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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받고 있다는 착각 질리언 요크 (지음) | 방진이 (옮김) | 책세상 (펴냄)
이제는 인터넷이 없는 세상은 잠시도 상상하고 싶지 않을 만큼 생활 속 깊숙히 광범위한 영역에 그 영향을 끼치고 있다.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이 제한되기 전, 우리나라로 입국하는 중국인들의 여행 이유 중 하나는 인터넷의 자유로운 활동과 와이파이만 제공되면 인터넷을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부담없는 접근의 용이성이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공산국가라는 정치적 색깔까지 더해진 그들에게는 국가가 허용하지 않는 사이트는 연결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 군부독재 정권이었던 우리에게도 검열과 감시가 일상이던 시절이 있었다. 공중파의 뉴스와 신문은 물론이고 예술 문화 분야에 이르기까지 정권의 비위를 거스리거나 그럴 기미라도 보일라치면 민간인을 대상으로 하는 감시와 도청도 안보라는 이유로 합법적이던 시대였다. 이제 그 검열과 감시의 대상은 더 대중화되었고 감시자 또한 권력을 가진 정부와 최고 권력자, 집단, 거대 기업 등으로 폭넓어졌다.
핸드폰으로도 인터넷이 쉽게 가능해지면서 각종 포털 사이트와 소셜미디어의 접근도 수시로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정보의 홍수 속에 가짜 뉴스와 악플로 큰 상처를 받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사용자의 실명화와 소셜 미디어 자체의 검열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그러나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해 행해지는 검열이 반대로 누군가를 고립시키고 인터넷 활동을 차단시키기 위해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아니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는 없다. 주로 국가간의 이해관계와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이들이 그러하다. 인터넷에 올린 동영상 하나가 집단 행동을 일으키는 단초가 되기도 하기에 정치적으로 민감한 권력집단에서는 이런 활동과 활동가들을 싹부터 도려내고 싶은 것이다.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미투도 인터넷이 그 시작이 아니었는가 말이다.
관리라는 이름으로 감시하며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진실의 은폐는 보호라는 허울좋은 명목으로 삭제, 검열되는 셀 수 없이 많은 예들이 <보호받고 있다는 착각>에 수록되어 있다. '언론의 자유'. 새로운 정부가 집권을 하면 언론부터 장악하던 때가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집권당이 바뀌면 포털사이트의 뉴스도 분위기가 달라진다. 정말 언론의 자유는 가능한가? 급진주의자들과 알카에다도 이용하는 소셜미디어의 관리, 검열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자들의 도덕성은 믿을만 한가? 검열하는 자들의 표현은 누가 검열하는가? 서로가 서로를 감시, 견제하는 구도에서 힘의 무게 중심은 권력을 가진 쪽으로 기울게 마련이다. 인종, 성별, 연령, 종교와 관련된 혐오와 포르노의 노출도 표현의 자유로 인정해야 할까? 이러한 것들 때문에라도 최소한의 검열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무엇보다 보호받고 있다는 의심없는 무조건적 믿음보다는 의식이 깨어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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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플랫폼에서 어떤 표현이 허용되고 금지되는가?' 우리는 감시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어딜 가나 나의 정보는 노출되어 있고, CCTV로 나의 행동은 추적당하고 있다. 내가 쇼핑한 흔적은 검색 사이트 광고배너로 걸리고, 내가 남몰래 확인한 정보 또한 나를 따라다니며 홍보 전화로 바뀌어 오기도 한다. 우리는 더 이상 자유롭지 못하다. 거기에 덧보태어 거대 플랫폼들은 자신들의 기준에 맞게 콘텐츠를 검열하고 감시한다. 그야말로 감시사회이다. 이 책은 거대 플랫폼의 검열과 감시에 대한 진실을 폭로하며, 이 시대의 자유 민주주의는 도대체 어디로 간건가에 대한 질문을 한다. 소셜 미디어는 우리 생활 속 깊숙히 파고 들어 우리의 표현의 자유는 물론 뇌까지 정복하려 한다. 그들은 총기 사진은 괜찮지만, 엉덩이와 가슴 사진을 검열 직원에게 지우라 지시하고, 그들만의 세계관을 구축한다. 물론 소셜미디어 덕분에 우리는 많은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 일부 권력가들의 소유물이었던 정보들이 많은 이들에게 공유됨으로써 그들의 정치가 어려워지긴 했지만, 우리는 좀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민주주의의 대열에 한껏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가슴 사진이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다른 무수한 표현의 자유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상상해봤는가? 만약 정치적인 사안이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졌다면, 이것은 과연 누가 저지른 일일까? 믿는만큼 가려지는 것도 많을 것이다. 어쩌면 정치와 결탁한 거대 플랫폼의 정치판에 놀아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검열의 기준이 어디여야 하는가는 이견이 많을테지만, 이제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제대로 직시하고 그들의 플랫폼이 제멋대로 굴지 않도록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해야할 것이다. 시대가 넘어가고 있는 시점에 엉뚱한 이들이 국민을 속이고 권력을 잡는 그런 일은 없어야 할테니 말이다. 많은 이들이 이 책으로 인해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소셜미디어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고, 그 목소리가 의미가 있다는 느낌을 줬어요. 이집트에서 젊은이들이 최초로 진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책 속에서...> '페이스북은 자사 플랫폼에서 총기 광고를 게시하는 것은 허용하면서도 ‘질’에 관한 책 광고를 게시하는 것은 금지한다. 그래서 도널드 트럼프는 트위터에서 다른 국가를 무력 침공하자고 트윗해도 아무런 제재를 당하지 않지만, 여성의 유방은 틈새 사이에 꼭꼭 감춰진다.' <책 속에서...> #도서협찬 #보호받고있다는착각 #온라인검열은누구를위한것인가 #질리안요크 #방진이옮김 #책세상 #사회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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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등장은 혁명이었다. 세계 각국에 사는 사람들을 단숨에 연결 시킨 인터넷은 앉은 자리에서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거의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만들었다. 게다가 평범한 사람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론장이 활성화되며 권력층에서는 여론의 눈치를 보기도 한다. 어느 시대보다 빠르게 정보의 평등을 이뤄낸 것도 인터넷 덕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플랫폼이 또 다른 권력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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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광주에서 태어난 나는 검열이란 단어의 뜻을 알기도 전부터 세상 소식을 권력자들의 마음대로 관리하고, 고치고, 차단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몸소 느끼며 자랐다. 군인에게 맞아 사람들이 쓰러지고 개돼지 취급을 해도 이 좁은 땅덩어리 안에서조차 소식을 전하지 못했던 그런 시대였으니 말이다. 그 당시에는 언론이 검열당해 내 뜻을 자유롭게 세상에 알리지 못하는 시절이었다. 그렇게 억압된 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게 인터넷의 발달과 자유롭게 자신의 뜻을 글로 전하는 지금 시대는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시원하고 달콤한 일이었을텐데 막상 살아보니 또 그렇지만도 않다.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상상하던 시대에 살지만 버젓이 검열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왜 우리는 알지 못하는 것일까? 지금처럼 인터넷을 통한 각종 뉴스가 몇 분 만에 퍼지는 세상에서는 언론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온라인 검열이 권력자들에게 꼭 필요한 일일 텐데 우리는 정말 자유롭게 살고 있는 것일까?
블로그나 인스타, 페이스북을 포함한 모든 SNS,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관리로 위장한 검사들을 나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살아온 것이 아니었나 되돌아보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궁금해하며 알고 싶어 했다. 검열을 하려고 하면 어마어마한 시간과 인력이 소요될 텐데 어떻게 다 하는 것인지, 검열 프로그램이 있다면 도대체 어떤 똑똑한 이가 그런 것을 만들었을지, 늘 손에 들고 다니며 세상 무엇보다 내 삶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휴대폰도 사실은 검열 도구 중 하나일 텐데 왜 난 아무렇지도 않게, 내 삶을 누군지도 모를 이들에게 보여주며 살고 있는 것인지 말이다.
헌법으로도 보장되어 있는 자유권적 기본권 중에 사생활의 자유, 통신의 자유,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 등을 나는 확실히 보장받고 살고 있는지 다시 되돌아 보게 된다. 보장해 준다니 그런 줄 알고 살았는데 몰래 뒤로 검열당하고 내 기본권을 침해당했단 생각이 드니 괜시리 씁쓸해진다. 내가 대단한 글을 쓰고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게 해달라는 게 아닌데도 이런 기분이 드는데 정말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고 드러내는 사람들에게 이런 검열은 분명 어마어마하게 큰 구속이 될 것이다.
인터넷의 발달은 새로운 유통망을 만들어냈고 거기에 맞는 새로운 형식의 규제와 검열이 난무하는 어릴 적 내가 꿈꾸었던 미래와는 또 다른 느낌의 세상에 살게 되면서 어떤 신념과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지 다시금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다가올 미래가 꿈꾸던 유토피아일지 극한 현실의 디스토피아일지 알 수는 없지만 콘텐츠를 사찰당하고, 서로가 서로를 감독하며 신고하고, 삭제할 내용인지 아닌지 판별하는 관리자들의 입장도, 그렇다고 스스로가 아닌 남이 걸러주는 정보만 받아들여야 하는 이용자들의 입장에도 선뜻 편을 들 수가 없었다. 플랫폼 관리자들도 어느정도 선까지 자유를 허용해야 할지 굉장히 애매할 때가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표현하는 이들의 자유가 보지 않을 자유가 있는 이들을 괴롭히는 것은 아닌지, 분류하고 걸러내는 과정은 꼭 필요한 것인지 너무 어렵고 헷갈리고 판단하기 힘들다. 마구잡이로 퍼져나가는 성 관련 콘텐츠나 누가 봐도 나쁘다, 혐오스럽다,라는 판단을 내려야 한다면 얼마나 흰머리가 늘어날 정도로 머리를 쥐어짜야 할 것인가?
앞으로의 다가올 미래도 어떤 식의 변화가 나타날지 한 치 앞을 알 수 없지만 내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스스로의 권리와 자유를 지킬지에 대해서는 더 많이 생각해 보고 자세히 알아야 될 것이라고 본다. 누가 검열을 하고 내놓은 정보인지 판별하는 능력은 스스로 키워야 할 테니 그 첫걸음을 [보호받고 있다는 착각] 이 책과 함께 떼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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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 활성화되고 대중화되기 이전, 민중들에게 있어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 외의 것들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신문 등과 같은 일방적인 매체뿐이었다. 심지어 그마저도 검열을 겪으면서 결국 대중들에게 전달되는 이야기들은 그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들이 전달하고 싶어 하는 내용만 남게 되었다. 이러한 검열 속에서 제한된 이야기만을 들으며 살아왔던 민중들에게 있어서 인터넷의 시작은 마치 가뭄 끝에 시작된 비와도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 가뭄에 단비 같은 인터넷이 마냥 단비만은 아닌, 다른 모습의 가뭄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을 짚어내고 있다. 인터넷이 활성화된 이후로 사람들은 모두 편리함만을 이야기하고 있다. 지구 반대편과의 소통도 가능하고 인터넷이 닿기만 한다면 지구 어디의 소식이라도 들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정보들 또한 인터넷의 활성화 이전에 비해 비교하는 것이 우스울 정도로 압도적으로 많아진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혜택이다. 그럼에도 도대체 어떤 부분들 때문에 『보호받고 있다는 착각』의 저자는 첫 번째 챕터를 '새로운 문지기들'이라는 이름을 지을 정도로 인터넷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의 저자가 가장 큰 문제점으로 보고 있는 것은 인터넷과 사람들이 편리하게 사용하다 못해 이제는 거의 완전히 사람들의 일상과 하나가 되어가고 있는 서비스들인 트위터, 페이스북 등의 소셜 네트워크 등이 민중의 인식과는 전혀 다르게 과거 물리적으로 행해졌던 검열들을 온라인상으로 그대로 옮겨놓은 매개체가 되었다는 점이다. 또한 그럼에도 사람들이 이를 인지하지 못하거나, 혹은 인지하고 있음에도 인터넷이 과거의 불합리한 사항들로부터 우리를 구출해 준 가뭄에 단비 같은 존재라는 생각 속에 갇혀 이러한 문제점들 또한 문제점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그저 당연한 과정 중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과거에는 이러한 검열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온갖 애를 쓰며 사방으로 방법을 찾아다녔던 것에 반해, 현재 인터넷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검열에는 이렇다 할 수 있는 대응을 하고 있지 않은 것이 문제인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지나치고 있는 어쩌면 현재 진행형의 검열일 수 있는 것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그러고는 이에 얼마나 무심하였는지를 떠올리고는 소름이 돋기도 했다. 굳이 옛날까지 언급할 필요도 없이 지금만 보아도, 우리는 현실에서 우리의 표현의 자유를 찾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며, 이러한 자유에 대한 침해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을 한다. 그러나 그토록 민감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정작 가장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이용하며 가장 많은 정보와 표현들이 넘쳐나는 인터넷상에서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와 같은 문제점들에 대해서는 더없이 둔감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보호받고 있다는 착각』을 계기로 이러한 부분들에 대하여 더 객관적으로 알게 되었으며, 더욱 세심한 신경을 기울일 수 있게 된 것 같다. 인터넷을 한 번이라도 이용해서 어떠한 정보에라도 접근을 하거나 글을 작성하는 등의 활동을 했던 사람 다시 말하면 현대인들 거의 모두에게 이 책을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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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받고 있다는 착각』
질리안 요크(지음)/ 책세상(펴냄)
테크기업의 통제로부터 우리의 '권리'와 '자유'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 개인적으로 인스타그램을 사용하면서도 가끔 감시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좋아요' 누른 것과 비슷한 피드만 계속 보여준다던가, 예를 들면 얼마 전에 특정 연예인의 피드에 '좋아요'와 댓글을 한 줄 달았더니 그 이후 계속 연예인들 피드를 우선적으로 보여준다. '알고리즘의 미학'이라는 달콤한 용어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sns세상. 우리는 지금 코로나가 아니라, sns 열병 속에 살고 있는 느낌?
저널리스트이자 사회 운동가, 인터넷과 인권을 위한 연구 센터 연구원이자 소셜미디어 지식인으로 활동하는 저자다. 책 서문이나 1장만 읽어봐도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생각이 보인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느끼는 sns 이용에 대해 경고하고 사람들에게 그 위험성을 인식하게 한다. 저자에 의하면 구글,페이스북, 유튜브, 트위터가 전 세계 수십억의 표현에 대한 통제 건을 쥐고 있다는 얘기다.
놀라운 점은 지식인의 집단이자 표현의 자유 최전선인 실리콘밸리 근무자들이 언론의 통제권을 무분별하게 이용한다는 점이 놀라웠다. 빅테크 기업은 끊임없이 인기 검색어와 게시물을 추적해 광고주에게 제출한다. 저자 표현에 의하면 빅테크 기업과 정부의 은밀한 뒷거래에 대해 우려한다.
또 놀랐던 부분은 마크 저크버그가 페이스북을 처음 하버드 대학에서 사용할 당시, 여학생들의 사진을 무분별하게 게재하고 예쁘다? 안 예쁘다? 라는 방식으로 클릭하게 하고 미모 품평을 한 점 역시 놀라웠다. 세 번의 유산 끝에 뒤한 딸을 얻었을 때 딸이 살 세상을 위해 통 큰 기부를 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 때까지만 해도 그의 선의에 감동했었는데 실망감이 크다.
'검열'은 독재정치 시대에나 있을만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터넷이 처음 시작되던 때를 생각해 보면 정보는 누구에게나 평등하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그러나 불과 10년도 채 지나지 않아 우리가 검색하는 정보가 과연 평등한가? 가진 자, 자본가, 권력을 위한 도구로서의 sns는 아닌지?? 과연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이며? 어디까지 존중받아 마땅한가? 타락한 인터넷의 시대, 자본의 도구로 전락한 sns 시대. 우리는 보호받고 있다고 심각하게 착각하며 살고 있다. 인간다움의 정체성은 어디에 있는가?
검열의 해악은 아주 크지만, 내게 가장 원초적인 고통을 안기는 것은 바로 우리의 역사 자체를 감추고 지우는 검열의 능력이다 그것은 우리가 과거의 실수에서 교훈을 얻고 성장하며 사회로서 진보하는 것을 막는 능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p 399
사람보다 수익이, 인간보다 기계가 먼저인 세상, 우리의 인권과 정체성을 지키기 위헤 과연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그 지침서가 되는 책이다. 책의 마지막에서 미래는 우리가 써 내려가는 것이라는 책의 마지막 챕터가 인상 깊다. 플랫폼 빅브라더 시대~~!!!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조지 오웰의 소설 《1984》가 생각났다. 텔레스크린은 sns 우리가 사용하는 소셜미디어로 대체되었을 뿐, 무엇이 다른지?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이라던 소설 속 문장이 떠올랐다. 책을 읽으며 가장 좋았던 점은 기존의 생각에 대한 전환, 더 나아가 지금 이대로가 좋은가에 대한 깊이 고민 제시, 그리고 결론에서 어떤 안건 제시가 아니라 우리는 끝없는 수정을 통해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부분이었다.
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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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8일, 한 세대를 풍미한 일본의 정치인이자 전 총리 '아베 신조(1954~2022. あべしんぞう, 安倍晋三, Abe Shinzo)가 유세 활동 중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범인은 전 해상 자위 대원 야마가미 데쓰야(41)라고 밝혀졌지만, 한때 재일교포라느니 귀화한 한국인이라느니 하는 루머가 떠돌아 여차하면 다시 한번 두 나라의 감정싸움이 재점화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 아닌 걱정도 불러일으켰다.
사건 직후 온갖 미디어와 네트워크는 아베 전 총리가 총에 맞는 그 순간, 두 발의 총성, 가슴과 목 부근에 피를 흘리며 바닥에 누워 있는 사진, 닥터 헬리(Doctor-Heli)로 이송되는 모습, 병원에 도착하는 모습, 범인이 도주하려 시도하자 SP가 용의자를 덮쳐 체포하는 순간까지 단 한순간도 빼놓지 않고 화면에 담아냈다. 일본은 충격에 휩싸였고, 국내 각종 뉴스에서는 너나없이 이 사건이 보수의 결집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그리고 다음 날인 7월 9일,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일부 소셜미디어가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피격 장면이 담긴 영상을 '삭제'하기로 했다. 또한 '플랫폼에서 폭력적인 행동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인터뷰와 함께 용의자 야마가미 데쓰야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계정을 폐쇄했다고 밝혔다. 트위터는 피격 영상을 해로운 콘텐츠로 규정하고, '폭력적이고 민감한 시각 매체를 제약하도록 한 규칙에 따라' 적절한 조처를 할 것이라 예고했다. 그것은 유튜브 역시 마찬가지였다. 거의 모든 플랫폼이 아베 전 총리의 피격 장면을 '폭력적이고 유해한 콘텐츠'라고 본 것이다.
최근의 기사에도 등장했듯, 플랫폼은 도대체 언제부터 '이용자를 대신하여' 콘텐츠를 '판단할 자격'을 얻게 되었을까? 언제부터 우리는 그러한 플랫폼의 판단에 '저항하지 않게' 되었으며, 순순히 따르게 되었을까? 인터넷의 익명성이 나의 자유를 지키고, 나의 취향에 맞춰 운영된다고 '느끼는' SNS는 진짜 나의 자의로 운영되는 것이 맞을까?
질리안 요크의 <보호받고 있다는 착각>은 이러한 거대 플랫폼이 '보호'를 빙자한 '검열'을 통해 우리의 삶을 어떻게 조절해 왔는지 되짚어주는 역사에 관한 책이다. 물론 정당한(혐오 표현이나 잔혹한 콘텐츠 등) 이유가 있는 통제라면 수긍할 수 있겠으나, 문제는 이렇게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거대 플랫폼과 특정 이익 집단의 '뒷문 공조'다. 일명 '콘텐츠 카르텔(에블린 두엑)'이라 불리는 연합은 서로의 이익과 안전을 위해 불투명하고 무책임한 방식으로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세력을 억압한다.
온라인 세계는 점점 더 계층화되었고, 힘을 가진 임의적 집단이 우리가 무엇을 보고, 우리가 무엇을 알아야 하고,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결정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내 스스로의 의지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경향은 정치, 사회, 경제 모든 분야에서 작동하고 있으며 젠더 문제, 혐오의 전염 등 이데올로기마저도 통제가 가능한 빅브라더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보호받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플랫폼의 '검열'에 순순히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과거의 역사를 통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정하듯 우리는 이제 플랫폼이 지나온 역사를 되짚어보며 지향해야 할 곳을 정해야 한다. 그러한 방향의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는 질리안 요크의 <보호받고 있다는 착각>ㅡ 우리는 이제 가장 어려운 첫 한 발을 내디딜 때가 되었다. 콘텐츠라는 도구가 나의 집을 좌지우지하도록 방치할 수는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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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깜빡 속고만 있었단 기분이 들었다. 우리가 사용하는 SNS의 민낯을 그대로 파헤쳐 놓은 <보호받고 있다는 착각>
"쇼설미디어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고, 그 목소리가 의미가 있다는 느낌을 줬어요. 이집트에서 젊은이들이 최초로 진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P. 133
개인의 사생활을 SNS에 공유하고, 같은 관심사와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 좋아요를 누르며 공감하며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마음대로 표현 할 수 있는 곳이였다고 생각했던 이 모든것들이 , 국가에 의해, 권력에 의해 막무가내로 삭제되고, 차단당하고 계정이 영구 추방당하는 황당한 사건들을 읽다보니, SNS는 창살 없는 감옥이란 생각이 번뜩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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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쇼설미디어의 '테러리즘' 검열은 언론 거버넌스를 둘러싼 기존의 규범에서 훨씬 더 멀리 벗어난 영역에 속한다. 평상시에는 '표현의 자유!'를 외치는 정치인들도 콘텐츠 삭제를 전혀 문제 삼지 않는다. 적법절차의 원칙과 테러 단체를 단순히 언급한 한 개인의 표현의 자유는 완전히 무시해버린다.
일반적으로 쇼설미디어에서의 언론 거버넌스는 투명성과 책임성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이른바 테러리스트 언론 검찰은 점점 더 비밀스러워지고 있고, 그에 관한 의사결정은 밀실에서, 시민사회의 실질적인 참여 없이 오직 권력층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결정에 의해 가장 큰 타격을 입게 될 공동체가 그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되고 있다. P.218~219
철저하게 믿고 자유롭게 사용했던 SNS속의 공간에서 우리의 자유와 권리가 보호 받고있다고 생각했던 착각을 확 깨버렸다.
규제와 통제가 너무나 허술하게 작용하고 있고, 이로인해 힘 없는 개인들의 자유와 권리는 무참히 짓밟아 버려지는 이 모든 모습들이 21세기에서 가히 충격적이다.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가상공간에서 철저하게 우리는 놀아나고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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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관리 자동화가 확대되면서 억울하게 삭제되는 콘텐츠의 수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고 하니, 우리 모두가 여기에 더 관심을 가지고 무차별적으로 삭제되는 우리의 자유와 권리를 되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나마 한국은 표현의 자유가 다른 나라보다는 자유롭다고 생각 한다. 한국보다 더 자유로울 것 같은 미국조차도 검열에 걸리는 해시태그를 하거나 사진, 동영상을 올렸을 때 무작위로 삭제되는 부분은 우리가 생각하는 미국과는 또 다른 숨겨진 모습이지 않나 싶다.
특히나 나라별로 규제와 통제가 더 강화된 곳들도 이제는 개인들이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누리고 다양한 정보들을 폭 넓게 받아 들일 수 있도록 콘텐츠 관리 자동화 시스템도 더욱더 세심하게 보완해야 할 것이며, 어디서 부터 어디까지가 검열과 통제의 대상이 되는 단어인지도, 세밀하게 따져보고 보완ㆍ수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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