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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 도망 노예 소년이 해양 세밀화가로 거듭나며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대모험. 부커상 최종 후보작으로 손색 없는 수작. 노예 도망 소년이 청년이 되어 자유를 획득하게 되는 긴 여정만큼이나 긴 독서였다. 부록 없는 578쪽의 분량은 소설이라고 해도 결코 적지 않다. 두 권으로 나누어도 될 만큼 묵직하고 두껍다. 그만큼 흑인 노예 '워싱턴 블랙'의 삶은 긴장과 초조, 불안과 기대의 시간 속에 놓여 있었다. 책 뒷표지의 글처럼, 부커상 최종 후보작, 캐나다 최고 문학상인 길러상 수상작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하지 않은 빼어난 작품이다. 잔인한 백인 형으로부터 흑인 노예를 숨겨 달아난 백인 티치, 그의 연구를 돕다 얼굴에 끔찍한 화상을 입어 누구라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천형의 삶을 살게 된 기구한 노예 소년 <워싱턴 블랙>. 그는 마치 자유을 갈구하는 것처럼, 다시 자신을 버리고 사라진 티치를 찾아 모험의 삶을 떠난다. 그가 분리불안을 가지고 쫓아 다닐 정도로 집착했던 티치 백인은 그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자유를 안겨준 주인 백인일까? "킷 아줌마, 그건 어떤 느낌이에요? 자유롭다는 건요?" 그녀가 흙바닥에서 자세를 바구는 게 느껴졌다. 이내 그녀는 나를 바짝 끌어당겼고, 내 귀에 그녀의 뜨거운 입김이 닿았다. "아, 얘야, 이 세상에 그에 비길 만한 건 아무것도 없단다. 자유로우면 너는 무엇이든 할 수 있어." (20) 흑인 노예들을 사람이 아닌 가구 취급하는 것이 일상인 1800년대 영국령 사탕수수 농장. "나라면 지금 하인 앞에서 이런 대화를 나누지는 않겠어." "그들은 하인이 아니야, 티치. 그들은 가구야." (39) 다행이라면 그를 형으로부터 훔쳐? 달아난 동생 티치가 노예폐지론자였다는 사실. 그의 눈가 피부가 팽팽히 당겨졌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흑인들도 당연한 권리와 자유를 모두 지닌 하나님의 피조물이야. 노예 제도는 우리에게 달라붙어 있는 도덕적 오점이지. 백인들이 그들의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바로 이거야." (153) 백인 티치는 워싱턴 블랙을 조수로 삼아 그에게 숨겨진 그림 그리는 재능을 발견케 한다. 전 주인 형으로부터 수배전단지가 뿌려지고 도망자 신세가 된 워싱턴 블랙의 두려움은 우리가 상상하는 그것 이상일 것이다. 미스터 베네틱트가 자기 파이프 자루를 씹었다. "음, 냄새가 나." 그가 말했다. "나한테는 그냥 평범한 검둥이로 보이는 걸," "선장님, 과학의 첫 번째 규칙은 겉모습을 믿지 말고, 대신 실체를 찾아내라는 겁니다." (198) 홀로 된 티치가 해양 세밀화가로 거듭난 뒤 펼쳐지는 또 다른 모험의 세계. 그것은 두려움을 잠재울 특별한 은총이었다. 매일 아침, 나는 심과 물감이 든 책가방과 내가 직접 만든, 이젤이 부착된 작은 접이식 의자를 챙겨서, 어두컴컴한 내해를 향해 셋방 건물 뒤쪽의 조용한 흙길을 걸어가곤 했다. 그 시각이면, 그곳에서는, 거리가 온통 내 차지였다. 골목길마다 고양이들이 발톱 가는 소리, 헐거운 문들이 덜컹거리는 소리, 시궁창에서 잎사귀들이 사락거리는 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존 월러드, 필립, 티치 - 그 모두가 또 다른 삶인 것 같았다. 나는 바닷가가 보이기 시작할 때까지 한동안, 질식할 듯 해초에 칭칭 감긴 바위들을 느릿느릿 기어오르는 잔잔한 바닷물 소리를 들으며, 마을에서 보이지 않는 곶 바로 너머의 내해를 향해 나아가곤 했다. 세상이 얼마나 밝게 빛나고, 텅 비고 고요했던가. (331) 삶은 온통 역경 투성이다. 현대에 와서도 인간은 6개월에 한 번씩은 특별하고도 힘든 일이 발생한다는 통계가 있다. 즉 평온한 상태가 6개월 이상은 지속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어떤 불운한 일이든 무언가는 발생하기 마련이다. 나 역시 최근 6개월 동안, 갑상선 암 진단과 수술 그리고 퇴직이라는 굵직한 인생사를 맞이했다. 그러나 인간은 앞으로 나아간다. 나아갈 수밖에 없다. 멈춰 서 있는 건 뒤로 밀려나는 것과 같다. 시간이 강과 같이 흐른다면, 우리도 물살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갈 도리밖에 없다. 여기 소년도 그랬다. 아이에서 소년으로 그리고 청년으로 자라났다. 그렇지만 그의 화상 입은 얼굴은 바꿀 수 없었고, 전 세계 어디에나 도망자를 찾는 사냥꾼들이 있었다. 그를 찾아내는 것은 손 집고 헤엄치는 것처럼 쉬워 보였다. 그는 새로운 세계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하며 자유에 푹 잠긴다. 해양생물학자로서 그는 성공할 것인가. 그는 다양한 해양 생물의 세계에 눈을 뜨면서 모든 생명체는 그 존재만으로 각각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렇다면 자신 역시 유일한 가치를 가지고 있을 것임에 틀림 없다. 그는 그 사실을 깨달았을까. "어쨌든, 나 자신의 가치관이 현존하는 유일한 가치관도, 또 최고의 가치관도 아니라는 걸 인식하게 된 건 바로 그때였어. 이 세상에는 수많은 존재 방식이 있음을 깨달았지. 하나의 신념 체계를 다른 신념 체계보다 우위에 두고 완고하게 특별 취급하는 건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는 것임을 깨달았어. 모든 것이 독특하고, 모든 것이 다 가치가 있어." (364) 그리고 다시 자신을 버린 것으로 오해한 티치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자신이 다시 잡힐지도 모르는 두려움을 안고서. 이 책은 한 흑인 도망 노예 소년을 주인공으로 모험담처럼 서사를 제공하지만, 노예 제도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차별을 사회적이면서도 문학적인 수준으로 끌어 올린다.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배경으로 하는 해양 생물의 다양함과 자연 관찰의 순수함으로 자연과학과 지식의 아카이브를 제공한다. 그리고 후반에 해양생물학자의 딸로 등장하는 태나와의 만남으로 백인 여성과 상처 입은 흑인 청년의 사랑이 시작되는 놀라운 서사를 이어간다. 과연 이 사랑은 이루어질 수 있는 사랑일까? 나는 그를 존경했다. 정말 그랬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느끼는 욕망을 가라앉히기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하루 종일 일을 하다가도 그 잔인한 이끌림에 깜짝 놀라서, 가슴이 철렁하며 거듭 멈춰 서곤 했다. 내가 결코 함께할 수 없는 누군가를 못 견디게 갈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 것 같았다. (367) "그런 건 불가능해." 나는 차분하게 그를 응시했다. "실제로 이뤄지기 전까지 가능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선생님." (391) 긴 여정의 독서였지만, 행복했고, 아름다웠다. 근래 들어 이렇게 아름다운 수작을 만나보지 못했다. 노예 제도의 슬픔을 담고 있으면서도 흑인 차별이라는 간단한 프레임에 가둬 놓지 않고 다양한 플롯을 사용해 독자의 흥미를 자극한다.책 뒷표지 내지에 적힌 추천사를 읽어보면 이 책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 수 있다. 비교문학연구자 윤경희의 추천사는 미학적 글로 수려하게 수놓아진 별과 같이 아름다워서 내가 한 글자도 더하거나 뺄 수가 없다. 그의 글로 독서 후기를 마무리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어 여기 그대로 옮기며 글을 맺는다. <워싱턴 블랙>은 해양 생물 세밀화를 매개로 감각적 아름다움과 사실의 정확함이라는 두 가치가 상반되지 않음을 균형감 있게 일깨운다. 우리는 이 소설을 읽으며 열기구, 카메라오브스쿠라, 시신 탐구와 해부학, 생물 분류법, 박물관 전시, 아카이브와 도서관을 향한 백과사전식 호기심을 충족시키면서 또한 인종, 성차, 동물권 등에 관한 정치적 사유와 실천을 미적 글쓰기 안에 담아내는 법을 배운다. 나아가 인간은 어떤 역경과 고통을 겪을지라도 지식을 향한 열망, 존엄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 세계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은 감수성을 견지할 수 있다는 굳은 믿음을 나눠받는다. -윤경희, 비교문학연구자 (뒷표지 안쪽 추천의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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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탕수수 농장에서 태어난 조지 블랙은 어느 날 나타난 농장주의 동생 티치의 개인 노예로 일하게 되고 잔인한 품성을 가진 농장주와는 달린 온화하고 지적인 티치의 밑에서 과학에 대해 눈을 뜨게 된다. 그러다가 농장주의 사촌이 자살하면서 워싱턴이 범인으로 몰리게 되고 티치의 열기구를 타고 도망가며서 도망 노예의 신세가 된다.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주인공이 겪는 역경과 수난을 통해 인간의 품위와 지식에 관한 갈망을 느껴볼 수 있는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