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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에덴은 인간이 지향하는 낙원의 이상향이다. 에덴 동산은 "우리가 잃었다고 느끼며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대표적인 상징이다." 그래서 아담과 이브의 추방은 곧 고난과 폐허로 귀결되는 디스토피아의 원형이 된다. 오늘날의 지구별은 '에덴 컬처'와는 무관하다. 지금 지구별을 뒤덮고 있는 것은 환경파괴, 인종차별, 테러, 양극화 같은 잿빛 구름이다. 인간세를 주장하는 이들은 다가올 인류의 멸망이나 총체적 소외를 염려하곤 한다.
혹자는 '제2의 계몽'이 필요하다고 하고, 혹자는 그 무엇보다도 생명애에 기반한 생태학적 상상력이 긴급하다고 진단한다. 독일의 철학자이자 신학자 요하네스 하르틀은 지구별(자연)과 문화(의미가 있는 가치)라는 '인간의 정원'을 다시금 꽃피우게 할 '새로운 전통'을 소환한다. '새로운 전통'은 크게 세 가지 요소 혹은 세 가지 비밀 자원으로 구성된다. 바로 결속, 의미, 아름다움이다. 이는 사회성, 종교, 창의성과 결부된 핵심 자원이다.
나는 이 세 가지 핵심 자원 가운데 결속만을 선택적으로 논하려고 한다. 이 세 가지 요소는 상호성이 강하고, 결속 자체가 의미와 아름다움의 토대라고 보기 때문이다.
결속은 애착 관계, 친밀감, 유대감 등 사회성과 양육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결속의 차원은 자아, 타자 그리고 신 세 가지이며, 시공간적으로 보면 과거와 역사, 전통과 고향과 결부되어 있다. 중요한 점은 안정적인 결속을 보장하는 환경이다. 특히 유아기의 애착 관계 경험은 그 영향력이 평생 가고, 인생의 모든 차원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한다.
"불안하게 회피하는 태도를 보이거나, 상반된 감정이 존재하는 애착 관계 유형을 가진 성인은 자신의 감정을 잘 인지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표현도 서툴러 부부 관계에 위기를 자초하곤 한다. 위기를 맞았을 때 회복탄력성을 보여주지도 못하며, 전문가의 도움을 구하는 것도 힘겨워한다."(98쪽)
감정 건강의 바로미터가 바로 애착 관계다. 다시 말해서, 결속은 마음 건강의 바로미터이자, 사회적 성숙도나 민도의 밑바탕이다. 저자는 결속의 관계를 해치는 네 가지 적대적 요소로, '자아 최적화의 숭배', '속도에 취한 시대', '엇나가는 어린 시절', '감성의 상실'을 언급한다. 그리고 결속을 회복하는 다섯 가지 길을 제시하는데, 첫 번째 길, 자신의 과거와 화해하라, 두 번째 길, 자신에게 감정이입을 하라, 세 번째 길, 초시간적인 결속, 네 번째 길, 자연과의 결속, 다섯 번째 길, 결속의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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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기술로 인한 문명의 발전에 따라 19세기 이후 인류는 단기간에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단지 물리적인 환경의 변화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 정서적인 부분에서 과거의 사람들과 지금의 사람들은 전혀 다른 인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기본적인 부분에서는 시간을 초월하는 공통성이 여전히 작용하겠지만, 살아가는 방식이나 태도, 미래에 대한 전망 같은 부분에서는 확연히 차이를 보이는 것 같다.
특히 인생의 모든 영역이 자본주의와 물질 및 기술만능주의를 기반으로 한 합리성에 완전히 잠식되어 실용성과 효율성이 가장 바람직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는 분위기가 손꼽을 수 있는 변화의 양상이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고 있듯이 물질적 번영이 곧 정신의 풍요와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매일 미디어를 통해, 우리 삶을 통해 목격하거나 체험하고 있다. 이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저자는 인간의 내면에서부터 흘러나오는 본능적인 그리움이나 상실감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리움이나 상실감은 모두 본래 가지고 있었어야 할 무언가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는 상태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하지만 자본과 물질, 기술 기반의 합리성 혹은 맹목적성이 사람들로 하여금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감각은 일찌감치 날려버리고, 오히려 날 때부터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라는 감각을 더 강화하고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보기에 인간은 여전히 무언가를 그리워하고 있다. 그리고 겪어보지도 않았던 과거 어느 시점의 에덴과 같은 이미지를 떠올린다. 인간은 어째서 과거를 에덴 혹은 낙원의 이미지로 미화하는 것일까? 저자는 이 현상을 인간 존재가 가지는 근원적인 갈망이 담긴 영향으로 파악한다. 생명친화적인 미래의 이미지는 어른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미소를 짓게 하는 감각이다. 물론 세파에 시달리며 감정이 메마른 어른들, 일찍부터 경쟁에 내몰린 아이들에게는 아주 빠른 시점에 빼앗기는 감각이기도 하다.
스티븐 핑커나 지금은 고인이 된 『팩트풀니스』로 잘 알려진 한스 로슬링 같은 사람들은 객관적인 수치를 근거로 들어 세상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저자는 우리가 통계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물질적인 조건이 나아졌다는 것이지 실질적인 행복, 다시 말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정신적 건강을 기반으로 한 행복이라는 관점에서는 더 열악해졌다는 점을 지적한다. 곧 물질의 풍요와 정신의 빈곤이 반비례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다.
물론 저자는 저 19세기 초반의 러다이트 운동을 일으켰던 사람들처럼 비이성적인 과거 회귀론자가 아니다. 그는 인간성을 지키면서 경제적 풍요와 정신적 행복의 양립이라는 희망을 이야기하려면 우선 헛된 희망을 가려낼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 고유의 특성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지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어쩌면 환경오염이나 기후변화보다 더 큰 본질적인 문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통찰은 여기에서 빛을 발한다. 역사상 인류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중요한 가치 셋을 제시한다. 그것은 곧 결속, 의미, 아름다움이라는 지향의 토대 위에서 인간성을 지키며 만들어 나가는 새로운 전통에의 비전이다. 이것이 곧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사회성과 종교, 창의성과도 연결된다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우리가 꼭 지켜야 하는 것,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이 우리를 인간답게 하는가? 이런 질문에 얼마나 중요한지 이 책은 알려주고 있다. 과거의 첫 에덴은 이런 질문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순종하거나 불순종하는 두 가지 선택권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새롭게 만들어야 할, 혹은 돌아가야 할 에덴은 그 성립 조건이 더 까다롭다. 하지만 기꺼이 그 까다로움에 동참해야 할 이유를 알려주는 것이 신간 『에덴 컬처』가 지닌 미덕이다.
* 네이버 「문화충전200%」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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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로 환경은 오염되고 강력 범죄는 늘어나며, 인종과 나라, 문화권 사이의 갈등이 증폭되는 요즘입니다. 인류는 언제나 풍요롭고 안정된 이상향을 꿈꿔 왔는데 그 대유어 중 하나가 "에덴 동산"이겠습니다. 저자는 거의 디스토피아적인 암울함이 사람들의 마음을 강하게 지배해 가는 작금, "에덴 2.0"이라는 비전을 제시하며, 우리 모두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 개인적 차원에서, 또 공동체적 지평에서 어떤 노력을 해야 하며 또 무슨 각성이 필요한지 독자에게 아름다운 문체로 전달합니다.
p53에 나오듯 일찍이 에른스트 블로흐는 "희망이라는 원리"를 논한 적 있습니다. 이러한 희망은, 그저 인간을 하나의 생명체, 여러 가지 과학적 원리에 의해 기계처럼 작동하는 유기체로만 보는 시각에서는 싹트기 힘들다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20세기말 인류는 드디어 게놈 지도를 갖게 되었습니다만 이것의 결론은 침팬지 등과 인간이 98% 이상 닮아 있다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아는 대로, 침팬지는 우리들과 너무도 다른 삶을 살며, 우리 인간은 침팬지보다 훨씬 복잡한 동기에 의해 움직이고, 행복을 추구하는 방식도 판이합니다. 저자는 카이 미셸 같은 학자의 관점을 소개하며, 기독교의 구약 성서에 나오는 에덴 동산 이야기도 결국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 독해가 가능한 "인류의 일기(신의 계시가 아니라)"라고 말합니다. 우리 인류가 우리 사는 지구를, 사회를 하나의 정원으로 보기 시작할 때, 미래를 향한 그윽한 유토피아적 비전은 어느새 모두의 마음에 같은 방향을 그리며 싹틉니다.
20년 전만 해도 버스 같은 밀폐된 공공장소에서조차 태연히 담배를 피우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담배를 싫어하는 이들이 워낙 많아 이런 행동을 쉽게 상상하기도 힘듭니다. 흡연이 건강에 해롭다는 건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는데 저자는 이제 단순한 금연을 넘어 관계의 빈곤이 내 폐를, 내 장기를, 내 영혼을 좀먹지는 않는지 돌아보자고 제안합니다. 저자는 관계가 결핍된 인간은 이미 존재 기반이 흔들리는 중이며, 현대 사회는 개인 사이의 유대가 거의 끊어져 각기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다시피하고, 그런 까닭에 "각자의 우주에 고립되어 있다(p75)"라고까지 말합니다. 여기서 저자는 또다시 진화생물학적 논거를 듭니다. 왜 척추동물 최후의 진화(현 시점 기준) 단계가 하필 포유류일까요? 포유류란, 어미가 새끼를 품에 안아 젖을 물려 키우는 유일한 족속입니다. 우리 포유류는 태생부터가 고립되어 살아갈 수 없게끔 설계가 된 것입니다.
고독사는 요즘 들어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독신자는 그의 슬픔과 스트레스를 다른 누구와 공유할 기회가 없고, 그 결과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건강이 크게 상하기 쉽습니다. 저자는 "장기적이고 조화로운 관계는 중병과 조기 사망을 예방해 주는 실증적 결과가 확인되었다(p102)"고 상기시키는데 우리 독자들도 이 점 알고 있으며 또한 공감합니다. 인간이 "결혼"이라는 사회적 제도를 발전시켜 왔고, 그보다 더 확장된 가족(대가족)이라든가 마을 공동체, 나아가 헤겔이 인륜 최고의 형태라 말한 "국가"를 이룬 것은 필연적 이유가 있었던 셈입니다.
저자는 확실히, 능률과 효율만을 최고로 치는 전체주의 국가 시스템이 인류의 행복과 건강에 해롭다는 결론도 내립니다. 특히 저자가 경계하는 건 집단 경제인데, 이는 저자가 중시하는 공동체적 삶이라든가 유대 관계와는 정반대를 지향합니다. 그런 집단 경제에서는 개인의 창의와 여유가 조금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이 책에서는 소련에 의해 집단 농장이 만들어졌던 1932~33의 우크라이나를 그 예로 듭니다(p163). 선한 농부들은 그 억압적인 체제 하에서 무수히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런 끔찍한 역사의 악몽이 있었기에 지금도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가망 없어 보이는 전쟁에 그토록 결사적으로 참여하여 조국의 적을 무찌르려 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만들려 애쓰지만 저자는 이런 노력보다는 의미를 찾아 내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고 독자에게 권합니다. "의미는 진정성 있는 언어로 표현된다(p196)."그래서 우리들은 연인 사이에, 친구 사이에, 가족 사이에, 스승과 제자 사이에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하며 단지 정보 교환만을 꾀하는 게 아니라 감정과 생각과 그윽한 정을 공유하려 드는 것입니다. 저자는 p207 이하에서, 특히 프랑스의 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68세대, 그들을 부모로 둔 MZ 세대가 서로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도 언급합니다. 어떤 경우에나 우리에게 의미있게 다가오는 결론은, "개인의 차원 그것을 넘어서는 연대와 공감의 존재"를 구축하는 과제입니다.
"무의미함은 생명을 앗아간다(p216)." 그래서 저자는 우리 모두가 공감하고 공명할 수 있는 가치를 "찾아내라"고 이 책의 곳곳(p258 등)에서 강조합니다. 의미는 잉여나 사치가 아니라 우리의 생명과 직결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책의 가장 뛰어난 점은, 저자의 일관되고 아름답게 표현된 주제의식과 사상도 사상이지만, 다양한 학자들과 인류사적 지성들의 여러 명언이나 아포리즘이 끝도 없이 인용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책 한 권을 읽으면서 인문 고전이나 현대의 필독서 십여 권을 함께 읽는 듯한 느낌도 듭니다. 아무리 뜻깊은 의미를 찾았다 해도 이를 한눈으로 응시하면 안 됩니다. 사람에게 두 눈이 주어져 원근의 응시를 할 수 있게 한 것 역시 생명체가 진화하며 올바른 길을 찾아내기 위한 필사적 노력의 산물입니다. 의미를 두 눈으로 보라(p226)는 저자의 말은 그래서 울림이 깊습니다. 유발 하라리 역시 이 책 여러 군데에서 인용되는 저자 중 한 사람입니다.
많은 이들이 "혐오"라는 잣대를 사용하며 타인의 행위를 단죄하는 요즘입니다. 저자는 "대체 혐오라는 게 무엇인가?(중략)누군가 자신의 종교나 조국, 정부를 겨눈 비판으로 인해 상처를 받았다고 해서 형사 처분을 하는 게 온당한가?(p269)"라고 묻습니다. 또 이처럼 혐오라는 막연한 잣대로 형사 처벌까지 가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일견 약자를 보호하고 사회적 평등을 도모하려는 듯 보이나) 그 안에는 악마가 숨어 있다"고 하며, 표현의 자유를 심하게 억압하여 자기 검열을 유도한다고 지적합니다.
머리에 칩을 심어 능력을 개선하는 이른바 트랜스휴먼 논의는 예전부터 똑똑한 저자들과 학자들에 의해 흥미로운 논의 주제가 되어 왔습니다. 이 책이 미래학도 겸한 주제이다 보니 저자는 여기에 대해서도 한 마디를 잊지 않습니다. 앞에서도 앙상한 기계론, 환원론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가한 저자가 여기에 대해 호의적일 리 없습니다. 이런 논의는 우리 자신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방해하고, 우리가 당면한 어려움으로부터 도피하거나 피상적으로 대응하게 만드는 부작용이 있다고 합니다. 혹 사람 머리에 칩을 심는 게 가능해진다 쳐도 어느 세월에 실용화가 이뤄지겠습니까? 현실은 간단한 백내장 수술조차 각종 부작용으로 문제를 빚는 판에 말입니다. 신장, 심장 등 장기 이식은 첫발을 뗀지 40년이 자났건만 사실상 제자리걸음입니다. 이게 가능할 것 같으면 지금쯤 장기 부실 때문에 곤란을 겪는 이가 없어야죠.
p280에서 저자는 이 책의 제목 일부이기도 한 "에덴"이 뭘 말하는지 비교적 선명히 풀어 줍니다. 간단히 말해서 바로 저런 "트랜스휴머니즘"에 반대되는 논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저자는 (앞에서도 누누이 강조했듯) 어떤 특정 종교의 교의를 대변하는 건 또 전혀 아니라고 이미 못을 박았습니다. 그렇기는커녕 앞에서 "혐오"라는 이름으로 종교 등을 무작정 보호하는 입법 움직임이 우려스럽다고까지 했습니다. "인간은 인간을 무한하게 넘어선다." 이는 블레이즈 파스칼의 말인데, 칩의 도움이 아니라 해도 이미 인간은 인간인 자체로 인간을 넘어설 수 있기에 존엄한 것입니다. 또 "몸이 가지는 유한함은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극복하자"고 하며 이 책 전체에 걸쳐 일관된 주제를 다시 드러냅니다. 자연도 인간도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며 어떤 기능을 잘 수행하기에 아름다운 게 아니라고 합니다. 확실히, 이 모든 생각이 모두의 공감을 얻어 지켜지고 다른 의미가 새로이 발견되는 사회야말로 모두의 낙원이자 이상향인 에덴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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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네스 하르틀의 [에덴 컬처]로 새로운 미래를 바라보는 시각을 넓히는 귀한 독서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저자가 바라보고 희망하는, 그래서 우리에게도 함께 노력하자고 말하는 듯한 '우리 세대가 갈망하는 새로운 내일'을 다룹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류의 긍정적인 미래를 위해서 '인간 생태학'에 대한 인식과 노력이 필요함을 또한 강조합니다. 그것이 큰 울림처럼 다아가와서 지금까지 내가 무엇이 중요한가에 대해서 고민을 했던가를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급변하는 세상에서 인류는 불안한 시간을 보내면서 난무하는 디스토피아적인 미래전망에 대해 더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러한 때에 어떻게 새로운 인류의 미래와 적극적인 삶을 계획하고 기대할 수 있도록 해줄 밝은 전망의 청사진이 필요함을 늘 생각하다가 마침 이렇게 좋은 책을 만나니까 더 힘이 나는 듯합니다.
인류의 밝은 미래전망을 위해서 지금 인류가 당면한, 그리고 미래에도 큰 문제와 결과를 가져다줄 기후변화와 문제들, 인종차별의 문제, 양극화 현상과 그에 따른 문제에 대한 근원적인 해법을 고려하고 실천하도록 이끌어주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싶네요.
그래서 미래의 우리 인류는 서로 소통하고 연대하며, 화해와 너그러움이 가득할 수 있기를 바라게 되고, 이를 위한 다양한 학문들의 학제적 융합과 화합으로 통섭의 시대를 일으키는 것이 필요함도 깨닫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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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에덴의 뜻은 성경의 창세기에 나오는 지상 낙원을 의미한다. 에덴 컬처라는 것은 우리 세대가 갈망하는 새로운 내일 지상 낙원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미래를 예상할때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라는 2개의 세계관이 등장한다. 하나는 지상낙원이며 하나는 지상낙원의 반대다. 대부분의 게임은 디스토피아를 다룬다. 세계전쟁으로 인해 방사능 문제가 심각해진 세계관인 메트로2033과 폴아웃. 또한, 넷플릭스에서 방영했던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소재로 한 블랙미러 시리즈 등 이렇듯 신기하게 미래를 다루는 소재는 대부분 디스토피아의 배경을 많이 사용한다. 아마도 이것이 유저들에게 좀 더 흥미를 끌 수 있기 때문에라고 생각한다. 요하네스 하르틀 작가님은 이러한 현상은 실제 미래가 낙관적이지만은 않기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설명을 한다.
책의 내용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제1부. 첫 번째 비밀 : 결속 제2부. 두 번째 비밀 : 의미 제3부. 세 번째 비밀 : 아름다움 제4부. 에덴 컬쳐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들을 위주로 서술해나가겠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무서움 :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로 유명한 유발 하라리 작가님은 미래를 낙관적이지 않게 그려낸다. 그의 작품인 호모데우스를 보면 빅데이터를 활용해 인공지능이 발전하게 되며 인류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내용이다. 그러나 인공지능을 발전시키려면 빅데이터가 필요하고, 이런 데이터들은 나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요인이다. 지금은 유튜브 알고리즘 서비스나 쿠팡 상품 홍보 등 내가 생각하지 않던 목표물이 나온다면 내가 원했던 것이 아닌데?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먼 미래에는 인공지능이 절대적지식으로 마치 신의 계시 마냥 변할 수 있기 때문에 데이터 조작을 통해 사람들이 바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소셜미디어의 반증 우리는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SNS에 일상, 여행, 취미 등의 모습을 올린다 그러나 이것은 나는 너무 힘들어요. 불행해요 라고 말하는 것과 동일 할 수 있다. 작가님은 SNS에 지나치게 업로드를 많이하거나 셀카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어렸을 때 부모와의 애착관계가 무너졌기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설명을 한다. 우린 유아기에 부모님으로부터 막연한 칭찬과 기대감을 먹고 자라왔다. 가만히 웃으며 밥을 먹는 모습에도 칭찬해주는 부모님을 보며 아기는 온 세상이 내것인거처럼 착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는 오래가지 못한다.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점차 칭찬은 줄어들고 아이는 관심을 요구를 한다. 이러한 과정속에서 적당한 양의 칭찬과 관심을 갖지 못한 아이들은 불안한 애착관계를 갖게 된다. 이것은 SNS에 그대로 나타나게 된다.
Outro
세상은 과연 갈수록 좋아질 수 있을까? 과거에 비해 영양실조로 죽는사람, 문맹퇴치율 등 긍정적인 지표도 분명 있다. 그러나 서구 국가에서 우울증이나 부정적인 감정을 앓는 사람들이 반세기 전보다 10배 늘었다고 한다. 또한, 최근에 공황장애나 번아웃 등 과거에는 없었던 정신적 질병등이 생겨나고 있다.
아노미 현상은 기술발전의 속도가 사회 정치적 규범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문제가 발생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나는 겉으로는 멀쩡해보여도 속에선 이미 까맣게 타버리고 병들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사회 정치적 규범 뿐만 아니라 정신적 건강도 같이 따라가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후손들에게 밝은 미래를 남겨주고싶다면 지금도 늦지 않았다. 기술을 활용해 건강한 사회를 이뤄나가야한다.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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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 우리가 많이 들어봤을 단어. 어학 사전을 찾아보면..
에덴 (Eden) [명사] [기독교 ] 구약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지상 낙원. 이라고 나온다.
한 마디로 지상천국. 유토피아를 의미한다. 이 책은 갈등과 대립과 분노가 만연한 사회가 아닌 결속와 의미 아름다움을 회복한 사회를 추구한다. 사람이 무엇을 갈망하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관한 물음과 새로운 내일로 가는 해답을 제시한다.
이 책에서 꽤나 재미있던 부분은 바로 소셜 미디어를 대하는 사람들. 그 중에서 특히 셀카에 열올리는 사람들에 관한 부분이다.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어떤 예술 작품이나 사람의 왕래가 잦은 건물 앞에서 셀카찍기. 로마의 스페인 계단, 아이슬란드의 압도적인 장관을 자랑하는 굴포스 폭포, 베를린 동물의 새끼 판다, 무텐위의 만리장성, 또는 루브르의 모나리자 등 어느 곳을 찍었든 나오는 그들의 셀카. 특정 장소에서 찍은 셀카를 포스팅하는 사람은 '나 거기 가봤다.', ' 나는 거기 가서 몸소 겪어 봤어.', '봤어? 이 산에 내가 올랐다고.', '봐, 나는 이런 호텔에서 자.'등을 표현한다. 더 멋진 점은 그것들을 더 낫게 보이도록 꾸밀 수 있다는 것.
놀랍게도 어려서 불안정한 애착 관계에 시달린 사람을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자아를 과장되게 꾸며 보일 위험에 쉽사리 사로 잡힌다는 것이다.
저자인 요하네스 하르틀은 '자아 최적화의 숭배'라고 명명하며 관계를 해치는 네 가지 요소 중 하나라고 말한다.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또 하나 흥미로운 부분은 바로 인간의 노동에 관한 부분이다. 기술의 산업화 사회를 풍자한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스>. 엄격한 감독 아래 컨베이어벨트에서 뼈가 부서져라 일하는 노동자인 주인공. 공장은 휴식 시간 마저 아까워 기계로 노동자에게 먹고 마실 것을 제공하고, 끊임없는 일에 지친 주인공은 결국 기계로 빨려 들어가는 상황. 인간이 기계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사회. 정체를 알수 없는 권력으로 노예가 되는 개인들....(속된 말로 '직장에 뼈를 묻는다'는 말은 그런 상황을 표현한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 상황은 현대가 되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고도로 발전한 디지털 기술 덕분에 아주 많은 시간을 절약하기는 하지만, 그 자유로워진 시간을 한가롭게 여유를 즐기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가? "할 일이 많아.", "양손 가득 할 일을 쥐고 있다."라는 말이 주는 긍정적인 울림. 탈진을 뜻하는 '번아웃'이 만연한 현대 사회를 저자는 '착취'라고 말한다. 끊이없는 자지 착취, 즉 자기 자신에게 행사하는 폭력이라는 것이다. 자유와 계발이라는 미명으로 포장된 자기 착취. 결국 다른 사람, 장소, 사물과의 관계는 약해지고 자아와의 관계마저 무너지는 것이다. 자아라는 말에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오늘날의 사람들 모습이라먈로 완벽한 소외를 보여준다.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인간 자원의 비밀 중 하나는 ‘아름다움’이다. 인류는 항상 아름다움을 창조하고 추구해왔다. 아름다움은 이해관계에 휘둘리지 않는 진리다. 인간 생태를 조화롭고 균형있게 만들어 줄 아름다움의 존재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인간성의 말살을 부추기는 사회가 될 뿐이다. 결극 저자는 아름다움을 깨닫는다는 것은 세계를, 인간을 향한 긍정으로 시작함을 잊지 않아 결속과 의미와 아름다움이 공존하고 결합하는 새로운 에덴. 인간 정원에서의 삶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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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과 대립을 넘어선 분노와 혐오의 시대라고 볼 수 있는 요즘 세상과 사회의 모습, 그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느끼는 대중적 공감대의 존재, 이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이해하며 어디까지 관용을 베풀거나 더 나은 형태로의 전환이나 발전을 추구할 수 있는지, 책의 저자는 이 점에 대해 몰입하며 다소 어렵고 복잡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직언을 하고 있다. 또한 철학적 의미를 더하며 사회와 사람, 세상과 미래라는 관련된 키워드에 대해서도 비교적 쉽게 전달하며 자신 만의 생각과 논리를 잘 표현하고 있다.
<에덴 컬처> 이는 특정 국가나 기업, 종교의 문제가 아닌, 전 세계인이 겪는 고충과도 같고 어떤 의미에서는 과도기적 성향, 성장통 등으로도 표현되나, 제법 우려스러운 부분으로 바라보는 이들의 경우에는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많은 부분에서의 변화나 통합과 상생의 방안을 하루 빨리 마련하며 해당 문제에 대해서도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우리 사회에도 적용해 볼 수 있고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나 가치를 부여하며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게 하거나 지난 시간과 과거를 통해 배울 수 있는 메시지를 잘 표현할 수 있는지, 책을 통해 이 점에 대해 더 나은 형태의 통찰력과 배움을 통해 어떤 형태로 표현해야 하는지도 판단해 볼 수 있다.
특히 과학 기술 분야의 발전과 모든 일처리나 행정의 자동화, 기계화로 인해 이익을 보는 사람들이 있지만 반대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거나 기존의 가치나 질서 등을 지키려는 사람들 또한 상당하다는 점에서 세상변화는 그리 낭만적으로만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이를 위해서도 통합과 상생의 마인드를 가져야 하며 저자의 경우에는 다소 어려운 부분으로 볼 수 있는 종교적 대입이나 적용, 철학적인 해석을 통해 관련 주제와 문제에 대해서 바라보고 있다. <에덴 컬처> 이는 기존의 관점에서 벗어난 새로운 접근과 시도로 볼 수 있고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인간다움이나 인문학적 가치나 의미를 어떤 형태로 마주하거나 찾아야 하는지도 함께 생각해 보게 된다.
<에덴 컬처> 갈수록 진화하는 모든 영역에서의 변화상, 그리고 사람들이 느끼는 다양한 형태의 감정들, 개인의 입장에서는 어떤 형태의 삶을 지향해야 하는지, 그리고 다양한 주체나 집단, 공동체의 경우에는 어떤 형태로 사회질서나 사회문제 등을 모두 고려하며 더 나은 세상과 미래를 향해 설계하거나 주도적인 역할과 책임 등을 병행해야 하는지도 저자가 말하는 철학적 표현, 그리고 인문학적 가치를 통해 공감해 보게 된다. <에덴 컬처> 사실 어려운 주제는 아니나, 복잡해 보이며 다양한 변수와 서로 다른 평가와 반응이 공존하는 부분이라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책을 통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배우며 생각해 봐야 하는지, 저자의 논리와 통찰력을 통해 접하며 공감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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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책을 읽게 될 줄 몰랐다 철학을 논하는 것은 나와 맞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이 책을 펼치고 몇 장을 넘기면서 ‘사람이 살아가는 모든 상황이 철학이구나’싶었습니다. 고대 문화에서는 이상적인 세상의 모습을 이야기하며 [유토피아]를 그렸다고 합니다. *유토피아 :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상태를 갖춘 완전한 사회 고대 사람들이 지금의 세상에 온다면 이곳이 바로 유토피아구나! 하고 생각하겠죠. 하지만 근대 이후의 사람들은 [디스토피아]를 상상하며 미래를 두려워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디스토피아 : 현대 사회의 부정적인 측면이 극단화된 암울한 미래상. 소설(1984, 더 기버), 영화(헝거게임, 설국열차), 드라마(고요의 바다, 블랙미러)에서도 그런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죠. 우리가 그리는 미래상과 우리가 겪게 될 미래는 과연 일치할까요 우리는 어떤 이상적인 세상, 에덴을 그려야 하는 걸까요 이런 생각을 하며 조금은 낯설지만 그렇다고 너무 동떨어지지도 않은 철학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결속되어야 한다 하지만 사회는 디지털 문명의 발달 으로 사람을 직접 만나지 않아도 업무를 볼 수 있고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도 온라인으로 먼저 이뤄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현상을 보며 저자는 사회가 갈수록 더 차가워진다.라고 표현합니다. 어쩌면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사회가 더 앞당겨졌다..라고도 생각하지만 언젠가는 오게 될 미래였고, 누구나 느끼고 있었을 것입니다. 인간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하는 존재인데 문명이 발달할수록 각자의 섬에 고립되어가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철학인가? 심리학인가? 사회학인가?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드는 이야기. 어려운 책이지 않을까? 매우 추상적인 이야기이지 않을까? 했던 추측과는 달리 세세한 예시를 통해서 저자가 이야기하고자하는 에덴의 중요한 요소 결속과 의미, 아름다움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책. 저자는 이것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지고 잘 가꾸어진 에덴에서 위협받는 인간의 생태계가 회복된다고 말합니다. 뜻밖에 좋은 책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고, 우리 세대가 진정으로 갈망하는 미래는 어떤 모습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만들어주는 책이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페이지 p.92 부모와 아이 사이의 애정을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표준 테스트가 하나 있다. 이 테스트는 어느 문화권이든 비슷한 결과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테스트는 이런 식으로 이뤄진다. 보호자가 아이를 어떤 공간에 두고 떠났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돌아온다. 아이가 이 이별과 재회에 보이는 반응에 따라 우리는 평소 아이와의 관계가 어땠는지 알아볼 수 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처음 보내는 부모들은 자연스럽게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되는데, 안정적 관계를 형성한 아이는 보호자가 자신을 두고 가버리면 울기는 하지만, 이내 안정을 되찾고 보호자가 다시 나타나면 반색을 하며 맞이한다고 합니다. 불안정적 관계를 형성한 아이는 회피, 모순, 혼란의 반응을 보이는데 특히 회피의 태도를 보이는 아이는 부모가 사라져도 겉보기로는 아무렇지 않은 것 같아도, 오히려 심각한 위기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위 상황과 비슷한 사례를 들은 적이 있어서 더 기억에 남는 구절이었습니다.
#에덴컬처 #요하네스하르틀 #김희상 #나무생각 #미래전망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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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 컬처>를 통해서 진정으로 우리가 원하는 에덴에 대해 시각을 넓혀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는 점에서 특별한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 책은 무엇이 에덴인가를 물으며 '우리 세대가 갈망하는 새로운 내일'에 대한 통찰을 제시합니다. 멋진 내일을 위해서 우리 인간은 어떠한 '생태학'을 만들어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각에는 미래를 내다보는 밝은 전망을 전제로 하는 면이 부각되고 있는데, 무엇보다 이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암울한 미래 전망을 주로 접하다 보니, 살아가는 자체가 힘겹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 책으로 미래에 대한 낙관이 큰 에너지를 발휘해서 미래의 인류 존속과 지구생태계를 좌우한다는 기후변화에 대해서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에 대한 고찰, 그리고 인종차별의 문제로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음에 대해서 알고 그에 대한 해결방법을 어떻게 모색할 것인가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고민해볼 수 있게 해주는 책이라서 더 큰 의미를 부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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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하고 아담과 하와가 살았던 이상적인 낙원이라 할수 있는 에덴. 그곳에서는 온갖 아름다움이 가득하고 인간은 노동을 할 필요없이 자연속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면서 살수가 있었죠. 그러나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결국은 에덴의 낙원에서 쫓겨 나고 노동을 통해 살아가야 했으니.
현재 과학문명기술은 엄청나게 발전하여 인간은 과거의 인류보다 풍부한 식량과 뛰어난 의료기술로 기대수명이 훨씬 길어졌지만 물질적 풍요와 반대로 늘 허무하거나 외롭거나 공허하다는 마음의 빈약함이 가득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분명하게도 풍요로움이 가득한 세상인데 왜 우리는 행복하지 못한것일까요? 그런 의문에서 출발한 이 책은 그래서 현재의 우리가 다시 볼아봐야할 정원의 가치 즉 우리가 꿈꾸는 이상적인 미래상을 위해 회복되어야 할 것들이 무엇임을 우리에게 안내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결속과 의미, 아름다움의 회복이 우리가 또 다른 에덴으로 가기 위한 길임을 제시하고 있는데요. 현재의 인간관계는 복잡하고 얽혀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가족관계부터 시작해서 결속이 너무 느슨해져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울러 우리는 삶의 의미를 돌이켜볼 시간도 없이 그냥 앞으로 목적만을 향해 뛰어갈뿐 왜 살아야하는지에 대해서는 답을 얻지 못하고 있죠. 아울러 천편일률적인 도시의 건물숲에서 효율만을 추구할뿐 과거의 성당이나 왕궁등이 가졌던 아름다운 모습을 도시의 빌딩에서는 찾아볼수가 없죠.
한편으로 우리는 기후위기등을 맞아 생태계아 위협받고 있음을 인지하면서 온실효과를 줄이기 위한 탄소정책들을 펼치고는 있지만 이는 단순한 생태계에 대한 회복을 위한 노력일뿐 우리 인간의 정신이나 문화의 생태계에 대한 복원에 대해서는 우리는 제대로 논의를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결국 기후위기가 해결된다 하더라도 현대의 인류가 갖는 정신적 공허함은 해결할수 없는 것이고 이에 우리는 진정한 낙원은 단순한 기계적 아름다움이 아닌 생명의 정신으로 충만한 그곳이야말로 우리가 꿈꾸는 에덴동산이 될수 있다는 이야기로 이 책은 결말을 짓습니다.
에덴 2.0으로 표현되는 모두가 정말 바라는 미래. 그곳은 인공지능이 가져다주는 편리한 생활의 미래이기보다 누구나 상처를 받지않고 소외당하지않고 화해와 너그그러움이 가득한 세계이기를 바라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