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펴고 그 안에 엄마, 아버지 같은 단어가 등장하면 일단 긴장하게 된다. 그 단어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예의주시한다. 혹시 나의 감정을 엉뚱하게 물들일까 봐 그렇게 된다. 나는 사실 물들여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그것이 엄마 혹은 아버지라면 더욱 그렇다. 떨칠 수 있는 것들은 많이 떨쳐냈다. 그래도 떨쳐내지 못하는 것들이 존재하고, 그 핵심에 엄마 혹은 아버지가 있다. 그리고 나는 그로부터 비롯되었다.
|
|
무언가 꽉 참는 그런 것이 연상되었다. 나도 마침,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있는, 불만에 가득 차 있거나, 힘든 상황에서 어금니로 인내하고 있는 그런 상태였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실제 책의 저자와 어머니가 함께 찍은 사진으로 보이는데, 이 책은 그 사진에서 알 수 있듯이, 어쩌면 저자가 어린 시절, 그렇게 원망하고 싫어했던 어머니를 마주하는, 어머니를 다시 소환하는, 어머니에게 헌사하는 그런 책이다.
하루를 살아도 |
|
글쓰기만 생각하는 시인
「사랑을 온전히 보게 하는 방식」이라는 부재가 붙은 김소연 시인의 산문집이 나왔다. EBS 윤고은의 북카페 금요일 프로그램에 김상혁 시인과 함께 출연해 시와 산문, 소설 등에서 문장을 골라 읽으며 글과 삶에 관한 이야기를 맛깔나게 털어놓는 재간둥이 김소연 시인을 오래전부터 좋아했었다. 방송 시간에 시에 대해, 글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도 한 마디 한 마디 조심스럽게 사유를 펼치는 진중하고 심지 곧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부분들을 책 속에서 발견하게 될 때, 역시 좋은 사람이라는 것만으로도 책을 읽는 내내 안심이 되고 듬직했다. 시인의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나 시 쓰기를 생각하는 모습들이 좋아서 닮고 싶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책을 읽었다. 오랜만에 몰입해서 밤새워 읽었는데 별수 없이 시인의 아픔과 함께라서 읽는 내내 마음이 짠했다. 제목에서 말하듯이 좋은 시를 쓰기 위해 애쓰는 노력이 귀하고 존경스러웠다. 엄마에 대한 사유는 조금 복잡했는데 애증의 관계란 그런 것인지도 몰랐다. 그래도 큰딸로서 엄마의 마지막을 살뜰히 보살피는 모습을 볼 때, 남아선호 사상이 강했던 시절이라 설움이 많았다. 엄마를 사랑하고 도리를 다하는 사람이었다. 좋은 문구들이나 사유들이 많아서 연필로 줄을 긋는 부분과 중요해서 페이지를 접게 되는 부분도 많았다. 나누어진 부분별 뚜렷한 특징은 없이 그가 글을 쓰는 작가이기에 대부분 글쓰기에 대한 글들이라고 생각되었다.
1부 엄마를 끝낸 엄마 “엄마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를 착취하는 사람이었고, 오빠보다 뒤에 서 있기를 지나치게 종용해온 억압의 주체였다” 어머니와의 애증의 관계와 마지막 그 후의 화해의 사유들이 적혀 있다.
2부 입이 있다는 것 외 14편의 에세이 : 일상과 이어진 글쓰기에 대하여
3부 덧없는 환희 온통 폴란드 시인 쉼보르스카에 대한 이야기뿐이다.
“쉼보르스카가 모두에게 말을 걸 때에는 누군가가 제외되는 일이 없다. 시를 읽지 않는 사람도. 시에 관심 없는 사람도. 시를 폄하하는 사람마저도. 쉼보르스카는 시 속에 담는다. 모두를 위한 시를 쓰기 때문에 쉼보르스카는 거기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여기에 나타나는 느낌을 준다. 내가 쉼보르스카를 좋아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 말이 김소연 시인이 글쓰기를 할 때의 마음가짐임을 보여주고 있다.
4부 막연함에 대하여 외 11편의 에세이 : 책과 영화 등에서 이어진 글쓰기에 대하여
「조금 다르기」에서 “나는 언젠가부터 조금 다른 나의 의견과 일상과 나만의 발견은 그건 공간에 전시하지 않게 되었다. 모두들, 조금다른 각자의 의견은 어딘가에 꽁꽁 숨겨두고 있을 것 같다. 모든 것을 알리는 듯하지만, 그만큼 각자의 삘은 비대해지고 있는 것은 아닐지. 나도 비밀로 하고 싶은 것이 점점 많아져 간다.” 각종 SNS나 매체 등을 통해 자신이 살아가는 모습을 자랑삼아 드러내고 있지만, 어쩌면 자신의 뚜렷한 의견이나 속깊은 진실들은 말하지 않고 조용한 비밀이 되어 더 외로운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장소애場所愛,topophilia」에서 “장소에 대한 뒤늦은 나의 애착은 좋은 장소를 갈망하고 그곳에 나를 두기를 욕망하는 것과 반대 방향에 있다. 좋은 장소가 아니라 문제적 장소, 헐벗은 장소, 사람들의 세간살림이 뻔히 들여다보이고 식구들의 양말과 티셔츠를 쪼르륵 내다 넌 빨래가 깃발처럼 펄럭이는 장소에 나의 애착이 가닿는다”고 했다. 그런 자리를 시의 장소라고 믿고 있고 머물고 싶다고 쓰고 있다. 그런 장소들이야말로 그가 시를 찾고 시를 쓰는 목적인 듯하다.
「간극의 비루함 속에서」에서 “단어가 아니라 문장이, 문장이 아니라 맥락이, 맥락이 아니라 노래 비슷한 것이, 노래가 아니라 울먹임이, 울먹임이 아니라 불꽃이, 불꽃이 아니라 잿더미가 비로소 백지 위에 하얗게 쌓인다. 시는 온갖 실패를 겪어가며 끝장을 본, 한 줌 재인 샘이다”라고 시를 쓰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생각에 생각을 더하여 그 불꽃같이 타오른 생각이 한 줌 재로 남을 때 비로소 시가 된다는 그의 글쓰기의 자세가 존경스럽다.
시집 전체에 낮은 어조로 조곤조곤 적어내는 내용들은 왠지 눈물을 머금은 듯 촉촉한 느낌이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참고 있는 느낌이다. 생각조차도 한 발 한 발 조심해서 할 것 같은 그가 하고자 하는 말 또한 조심하는 것은 당연할 터이다. 의미 있는 글을 쓰고자 고민하는 흔적이 가득해서 배워나가고자 한다. |
|
김소연 작가님의 <어금니 깨물기> 리뷰입니다
서문만 읽고도 눈물을 왕창 쏟았어요 작가님의 서러움이 느껴지기도 했고 가족에 대한 사랑도 느껴지기도 했어요 저는 작가님보다 한참 어리지만 엄마와 제가 모두 건강할 때 추억을 많이 쌓아야겠다 생각했어요 첫번째 에피소드(?)를 읽고 제가 엄마와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를 생각해봤는데 한 곡도 없더라구요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공감도 되고 또 작가님의 일상이 담긴 글은 따뜻하고 소소한 행복이 담겨있는 책이라서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종종 꺼내볼 것 같아요 |
|
"나는 오랫동안 엄마를 싫어했다.' 첫 문장에 끌려서 책을 샀다. 엄마와의 관계를 언어로 정리해야 한다는 마음에서 이런 책들을 찾아 읽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작가에 대한 정보 없이 책을 샀는데 문장이 너무 좋아서 오랜만에 만족도와 몰입도가 최상인 상태로 책을 읽어냈다. 시인이라서 그런지 문장이 너무 좋다. 표현력이 너무 좋다. 문장을 갈고 닦는다는 느낌이었다. 윤슬 이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소리도 좋은 우리말 한 단어를 덕분에 알게됐다. 작가는 엄마에게 여행 때 마다 예쁜 공책을 사다 드렸다고 한다. 뭐라도 적어보시라고. 그러나 엄마는 그 공책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고. 엄마에게 공책을 사드렸다는 부분에서 나의 엄마가 생각났다. 나는 왜 엄마에게 공책을 사 드릴 생각을 못했을까 싶어서 가슴이 아렸다. 돌아가시고 나니 서랍에 남아있던 그 많은 일기장들... 엄마는 노트를 사기 위해 문구점에 들렀을까? 문구점에서 노트를 고르는 엄마를 오래 오래 마음으로 그려본다... 김소연 시인의 시집도 찾아 읽어봐야겠다. |
|
하루를 살아도 / 온 세상이 평화롭게// 이틀을 살더라도/사흘을 살더라도 평화롭게// 그런 날들이/그날들이/영원토록 평화롭게// 김종삼' 평화롭게'
에세이는 두서 없이 읽을수 있어 좋지만, 다른 어떤 장르보다 합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그렇게 믿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고^^) 며칠 동안 여기저기 페이지를 념겨보다 '평화롭게'를 시선 고정!!.^^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시를 만난 것이 우선 반가웠고.. 세상 돌아가는 소음이, 기준치를 초과한 것만 같아 위로가 될 말을 찾고 있었기 때문일수도 있다. 신기하게도 '평화'라는 말을 주문처럼 입밖으로 내보는 것으로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거짓말처럼 평화에서 위로가 된 이유, 그리고 앞으로도 위로가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도 찾았다. 김종삼 시 해석은 보너스였다. " (...) 그 누구와도 그런 종류의 속 깊은 마음을 교류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시를 통해 그 체험을 하며 안도감을 느낀다. 시끄러움과 심란함도 그리하여 누군가에게 종내는 위로가 된다.우리는 평화롭기를 갈망하지만 평화는 찰나처럼 우리에게 와서 우리를 잠시 안아주고 떠나버린다. 김종삼은 <평화롭게>라는 시를 통해서 평화가 유지되는 러닝타임 자체를 표현하려 한 것은 아닐까,딱 그 정도의 시간,그 시간만큼은 평화롭기, 하루에 한 번씩만이라도 평화롭기"/212쪽 시 한편을 외워 내는 것이 시험이었다는 사실은 얼마나 매력적인지.. 시가 너무 짧아 점수를 줘야 하는지를 고민했던 선생님의 마음은 웃음 짓게 한다. 그럼에도 계속 이 시가 선생님의 머릿속에서 맴돌았다는 건.... '평화' 가 주는 깊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시인의 해석에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주고 떠나는 러닝타임의 무엇이 평화가 줄 수 있는 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하루가, 일년이 , 사는 내내 평화롭기를 갈망하지만 그건 욕심이란 걸 알고 있으니..아주 잠깐의 시간동안만이라도 평화로울 수 있다면 좋지 아니한가... 처음 김종삼 시를 알게 되었을 때도..나는 이 시만큼은 외워두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는데... 이제는 단 한줄이라도 내 몸의 일부처럼 가지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거시적인 평화까지는 바라지도 못하겠다. 그저 하루에 한 번씩만이라도 평화로운 순간을 만들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