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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에 대해 뭘 좀 아는 사람들은 여름 파는 먹지 말라고 충고한다. 벌레가 얼마나 꼬이는지 그 벌레를 잡기 위해 농약을 얼마나 치는지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고개를 젓는다. 또 어떤 사람은 가급적이면 오이는 먹지 말라고 한다. 오이는 거의 약을 먹고 자란다고 봐야 한다며 얼굴을 찡그린다. 오이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다른 사람이 과수원에서는 얼마나 많은 농약을 사용하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혀를 내두른다. 그럼 농사에 대해 알지 못하는 나는 도대체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하는지 몰라 어리둥절해진다. 결국은 이거저거 따지다가는 아무 것도 먹을 것이 없다고 생각해서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오이와 파를 먹고 과일을 먹는다. 나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이러한 농산물의 문제점을 인식한 사람들은 믿을만한 먹거리의 유통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래서 한살림과 같은 유기농산물 직거래 단체가 인기를 끌기도 했다. 백화점이나 마트에서도 유기농산물 코너가 마련되어 비싼 값에 팔렸다. 생산 과정상의 문제 때문에 유기 농산물은 비싼 가격에 나올 수밖에 없고 그 때문에 있는 사람들의 사치쯤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에 유기농산물 소비자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소극적인 유기농 소비자에서 좀 더 적극적인 유기농 생산자들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한 동향은 블로그와 SNS를 통해서 쉽게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자투리땅에 열광하고 자투리땅이 없으면 베란다에 스티로폼박스라도 이용해 내 손으로 농작물을 키우고 싶어 한다.
내가 먹을 것을 내가 직접 재배하는 자급자족에 대한 열망이 반드시 기존에 유통되고 있는 농작물에 대한 불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과잉생산 과잉소비 사회는 사람들을 지치게 만들었다. 대형 마트에서 묶음 제품으로 산 식료품을 냉동실에 가득 채워 놓고 제때 먹지 못한 것들을 음식물 쓰레기봉투에 처리하는 일련의 과정이 주는 피로감과 죄책감은 힐링 열풍과 맞물렸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이나 스코 니어링의 ‘조화로운 삶’과 같은 책을 읽어 본 사람들이라면 알 것이다. 자급자족이 주는 치유의 힘을 말이다.
이러한 시류의 변화가 행정기관에도 영향을 미쳤다. 세상 참 많이 변했다. 농업기술센터의 전신 농촌지도소의 최대 관심사는 생산량 증대였다. 70년대 농사를 지어 본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다. 한참 통일벼가 보급되고 장려되던 시절 통일벼가 아닌 모판을 엎어 버리고 단속하던 사람들이 누구인지 말이다. 누구긴 누구겠는가 생산량 증대에 앞장서야할 사명을 띤 농촌 지도사들이었다. 그런 지도사들이 유기농을 공부해 유기농 코치가 되었다. 물론 아직 소수의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코치’라는 이름값을 하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리고 마침내 ‘유기농은 꼭 이루어진다’라는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유기농처럼 말은 무성하지만 실질적인 자료가 없는 분야도 흔치 않을 것이다. YES24에서 유기농을 검색해서 첫 화면에 뜨는 책을 보면 당황스러울 정도로 적다. 그것도 유기농 기능사시험 문제집이나 유기농 요리책을 제외하고 나면 남는 책의 면면은 그야말로 유기농 발걸음 떼기도 부족해서 유기농 배밀이 수준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네이버 홈에서 유기농을 치면 어떨까? 생리대, 화장품, 쌀, 고기, 와인, 세제 까지 유기농이라는 말이 붙지 않은 것이 없다. 유기농이라는 말은 너무 많이 쓰여서 도리어 제대로 이해되지 못한 표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정대이 지도사를 비롯한 첫 유기농 코치들은 이러한 상황을 인식하고 이 책을 통해 유기농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는 것을 첫 번째 목표로 삼았다. 왜 유기농이어야 하는지를 화두로 삼고(Why), 유기농이 무엇인가에 대해 탐구 했으며(What), 어떻게 해야 할지까지(How)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이 책은 단순히 유기농업에 대한 이해의 수준을 넘어서 유기농업을 통해 농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아직 전체 농가 중에 유기농가는 소수에 불과하다. 책에 나오는 유기농 실천 사례를 살펴보면 자급자족용 농사가 더 많은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그래서 이 책이 더 의미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관행농들 사이에 아직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작은 목소리의 집단에 행정기관에서 일하는 지도사들이 귀를 기울이고 같이 동참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생산량 증대를 위해 통일벼를 보급하던 곳에서 이제 생산량이 좀 줄어들더라도 지구상에 모든 생명들이 다 같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모색하고 있다. 그들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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