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0)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70%
  • 리뷰 총점8 3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9.0
  • 50대 9.0

포토/동영상 (1)

리뷰 총점 종이책
BookStar/ Ahn, Chang ho / 겨례를 일깨운 민족의 스승 안창호 리더쉽 /조국을 사랑하라 Love the Country
"BookStar/ Ahn, Chang ho / 겨례를 일깨운 민족의 스승 안창호 리더쉽 /조국을 사랑하라 Love the Country" 내용보기
유한준 지음 청소년 멘토 시리즈 책 중 도산 안창호 선생님 책을 만나 보았습니다. 통합의 리더쉽~!! 우선 책 뒤에 써 있는 안창호 어록을 먼저 읽어 보았습니다. *Young man dies the Country dies. 청년이 죽으면 나라가 죽는다. *그대는 나라를 사랑하는가? 그렇다면 먼저 그대가 건전한 인격자가 되라. *흔히 사람들은 기회를 기다린다고 하지
"BookStar/ Ahn, Chang ho / 겨례를 일깨운 민족의 스승 안창호 리더쉽 /조국을 사랑하라 Love the Country" 내용보기

유한준 지음

청소년 멘토 시리즈 책 중 도산 안창호 선생님 책을 만나 보았습니다.

통합의 리더쉽~!!

우선 책 뒤에 써 있는 안창호 어록을 먼저 읽어 보았습니다.

*Young man dies the Country dies.

청년이 죽으면 나라가 죽는다.

*그대는 나라를 사랑하는가? 그렇다면 먼저 그대가 건전한 인격자가 되라.

*흔히 사람들은 기회를 기다린다고 하지만, 기회는 기다리는 사람에게 잡히지 않는 법이다.

우리는 기회를 기다리는 사람이 되기 전에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실력을 길러야 한다.

일에 더 열중하는사람이 되어야 한다.

*농담으로라도 거짓말을 하지 마라, 꿈 속에서라도 성실을 잃었거든 뼈저리게 뉘우쳐라.

죽더라도 거짓이 있어서는 안 된다.

*진리는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고, 정의는 반드시 이루는 날이 있다. 죽더라도 거짓이 없어라.

*진정한 애국심은 그 말보다 실천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나는 밥을 먹어도 한국의 독립을 위해 먹고, 잠을 자도 한국의 독립을 위해 잔다.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어록을 보고 또 본 후 ,내 삶의 모습과 비교해보며, 뉘우침과 반성이 뒤따를 수 밖에 없었다.

암울한 시기에 유혹에 전혀 흔들림 없이 조국을 향한 끈기 있는 그 용기과 기개를 민족들을 이끌 수 있었던 것은

위의 어록에서도 어림짐작 할 수 있듯이 스스로 항상 노력하는 모습과 힘과 실력을 쌓고, 정의를 추구함이니라.

책을 읽기 전에 벌써 많은 감동을 받고 읽기 시작했다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어린 시절부터 미국 유학을 거쳐 민족 개혁과 겨레를 일깨우고,

교육입국의 리더쉽, 총칼에 맞선 의지, 독립운동가의 길까지~~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리더쉽을 알고자 한다면 이 책을 읽어보면 될 것이다.

안창호 리더쉽의 해답은 선생님께서 살아오신 그 인생이 바로 답이 아닌가 생각을 해 봅니다.

한우리 북카페에서 제공되어진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s*****1 2013.10.20.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안창호 리더십
"안창호 리더십" 내용보기
우리는 옛 위인들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거의 알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아니 이름 정도만 알 수 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안창호 선생님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안창호 리더십을 읽으면서 안창호 선생님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라를 위해 온 힘을 다해신 안창호 선생님을 보면서 배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즐
"안창호 리더십" 내용보기

우리는 옛 위인들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거의 알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아니 이름 정도만 알 수 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안창호 선생님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안창호 리더십을 읽으면서 안창호 선생님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라를 위해 온 힘을 다해신 안창호 선생님을 보면서 배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알게 된다.
나라를 위해 교육을 위해 대한 제국이 멸망하고 일제 식민지 시절 어려서 배움을 위해 고향을 떠나 먼저 새로운 학문에 눈을 뜨고 배우며 교육만이 살 길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심어주신 분이시다.
자신의 삶을 오직 나라를 위해 살아가신 것을 보면서 너무나도 많은 것을 배운다.
안창호 리더십을 쓴 유한준 저자는 기자로 정년퇴직한 아동문학가, 시인, 전기작가로 대통령 표창장까지 받으신 분이다.
책을 읽으면서 받을만 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단순하게 만들어 놓은 책이 아니라 짧게 배우게 됨으로 어려울 수 있는 역사적인 사실까지 자세하게 적어 놓아서 오히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역사적인 사실까지 알 수 있어 좋았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서울로 유학을 갔으며, 미국 유학 시절에도 일하며 배우고 교포들을 일깨우고 변화시키는 위대한 일들을 하셨다.
인재를 기르는 것이 나라를 찾는 길이며, 민족과 나라를 사랑한 애국자였으며 나라가 있어야 나도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신 분이다.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온 몸을 바치신 분이시다. 독립협회, 만민공동회, 국권 회복을 위한 항일 비밀결사단체인 신민회 등 오직 나라를 위해 사신 분이시다.
이 책을 통해 청소년들은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리더로서, 애국자로서, 교육가로서 우리들에게 리더십과 지도력, 미래에 주인공으로써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 너무나도 많은 것을 온몸으로 알려주신다.
안창호 선생님의 막내아들은 평생 아버지 얼굴도 보지 못했다고 하니 얼마나 바쁜 삶을 사셨는지 대단하다는 생각이다.
자신의 안위에는 관심도 없고 오직 나라를 위해 온 몸을 바치신 분이시다.
민간인으로써 최초의 점진학교를 세우고,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교육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온몸으로 실천하신 분이시다.
책을 읽으면서 한가지 안타까웠던 점은 그렇게 나라의 독립을 위해 노력하셨는데 조국 광복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셨다는 것이다. 나라의 독립을 그 누구보다도 기뻐하셨을텐데 말이다.
정말 좋은 책 안창호 리더십을 통해 아이들이 어른들이 배우고 실천했으면 좋겠다.   
 

민족의 등불 그대들이여! 희망을 가져라! 그대는 나라를 사랑하는가?

 

j*****6 2013.10.14.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안창호 리더십 조국을 사랑하라
"안창호 리더십 조국을 사랑하라" 내용보기
요즘 책에 관심갖기시작하면서,   책카페에도 가입하고 여러사람들과 대화도 하고 참~ 좋은시간을 갖게 되는것같다. 책이 얼마나 즐거움을주는지... 기쁨을 주는지... 하나하나 알아가고 있는듯하다. 그러다가 만나게 된 "안창호 리더십" 위인전에 관심도 없고 읽어본적도 없지만, 요번기회에 위인전읽기에 도전해 보았다. 생각으로는 따분할꺼라 생각했는데, 슬슬슬 잘 읽혀지
"안창호 리더십 조국을 사랑하라" 내용보기

요즘 책에 관심갖기시작하면서,  

책카페에도 가입하고 여러사람들과 대화도 하고 참~ 좋은시간을 갖게 되는것같다.

책이 얼마나 즐거움을주는지...

기쁨을 주는지...

하나하나 알아가고 있는듯하다.

그러다가 만나게 된 "안창호 리더십"

위인전에 관심도 없고 읽어본적도 없지만, 요번기회에 위인전읽기에 도전해 보았다.

생각으로는 따분할꺼라 생각했는데,

슬슬슬 잘 읽혀지고 그당시 어떠했는지 머리속에 그려지면서 재미나게 읽은것같다.

학교다닐때 많이 들었던 이름 안창호~

그냥 독립운동가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책을 읽으면서 아~아~아~ 이런분이였구나 그리고 그시대의 상황에 대해서도 조금더 잘 알것같았다.

 

도산은 1878년 11월9일 평남강서군 초리면 칠리 봉상도에서 출생하여 1883년 고향서당에서 한학을 배우다가 서당선배로부터 신식 학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새로운 세계가 있다는것을 알고

"더 넓은 세계에서 새로운 학문을 배워야겠다." 다짐하며 신학문의 세계를 동경하다가

1895년 서울로 올라와 구세학당을 다녔고 그리스도교 교인이 되면서 신학문에 대한 눈을 떴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가슴에 차지않아 새로운 학문을 찾아 미국으로 건너가 도산은 신혼부부로 낯선 이국 땅

미국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였지만, 우선 생활하는 것이 당장 급한 과제로 다가와서 몸으로 때우는 노동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으로 온 목적은 신학문을 배우는것이여서 굳게 결심하고 노동과 공부를 병행하였고 교포들의 권익보호와 생활 향상을 위해 한인 공동협회를 만들고 (공립신보)를 발간하였다.

그후 을사조약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귀국을 결심하고 조국광복을 위해 귀국길에 오른다.

귀국후 동지들을 모아 항일비밀결사 단체인 신민회를 만들고, 이조직을 바탕으로 조국독립과 민족의식 개혁에 앞장섰다.

그로부터 도산은 힘들고 어려운 고난의 가시밭길을 꿋꿋하게 걸었다고 한다.그리고 독립을 이끌 지도자 양성과 미래 조국의 이끌어갈 후세교육을 위해서 여러방면에서 즐기찬 활동을 전개하였다.

도산은 대한제국 말기의 애국지사, 독립투사들 가운데서도 가장 확고한 자기의 사상과 투철한 신념을 가지고 항일 투쟁을 전개해 나갔고 나라를 빼앗긴 슬픔과 분노에 맨주먹을 불끈 쥐며 비폭력 무저항주의로 독립운동을 펼쳤던 유인한 인물이라고한다.

그리고 도산은 건전한 인격수양을 위하여 두가지 요소를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고 한다.

먼저 생각과 말, 행실 곧 사,언,행에서 남의 본보기가 되어야하고 이에는 건실한 도덕적 품성부터 갖추어야 한다.

모두가 각자에게 주어진 일에 성실하고 참되도록 힘쓰고 진실되기를 힘쓰면 모든 일이 원만하게 이루어질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이대목을 읽으며 나도 이런맘으로 앞으로 살도록 노력해봐야겠다 생각을 하며 읽었다.

 

 

 

 

 

도산안창호의 젊은시절 사진이라고 한다.

도산은 무척 겸허한 사람으로 겸손한 마음으로 일생을 살고 도산에게서는 거만하거나 위합적 표정, 오만불손한 자세나 유아독존의 영웅주의 태도 같은 면모는 전혀 찾아볼수 없다고 한다

도산은 두뇌회전이 빨랐으며 유창한 언변과 통솔력, 용기와 덕성이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절대 자만하거나 뽑내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도산안창호의 일본경찰에게 체포되는 사진이라고한다.

도산은 독립운동을 하면서 계속되는 체포, 고문, 감옥살이로 몸이 엉망이 되고 성한곳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1938년3월10일 간경화증으로 서울대학병원에서 별세하였다고 하는데

그렇게 조국광복을 위해서만 살아왔던 도산안창호는 결국 광복을 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였다고 한다.

* 안창호의 4대정신

1. 무실 : 참에 힘쓰고 진실을 실천하자.

           실은진실, 성실, 실질, 실력, 참의 뜻이고 무는 힘쓴다는 뜻

2. 역행 : 나 자신부터 몸소 행하고 실천하자.

3. 충의 : 충성과 신의가 중요함을 강조한말     변절과 불신을 증오

4. 용감 : 용기있는인간, 용감한 국민의 필요성을 강조한 말

 

 

책 마지막장에 도산어록과 연보가 나온다.

간략하게 정리가 잘되어 한눈에 볼수 있어 좋았다.

 

도산안창호는 한평생 조국의 위해 희생을 한분이다.

그렇게 조국을 위해 희생을 해주어서 지금 내가 이렇게 자유를 누리며 살수 있는것 같아

감사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도산안창호의 정신을 잊지말고 책에 나온 안창호의 좋은말씀을 새기며 살아야겠다.

교육에 힘쓰는길이 인재를 기르는일이 나라를 구하는일이라고 생각하셨다고 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큰생각을 하실수 있었는지 감탄스럽다.

여러가지고 책을읽는동안 감탄했으며 글재주가 없어 이렇게 뿐이 표현못하는게 아쉬울 뿐이다.

내용이 길지도 않고 청소년들이 보면 딱 좋을것 같아는 생각도 해본다.

 

* 한우리 북카페 서평단 입니다.

 

 

 

k*****1 2013.10.13.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안창호 리더십
"안창호 리더십" 내용보기
“도산 안창호 선생은 신혼시절 미국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줄기차게 전개하였다. 아내는 한국인 부부로서는 처음으로, 한국 여성으로서는 두 번째로 미국이민자가 됐다. 미국에서 태어난 도산의 아들 딸 3남2녀는 부모의 국적과 관계없이 출생지를 국적으로 삼는 출생지주의에 따라 미국 시민권을 가졌다. 그러나 도산 안창호는 한국 국적을 지킨 애국자였다. 도산의 막내아들은
"안창호 리더십" 내용보기

“도산 안창호 선생은 신혼시절 미국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줄기차게 전개하였다.

아내는 한국인 부부로서는 처음으로, 한국 여성으로서는 두 번째로 미국이민자가 됐다.

미국에서 태어난 도산의 아들 딸 3남2녀는 부모의 국적과 관계없이 출생지를 국적으로 삼는 출생지주의에 따라 미국 시민권을 가졌다.

그러나 도산 안창호는 한국 국적을 지킨 애국자였다.

도산의 막내아들은 임시정부에서 활동할 때 태어나 평생 아버지 얼굴도 한 번 못 보았다.“

 

미국으로 망명하여 미국시민으로 순탄하게 살아도 되었을 인생인데 을사늑약에 분노하여 한국 땅에 들어와 독립운동에 목숨을 바친 애국자 안창호 선생.

민간인이 세운 최초의 사립학교인 동시에 남녀공학을 실시한 최초의 학교인 점진학교를 비롯해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으려면 어린 새싹들을 교육시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민족교육에 앞장섰다.

 

일본 경찰은 도산을 얽어매려는 획책이 끝내 이뤄지지 않자 다음해 일제통감부에 도산내각을 조직하자고 권유하였으나 도산은 독립운동을 못하도록 옭아매려는 음모임을 즉각 알아채고 단칼에 거절하는 일도 있었단다.

 

임시정부의 내무총장인 안창호 선생은 외교활동을 펼쳤지만 강대국들의 소극적인 반응에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외국의 도움으로 우리나라가 독립을 이룩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실망하지 않고 자주독립운동을 전개해나갔다.

 

인재를 육성해야한다는 깊은 뜻을 품은 안창호 선생은 신민회 창립, 대성학교 설립 등을 위해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여러차례 연설하면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도산의 리더십은 스스로 실행하는 것이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은 아주 미약하다. 마찬가지로 나라의 독립은 어느 한두 사람의 힘으로는 이루기 어렵다. 너도 행하고 나도 행하고 우리 모두가 행할 때 큰 힘을 일으킨다고 일깨웠다.

......

우리 스스로 일어서야 한다. 우리의 생존권을 되찾기 위해 힘을 기르고 앞으로 힘차게 나아가야 한다. 그 힘은 바로 교육에 있다. 도산의 이념은 종교보다도 강하고 거룩하였다.“

 

안창호 선생은 미국인을 감탄시키는 리더십, 자주독립을 외친 리더십, 교육입국의 리더십, 위대한 독립투사의 리더십 등 나라를 잃고 힘없는 우리나라의 진정한 독립운동가 이고 애국자이고, 진정한 리더라 할 수 있다.

 

비록 독립의 그날을 맞이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으나 그의 행적은 후대의 우리들이 잊지 않고 기억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보답해야겠다.

 

우리 역사의 암흑기인 일제강점기에 독립을 향한 열정을 가지고 리더십을 발휘했던 도산 안창호 선생의 리더십을 통해 역사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감동이 함께 한 책이다.

c******s 2013.10.13.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안창호 리더십] 목숨까지 바쳐 나라를 사랑한 리더십!
"[안창호 리더십] 목숨까지 바쳐 나라를 사랑한 리더십!" 내용보기
[안창호 리더십] 목숨까지 바쳐 나라를 사랑한 리더십!   그대는 나라를 사랑하는가. 그러면 먼저 그대가 건전한 인격이 되라. 우리 중에 인물이 없는 것은 인물이 되려고 마음먹고 힘쓰는 사람이 없는 까닭이다. 인물이 없다고 한탄하는 그 사람 자신이 왜 인물이 될 공부를 아니 하는가. (책에서)   해외에 가면 애국자 되고, 시절이 어려우면 위
"[안창호 리더십] 목숨까지 바쳐 나라를 사랑한 리더십!" 내용보기

[안창호 리더십] 목숨까지 바쳐 나라를 사랑한 리더십!

 

그대는 나라를 사랑하는가.

그러면 먼저 그대가

건전한 인격이 되라.

우리 중에 인물이 없는 것은

인물이 되려고 마음먹고

힘쓰는 사람이 없는 까닭이다.

인물이 없다고 한탄하는

그 사람 자신이 왜 인물이 될 공부를 아니 하는가. (책에서)

 

해외에 가면 애국자 되고, 시절이 어려우면 위인이 된다는 말이 있다.

도산 안창호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있으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조선 후기에서 대한제국을 거쳐서 광복이 되기까지가 우리 역사에서 가장 많은 위인들이 배출된 시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존경하는 분들이 많이 나온 시절이다.

선각자, 선구자, 계몽운동가, 독립운동가, 애국자라는 이름으로 목숨을 바쳐 나라를 위해, 민족을 위해 살았던 우리의 위인들을 어찌 잊을 수가 있을까.

 

암흑기.

나라가 위태롭던 시절에 태어난 위인들의 이야기를 접하다 보면 이런 분들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이렇게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늘 감사한 마음 가득하다.

 

나는 밥을 먹어도 대한의 독립을 위하고, 잠을 자도 독립을 위해서 해 왔다. 이것은 내 목숨이 없어질 때까지 변함이 없을 것. (책에서)

 

도산 안창호 선생.

대한제국이 멸망하고 일제 식민통치 시대에 자주와 독립, 국민계몽과 교육을 위하여 일생을 바친 애국자, 교육자, 독립운동가인 멋진 대한 남아.

나는 오늘 안창호 선생을 만나면서 여러 번 가슴 뭉클해지곤 한다.

 

도산 안창호는 1878년 평안남도 강서군에서 태어나 유명한 성리학자인 김현진 서당에서 한학을 배운다.

10대 초반에 고향을 떠나 서울의 구세학당 (현 경신 중고등학교)에서 신식학문을 배우며 세상에 대한 눈을 뜨게 된다.

 

1882년 임오군란, 1884년 갑신정변, 1894년 동학운동, 갑오개혁, 1985년 청일전쟁 등의 소용돌이를 보며 자란 그는 배워야 힘을 기를 수 있음을 느끼게 된다.

단발령, 명성황후 시해사건 등이 터지면서 1898년 독립협회에 가입하게 되고…….

 

그리고 결혼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고학을 하며 교포들을 일깨우고 독립정신과 민족 자각의식을 심어주게 된다.

 

그러나 1905년 을사늑약으로 한국 외교권이 일본의 손아귀에 들어간 것을 접한 안창호는 급히 귀국한다.

그리고 국권회복을 위한 비밀결사단체인 신민회를 만들고 만민공동회를 개최한다.

비폭력저항운동, 국민계몽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고향에 내려가서는 한국 최초의 사립학교이자 남녀공학 초등학교인 점진학교를 세우게 되고……. 평양에 대성학교도 세우게 되고…….평양과 대구에 태극서원을 설립하여 출판문화운동을 펼치고, 평양에 도자기회사를 세워 산업부흥에도 힘쓰게 되고…….

신민회 산하기관으로 청년학우회를 두어 박중화, 이돈녕, 최남선, 김좌진, 이회영, 장도순 등에게 맡기게 된다.

 

우리 신민회는 이름 그대로 새로운 백성이 되는 것이요. 우리의 목표는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진흥운동을 전개하여 국가의 실력을 기르고 국민들을 계도하자는 것이요. (책에서)

 

1910년 일제 통감부 안에 도산내각을 조직하자는 일제의 권유에 일본의 허수아비 내각이 되기 싫다며 다시 망명길에 오르게 된다.

그러다 북만주에서 한국군 지도자를 양성하는 무관학교를 세우려다 수포로 돌아가게 되자 다시 아내와 자식이 있는 미국으로 가게 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미국 여러 지역에 분산되어 있는 한인 단체들을 모아서 대한인국민회 중앙회를 조직하여 교포들의 민족 계몽 기관이자 독립운동 단체로 자리매김하고, 흥사단을 창립해 민족운동을 담당할 지도자를 키운다.

흥사단은 독립운동과 민족개혁을 근간으로 삼고 무실, 역행, 충성, 용감함과 지덕체를 갖춘 건전한 인격, 단결훈련, 국민 모두 일하기 등에 중점을 둔 인격수양 단체이다.

그러다 국내에서도 흥사단 운동이 일어난다.

 

-도산! 할 일이 많소!

-백범 형님! 나라의 앞날이 걱정입니다.

-그렇다고 낙담만 하고 세월을 보낼 수는 없지. 독립을 쟁취해야 하오!

-독립운동은 광복되는 날까지 계속돼야 합니다.

 

다시 상하이로 건너간 안창호는 백범을 도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만들게 된다.

상하이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내무총장이 되어 임시정부가 하는 일을 널리 알린다.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사건,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 공원 의거, 청년학우회 사건 등의 배후 인물로 지목받아 감옥살이를 하는 등 힘든 세월을 보내다가 광복을 보지도 못하고 향년 60세로 세상을 떠난다.

 

60평생을 하루도 빠짐없이 나라를 걱정하고 민족을 사랑했던 도산 안창호, 그의 리더십을 감히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민족을 사랑한 리더십, 계몽과 교육의 중요성을 외치는 리더십, 주인정신을 강조하던 리더십, 자주독립을 외친 리더십, 솔선수법하고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는 리더십…….

 

개인적인 이기심이 가득한 지금의 리더들에게 도산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내가 진정으로 부탁하는 바는 이 말씀뿐이외다, 여러분 힘을 기르소서, 힘을 기르소서,

나 안창호가 죽어서 한국이 독립된다면 죽으리라.

조국을 망하게 한 것은 이완용만이 아니다. 나도 그 책임자요, 국민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대한은 대한민국 사람으로 혁신하게 하라. (도산 어록)

 

 

통합의 리더, 애국지사, 계몽운동가, 미래를 내다본 교육가로 평생을 몸과 마음과 재산을 바쳐 헌신한 도산 안창호,

그를 어찌 잊을까.

해방을 못보고 돌아가신 게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에게 이런 위인이 있음은 분명 정신적으로 든든한 재산이다.

겨레를 일깨운 민족의 영원한 스승, 맞다.

 

지금처럼 시끄러운 세상에,

온전히 민족을 사랑한 안창호 리더십이 아쉬울 뿐이다.

 

 

*한우리 북카페 서평단입니다.**


a******7 2013.10.12.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배우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자
"배우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자" 내용보기
책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나뿐만이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래서 더욱 읽고 싶었던 안창호 리더십... 역사, 인물, 위진전으로 많이 접하게 되는 분이지만, 큰 테두리만 알뿐 모르는 부분이 많아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었다.   위대한 독립운동가이자 교육가였던 도산 안창호 선생님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 가까이에 있어서
"배우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자" 내용보기

책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나뿐만이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래서 더욱 읽고 싶었던 안창호 리더십...

역사, 인물, 위진전으로 많이 접하게 되는 분이지만, 큰 테두리만 알뿐 모르는 부분이 많아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었다.

 

위대한 독립운동가이자 교육가였던 도산 안창호 선생님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 가까이에 있어서 진가를 모르고, 너무 흔해서 귀중함을 모르는 것처럼 제대로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12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할아버지 밑에서 자란 도산 안창호 선생님.

한번 본 책은 암기를 할 정도로 뛰어난 두뇌를 가졌다.

서당에서 한문을 배우다 우연히 신학문을 접하게 되고, 배워야 한다는 일념으로 결혼하자마자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미국 유학 때 우리나라가 을사조약으로 주권을 일본에게 빼앗긴 것을 알게 되고, 국내, 외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게 된다.

육십 평생 일제강점기, 식민 압박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면서 폭넓게 활동하였지만, 꿈에 그리던 조국 광복을 보지는 못하였다.

 

총칼을 들고 일본군에게 대항하였던 애국지사들과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일본을 배척하며 항일 운동을 전개하였으며,나라를 빼앗긴 슬픔과 분노에 맨주먹을 불끈 쥐며 비폭력 무저항주의로 독립운동을 펼쳤던 유일한 분이다.

 

교육을 통하여 민족 혁신을 이룩하자는 교육사상을 가지고, 나 하나를 건전한 인격체로 만드는 것이 우리 2000만 민족을 건전하게 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하였다.

 

대중 앞에 나서서 이것저것 떠들고 지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뒤에 서서 묵묵히 자기 직분을 다하고 이끌어 주는 신사였으며 스스로 높이는 자가 아니고 스스로 겸손함을 보여주는 지도자였다.

 

 

 

 

책의 뒷부분에 도산 어록이 나와있는데, 지금의 현실에서 생각해봐도 다 맞는 말인 것 같다.

민주 국가로 독립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힘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힘을 키울 수 있을 때에만 민족이 스스로 독립하고 자립하며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여 실력 양성론을 주장하셨던 분이다.

 

역사적으로 봐도 사람들간의 의견대립은 언제나 있는 일인 것 같다. 그 안에서 사적으로는 다름을 인정하지만, 공적인 부분에서는 하나로 마음을 합쳐야 한다고 하셨던 분...

 

60평생 사시면서 부인, 4자녀들과 함께 생활한 시간은 고작 13년 밖에 되지 않지만, 부인되시는 분이 불평한마디 하지 않았다는 것이 참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오로지 나라의 독립을 위해 일하느라 실제적으로 가정에는 많은 관심을 못가지셨던 것이다.

 

 

 

 

안창호 리더십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목차를 보면 국외에서 빛난 리더십, 민족을 계몽한 리더십, 주인정신을 강조한 리더십,  민족 개조의 리더십, 시련 극복의 리더십으로 책내용이 흘러가는데... 그러하기 때문에 중간중간 내용이 겹치는 부분들도 있었다.

책의 맨 마지막 도산 안창호 연보가 나와있는데,  충생시부터 돌아가시고 훈장을 받으실 때까지를 연도별로 정리해 놓았다.

 

나라의 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누구나 배워야 한다는 말씀.. 지금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한우리 북카페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YES마니아 : 로얄 c****h 2013.10.0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안창호 리더십
"안창호 리더십" 내용보기
안창호 리더십 도산 안창호 선생님은 대한제국이 멸망하고 암울했던 일제 식민통치 시대에 나라의 자주와 독립, 국민 교육과 계몽을 위하여 일생을 바친 위대한 애국자, 독립운동가, 교육가였습니다. 안창호 리더십을 읽으면서 안창호 선생님을 통해 역사적인 사건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1878년 태어나 1882년 임오군란을 겪고,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나 청나라와 일
"안창호 리더십" 내용보기

안창호 리더십

도산 안창호 선생님은 대한제국이 멸망하고 암울했던 일제 식민통치 시대에 나라의 자주와 독립, 국민 교육과 계몽을 위하여 일생을 바친 위대한 애국자, 독립운동가, 교육가였습니다.
안창호 리더십을 읽으면서 안창호 선생님을 통해 역사적인 사건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1878년 태어나 1882년 임오군란을 겪고,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나 청나라와 일본은 노골적으로 우리나라 일에 관여하면서 새로 불씨를 키워나갔다.
1894년 동학운동이 일어나자, 당황한 우리나라 조정에서는 동학 농민군을 평정하기 위해 청나라에 지원군을 요청하였고, 일본은 텐진조약으로 군대를 파견했다.
동학 농민들 청나라와 조선 우리나라 지배하려는 음모 알고 동학 농민군 해산 하기로 하고, 청나라와 일본에 군대 철수를 요구하였다. 하지만 일본은 오히려 군대를 더 많이 파견하면서 전쟁 야욕을 드러냈다.
서울에서는 일본 우리 정부의 요인들을 무력으로 위협하면서 일방적으로 친일파 내각 구성하고 여러 가지 제도를 개혁하는 일에 손을 댓다. 이것이 1894년 갑오개혁이다. 이를 빌미로 청과 일본 인천 앞바다에서 충돌하는 '풍도해전' 사건 터졌다. 일본 청 공격하여 청 군사 1000명 죽었다. 이것이 청일전쟁의 시발점이다.
결국 청일 전쟁을 겪고, 일본의 승리로 끝이 났다. 그리고 청나라는 일본과 시모노세키 강화조약을 맺었다. 이 굴욕적인 조약으로 청은 우리나라와의 모든 관계를 끊고 중국의 타이완과 만주 랴오둥반도를 일본에 넘겨주는 수모를 당한다.
안창호 선생님은 이 모든 것을 겪으며 소년기를 보내게 된다.
1902년 결혼 후 더 넓은 포부, 더 큰 꿈을 안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다. 그곳에서 일하면서 공부에 매달렸다. 한국 사람들끼리 싸우는 모습을 보고 그곳에 있는 동안 재미교포를 위해서 일하겠다고 굳게 다짐한다.
그 후 우리나라는 독립협회, 을사조약, 안중근 의사 이토 히로부미 저격 사건, 105인 사건 등 다양한 사건들을 겪게 된다.
안창호 리더십을 읽으면서 교통도 좋지 않았던 그 시절에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면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노력하신 안창호 선생님의 모습을 보면서 감탄했고 존경하는 마음과 함께 지금 우리나라가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안창호 선생님 때문에 아닌가 싶다.
민족을 계몽한 리더십을 통해 인재를 길러야 하며, 민족을 사랑했으며, 나라가 있어야 국민이 존재한다는 것을 온 몸으로 보여주신 분이시다.
일생을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그의 모습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위대함이 느껴진다.
아이들과 함께 읽어 조국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면 다른 교육이 필요 없을 것이다.
g***f 2013.10.20.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나라를 진정 사랑한 지도자
"나라를 진정 사랑한 지도자" 내용보기
도산 안창호 선생은 대한제국이 멸망하고 암울했던 일제 식민통치 시대에 나라의 자주와 독립, 국민 교육과 계몽을 위하여 일생을 바친 위대한 애국자, 독립운동가, 교육가였다. 선생은 나라의 주권을 일본 침략자들에게 빼앗기고 국가와 국민이 암흑의 터널 속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10대 소년으로 고향을 떠나 서울 구세학당에서 영어, 세계사, 과학 등을 배우며 새로운 세계와 학
"나라를 진정 사랑한 지도자" 내용보기

도산 안창호 선생은 대한제국이 멸망하고 암울했던 일제 식민통치 시대에 나라의 자주와 독립, 국민 교육과 계몽을 위하여 일생을 바친 위대한 애국자, 독립운동가, 교육가였다. 선생은 나라의 주권을 일본 침략자들에게 빼앗기고 국가와 국민이 암흑의 터널 속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10대 소년으로 고향을 떠나 서울 구세학당에서 영어, 세계사, 과학 등을 배우며 새로운 세계와 학문에 눈을 떴다. 구세학당을 마친 뒤 미국으로 건너가 고학을 하면서 교포들을 일깨우고 독립정신과 민족 자각의식을 심어주었다.

 

 

"민족의 등불 그대들이여! 희망을 가져라!

그대는 나라를 사랑하는가?

죽더라도 거짓이 없어라!"

 

도산 안창호는 한반도 땅에서 벌어진 청일전쟁의 참담한 현실을 몸소 경험, 우리나라는 강한 나라와 맞설 힘이 없는 나라임을 뼈저리게 느끼고 이를 타파하기 위해 평생 나라와 겨레를 위해 살기로 결심하고 독립협회에 들어가 활동하기 시작했다. 또한, 만민공동회를 조직하고, 국권 회복을 목적으로 항일 비밀결사단체인 신민회 등 여러 단체를 만들어 독립 및 계몽운동에 매진했다.

"나는 밥을 먹어도 대한의 독립을 위하고, 잠을 자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서 해 왔다. 이것은 내 목숨이 없어질 때까지 변함이 없을 것"이라며 독립운동과 국민 계몽에 앞장섰던 도산 안창호 선생의 교육정신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국민 모두의 귀감이 되고 있다.

 

선생은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이며, 민족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마음과 자세를 가져야 하며, 어떻게 살고 행동해야 하는지 몸소 보여준 민족의 큰 스승이었다. 통합의 리더로, 애국지사로, 교육가로 평생을 헌신했던 도산 안창호의 탁월한 리더십, 뛰어난 지도력은  미래 주인공인 청소년과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키워준다.

 

 

 

 

 

안창호는 1878년 11월 9일 평안남도 강서군 초리면 칠리 봉상도에서 농부인 아버지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대대로 선조들은 평양에서 살았지만 아버지 때 가세가 몰락해 대동강 하류인 봉상도로 이사했다. 그는 집에서 <천자문>을 공부하다 아홉살에 성리학자 김현진 서당에서 한학, 성리학 및 유학을 배웠다.

 

12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할아버지 밑에서 자란 그는 서당에서 함께 수학했던 한 형으로부터 신학문에 대한 얘기를 들었고 이에 대해 궁금증이 생겨 서울로 가기로 결심했다. 그는 대원군의 통상수교 거부로 나라가 '우물 안 개구리' 같다는 얘기를 들으며 자랐는데, 6살엔 갑신정변(1884년), 16살엔 갑오개혁과 동학운동, 18살엔 광무개혁 등 일련의 큰 변혁을 보면서 성장했다.

 

"나라의 힘이 없다. 배워야 한다!"

 

도산은 신학문을 배우려고 서울로 올라왔다. 미국 선교사 언더우드가 설립한 구세학당(현, 경신중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영어를 비롯해 세계사, 수학, 과학 등의 학문을 배우면서 새로운 세계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조교로 근무를 시작했을 때, 단발령(1895년)이 떨어졌다.

 

전국의 선비들이 통곡하며 엄청난 혼란에 빠졌다. 도산은 1898년 독립협회에 가입해 일치감치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서재필의 독립협회는 1896년에 창립되어 한글로 된 독립신문을 발간했다. 도산은 서재필 박사를 만나면서 자주독립 정신과 민족주의 사상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여기서 리더십을 길러 나아갔다.

 

1902년, 할아버지가 점지한 여성과 결혼한 도산은 더 큰 꿈을 안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때 그의 나이 22살이었다. 아내와 함께 샌프란시스코에 도착, 낮엔 청소부로 밤엔 공부에 매달렸다. 어느 날 길에서 인삼 판매를 놓고 한국인들끼리 싸우는 것을 보고 그는 인삼 행상들의 영업 구역과 인삼 가격을 정해 교포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했고 나아가 한인친목회를 조직했다.

 

도산이 미국에서 공립협회를 창립해 뛰어난 리더십으로 조국 광복 운동을 활발하게 펼치던 때 서울로부터 을사늑약(1905년) 체결 소식이 날아들었다. 우국지사들은 자살로 조약 체결에 항의하고, 전국에서 의병들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고종은 강제 퇴위 당하고, 나라의 통치 외교권을 일본이 행사하기 시작했다.

 

"조국으로 돌아가서 독립운동을 하자!"

 

도산은 단신으로 귀국길에 올라 도착하자마자 독립운동에 뜻을 같이 하는 동지들을 규합했다. 비밀결사대인 신민회新民會를 만들어 강력한 리더십을 선보였다. 또한, 평양에 대성학교를 세워 후세 교육에 정진했다. 강한 신체와 정신을 단련하는 교육이 일본을 자극해 수시로 통감부와 마찰을 빚었다.

 

일본 탄압에 항의해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청년학우회를 신민회 산하에 두었다. 전국의 유능한 청년들을 모아 무실역행務實力行 사상을 바탕으로 미래의 지도자로 양성시켰다. 무실역행이란 참되고 실속 있게 힘써 실행함을 근본으로 삼은 것이다. 청년학우회는 후일 흥사단으로 변모한다.

 

안창호의 4대 정신 : 무실, 역행, 충의, 용감 

 

일제는 도산 안창호가 눈에 가시같았다. 1909년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에서 저격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이를 기화로 도산이 이끄는 신민회와 청년학우회를 제거할 목적으로 도산이 이토 저격사건의 배후 조종자라는 혐의를 씌워 감옥에 가두었다. 3개월 후 석방되자 그는 중국으로 망명했다. 이후 많은 회원들이 옥고로 시달리고 외국으로 망명하는 사태가 이어졌다.

 

도산은 시베리아를 거쳐 1912년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샌프란시스코에서 대한인국민회 중앙회를 조직해 교포들을 위한 민족 계몽 운동을 펼치며 정치운동의 중심 역할을 했다. 이듬해엔 흥사단을 만들었다. 1919년 3.1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뒤 상하이 임시정부에 합류했다. 두 살 위인 백범 선생을 도와 임시정부의 내무총장을 맡았다.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하이 홍커우공원에 윤봉길 의사가 폭탄을 투척해 일본 육군 대장과 거류민 단장 여러 사람을 죽게 만들자, 일제는 또 다시 도산 선생을 체포해 서울로 압송하여 모진 고문을 다했다. 허위 자백만을 강요받는 재판이 진행될 때 일본인 검사가 독립운동을 그만둘 생각이 없냐고 묻자, 이렇게 그는 답했다.

 

"나는 밥을 먹어도, 잠을 자도 민족을 위해 먹고 잤으니, 앞으로 독립이 되는 그날까지 민족을 위해 일하고자 하는 나의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

 

도산의 리더십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자질이 바로 뛰어난 웅변술이다. 1897년 독립협회 회원이 되어 활동하다가 평양에 지부를 설치하기 위한 만민공동회를 개최해 약관 스무 살의 몸으로 대중 앞에 나서 감동적인 연설을 펼쳤다. 이후 미국 유학생 신분으로 을사늑약(1905년)을 통렬히 비판한 그의 연설은 독립운동의 촉매제가 되었던 셈이다.

 

다음으로 도산을 존경하고 추모하는 이유는 그의 훌륭한 애국정신, 애국심, 그리고 국민을 이끌어 간 탁월한 리더십 때문이다. 그는 민족 계몽을 위한 밑거름으로 교육을 두었다. 사람을 기르는 일은 마치 오늘 한 그루의 나무를 심고 가꾸는 것과 같음을 강조했다.

 

그리고 그가 국민을 이끈 리더십의 핵심은 바로 성실이다. 성실은 참되고 알찬 것을 뜻한다. 참한 것의 반대는 거짓이고, 알찬 것의 반대는 빈껍데기다. 이처럼 성실은 곧 정직인 것이다. 우리가 어릴 때 어른이 해주시던 최고의 칭찬이 "참하다!"였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도산이 수양동우회 강연회에서 국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주인정신'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에서 이광수 등이 중심이 돼 결성한 수양동맹회와 평양에서 김동원 등이 만든 동우구락부가 합쳐서 탄생한 조직이 민중 계몽 단체 수양동우회다. 주로 변호사, 의사, 목사, 저술가, 상공인 등이 회원이었다.

 

"훌륭한 지도자가 없다고 한탄하지 말고 스스로 주인이 되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투철한 주인의식, 강력한 책임의식을 길러야 합니다. 이는 바로 시대적인 요구이며 민족의 명령이기도 합니다"

 

 

 

 

서울 강남에 도산대로도산공원이 있다. 이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10대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영어를 포함한 신학문을 배운 뒤 더 큰 꿈을 이루기 위해 바다 건너 먼 신세계 미국 땅에서 주경야독을 하며 나라 잃은 민중들의 고통을 함께 하면서 오직 조국 광복과 민중 계몽에만 매진했던 진정한 지도자 도산 안창호, 우리는 이 정신을 계승해야 할 것이다.                


 



이달의 사락 5****0 2013.10.14.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안창호 리더십 조국을 사랑하라
"안창호 리더십 조국을 사랑하라" 내용보기
"민족의 큰 스승" 으로 기억된 도산 안창호 선생. 나 역시 그분의 이름 석자와 호 그리고 그의 업적을 간단하게나마 역사시간에 배웠고, 책으로도 읽은 기억이 있다. 하지만 막상 그분의 짧지만 강한 60여년의 생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게 얼마 없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그분의 탄생에서 죽음에 관한 모든 궁금증을 해결하고 싶은 마음에 이 책을 선택하였다.   우선 책의 구성쪽으
"안창호 리더십 조국을 사랑하라" 내용보기

"민족의 큰 스승" 으로 기억된 도산 안창호 선생.

나 역시 그분의 이름 석자와 호 그리고 그의 업적을 간단하게나마 역사시간에 배웠고, 책으로도 읽은 기억이 있다.

하지만 막상 그분의 짧지만 강한 60여년의 생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게 얼마 없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그분의 탄생에서 죽음에 관한 모든 궁금증을 해결하고 싶은 마음에 이 책을 선택하였다.

 

우선 책의 구성쪽으로 보자면,

우리가 간단하게 알고 있는 역사적 사건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어서 좋았다.

중간 중간 책에서 팁으로 따로 관련된 이야기들을 풀어 놓은것 또한 좋았다.

제목의 크기와 여백이 있는 책이라 확실히 어린 청소년 친구들이 읽기에도 부담이 없을 듯 하다.

 

도산이라는 호가 고향마을인 '도롱섬'에서 나왔던 것인지는 미쳐 몰랐었는데 이번에 알게 되었다.

원래 이름이 치삼이었는데 열살때 서당에 다니면서 창호로 바꾸었다는것도 처음 알았다.

이밖에 장남 안필립씨는 할리우드 진출 1호 한국인이었고, 장녀 안수산씨는 미군 해군 최초의 여성 포격전술 장교로,해군 특수부대 대위로 활동하셨단다.

 

기억에 남는것은 비폭력 무저항주의로 독립운동을 펼쳤던 유일한 분이시라는 것과,

꾸준히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던것과,

훌륭한 연설과 함께 청중들을 끌어안는 리더십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독립운동의 방법을 정하고(목표를 정하고),그 실행 방법을 체계적으로 세워 꾸준히 실천하며 민족이 나아갈 바를 일깨우고 미래를 항한 '비전'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1세기전의 사람인데 그야말로 21세기에 맞는 리더십을 보인 것이다.

 

이책에서 기억남는 키워드가 있다면, "무실역행","충의용감","주인정신","애기애타"가 아닐까 싶다.

그 중 "애기애타(愛己愛他)"야 말로 21세기 꼭 필요한 리더십이라고 본다.

말 그대로 자기를 사랑하듯 다른 사람도 사랑하라라는 뜻이다.

사랑이 부족한 21세기를 살고 있는지라 그런가...가장 와닿았던 문구이다.

옛날에 "나를 따르라!" 하고 무작정 리더가 한 무리를 이끌던 권위적인 시대가 아니라,

서로 의견을 나누고 구성원들의 존중과 함께 서로 함께 움직이는 시대에 "애기애타"야 말로 가장 필요한 정신인듯 싶다.

 

p189

"생각이 같다고 해서 성격도 나와 같다고 여기지 말고, 또 나와 같아지기를 바라지 마라. 매끈한 돌이나 거친 돌이나 다 제각기 쓸모가 따로 있는 법이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개개인 모두가 개성을 지니고 그 쓰임이 다르다고 말하고 있는데,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무시하거나하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 사랑과 화합으로 이끌어 나가길 바라는게 아닐까 싶다.

 

도산  어록비 中

그대는 나라를 사랑하는가

그러면 먼저 그대가 건전한 인격이 되라.

h******a 2013.10.1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안창호 리더십
"안창호 리더십" 내용보기
안창호 리더십   우리나라 대한민국과 유네스코에 등제되고 전 세계에서 문맹률이 가장 낮은 나라가 될 수 있게 만든 한글을 지킨 사람 중 한  사람으로 도산 안창호 선생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어릴적 도산 선생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읽은적 있는데 이번만큼 그 분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읽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도산 안창호 1878년에 평안남도에서
"안창호 리더십" 내용보기

안창호 리더십

 

우리나라 대한민국과 유네스코에 등제되고 전 세계에서

문맹률이 가장 낮은 나라가 될 수 있게 만든 한글을 지킨

사람 중 한  사람으로 도산 안창호 선생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어릴적 도산 선생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읽은적 있는데 이번만큼 그 분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읽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도산 안창호

1878년에 평안남도에서 태어나 죽을 때 까지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한 평생을 바친 사람중 한명으로 이미 8세 때

가정에서 한문을 수학하고 9세에서 14세까지 한학을 배울

정도로 똑똑했으며, 1895년 청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로

끝나자 국력배양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스스로 수학하면서

기독교인이 된 분이다. 그는 독립협회의 한 일원으로 민중의

각성을 촉구하는 연설을 함으로써 명성을 얻은 사람이다.

 

도산 선생은 지금도 겨례를 일깨운 민족의 스승이라는 칭호를

받는 사람인데 그 이유가 청년이 죽으면 나라가 죽는다 하며

그대는 나라를 사랑하는가 그렇다면 그대가 먼저 건전한 인격자가

되라고 하며 독립을 위해 솔선수범을 하면서 일제의 갖은 탄압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평생을 조국의 독립을 위해 힘써왔기 때문이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강한 나라와 맞설 힘이 없는 나라에서 그 현실을

통탄만하지만 그는 오히려 만민공동회등을 조직하면서 국권 회복을

목적으로 한 비밀결사단체인 신민회등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독립운동과

민중 게몽운동에 매진 하였다. 도산 선생은 4대 정신을 기틀로 자신뿐

아니라 후학들에게도 가르친 말이 있는데 무실,역행,충의,용감이 있다.

무실은 참에 힘쓰고 진실을 실천하자는 마리며 역행은 나 자신부터

몸소 실천할 것이며, 충의인 충성과신의가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용감은 용기 있는 인간으로 용감한 국민의 필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책의 맨 마지막에는 도산 어록이 있다. 이 도산 어록에는 그의 4대 정신 뿐

아니라, 그의 삶에 힘이되고 기틀이 된 말들이 있는데 그의 말 하나하나가

뼈에 와닿는 말씀이다. 그야 말로 진정한 오블리스 오블리제의 정신을

몸소 실천한 사람이 아닌가 싶다. 아직도 이 어록에 나오는 그대는 나라를

사랑하는가 그러면 그대가 먼저 건전한 인격이 되라라는 말은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데 그 처럼 진정으로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해야할지 생각하게 된

시간이었던 것 같다.

 

 

 

q*******d 2013.10.1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