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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사람들은 생명의 하나님 이름으로 살인하며, 평화의 하나님 이름으로 전쟁을 벌이고, 사랑의 하나님 이름으로 혐오하고, 자비의 하나님 이름으로 잔인한 행동을 하는가? 우리가 하나님 의 형상이라면, 어떻게 우리가 그토록 자주 하나님의 작품, 특히 우리의 동료 인간들에게 해를 끼치는가?
기독교인을 포함한 많은 종교인들이 고민하는 문제이자 종교의 무용론이나 폐지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근거로 제시하는 논리이기도 하다. 왜 수많은 사람들은 생명과 평화와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을 내세워 폭력과 혐오를 일삼는가?
영국 연방에서 가장 큰 회당 조직인 연합히브리회중의 최고 랍비를 22년간 역임한 세계적인 종교지도자이자 철학자인 랍비 조너선 색스 역시 이 문제에 천착하였다. 21세기 이후 이민자들의 급증과 더불어 종교적 혐오와 폭력이 증가한 유럽(2001년 9월 11일 뉴욕의 트윈타워와 펜타곤이 공격을 받은 이후, 급진적 종교 단체나 종교적 동기로 발생한 폭력들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에서는 종교적 폭력의 원인을 찾고 평화를 도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유럽만의 문제가 아니다. 갈수록 심해지는 정치적, 경제적 갈등이 불안과 불평등, 분노와 혐오, 폭력을 조장하고 있는 것은 전세계적인 현실이기 때문이다.
조너선 색스는 '이타주의적인 악(altruistic evil)'이라는 개념으로 이러한 현상을 설명한다. 높은 이상을 명분으로 내세우며서 거룩한 대의를 위해 자행하는 악이라는 점이 이들의 공통점이다. 이타주의적인 악은 약하고 무고한 사람들, 어린 아이들과 노인들을 살해한다. 테러리스트 공격이나 자살폭탄 공격으로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인다. 사람들의 종교나 인종, 국적 때문에 살해를 감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엄밀히 말해 '이타주의적인 악'은 특별히 종교적인 것은 아니다. 나치 독일, 스탈린의 러시아, 마오쩌둥의 중국, 폴 포트의 캄보디아 등에서 일어난 세속적인 집단 학살 역시 불의를 바로잡고 국가의 명예를 회복하고, 평등과 자유를 확립하겠다는 목적에서 자행되었다. 즉, 종교와 폭력이 반드시 상관관계나 인과관계를 갖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정체성과 폭력이 상관관계를 가지며, 인간이 정체성을 확립하고 공동체를 형성하는데 종교가 역할을 하거나 종교를 활용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조너선 색스는 이러한 논지 하에, 21세기의 정치화된 종교적 극단주의에 집중한다.
조너선 색스는 현재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의 해법을 찾기 위해 종교개혁 이후 16세기와 17세기의 종교전쟁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562년부터 1598년까지 가톨릭과 위그노 사이에 벌어졌던 전쟁과, 1618년부터 1648년까지의 30년 전쟁 뒤의 황폐했던 유럽이 오늘날과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21세기는 이전 세기에 비해 종교적이다. 왜냐하면 제 1, 2차 세계대전 후 서양사회는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욕구인 정체성 찾기에 대한 해답을 주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때 종교는 삶의 의미와 방향, 도덕적이며 영적인 삶을 위한 원칙들을 제공했다.
종교적 폭력이 증가하는 이유는 세상의 빠른 변화 때문이다. 변화는 방향 감각을 잃게 만들고, 상실감과 두려움은 혐오로 바뀐다. 조너선 색스는 이 책의 1장부터 5장까지 이에 대해 살핀다. 종교와 폭력 사이에는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다. 그 이유를 밝힌 이후 그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뿌리인 아브라함의 유일신론을 살펴보고, 이들 사이의 연관성을 추적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이타주의적인 악(파괴적이며 자기파멸적인 폭력)에 대한 사회적이고 심리적인 과정을 살펴본다. 5장에서는 세 종교가 공유하고 있는 창세기를 재해석함으로써, 뿌리깊은 문제들의 해결책을 탐색한다. 이러한 모색은 2부에서도 계속되는데, 왜냐하면 조너선 색스는 현재 자행되는 종교적인 동기에 의한 폭력들이 대부분 창세기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3부에서는 종교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평화롭게 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살펴본다. 17세기엔 종교에서 권력을 박탈하는 방법으로 종교전쟁을 끝낼 수 있었다. 현재 종교적 극단주의자들이 장악하고 있는 권력으로 인해 테러들에 직면하는 것이라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저자는, 반세기 이상 지속되고 있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원수들을 미워하는 것'이라는 명제가 급진주의적으로 정치화된 종교가 확산된 이유라고 설명한다. 그 결과 혼돈과 폭력, 파괴가 자행되고 있다. 따라서 이젠 평화와 용서, 사랑을 가르칠 때이다. 내일의 세상은 오늘 우리가 우리 자녀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느냐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