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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가, 한 영화 평론가가 고백한 적이 있다. 냉철한 분석을 행하기 보다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 흘리며 한 영화에 빠져들고 마는 자신이 참을 수없이 부끄러웠다고. 때로는 감동적인 예술작품을 눈앞에 두고서 이론으로 무장한다는 것이 고역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이론가의 임무는 예술작품을 액면 그대로 작품으로 감상하기 보다는 냉철하게 분석하고 파헤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카메라 루시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평론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개인적인’ 혹은 ‘감상적인’이란 수식어는 평론가에게는 최악의 수식어이면서, 또 한편으로 최대의 찬사이다. 후자의 경우는, 이론적 분석틀을 끌어들이기보다는 진정으로 자신만의 목소리로 말한다는 점에서 그럴 것이다.
<카메라 루시다>는 잘 알려진 대로, 바르트가 자신의 생애 끄트머리에서 고백조로 사진에 대해 서술한 책이다. 사진과 이미지에 대해 펼쳤던 자신의 모든 이론을 뒤엎어놓으면서까지, 그것도 사뭇 후회조로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고 싶었던 것은 어떤 연유에서일까. 이 글에서 저자를 끊임없이 흔들어놓고 있는 이미지 –바로 자신을 위해 존재한다고 확신했던 사진-, 그것 역시도 지극히 개인적인 어머니의 사진이다. 아마도, 죽은 어머니의 영혼이 여기저기 스며있는 듯한 사진을 앞에 두고서 저자는 차마, 기호학이니 정신분석학이니 하는 비평적 언어의 칼을 들이대진 못했을 성 싶다. 스스로,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고, 속수무책인 상태”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바르트는 “사진에 관한 글을 쓰려는 욕망 때문에 확인하게 된 이 무질서와 딜레마는 내가 항상 의식하고 있던 어떤 불편함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내가 ‘표현적인’ 언어와 ‘비평적인’ 언어라는 두 언어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이었으며, ….나는 슬그머니 언어를 벗어나 다른 방식으로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몇 가지 개인적인 충동에서 시작해 사진의 근본적인 특성, 즉 사진의 본질을 규정하는 데에 불가결한 보편성을 드러낼 계획이다” 라는 말로 말문을 열고 있는 것이다.
그의 지적여정을 살펴보자면, 그는 문학 평론가이자, 문화 이론가로서 소쉬르의 구조주의를 확장시켜, 언어학의 기표와 기의 사이의 관계를 서로 다른 문화체계들 –이미져리를 포함한 –까지 확대시켜 분석한다. 그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이데올로기의 복잡한 코드화를 은폐시키고 자연화하는 것, 그는 이를 ‘신화’라 칭하는데, 그러한 것을 철저히 파헤친다. 무엇보다, 사진은 그 생생한 현장의 포착이라는 특성 때문에 그 자체로 코드없는 메시지이자, –바쟁이 말한 것처럼- 존재론적으로 보인다. 때문에 바르트는 사진 이미지를 ‘자명한 것’이 아니라 기표와 기의로 이루어진 기호학적 단계 –혹은 디노테이션과 코노테이션으로 이루어진 -로 분석하였다. 그 여정은 <사진의 메시지(1961)>, <이미지의 수사학(1964)>, <제3의 의미(1970)>으로 이어진다. 바르트 이후에서야, 비로소 사진에 대한 진정한 분석이 이루어졌다 할 수 있다. 한편, 이러한 여정은 그 자체가 구조주의에서 후기 구조주의로의 이행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미 <제 3의 의미>에서 기호학적 분석틀을 벗어날 수 있는 요소, 무딘 의미, 혹은 하나의 ‘축제’라 할 수 있는 개념이 싹트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러한 ‘나를 벗어나는 요소’의 끝간을 보여준 책이 바로 이 <카레라 루시다> 이다. 그가 “하찮은 세부가 온통, 나의 사진읽기를 압도한다. 그것은 나의 관심의 격렬한 돌연변이, 하나의 섬광이다.”라고 말한 그것. 말년에, 바르트는 사진 이미지를 바라보며 과거 자신이 펼쳐놓았던 분석의 틀에 앞서 한없이 개인적인 감정으로 이미지에 다가섬을 불현듯 깨달은 듯하다. [인상깊은구절] 광기를 택할 것인가, 분별을 택할 것인가? 사진은 전자도 될 수 있고 후자도 될 수 있다. 만일 사진의 사실주의가 미학적인 혹은 경험적인 습관에 의해 절제되고 상대적인 것이 된다면 사진은 분별있는 어떤 것이 될 것이다. 만일 이 사실주의가 절대적인, 말하자면 근원적인 사실주의가 되어'시간'이라는 말 그 자체의 의미를 사랑과 두려움에 찬 의식으로 되돌아오게 한다면, 사진은 미친 것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흐름을 거슬러 움직이는 이 반전을 나는 마침내 사진의 황홀함이라 부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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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 바르트는 그의 기호 이론으로 자주 언급되지만 나는 그를 ‘어머니’와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특히 그가 ‘사랑과 죽음’을 논할 때 ‘어머니’는 바다의 요정 세이렌처럼 그의 글 여기저기에 떠돈다. 그의 후기 저작에 해당하는 『애도 일기』는 1977년 10월 25일 어머니가 사망한 이후 10월 26일부터 1979년 9월 15일까지 쓴 일기다. 1980년 처음 출간된 『밝은 방 La Chambre Claire(=camera lucida)』도 같은 시기에 쓴 사진에 관한 에세이다. 이 책에서도 어머니의 어린 시절을 담은 <온실 사진>은 2부 전체를 할애할 만큼 중요한 오브제이자 푼크툼이다.
예전에 이 책을 읽을 때는 ‘어머니’에 집중해 읽었는데 이번 재독에서는 좀 다르게 살펴볼 수 있었다.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 명제인 “코기토 에르고 숨(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을 사진 비평에 도입한다면 바로 이렇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는 "나 자신이 사진에 관한 ‘앎’의 척도”(p16)라고 말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사진은 분류할 수 없다.
바르트는 사진이 거대한 무질서 속에서 어느 특정한 사건을 표지(標識) 할 이유가 존재하지 않음으로 ‘유동하는 기호들’이라고 했다. 사진의 세 가지 실천(만들기, 받아들이기, 바라보기)에서 그는 ‘바라보는 사람’의 역할밖에 할 수 없으므로 사진의 특성(보편성)을 자신의 개인적인 방식에 의거해 살펴보기로 했다. 여기서 그 유명한 ‘스투디움-푼크툼’이 나온다. 스투디움이 촬영자의 의도와 정보(욕망, 흥미, 취향)가 담긴 넓은 영역을 아우르는 문화적인 요소ㅡ약호화, 개념화ㅡ라면, 상처나 뾰족한 도구에 의한 낙인을 가리키는 라틴어인 푼크툼은 촬영자가 제어할 수 없는 우연성, 세부성, 비개념성을 나타낸다.
바르트는 사진에서 ‘푼크툼’적인 것을 집요하게 찾는다. 그의 방법론에 따라 ‘푼크툼’은 지극히 개인적인 특성도 있다.
바르트의 푼크툼은 발터 벤야민이 사진에 대해 서술할 때 이미 예견한 바 있다.
벤야민과 바르트의 차이는 흥미롭다. 두 사람 다 인간의 지각 작용에 의문을 던지는 사진의 재현·폭로적 기능에 주목하지만, 벤야민이 사진의 정치적 가능성(혁명적 사용 가치)에 집중했다면 바르트는 사진에서 미래 지향성을 부인하며(“사진은 부동성으로 말미암아 현전화(現前化)로부터 과거의 정체성을 향해 역류한다”(p91)) 사진의 기호적 특성(대상물과 공존하는 사진)에 집중한 게 변별된다.
롤랑 바르트의 기호학자적인 면모는 여러 분석에서 볼 수 있는데, 그의 문장은 언어유희, 모순적인 역설이 많아서 전면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렵다.
사진은 찍은 뒤에야 확인할 수 있고 그것을 보는 행위는 소급하는 사유를 거칠 수밖에 없기에 사진이 과거를 회상시키지 않는다는 그의 표현은 모순이다. 또한 사진은 기술적 특성상 무수한 감상자를 낳으므로 지표의 준거점이 없고 현전의 진위를 논할 수도 없게 된다. 바르트는 “자신의 확실성을 증명할 수 없음은 언어의 불행”(p87)이라고 말했지만 사진도 예외가 아니다. 발터 벤야민이 파악했듯이 예술작품의 일회적 현존성은 기술 복제로 인해 교란 받는다. 바르트의 비평적 태도도 영화관의 관객이 그렇듯 그런 복제 기술에 의해 도출되는 자세다. 감상자가 발견하는 푼크툼이 촬영자의 의도를 다 빗겨 갔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내가 바르트의 사진 비평을 데카르트 ‘코기토 에르고 숨’에 비유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체를 나로 상정했을 때 빚어지는 혼란이 바르트의 분석에서도 이렇게 여지없이 드러난다.
그가 제시한 푼크툼은 다른 특성도 있다. 형태는 없지만 강도를 지닌 ‘시간’이 그것이며, “노에마(‘그것은-존재-했음’)의 애절한 강조법”(p95)이자 순순한 표상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그는 1865년 미국의 국무장관 시워드의 암살을 기도한 청년 루이스 패인의 초상 사진을 제시했다.
그는 죽음을 기다리는 아름다운 청년(스투디움)ㅡ그가 곧 죽으리라는 사실(푼크툼)ㅡ그의 죽음은 실현될 것이고, 실현되었다는 사실(전미래全未來, ‘시간’을 담은 푼크툼)의 등가 관계를 설명했다. 바르트는 사진의 미래 지향성을 부정했지만, 위에 내가 가져온 발터 벤야민 「사진의 작은 역사」 인용문처럼 “과거를 뒤돌아보면서도 미래적인 것을 발견”하는 푼크툼은 우리가 사진을 볼 때의 보편적 특성이라고도 볼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해지는 것은 푼크툼을 보려고 하는 ‘나’가 있어야 된다는 점이다. 이쯤 되니 나도 순환논증에 빠진 기분이다. 광기를 가두고 진부하게 만드는 사진 예술은 허위적인 사회가 요구하는 이미지다. 스투디움에 안주할 것인가, 푼크툼으로 뻗어갈 것인가의 선택은 감상자 자신에게 달려 있다며 바르트는 글을 마친다.
롤랑 바르트는 1980년 3월 26일 사망했다. 이 책은 그가 사망하기 직전까지 고심했던 주제들을 두루 만나볼 수 있는 저작이다. 사랑, 죽음, 언어, 시간, 의식과 육체, 대상과 의미 등등. 기호학자로서 언어의 불투명성, 대상의 불투명성 앞에서 그러했듯 그는 “사진의 깊이를 파고들어갈 수도, 그것을 꿰뚫어볼 수도 없다”(p106)고 인정했다. 어둠의 통로(camera obscura)를 통해야 대상이 드러나는 사진은 육체와 그림자의 관계처럼, 너와 나의 무한한 평행선처럼, 있음과 없음의 현실적이면서 비현실적인 공존과 다르지 않다.
※ 현재 이 책은 절판이라 동문선에서 나온 『밝은 방』으로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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