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군가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감정이 하는 일이 아니었다. 소각과 소거를 거듭해나가는 절차에서 체념하듯 얻어지는 무감각에 불과했다. 나아지는 것도 지워지는 것도 아닌, 다만 가려지는 것. (99) 때론 자조 섞인 인정이 우리를 살게 했다. 우리는 수치스러워서 살아냈고, 부끄러워서 이겨냈다. (195)
부모가 되어 보니 아이들에게 상처를 남긴다는 게 얼마나 슬픈 일인지 알게 된다. 하지만 내 의지와 상관없이 때론 어떤 사건들이 아이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될 수 있음을 알지만, 그 아픔까지 상상할 수 없다. 그래서 이런 소설을 만나면, 마음 한편이 싸~~ 하다. 어린 시절 상처가 어른이 되어도 지워지지 않고 지울 수 없는. 먹먹한 아픔.
소설의 주인공 ‘나’는 누나와 함께 아픈 상처가 있다. 어린 시절 우울증을 앓고 있던 할머니를 보고 자란 남매. 남매는 방학이 되어 조부모가 사는 곳에서 생활하며 할머니에게 활기를 넣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층간 소음에 불만을 품은 아랫집 남자가 조부모만 있는 집에 들이닥친다. 그리고 비극은 시작된다. 혼자서 신발 끈조차 묶지 못하던 아이, 나는 경찰서, 법정에서 집요한 질문을 받고, 이후에는 과도한 동정과 경멸 섞인 수근거림에 힘들다. 남매는 성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그날 사건이 떠나지 않는다. 또한, 자신들의 술래잡기 놀이로 그 사건이 벌어진 것은 아닌지, 죄의식에 살고 있다. 하지만 괴로운 것은 이들만이 아니다. 살인자의 아들 또한 할머니께, 성인이 된 남매에게 사과를 건네지 못해 힘들어 하는데...
안보윤 작가의 책을 좋아한다. 책을 읽고 나면 삶에 대해,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평범한 나는 다른 사람들도 평범하게 산다고 생각한다. 돈이 많은 건 아니지만, 아이들이 원하는 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하게 해주고,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얼굴을 보며 자주 웃는다. 대단한 뭔가는 없지만 잔잔하게 사는 삶. 누구나 평범한 보통의 삶을 산다고 생각하면서도 누군가는 이런 삶이 아니기에, 보통의 삶이 특별하다. 어린 시절 남매에게 너희 때문이 아니라고, 괜찮다고 말해줬다면 덜 미안하며 살았을까? 어른이라는 이름의 남자가 진짜 어른답게 행동했다면, 가해자의 아들도 피해자의 손녀, 손자도 아프지 않았을까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누군가는 이생의 삶을 겨우 살아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죽을 수 없으니 억지로, 그러게 살아내는. 억지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파이팅하라고, 기회를 잡으라고, 노력하라고 하는 말이 귀에 들어올까? 가해자가 피해자가 될 수 있고, 피해자가 언제고 가해자가 될 수 있는 세상이다. 가해자, 피해자라는 방점을 찍고 정확하게 선을 그어 나눌 수 없는 세상이 된 것 같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살 자격’이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고 ‘살 자격’을 스스로 반문하고 심문하는 사람은 또 몇이나 될까? 하는. 층간 소음 그리고 동물 학대. 다른 듯 하면서 묘하게 닮은 비극이나 슬픔의 그림자. 그런 그림자가 내 곁에 가까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의 잔인함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아이들. 그 책임은 어른이지만 피해를 온몸으로 맞는 아이들이 있어 슬픈 책이다. |
|
세상에는 어떤 이야기가 필요할까. 나는 소설이라는 게 무엇인지 이 책을 읽으며 많이 생각했다. 이야기 속의 남매보다는 그들의 엄마에 감정을 이입하며 읽게 되었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누구인지를 떠나서 이 사회의 구조를 아주 많이 생각하게 되는 소설이었다. 이 소설에서 가장 아름답게 느꼈던 장면은 남매의 할머니와 아래층 남자아이가 계단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었다. 독자로서 그들의 나중이 비극이라는 걸 예상하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따뜻한 노란 불빛 아래에 온기 가득한 대화를 나누는 그들이 더 사랑스럽고 아름다워 보였다. 안보윤 작가의 작품은 주로 단편 소설만을 읽어보았는데, <완전한 사과>와도 이 작품이 연결되는 느낌이 들었다. <완전한 사과>가 더 최근의 이야기이면서 생생했고, 이 작품은 잔혹 동화 속에 들어온 환상적인 이야기였다. 모두 추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