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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주의가 이런 것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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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주의와 민족차별이 다른 나라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또 인종주의와 민족차별로 이익을 얻는 세력은 꾸준히 논리를 만들어 퍼뜨리고요. 인종주의는 지역감정, 왕따, 외국인노동자 차별, 장애인 차별, 소수자 차별 같은 얼굴로 우리곁에 있습니다. 어른뿐만 아니라 청소년이 민주시민으로 자라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아이들한테 읽히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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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주의와 민족차별이 다른 나라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또 인종주의와 민족차별로 이익을 얻는 세력은 꾸준히 논리를 만들어 퍼뜨리고요. 인종주의는 지역감정, 왕따, 외국인노동자 차별, 장애인 차별, 소수자 차별 같은 얼굴로 우리곁에 있습니다. 어른뿐만 아니라 청소년이 민주시민으로 자라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아이들한테 읽히면 좋겠습니다.

i********a 2013.09.1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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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차별기제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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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탔다. 새하얀 피부의 외국인이 내 곁에 섰다. 괜히 한 번 영어로 말을 붙여보고 싶다. 나보다 경제적인 측면도 더 나을 거 같은 느낌이 절로 든다. 하지만 휴대전화를 꺼내 든 그녀의 입에선 영어 아닌 내가 모르는 외국어가 흘러나온다. 최근 부쩍 증가한 러시아나 중앙아시아 쪽 국가 출신 외국인인 모양이다. 그제까지의 호감이 급감한다. 내 마음이지만 내가 왜 이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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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탔다. 새하얀 피부의 외국인이 내 곁에 섰다. 괜히 한 번 영어로 말을 붙여보고 싶다. 나보다 경제적인 측면도 더 나을 거 같은 느낌이 절로 든다. 하지만 휴대전화를 꺼내 든 그녀의 입에선 영어 아닌 내가 모르는 외국어가 흘러나온다. 최근 부쩍 증가한 러시아나 중앙아시아 쪽 국가 출신 외국인인 모양이다. 그제까지의 호감이 급감한다. 내 마음이지만 내가 왜 이러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외국인을 만날 때면 주눅이 든다. 단순히 영어를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여러 면에서 나보다 상대가 더 나으리라는 판단이 절로 서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영국 등 선진국 출신이라 하여 무조건 나보다 경제 사정이 나으리란 법은 없다. 미국의 경우 상상을 초월하는 불평등으로 많은 이들이 시름시름 앓고 있다. 아마도 내가 가진 것은 일종의 편견일 것이다. 좀처럼 허물어지지 않는 편견이 개인 차원을 뛰어넘으면 그 때부터 인종주의가 되고 민족차별이 된다. 제2 차 세계대전이 숱한 전쟁 중 가장 끔찍하게 여겨지는 것은 홀로코스트로 대표되는 인종주의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일제강점기에 말로는 상상하기 힘든 차별을 겪었다. 차별의 이유는 논리적인 설명이 불가능했다. 조선인은 무조건 열등했기에 모든 불합리한 대우를 마땅히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당시 지배 계층은 주장했다. 우리 스스로도 그와 같은 주장을 내면 깊숙이 받아들였고, 급기야 일본인과 같은 방식의 삶을 영위해야 하며 우리 자신을 일본인처럼 개조해야만 한다는 주장까지 등장했었다.

인종주의는 뿌리가 깊다. 지금은 계급으로 명백히 드러나는 차별이 금지돼 있지만 과거에는 노예 농노 등의 계급이 존재했다. 왠지 나는 피지배 계급의 명칭을 들을 때마다 흑인을 필두로 하는 유색인종이 떠오르고는 했다. 그렇지만 이는 나의 생각에 불과했다. 저자는 우리 세상에서 인종주의라 하는 것은 그리 오래된 개념이 아니라는 설명을 내놓았다. 과거의 노예라 하여 무조건 검은 피부를 지니고 있진 않았다는 소리다. 그리스나 로마 등의 고대 국가는 광대한 대국이었다. 그들에게 자신이 점령한 지역의 사람들은 자신과 같은 종교를 믿도록 개종시켜야 하는 대상이었다. 이 말은 종교를 바꾸면 그들 역시 자신들과 같은 존재로 인정을 받을 수 있음을 전제로 했을 때 성립 가능하다. 많은 국가에서 차별이 행해졌지만 이 또한 종교에 따른 것인 경우가 잦았다. 피부색은 상대적으로 고려되지 않았다. 종교에 따른 차별이 당연시 여겨질 시에도 유연함이 허용됐다. 상대가 개종을 하는 경우엔 자국민과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물론 종교에 대하여 철두철미한 신앙을 바탕으로 하는 집단은 그로 인한 차별을 감내해야만 했다. 곳곳에서 순교가 발생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렇다 하여도 지금보다는 훨씬 집단 간의 관용이 높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피로 얼룩진 키프로스마저도 한 때는 종교의 차이가 두루 인정되는 공간이었다는 말을 들으니 더더욱 그랬다.

인류는 차별의 기제를 만들어내는 데 천재적인 소질을 지녔는지도 모른다. 종교가 더는 잣대로 활용될 수 없는 시점이 도래하자 드디어 인류는 인종의 키워드를 꺼내들었다. 그 중에서도 피부색이 결정적이었다. 키가 크고 작고, 몸무게가 많이 나가고 적게 나가고 등 표면적으로 보이는 수많은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피부색을 차별의 기제로 내세웠다. 흑인 노예들은 과거의 백인 하인과 달리 복종을 종속적으로 요구받았고 아무런 권리도 지니지 못했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자신의 가정을 꾸리고 재산을 소유할 수 있었던 백인 하인들과 달리 흑인 노예들을 위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아파르트헤이트라는 끔찍한 제도로 흑인들을 옥죄였던 남아프리카 공화국도 사라진 지 꽤 되었지만 그렇다 하여 흑인들의 처지가 나아진 것은 아니다. 마치 남북전쟁 후 노예 해방을 경험했으나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상태에서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일어서야만 했던 미국의 흑인들처럼, 오늘날 전세계의 흑인들은 자립을 위해 꾸준히 애쓰고 있다. 그러나 공공연히 그들을 향한 차별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직접 몸을 부닥치고 땀을 흘리며 쟁취해야 하는 스포츠 경기에서는 검은 피부를 향한 모욕적인 언사가 더욱 잦다. 인종주의에 대해 강력히 대응하겠다는 것이 각종 협회의 공식적인 태도라고는 하지만, 아직은 왠지 갈 길이 멀어보인다. 스포츠 역시 힘의 논리가 적잖이 발휘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식민지배의 경험을 안고 있는 우리는 한 가지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피해자 의식에 치우치면서 우리도 모르게 놓치고 있는 우리 안의 차별 기제에 대한 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꿈을 안고 이 땅을 찾은 제3 세계 노동자들을 과연 우리는 평등하게 대했던가? 떳떳하게 “그렇다”는 대답을 모두가 할 수 있지는 못할 듯하다.

 

q*****2 2014.02.0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