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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미학 에세이를 통해 만나는 미학이라는 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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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한동안 정기구독하던 씨네21을 끊았다. 언젠가부터 영화에 대한 아무 사전 정보 없이 영화를 보는 경우, 내 나름의 느낌과 감상에 충실함으로써, 영화가 주는 진짜 재미를 더욱 만끽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부터였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작품 자체가 순간적 쾌감과 짜릿함 웃음 등을 주는 가치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그 영화가 품는 예술적 가치와 사회적인 의미들을 캐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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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한동안 정기구독하던 씨네21을 끊았다. 언젠가부터 영화에 대한 아무 사전 정보 없이 영화를 보는 경우, 내 나름의 느낌과 감상에 충실함으로써, 영화가 주는 진짜 재미를 더욱 만끽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부터였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작품 자체가 순간적 쾌감과 짜릿함 웃음 등을 주는 가치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그 영화가 품는 예술적 가치와 사회적인 의미들을 캐치하기에 스스로의 지적, 감성적 통찰이 부족한 경우를 다른 이의 후기나 평론을 보고 깨닫는 경우도 많다. 어쨌거나, 씨네 21 중 몇몇 정기 칼럼을 놓지는 건 아쉬운 일이었다. 진중권 미학 에세이가  대표적인 예인데, 이 책 미학 에세이는 씨네북스가 그 컬럼들을 모아 책으로 엮은 것으로 2012 년부터 2013 년 초까지의 글들이 담겨 있다. 그는 트위터를 통해 가벼운 언사로 대중의 인기와 질타를 한몸으로 받는  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아이콘이지만 그의 글은 진중하다.

 

인셉션 같은 영화들은 영화 평론가의 분석과 인터넷 상의 여러 해석들은 읽고 나면 부주의하게 흘려보낸 작은 암시 같은 것들이 영화 전체의 해석에 더욱 풍부한 세계를 열어준다. 여기에 비평가들의 순기능이 있다. 일반인이 놓치기 쉬운, 전문적 식견과 통찰력을 동반한 작품의 해석은 때로 작품의 가치를 높여주기도 하며, 잘 쓰여진 예술 비평은 그 자체로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스스로 자신의 작품을 언어적으로 잘 표현하지 못하는 잭슨 폴록을 세계적 스타로 만든 사람은 비평가 클레멘트 그린버그였다. 그의 언어를 통해, 폴록의 페인트 뿌리기가 예술이 되는 순간은 어쩌면 대중이 이해못할 작업을 폴록이 완성했던 순간이 아니라 폴록의 정신이 비평가의 글을 통해 언어로 세상에 번역되었을 때였을 지도 모른다.

 

진중권은 미술계의 수집가들과 큐레이터 역시 시대의 미술 비평의 담당하는 시대의 한 축이라고 말한다. 홍라희의 취향은 대한민국 예술계의 트랜드가 된다. 그의 취향이 서구에서는 30년이 지난 한물 간 스타일이라고 해도, 회화 예술이 콜렉터들의 수집 경향과 값으로 매겨지는 현실에서, 홍라희의 발자취를 따라, 눈길이라도 한 번 받기 위해서라면, 홍라희의 취향에 따라 예술가들의 붓질이 움직여져야 한다. 그래야 콜렉터들의 눈에 띄고, 값이 올라가고, 예술가들의 인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이 물론 그런  얘기들을 시시콜콜히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가끔 미술관, 화랑가를 찾으면 ‘알현’을 하려는 화랑주들과 작가, 기획자들이 몰려온다. 자기네 작품을 설명하고 한번이라도 눈길을 받으려고 안달이다. 그가 유심히 본 미술품은 당장 인기 그림이 된다. 기하학적 화면의 미니멀리즘 그림을 좋아하는 그는 서구에서 30년 전 끝난 이 그림풍을 1990년대 이후 한국 화랑가의 최신 유행으로 만들어내는 괴력도 보여주었다.”(‘위태로운 미술지존 홍라희’ <한겨레21>, 2007년 12월6일자) 화랑에 나타난 그녀의 모습은 내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거기서 그녀는 거의 재림예수였다. 죽은 나사로를 되살린 예수처럼, 그녀는 죽은 예술언어를 되살린다.

 

또한 예술 비평에 대한 의식적 세계관을 몇몇 에세이를 통해 드러냄으로써 간접적으로 자기 성찰레 대한 의지를 나타냈다. 비평의 세 가지 요건 즉, 작품의 특성에 관한 기술, 작품의 가치에 대한 평가와 더불어, 비평문 자체도 문학적 형식을 갖추어야 한다는 드레스드너의 세가지 요건을 인용하면서, 그 비평 자체로 문학이 되는 새로운 비평의 몇 가지 예, 평론가 로제 드 필은 화가들과 논쟁을 통해 ‘회화에서 윤곽보다 색채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관철시킨 덕분에 프랑스 미술은 이탈리아의 영향에서 벗어나 고유의 민족적 양식(로코코)을 확립했던-들을 제시한다. 한편, 예술에는 맞다 틀리다가 없고 단지 취향이 있을 뿐이며 따라서 비평가는 예술에 기생하는 기생충이라는 김규향의 주장에 대해, 창작과 비평은 서로의 영역이 틀리며, 비평가는 작가-작품-관객의 사이에서 피드백 역할을 하며, 예술적 소양이 부족한 일반 대중에게 작가와 작품을 매개한다는 비평가의 자리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진중권의 미학 에세이는 소크라테스, 칸트, 데카르트, 라캉, 베르그송, 브르통, 바타유 등등 수없이 많은 세대를 통과해간 철학자, 비평가들의 세계관과 잭슨폴록, 아마데우스, 김삿갓, 리펜슈탈, 앤디워홀, 다비치, 구르스키, 예술가들을 상황주의, 회복과 복구, 로테스크 리얼리즘, 분변증, 게이 미학, 팩토리얼리즘 등의 온갖 미학사와 종횡으로 교차하시켜 미학적 사색 안의 어떤 담론 속에 용해해 내고 있다. 예술에 대한 식견이 부족하고, 미학의 역사에 대한 지식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에서 이 글을 읽는 데에는 인내심을 요구한다. 문장에 쓰인 생소한 발음하기 조차 어려운 예술가 및 비평가들, 그리고 예술 사조들의 이름은 읽기의 흐름을 끊임없이 방해하고, 때때로 발견하는 무지에 대한 자각에 지적 상대적 박탈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훌륭한 책이다. 모르는 건 내 사정이지, 진중권의 잘못이 아니다.  예술과 철학, 그리고 시사까지 어우르는 그의 사색의 읽기 과정은 정독의 즐거움을 준다. 미학 오딧세이를 빌려왔다.

 



g******1 2013.12.04.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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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미학 에세이 : 예술의 눈으로 세상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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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속 통조림이 예뻐 보이지만 알고 보면 이 사진은 '예술가의 똥'이다. 하필 왜 이 작품을 표지에 실었는지 저자의 저의가 궁금하여 웃었다.)   yes24에서 하루키와 진중권의 신간이 나오면 문자를 보내주곤 해서 이 책 역시 출간하자 마자 얼른 주문했다. 그나저나 요즘 진중권의 예전 책들이 리뉴얼 되어서 세트로 팔리고 있구나. 미학 에세이 시리즈로 묶여 있는 "현대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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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속 통조림이 예뻐 보이지만 알고 보면 이 사진은 '예술가의 똥'이다. 하필 왜 이 작품을 표지에 실었는지 저자의 저의가 궁금하여 웃었다.)

 

yes24에서 하루키와 진중권의 신간이 나오면 문자를 보내주곤 해서 이 책 역시 출간하자 마자 얼른 주문했다. 그나저나 요즘 진중권의 예전 책들이 리뉴얼 되어서 세트로 팔리고 있구나. 미학 에세이 시리즈로 묶여 있는 "현대미학강의"와 "앙겔루스노부스"도 엄청 재미있게 읽었는데... 내용이 많이 바뀌었나 싶어 오프라인 서점에서 서문만 다시 읽어보았는데 다시 읽을 필요까지는 없을 듯했다. 

 

최근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후기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편"을 읽으면서 개론서처럼 잘 정리된 느낌이라 과연 '진중권의'라는 말을 붙일 만한가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이야 말로 '진중권의'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야 마땅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씨네21에 미학 에세이를 연재할 때 어느 정도 글이 쌓이면 주제별로 재배치해 단행본으로 출간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구입해서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도 기대감을 충족할 수 있는 재미있는 글들이 실려있다. 아마도 세번째 "서양미술사"를 쓰려고 여러 글을 읽던 시절에 쓴 글들인 듯 주제가 비슷해서 "서양미술사"를 보완해주는 듯하다. "서양미술사"에 비해 진중권의 사적인 의견을 더 많이 접할 수 있어서 재미있다. 요즘 그의 관심사를 읽을 수 있기도 하다.

 

특히 이 책을 읽다 보면 진중권의 "춤추는 죽음"과 그의 아내가 쓴 "성의 미학"이 연상된다. 성욕(에로스에 가까운)이나 해체(타나토스에 가까운)는 현대 미술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주제, 소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브르통의 초현실주의는 이렇게 '위로 상승하는 형성의 충동', 즉 물질이라는 죽음의 상태에서 생명의 형식을 쌓아올리려는 '에로스의 충동'이었다. (예술적으로도 초현실주의는 다다와 달리 그 자체가 하나의 확립된 '양식'이었다.)

반면, 바타유에게 초현실주의는 '형성'이 아니라 '해체'의 충동을 의미했다. 초현실주의자들이 폐허의 이미지에 끌린 것은, 그 위에 뭔가를 구축하려는 욕망에서가 아니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폐허 그 자체에 매료됐다는 것이다. 결국 브르통과 바타유의 차이는, 초기 프로이트('에로스의 충동')와 후기 프로이트('타나토스의 충동')의 차이라 할 수 있다. 바타유에게 초현실주의는 죽음의 상태, 즉 형태가 없는(formless) 물질로 회귀하려는 욕망을 의미했다(117-118쪽)."

 

진중권과 김규항의 논쟁은 유명한데, 이 책에서 김규항에게 변론하는 비평가 진중권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비평가 이야기를 하면서 칸트의 말을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 현대의 규칙이란 아래와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학생들에게 도덕을 가르칠 때도 그들이 니체의 주장처럼 노예도덕이 아니라 주인도덕의 자세를 배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킬 약속을 내가 정해 책임을 지는 거다. 요즘 교칙(생활규정 혹은 생활협약)에 대해 고민이 많아서 이 부분을 옮겨 적어둔다.

"칸트는 예술가를 '천재(genie)'로 규정했다. 이는 '장인(meister)'이라는 고전주의의 예술가상과 확연히 구별된다. 장인은 오랜 학습을 통해 습득한 예술의 기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사람이다. 천재는 다르다. 그는 "규칙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 규칙을 제정하는 사람"이다. 낭만주의 예술가는 이렇게 타고난 재능에 따라 예술의 규칙을 제정하는 입법자다. 흔히 "타고난 예술가가 있듯이 타고난 비평가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입법자로서 비평가도 존재하지 않을까?(283쪽)"

 

논문 쓰면서 칸트의 "판단력비판"을 읽던 생각이 나는 대목이다.(주관적 보편타당성- 미적 무관심성+ 공통감). 핵심을 참 정리 잘하시는 진중권교수님. 칸트도 그처럼 간결하고 맛깔나게 글을 썼으면 좋았겠다.

"주관적 보편타당성

프랑스 합리론을 취하면 미적 독단론에 빠지고, 영국 경험론을 취하면 미적 회의론에 빠진다.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이 두 입장을 적절히 종합함으로써 딜레마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는 취향이 주관적이라는 경험적 사실에서 출발하나, 동시에 '미적 판단은 보편타당하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미적 판단은 '주관적 보편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어떻게 주관적인 판단이 동시에 보편성을 가질 수 있는가? 이 형용모순을 설명하기 위해 칸트는 두 가지 개념을 제시한다.

하나는 '미적 무관심성'이다. 칸트에 따르면 사람마다 미적 판단이 달라지는 것은 거기에 불순한 요인들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가령 미적으로 아무 가치도 없는 작품을 그저 재료가 금이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말할 수도 있다. 정치적, 종교적 관심 역시 작품의 공정한 판정을 방해하는 편견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마디로 그런 예술 외적인 '관심'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판단을 내린다면 모든 이의 미적 판단이 일치하리라는 믿음이다.

다른 하나는 '공통감', 말하자면 모든 사람들의 인식 기관이 선험적으로는 동일하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의 인식 기관은 동일하기에, 비록 개인의 쾌·불쾌의 감정에 따른 주관적 판단이라 할지라도 그 판단이 공통감에 근거한 것이라면 동시에 객관적 필연성을 띠게 된다. 말하자면 우리는 미적 판단을 내릴 때에 온갖 사적 이해와 관심에 얽매인 '경험적' 자아에서 벗어나, 공통감에 따라 판단하는 '이상적' 자아의 위치로 올라서야 한다는 얘기다(155-156쪽)."

 

이후에 '정의는 논쟁할 수 없다'고 해서 정치적인 대화 역시 칸트가 말하는 공통감(sensus communis- common sense 상식!!)을 가지고 판단해서 대화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칸트 읽을 때 생각했던지라 매우 공감이 가는 부분이었다.

 

잡지에 꾸준히 연재했던 에세이라 한 편 한 편이 짤막하고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바쁜 학기 중에 짬을 내어 끊어 읽어도 무리가 없어서 좋았다. 미학 책을 읽고 있으려니 계속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또 다시 든다. 아래 부분을 읽을 때 '아름다움과 숭고함'이 생각나서 좋았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o****2 2013.11.2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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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자의 시선으로 보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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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세계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일 것이다.그렇다면 미학자가 바라보는 세계는 과연 어떻게 비춰질지, 더불어 논객이라는 위치를 어떤식으로 반영될지 궁금할 따름이다. 심히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잡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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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세계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일 것이다.그렇다면 미학자가 바라보는 세계는 과연 어떻게 비춰질지, 더불어 논객이라는 위치를 어떤식으로 반영될지 궁금할 따름이다. 심히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잡아봅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g*****6 2016.01.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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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미학 에세이』, 미시마 유키오와 레미제라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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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미학 에세이』는 그가 《씨네21》에 연재한 에세이들을 묶은 책이다. 《씨네21》을 거의 매주 챙겨보긴 하지만, 진중권의 글을 꼬박꼬박 챙겨보진 않았기 때문에 낯선 글들을 꽤나 많았다. 구독해서 읽으셨던 분들은 굳이 다시 읽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잡지로 읽는 것과 단행본으로 읽는 것은 느낌적인 차이가 있으니 새로운 기분으로 읽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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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미학 에세이』는 그가 《씨네21》에 연재한 에세이들을 묶은 책이다. 《씨네21》을 거의 매주 챙겨보긴 하지만, 진중권의 글을 꼬박꼬박 챙겨보진 않았기 때문에 낯선 글들을 꽤나 많았다. 구독해서 읽으셨던 분들은 굳이 다시 읽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잡지로 읽는 것과 단행본으로 읽는 것은 느낌적인 차이가 있으니 새로운 기분으로 읽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아무래도 사진 등의 자료들이 보다 체계적으로 구성되긴 했으니까.


진중권의 글을 좋아하긴 하지만, 미학 관련 글에는 딱히 취미가 없다. 그래서 많은 것을 건지진 못했는데,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죽음 앞의 인간 - 미시마 유키오의 죽음과 유미주의'와 '우리가 잃어버린 것: 민주주의적 에토스와 사랑'이라는 챕터였다. 진중권의 『미학 에세이』는 그가 《씨네21》에 연재한 에세이들을 묶은 책이다. 《씨네21》을 거의 매주 챙겨보긴 하지만, 진중권의 글을 꼬박꼬박 챙겨보진 않았기 때문에 낯선 글들을 꽤나 많았다. 구독해서 읽으셨던 분들은 굳이 다시 읽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잡지로 읽는 것과 단행본으로 읽는 것은 느낌적인 차이가 있으니 새로운 기분으로 읽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아무래도 사진 등의 자료들이 보다 체계적으로 구성되긴 했으니까.



-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


무엇보다 평화헌법 반대와 천왕제를 부활을 주장하며 할복했던 미시마 유키오의 죽음에 대한 진중권식 해석이 흥미로웠다. 많은 사람들이 미시마 유키오의 죽음을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하고 풀이한다. <한겨레>의 허미경 기자의 말처럼, 미시마 유키오에 관한 이전의 글들은 "일본 문학자들이 미시마의 탐미주의를 탐구하다가 그 탐미 안에서 길을 잃기 십상이었고, 그 대척점에 선 글들은 그의 극우적 민족주의 자체에 대한 '준엄한' 사상 비판에만 머"무르는 한계를 안고 있었다.


진중권은 미시마 유키오의 죽음을 '일본 특유의 유미주의가 극단적으로 나타난 현상'이라고 정의한다. 미시마에게는 '죽음을 향한 자신의 성적 충동을 포장할 어떤 가치가 필요'했는데, 그것이 '우국'과 같은 대의명분이었다는 것이다. '낭만적 죽음이 사라진 시대에 운문적 죽음을 연출해야 한다는 게 미시마의 가장 큰 실존적 문제'였다. 문제는 미시마 유키오가 살았던 일본사회는 '대의를 위한 의미 있는 죽음이 이미 사라진 시대'였다는 것이다. 미시마의 선동에 일본 사람들이 비웃음과 모욕으로 반응했던 것은 그러한 시대적 상황을 잘 보여준다. 미시마는 그것을 몰랐을까? 자신의 문제에 골몰하면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없는 것일까? 아니면 기막힌 연출을 통해 역전의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작가이자 영화 감독이었던 미시마는 자신이 출연하거나 감독을 맡았던 영화에서 이미 몇 차례 할복 장면을 연출한 경험이 있었다. 일종의 실험이었을 수도 있고, 그러한 연출에 심취한 나머지 그것을 현실로 연장시키는 선택을 한 것일 수도 있다. 보디빌딩을 통해 가장 아름다운 할복을 준비했던 것도 그의 영화적 연출 감각일까? 어찌됐든 그는 '할복'이라고 하는 형식과 '우국'이라는 대의명분에 자신의 지극히 사적인 충동을 발산했다. '자살이라는 극단적 방식으로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지움으로써 현실의 비루한 자아는 거울(=영화)에 비친 완벽한 자아, 자아의 이상에 도달'한 것이다. 물론 진중권은 무덤덤하게 한마디를 보탠다. 그것은 '그다지 영웅적이지 못하다'고 말이다.




-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



'우리가 잃어버린 것 : 민주주의적 에토스와 사랑'은 대선 직후에 쓰여진 글인데, <레미제라블>의 엔딩곡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의 기사로 시작된다. 대선을 복기하는 것은 참 가슴 아픈 일이긴 하지만,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우리가 다시 세워야 할 것은 우리 바깥의 바리케이드가 아니라 우리 내면의 에토스인지도 모른다. 그 추위에 지팡이를 짚고 투표장에 나서는 노인들은 경멸의 대상이 아니라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만 한다. 비록 그들이 나라를 사랑하는 방식은 우리와 다르지만, 나라를 사랑하는 그 열정만큼은 우리의 것보다 더 뜨거울 것이다. 그들 역시 우리처럼 '비천한 자들(les miserables)'이다. 왜 우리는 그들을 우리의 협력자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진중권의 자성과 지적은 참으로 뻐아프다. 대선 이후, 세대간 갈등이 심화되었던 것은 당장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아직까지도 그 골이 메워지지 않고 있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바리케이드 저 너머에도 연대해야 할 민중이 있다. 그저 바리케이드 저쪽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가 그들을 너무도 쉽게 적으로 돌려놓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는 진중권의 진중한 고백은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말이며, 지금 이 순간 우리가 고민해야 할 숙제이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w********t 2013.11.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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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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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처럼 미학에 관한 주제를 에세이 형식으로 너무 길지도 어렵지도 않게 엮어져 있어서 흥미를 가지고 읽을수있는 책이 아닌가 싶다 표지에 나온 통조림은 현대미술작품중의 하나로 작가가 자신의 배설물을 담으로 캔통조림으로 특수제작한것이라고 한다 한정량으로 만들어서 대단히 비싼금액으로 팔렸는데 이안에 들어있는 내용물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는것이다 진짜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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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처럼 미학에 관한 주제를 에세이 형식으로

너무 길지도 어렵지도 않게 엮어져 있어서

흥미를 가지고 읽을수있는 책이 아닌가 싶다

표지에 나온 통조림은 현대미술작품중의 하나로

작가가 자신의 배설물을 담으로 캔통조림으로 특수제작한것이라고 한다

한정량으로 만들어서 대단히 비싼금액으로 팔렸는데

이안에 들어있는 내용물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는것이다

진짜 배설물인지 아님 다른(?)것인지 알수가 없기때문이다

비싼작품을 함부로 열어볼수도 없고

그저 작가의 말을 믿어야하는것인지

현대미술은 어렵기도 하지만 파격적이기도 하다

지금은 꽤나 유명해져서 많이들알고있지만 출품당시는 엄청난 화제였다는

하얀 변기 ㅋㅋㅋㅋ

지금은 애지중지 미술관에 모셔져있고 높은 금액이 붙여져있다

공장에서 나왔을때는 그저 다른변기들과 다르지않았던 평범한 변기가

예술가의 손을 거쳐 특별한작품으로 탄생한것이다

또 민감한 주제일수도 있는 

평론에 대한 정체성이랄까 창작과는 다른 평론만의 독자적인 영역이랄까

창작재능이없다고 해서 평론할 자격도 없느냐라는

아마도 작가는 몇년전 디워 논쟁으로 인해 더더욱 그런생각을 하게됐다고 하는데

대부분 평론가를 부정적 대상으로 인식하고있는게 아닌가 싶다

창작재능이없으면서 남을 깎아내리기 바쁜 소인배로 취급하는게 아닌가 싶은데

꼭 그런재능이없어도 평론으로서의 재능은 갖고있을수있는것이기 때문이다

미학이라고 하면 어렵고 딱딱하고 낯선것이라고 생각하여 거부감이있을수있지만

이책을 읽다보면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은

쉽고 친근하게 다가갈수있는것같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b**********1 2014.02.1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