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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서 가끔씩 ‘민감한’ 이야기에 댓글로 참여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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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곧 미술계에 큰 영향을 끼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질문 앞에서 새로운 관점으로 미술 작품을, 그리고 우리 주변 여성의 삶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린다 노클린의 글은 여성들에게 이제 불편한 마음을 감추지 않아도 된다는, 의심하고 질문해도 좋다는 주체적인 의식을 갖게 했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새로운 시선, 미술 작품을 감상할 때 품게 되는 불편한 마음을 하나하나 살피는 글이다. 그래서 책은 온통 질문이다. 10장으로 구성된 목차의 제목이 모두 그렇다. 미술 작품에는 왜 벗은 여자들이 많은가? 여성은 남성을 괴롭히는 악한 존재인가? 여성에 대한 폭력이 영웅적 행위가 될 수 있는가? 현실의 어머니가 언제나 고요하며 아름다울 수 있는가? 등 저자가 꼽은 열 가지 커워드를 토대로 송곳처럼 뾰쪽한 질문들이 미술사 안에서 지워진 여성들의 삶을 다시 들여다보게 한다.
여성을 표현한 소위 미술사 안의 '명작' 앞에서 불편했던 감정들을 그대로 질문으로 던져볼 수 있는 시간이 대단히 좋았다. 생각해 보면 작품을 향한 불편한 마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의미 있는 질문으로 남지 못한다. 어릴 적 예쁘고 아름다운 여성들이 그려진 그림을 좋아하면서도 그 그림의 배경과 사연을 알고 나면 너무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더러는 겁이 나기도 했는데, 그런 이야기(해설)가 학교나 미술관 등 공적인 자리에서 반복되고, 주변의 누구도 문제 삼지 않는 것을 보면서 어느새 그러려니 무덤덤해지곤 했다. 질문을 잃어버리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신화와 성경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마음껏(?) 여성을 향한 폭력과 혐오와 차별이 펼쳐지는 그림들이 대단한 작품이 되어 수 세기 동안 사람들에게 감상될 때, 우리는 무엇을 경험하고 무엇을 감각하게 될까. 사회는 늘 변화하고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오래전 작품 속 세상과 또렷이 구별되지만 그것을 그저 당시의 사회적 맥락, 시대적 배경으로 인정하고 물러나 편안하게 감탄하는 것만이 옳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현재는 과거를 향한 끊임없는 질문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질문은 아주 자연스럽게 '예술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라는 더 커다란 물음으로 이어진다.
작품 앞에서 분명한 질문을 품는 것은 여성 미술가들이 전혀 다른 시각을 제시하기에 가능한 일임을 책을 읽으며 알았다. 책은 부당한 시스템 안에서 예술가로서의 삶을 온전히 살아가지 못한 여성들뿐 아니라 '시선의 역전'으로 새로운 미술을 향해 커다란 움직임을 이뤄낸 작가들의 작품들도 소개하고 있다. 불편한 시선에서 이어진 질문의 답이 되기도 하는 그들의 작품은 언제나 스스로가 살아낸 생생한 경험을 이야기한다. 작품이 누구의 시선으로 만들어지는지, 누구에게 감상되도록 그려진 것인지에 따라 얼마나 다른 세상이 화폭 안에 담기는지 놀랍다.
'여성주의 미술이 세상의 모든 불평등과 연대하다'라는 꼭지의 글은 미술사 안에서 여성과 관련된 상징들을 해체하는 작업을 보여주는데 매우 흥미롭다. 대표적인 것이 거울.
흑인 여성으로 살아가는 캐리 메이 웜스의 작품 <거울아, 거울아>와 함께 전래동화 백설공주가 품고 있는 참담한 폭력과 차별을 드러내는 글이다. 어린 시절, <백설공주>를 읽고, 보고, 자라며 우리들에게 새겨진 세계관은 무엇이었을까, 골똘해진다. 캐리 메이 윔스는 스스로 거울을 들고 선 작품을 통해 여성이면서 흑인으로 살아가는 자신의 삶의 조건을 말한다. (p. 218) 한 인간의 삶의 조건을 성찰하는 것, 이것이 바로 예술이 하는 일이 아닐까. 가슴이 뛴다. 모든 인간을 관통하는 서사란 없다. 한 사람 한 사람 개별적인 인간으로 고유한 세상이 있기에 힘을 가진 특정 집단이 단정 짓는 매끄러운 세상을 향해 자꾸만 울퉁불퉁 틈을 내는 것이 일이 예술이라고 믿고 싶다.
이 책을 통해 여러 번 생각하게 되는 것은 여성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할 때, 남성들이 그린 작품과 어떻게 다른 시선을 얻게 되는가에 대한 깨달음이다.
<모성>에 관한 여러 이야기들이 특히 그렇다. 작가가 소개하는 장바티스트 그뢰즈의 그림. 여섯 명의 아이들이 소파에 앉아있는 엄마를 끌어 안거나 둘러싸고 모여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이 이 장면 안으로 두 팔을 벌리고 막 들어서는 참이다. 작품의 제목은 <사랑받는 어머니>. 여기에 붙인 '사랑받는 어머니, 혹시 그녀는 기절한 것이 아닐까'라는 꼭지의 제목은 그야말로 웃프다. 모성이란 도대체 어디로부터 온 개념이란 말인가.
에로틱한 환상이나 개념적인 행복한 육아로부터 걸어나온 파울라 모더존베커의 <누워있는 어머니와 아기> 그림이나 출산 후 여성의 몸을 사실적으로 담아낸 네덜란드 사진작가 리네케 데익스트라의 작품들은 그래서 충격적이라기보다는 반갑고도 뭉클하다. 성모 마리아거나, 팜므 파탈이거나 대비되는 이 두 모델로만 납작하게 일반화되었던 여성들이 주체적인 한 인간으로 펄떡이며 숨을 쉰다.
"이제까지 미술의 영역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실제 산모의 모습, 출산한 당사자 이외에는 알기 어렵고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전통적으로 아름답기보다는 눈에 거슬리는 요소로 이루어진 이 누드에서, 여자의 일생에서 어쩌면 가장 극적인 강렬한 리얼리티가 뿜어져 나온다." <에로틱한 어머니라는 환상을 버려라> p. 235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작품은 9장 <노화: 노년의 이미지는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공평한가>에서 만났다.
80세에 스스로의 누드 자화상을 그린 앨리스 닐. 늘어진 가슴과 풍만한 배, 울퉁불퉁한 다리. 노년의 고단한 몸을 서슴없이 드러내고 줄무늬 소파에 걸터앉아 있는 그의 그림 앞에서 실은 조금 놀랐다. 오래전 앨리스 닐의 전시를 아주 인상 깊게 본 적이 있고, 컬러플하고 자유로운 작품에 매료되어무척 좋아하게 된 화가라서 더욱 그렇다. 앨리스 닐은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다.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캔버스에 담아 왔지만 저자의 말대로 이런 누드를 내 보이는 일은 쉽지 않았을지 모른다. '보이는 자가 아니라 바라보는 사람으로서'(p.318) 스스로의 늙은 육체를 감추지 않고 이렇게 그려 남기는 화가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남성과 달리 추하고 경멸스러운 것으로 여겨지던 여성의 늙음을 아주 잘 알고 있을 앨리스 닐. 벌거벗은 몸에 단정히 쓰고 있는 안경 너머의 눈빛, 그리고 꿈틀거리고 있는 저 발가락을 가만히 바라보며 그만 울컥해진다. 이것은 누구도 아닌 내가 좋아하던 멋진 화가의 몸이고 삶이니까.
'훔쳐보지 마라, 있는 그대로를 보여 주겠다.' 마지막 10장 <위반: 현실의 여성은 어떤 존재인가> 중 한 꼭지의 글 제목이 참 당당하다. ('당당하다'라는 말을 쓰고 보니 '태도가 떳떳하다'라는 뜻을 가진 이 말이, 여성의 일과 나란히 쓰일 때, 남성 앞에 쓰일 때와는 달리 의미가 복잡해짐을 느낀다. ) 저자는 예술이 여성의 생각, 여성의 경험, 여성의 방식이 될 때 무엇이 될 수 있는지, 어떤 실천이 될 수 있는지 깊게 살핀다. 장구한 미술사 안에 펼쳐진 시선과 관념에서 얼마나 멀어지고 새로워질 수 있는지를 '당당하게' 보여준다.
책에서 도판으로 만나게 되는 금기를 과감히 깨뜨린 주디 시카고의 <붉은 깃발>이나 발리 엑스포트의 <성기 패닉>를 바라보는 마음은 여전히 어렵고 복잡할 수 있다.
"미술의 언어로는 한 번도 제대로 이야기되지 못했던 여성만의 경험을 드러냄으로써 기존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여성성에 대한 논의를 수면 위로 올리기 위함이었다." p. 342 <훔쳐보지 마라,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겠다>
그러나 책을 읽으며 여성의 몸이 겪는 경험을 모른체하고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만들어낸 남성들의 에로틱한 환상을 깨뜨리는 이 충격적인 작품들 앞에서 곧 힘을 얻었다. 스스로의 실존하는 삶을 좀처럼 표현하지 못했던 유구한 미술사의 시간들이 송두리째 왈칵 쏟아져 나오며 흔들어 버리는 그들의 용기 있는 작업을 마음으로 깊이 이해해 본다. 누군가가 규정해 준 자리, 개념을 벗어나 피와 살을 가진 인간으로서 겪었던 삶을 말하고 표현하는 일. 우리들의 삶, 우리를 만드는 삶의 조건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살아가야지, 다짐을 한다.
처음에 책을 펼치며, 제목인 <불편한 시선>이 작품 속 여성을 향한 남성 권력의 관음적인 시선, 사회와 국가 시스템의 커다란 시선을 가리키는 줄 알았다. 읽다 보니 그것은 세상의 편향된 관점과 인식을 향해 여성인 '내'가 품는 질문의 시선을 말한다. 저자는 감사의 글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이 '불편한 시선'이 미래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를 바란다고 썼다. 불편하다는 것은 그러고 보니 커다란 가능성을 품은 말이기도 하겠다. 신기하게도 많은 작품들을 전문가의 관점으로 꼼꼼하게 분석하며 들려주는 저자의 글을 읽으며 얻는 이 불편한 시선은 작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구석구석에서 새로운 질문이 된다. 동물권 문제, 기후 문제, 인권 문제 등 이 세상을 더 가치있게 따뜻하게 돌보려는 마음은 모두 이 불편한 시선과 질문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책의 마지막이 내가 좋아하는 박영숙 작가와 정정엽 작가의 작품 이야기로 마무리되는 것이 얼마나 좋았는지. 여성이라 늘 온몸으로 마주하고 겨루어야 하는 삶의 방식과 조건에 대해 질문을 멈추지 않는 두 사람의 작품 이야기에 가슴이 뻐근하다.
"세계 속의 모든 생명에 대한 무한한 친밀감과 연민, 모든 것이 태어남과 죽음 사이의 고단한 과정 안에 있다는 통찰이 그의 작품에는 깃들어 있다." p.359 <치열하게 될 대로 되기>
불편한 시선이 결국 가닿는 곳은 다툼과 질타가 아니라 모든 생명에 대한 연민이 아니겠는가. 정정엽 작가 작업에 대한 저자의 진심 어린 비평을 기쁘게 읽었다. 최근 정정엽 작가의 개인전에 다녀왔기에 더 그렇다.
그래서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이 정말 뭉클하다. 나를 이루는 내 삶 속 매일매일의 경험들을 그저 외부의 시선과 세상의 조건에 맞추느라 힘겨워했던 시간을 떠나, 다독이고 안아주며 우리 모두 한 사람의 고유한 인간으로 당당하게 세상을 향한 불편한 시선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모두에게 추천.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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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시선> 이윤희 / 아날로그 현대 문화예술의 많은 분야에서 약자와 소수자들을 향한 차별과 혐오를 인식하고 바꿔나가고자 하는 노력들이 많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성을 체감하고 받아들이는 일들은 아직 생각만큼 보편적이지 않은 것 같다. 이러한 작품들을 바라보면서 껄끄럽고 불편하다는 느낌이 든다는 사실을 숨겨야 교양 있는 사람처럼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미술 작품에 대해 달리 이야기할 전문적인 요소가 얼마나 많은데, 작품에 담긴 내용을 두고 어줍잖게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거나, 싫으니 좋으니 이야기를 하는 것은 무가치한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미술 작품은 언제나 인간의 삶을 반영하는 것이기에, 미술 내적인 것과 미술 외적인 것은 상호작용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미술 작품 안에 있는 것들은 작품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관계가 있고, 작품을 감상하는 나나 우리, 즉 관객들은 작품을 바라보며 자신이 겪은 삶의 경험을 소환할 수밖에 없다. (p.7) 우리는 세계적으로 명화라 불리는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모습을 어릴 때부터 그대로 수용하고 배우기 때문에 명작의 권위 앞에서 감히 그에 반하는 의견을 낼 생각조차 하기 어려웠다. 위대한 문화예술 작품들의 작품성과는 별개로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부분, 혹은 ’그때도 틀렸고 지금도 틀리지만 말할 수 없던‘ 것들에 대해 의문을 갖고 바꿔가는 것은 현대 시점에서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는 데에 바람직한 시선일 것이다. 어쩌면 지금의 시선도 훗날의 어느 시점에는 불편한 시선을 초래할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불편한 시선>은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들에 의문점을 시사하고 질문을 하여 생각을 이끌어준다. 저자는 미술 작품들을 보며 불편하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들을 열 가지 키워드로 묶었다. 예술계에 팽배해있지만 잘 다뤄지지 않았던 주제들이 보여서 굉장히 흥미로웠고, 이 중 가장 이목을 끌었던 부분은 [제7장 모성: 현실의 어머니가 언제나 고요하며 아름다울 수 있는가] 과 [제8장 소녀 : 소아성애는 어떻게 정당화되는가]였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기존의 통념적이고 억압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나의 시선으로 작품들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7장의 4. 훌륭한 어머니 심사임당, 나쁜 어머니 나혜석, 그 진실은? 에서는 우리 사회가 남성 예술가에 대해서는 들이대지 않는 ’양육자‘ 이자 ’집사람‘에의 의무를 여성 예술가에게만 묻는 것에 의문을 제기한다. 신사임당이 5만원권 지폐의 모델로 선정된 이유는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여류 예술가”이자 “어진 아내의 소임을 다하고 영재교육에 남다른 성과를 보여준 인물”이며 “우리 사회의 양성평등 의식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교육과 가정의 중요성을 환기하는 효과가 기대된다”고 밝혔다. 이 글을 읽으며 화가이자 자기 자신이었던 나혜석이 떠오르고, 그와 반대로 완벽하게 집안일과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며느리로서 의무를 다한 완벽한 여류작가로 추앙받는 박완서가 생각이 났다. 어째서 여성예술가들은 작품 자체로 평가받지 못하고 외모나 ’여성으로서의 역할‘을 다한 것이 전제가 되어야하는가? 그리고 [제8장 소아성애는 어떻게 정당화되는가]에서는 화가 자신의 욕망이 마치 어린 여자아이의 욕망인양 투영하여 그려냈다는 점에서 굉장히 화가났다. 우리는 이런 작품들을 그저 화가의 개성, 예술성으로 치부하고 외면해야하는가? 사실 이 그림을 바라보며 감추어진 욕망을 일깨울 이들은 어린아이가 아니라 이 작품을 그린 작가와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들일 것이다. 그럼에도 마치 아이가 욕망을 가진 것처럼 그려져 있어, 이 작품을 바라보며 자신의 욕망을 깨닫는 이들은 자연스럽게 도덕적 문제 상황에 봉착하지 않는다. (p.283) 저자의 말처럼 “그렇게 온 세상을 다 불편해한다면 얼마나 불행하겠느냐고” 사람들은 쉽게 외면할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오히려 삶을 냉소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것으로 보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이야기한다.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위해 다소 불편한 시선을 가지고 세상을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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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다양한 미술작품을 전시 기획하고 글을 쓰면서 여성인 저자가 느꼈던 불편함의 원인을 찾아보기 위한 의문, 시선, 누드, 악녀, 혐오, 허영, 모성, 소녀, 노화, 위반 키워드 열 개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여성의 시선으로 새로운 여성 미술 이야기를 들려준다. 남성들의 벗은 신체를 보는 것이 여성들을 그릇된 욕망을 자극하여 교양을 해친다는 이유에서 여성 화가는 남성 누드모델을 관찰하는 누드 수업에는 참여할 수 없었다. 남성과 동등하게 위대한 화가가 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지 못했고 여성이 공식적인 교육에서 배제, 직업 화가로 장려되는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화가 집안에서 태어나 자연스럽게 그림을 배우는 경우가 있었다. 균형 잡힌 누드를 보며 아름답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작품을 바라보는 남성 위주의 미감이 지배했던 시대에서 미술사 기술의 주체가 남성이라 수많은 '여류'들은 미모에 평을 받아야 했다. 여성이 바지를 입기 위해 허가서가 필요했던 시기였고 남성의 에스코트 없이 길거리를 혼자 다니는 여성은 함부로 대했다. 이때 그림을 주도적으로 관람하고 주문하는 이들 역시 권력층 남성이 압도적이었다. 대부분의 화가가 남성이기도 했고 시장이 남성 관객 중심으로 형성되었기에 그들의 입맛에 맞는 주제와 소재를 선택해왔기에 미술관에 여성의 누드 그림과 조각이 넘쳐났다고 한다. 여성 미술가의 작품을 많이 볼 수 있을 것 같아 정말 기대했는데 그 이상으로 그림에 얽힌 에피소드를 들려주고 그 시대의 역사적, 사회적인 모든 것을 생각하게 한다. 시대가 흘러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불편한 시선의 문제가 전해진다. 덧) 다른 시각에서 불편한 시선으로 그치지 않고 미술의 역사와 화가의 대표작인 그림을 알기 쉽게 설명해 재미있고 값진 시간이었다. "시선의 역전, 현대미술의 흐름을 바꾸다" 마네의 <올랭피아>는 지나치게 검거나 지나치게 희다. 힌 시트의 침대는 눈이 부셔서 오래 바라보기 어렵고 검은 배경은 너무 어두워 고양이와 하녀가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쓱쓱 대충 칠한 것 같은 붓질이 화면 전체에 난무하고, 침대나 벽, 커튼의 거리감조차도 명확히 표현되지 않았다. 도저히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반항적 화풍, 당시에는 재안권에 머무르던 인상주의를 예고하는 화풍을 가지고 있었다. 아름답지도 않은 벌거벗은 여성, 그것도 비너스 같은 여신도 아니라 침대에서 장신구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매춘부 같은 여성이 눈을 똑바로 뜨고 화면 밖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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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이윤희 펴낸 곳: 아날로그 / 글담출판사
청소년기에 갓 접어들었을 무렵, 한 미술 작품을 보고 큰 충격에 휩싸인 적이 있었다. 그 작품은 바로 에두아르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식사>. 넥타이에 지팡이까지 갖춘 남성들의 모습과 달리, 여자는 벌거벗은 채로 화가 혹은 감상자를 똑바로 응시한다. 벌건 대낮에 바깥에서 옷을 벗고 있는 것도 충격이었지만, 어떤 창피함이나 부끄러움도 없이 당연하다는 듯 행동하는 여인의 모습이 자랑스럽고 떳떳하기보단 수치스럽고 불편했다. 아무리 명작이라 해도 왜 유독 벌거벗은 여성을 그린 작품이 많을까? 머리카락으로 간신히 주요 부위를 가린 비너스의 모습은 여신의 아름다움보다는 창피를 면하려는 필사적인 여인의 몸짓을 떠올리게 한다. 여성이 보기에 거북한 이런 작품이 주류를 이뤘던 이유는 미술을 소비하고 감상하는 주관객이 남성이었기 때문! 수없이 벌거벗겨지며 작품의 주제가 됐지만, 화가로든 모델이든 관객으로든 미술사에서 어느 한순간도 주체가 될 수 없었던 여성. 이젠 그 주체가 되어 이 책 《불편한 시선》과 함께 그림 속 불편한 진실을 파헤쳐 보자.
열 가지 키워드를 통해 미술사를 다시 읽다!
이 책을 관통하는 열 가지 키워드를 먼저 살펴보자. '의문, 시선, 누드, 악녀, 혐오, 허영, 모성, 소녀, 노화, 위반', 키워드부터 불편함이 느껴지는 이 여정은 피하지 말고 반드시 마주해야 할 미술사이자 여성의 이야기이다. 왜 미술 분야에서 위대한 여성은 찾아보기 힘들까? 여성의 미술적 재능이 남성보다 선천적으로 열등해서일까? 그렇다고 보기엔 여성과 남성은 주어진 조건부터가 달랐고, 사회적으로 어떤 배려와 관심도 받지 못했다. 누드 수업에 참여할 수조차 없었으며 '여류'라는 꼬리표와 미모에 대한 평가 또한 피할 수 없었던 여성 작가들의 열악한 상황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마치 관음증의 시선으로 염탐하듯 늘 구경거리가 된 여성. 에드윈 롱의 <바빌로니아 결혼 시장>과 장레옹 제롬의 <노예시장>은 예술적 시선이 아닌 도덕적 시선으로 보면 더없이 끔찍한 작품이다. 남성의 성기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실비아 슬레이의 <터키탕>은 너무 사실적이라 더없이 불편하다. 남성과 여성을 떠나 누드란 역시 불편한 것인가?
여성을 향한 혐오와 폭력
신화 속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여성의 납치와 성폭력은 화가들에게도 매혹적인 주제였다고 한다. 인간적으로 참 잔인한 그 행위가 예술이란 탈을 쓰고 관람과 칭송의 대상이 된 상황이 참 허탈하다. 맥락 없이 살해당하는 익명의 여성들은 또 어떠한가? 한편 여성은 허영심 가득한 무지의 존재로 그려지기도 했다. 소녀의 누드에 투영된 에로티시즘은 지금이라면 쇠고랑을 찰 일이 아닐까? 늙는 것도 서러운데, 늙은 여성은 왜 혐오의 대상이 되어 추악하게 그려졌을까? 현대의 사회적 문제와 페미니즘으로 연결될 수 있는 이 여정은 그럼에도 한쪽으로 치우치지만은 않는다. 저자 역시 이분법적 편 가르기로 이 책을 보지 않기를 바라며, 인간으로서 다른 경험을 가진 성별은 이렇게 다른 시각을 가질 수도 있다고 흥미롭게 여겨주길 당부한다. 이 책을 읽기 전과 후의 미술 감상은 확실히 좀 달랐다. 평소처럼 아름다운 미적 감각을 발휘하여 예술적 가치를 탐닉하면서도, 여성의 시점으로 불편한 진실 역시 포용하며 받아들이게 됐다고 할까? 한쪽으로 편향된 시각이 아닌, 좀 더 폭넓고 다채로운 관점으로 미술사를 살핀 뜻깊은 여정이었다.
출판사 지원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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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조금씩 보러 다니면서 알다가도 모르겠는 것이 그림이고 예술인 것 같다. 처음에 그림을 보면서 누구나 아는 화가들의 그림들을 봤다. 고흐, 마티즈, 고갱, 피카소, 마네 등등의 화가 그림들을 보고 느끼면서 그림의 세계를 이해한다기보다는 좋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보는 시간이 쌓여가다보니 의문이 들었다. 왜 여성화가는 눈에 잘 띄지 않지 라는 ... 그래서 책을 찾아보게 되었다. 그냥 책을 볼 때는 안 보였는데 찾아보니 여성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책을 요즘은 쉽게 찾을 수 있었고 불편한 시선은 특히 제목이 시선을 끌었다. 여성의 눈으로 파헤쳤으니까 개인적으로 느꼈던 그림의 불편함을 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을 것 같았고 읽으면서 잘 선택했다고 느꼈다. 불편한 질문들을 하나씩 시작해볼까 목차를 1장부터 10장까지여서 이해하기 편했고 관심이 가는 분야부터 읽어도 충분했다. 나는 맨 처음 1장 의문: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존재하지 않았는가 를 읽었다. 그림을 보면서 제일 많이 생각했던 부분이였기에 그랬고 작가님이 콕 집어 적어주셨기에 눈이 저절로 갔다. 시대가 주었던 불평등에 대해서 이해되기 쉽게 적혀있었다. 그림이 많이 첨가 되어 있는 점도 좋았다. 간혹 그림 관련책 중에 설명만 있고 그림이 없는 경우에는 독서가 막히고 답답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었다. 그 다음부터는 목차를 보면서 읽고 싶은 분야를 읽었더니 독서가 더 재미있었다. 다음에 읽은 목차는 3장 누드;미술작품에는 왜 벗은 여자들이 많을까를 읽었다. 정말 이윤희작가님은 독자가 궁금해 하는 것을 꽤뚫어보는 작가님인 것 같았다. 18세기면 아주 옛날이 아닌데도 누드모델수업에는 참여가 불가능했던 여성들이 당연한 상황이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읽으면서 마음이 더욱 불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알아야 하고 넘어서야 할 부분이 분명하기에 읽었다. 지금은 21세기이고 평등이 생활화되어있다고 말을 한다. 그러나 아직도 여성들은 굳이 설명해야 하고 남성화가라는 말은 안 쓰지만, 여성화가라는 말은 쓰고 있다. 그러한 이유로 불편한 시선같은 책은 알려지고 읽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림을 보러 다니면서 나의 시선이 불편해지고 있다면, 추천해 봅니다. #불편한 시선 #이윤희 #아날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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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발표 된 영화나 책(특히 소설)을 볼때 여성을 보는 또는 표현하는 시각과 방법 때문에 불편한 적이 솔직히 있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예술 작품이기 그렇게 표현했나보다 생각했고 또 명망있는 작가가 발표한 소설에서는 어떻게 남자인데 여성의 신체에 대해 이렇듯 잘 표현할 수 있을까 라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다시 생각해보니 몹시도 불편하게 느꼈던 나의 마음이 맞는 것이었고,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관객과 독자들을 끌기 위한 자극적인 미끼로 사용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이윤희 작가가 무척 공들여서 오랜 시간 조사하고 공부한 태가 역력한 이 작품에서 말하고 있듯 미술 작품은 언제나 인간의 삶을 반영하며 인간의 일이다. 불편한 시선을 느끼게 한 작가들이 순수하게 작품으로만 감상해 달라른 말은 어불성설인것 같다.
이 책을 통해서 비로소 알게 되다니.....
저자는 '여류 화가' vs '여성 화가'의 단어을 설명하며 직업의 주 종사가가 남성이라는 점을 알려주고 있다. 이렇듯 우리의 세계역사에서부터 현재까지 남성위주의 사회라는 것을 설명해 주고 있다.
1800년대 프랑스에서는 여성이 바지를 입고 길에 돌아다니는 것이 일종의 경범죄에 해당하여 바지를 입으려면 증명서를 경찰서에 꼭 제출해야 했다고 하니 이 세상에 만연한 차별과 이러한 사회 문화를 하나하나 바꾸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노고가 있었을까 싶었다.
로자 보뇌르는 독립심을 잃을까 두려워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회고햇으며, 너무도 많은 재능 있는 젊은 여성이 마치 희생제물로 바쳐지는 양처럼 스스로를 제단 위로 끌려가도록 내버려 두는 데 안타까움을 표현 했는데, 그 시대를 살아가며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었다. 게다가 외모 비하에도 끊임없이 시달렸으니 부당한 세상의 시선을 어떻게 견뎠을지 그럼에도 참으로 용감하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P62. 사실상 화가는 '보는'직업이다. 특히 추상미술이 출현하기 이전인 19세기까지 화가의 일이란 대상을 '응시'하여 자신의 세계관과 감성으로 재현하는 작업이었다.
P83. 'Your gaze hits the side of my face. 네가 쳐다보는 시선이 내 뺨을 때린다.'라는 부분에서는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함을 느낀다.
P90. 무엇보다 누드는 인간이 '아름다운 존재'라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라는 부분에서는 나도 항상 인간의 신체처럼 아름다운것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기에 공감이 되었다.
P94 다시 말해 벗은 상태를 의식하고 부끄러워하거나 당황하지 않고 신체의 균형과 아름다움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것이 바로 누드이다. 미술 작품 속에서도 남성 누드는 행동하는 주체이지만, 여성 누드는 시선의 대상이 된다. 주체와 대상의 불평등한 관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라는 부분에서 보듯 또 다시 차별과 불평등이 '누드'를 통해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P125. guerilla vs gorilla-게릴라가고 이름을 붙였는데 오타로 고릴라가 되고, 또 이에 굴하지 않고 그 후로 퍼포먼스를 할때 고릴라 가면을 쓰게 됐다는 위트와 센스에 감탄했다.
P258.가정의 울타리에 갇현 침묵하고 인내하는 어머니가 아니라, 영리하고 성실하게 일하고 자식을 보호했던 어머니로 말이다. 얼마나 강인한 어머니이자 한 인간인가?
P276. 에로티시즘 역시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가장 중요한 감정과 충동이므로 현대에 와서는 이전 시대와 달리 대단히 솔직하고 대담한 방식으로 미술 작품의 주제가 되어 왔다.
P295. 노화는 인간 보편의 문제임에도, 이러한 대비가 나타나는 이유는 여성의 존재에 대한 혐오가 은연중에 짙게 깔려 있기 때문이 아닐까. 도대체 혐오와 차별은 무엇을 위해 이리 끈질기게도 존재하는 것일까?
P316~317. (초상화 속 화가가 들고 있는 흰 천) 비평가들은 이것이 '항복'을 의미하는 하얀 깃발의 은유일 수도 있다고 해석한다. 늙어가는 신체와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운명을 잘 알고 받아들이는 의미라고 말이다. 나도 죽음의 운명을 잘 받아들이고 싶다. 평생 다채로운 색을 쓰며 살아온 그의 인생에 쓰임이 되어주었던 기본색들이 단단하게 그를 감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작품 속 색감이 서로 잘 어울리고 아름다워 보였다.
P331. 너무도 자연스럽게 들리는 집사람과 housewife라는 단어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P356."치열하게 될 대로 되기"는 화가 정정엽이 자신의 인생 앞에서 되뇐 말인데 책의 끝에서 만난 이 말에 나도 이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우연히 만난 책이 많은 생각과 많은 사실을 알게 해준 시간이었지만 책 앞부분에 오타가 좀 많은 편이었다. 빨리 수정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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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에 문외한이었던 나에게 찾아왔던 두 번째 미술작품 책 “불편한 시선”
저자‘이윤희’님이 그동안 남성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던 미술작품에 대해 무언가 제시 할 수 없는 불편함(의문)을 느끼다 여성의 시선으로 미술 작품을 짚어보고 그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아 새로운 시선으로 미술을 이해시키고 싶다는 생각을 기술했다고 생각한다.
처음엔 읽기도 전에 ‘제목처럼 많이 불편하면 어쩌나??’ 하는 불편한 시선(?) 으로 시작되었으나 책을 읽을수록 저자의 말처럼 그동안 여성에 대해 생각하는 미술 작품들에게 그런 편견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오히려 여성들에 대해 생각하는 시대착오적인 방향을 깨쳐나 갈 수 있게 일깨울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
이 책은 열 가지의 키워드로 독자들에게 불편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1장. 의문 :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존재하지 않았는가?? 2장. 시선 : 왜 여성은 언제나 구경거리가 되는가 3장. 누드 : 미술 작품에는 왜 벗은 여자들이 많을까 4장. 악녀 : 여성은 남성을 괴롭히는 악한 존재인가 5장. 혐오 : 여성에 대한 폭력이 영웅적 행위가 될 수 있는가 6장. 허영 : 거울 앞의 여성은 아름다움에 눈먼 존재인가 7장. 모성 : 현실의 어머니가 언제나 고요하며 아름다울 수 있는가 8장. 소녀 : 소아성애는 어떻게 정당화되는가 9장. 노화 : 노년의 이미지는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공평한가 10장. 위반 : 현실의 여성은 어떠한 존재인가
1장 의문 : 우리 조선시대 유명한 화가들은 대부분 남성의 영역으로만 여겨져 여성 화가들이 존재하는지 명확히 기록하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신개념’을 지니고 있을 꺼라 여겼던 서양에서 조차 좀처럼 여성 화가를 찾아 볼 수 없었기에 ‘정말 여성 화가가 없던 걸까?’하는 의문을 제시 할 수밖에 없었다.. 여성 화가는 있었다.. ‘앙겔리카 카우프만’과 ‘메리 모저’ 하지만 두 여성 화가는 왕립아카데미 회원들의 집단 초상화에서 볼 수 있듯이 남성만의 영역에 직접적으로 들어갈 수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누드 수업 중 여성은 그걸 보는 것이 그릇된 욕망을 자극하여 교양을 헤친다는 이유로 말이다. 하지만 그러한 편견이 오히려 여성의 미술 영역과 표현의 자유를 줄이는 요소가 된 건 아니었을까
2장 시선 : 시대상이 반영하듯이 언제나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은 음험하고도 불쾌한 눈빛이 대부분이었다. 메리커셋 < 특별 관람석에서 >에서 보듯이 상류층인 여성조차도 그런 대우를 받던 시설 어쩌면 ‘바라보는’이 아닌 ‘구경거리’가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이 변하듯 현대 미술의 흐름을 바꾸게 되는 계기가 있었는데 바로, 마네 < 올랭피아 >이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분노를 느끼게 했지만 시선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도발적으로 제시하여 결과적으로 수천 년을 이어 오던 시선의 역전을 이루게 만들었다.
3장부터 10장 사이의 모든 이야기를 자세히 읽다 보면 여성과 남성의 미술적 시선과 실질적 시선은 인간이 존재하는 한 지속 될 꺼라 생각하게 만들었다.
‘벌거벗음’과 ‘누드’, 거울 앞의 여성은 언제나 아름다움에 눈먼 존재여만 하는가? 그리고 모성은 잉태의 순간으로부터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것처럼 여기는 시대착오적인 모든 불편한 시선들이 한순간에 사라질 수는 없을 꺼라 생각한다.
“ 훔쳐보지 말라,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겠다.”
< 불편한 시선 >은 나에게는 정말 신선한 충격이 되어 돌아왔고 읽는 내내 수많은 시간의 흐름동안 ‘여성에 대한 인식이 그렇게 많이 불편했구나’ 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작가가 의도한 대로 여성들이 불편했지만 당연한 것처럼 인식되었던 문화적 왜곡과 혐오, 차별에 대해 침묵에서 벗어나 불편하면 “우리 여성은 불편하다!!”라고 외칠 수 있는 그런 문화와 그런 시선이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좋아요#구독#불편한시선#이윤희#여성미술사#아날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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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미술작품을 바라보면서 저자가 느꼈던 불편함의 원인을 찾아보기 위해 '의문, 시선, 누드, 악녀, 혐오, 허영, 모성, 소녀, 노화, 위반' 등 열 가지 키워드로 구성하여 분석하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제1장에서는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존재하지 않았는가에 대한 의문을 먼저 갖고 내용을 풀어가고 있어요. 여러분들도 한 번 알고 있는 화가 10명의 이름을 떠올려보시겠어요? 그 중에 여성 화가는 얼마나 되나요? 제가 알고 있는 위대한 화가의 이름을 한 번 떠올려보았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 클로드 모네, 폴 고갱, 앙리 마티스, 조르주 쇠라, 툴루즈 로트렉, 베르나르 뷔페, 파블로 피카소,살바도르 달리, 호안 미로, 마르크 샤갈, 알폰스 무하, 구스타프 클림트 ... 사실 그 이상의 화가를 떠올려봐도 여성 화가에 대한 지식이 이렇게 없을 수 있을까 스스로도 놀랐습니다.
요한 조파니(1733-1810)의 <왕립 아카데미 회원들>(1771)이라는 작품에는 영국 왕립 아카데미 회원들의 얼굴이 등장합니다. 이 그림 속에는 왕립 아카데미 초기 회원들이 조각상과 부조, 초상화가 걸려 있는 방에 모여 앉아 남자 누드모델 2명을 바라보며 집단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모델을 관찰하고 토론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내막을 모르고 이 그림을 봤을 때는 아! 누드화 스케치를 하려는가 보구나 싶었지만 어째 남자들밖에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 이 시기 왕립 아카데미의 기록에는 분명 두 명의 여성이 창립 회원으로 있었습니다. 앙겔리카 카우프만과 메리 모저인데요. 그럼 인체 묘사를 하기 위해 중요한 누드모델 관찰을 하는 수업 시간에 왜 이 두 여성은 자리하지 않은걸까요? 말도 안 되지만 남성들의 벗은 신체를 보는 것이 여성들의 그릇된 욕망을 자극해서 교양을 해친다는 이유에서랍니다. 하.. 다시 생각해도 말이 안 되죠? 누드 수업에서 두 여성을 배제하고 집단 초상화까지 남긴 회원들은 양심의 가책을 피하기 위해 앙겔리카 카우프만과 메리 모저의 초상화를 넣은걸까요? 다시 위 그림으로 돌아가보면 벽에 걸려 있는 두 초상화가 눈에 들어오실겁니다.
불편한 시선에 대한 이야기도 굉장히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메리 커셋의 <특별 관람석에서>라는 작품을 보면 원치 않는 시선을 받는 여성의 입장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건너편에 앉아있는 사람 중 오페라글라스를 들고 있는 남성은 공연이 아닌 그림의 주인공을 뚫어져라 보고 있습니다. 힐끔도 아니고 대놓고 쳐다보고 있는 저 남성의 시선이 여성의 입장에서 달가울리 없겠죠.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는 시선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도발적으로 제시했습니다. 당시 이 그림이 전시되고 있던 19세기 중반이기 때문에 그림을 감상하러 온 관객의 대부분은 남성이었을 것입니다. <올랭피아> 속 여성은 알렉상드르 카바넬의 <비너스의 탄생> 속 여성처럼 아름답지도, 시선을 가리고 있지도 않지요. 올랭피아 속 여성은 정면을 응시하고 있기에 왠지 시선이 마주치는 느낌을 받아 그 육체를 감상하는 데 심적 거리낌을 느끼기에 충분합니다. 이러한 시선의 역전은 현대미술의 흐름을 바꾸었습니다. 미술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지만 사실 역사 속 여성 인물에 대한 평가도 크게 다르지 않기에 공감하면서 읽어내려 갔어요. 책을 끝까지 읽고 나니 알찬 교양 강의를 한 학기 동안 수강한 느낌이 듭니다. 앞으로 그림을 볼 때 다양한 시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습니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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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학자이자 학예연구가인 이윤희 교수님의 페미니즘 미술사 책이 발간되었다. <여성과 예술>이라는 강의를 펼치다 이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고 마지막 감사의 말에 언급한다. 완독한 소감은 일단 현대예술을 공부한다면 미대에서 전공필수로 들어야 하는 과목이어야 한다는 점을 높게 주장하고 싶다. 그만큼 책의 구성과 필력이 탄탄하고 가독성이 높다. 단 한가지 의아한 점은 잘못 제본되었는지 페이지 넘버가 책 날개 쪽이 아니고 책 등 쪽(그러니까 페이지의 중심 안쪽)에 있어서 다른 서평들의 사진과 비교해봤는데 역시 한권만 파쇄가 아닌 것 같다.. 의도한게 아니라면 다음 쇄에서 교정되길 바란다. 이외에는 최근 읽은 책들 중에 단연코 새롭게 배운 점도 많고 그렇지그렇지!하면서 격하게 수긍과 공감을 하면서 무척 재미나게 읽었던 작품이다.
노년의 여성화가들의 자화상 작품들을 이야기 할 때면 뭉클해지기 까지 하였다. Do women have to be naked to get into the Met?의 게릴라 걸스와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존재하지 않았는가>의 린다 노클린은 미술사학에 관심이 있으면 얼핏 들어본 명문인데, 이외에도 이렇게나 많은 impressive한 화가들이 있었다니, 마치 흰색 오일파스텔로 이름을 적어놓고 다채로운 수채물감으로 그것이 명징하게 드러나게 붓질한 세계가 펼쳐졌다.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 곳에 그 시대에 존재하고 있었던 여성화가들이 말이다.
프리다칼로 처럼 비극적인 생애를 살고 당시 화가 남편의 명성에 뒤쳐진 (지금은 세계적으로 그보다 더욱 알려진) 채로 마감한 그를 그리고 그의 작품을 보며 이렇게 비참하게 살다 간 여성이 있다고 느끼는 것은 자신의 불행을 자위하거나 위안삼고 싶어 연민과 동정의 시선을 보내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그렇게 접근하지 않고 멋지게 묘사하여서 감사했다. 또, 수잔 발라동이나 나혜석 화가, 레오르느 피니도 걸크러쉬 멋진 언니의 모습으로 연대하게 되어 벅찼다. 신사임당이나 동시대 한국미술가인 박영숙과 정정엽 (이 두분은 지난 책 <누가 선택을 강요하는가>에서 알게 되었다) 선생님까지 다루어 주어서 앨리스 닐이나 주디 시카고 외에도 우리 한국에서도 이러한 멋진 작가들의 최근 작품 활동들이 있다는 것을 소개해주셨고 독자들에게도 앞으로 널리 알려졌으면 한다. 현대미술관람의 필독서.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만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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