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ing Heumann 이라는 원제를 봤을 때 Heumann 이라는 단어를 '인간'으로 순간 해석했는데 또한 그순간 이상했다. 휴먼 철자가 저거였나;;; 나의 영어사용능력은 항상 믿을 수 없으므로 검색을 해보았을때 인간이라는 단어는 Human 이었다. 그제서야 저자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묘한 발음의 동일성으로 인해 한국어로 읽으면 더욱 의미심장해지는 저자의 성씨가 '휴먼' 이었다. '휴먼이 되다' 라는 문장에 대한 한글발음적 의미로는 '인간이 되다' 혹은 '(성씨로서의)휴먼이 되다' 로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이다. 이 짧은 한 문장이 곧 저자의 삶을 대표할 수 있게 되다니 장애운동가로서의 저자의 삶은 운명적인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저자의 삶은 그야말로 '장애인이 되고 시민이 되고 '내'가 되어가는' 과정이었다. 장애인이 아니고 특이한 시민이 아니고 그저 '주디스 휴먼'이 되어가는 과정은 그토록 험난한 시간들이었던 것이다.
주디스의 부모는 나치의 만행을 피해 미국에 이민온 분들이었다. 옳지 않은 것들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던 가치관을 가졌고 소아마비인 딸을 시설에 보내라는 의사의 권고를 거부했다. 주디스가 학교에 입학을 거부당하자 갖은 노력을 다해 비록 장애인전용학급에나마 뒤늦은 입학을 시키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어린 주디스가 집밖에서의 경험들로 인해 상처를 받으면서도 '함께' 맞받아칠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부모의 교육관 영향이 컸다.
주디스가 휠체어를 타고 거리를 지날 때 한 아이가 물었다. 신기하다는 듯이 휠테어를 타고 있는 주디스를 보며 아프냐고 물었다. 어린 주디스는 아프지 않았지만 대답할 수 없었다. 자신과 그 아이의 다름에 대해 설명할 수 없었다. 교육관계자들도 특수교육반 아이들이 공부하기를 기대하지 않았다. 특수교육반은 일종의 돌봄케어였다. 하지만 주디스는 책을 많이 읽었고 공부를 열심히 했으며 대학에 입학했다. 그렇게 교사자격증을 땄으나 신체검사에서 교사먼허를 불허당했다. 스스로 걷지 못한다는 이유로 가르칠 자격이 없다고 통보받았다. 다른 모든 시험은 모두 통과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신체검사에서 탈락했던 것이다.
주디스의 장애는 재활로 치료될 수 없는 영구적인 것이었는데도 의학적인 이유로 취업을 거부당했다. 주디스는 지인들을 통해 신문에 기사를 내고 법정 소송을 시작했다. 미디어는 교육당국을 맹공격했고 천운으로 개혁성향의 판사를 만나 소송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주디스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하지만 그 운을 자신만의 성공경험으로 만드는데서 그치지 않았다. 주디스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생각했고 멈출 수도 그만 둘 수도 없었다. 그렇게 정치와 법의 세계에서 '장애'에 대한 혐오와 편견을 없애는 활동에 주력하게 되었다.
1970년대 였다. 온갖 새로운 문화와 가치관들이 넘쳐나던 시대였고 온갖 새로운 활동이 태동되던 시대였다. 시대적 억압이 끝나고 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겨나던 때였다. 장애를 갖고 살아가던 사람들은 늘 보이지 않던 사각지대에 있었기에 그들이 거리에 건물에 학교에 나타나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에도 우호적인 시대였다. 언론과 시민들은 대체로 장애인들의 외침에 관심을 가져주었고 그렇게 정치권과도 연결될 수 있었다. 주디스는 그러한 장애인운동의 선두주자로서 백악관에서 일할 기회가 생기기도 했고 그렇게 활동범위와 영향력은 점점 커질 수 있게 되었다.
요근래 몇년간 공정하다는 생각이 착각임을 알려주는 책들이 꽤 많았었다. 자유와 평등에서 자유가 그나마 획득되었다면 평등은 아직 획득되지 못한 가치인것 같았다. 평등은 다시 공정의 문제로 이어졌다. 무엇이 공정한가? 같은 출발선상에 선다는 것이 어떤 조건들을 필요로 하는가? 한날한시에 동일한 장소에서 시험을 보는 것이 공정한가? 그 시험을 보기까지 준비하고 공부했던 과정은 결코 동일하지 않았는데? 그 시험장소에 오기까지 누군가는 자가용으로 오고 누군가는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지 못할 수도 있는데? 접근기회의 형평성이란 문제는 굉장히 어렵고 복잡한 문제다. 게다가 주디스는 장애인 사회에서도 남녀의 처지가 다름을 체감해왔다. 장애인이자 여성인 경우 더욱 불공정한 상황에 처해지게 되곤했다.
저자의 투쟁은 오랜 시간이 걸렸고 때로는 성과가 없다고 느껴질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민주주의는 그래야 맞다고 말한다. 오래 걸리고 그래서 힘들고 그래서 그 느림을 참을 수 없을 때도 있지만 그러한 민주주의여야 다양한 소통을 해내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며 다양한 입장을 보호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오바마가 잘 해놓은 일을 트럼프가 망쳐놓아도 결코 희망을 잃지 않는 저자는 계속 활동해야 함을 강조한다. '장애는 인간사의 자연스러운 한부분이다. 인간의 수명이 길어질수록, 더 많은 전쟁을 일으킬수록, 의학이 발달할수록 이전 시기라면 아마 죽었을 사람들이 점점 더 오래 살게 될 것이다. 아마도 장애를 가진 채. 우리는 이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를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그것을 중심으로 사회를 설계해야 한다. (p. 281)' 라는 저자의 말은 미래사회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구별이 무의미해질 수 있음을 알려준다. 우리는 그동안 장애에 대해 너무나 협소한 범위로 생각해 온 것이 아닐까.
저자의 인생역정을 고스란히 담은 이야기들은 생생했고 읽을수록 그 생동감에 빠져들어 읽게 되는 책이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니 첫 페이지의 문장이 문득 생각났다. '무엇보다 '나 홀로'가 아니라 '우리'였다는 말을 먼저 해야겠다. (p. 20)' 저자는 늘 '함께'였다. 그것은 물론 운이 좋아서였을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저자의 노력이 통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람은 함께 살아야 하는 존재이고 따라서 함께일때 그 해결능력도 높아지게 된다. 사회가 갈수록 개개인으로 분리고립 시키고 민주주의는 갈수록 더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꾸준히 느리게 '함께' 해야 한다. 당장 눈앞에 한쪽으로 치우친 빠른 해결법을 강조하는 이들을 조심하자. 느리지만 합리적인 해결을 위해 우리는 계속 '함께' 소통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장애운동가의 삶의 이야기이자 함께하는 소통의 이야기로 의미있게 읽히는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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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휴먼 】 - 장애 운동가 주디스 휴먼 자서전 _ 주디스 휴먼, 크리스틴 조이너 / 사계절
# 2022년 3월 서울. 31일 아침 8시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승강장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등 장애인단체가 두 번째 삭발식을 진행했다. 삭발자로 나선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삭발하기 앞서 “지난 2001년 오이도역 리프트 참사부터 이동권 투쟁을 해왔다. 이동해야 사람을 만날 수 있고, 이동해야 교육받을 수 있고, 이동해야 일을 할 수 있다. 너무나 상식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상식적인 것이 (우리 장애인들에게는) 결코 상식적이지도, 평등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출근길 불편을 드려 시민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하지만 저는 단지 지하철을 타는 우리 시민 분들의 삶이 부러웠다. 나도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가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었다. 정말 대단하지 않은 지극히 평범한 삶을 원한다. 이동할 때 ‘떨어져 죽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 장애인으로 산다는 게 정말로 힘들었다”고 울먹였다.
# 주디스 휴먼 1947년에 뉴욕 브루클린에서 출생. 1949년 소아마비 발생(이후 휠체어가 신체 일부가 됨). 1952년 ‘화재위험요인’이라며 유치원, 유대교 학교 입학을 거부당함. 1970년 대학 졸업 후 교사가 되고 싶었으나, 장애를 이유로 교사 면허를 불허한 뉴욕시 교육위원회를 상대로 소송 제기. 법정 밖에서 합의를 이루고 교사 면허 취득. ‘행동하는 장애인’ 단체 설립. 1973년 ‘행동하는 장애인’동료들과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재활법 개정안 서명 거부에 항의하며 맨해튼 메디슨 애비뉴 차선 점거. 1974년 워싱턴의 해리슨 윌리엄스 상원 의원실 입법 보좌관으로 근무. 1975년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비행기 탑승을 거부당해 항공사를 상대로 소송제기. 1993년 클린턴 행정부의 교육부 특수교육 및 재활서비스국 차관보로 임명되어 7년 반 동안 일함. 2002년 세계은행 최초로 장애와 개발 자문위원을 맡아 4년간 장애문제를 국제사회의 주요 현안으로 다룸. 2007년 오바마 행정부의 국무부 국제 장애인 인권에 관한 특별 보좌관으로 임명되어 2017년까지 일함.
주디스 휴먼의 공적 활동 외에 사회적 활동가로서 전면에 나서게 된 계기는 재활법 504조의 통과를 위해 1977년 샌프란시스코 연방 정부 건물을 점거해서 100명이 넘는 사람들과 24일간 농성에 들어간 것을 들 수 있다. 재활법 504조는 “장애인은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연방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는 프로그램이나 활동에 따른 혜택에서 배제, 거부되거나 차별받을 수 없다”라는 것이 주요내용이다. 이 문장의 내용은 현재 장애인들이 ‘실제로 차별받고 있음’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이 504조가 통과되어야 어둠의 세계에 갇혀있던 장애인들이 빛을 볼 수 있는데,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서명을 하지 않고 법안을 책상 위에 그대로 두는 방식으로 거부권을 행사했다. 휴먼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시위를 주동했다. 대통령이 지미 카터로 바뀌었지만 재활법 504조는 계속 미결로 남는다. 결국 ‘504조 회생위원회’동료들과 농성을 벌이게 된 것이다. 힘든 여정 속에 504조는 결국 보건복지부 장관 조지프 칼리파노의 서명을 받아 낸다.
이 책은 현재 장애를 갖고 살아가는 분들, 그 분들의 가족과 이웃, 장애와 관련된 행정이나 사업을 하시는 분들에게도 도움이 될 책이다. 간접적이나마 장애의 현장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된다. 사실 이 책을 꼭 읽어야 할 사람들은 장애인들 앞에서 자기는 ‘정상인’이라고 대놓고 이야기하는, 배려심과 공감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다. 장애는 누군가에게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사회가 이러한 삶의 진실을 중심으로 인프라와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이 옳다. 모든 사람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평등하게 살아가는 것이 정상이다. 이를 위해 사회적 공감대 형성과 정부의 행정적 책임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비장애인 사회에서 장애인으로 태어난 주디스 휴먼. 영어철자는 다르지만, 장애의 사회적 편견을 바꾸기 위해 애쓴 저자의 이름에 ‘휴먼’이 들어간 것이 우연이 아닌 듯하다. 휴먼이란 단어 속엔 성별, 나이, 빈부, 장애 여부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차별은 더욱 더 그렇다.
“무시를 당할 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었다. 우리가 권력을 다룰 때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비폭력적인 방식이라면 말이다.”
#나는휴먼 #주디스휴먼 #사계절 #쎄인트의책이야기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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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기에는 특수교육학개론을 배우고 있다. OT 때 교수님께서 '여러분이 교사가 되어서 특수교육대상자를 만날 확률이 만나지 않을 확률보다 훨씬 높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기 전엔 그런 줄 몰랐다. 부끄럽게도 '혹시나 만날 상황'을 대비해 들어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때 깨달았다. 장애에 관해 내가 정말 무지하구나, 아는 게 하나도 없구나, 내가 그동안 누군가를 아예 보지 않고 살았구나. 무지함이 부끄러워지던 차에 이 책이 나왔다. 감사하게도 서평단에 선정되어 미리 읽어볼 수 있었다.
우선 내가 그간 장애인들을 보지 못했던 이유, 교사가 되어 특수교육대상자를 만나는 가능성은 높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이 부분에서 사회가 변해야 할 필요를 절감할 수 있었다. 장애인들이 누군가의 '선함'에 기대어 근근이 삶을 영위해야 한다면, 그것은 분명 사회의 문제다.
'휴먼'의 영역에서 배제되는 사람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었고, 여전히 있다. 책의 제목이 '나는 휴먼(BEING HEUMANN)'인 것은 인상적이다. 비장애인과 동등한 권리를 지닌 한 명의 인간으로 인정받기 위한 과정을 그리는 이 책에 이보다 더 좋은 제목이 있을까?
책을 읽는 내내 장애인 이동권 이슈를 생각했다. 국힘 이준석은 '장애인들이 서울시민을 볼모로 잡고 시위한다'라며 비난했다. 여전히 비장애인은 시민이고, 장애인은 시민이 아니라고 한다. 이 책에서 주디는 504조에 서명하는 것을 미뤘던 조지프 칼리파노를 '오만하고, 고집불통에 완전히 비인간적'이라고 평가했다. 이준석에 갖다 붙여도 이상할 것이 없는 표현이다. 한국 장애인 운동 역사에 이준석이 오만하고, 고집불통에, 비인간적인 정치인의 표본으로 기록될 날도 곧 올 것이다. 이 책에서 주디가 보여주었듯 낙관을 가지고 연대하는 사람들은 느리더라도 분명한 변화를 일으키므로. 책 한 권을 읽었다고 무지했던 내가 크게 변했을 리 없지만, 책을 읽는 동안 주변 풍경이 문득 달라 보일 때가 있었다. 어제는 내가 사는 기숙사 건물에 경사로도, 승강기도 없음을 깨달았다. 나에겐 별것 아닌 3칸짜리 계단 앞에서 휠체어를 탄 이들은 얼마나 좌절하게 될지 잠시 생각해 보았다. 장애인들을 보면서 살기 위한 시작이리라 생각한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할 때 세상은 조금 나아질 수 있을 테다. 나처럼 그간 장애인을 보지 않고 살았다면 이 책을 함께 읽어보자고 하고싶다. 그들을 보기 위한 시작이 되어줄 것이다.
*사계절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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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행동해야 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 / p.187
이 책은 미국의 장애 운동가 주디스 휴먼의 자서전이다. 소아마비를 앓고 있으며, 장애인의 인식 개선과 인권에 앞장서고 있는 장애인 인권 운동가이시다. 어린 시절부터 장애인복지관을 놀이터처럼 드나들며 봉사활동을 했었고, 장애인복지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 어쩌면 이 책을 보게 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주디스 휴먼은 독일에서 온 이민자 부부인 베르너 휴먼과 일제 휴먼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인 일제 휴먼은 딸 주디스 휴먼을 위해 타협 없이 세상과 싸웠다. 덕분에 주디스 휴먼은 장애에 대한 편견과 인식을 바꾸고자 정당한 방법으로, 민주적으로 싸웠던 인물이 되었다. 처음에 주디스 휴먼을 유치원에 입학시키려고 했으나, 화재 위험 요인이라는 이유로 입학을 거부당했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학교에서도 입학을 거부당해 버스를 타고 먼 지역의 공립학교를 다녔다. 심지어 그 공립학교에서도 비장애학생들이 아닌 장애학생들과 특수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대학교에 입학해 주변에서 장래희망을 숨기라는 말을 들었다. 재활복지국에서 장래희망을 그대로 말한다면 주디스 휴먼을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이유였다. 심지어 숨긴 꿈조차도 재활복지국에서는 다른 꿈을 권하며, 돌려서 회유했다. 주디스휴먼은 교사가 되기 위해 교원 자격증을 준비했으나,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신체검사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뉴욕시 교육위원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교원 면허를 취득했다. 이후에도 장애 시민권 단체 설립, 자립생활센터와 사원 의원실 입법 보자관에서의 근무, 특수교육 및 재활서비스국 차관보 등을 지내며 장애인 인권 행정가로서도 근무했다. 그리고 미국 재활법 504 조 서명을 위해 정부 건물에서 농성을 벌이기도 한 인물이다.
읽는 내내 마음이 아프기도 했었고, 그 안에서 희망을 보기도 했었다. 개인적으로 주디스 휴먼이 처음으로 장애인으로서 차별을 인식하던 순간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친구와 사탕을 사러 가던 중 어떤 아이가 주디스 휴먼에게 아프냐고 물었다. 그때 휴먼은 인생 모든 것의 의미가 뒤틀어졌다고 서술했다. 사실 장애인이 곧 아픈 사람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그러한 측면에서 마음이 아려왔다.
고등학교 졸업했을 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단상에 못 오르게 했던 교장, 건강검진에서 말도 안 되는 문항을 확인하려는 의사, 비행기에서 안전을 이유로 내리라고 했던 승무원. 그동안 휴먼이 겪은 어이없는 일들이 믿기지 않았다. 비장애인으로 살고 있는 내가 겪은 적이 없는 일들을 마치 그들에게는 차별의 이유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답답해졌다.
비장애인들이 장애인들에 대한 차별과 무시는 익히 주변에서 봐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심각하게 느껴졌던 것은 장애인에 대한 연민이었다. 특히, 비행기에서 위급 상황 시 도와줄 사람이 있어야 탑승할 수 있다는 승무원의 말에 비장애인 역시도 도움이 필요할 상황일 것이라고 대답하는 휴먼의 대답에서 장애인이 아무것도 못할 것이라는 편견이 가장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장애인들의 욕구와 나아가는 길을 막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외에도 장애인으로서 제한된 삶을 살면서 휴먼이 느끼는 현실의 벽 또한 생각할 부분이었다. 비장애인에게는 고민의 가치조차도 없는 사랑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과 비장애인과 함께 일하는 법이 그랬다. 사랑을 하고 싶어도 이를 고민하는 모습이, 직장 내 괴롭힘을 받았음에도 움츠러드는 모습이 참 안타깝게 느껴졌다. 장애인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나아가는 것을 지향하지만, 사회에 속하는 비장애인들과 장애인이 함께 살아가는 법까지 나아가기에는 아직 더딘 편이다.
이와 반대로 농성으로 바깥에 나갈 수 없을 때 유리문 너머로 청각장애인들과 수어로 소통하는 이야기는 상상만으로도 참 아름다웠다. 유리라는 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통이 된다는 자체가 장애인들이 현실의 벽을 넘어 소통하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주디스 휴먼이 재활복지국에서 장애인의 교육과 인권에 대해 바꾸어나갈 때, 그리고 이러한 노력들이 작게나마 변화로 이루어질 때 희망이 보이기도 했었다. 물론, 이는 휴먼이 살고 있는 미국의 당시 상황이었겠지만 말이다.
장애인복지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접근 기회의 형평성으로서의 평등에 관한 이야기들과 차별금지법의 본질은 비장애인으로 살고 있는 내가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이기에 도움이 되었다.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와 관점에 대한 부분들도 마찬가지였다. 존중과 경청의 자세, 옳지 못한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 옳은 사회로 변화시키기 위한 끈기와 노력 등 장애 여부를 떠나 인간 주디스 휴먼 그 자체로도 나에게는 큰 영감을 주었다.
전자책으로 밑줄과 나의 생각들을 적어가면서 읽었고, 종이책으로 재독을 하면서 다시 마음에 되새겼다. 과연 나는 그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지금까지 노력을 해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말이다. 생각이 많아졌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단순히 장애인과 비장애인 중 하나에 속하는 인간이 아닌 그들과 이 사회를 동행할 하나의 사람으로서 다시 출발선에 서야 할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살아갈 길의 밑그림을 다시 그려보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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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학을 배우거나, 장애의 역사에 대해 배우면, '에드 로버츠'라는 사람의 이름은 종종 접하게 된다. 장애인권리 운동이나 장애인 자립생활센터를 설립한 인물로 유명하다. 그의 이름으로 대표되는 장애인의 인권 운동에는 많은 사람들의 투쟁이 있었지만, 그다지 알려진 인물이 많지 않았다. 그러던 중 '나는, 휴먼'을 통해 주디스 휴먼이라는 입이 떡 벌어지는 멋진 장애 인권 운동가를 알게 되었다. 그녀의 삶의 여정, 활동을 통해 미국 장애인법이 효력을 얻고, 사회상이 변화하는 여정을 따라가 보았다.
예전에 학문으로서 장애를 바라볼 때, 내가 가장 많이 했던 실수, 혹은 편견은 장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의료학적 관점에 경도되어, 가능한 장애는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의 치료하거나 고쳐야 하는 것으로 바라보았다. 두번째 실수는 그들에게 충분히 사회를 경험할 기회가 배제되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누군가의 도움이 항상 필요하고, 독립적인 생활을 하는데는 한계가 있을것이라고 짐작한 것이다.
『어떤 방송이든 전부 병들어 보이는 아이를 앞세워 사람들의 연민, 아니 더 정확하게는 동정심을 불러일으켰다. 이 병들고 불쌍해 보이는 장애인의 이미지 때문에 사람들은 우리가 의학적인 문제로 사회에 나가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무기력하고, 어린아이 같으며, 사람들의 동정을 얻어 병을 치료할 돈을 모으는 부류의 사람들로 치부되었다. 그들에게 우리는 무언가를 위해 싸울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p.155P)』
『우리가 던진 가장 기본적인 질문은 자율성에 대한 것이었다. 장애인들은 자신이 원하는 곳에 살면서 원하는 시간에 일어나 원하는 시간에 식사를 하고, 자신을 도와줄 개인 활동 보조인들을 고용하고 싶어 했다. 물론 노동자의 권리와 이익에 관한 법을 준수하면서 말이다. 이러한 지원이 의학적인 접근으로만 이루어지면 개인의 자율적 능력이 제대로 지지를 받기 어렵다.(p.228)』
『사람들이 늘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차별,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거나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라거나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랐다고 말하며 지워버리려고 하는 차별 말이다.(p.108)』 『나와 내 친구들은 학교에 다니는 것이 기쁘기는 했지만 동시에 무시당하는 느낌, 우리가 배울 수 없는 존재이자 이 사회와 아무 관련 없는 존재로 분류당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p.47)』
『우린의 참여는 누군가의 관대함에 달려 있지 않았고,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거나 어디에 가고 싶을 때 누군가에게 부탁을 해야 한다는 걸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 진행 요원들은 우리에게 이런 일을 해주며 보수를 받았고, 이 사실이 세상을 바꿔놓았다. 현실에서 누군가에게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혹은 굳이 그 일을 해줄 필요가 없을 때 부탁을 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호의에 기대야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p.53)』
사실 그들이 바라는 것이 특별한 대우가 아니다. 본인이 원하는 곳을 대중교통을 이용해 이동을 하거나, 원하는 곳에 살거나 남들이 다가는 학교에 가거나, 운동을 하거나, 일상생활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사회가 비장애인 중심으로 설계되어있고, 극효율을 원하는 이 시대에 그들의 당연한 요구는 특별한 요구를 하는 집단으로 몰아가는 경우가 많다. 건강한 백세 시대를 살아야 한다며, 건강에 집착하는 비장애인들의 모습을 보면, 무의식적으로 노화에 따른 장애 발생 가능성이 증가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시야에서 차단함으로써, 자신과는 관계없는 일로 선을 긋는 경우도 많다.
『장애는 인간사의 자연스러운 한 부분이다. 인간의 수명이 길어질수록, 더 많은 전쟁을 일으킬수록, 의학이 발달할수록 이전 시기라면 아마 죽었을 사람들이 점점 더 오래 살게 될 것이다. 아마도 장애를 가진 채. 우리는 이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를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그것을 중심으로 사회를 설계해야 한다.(p.281)』
『변화는 결코 우리가 생각한 속도에 맞춰 찾아오지 않는다. 수년에 걸쳐 많은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고, 전략을 세우고, 공유하고,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만 찾아온다. 점진적으로, 고통스러울 만큼 천천히 변화는 시작된다. 그러다 갑자기 아무런 예고도 없이 무언가가 살짝 기울어질 것이다.(p.262-3)』 『도로의 턱을 낮추고 경사로를 설치하는 일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경사로를 올라간 뒤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누구도 경사로를 오르려 하지 않을 것이다.(p.285)』
『"불구자crippled, 핸디캡handicapped, 벙어리mute, 멍청이dumb 같은 단어를 사용하지 말아주십시오. 이런 구식 용어는 오늘날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가운데 어떤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장애가 있는 사람들입니다.(p.157)』
People with disability는 요즘 장애인을 표기하는 영어식 방법이다. 장애로 인한 특성이 그들을 대표하지 않는다. 우리도 사람이다. 다만 장애가 있는, 사회에 존재하는, 인권이 있는 보통의 시민이다. 그런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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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휴먼> 영어로 말놀이 하듯 지어진 제목인가? 제목을 일별하고 궁금해졌다. 원제는 <Being Heumann>. 세상에 태어나며 자연스럽게 받게 되는 이 책의 저자의 고유한 성인 Heumann이 Human과 비슷하여 더 깊은 중의를 가질 것이란 궁금증으로 호기심 있게 책을 연다.
독일에서 미국으로 홀로코스트를 피하여 이주한 부모 아래 태어난 주디 휴먼, 그는 어릴 적 폴리오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소아마비를 진단 받는다. 이 책은 소아마비를 가졌으나 그를 아껴주고 뚝심 있게 지원하던 부모 아래 성장한 주디가 어떻게 브루클린 작은 동네를 너머서고 미국 전역에서, 그리고 지구촌 곳곳에서 장애 인권을 위하여 싸우며 성장했는지를 담고 있다.
나는 자기계발 관련서를 좋아하지 않지만, 에세이 읽기는 좋아한다. 누가 쓴 에세이든 저자 개개의 고유성과 개별성이 담긴 어떤 특정 분야의 일과 관계들을 관찰하는 독자의 특권을 오롯이 즐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나의 여러 호기심의 부분을 채워주는 더 특별한- 몸이 반응하는 지적 여정이었다. 미국 장애인 관련 법명을 나는 교과서 속에서 배웠으나- 내가 다닌 학교의 교수들은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딴 분들이었다, 무미건조한 법 이름 뒤에 주디 휴먼과 동료의 투쟁이 있는지는 전혀 몰랐다. 이 책을 통해서 그들의 구체적인 활동을 알게 되었으니, 마치 휴먼을 만난 듯 느껴지며 흥분됐다.
1부 초반에서 어린 휴먼의 뒤를 쫓으며, 그의 가족들을 지켜 보며 우리나라에서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는 모든 부모들의 노고가 어렴풋이 느껴진다. 두 아이를 키워 오며 어떤 상황에서 학교 담당자와 마주 했던 몇 안되는 그 불편한 대화들조차도 나 역시 다시 떠올리면 피로감이 몰려 오는데, 주디가 동네와 학교에서 느꼈을 불합리가 더 무겁게 느껴진다. 책 곳곳에서 그는 실제로 어릴 적 경험에 기반한 불안 감정을 자주 언급 한다. 이웃 동네의 또래에게서, 학교 입학을 거부 당하고 몇 년후에야 비로서 입학이 결정되어 첫 등교를 앞두던, 학교에서 자신을 비롯한 장애를 가진 이들이 어떤 공간에서 머무르며 여러 수업에 차등을 받았는지 등의 아린 경험은 우리 대개가 겪는 불안감보다 한 층 더 깊고 무거워 보인다. 하지만 주디는 그 경험과 감정을 활동의 힘으로 전환시킨다. 책 제목처럼 Being Heumann , 주디가 자신이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대학 생활을 더 적극적으로 지내기 위하여 학교에서 생활한 주디가 느꼈을 그 모든 상황에 이입하다 보니 나는 내 대학 시절에 동기가 떠올랐다. 재수하여 온 주디와 같은 장애를 가진 친구. 특수교육과가 있는 학교였지만 당시 경사로가 없어서 친구는 엄마나 같은 학교 다니는 언니의 도움으로 학교에 다녔다. 그런 과가 있으니 장애를 가진 학생을 입학시키긴 했어도 어쩌면 주디가 겪은 것처럼 다른 불편한 것들에 대해서는 어떠한 불평도 호소하지 말라는 조건을 달지 않았을까, 하는 너무 때늦은 생각에 친구에게 미안해졌다. 정작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이라며 학과 행사랍시고 학생관 앞에서 여러 활동을 한 기억이 나는데 우리는 어떤 울림을 학내 친구들에게 전했을까? 주디의 20년간의 인권 투쟁사를 따라가며 나의, 우리의 경험들이 겹쳐졌다. 무엇보다 최근의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여러 불미스러운 인식까지.
정작 나는 그런 전공을 하고서도- 실제로 졸업후 관련 일을 하진 않았으니 실제로 내 눈으로 실제 만난 장애를 가진 이들의 수는 작년 2월부터 현재까지 어울리는 클럽하우스라는 오디오 소셜에서보다도 적다. 음성만으로 교류하는 상황에서도 과거 교과서 속에서 단편적으로 내 경험에서 마주친 이들보다 더 깊은 속내를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휴먼의 개인적인 경험과 그가 여러 나라 곳곳에서 만나고 느낀 장애에 대한 인식 등 여러 단상과 비교하며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이 책의 신간 소식을 볼 때쯤 우리집에도 코로나가 찾아왔다. 몸이 아프니 내 어두운 인생관의 가라 앉은 의식도 수면 위로 올랐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짙게 낀 우울감의 두께가 한 꺼풀씩 벗겨졌다. 그리고 삶의 의지가 조금씩 올랐다. 읽는 시간 동안, 그리고 무엇보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지금 내가 투쟁하는 것들은 휴먼에 비하면 소소하다. 그러나 그 투쟁이 힘들다고, 하기 싫다며 고개 돌리고 싶을 때 난 휴먼의 글로 달려갈 것이다.
모든 이들에게 추천한다. 어느 조직에서든 권한을 가진 이라면, 특히 정치인에게! (2, 3부에 미국 정치인(공무원)의 여러 입장과 상황이 참 흥미진진하게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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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한 개인의 이야기라 생각하며 읽었다. 일정 연령대에 이른 이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쓴 자서전 같은 거. 그는 다른 아이들과는 조금 다른 신체를 지녔는데, 어린 시절 소아마비를 앓은 탓이라 하였다. 혼자 움직이는 일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동네에서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는 일에는 큰 지장을 겪지 않았다. 누구도 그를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았으며, 어떠한 형태가 됐건 무리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일에 주저함이 없었던 덕이 크다. 학교에 입학해야 할 시점이 도래했을 때부터 차이는 빚어지기 시작했다. 그에게 드리워진 운명은 일상에서 겪는 보행 불가에 따른 어려움보다도 더욱 어두웠다. 4학년이 되어서야 겨우 다른 이들처럼 학교에 드나들 수 있게 됐으나, 이 또한 일반 아이들이 받는 교육과는 달랐다. 장애를 지닌 아이들만을 별도의 공간에 모아 놓고 하는 수업은 시간이 짧았고, 가르침의 내용 또한 상이했다. 그래도 좋았다고, 학교에 갈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행복했다고 저자는 회상했다. 그의 삶은 미국 장애인 인권 운동의 역사와도 같았다. 다른 이들과 같은 무한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이기에 필히 대학 진학을 하고 공부를 더 해야 한다는, 그의 부모가 보인 탁월한 의견에 힘입어 그는 끊임없이 도전했다. 1970년대의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미국 사회도 장애인의 인권에 대해서는 불모지와도 같았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이 새롭게 다가왔다. 전공을 선택할 때 개인의 적성이나 재능 따위는 고려되지 않는 점, 장애를 이유로 아이들 앞에 설 수 없게 되는 등의 일이 그의 인생에선 연달아 전개됐다. 지레 겁을 먹거나 좌절할 수도 있을 테지만, 그는 목소리를 냈다. 처한 상황이 부당하다고,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귀 기울여 이를 경청하는 이는 드물었지만 약간의 환기가 이루어졌다. 제자리걸음 혹은 뒷걸음질을 치고 있는 것만 같은 나날의 연속이었지만 분명 그는 전진하고 있었다. 가장 감동적이었던 건 재활법 504조 시행 규정 서명을 촉진한 시위 부분이었다. 정치인들은 헛된 약속 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명 버티기 전법을 구사했다. 시간이 지나면 그만이라는 식의 태도에 그는 분노했고,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식의 시위에 나섰다. 너무 과격하다는 평이 따르기도 했고, 모두가 그의 방식에 동의했던 건 아니다. 시일이 흐름에도 변화의 조짐이 일지 않자 처음의 결의를 상실하고 무리를 떠나는 이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 스스로가 언급했듯 혼자 행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누군가가 이탈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이들이 힘을 보탰다. 과정이 민주적이었다는 건 의사소통의 모습에서 드러났다. 누군가는 수어로, 누군가는 보조기기의 도움을 받아 차분히 논리를 전개해 나갔다. 원하는 바를 표현하기까지 꽤 긴 시간이 필요한 순간도 있었을 터이나 모두가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 안에서 마음이 통했고 신뢰가 싹텄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또한 붙었다. 마침내 원하는 결과물의 도출이 이루어졌을 때 저자는 성장했다. 그건 그 자리에 있던 모두, 더 나아가 미 대륙 전역의 장애인들의 승리였다. 원하던 바를 이루고 나면 목표 의식을 상실하기 쉽다. 하나의 제도가 마련됐다 하여 하루 아침에 사회가 180도 달라지는 건 아니다. 그는 쉼없이 움직였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세계 은행에서, 오바마 행정부에서 그를 필요로 했다. 일터를 옮길 때마다 지역 사회에 형성됐던 많은 지지망으로부터 멀어져야 했기에 주저하는 마음도 있었다. 어찌 보면 포기로 해석될 수도 있는 선택을 행했지만, 하나를 내려놓음으로써 더 큰 것들을 얻었다. 함께한 많은 이들이 장애인이었다는 점이 신선했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선 장애인과 마주하는 일이 드물기에, 미국이라는 국가가 우리보다 얼마나 더 앞서 있는지에 대해 궁금했다. 한 편으로는 ‘장애인’이라는 단어에 치우치지 말아야겠단 생각도 했다. 이를 다른 단어로 교체해도 저자의 이야기는 충분히 성립 가능해 보였다. 나의 어떠한 특성이 나에게서 교육의 기회를 앗아가고 학습 능력이 없다는 평가를 정당화한다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지라도 여전히 이로 인해 고통스러운 상황에 놓인 이들이 이 땅엔 상당수 존재할 것이다. 그들을 포함한 우리 모두가 ‘나는, 휴먼’ 이라는 숭고한 선언을 할 수 있는 사회를 상상해 본다. 공상 아닌 얼마든지 현실로 존재할 수 있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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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디스 휴먼. 절묘하게도 성이 휴먼(Heumann)이라서 제목이 "나는, 휴먼(Human)"이라는 의미와 맞아떨어진다. "나는 장애인이 되었고, 시민이 되었고, 결국 내가 되었다"라고 말하는 그녀의 말이 가슴아프게 느껴졌다.
그녀는 평생을 장애인 차별 철폐를 위한 운동가로 살았고 정부 각료가 되어 장애인 차별 정책을 개선하는 데 기여했다.
최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장애인 이동권 보장과 장애인 권리예산 반영을 요구하며 출근길에 지하철 시위를 벌인 것을 두고 정치권과 시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노동자 권리를 위한 시위도, 정쟁에 의한 시위도, 특정 직군의 밥그룻 싸움의 시위행위도 빈번한데 왜 장애인 시위에만 유독 눈쌀을 찌푸리는가? 그들은 보여줘야 했고, 우리는 보아야 했다. 1970년대 미국에서 필요했던 시위가 2022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필요했을 뿐이다. 더이상 먹고살기 어렵다고 눈감지 말자. 험한꼴 보이지 말라 하고 마음 편해할 것이 아니라 똑바로 보고 인지해야 하고, 개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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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치인의 말장난에 지쳐있을 때 이 책이 눈에 띄었다. 한 사회에서 소수자 운동이 걸어가야 길을 보고 싶었다. 그 길을 보고 그 정치인의 말이 진심인 지 이간질인이자 말장난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미국의 장애인권 운동가 주디스 휴먼의 일대기를 다룬 책이다. '나는 휴먼'. '휴먼'(heumann)은 주인공의 이름이다. 나는 이중적으로 읽었다. 나는 '인간'이라는 인간선언으로. 처음에는 내가 오해했다고 생각했는데, 읽다 보니 그런 오해도 합당한 오해라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은 한 장애인이 자기 자신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당당히 서기 위한 투쟁의 기록이다. 특히, 미국에서조차 장애인 운동에 대한 개념이 잡히지 않은 시기에, 저자가 그런 작은 돌들을 하나 하나 쌓아가는 기록이어서 인상깊다. 그 기록은 주디스 휴먼 혼자만의 기록이 아니라 그녀와 그녀의 친구들의 기록이다. 중요한 것은 그녀와 그녀의 친구들이라고 했지만, 그들은 둘이 아니다.
다행히 이 책의 주인공의 기록은 승리의 기록이다. 고난은 있었다. 하지만, 어쨌든 승리했다. 어쩌면 수많은 패배가 배후에 숨어있을 지도 모른다. 읽기 전에 이것을 걱정했다. 우리나라의 장애인 운동사를 볼 때 사회적으로 무엇을 이루어냈느냐를 떠나서, 장애인이자 운동가 당사자의 가난과 고독을 배제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 가난한 절대적 가난이고 고독 또한 절대적 고독이다. 사회의 벽에 패배하기에 앞서 가난과 고독에 패배하는 경우가 더 많다.
슬퍼하고 분노하는 것만으로 사회는 바뀌지 않는다. 행동하고 투표해야 한다. 장애인의 문제는 보편적 인권의 문제다. 장애인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 받지 못 하는 사회에서 비장애인의 권리가 보장받는다는 보장이 없다. 더구나, 우리는 예외없이 늙고 병들고 죽는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장애인이 된다. 지금 우리의 싸움은 장애 비장애를 떠난 싸움이고 우리 모두의 미래를 건 싸움이다.
좋은 책이다. 분명한 것은 소수자 운동이 법률 지식인이나 그 분야의 전문 지식이 동반되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동시에 그것만으로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사회는 듣지 않는다. 그래서, 너희들은 왜 다수가 불편하게 길바닥에 드러누워 공공질서를 어지럽히느냐는 문제제기는 말장난일 뿐이다. 혹시 모르겠다. 소수자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사회가 그것을 들을 수 있는 고상한 방법이 21세기 대한민국에는 있고 많이 배우신 분들은 그 고상한 방법을 알고 있는 지 ? 적어도 지난 반세기 미국 장애인운동사를 되돌아 볼 때 그런 고상한 방법은 없는 듯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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