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학교에 다닐 때, 한글날은 국경일로 공휴일 이었다. 그러던 것이 언젠가부터 국경일에서 지워지고 여느 날과 다름이 없어졌다. 공휴일이 하루 줄어들었다는 아쉬움만 남았었고,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다 다시 국경일로 지정되면서 마침내 올해부터 공휴일로 되었다. 이것 역시 노는 날이 하루 늘어났다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요즈음 우리들의 현실이 아닌가 싶다. 하긴 그것이 비단 한글날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주시경선생 하면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있다. 중학교를 시골에서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에 입학한 1학년 여름쯤 국어시간에 생긴 일이다. 교과서에 주시경선생이 나오고, 국어선생님은 그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었다. 주시경선생의 호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을 때, 나는 한힌샘의 뜻이 무엇인지를 질문했다. 그 순간 반 아이들이 모두 와 하고 웃었다. 아마 시골에서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사투리를 쓴 질문이 아이들을 웃게 했던 것 같다. 순간 나도 당황했고, 선생님도 당황했던 것 같다. 그러나 선생님은 자기를 놀리려고 했던 것으로 오인하고 이내 앞으로 나오라고 하더니 체벌을 시작했다. 맞는 것이야 참을 수 있었지만, 잘못을 인정하라는 말은 이해가 되지를 않았다. 영문도 모르고 당하는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결국 그것은 체벌시간이 예상보다 길어지게 했다. 그 후, 국어시간이 되면 모든 질문에 나는 예, 아니오 라는 단답형 대답만으로 일관했고, 다행히 국어선생님은 그런 나를 더 이상 뭐라 하지 않았다. 졸업할 때까지 국어선생님이 그 일에 대해 사과를 했는지, 어땠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투리를 쓰는 빈도가 적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그 선생님과 대화를 했던 것 같다. 이렇게 장황하게 글을 시작하는 이유는, 말과 글을 생각한대로 나타낼 수 있는 우리말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함이다. 사실 우리말은 세계에서 가장 알기 쉽고 배우기 쉬운 글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런 문자를 가지고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공기가 필요하지만 우리는 일상에서 공기를 의식하지 않듯이, 우리말 또한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생각하기에 그런 것이 아닐지 모르겠다. 몇 년전 일어난 어렌쥐 파동이 씁쓸했던 것은 아마 그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훈민정음은 주시경에 이르러 한글로 다시 태어났고, 조선어학회의 노력으로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고 한다. 언문, 정음, 반절 등으로 불리던 우리말과 글에 주시경이 한글이란 이름을 처음 붙였고, 그가 1908년 조직한 국어연구학회가 조선어학회, 그리고 한글학회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이 책은 주시경이 말모이(국어사전) 편찬사업에 뛰어든 1910년부터 시작하여, 그의 제자들이 1957년 우리말 큰사전 전 6권을 완간 할 때까지 47년간의 투쟁기록을 정리한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이 한글학자의 한글 연구서가 아니라 조선어학회사건을 중심으로 기술한 역사서이며, 일제 식민통치아래 펼쳐진 민족투쟁, 독립투쟁 가운데 조선어학회의 말글수호투쟁이 가장 성공적이었고 값진 투쟁이었다고 말한다. 1984년 갑오개혁 때, 한글이 조선의 공식문자인 국문으로 격상되었다. 배재학당에서 감리교신도가 되었던 주시경은 외세의 침략이 외래종교의 유입을 통한 민족성파괴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기독교 신앙을 버리고 대종교에 귀의하면서 한글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였다고 한다. 1910년 일제의 강제 합병 후, 그는 장차 일제가 조선어말살 정책을 펼칠 것이라 예견하고 제자들과 함께 말모이 사업에 뛰어 들었다. 4년여의 노력 끝에 우리말 사전의 형태가 갖춰지기 시작했으나, 1914년 7월 주시경이 38세로 요절하면서 말모이 사업은 뿌리째 흔들렸다. 그러다 1920년 조선총독부에서 조선어사전을 편찬하자, 이에 충격을 받은 한글학자들은 조선어학회를 만들어 주시경의 유지를 잊지 않고 말모이 사업에 몰두 했다. 이극로, 장지영, 권덕규, 이희승, 이승규, 최현배 등 그들은 대부분 주시경의 직계제자들 이었다. 그들은 심각한 재정난과 일제의 탄압을 견뎌내면서 한글연구를 계속했고, 그 결과 1933년 한글맞춤법통일안을 제정하고, 1936년 표준말을 발표하는 등, 조선어사전 편찬을 위한 준비를 계속했다. 1938년 학교교육에서 조선어과목이 폐지되고, 신사참배와 창씨개명이 강요되는 가운데, 이에 분개한 신명균이 1941년 조선어사전 편찬을 유언으로 남기고 자살을 했다. 조선말 큰사전 출간이 코앞으로 다가온 시점, 마침내 일제는 대종교와 조선어학회를 묶어 조선어학회 사건을 일으켰다. 당시 대종교는 서일, 김좌진, 홍범도, 이범석의 무장독립세력, 신채호, 박은식, 정인보 같은 민족사학자 그리고 주시경, 김두봉, 이윤재 등 식민지시대 많은 지식인들과 독립투사들이 귀의해 있었다고 한다. 이에 일제는 1915년 대종교를 반일조직으로 규정, 포교를 금지시켰고, 마침내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이는 그 동안 조선어학회 사건이 순수학술 연구단체를 일제가 모략하여 조작한 사건으로 알고 있었으나, 실제는 언어독립투쟁에 대한 일제의 탄압이었음을 밝히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사건으로 검거된 이극로, 최현배, 이희승, 안재홍 등 대부분의 조선어학회 회원들은 또한 대종교 신도들이기도 했다. 그들에게 조선어사전 편찬은 말 그대로 항일투쟁이고 독립투쟁이었던 것이다. 일제는 조선어학회 회원 들을게 갖은 고문으로 죄를 뒤집어 씌웠으며, 그 결과 일부는 옥사하였고, 일부는 재판과정에게 석방 되었다. 마지막으로 최현배, 이극로, 이희승, 정인승만이 남았으나 곧이어 닥친 해방으로 이들도 풀려났다. 해방이 되면서 이들 조선어학회 회원들은 조선말 큰사전 편찬에 몰두했고, 마침내 1947년 제1권을 간행했다. 이후 이극로가 월북하면서 이극로는 북한에서, 그리고 최현배는 남한에서 어문정책을 담당하면서 조선어학회의 정신을 이어받아 말과 글이 서로 갈라지지 않게끔 하였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 1953년 당시 대통령이던 이승만은 한글철자법을 구한말 자신이 배웠던 것으로 환원하라고 지시하여 이른바 한글파동을 일으킨다. 결국 많은 학자들과 문화계의 반발에 1955년 이승만의 백기로 한글파동은 종식되었지만, 무지한 지도자의 독선은 한글의 역사에 큰 오점을 남기게 만들기도 했다. 1957년 마침내 우리말 큰사전 전 6권이 완간 되었다. 주시경이 1910년 말모이 사업을 시작한 이래, 일제의 혹독한 탄압을 이겨내고 47년 만에 그의 제자들에 의해 투쟁이 완료된 것이었다. 우리는 아무런 생각 없이 한글을 사용한다. 또 세종대왕이 창제한 훈민정음이 그저 오늘의 한글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일제의 조선어 말살정책에 맞서 주시경과 그의 제자들이 한글을 연구하고, 또 그것을 지키기 위하여 얼마나 값진 투쟁을 하였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요즘 한참 논란이 되고 있는 어느 출판사의 한국사교과서에서도 일제의 조선어 정책에 대한 부분이 논란의 중심에 있다고 한다. 그들의 눈에는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보는 이데올로기의 안경이 씌어져 있다. 그러니 조선어학회의 이런 투쟁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 아닐까 싶다. 역사는 자기들 입맛에 따라 왜곡할 수 있지만, 진실은 바뀌지 않고 언젠가 밝혀지는 법이다. 더불어 한가지 바램이 있다면, 이 책에서 드러난 조선어학회의 언어독립투쟁을 비롯한 일제시대 수많은 독립투쟁과, 대종교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많은 역사학자들이 하루빨리 복원하여 우리의 잊혀진 역사를 제대로 알게 되었으면 하는 점이다. 한글날을 맞아, 이 날이 단순히 하루 노는 공휴일이 아닌 우리글과 말이 걸어온 역사를 되돌아 보는 날이기를 기원해 본다. |
|
한글!!! 언문, 정음, 반절 등으로 불리던 우리 말글에 '한글'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인 사람이 누구인가? 올해 한글날이 23년 만에 공휴일로 다시 지정되었다. 단순히 공휴일로 부활한 한글날을 그저 하루 쉬는 날로 생각했던 사람도 바로 이 책 <주시경과 그의 제자들>을 읽는다면 제대로 한글날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글은 말을 담는 그릇이다. 그러므로 이지러짐 없이 반듯하게 자리를 잡아 굳게 선 뒤에야 그 말을 잘 지킬 수 있다. 글은 또 말을 닦는 기계라서 기계를 닦은 뒤에라야 말이 잘 닦인다. 말과 글이 거칠면 그 나라 사람의 뜻과 일이 다 거칠어지고, 말과 글이 다스려지면 그 나라 사람의 뜻과 일이 잘 다스려지는 법이다. 너희는 우리 말글을 아름답게 가다듬어 후손에게 전해주어야 한다." - 주시경 선생 (16p) 한글날은 훈민정음 곧 오늘의 한글을 창제하여 세상에 펴낸 것을 기념하고 기리기 위한 국경일이다. 2013년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반포한 지 567년 되는 해이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 속에는 한글이 짓밟히고 사라질 절체절명의 시기가 있었다. 일제 암흑기에서 목숨바쳐 한글을 지켜낸 이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한글 만세! 대한민국 만만세! 이토록 소중한 우리의 한글이 지금은 어떠한가? 외래어, 비속어, 은어, 유행어 등으로 언어 오염이 심각하다. 가끔 청소년들의 대화를 듣다보면 도대체 여기가 한국인지, 어디 외국인지 분간이 안 될 때가 있다. 더 어이가 없는 것은 공영방송에서조차 이상한 신조어와 비속어를 함부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터넷과 모바일 사용이 일상이 된 요즘에는 오히려 신조어와 비속어가 기본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에 식민지 언어말살 정책을 예견하고 우리 말과 글을 지켜내기 위해 목숨을 바쳤던 주시경과 그의 제자들의 언어 독립 투쟁의 기록이다. 주시경 선생은 1911년부터 말모이 사업을 시작하여 어휘 수집에서 주해까지 진행되었으나 4년 뒤, 1914년 7월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때 주시경 선생의 나이 38세였다. 주시경 선생의 사망으로 말모이 편찬 사업은 갈피를 잡지 못하다가 장지영, 최현배, 신명균 등이 다시 조선어연구회를 만들어 한글 연구를 다시 시작했다. 이후 학회 이름을 조선어학회로 바꾸고 독일에서 귀국한 이극로가 가세하여 활기를 띠게 되었다. 조선어학회는 1093년 12월 13일 한글맞춤법통일안 제정 위원을 뽑고 제정, 수정, 검토 작업에 들어갔다. 첫 제정 위원은 권덕규, 김윤경, 박현식, 신명균, 이극로, 이병기, 이윤재, 이희승, 장지영, 정열모, 정인섭, 최현배 등 12명이었다. 이들은 2년 동안 심의를 거듭하여 1932년 12월 맞춤법 원안 작성을 마쳤고, 김선기, 이갑, 이만규, 이상춘, 이세정, 이탁 등 6명을 증원하여 총 18명이 참여한 가운데 제 1독회를 열었다. 햇수로 3년, 총 125회 433시간에 걸친 회의를 통해 완성된 한글맞춤법통일안은 1933년 10월 29일 한글날을 맞아 명월관에서 기념식 석상에서 발표되었다. 일제는 조선어 연구와 사전 편찬 작업을 와해시키기 위해서 조선어학회를 정치 조직으로 규정하고, 회원들을 모두 체포했다. 일제의 고문은 묘사된 것만 봐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끔찍했다.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체포된 인사들은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이었으니 일제의 비열한 음모를 짐작할 만하다. 이은상의 ㄹ자 시는 당시의 참담한 상황을 그대로 그려내고 있다. 평생을 배우고도 미처 다 못 배워 인제사 여기 와서 ㄹ자를 배웁니다. ㄹ자 받침 든 세 글자. 자꾸 읽어봅니다. 제 '말' 지켜라. 제 '글' 지켜라. 제 '얼' 붙안고 차마 놓지 못하다가 끌려와 ㄹ자같이 꼬부리고 앉았소. 문득 이정명 작가의 <별을 스치는 바람>이 떠오른다. 윤동주 시인의 생애를 다룬 소설이다. 일제시대 감옥에서 사라져간 애국지사들과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고통이 전해져 마음 아팠던 소설이다. 감히 짐작하고 상상하면서 새삼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해본다. 해방 이후에는 한글 파동으로 또다른 위기가 있었다. 한글 간소화 방안은 조선어학회가 목숨까지 버리며 지켜낸 한글을 훼손하는 일이었고 <조선말 큰사전>을 무시한 방안이었다. 학계, 교육계, 언론계가 일제히 정부의 조치를 비난하였다. 다행히 미국과 국내 여론을 의식한 이승만의 백기 투항으로 한글파동은 끝이 났고, 1957년 드디어 을유문화사에서 <큰사전> 여섯 권을 완간했다. 주시경과 그의 제자들이 말모이 사업을 시작한 지 47년만의 쾌거였다. 이렇듯 잔혹한 탄압 속에서도 우리 말글을 지켜냈던 분들이 계셨기에 오늘의 한글이 존재하는 것이다 주시경 선생을 비롯하여 조선어학회사건 33인 [ 이윤재, 한징, 최현배, 이극로, 이희승, 김윤경, 정인승, 이병기, 권덕규, 장지영, 이인, 김법린, 이은상, 안재홍, 정열모, 안호상, 정인섭, 정태진, 김선기, 이석린, 이중화, 신현모, 권승욱, 김도연, 이우식, 김양수, 서민호, 이만규, 윤병호, 이강래, 장현식, 서승효, 김종철 ] 은 민족의 '얼'을 지켜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주시경과 그의 제자들>을 반드시 읽어봐야 한다. 아무리 소중한 것도 그 가치와 의미를 모르면 무의미해진다. '한글이 목숨'...... 지금 우리에게 한글은 어떤 의미인지 다시금 생각하며 가슴 뜨거워지는 시간이었다.
|
|
오늘은 세종대왕 한글 반포 567주년 한글날이다. 또한 23년 만에 10월 9일 한글날이 공휴일로 재지정된 날이기도 하다. 정말 다행이고 반가운 마음이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오염되고 있는 한글, 너무 심각하게 오염되어 웃기도 하고 안타깝게 생각되기도 한다.
세종대왕의 훈민정음은 주시경에 이르러 한글로 다시 태어났고, 그의 뜻을 이어받은 조선어학회의 뼈를 깎는 노력으로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그래도 한글날이라도 한글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고자 이 책 <한글만세, 주시경과 그의 제자들>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조선어학회, 47년 간의 말모이 투쟁기를 담은 책이다. 단순하게, 단편적으로만 알던 일을 한 권의 책을 통해 새롭게 알아가는 시간이 나에게는 커다란 의미가 있었다. "우리 겨레어가 사멸될 위기에 처했다. 그것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우리뿐이다. 세상에 있는 우리말을 모두 모으자." 1910년 대한제국이 일제에 병합되자 주시경은 김두봉, 이규영, 권덕규 등 제자들을 이끌고 최남선의 조선광문회에 들어가 조선어사전편찬부를 조직, 말모이 사업을 시작했다. (59쪽) 수많은 생활 용어를 수집하는 노력 긑에 비교 분석 작업을 하고 정리하여, 말모이 사업을 시작한 지 4년여, 우리말 사전의 형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정력적으로 말모이 사업을 이끌던 주시경이 1914년 7월 27일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가난한 살림을 꾸리느라 애쓰던 부인이 옆집에서 얻어 온 찬밥을 상추에 싸서 먹다가 체해 일어난 사고였다.
주시경이 세상을 떠난 뒤 국내의 한글 연구는 답보 상태였지만, 뜻있는 사람들의 지속적인 활동으로 조선어연구회에서 조선어학회로 이름을 바꾸고, 한글맞춤법 통일과 표준어 및 외래어표기법 제정, 조선어 사전을 편찬하는 작업에 박차를 가한다. 표준어와 외래어를 정하는 자리에서 있던 재미있는 일화는 양념처럼 첨가되어 웃음이 났다.
그 이후에 기독교선교회의 한글 전용 및 동아일보의 브나로드 운동, 조선일보의 문자 보급반 운동 등으로 우리 삶에 널리 보급되어 알려지는 활동을 했다. 또한 일제의 압박 속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해방 이후에 우리 말글은 어떻게 살아남게 되었는지, 이 책을 보며 전체적으로 보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본다.
이 책을 한글날에 읽으니 더욱 의미있게 다가온다. 이 책을 읽으며 한글은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고, 미래에도 위대한 문화유산으로 널리 쓰이고 가꿔져야 할 언어라고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지금까지는 조선어학회사건을 다룬 대중 교양서가 없어서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제 우리는 이 책을 보고 우리의 한글 역사에 대해 생생하게 알 수 있다. |
|
조선어학회... 세계사는 몰라도 국사 부분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자신있다고 생각했던 나에게도 주시경과 그의 제자들로 구성된 <조선어학회>에 대한 정보는 그다지 많은 편이 아니었다. 단순히 일제 시대 한글의 보급과 교육에 노력한 단체 정도? 그러다 한글날을 맞이하여 <주시경과 그의 제자들>이라는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구입을 했다. 나는 여기서 놀랐던 점이..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였으나 정부 차원에서의 언어 관리는 중종 이후 거의 이루어지지 않아서 글의 표기 및 맞춤법, 띄어쓰기까지 거의 통일되지 않은 채 조선시대 대부분을 이어왔다는 점이었다. 덕분에 한글로 읽는 것이 서로의 개성을 잘 아는 친한 사람끼리는 몰라도 전혀 인적 관계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한문으로 쓰여진 글보다 어려웠다고 한다. 각자 글로 표현하는 맞춤법이 다르고 더욱이 띄어쓰기도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결국 주시경과 그 제자들은 한글을 통일된 맞춤법과 표기법으로 정리하는 것이 언어를 대중에게 알리고 더 나아가 많은 사람들이 배움과 지식을 교류할 수 있는 중요한 일이라 여기게 된다. 그리하여 문법의 기준을 되어야 할 한글 사전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매진하게 되는데...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전국의 방언을 수집하고 어떤 언어를 기준으로 잡을 것인지, 또한 문법 통일은 누구의 의견과 의견을 조합하여 구성할 것인지. 등등도 연구자 마다 주장이 제각각 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국가 기관과 같이 여러 의견을 조합하고 어울리게 할 수 있는 권위있는 집단이 이 일을 주도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한글을 지키자는 목적 아래 모여든 개개인이 만드는 작업이니 작업의 효율성과 의견 대립 해결도 매번 어려울 수 밖에 없었다. 더불어 일제 시대의 탄압은 한글의 보급에 있어서 제약을 크게 가져온다. 일제는 한글이 일정 이상 퍼져나가는 것을 크게 경계하고 있었기에 조그만 틈만 보이면 독립운동을 한다는 명목으로 조선어학회 회원들을 괴롭히고 고문했다. 운좋게 도망친 사람 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일제의 고문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정도였으니.. 그 가혹함이 참담할 수준이었다. 결국 어려운 과정 과정을 겪으며 47년 간의 노력 끝에 이승만 대통령 시절 <큰사전>이라 불리는 한글 사전이 완성된다. 우리가 쓰는 현재의 한글 기본틀은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이 과정 속에서 주시경은 38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떴으나 그의 제자들은 스승의 유지를 받들고 결국 한글의 통일된 구성을 위한 기준점을 제시하는데 성공했다. 한 위대한 스승이 지닌 꿈과 노력은 이렇게 세상으로 크게 펼쳐지게 되었다. 이 책을 보면서... 위대한 창제도 어렵지만 그것을 수성하고 알리는 일 또한 어려운 일임을 알 수 있었다. 과거 설총의 이두에 있어서도 설총이 이두를 창제한 것은 아니나 넓게 퍼진 이두를 통일된 문법과 표현으로 정리한 것이 큰 명성을 얻어 1000여 년 이상을 위대한 어문학자로 기억된 것처럼... 주시경 역시 지금은 과소평가되고 있지만 먼 미래에는 설총 못지 않는 위대한 학자로서 대중에게 기억되리라 확신한다. 한글을 쓰고 읽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또 다른 감사를 표현하는 일이 되지 않을까 싶다. 한글을 쓰는 입장에서 한 번 쯤은 읽어봐야 할 교양서라 생각한다. |
|
이 책은 한글을 창시한 주시경 선생님과 그의 제자들에 관한 책입니다 그러고 올해로 한글날이 23년만에 새로 공휴일로 지정 되었다고 합니다 다분히 공휴일 이라는 개념보다는 한글날에 대한 조상들의 얼을 기리는 날로 생각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책은 세종대왕과 주시경 그리고 조선어학회에 관한 일화를 들려주는 책인데 이 책을 읽다보면 일제의 탄압이나 한글을 지키기 위해서 무고한 목숨들의 희생이나 옥중서고 한 이 느껴져 대한민국 이라는 이 땅위에 태어난게 몹시도 부끄럽고 죄스럽지만 또 한편으로는 매우 자랑스럽기도 합니다 선조들의 희생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우리들이 쓰고 있는 언어는 어쩌면 사용 불가피 하지 않았을까 생각되네요 이책은 우선 총 다섯단원으로 나눠졌고 단락단락 마다 한글이 어떻게 창시 됬고 한글을 지키기 위해서 어떤 희생을 당했으며 일제의 탄압에 어떻게 맞서 싸웠는지가 생생히 기록되어 있어서 이번에 이책을 읽으면서 새로이 대한민국의 얼이 깃든 한굴에 대해서 많은걸 알게 된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책으로 부족한 역사적인 지식이나마 채울수 있었고 단순히 한글날 하면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시한 날로 알고 있었는데 이 책으로 좀더 한글날과 관련된 연유를 알게 된것 같습니다 또 주시경 선생님이 38살에 요절 한걸로 나오는데 지금의 38살이라는 나이는 한참 젊은 나이인데 자신의 뜻을 제대로 펼쳐 보지도 못하고 삶을 마감해야 했던 점이 몹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하지만 주시경 선생님의 뜻을 받아 끝까지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우리말 큰 사전을 펼쳐낸 제자들의 있었기에 지금까지 우리나라 만의 고유의 언어를 지킬수 있었고 후세에 길이 남아 대한민국 만의 고유의 언어를 우리들이 지금 편하게 사용할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되네요 역사적으로 볼때 강대국의 억압과 탄압에 모국어 잃어버리고 다른 나라에 종속되어 그 나라의 언어를 사용하는 나라도 많거든요 하지만 대한민국은 조선어학회와 주시경선생님 그리고 주시경 선생님의 제자들이 있었기에 한글을 지켜 낼수 있었고 대한민국 만의 고유어를 사용할수 있게 된 점에 대해서 한글에 대한 감정이 새롭게 다가오는것 같습니다 이 책은 역사적인 사실을 기반으로 쓰여져 있기 때문에 읽는데 조금은 벅찬 느낌도 있었지만 모르는 사실을 다시 새로이 알아간다는 점에서는 이 책을 읽는동안 뜻깊었떤것 같습니다 |
|
나는 '한글'이란 단어에 대해서 평상시에 아무런 의문없이 사용하고 있었다. 주시경 선생이 언문, 정음, 반절등으로 불리던 우리 말글에 "우리 민족은 예부터 한민족으로 불렸다. 한이란 말은 '크다' '으뜸이다'라는 뜻과 '하나' '바르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렇다면 한민족의 글이자 세계에서 으뜸간다는 뜻이 있는 한글이 어떠하냐?"는 의미로 '한글'이란 명칭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p. 18) 그저 한글은 세종대왕이 만든 자랑스런 우리나라 글이라고만 아주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었고, 지금의 한글이 어떻게 갈고 닦여져 이렇게 우리가 편하게 사용하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알고 있지 못했다. 솔직히 그리 궁금하지도 않았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선열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세종대왕이 정음을 제정. 반포한 지 510년 만에 순전히 우리글로 우리말을 해석한 사전인 <<큰사전>> 6권이 탄생하게 되었단 사실을 알게 되었다. 평소에 1800년대란 숫자는 엄청난 아주 먼 옛날로만 느껴졌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리 오래된 시대는 아니구나란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다소 오랜기간 동안 한글이 대중들로 부터 외면받았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면서 안타깝기도 하였다. 지금도 한자어가 많기는 하지만 사대부들의 외면과 멸시로부터 그나마 지혜롭고 곧은 선열들의 국민계몽과 더불어 한글보급의 노력에 깊은 감사를 보내는 바이다. 특히나 일제식민지하에서 나라의 얼을 지키기 위해 가혹한 고문과 또는 목숨까지 잃어가면서 한글 지키에 앞장선 선열들의 숭고한 정신에 숙연해지기까지 하였다. 요즘 역사보단 영어나 수학을 더 중요한 과목이라 생각하며 치중하고 있는 경향이 큰데 민족의 올바른 역사성 인식이 더 가치있고 의미있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유대인들만 봐도 어릴 때부터의 역사인식교육으로 인한 민족성 고취와 가슴아픈 역사에 대한 고찰이 선민사상으로 나타나 세계에서 가장 파워있는 인물들을 탄생시키고 있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대인만큼이나 똑똑하고 깊은 역사를 갖고 있는 우리나라도 역사에 대한 인식을 높여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우리민족의 우수성과 깊은 역사성을 갖어 자긍심 높은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었으면 하고 바래본다. 전 세계적으로 한글만이 만든이를 알고 있다는데 그 우수성 또한 인정 받고 있다. 글로 표현 불가능한 것이 없으며 아름답기까지 하다. 국민이라면 당연히 한글에 대한 자부심은 필수라 하겠다. -조선어학회, 47년간의 말모이 투쟁기-를 엮은 이 책은 민족적 아픔과 함께 혼란스럽기만 했던 한글이 어떻게 새로이 변모하였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일본은 민족 말살 정책에 따라 어떻게 우리나라를 핍박했는지도 알 수 있다. 여전히 일본에 대한 악감정이 남아 있는 요즘 이 책을 기회로 민족성 고취와 더불어 더욱 한글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 또한 가져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말글 수호 투쟁은 가장 성공적이고 빛나는 독립운동이라는 말의 참 뜻을 느끼고 깨달았던 소중한 독서의 시간이 되었다. 틈틈이 아이들과 함께 이 책에 대한 토론을 하는 시간을 꼭 가져야겠다. 울 아이들만은 비속어가 난무하는 세상속에서 아름다운 한글만 사용하길 희망해 본다. 울 아이들만은 비속어가 난무하는 세상속에서 아름다운 한글만 사용하길 희망해 본다. 그리고 주시경 선생과 그의 제자들의 가치 높은 업적도 가슴 깊이 새기길 바란다. |
|
"보아라. 지금 강도 일본이 우리 강토를 침략했으니 앞으로 한민족의 근본을 무너뜨리려 할 것이다.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문화요, 그 문화를 지탱하는 것이 언어다. 그러므로 저들은 제일 먼저 우리 말글을 빼앗으려 할 것이다." "선생님, 어떻게 해야 우리 말글을 지켜낼 수 있을까요?" "말모이를 만들어야지. 그래야 뒷날 어떤 일이 생겨 우리 말글을 쓰지 못하더라도 되살릴 수 있는 힘이 된다. 이것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너희가 힘을 합쳐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어떤 희생이 따르든 해내야 하는 일이다. 지금부터라도 전국 방방곡곡에 산재한 우리말 어휘를 모으는 것이 급선무다."(56~57쪽, 주시경과 제자들의 대화)
우리말과 글. 어렸을 적부터 너무나 당연한 생활의 일부였기에, 오히려 그 고마움을 절실하게 느끼지 못하는 존재. 마치 공기처럼 항상 우리와 함께 있고 우리를 살 수 있게 해 주지만, 그 소중함을 우리는 쉽게 잊고 산다. 책장을 넘기면서 처음으로 진지하게, '만약 일제시대에 우리말이 사라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생각을 했던 때를 떠올렸다. 페루를 여행했을 때, 잉카 인디오 출신의 한 가이드를 만났던 때였다. 그는 스페인어가 짧은 나를 위해 유창한 영어로 마추픽추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나는 그가 스페인어와 영어 둘 다를 훌륭하게 구사하는 것을 칭찬했는데, 그는 고맙다고 말한 뒤 잠시 슬픈 얼굴을 했다. 그리고 나직이 말했다. 열심히 독학한 외국어로 가이드 일을 해서 생계를 이어가는 것은 기쁘지만, 날이 갈수록 어린 시절에 배운 자기 부족 언어를 잊어간다고, 점점 그 언어를 아는 사람들이 사라져가고 있다고... 한 언어가 사라지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 어떤 책에서 읽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던 그의 얼굴을, 슬픈 눈을 생각했다. 아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말과 글을 말살시키려는 일제의 침탈이 노골화되는 상황에서, 민족적으로 우리 말글을 보전하기 위해서 우리말 사전 편찬은 시급한 과제였다. 그때까지 우리는 한글이 세계에서 으뜸가는 소리글이라는 자부심이 있을 뿐, 그 말글을 담은 사전 한 권 마련하지 못한 처지였다. 하지만 주시경이 제자들에게 말했듯, 너무나 오랜 시간과 너무나 많은 희생이 필요한 일이었다. 무려 47년간의 피나는 투쟁의 역사... 모진 고문을 받아 불구의 몸이 되고, 형무소에서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다 목숨을 잃기도 했던 그분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의 말과 글은 역사 뒤편으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조선어학회의 중심인물들, 그리고 그들을 지원한 사람들까지 '대일본제국의 치안유지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악랄하고 잔혹한 고문을 받았던 이야기를 읽으면서 괴로웠다(미리 마음의 각오를 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어떻게 견뎠을까. 어떤 마음으로 그 고통들을 이겨냈을까. 계속되는 모진 고문으로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쳐서, 좁디좁은 감옥에서 구부리고 앉아 견디면서, 이은상이 지은 시 'ㄹ자'는 그래서 더욱 마음속에 스민다.
평생을 배우고도 미처 다 못 배워 인제사 여기 와서 ㄹ자를 배웁니다. ㄹ자 받침 든 세 글자. 자꾸 읽어봅니다. 제 '말' 지켜라. 제 '글' 지켜라. 제 '얼' 붙안고 차마 놓지 못하다가 끌려와 ㄹ자깥이 꼬부리고 앉았소. (216쪽, <홍원 옥중에서>)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조선어학회사건'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다. 아니, 부끄럽지만 알려고 한 적도 없었다. 그냥, 한글을 연구하던 학술단체를 일제가 조작하여 체포했던 사건 정도로만 암기하고 있었다(주입식 교육의 부작용이다). 우리 말과 글을 지켜야 겨레가 살고, 겨레가 살면 언젠가 독립을 쟁취할수 있다는 굳은 믿음으로 일제의 탄압에 맞선 '독립 투쟁'이라는 것을, 이제라도 알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다. 우리가 오늘날 이렇게 자유롭게 우리말과 글을 쓰는 것은 그냥 얻어진 결과가 아니라는 것을, 가슴으로 기억하게 해 준 책. 그분들의 희생에 부끄럽지 않도록, 우리의 말과 글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을 키워가고 싶다.
"말을 바르고 옳게 하고, 글을 바르고 옳게 써서 우리의 정신이 다 하나가 되어 우리나라를 튼튼하게 하여 우리나라의 빛이 널리 퍼지면 우리는 다 같이 그때에 우리가 우리의 할 바를 한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다."(292쪽, <표준 조선말사전> |
|
『한글 만세, 주시경과 그의 제자들』을 읽고 당당하게 우리나라의 고유 글자를 갖고 있다는 것도 큰 복이라 생각한다. 만약 우리 글자가 없었다고 한다면 남의 말을 정말 힘들고 어려운 조건하에서 그것도 선택이 아닌 강요로 받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러나 우리는 조선의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시하였고, 여러 어려운 과정을 거치기는 하였지만 지금은 당당하게 우리 한글로서의 그 기품을 세계적으로 과시하고 있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는 앞서 간 선각자들의 뼈아픈 노력과 정성을 통해 지켜 왔고 발전시켰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한다. 조선 말기 이후 외세의 침입이 잦았고, 특히 일제에 의해 식민 통치 지배를 받으면서는 우리말과 글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모와 함께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 하에서도 우리말과 글을 지키기 위한 각고의 노력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바로 한글학자 주시경과 그의 뜻을 이어받은 조선어학회의 남다른 각고의 노력에 의해 당당한 우리 한글로 다시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말 회원들의 말 못할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만든 우리말 사전 편찬은 당당한 우리 한글의 얼을 지키기 위한 강한 도전이었고, 그 결과 탄생한 <큰사전> 6권의 완간은 갖가지 어려움 속에서 만들어 낸 최고의 결실이었다. 우리말과 글을 철저하게 말살하려 했던 일제의 탄압에 맞서 얻어내 것이기에 더 빛이 난다. |
|
세종대왕 한글 반포 567주년.. 1926년에 조선어연구회에서 '가갸날'을 만들어 선포하고 기념하기 시작하다가 1928년에 '한글날'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을 이번에 정확히 알았다.. 주말에 했던 < 도전골들벨 > 프로에서도 '가갸날'에 대한 문제가 나왔는데, 책을 읽고 알고있던 내용이라 그런지 반가우면서도 뿌듯했다.. ^^
10월 9일 한글날! 철없던 어린 시절에는 그저 학교 안가는 날이라고 좋아했던 날이었던것 같다.. 그런데 만약.. 지금 내가 쓰고 있는 한글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한자나 일본어를 배우고 쓰고 있지는 않았을까? 아니면 영어? 짧은 이 책의 소개글을 읽었을 뿐인데도 가슴이 뜨끔했고 한글의 고마움이, 소중함이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책을 다 읽고 덮으면서 더 커졌다.. 지금까지 별다른 생각없이 늘 사용해왔던 말이고 글이다보니 너무도 당연시했던 내가 부끄럽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것이다.. 그러나 그 훈민정음이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한글이 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알고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훈민정음을 만들고 반포했던 그때부터 널리 사용되지 못했던 우리 글.. 어쩌면 그데로 역사속에 뭍혀버렸을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에 순간 아찔했다.. < 조선어학회 >가 일제강점기인 1910년부터 1957년까지.. 최초의 우리말 큰사전이 탄생했던 47년간의 우리글을 지키고자 하는 집념의 시간들을 이 책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정음', '언문', '암클' 등으로 불리던 훈민정음이 1910년 무렵 주시경에 의해 지금의 '한글'로 다시 태어났다고 한다.. 일제의 탄압 ( 우리의 말과 글을 말살시키려 했던 36년 )속에서도 굴하지않고 맞서면서 말모이를 편찬하기 위해 흩어져 있던 우리글의 자료들을 수집하고 정리하고, 읽고 쓰기 편하게 고치고 표준안도 만들고 했던 그들의 끈기와 열정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 조선어학회 >는 1921년 12월 3일에 조선어연구회란 이름으로 먼저 결성되고, 1931년 1월 10일 조선어학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리고 한글 맞춤법을 통일하고 표준말을 정하고 외래어 표기법 등을 정비하여 지금의 우리가 사용하는 '한글'의 기틀을 마련해 주었다.. 또 우리말만 연구한 것이 아니라 우리말의 주인인 우리 민족들에게 우리의 글을 알리기위해 브나로드 운동이나 물자 보급반 운동 등을 통해 가르치고자 노력했다.. 일제의 탄압으로 옥에 갖히고 고문을 당하면서도 쉽게 놓으려 하지 않았던 그들의 투지... 독립투쟁의 중심이었던 대종교에서의 활동도 함께 이루어졌다고 하니 작가도 언급했듯이 - 조선어학회사건이 순수 학술 연구를 일제가 모략하여 조작한 사건이 아니라, 우리 말글을 말살하려는 일제의 탄압에 맞선 언어 독립 투쟁 - 이라는 점이 뚜렷하게 새겨진다..
1997년 10월 훈민정음해례본 ( 국보 70호 )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요즘은 줄임말이나 쉽게 전달되지 않는 합성어등 신조어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런 말들을 사용하는 연령이 점점 낮아지고, 신조어를 모르면 대화가 힘들 정도라고 하니 참 안타깝다.. 이런 신조어들이 원래 우리말인냥 인식되어 버릴 날이 올것만 같아 마음이 편치않다.. 물론 모든 소리를 글로 적을 수 있다는 한글의 장점일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문화유산"이라는 것을 생각을 한다면 자제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 우리가 너무도 쉽게 배우고 쓸 수 있는 위대한 우리말을 지키고자 목숨을 걸고 투쟁했던 분들을 생각해서라도 말이다..
|
|
지난 10월 9일은 한글날 567돌이었다. 이날이 뜻깊은 것은, 한글날이 다시 법정공휴일로 지정되어 보낸 첫 날이었기 때문이다. 10월 초는 법정공휴일인 개천절인 10월 3일이 있었다. 한글날인 10월 9일 사이에 일요일이 끼게 마련인데, 이렇게 되면 쉬는 날이 많아 보인다. 정부는 다른 나라에 비해 법정공휴일이 많아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식의 논리를 편 재계의 주장을 받아들여 한글날을 법정공휴일에서 배제했다. 다시 한글날이 법정공휴일로 되는 데에는, 한글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드높아진 것 뿐만 아니라 한글학계 및 관련 시민단체의 주장과 더불어 경제논리가 고려되었다. 휴일이 많아져야 소비가 늘어난다는 논리였다. 다시 한글날의 위상이 높아진 것은 축하할 일이지만 왠지 찜찜하다.
이렇게 좋은 날을 앞두고, 한글의 소중함을 되새겨볼 수 있는 귀한 책 한권이 출간되었다. 신민육성을 위해 우리 말글을 겨레의 얼 속에서 지워버리려한 일제의 탄압과 박해를 이겨내고, 우리말 사전 편찬을 위해 노력과 희생을 한 분들의 숨은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이 책이 중점적으로 조명하고 있는 바는 우리가 국사 교과서에서 배운 '조선어학회 사건'이다. 예전 국사 공부를 할 때에는, 조선어학회 사건은 수많은 독립운동 가운데 곁가지로 생각하며 넘어가곤 했다. 어렸을 때에 이 사건을 수업시간에 간단히 배우면서, 나랏말글을 연구하겠다는 사람들을 박해한 일제에 대해 자유의 억압에 대한 측면에서 미웠던 감정이 많았다. 뭐 그것까지고 그렇게 탄압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랏말글을 지키겠다는 선조들에 대해서는 비교적 가볍게 취급하고 넘어갔었다. - 생각해보면 일제시대는 얼마되지 않은 일 아닌가. 멀리보면 백여 년전이고 가까이 보면 수십년 전의 일이다. 이제와서 되돌아보면, 제도권 교육하에서 점수용으로 가공된 지식을 단순섭취한 무지였기에 부끄럽다. 반면, 그렇게라도 배움의 단초를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랄 수도 있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그 때는 기초지식을 배우는 시기였다. 차후 대학에 들어가, 자기가 배우고 싶은 것 또는 사회에 나가 일을 하면서 필요한 것을 전문적으로 배우고 연구해나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시기였던 것이다. 물론 배움은 대학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대학에서 쌓은 전문지식, 지적 능력과 교양을 바탕으로 '자기가 배우고 싶은 것'에 그치지 않고 많은 것을 깊고 넓게 섭렵해나가는 것이 대학 후의 인생이다.
잡설이 길었는데, 그렇게 단편적으로 배우고 지나간 '조선어학회 사건'의 전면을 이 책을 통해 낱낱이 살펴볼 수 있었다. 그 사건의 전중후의 사회적 배경이 고스란히 녹아있어 이해하기 더욱 쉬웠다. 우선 흐름상 '조선어학회 사건'의 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조악하게 언급하자면 지식인 계층이 한글에 대해 가진 당대의 인식, 맞춤법 통일에 대한 우여곡절과 치열한 논쟁, 교육정책을 통해 조선어를 말살시키려 한 일본, 조선어에 대한 열정과 사랑으로 -교육 이외에도- 자신의 모든 것을 다바쳐 말모이 사업을 이끌던 주시경 선생의 안타까운 귀천, 그 혼을 받들어 조선어 교육과 사전 편찬을 위해 노력한 제자들의 고군분투, "종교를 넘어 민족 이념으로 승화된 대종교 사상"과 독립군의 무력 항쟁, 지식인들의 조선어 어문 연구, 기독교 선교사들의 한글 보급, 사회 각계에서 벌이던 문맹퇴지 및 한글보급 운동, 한글학자들의 조선어 강습회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조선어학회 사건'의 본격적 진행단계에 있던 이야기는 '정태진의 억지 자백과 영생여학교 사건', 일제의 조선어학회 회원 체포와 고문이 동원된 심문 과정, 그들에 대한 일제의 창씨개명 요구, 모진 수감생활, 광복의 해인 1945년 초에 내려진 유죄판결이다. 이후의 이야기는 해방후 우리 말글 되살리기에 힘쓴 조선어학회 회원들과 무지한 정치가에 의해 일어난 한글 파동(한글 간소화 정책과 이에 대한 한글학자와 각계각층의 반대 표명)이다.
책을 읽으며 든 여러가지 -곁가지와 같은- 생각 중 일부만 기술해본다. 우선, 교육을 통해 일제가 한글을 조선인들의 의식속에서 밀어내려고 한 것을 통해 국사 교육을 저만치로 밀어낸 요즘의 위정자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교육정책만으로 일반 대중의 정신을 뒤바꿀 수 있음을 보며 괜히 '교육정책'이 '백년대계'가 아님을 실감했다. 둘째, 맞춤법 통일의 과정에서 전개된 치열한 논쟁, 한글 파동을 보면서, 한글 맞춤법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었다. 한글 맞춤법하면 내심 한편에서는 왠지 정신적 규제와 같이 느껴진 면도 있었으나, 그런 생각은 매우 협소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셋째, 책소개에 나온대로 조선어학회 사건은 피와 땀방울이 스며든 언어독립'투쟁'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모진 고문과 시련을 겪으면서도 불굴의 정신으로 우리말글을 지켜낸 훌륭한 선조들이 자랑스러웠다. 넷째, 한글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달았다.
"세계에 자랑할 우리글, 알기 좋고 배우기 쉽고 쓰기 편한 우리글, 오늘부터라도 가갸거겨를 시작합시다." (p.149, 1928년 '글장님 없애기 운동'을 이끌던 동아일보에 실린 글)
내가 개인적으로 한글의 위용을 새삼 깨닫게 된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 중 하나를 이야기하고자한다. 지금은 이 세상에 계시지 않은 외조모님에 관한 이야기다. 외조모님은 일제시대에 교육을 받은 분이었다. 가끔씩 학교에서 배웠던 일본어 교재의 내용을 줄줄 읊으셨다. 그런 외조모님의 꼼꼼한 성격이 묻어나던 메모에는 항상 맞춤법이 틀린 한글이 씌여져있기가 다반사였다. 그런데 그 글은 맞춤법은 틀렸지만, 딱 발음나는 대로 씌여져 있었다. 어린 시절에는 그걸 보고 픽 웃고 말았지만, 돌아보면 참 여기에도 한글의 위대함이 느껴졌다. 발음나는 대로 그대로 받아쓸 수 있고, 이것만 보고도 무엇을 뜻하는 지 알 수 있다는 것... 잠시만이라도 배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능히 쓸 수 있는 쉬운 글이라는 점, 그리고 말을 그대로 옮겨 쓸 수 있기에 소통의 관점에서만 보자면 -맞춤법을 몰라도- 소통의 효용을 다한다는 장점 등을 생각해볼 때 한글의 위력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나같이 미천한 사람도 한글을 쉽게 익혀 남들의 글을 읽으며 정보, 지식, 지혜, 경험을 원하는대로 흡수할 수 있지 않은가. 뿐만 아니라 글을 써서 의견을 표명하거나 생각을 가다듬고, 기억의 확장을 용이하게 할 수 있다. 타이핑도 편하게 하며 IT기기로 소통을 쉽게 할 수도 있고. 이런 한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표현을 빌리자면- 단언컨대 축복이다. 문맹퇴치에 기여한 위대한 한글의 보급과 전수에 힘쓴 분들에게 새삼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물론 큰 공은 세종대왕과, 한글단체 및 학자들께 돌릴 수 있으리라.
이런 한글을 쓰는동안에는, 언제든 한글을 쓰는 다른 모든 사람과 정신적으로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이러한 유대감마저도 그 뿌리는 우리말글을 지켜내고자한 모든 사람의 노력이 있었다고 본다. 이 나라가 전후 폐허의 위에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마찬가지 아닐까. 그런 면에서 그 노력의 모든 과정을 소홀히 다루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 노력이 어두운 밤하늘에 별같이 반짝이던 그 때, 일제치하의 조선어연구회 사람들의 헌신을 그려낸 이 책이 우리의 품안에 귀중하게 안겨들게 된다.
★ 이 서평은 네이버 카페 <책좋사>의 서평 이벤트를 통해 책을 제공받았기에 쓸 수 있었음을 알려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