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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나쓰메 작품을 차례로 읽으면서, 새삼 나쓰메 소세키이름이 갖는 무게를 조금 느낄수 있었다. 해서 오래전 읽었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다시 읽어 보고 싶었다. 놀라운 건 나는 고양이..가 소세키의 데뷔작이란 사실이다. 첫 작품부터 이렇게 강렬하면 이어 쓰는 작품에 대한 압박감은 없었을까..싶은 생각도 든다. <그후>도 좋고 <마음> 도 좋았는데...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당분간 더 애정하는 마음 일순위에 놓고 싶다.고양이의 시선으로 인간 세상을 그려낸 소설이라고 하면 우화적일거라 짐작하면 안된다. 오히려 냥이들이 정말 저와 같은 마음으로 인간들을 보고 있다는 생각에 섬뜩함이.... 인간세상을 적나라하게 꼬집어낸 소세키 선생의 풍자가 가득한 소설이었던 거다. 나도 모르는 웃음이 피식피식 터져 나오는 에피소드가 얼마나 많은지...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우여곡절 끝에 인간 세상에 살게 된 냥이는 이름도 없고..혼자 곡은 분투하더니(떡과 사투버리는 장면은 정말 웃음이 나서 혼났다^^) 끝나는 순간에도 혼자 곡은 분투하며 최후(?)를 맞는다.
"고양이로 태어나 인간 세상에 살게 된 것도 이제 2년이 넘었다.나로서는 이 정도로 식견 있는 고양이는 다시없을 거라 생각했는데,지난번에 듣도 보도 못한 무르라는 동족이 불쑥 나타나 기염을 토하는 바람에 살짝 놀랐는데 잘 들어보니 실은 백 년 전에 죽었는데 어쩌다가 호기심이 발동하여(...)"/612쪽 이름 없는 고양이로 살아온 자신과 달리 '무르'라는 이름을 가진 고양이를 부러워하는 고백을 듣고..웃음이 났다. (소세키 소설 말고도 고양이 표지가 전면에 들어간 소설이 있었다는 사실도 새삼 상기하며 이제는 무르를 만나야 겠다는 생각도 했다) 소설이 끝나 갈 때까지 여전히 '고양이'로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알았다. 무심해서 이름을 지어주지 않은 것일수도 있겠고, 이름이 또 다른 구속이 될 수 도 있다는 생각에서 지어주지 않은 걸까 생각했다. (물론 내맘대로 해석이다^^) 고양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인간세상이라고 하지만..누구나 알고 있다. 그냥 인간 세상을 풍자하고 싶었다는 걸. 그런데 그 시선이 불편하다기 보다 웃음과 공감하는 순간이 더 많았다. 해서 풍자하는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자신에 대해 잘 알기란 얼마나 어려운지,자신에 대해 잘 알 수만 있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덜 시끄럽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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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두 가지 매력이 순식간에 이 책을 읽어나가는 데 원동력이 되었다. 1. 고양이의 시선으로 인간을 바라본다는 소설의 컨셉은 단순해 보일수도 있지만 상당히 신선하다. 고양이가 목덜미를 잡려 내던져지는 장면, 음식을 대하는 고양이와 인간의 차이를 묘사하는 장면 등 고양이의 시점에서 바라 본 우리의 세상은 낯설 정도로 신선하여 그 참신함에 내내 미소지으며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또한 비판적인 시각, 즉 고양이기 때문에 평가할 수 있는 인간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에도, 또 다른 의미의 재미가 존재한다. 물론 미소지으며 책장을 넘기는 재미가 아닌, 과감한 직언에 우리 스스로를 돌이켜 볼 수 있다는 재미지만 말이다.
2. 나쓰메 소세키만의 문체가 가지는 매력이 있다. 라틴어 계열의 언어들에 비해 일본어가 번역이 용이하단 점도 분명 작용할 테지만, 나쓰메 소세키만의 간결하지만 첨예한 문체는 분명 그의 모든 저서에서 느껴지는 매력이라 생각한다. 즉 큰 어려움 없이 쉽게 술술 소설을 읽어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저자의 메세지가 눈앞에 와닿아 있는 경험이 나쓰메 소세키가 주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주는 또 하나의 매력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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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서점을 방문한 것이 계기가되어 나쓰메 소세키의 전집이 발간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익히 들어 일본인들에게 일본문학을 대표하는 국민작가로 알고 있었고 평소 관심은 있었으나 그의 작품을 읽어보진 못했다. 본 소설을 그져 애완 고양이에 대한 예찬이겠거니 짐작만 하고 있었으나 대충 훑어보니 고양이의 눈에 비친 인간사였다. 아니 소세키가 바라본 인간군상일지도 모르겠다. 그 시대에 이런 소설이 나왔다는 소재의 신선함에 구입을 결정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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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태평해 보이는 이들도 마음속 깊은 곳을 두드려보면 어딘가 슬픈 소리가 난다" 소세키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 자신을 포함한 자기 본위의 이기주의와 위선적 교양주의에 물든 지식인 군상을, 더 나아가 어리석음과 뻔뻔함을 드러내는 사회 전체를 풍자한다. 이 책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압권은 풍자와 해학에 있을 테지만 그 뒤에 그늘로 드리워진 연민과 비애도 취해야 한다. 아마도 그것은 현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삐꺽거린 작가 자신에 대한 연민과 비애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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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제목만 보고 도대체 무슨 작품인지 알 수가 없었는데 제목 그대로 고양이의 시선에서 인간들을 바라보는 책이더라고요. 책이 굉장히 두껍습니다. 다 읽는데 굉장히 오래 걸렸어요... 술술 잘 읽히는 그런 책은 아닌 것 같습니다. 새로운 느낌의 책이었어요. 나츠메 소세키의 첫 번째 작품인가로 알고 있는데 다들 한 번쯤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추천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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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처음 읽은 건 21살쯤이었다.제목이 특이한데다 일본의 대문호라는 말에 이끌려 읽기 시작했는데유쾌할 것이라는 첫인상과는 달리 도저히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겨우겨우 다 읽었지만 무슨 내용인지 기억도 안나고 재미도 없었다.그때는 그냥 내가 책을 이해하지 못하나보다하고 넘겼었다. 그런데 얼마전 어떤 분이 내가 읽었던 번역본을 언급하며 비문이 너무 많아 외계어나 다름없다고 지적하셨다. 그럼 내가 재미가 없었던게 번역의 문제였나하는 의문이 들어 현암사에서 나온 판본을 구매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재밌나 싶을 정도로 웃기다. 어떤 분은 읽다가 키득키득거릴 정도로 재밌다고 하던데 읽어 보면 정말 그렇게 웃게 된다. 고양이가 차분한 어조로 주인인 선생(소세키 자신)을 빈정거리거나 우습게 보는 모습과 반대로 주인이 고양이를 우스워 하는 대목 등 읽다 보면 한편의 시트콤 같다. 이런 작품이 100년에 쓰여졌다는게 신기할 따름. 책의 외양도 깔끔하고 고급스러운데 번역 자체도 만족스럽고 무엇보다 각주를 충실하게 달아서 내용 이해에 많은 도움을 준다. 도련님과 더불어 함께 추천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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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시선을 통해 본 인간의 모습을 그린 나쓰메 소세키의 데뷔작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고양이는 이름이 없다. 어디에서 태어났는지도 모르고 심지어 쥐를 잡지도 않는다. 고양이의 눈에 비치는 인간들은 희안하다. 그냥 먹어도 맛있는 음식이 귀찮게 이리저리 조리하고 발이 네개인데 두 개만 사용하며, 추위만 피하면 되는 옷에 별의 별 치장을 다하고 자신을 가꾼다. 비를 피하고 추위를 피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집이 될텐데 굳이 돈으로 땅을 사서 자기 소유를 주장하고 거래를 한다. 사사로운 욕심과 질투로 화를 내고 싸우는 인간들은 고양이의 눈에 보면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 족속이다.
고양이의 주인은 중학교 영어 교사인 구샤미는 가식적인 사람인 것 같다. 말은 교양인인척 지식인인척 하지만 실제로 세상을 향해 쓴 소리를 던지거나 실천에 옮기지는 못한다. 남들에게 보이는 겉모습에 치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구샤미의 친구이자 미학자인 메이테이는 서구 문화라면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허풍이 심한 말을 자주하며,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게 헛소리다. 대저택의 주인인 가네다 일가는 돈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이들은 지식인을 자본가에게 덤비는 사람들로 간주하기도 하는 전형적인 부르주아다. 캐릭터를 종잡을 수 없는 인물도 등장한다. 구샤미의 제자인 간게쓰는 목매달기의 역학이라는 엉뚱한 논문을 쓰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가네다의 딸인 도미코와 결혼하기 위해서 박사 논문을 완성하기로 하지만 정작 다른 여성과 결혼을 해버린다.
고양이의 눈에 비친 세상은 온통 모순과 허세, 허영 덩어리 뿐이다. 메이지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인간들의 해괴망측한 삶은 지금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이 책이 100년 동안 사랑받은 이유를 알 것 같다. 아마도 사람들의 본성이 크게 바뀌지 않는 한 계속해서 고전으로 남아있지 않을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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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시선을 통해 본 인간의 모습을 그린 나쓰메 소세키의 데뷔작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고양이는 이름이 없다. 어디에서 태어났는지도 모르고 심지어 쥐를 잡지도 않는다. 고양이의 눈에 비치는 인간들은 희안하다. 그냥 먹어도 맛있는 음식이 귀찮게 이리저리 조리하고 발이 네개인데 두 개만 사용하며, 추위만 피하면 되는 옷에 별의 별 치장을 다하고 자신을 가꾼다. 비를 피하고 추위를 피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집이 될텐데 굳이 돈으로 땅을 사서 자기 소유를 주장하고 거래를 한다. 사사로운 욕심과 질투로 화를 내고 싸우는 인간들은 고양이의 눈에 보면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 족속이다.
고양이의 주인은 중학교 영어 교사인 구샤미는 가식적인 사람인 것 같다. 말은 교양인인척 지식인인척 하지만 실제로 세상을 향해 쓴 소리를 던지거나 실천에 옮기지는 못한다. 남들에게 보이는 겉모습에 치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구샤미의 친구이자 미학자인 메이테이는 서구 문화라면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허풍이 심한 말을 자주하며,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게 헛소리다. 대저택의 주인인 가네다 일가는 돈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이들은 지식인을 자본가에게 덤비는 사람들로 간주하기도 하는 전형적인 부르주아다. 캐릭터를 종잡을 수 없는 인물도 등장한다. 구샤미의 제자인 간게쓰는 목매달기의 역학이라는 엉뚱한 논문을 쓰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가네다의 딸인 도미코와 결혼하기 위해서 박사 논문을 완성하기로 하지만 정작 다른 여성과 결혼을 해버린다.
고양이의 눈에 비친 세상은 온통 모순과 허세, 허영 덩어리 뿐이다. 메이지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인간들의 해괴망측한 삶은 지금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이 책이 100년 동안 사랑받은 이유를 알 것 같다. 아마도 사람들의 본성이 크게 바뀌지 않는 한 계속해서 고전으로 남아있지 않을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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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전에는 일본문학을 읽지 않았다. 현대문학에는 왠지 모르게 외설적인 분위기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 고전을 찾았고, 나쓰메 소세키의 불멸의 명작은 나를 일본 문학의 세계로 끌어들였다. 고양이의 시선에 비춰지는 인이라는 존재를 그려내는 데 이 두꺼운 책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지나갔다. 당시에 변해가는 인간들과 삶과 사회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고양이의 시선에서 본 것을 묘사하는 것이 매우 재미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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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두번째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책 한 이십년 전에 문학과 지성사였나 문학과 사상사에서 나온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선물 받은 적이 있다 그땐 어렸을 때라 나쓰메 소세키 작가한테 크게 관심이 없었는데 우연히 다시 이 책이 읽고 싶어져서 샀다 현암사에서 예쁘게 전집 형태로 출간을 해 준 탓에 또 하나하나 모으게 될 것만 같다 책꽂이에 나쓰메 소세지의 전집이 쫙 꽂혀있는 상상을 하는 것마으로도 기쁘다 나는 고양이를 키우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지만 그냥 한번 읽어보고 싶었다 역시 좋은 작품은 시대가 훌쩍 흐르더라도 그 의미가 변하지 않나보다 다음번에는 행인이나 도련님을 읽어보고 싶다 그러나 표지가 코팅 소재였다면 좋았을 것 같다 때가 탈까봐 두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