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제목 <버섯소녀>. 단순한 이야기가 풍기는 오묘함이 컸다. 소녀는 어느 곳에선가 비롯됐지만 끝내는 모든 곳에 존재하게 됐다. 바람 따라 떠돌고 흩날리는 비에 녹아 세상의 전부가 돼 버린 소녀의 존재가 궁금하다. 실상 제목이 정답이다. 소녀 앞에 붙은 ‘버섯’이라는 단어를 주목한다. 반찬이나 찌개 등에 사용돼 수시로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 버섯. 종류도 가지가지요, 모양도 제각각이라 그냥 보아서는 먹어도 괜찮은지, 혹 독이 있지는 않은지 판별이 어렵다. 최근에는 버섯을 직접 기르는 이들도 늘었다고 들었다. 많은 수가 버섯에 호기심을 갖고 직접 농사에도 뛰어들곤 있지만, 여전히 버섯은 신비롭다. 볕을 따르는 많은 생명체와 달리 어둡고 습한 곳에서만 자라는 듯한 버섯들을 볼 때마다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에 대해 꿈꾸고는 한다. 이번 책의 오묘한 분위기는 버섯의 이와 같은 특징이 반영된 덕 같았다. ‘소녀’라는 단어를 ‘버섯’으로 교체하면 분위기가 한껏 죽을 텐데, 저자는 의도적으로 소녀로 버섯을 대체함으로써 독자들에게 나름의 상상력을 발휘할 기회를 제공했다. 단순한 이야기에도 몇몇 포인트가 있었다. 가장 우선적으로 눈에 들어온 건 “먼저 가서 기다릴게”라는 말이었다. 생명을 지닌 것은 유한한다. 많은 이들이 영생을 꿈꾸고, 때론 어리석다 싶은 시도를 행하지만, 적어도 아직까지는 유한성을 뛰어넘은 이가 없다. 버섯소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잘 안다. 곧 자신이 사라질 것이라는 점을 저항 않고 받아들인다. 그에게 소멸은 부정적이지 않다. 아직 경험해 보진 않았으나 또 다른 세상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가 약속하는 기다림은 또 다른 만남이 있으리라는 희망이다. 폭우가 쏟아진 다음날 그리고 반나절, 버섯은 존재했다가 사라졌다. 우리의 눈에 아니 보인다고 없는 게 아님을 이제 우린 안다. 오로지 결과만을 주목한다면 삶은 허무할 수밖에 없다. 버섯소녀에겐 과정이 중요하다. 그는 크나큰 나무들의 숲과 꽃길을 지난다. 전체를 놓고 보면 지극히 짧은 찰나에 불과하지만, 관계 맺기를 희망한다. 함께하고 싶어하는 마음, 이 길이 계속되었으면 싶은 마음은 지금 이 순간을 중시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자신이 바람이 부는 대로,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떠돌 수밖에 없다는 점에 치우쳤더라면, 얼마 후면 이 세상에 존재치 않게 되리라는 걸 신경 썼더라면 굳이 세상을 향한 열린 태도를 고수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현재에 집중함으로써 자기 앞에 놓인 허무함을 이겨낸다. 스스로 의미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 있어 그의 삶은 쉬이 꺼지지 않는다. 이끼 숲을 떠날 때 그가 보인 모습도 인상적이다. 고목은 그에게 나뭇잎을 내어주었고, 곤충들의 썩은 날개가 그에게 포근한 밤을 선사해 주었다. 그는 숲에서 더불어 살았다. 숲의 배려가 아니었으면 새로운 세상으로 옮겨가는 여정의 첫 걸음조차도 내딛지 못했을 것이다. 다시는 보지 않을 숲의 친구들이지만 그는 작별 인사를 건넨다. 작별 인사에는 떠남의 공표 이상의 의미가 담겼다. 단순한 고마움에서부터 기회가 닿는다면 자신 또한 같은 나눔을 행하겠다는 의지까지. 진심은 통하는 법이어서 아마 숲도 버섯소녀의 진심을 알아챘을 것이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음으로써 모든 곳에 있을 수 있는 존재. 버섯소녀를 그리워한다. 지금의 나는 한 곳에 뿌리내린 후 살아남고자 집착을 거듭하는 중이다. 자유를 꿈꾸지만 내 뿌리를 스스로 갉아먹는 고통을 차마 실천 못하고 있다. 마구잡이로 흔들리다 나도 모르는 곳에 떨어져 생을 마감하게 될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크다. “먼저 가서 기다릴게” 그저 가뿐해 보이는 이 인사가 부럽다. 집착이 없어야 가능한 이 말을 나도 한 번은 누군가에게 해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