 이방자 여사는 꿋꿋하게 잘 견뎌내고 오히려 어려운 사람들에게 

봉사활동을 굉장히 활발하게 하였다. 

이 책은 한 여자의 일생을 그리기도 하였지만 

우리나라에 한 역사의 중요함을 알리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부분들 

그리고 왕실의 외로움과 쓸쓸함이 고스란히 묻어나왔다. 

덕혜옹주와 이방자 여사의 일생 또한 참 운명이 어쩜 그리도 

가혹한지 역사적 희생에 재물이 될 수 밖에 없었던 민갑완 

책을 덮은 뒤에도 내 마음에 뭐라 표편하기 힘든 아련함이 밀려온다. 

 

이 책을 읽어나감으로써 새로 알게 된 조선왕실의 역사적 이야기 

그 역사적 이야기는 아직도 계속 되고 있다. 

y*****9 2013.09.0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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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략결혼의 희생자,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 이마사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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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량의 역사를 지낸 한 여인 이마사코, 일본 황족의 딸이었으나 한,일 정략결혼의 희생자가 된 일본인이다. 일본인이자 한국인으로 살아가게 된 그녀의 인생을 책으로 들여다보면 정말 기구한 삶을 산 여인이라는 것을 느낄수 있다. 16살 꽃다운 나이에 얼굴 한번 보지못한 한국 남자와 혼인을 하게되는, 것도 자신의 혼약 사실을 신문을 보고 알게된다. 이후 그녀는 한국인으로 아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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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량의 역사를 지낸 한 여인 이마사코, 일본 황족의 딸이었으나 한,일 정략결혼의 희생자가 된 일본인이다. 일본인이자 한국인으로 살아가게 된 그녀의 인생을 책으로 들여다보면 정말 기구한 삶을 산 여인이라는 것을 느낄수 있다. 16살 꽃다운 나이에 얼굴 한번 보지못한 한국 남자와 혼인을 하게되는, 것도 자신의 혼약 사실을 신문을 보고 알게된다. 이후 그녀는 한국인으로 아내로, 아들을 잃은 어머니로, 몰락한 왕조의 황태자비로 살아간다. 책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내게는 두 개의 조국이 있다. 하나는 나를 낳아준 곳이고, 하나는 나에게 삶의 혼을 넣어주고 내가 묻힐 곳이다. 내 남편이 묻혀 있고 내가 묻혀야 할 조국, 이 땅을 나의 조국으로 생각한다" 이 말에서 보듯, 그녀는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마지막 황태자비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는 것을 알 수있다.

이 책은 회고록이라 그런지 인물이 직접 겪은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흥미로운 내용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풀어놓기 어려운 왕가 재산을 둘러싼 증언이나 일본과 한국사이에서 침묵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 담겨져 있다. 또한, 중간중간 삽입된 이미지와 왕실 가계표, 양국 궁궐 지도, 참고문헌 등이 꼼꼼하게 기록되어 있어 당시 상황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간다.

빠르고, 깊게 몰입할 수 있다.

 

k********2 2013.08.2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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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읽게된 역사 책, 이마사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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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역사 공부라곤 가끔보는 역사 드라마가 전부였는데, 친구에게 선물 받은 책이라 고마움에 읽기 시작한 책이다.역사 이야기는 무거울 것이라는 생각했는데.. 의외로 페이지가 술술 넘어간다.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 이마사코. 우리이름 이방자의 파란만장한 일생이 같은 여자로서 안타깝고 가슴 먹먹하게 만들었다.정략 결혼이었지만 결혼생활에 충실한 여자였고 첫째 아들 진을 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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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역사 공부라곤 가끔보는 역사 드라마가 전부였는데, 친구에게 선물 받은 책이라 고마움에 읽기 시작한 책이다.
역사 이야기는 무거울 것이라는 생각했는데.. 의외로 페이지가 술술 넘어간다.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 이마사코. 우리이름 이방자의 파란만장한 일생이 같은 여자로서 안타깝고 가슴 먹먹하게 만들었다.
정략 결혼이었지만 결혼생활에 충실한 여자였고
첫째 아들 진을 잃고도.. 조선의 대를 이어야하는 의무에 둘째 아들 구를 10년만에 얻게 된 엄마이기도 했다.
대한민국 정부의 냉담에 상처받은 남편을 보듬어줘야하는 일본인 아내이기도 했고..
역사의 한페이지 속에 산 인물이지만 불과 100년도 되지 않은 역사라는 점에서 낯설지 않았다.
역사책이라면 괜시리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도 단숨에 읽어버리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책이라고. 추천해주고 싶다.

r*******6 2013.08.2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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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 이 마사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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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고종의 아들이자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인 의민 즉 영왕 이은의 부인인 이 마사코(우리 이름으로 이방자) 황태자비가 인터뷰한 내용을 몇개월간 신문에 기사로 실었던 그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 되고 조사, 확인 과정을 거쳐서 완성된 책이다.영왕 이은도, 덕혜옹주도 그들 자신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은 상태에서 이방자여사의 기사화된 이야기는 그녀의 이야기 뿐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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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고종의 아들이자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인 의민 즉 영왕 이은의 부인인 이 마사코(우리 이름으로 이방자) 황태자비가 인터뷰한 내용을 몇개월간 신문에 기사로 실었던 그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 되고 조사, 확인 과정을 거쳐서 완성된 책이다.
영왕 이은도, 덕혜옹주도 그들 자신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은 상태에서 이방자여사의 기사화된 이야기는 그녀의 이야기 뿐 아니라 당시 일본에 볼모로 잡혀간 우리 왕가의 슬픈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로 여겨진다.

이방자 여사는 자신이 일본인이지만 왕가의 일원으로 지내면서 일본의 추악한 일면들을 직접 대하게 된다.
그녀 역시 일본에서는 상당한 지위의 왕족에 해당되었지만 우리 왕족의 씨를 말리겠다는 욕심으로 그녀마저도 조선 황태자의 비로 결정되게 된다. 물론 그녀가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의 일이다.
그렇게 간교한 일본의 행태들을 보아온 이 마사코 여사는 일본 친왕가의 딸이지만 황태자비가 되어 일본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국인도 아닌 경계에서 살아가게 되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녀는 한국인이라고 떳떳히 말하고 있다. 볼모 잡혀 와 힘겨워하는 영왕의 고통을 이해하며 늘 안타까운 시선과 인간적인 시선으로 그를 대한다.

이 책을 통해 이 마사코여사는 대한제국 황가와 그 주변 인물들의 삶을 드려다 볼 수 있는 통로를 만들었다 할 수 있겠다. 망국의 황태자로 일본에서 평생 살아야 했으며 광복이 되었지만 자신의 나라로 돌아갈 수 없었던 괴로움뿐 아니라 다른 왕가의 인물들의 이야기도 함께 들을 수 있다.
결국 정신병을 얻고 삶을 살아가게 된 덕혜옹주의 이야기와 만주로의 탈출을 노리다 실패하면서 평생을 감금당한 의왕 이강의 이야기, 원래 영왕의 비가 되기로 되어 있었으나 이 마사코와 결혼한 영왕으로 인해 평생 결혼하지 못한 민규수의 이야기등등 우리의 역사를 그녀의 입을 통해 다시 듣게 된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듣게 된 우리의 역사에 슬픔을 느낄 것이며, 일본의 행태에 격분할 것이다. 당시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잘못된 역사를 강요하는 일본은 그것을 바로잡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도 우리의 역사를 올바르게 알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c******6 2015.09.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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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 이 마사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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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나는 잠시 인간의 수명이 너무 짧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선대가 잘못을 반성하고 되새길 여유도 없이, 그 고통을 제대로 겪어 보지도 못한 후대가 전면에 등장하게 되어 과오를 자꾸만 반복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말이다. 선대가 한 200~300년을 산다 치고 나머지 100년이 여생으로 남았을 때쯤 후대들이 탄생한다면 끊없는 실수의 고리들이 이어지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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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나는 잠시 인간의 수명이 너무 짧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선대가 잘못을 반성하고 되새길 여유도 없이, 그 고통을 제대로 겪어 보지도 못한 후대가 전면에 등장하게 되어 과오를 자꾸만 반복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말이다. 선대가 한 200~300년을 산다 치고 나머지 100년이 여생으로 남았을 때쯤 후대들이 탄생한다면 끊없는 실수의 고리들이 이어지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1, 2차 세계대전을 치르고 아직 100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세계는 다시 민족주의, 더 나아가 국수주의의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이미 세계 곳곳에서는 그 영향으로 전쟁의 화염이 치솟고 있으며, 테러도 무시 못할 수준으로 벌어진다. 언제 3차 세계대전이 벌어진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또한 지금은 자본경제라는 그늘에 숨어 이뤄지는 타국 경제 점령이 20세기 초반처럼 대놓고 토지 점령으로 벌어질지 누가 알겠는가. 역사책 속에서 만나는 인물들이 겪은 아픔을 내가 겪는다고 생각해 보면 난 도저히 자신이 없다. 그들이 그 어두운 터널을 어떻게 헤치고 나왔을지, 만신창이가 되어 터널 밖으로 나왔을 그들이 안쓰럽고 존경스럽다.


조선 왕조는 그야말로 무능의 극치를 달렸다. (안 그래도 무능한 자들을 성리학이 더욱 망쳐놓았다) 서양이 모든 사회 시스템을 국민 위주로 개편하기 시작했을 때에도 우리나라는 시대에 뒤떨어진 이념에만 매달려 스스로 동네북을 자처했다. 그래서 난 조선 왕조를 경멸하는데, 이 나라의 역사에 한(恨)을 새기게 만든 주범이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한편으로 원치 않게 왕가의 핏줄을 타고나 자유롭게 살지 못한 이들에는 끝없는 연민을 갖게 된다. 사회의 앞뒤 꽉 막힌 체제를 한 개인이 부수고 홀로 서기엔 제약이 너무나 많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한 이들도 있다. 그러나 모두가 그토록 강인하고 선구적이지는 않기에 인간 대 인간으로서 그들의 고통이 들여다보이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목이 메이고 눈물이 맺혀 휴지가 필요했다.



은 전하와 나는 피차 불행한 조국의 왕족이었기에 서로 눈물겨운 역정을 나누는 부부가 되었다. 거목이 휘어질 때 그 기우는 아픔이 크듯 망해 가는 나라의 왕세자였기에 당하는 전하의 아픔은 옆에서도 감히 추측하기 힘든 것들이 많았다. 인간으로서 은 전하는 훌륭한 분이었다. 따뜻하고 깊은 마음과 중후한 인품, 뛰어난 영어·프랑스어 실력과 조선 유학생들을 위한 나름대로의 장학회 사업 등 망국한을 되씹으며 몸부림치는 그분을 보며 나는 한·일 융화보다 외로운 그분의 따뜻한 벗이 되고자 했었다. 부부로서 우리 두 사람은 오히려 행복했다. 험하고 암담한 길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우리 두 사람이 인간으로서의 결합과 깊은 애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p. 6)



이 책은 영친왕으로 불리는 영왕 이은의 아내였던 일본인 나시모토미야 마사코(혼인 뒤엔 이 마사코 또는 이방자)의 자서전적 전기로서, 경향신문의 강용자 기자가 이 마사코의 구술을 받아 적어 엮은 이야기로 소설이 아니라 극히 사실적인 기록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의 일생은 어느 것 하나 슬프지 않은 것이 없다. 강제로 일본으로 끌려가 인질이 되어 망해가는 나라의 모습을 멀리서 봐야 했던 영왕의 아픔, 일본의 핏줄이 흐르고 있기에 남편과 다른 조선인들에게 미안함을 느끼며 그를 위로해 주려 애쓰던 이 마사코. 조선 왕가의 혈통이 될 것을 우려한 일본의 계략에 의해 죽임을 당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아기 왕자 이 진. 부부가 10년만에 다시 얻은 천금 같은 아들이자 조선 왕가의 마지막 혈통이었으나 대한민국으로부터 외면당한 왕자 이 구. 사춘기 감성이 한창 여릴대로 여린 나이에 일본에 끌려와 영왕과 마찬가지로 인질이 되어 향수병과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 등으로 정신병을 앓게 된 덕혜 옹주. 영왕의 정혼자였으나 일본이 영왕과 이 마사코를 강제 혼인시킴으로써 평생 결혼하지 못하고 아버지를 일본에 의해 잃게 되는 등 고통스런 삶을 살았던 규수 민갑완 등등. 어느 누구도 행복할 수 없는 일이 왜 일어나야 했는지 슬프고 또 두려웠다. 역사는 반복된다고들 하니까 말이다. 역사란 것이 문명의 기록이 아닌, 인간이 얼마나 잔인한 존재인지 기록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을 '불령선인'으로 몰아 '불령단 수색대'라는 것을 만들고, 자신들을 지킨다는 자경단을 만들어 거리를 휩쓸며 조선인을 사냥하러 다녔다. 이들을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전하도 조선인이므로 우리들에게도 위험이 닥칠 염려가 있었다. 우리는 살던 집을 버리고 황실 궁내성 제2대기실 앞에 쳐진 텐트 속에서 1주일 동안을 피신해 있어야 했다. (중략) 전하는 슬픔과 분노로 목소리를 떨고 있었다. 1주일 내내 전하는 눈물을 글썽이며 괴로워했다. 참으로 지옥과도 같은 한 주일이었다. 나는 전하의 얼굴을 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나도 일본인이었으므로 이 모든 일이 내 잘못인 듯 죄책감으로 몸이 죄어드는 듯했다. 전하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엄두도 나지 않았다. 전하와 나는 나라나 피를 초월한 애정과 이해로 굳게 맺어졌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 생각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절실히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과 조선 사이에는 도저히 메울 수 없는 깊은 도랑이 가로놓여 있었던 것이다. (p. 128)



강제로 하게 된 정략결혼이었으나 그 어떤 일본 여자도 이 마사코처럼 영왕을 위하고 이해할 수는 없었을 것 같다. 인질로 끌려가 족쇄에 매인 생활이었으나 영왕이 그나마 누릴 수 있었던 최대의 행운은 바로 이 마사코와의 결혼이 아니었을까? 이 마사코는 남편의 괴로움을 이해하고 그를 편안하고 안락하게 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조선이 당하는 수탈을 보며 괴로워하는 영왕과 함께 울고, 분노하며 그를 위로했고, 조선 왕가의 혈통을 잇고자 아들을 낳기를 고대하고 또 고대했다. 해방후 일본의 경제적 지원이 끊긴 뒤 한국에서 냉대를 받고 영왕이 의기소침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아 빈궁해졌을 때도 그를 자신이 지켜주겠다고 다짐한다. 두 사람간의 사랑이 그 단단한 연결고리가 되었겠지만 이 여인의 강직한 천성이 끊임없이 인내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었으리라. 고국의 일을 슬퍼하고 괴로워한 영왕보다도 그의 곁에서 그를 보살피며 조선의 왕가에도 최선을 다한 이 마사코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영왕이시여, 전하께서 구라파를 순유하시와 각국 원수들과 친교를 맺으심은 경하할 일이오나 한국 왕실이나 한국의 실재를 표시하지 않으신 것은 심히 유감으로 생각하는 바입니다. 전하가 만일 고종 황제께서 한일보호조약을 무효로 만들자고 밀사를 일부러 헤이그에 보내셨던 사실을 잊지 않으셨다면 신문 기자들에게 '나는 일본 황족이 아니고 한국의 황태자'라는 것을 명확하게 선언하소서. 우리들 구라파에 있는 한국인들은 그러한 일이 있기를 기대하고 전하를 일제로부터 탈환하여 상하이나 노령으로 모시고 갈 계획도 세웠으나 첫째 전하의 마음이 약하시어 일본 군인들을 선두로 구라파 여행을 즐기고 계시니 어찌 한심하지 않사오리까? 전하께서 모름지기 대의명분을 밝히시어 고종 황제의 높으신 뜻을 저버리지 말도록 하소서......" (p. 202)



일제의 허락을 받아 부부는 답답한 일본을 벗어나 1년간 해외로 떠난다. 그들이 헤이그에 머물게 되었을 때 약재상이라는 이가 영왕에게 주고 싶다며 명심단이라는 약을 가져온다. 그 약 상자 속에는 위의 내용이 적힌 건백서가 들어있었으나 부부를 따라다니던 일본인 차관이 숨겨 버리고 약만을 전해 준다. 이 마사코는 당시에 그들이 그것을 알지 못했다며 영왕을 감싸지만, 나 역시 영왕의 처사가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다. 왜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지, 독립을 위해 전면에 나서지 않는지. 하지만 그가 일부러 숨 죽인 채 지낸 것은 왕가의 다른 인물들이 독살 당하거나 살해 당하는 것을 보고 본인은 멀쩡히 살아남아 훗날 조선이 자유로워졌을 때 왕가를 재건하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왕실의 상징성을 생각해 볼 때, 왕실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조선의 백성들이 광복의 날을 꿈꿀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볼모로 와서 저들에게 이용만 당하고 산 사람이오. 많은 조선인들이 나를 왜 망명도 하지 않고 일본의 보호 밑에 있느냐고 비난하는 것을 나는 알고 있소. 그러나 내가 망명하면 조선 백성들은 어떻게 되겠소? 너의 왕도 도망갔으니 너희들은 잘 대우해 줄 필요가 없다고 조선인들을 개돼지같이 부리고 왕실도 없애 버릴 것이오. 일본 국수주의자들은 그렇잖아도 그렇게 떠들고 있소. 내가 베이징에 가면 그곳의 조선 군인들을 조금이라도 더 보호해 줄 수가 있소. 명색이 왕이라는 내가 왜 백성들보다 나라 생각을 못 하겠소?" (p. 236)


1940년은 일본 기원 2600년이 되는 해였다. 이해 11월 10일에 기념식이 거행되는 것을 기회로 그동안 전하가 '조선'을 전부 '한국'으로 고치도록 건의하고 노력한 것이 이뤄졌다. 조선은 이미 1897년 10월 12일,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면서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쳤는데도 일본에서는 계속 조선으로 불리고 있었다. 또 일본인들은 조선 사람을 조센징으로 얕보는 말투를 써서 전하는 늘 이것을 싫어했다. 또 이것을 계기로 도쿄의 이왕직 장관 관사를 한국 여자 유학생들의 기숙사로 개방했다. (중략) 전하는 이와 때를 같이 해서 일본에 있는 한국인 유학생들을 위한 장학회를 만들기 시작했다. "조국의 장래는 젊은이들에게 달려 있어. 젊은이들을 잘 교육시켜야 돼."하고 늘 말했다.우리는 한국인 유학생 중에 머리는 좋으나 집안이 가난한 사람을 몇 명씩 뽑아 한 달에 몇 십 원씩의 장학금을 주었다. (p. 240)


전하는 중·일 전쟁이 일어난 이후부터 한국의 문화재에 대해서 바짝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앞으로 시국이 어떻게 될지 모르므로 한국의 고유한 문화재 보존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우 공 등 믿을 만한 사람이 한국에 갈 때는 명창들의 민요나 창극이 담긴 레코드판, 나전칠기, 갓 등의 문화재나 민속품을 구해 오라고 부탁해서 이동백·김창룡 등 명창들의 레코드판을 구해왔다. 1938년 서울을 방문했을 때는 "전하가 어떻게 비천한 상가에 납시느냐"는 친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박흥식 씨가 운영하는 화신 백화점에 가서 고려 소기구·고려 소주기·청동 문진 등 고유한 문화재들을 샀다. (p. 245)



하지만 책을 읽으며 영왕을 미워할 수 없었던 것은 일생에 걸쳐 얼마나 괴로워하고 고통을 받았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며, 한편으로는 위에 인용한 것처럼 조용히 나라의 일을 도우려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망국의 왕이었으나 인간이었고, 고통과 죄책감, 두려움도 느꼈을 것이다. 황태자 또는 왕이라는 직위에서 본다면 무능한 조선 왕가의 또 다른 무능한 인물일지도 모른다. 특히 그의 활동이 우리나라의 자립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할 수 없으므로 더욱 그렇다. 그리고 그가 일본군 장성으로서 전쟁에서 일본에 이로운 결과를 가져다 준 것도 좋은 눈으로는 볼 수 없다. 그는 무력했다. 하지만 그는 분명 조심스레나마 도움의 손길을 뻗으려 애썼고 조국의 고통에 울분을 토했던 인질이었다. 만일 친일파였다면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 했을지라도 빈정거리게 됐으리라. 한 인간으로 그가 겪은 것들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대통령은 전주 이 씨로 왕실의 종친이고 평생을 독립운동에 바쳐 온 애국자인 만큼 그가 대통령이 되어 민주정치를 베풀면 조국이 크게 발전할 것이라고 믿은 전하는 주일 대표부를 통해 여러 번 귀국 희망을 전했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오히려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을 한국의 국유재산이므로 주일 대표부 건물로 쓰도록 내어 놓으라는 훈령을 보내 왔다. 이 집의 집세로 겨우 연명하는데 그것을 내놓으면 우리는 어디로 가란 말인가. 이 집은 지난날 메이지 천황이 준 도리이자카의 집을 일본 궁내성에 반환하고 대신 궁내성에서 새로 지어 증정한 것이므로 한국의 재산이 아닐뿐더러 영왕 개인의 소유인 것이다. (p. 275)


신 대사는 나중에 "이 대통령의 심리는 도무지 모르겠다. 자기도 걸핏하면 전주 이 씨 무슨 대군의 몇 대 손이라고 하면서 종손인 이왕에게는 왜 그리 냉정한지. 아마 이왕이 귀국하면 많은 사람들이 동정하고 인기가 있어서 자기에게 불리할 것 같아서였나 보다"고 말했다. (중략) 6·25가 나자 도쿄의 연합군 최고사령부는 전하를 한국의 국방 관계에 참여시킬 생각을 은근히 했던 모양이다. 당시 한국사람 중에는 전략을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 없고 전하와 홍사익 중장 두 사람만이 일본 육군대학에서 군사학을 제대로 공부하고 용병작전의 경험이 있는데, 홍 중장은 불행히도 필리핀에서 태평양전쟁의 전범으로 몰려 사형을 당했기 때문에 남은 사람은 전하 혼자였다. 더욱이 전하는 보·불전쟁사의 권위자이므로 그런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우리는 전혀 모르는 중에 이런 말이 오가고 한국에서는 전하가 국방장관에 취임하려고 귀국한다는 소문까지 났다 한다. 또 유림들은 부산 피난 수도에서 '이은 선생 환국 환영회'까지 만들고 전하를 모셔오자는 운동을 벌여 전하의 인기가 대단했다고 한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난 전하에 대한 이런 호의는 이 대통령을 더욱 자극했고 전하를 미워해서, 주변 사람들이 전하 이름도 못 꺼내게 했다 한다. (p. 277)



이승만은 광복 전 조선을 위해 독립활동을 벌였으나, 초대 대통령이 된 이후의 일들로 인해 좋지 못한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책에 기록된 내용을 보아도 그는 스스로가 왕가의 후손임을 자랑스러워 했으면서도 영왕 내외의 귀국을 막고 그들의 해외 이동시 필요한 여권 발급조차 거부하는 등 치졸한 행동을 보여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상하이 임시정부에서도 대통령직에 연연하며 매달렸던 것을 보면 자신의 지위에 상당히 집착하는 인물인 듯한데, 아마도 영왕의 귀국으로 자신의 입지가 약해질 것으로 우려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영왕 부부는 박정희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야 한국 땅을 밟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그때 영왕은 건강이 쇠하여 한국에 돌아와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토록 그리워하던 땅에 돌아왔으나 자신의 발을 내딛어 밟아보지도 못한 채 침대에만 누워 생활하다 끝내 눈을 감는다. 이 마사코는 남편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한국에 머물며 정신지체아들을 위한 여러 기관을 설립하고 불우한 이웃들을 돌보는 사업 등을 벌여 한국을 제2의 조국으로 받아들였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존경받을 만한 여인이었다.



오재경 씨는 구황실 사무총국장에 임명되자 즉시 구황실 재산 상태를 면밀히 조사하기 시작했는데 관련서류가 하나도 구비되어 있지 않았다 한다. 재산세 대장이나 등기도 없는 것을 천신만고 끝에 밤을 새워 간신히 재산목록을 만들었으나, 1960년 6월 6일 밤 원인 모를 불이 나 구황실 사무총국이 전소되는 바람에 애써 정리한 서류가 몽땅 타 버렸다. 이 정리를 맡은 이 창석 사무차장은 공보부 공보국장, 문교부 국장 등을 역임하며 성실, 정직해서 오재경 씨의 신임이 두터웠고 이번에도 오 씨가 구황실 사무국으로 데려온 사람이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구황실의 동산은 말할 것도 없고 임야나 토지 등 막대한 부동산이 당시 권력가들의 손에 다 들어갔으며 서울 교외의 수십만 평은 물론 왕릉의 땅까지 팔아먹은 데는 기가 막혀 말조차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렇게 부정이 많은 것을 조사하려 하니 누군가가 불을 질러 증거를 다 없애 버렸다는 것이었다. (p. 305)



2015년 오늘날까지도 당시 친일파 청산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도로명 주소 체계가 시행되고 있는 지금,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이 깃든 도로명은 사라지고 친일 행적 논란이 있는 이들의 호나 이름이 붙은 도로명은 여전히 남아 있다. 친일재산 환수가 이뤄지고 있는 중이긴 하지만 이미 막대한 재산으로 불려낸 이익금만으로도 친일파의 후손들이 '행복하게' 지낼 것은 자명하다. 그리고 그런 뒤가 구린 이들이 광복 70년이 지난 현재, 사회 지도층에는 참 많다. 그 후손으로 태어난 것이 죄는 아니지만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기의 조상들이 그렇게 부끄러운 일을 했음을 반드시 명심하고 속죄하는 마음을 지녀야 할 것이다.



은 전하가 일본에 오기 전 어느 날, 함녕전에 들렀더니 마침 붓글씨를 쓰고 있던 황제께서 "아가야, 너 이런 글귀를 아느냐" 하면서 글귀 하나를 써보여 주었다.


先天下之憂而憂 (선천하지우이우)

後天下之樂而樂 (후천하지락이락)

즉 '천하의 근심을 먼저 걱정하고 천하의 낙은 나중에 즐긴다'는 뜻인데 제왕이 되는 사람은 백성의 걱정을 백성보다 먼저하고 백성의 즐거움은 백성보다 나중에 즐겨야 한다는 교훈이다. (p. 50)



고종 황제의 너무 늦어 버린 깨달음이었다. 조선 왕실처럼 뒤늦게 깨닫고 후회하지 않을 수 있도록 이 나라의 위정자들에게도 필요한 조언일 것 같다.


l*******c 2015.03.1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나는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 이마사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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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대한제국 황실의 책은 가능한 사서 보는 편이다. 김을한씨가 쓴 영친왕도 읽었지만 그 무엇보다 세월이여 왕조여를 읽고 싶었는데 그 책을 정리한 책이 나와서 구입을 하였다. 이방자 여사는 비록 일본인이었지만 한국인 남편을 만나 기구한 운명을 살았다. 사실 그런 생각도 해본다. 일본이 패전하지 않았다면 그녀도 이렇게 기구하게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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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대한제국 황실의 책은 가능한 사서 보는 편이다. 김을한씨가 쓴 영친왕도 읽었지만 그 무엇보다 세월이여 왕조여를 읽고 싶었는데 그 책을 정리한 책이 나와서 구입을 하였다. 이방자 여사는 비록 일본인이었지만 한국인 남편을 만나 기구한 운명을 살았다. 사실 그런 생각도 해본다. 일본이 패전하지 않았다면 그녀도 이렇게 기구하게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굴곡진 삶을 당차게 이겨냈고 자선활동을 하며 말년을 보냈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그의 아들 이구씨이다. 이구씨가 잘되었다면 정말 그녀도 더 바랄 것이 없을텐데..표지에 담긴 그녀의 소녀때의 모습. 그 행복을 지켜주지 못했던 격동의 20세기가 원망스럽다.

YES마니아 : 로얄 j*******1 2014.12.0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