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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김밥을 좋아해서 종종 배달을 시켜 먹는다. 내 입에 딱 맞는 충무김밥집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이 책을 읽은 날 너무 너무 먹고 싶었는데, 3인분 이상만 배달이 가능해 가족들이 있는 날을 이용해서 먹었다. 예전엔 2인분도 배달해주었고, 가격도 4500원이었는데 지금은 1인분에 6000원이다. 정말 많이 올랐지만 맛이 있으니 먹을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좋아하는 충무김밥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책을 봄날의책방의 책바다봄 세 번째 꾸러미로 만나게 되었다. <어딘가에는 @가 있다> 는 서울에서 살다가 지역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다섯 출판사 강원 고성의 온다프레스, 충북 옥천의 포도밭출판사. 대전의 이유출판, 전남 순천의 열매하나, 그리고 경남 통영의 남해의봄날이 함께 담아낸 인문 에세이 시리즈인데 그 중 남해의봄날에서 출간한 책이다. 봄날의책방은 통영에 가면 꼭 들르는 책방이고, 충무김밥도 통영도 좋아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통영의 문화와 지역 사회 다방면에서 깊은 관심을 갖고 널리 알리는 기사와 글을 쓰고 있는 저자는 '오늘날 통영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고 사랑 받는 음식 충무김밥. 충무김밥의 역사는 통영항 강구안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충무김밥의 근원지 통영항을 배경으로 충무김밥의 원조를 찾는 여정을 시작하려한다.'고 출간 의도를 밝히고 있었다. 충무김밥은 언제 시작되었을까?
여수에서 출발한 여객선이 남해섬, 삼천포, 충무(통영), 성포(거제)를 거치면서 영도다리를 지나 부산항에 도착하기까지 여덟시간 이상 걸렸다. 부산과 여수를 오가던 배가 중간 기착지인 충무에 닿으면 그 배의 승객들을 대상으로 아주머니들이 김밥을 팔았는데, '속 재료 없고 반찬 따로'인 오늘 날 충무김밥의 형태가 그 당시부터 있었다고 한다. 적어도 1950년대부터 충무김밥이 존재한 셈이다. 통영에서 또 하나의 '원조'를 내세우는 '원조3대할매김밥'도 간판에 'since 1956'이라고 내걸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 p61
'뱃머리김밥'이라고 불리던것이 '충무김밥'으로 불리게 된 것은 '국풍81'이 계기가 되었다고한다(국풍81 : 1980년 5월 광주민주항쟁이 일어난 지 1년 뒤. 전두환 군사정권이 광주항쟁의 기억을 희석하고 정권에 대한 불신을 무마하고자 개최한 대규모 예술제이자 관제 축제.)
이런 행사가 있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국풍81 행사에서 '팔도미락정'이라는 이름의 먹거리 장터가 벌어졌는데, 그 현장에서 가장 인기를 끈 먹거리가 충무김밥이었다고 한다. 이렇든 충무시라는 이름과 함께 알려진 음식이라 충무시가 통영시로 바꼈지만 통영김밥으로 바뀌지는 않는다고 했다. 왜 통영김밥이라고 하지 않는걸까 항상 궁금했었는데, 궁금증이 풀렸다. 당시에 충무김밥을 팔았던 분이 어두이(당시 63세)옹으로 강구안 문화마당 '뚱보할매김밥'을 시작했던 분이었다. '원조3대할매김밥'의 김복순옹과 함께 충무김밥 1세대로 추정할 수 있다고 한다. 어두이옹이 충무김밥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인 것은 맞지만 충무김밥 단독 개발자라고는 단언할 수 없다는 것을 보면 <어딘가에는 원조 충무김밥이 있다>라고는 할 수 있지만 정확히 알기는 어려운듯했다. 원조를 모른다고 아무런 문제 될 것은 없다. 원조를 찾는 여행에 동참해서 먹기만 할 줄 알았던 충무김밥의 역사도 알게 되고, 충무김밥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충무김밥의 구성도 세월에 따라 많이 변해왔지만 책에 따르면 내가 먹고 있는 이 구성이 요즘 가장 일반화되어 있는 것이었다. 김밥 8개 (내 단골집은 10개다, 사실 8개는 좀 적다.) , 오뎅과 오징어 무침(오징어보다는 오뎅이 좋다), 섞박지와 시래기국. 서울 충무김밥집에는 섞박지 대신 깍두기가 ,시래기국 대신 파 고명만 썰어넣은 맑은 멸치국물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상상만으로도 그건 아니지싶다. 저자는 섞박지의 각도까지 조사해보는 정성을 들이며, 충무김밥 구성의 변천사를 자세히 알려주었다.
한 도시를 떠올릴 수 있는 음식에 대한 역사를 찾아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싶다. 통영이 그리 멀지 않아 1년에 한 두번은 여행을 간다. 통영꿀빵(통영꿀빵의 원조는 오미사 꿀빵으로 알려져있다.) 은 꼭 사들고 오지만 충무김밥을 먹지는 않았다. 동네에서도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다음에 가면 꼭 강구안에 가서 통영을 대표하는 충무김밥을 한 번 먹어보고 비교를 해보고싶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 고장의 대표음식에 대해 궁금해졌다. 원조가 어디인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알고나면 더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충무김밥이 다시 보이는 것처럼.
<내가 먹은 충무김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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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가스 김밥 먹고 싶다!” 누군가가 말했다. 그런 김밥도 있냐며 다들 웃어 넘겼는데, 얼마 전 방문한 분식집 메뉴판에서 ‘돈가스 김밥’을 발견했다. 주문을 않아 실체는 모르나, 두툼하게 튀긴 고기가 내용물로 들어갔다면 김밥의 두께가 상당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에 비하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충무김밥은, 적어도 크기만을 놓고 본다면 참으로 빈약하다. 통영에 여러 차례 방문했지만 충무김밥을 주문해 먹을 생각을 한 적은 없다. 신선한 해산물이 천지에 널렸는데, 그 먼 곳까지 가서 굳이 김밥을 시킬 필요성을 아니 느낀 탓이 크다. 충무에서 통영으로, 오래 전 바뀐 지명에 대한 낯섦 또한 나의 결단에 적잖이 영향을 주었다. 여전히 나의 부모는 통영을 충무로 칭하나, 난 그 말을 들을 적마다 경상남도 통영이 아닌 서울의 3호선 충무로역을 쉬이 떠올리는 것이다. 특정 음식으로 유명하다는 지역에 가면 가게마다 ‘원조’라는 단어가 부착돼 있다. 죄다 오래 되었음은 분명하나 어디서부터 비롯됐는지를 따지고 들면 아마 여러 날이 걸려도 정답에 도달하기가 힘들 듯하다. 관공서가 인허가에 관여를 한다지만 무수히 많은 서류 더미를 들춰가면서 어디가 충무김밥 원조집일지를 탐색하는 이는 아마 없을 듯. 게다가 과거에는 오늘날처럼 모든 것의 전산화가 이루어지 않았을 것이므로, 서고에서 기침하며 먼지가 자욱하게 뒤덮인 서류를 들출 엄두가 나질 않는다. 혹 별도의 절차를 밟지 않고, 이른바 무허가(?)로 영업을 한 가게가 있었다면? 어쩌면 인간의 기억이 공적 문서보다 더 정확할지도 모른단 데까지 생각이 도달했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충무김밥의 역사를 헤아리고자 저자는 길 위에 섰다. 이제는 유명 관광지가 된 통영의 강구안에서 그는 충무김밥의 시초를 찾았다. 때는 1950년대. 지금보다 훨씬 드넓었던 항구에는 수없이 많은 배가 들락였다. 차, 기차 등 별다른 교통수단이 아직은 발달하기 전, 이 동네에선 전적으로 바다에 의존해 모든 게 행해졌다. 타지로 이동하거나 집으로 되돌아오는 길목에서 사람들은 충무김밥을 만났다. 그의 이야기 속 충무김밥은 모양새가 지금과는 사뭇 다르다. 김밥, 김밥만큼 담아낸 섞박지와 꼴뚜기(호래기) 무침이 그의 기억 속 충무김밥의 실체였다. 서울에서도 충무김밥을 판매하는 가게가 없는 건 아니지만, 오징어, 심지어 어묵무침이 꼴뚜기를 대체한 경우가 잦은 편이다. 이는 충무김밥의 고향인 통영에서도 빚어지고 있는 바로, 시대의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에게는 그마저도 낯설다. 주로 분식집에서 김밥을 먹어온 내게는 배추김치와 단무지, 거기에 내용물이라곤 거의 없는 말간 된장 국물 정도로 김밥과 찰떡 궁합을 자랑하는 것이다. 그런데 통영에선 지금은 보기 힘들어진 꼴뚜기는 둘째치더라도 무려 섞박지를 내어 놓는단다. 그것도 네모 반듯, 정갈함을 자랑하는 게 아닌 비스듬히 썰어낸 형태다. 제멋대로 자른 거 같으나 그 각도는 15도에서 20도 사이로 균일하다. 저마다의 경험을 통해 도달한 최적의 각도를 구현한 것이다. 게다가 이 동네에선 시락국(‘시락’은 ‘시래기’의 경상도 방언)이 나온다. 멸치와 된장을 사용한 국물은 충무김밥의 ‘화룡점정’이라고 했다. 살면서 제대로 된 충무김밥을 먹어본 적이 있었을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충무김밥의 실체는 아리송해졌다. 김밥 자체가 가벼이 즐기는 간식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통영 사람들 중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자신있게 충무김밥을 언급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다 하여 1981년 여의도 국풍81 행사장에서 충무김밥의 전국적 유명세를 주도한 ‘뚱보할매김밥’ 식당 어두이 할머니의 삶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지금은 볼 수 없게 된 풍경을 상상해 본다. 여객선을 놓친 사람들이 돛단배에 올라탄 모습, 힘겹게 노를 저어 여객선을 뒤쫓는 돛단배에 실린 충무김밥을. 직접 그 시절을 겪지 않았어도, 좋은 재료에 정성어린 손맛이 더해진 충무김밥은 우리 모두에게 닿을 수 없는 그리움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