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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을 찾는 일은 우리 인류 자신을 찾는 일이었음을[에덴 추적자들]
"에덴을 찾는 일은 우리 인류 자신을 찾는 일이었음을[에덴 추적자들]" 내용보기
우리가 어떤 책을 읽을 때, 염두에 두게 되는 기준은 두 가지 정도입니다.1) 표현이나 내용이 매우 기발하고 독창적이라 페이지를 넘기는 재미가 있다. 2) 유익한 정보, 혹은 도덕적인 가치가 충분히 담겨 있다.이 책은 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담은, 정말 유쾌하면서도 유익한 책이었습니다.인간은 흔히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고 합니다. 최소한의 생존 욕구가 충족된 후에는, 사랑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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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떤 책을 읽을 때, 염두에 두게 되는 기준은 두 가지 정도입니다.

1) 표현이나 내용이 매우 기발하고 독창적이라 페이지를 넘기는 재미가 있다.

2) 유익한 정보, 혹은 도덕적인 가치가 충분히 담겨 있다.


이 책은 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담은, 정말 유쾌하면서도 유익한 책이었습니다.


인간은 흔히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고 합니다. 최소한의 생존 욕구가 충족된 후에는, 사랑이라든가 명예와 같은, 한 차원 높은 범주의 다른 상위 욕구로 그 지향이 옮아감은, 심리학의 매슬로우가 이미 밝혀 낸 사실이죠. 그런데 인간은, 가장 고차원의 자아 실현 욕구를 채운 후에도, 그보다 더 높은 곳에 있을, 혹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믿는, 형이상학적, 초월적 욕구를 여전히 지닙니다. 이는, 경우에 따라, (보이지 않는 피안을 향할 때) 종교적 열정이 되기도 하고, (눈에 보이는 물리 세계를 향할 때) 극지, 험지, 오지를 찾아 나서는 탐험에의 열정이 되기도 합니다.

책의 테마를 담은 예쁜 책갈피가 딸려 있어요.


이 책은 이 두 가지 욕구와 야망을 둘러싸고, 실존했던 유명인 14명과, 이 14인의 주위를 맴돌거나 큰 영향을 주고 받았던 각종의 인간 군상이 연출했던 희극, 혹은 비극을 재미 있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정신적 욕구와 물리 세계에서의 모험이 동시에 얽혀 있는 경우는, 논리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매우 드문 게 당연한데요, 이런 드문 주제를 책 한 권에 관철하는 일이 가능했던 것은, 바로 성서 속의 주제인 "에덴 동산"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숱한 논쟁과 소동, 혹은 촌극에 대해 이 책이 망라적으로, 또 디테일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에덴 동산" 하나로 책 한 권을 다 채운단 말인가? 의문이 들 만도 하지만, 이 책은 정말로 그런 일을 해 내고 있습니다.


첫째 장은 보스턴 대학의 학장이자 감리교 목사인 윌리엄 워런의 이야기입니다. 보스턴은 영국에서 대서양을 건너 온 청교도들이 가장 먼저 정착한 도시로 잘 알려져 있고, 현재는 그 도시를 포함한 메사추세츠 주 전체의 성향이 그렇듯 대단히 진보적인 성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배경이자 워런이 살았던 19세기만 해도, 엄격한 청교도 교리와 분위기가 정관계를 지배하는 곳이기도 했죠. 헌데 우리는 여기서, 현대 미국 남부를 지배하는 기독교 원리주의 같은 걸 생각하면 좀 곤란하겠습니다.


그는 정통 신앙를 고집하되, 최신 과학 이론으로 무장한 새로운 흐름을 무작정 부정하는 게 아니라, 그들과 대화가 통하는 방법으로 전쟁을 벌여, 마침내 불신자들을 설복시킨다는 심산이었습니다. 한참 후에 등장한 독일 철학자 하버마스의 표현을 빌리면 "담론 윤리"가 뭔지 이해를 한 사람이었죠. 그런데, 그 결과가 반드시 성공적이었는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심각하게 역사의 진실을 또박또박 전하고 있으나, 읽는 내내 폭소를 멈출 수 없는 내러티브로 가득 한 이 책에 실려 있다는 것만으로도 눈치 챌 수 있지만,... 윌리엄 워런은, "북극에 에덴 동산이 있었다."는, 오늘날의 눈으론 터무니없고 황당한 주장을, 두꺼운 책 한 권에 가득 싣고, 각종의 인용문헌과 증빙을 부가하여 길게 서술하여 보급한 사람입니다. 그는 이 주장 하나로, 현대(그의 동시대)에 만연한 불건강하고 불온한 반(反) 기독교 사상을 일소하겠다는 야심을 불태우고 있었습니다. 그의 주장은, 엄청나게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했다 뿐이지, 대단히 논리적입니다. 우리가 어떤 주장의 진위를 판단함에 있어 동원하고 있는 기준 중, 1) 직관 2) 권위 3) 논리 의 세 가지를 모두 충족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결정적인 4) 증거가 부족했고, 이는 이후의 발달한 과학 지식이 결정적으로 오류임을 보이기까지 그런 대로 받아들여지기까지 했습니다! 자, 에덴 동산이 북극에 있었다, 오늘날의 우리는 그 직관으로 벌써 이 억설을 기각해 버립니다. 하지만 그 시대를 살던 이들은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았다는 게 가장 놀라운 점이었습니다. 이 1장에는 그 외에도, 우리가 북극을 가장 먼저 밟은 인간으로 기억하는 피어리에 대해서도 잠시 나와 있는데, 그가 그런 영예를 차지하게 된 배경에는 정치적 로비력이 결정적이었다는 점도 밝히고 있습니다. 종교건 과학이건 탐험이건, 그 진가를 평가하고 받아들이는 데에는 추악한 정치가 빠질 수 없다는 게 가슴 아픈 깨우침으로 다가 왔습니다.



디음 장에 등장하는 사람은 더 재미있습니다. 유태인의 혈통으로 태어났으나, 주류 사회에 합류하기 위해 기독교로 개종(이런 유태인들은 제법 많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도 그런 사람이죠)한 아버지 밑에서 엄격한 훈육과 최상의 교육을 받고 자라난 프리드리히 델리치라는 학자의 이야기입니다. 아버지의 후광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평생을 시달렸던 그는(이는 이 책 저자의 해석일 뿐이며, 다른 시각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라크(옛 메소포타미아)로 달려가 놀라운 고고학적 발견을 해냅니다. 이로부터 얻어 낸 결론이란, 구약성서란 한갓 고대 바빌론 신화의 표절물에 불과했다는 거죠! 이는 지금 와서야 현대인의 상식이 되었습니다만, 기독교적 세계관이 확고히 지배하던 당시의 유럽으로서는 엄청난 충격이었을 겁니다. 순수 학문의 영역에 정치가 개입하자, 상황은 진흙탕싸움으로 변합니다. 저자는 대단히 재미있게도, 이 델리치 역시 황제의 눈에 들어 영달을 도모하던 정치적 인물 그 이상이 아니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셋째 장에 등장하는 인물은 독일감리교의 일파인 "형제단" 소속 목사였던 한 미국인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진정 엉뚱하게도, 미국 오하이오 주에 위치한 어떤 인디언 유적지를 두고, 에덴 동산의 증거라고 주장하여 파문을 일으킵니다. 사실 이를 둘러 싼 소동은, 이 책에 실려 있는 다른 나머지 13인의 촌극에 비해 역사적 중요성 면에서 비중이 떨어지는 편이라, 과연 수록될 가치가 있었을 지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원주민을 집단 학살하고 그 터전을 빼앗아 현재의 삶을 일군 미국인들의 집단 죄의식을 반영하는 작자의 의도로 읽히기도 합니다,



이 책은 뒤로 가면 갈수록 재미있는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그 이유는, 다분히 계획적으로, 저자가 보편적 상식에 비추어 더 파격이다 싶은 캐릭터를 점층적으로 배치한 까닭이 아닙니다. 맨 마지막의 조셉 스미스(현재 한국에도 선교사가 많이 파견되어 있으며, 지난 번 대선 후보였던 미트 롬니의 종교이기도 한 몰몬 교의 창시자입니다)를 제외하면, 이 14인의 인물들은 단순한 에덴 동산의 탐사자, 몽상가가 아닙니다. 우리 현대사의 굴곡과 모순을 그대로 대변하는 상징적 인물들입니다, 다시 저 위로 돌아가 2장의 델리치를 보십시오. 이 사람은 개인적으로는 지극히 선량한 인격자였으나, 결국 그의 사상은 이후 나치 발호의 한 토양을 마련하게 됩니다. 5장에 나오는 홍콩의 사회운동가 사찬태(謝纘泰)를 통해, 우리는 에덴 동산이 東투르키스탄에 위치해 있다는 식의 황당한 코미디를 접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중국 근현대사의 일단인 의화단 운동, 그리고 신해 혁명에 이르는 거대 흐름의 한 지류를 엿보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 인물들의 현대사적 비중이, 뒤 시대일수록 우리의 감정과 가치관과 교차하거나 혹은 크게 역행하는 요소가 많을 테니, 더 큰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게 당연할 밖에요. 



알고 보면 은근 심각한 주제와 도덕적인 교훈을 다루고 있기는 하나, 저자의 문장과 위트가 너무도 빼어나서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웃느라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습니다. 213~221페이지에 실린 스콥스 재판은, 그 내용상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위트와 자기 패러디가 진하게 배어 있어, 이 책의 압권으로 생각될 만큼이었습니다.


몇 가지 재미있었던 부분을 추려 보면,


p46 개신교 신자들에게는 가능한 일일지도 → 이런 이슈가 기독교의 신구 종파를 가릴 리 없죠, 종교상의 대립을 풍자한 명 위트였고요.

p141 문명이 끝나려고 하는데(일차 대전 발발 직전) 문명의 기원(에덴동산)을 고려할 여유가 없음은 당연했다. 블랙 유머죠. 학문적 논쟁이라고 해도 결국 소속 국가의 이해를 반영하여 전개되는 게 보통이었던 당시의 쓰디쓴 상황을 풍자합니다.

같은 페이지 "한 사람(델리치)은 청력을 잃고, 한 사람(세이스)은 시력을 잃어 대화가 될 지 의문이었다. " 신체상의 기능 장애를 거론하는 게 좀 불편할 수도 있지만, 성격의 See No Evil 같은 구절이 연상되어 절로 웃음이 나왔습니다. 역시, 국가 간의 탐욕으로 인한 전쟁열기를 풍자한 대목입니다. 

p131 "뱀에 물린 그는 뱀의 사악함을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코미디 대본처럼 웃음이 나왔던 부분입니다.

p213  학장 생일은 그 해에도 그 이듬해에도... 고령의 워런이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서술하는 부분이 매우 우스웠습니다.


책에는 잘못된 부분도 적지 않게 보였습니다.

p58에 보면 1903년에 오스만(유러피안 페이션트)이 무너졌다고 하고 있으나, 오스만 제국은 1차 대전이 끝난 1918년에야 문을 닫습니다. 이 시기는 오히려 탄이 그나마 정신을 차리고 나라를 추스리던 시기입니다. p167에 보면 그 이후에 제국이 건재했음이 잘 나와 있고, p180 청년 투르크 당의 혁명을 언급한 부분도 있습니다. 책 자체만 놓고 봐도 말이 안 되는 서술입니다.

p58에 보면 "토리아"라는 인명이 나오지만, 이런 발음은 있을 수 없습니다. Viktoria는 독일식으로도 그저 "토리아"일 뿐입니다. 독일어라고 해서 V가 언제나 [f]로 발음되는 게 아니며, 이 경우는 외래어이므로 예외입니다.


p172에 보면 "강의로부터 5년 후"라고 되어 있지만 틀렸습니다. 바빌론과 성서(Babel and Bible인데 이걸 독일어로 읽으면 바벨 운트 비벨입니다, 기발하죠)라는 강의는 1902년에 있었으므로, 6년이 정확합니다. p216의 1903년 운운도 틀린 것입니다.


p151의 역자 주 the boxesthe boxers의 잘못입니다.


p63에서 '조엘'은 "요엘' 이 맞을 것입니다.


p297 "바레인은 섬나라였다." 바레인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섬나라이므로 과거형 시제는 눈에 거슬립니다.

v*****7 2013.09.2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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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에덴을 찾고 싶나요?
"당신도 에덴을 찾고 싶나요?" 내용보기
모든 위대한 발견은 호기심으로 시작한다. 그러니까 어떤 관심 말이다. 하나의 사건에 대해 그냥 지나치는 이가 있는 반면, 누군가는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파고든다. 누가 강요한 적도 없는데 탐사하고 연구에 몰두한다. 그것이 인류를 위한 놀라운 발명이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다. 브록 웰린스키 랜포드의 <에덴 추척자들>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에덴에 찾는 사람들이다. 최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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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위대한 발견은 호기심으로 시작한다. 그러니까 어떤 관심 말이다. 하나의 사건에 대해 그냥 지나치는 이가 있는 반면, 누군가는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파고든다. 누가 강요한 적도 없는데 탐사하고 연구에 몰두한다. 그것이 인류를 위한 놀라운 발명이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다. 브록 웰린스키 랜포드의 <에덴 추척자들>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에덴에 찾는 사람들이다. 최초의 인간 아담과 이브가 살았던 낙원이 지구 어딘가에 존재한다면, 당신은 믿을 수 있겠는가?

 

 책은 픽션이 아니라 논픽션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열네 명의 에덴 추적자는 우리가 예상하듯 목사나 신부처럼 종교에 관련된 사람 외에 건축기사, 의사, 탐험가, 고고학 교수 등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왜 에덴을 찾아 나선 것일까? 믿음을 직접 확인하기 위함인지, 혹은 단순하게 지적 호기심을 해결을 위한 욕구일까.

 

 “에덴에서 강 하나가 흘러나와 그 동산을 적신 다음 네 줄기로 갈라졌다.”(창세기 2장)

 

 에덴을 찾으려면 강을 찾아야 했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이 현재 이라크의 주요한 강과 지명이 같기 때문에 분명 에덴이 존재한다고 믿은 것이다. 강이 아니라 운하라는 주장도 있지만 어쨌든 물이 흐른다는 게 중요했다. 그들은 모두 자신만의 확신에 차 있었다. 첫 번째 추적자는 19세기 감리교 목사이자 신학을 가르치는 워런으로, 그에게 에덴은 북극이었다. 이 주장은 많이 이들을 북극 탐험에 동참하게 만들었다.

 

 에덴동산을 떠올리면 아담과 이브를 유혹한 뱀을 빼놓을 수 없다. 이러한 뱀의 형상을 닮은 유적지가 있다면 한 번쯤 에덴을 상상할 것이다. 침례고 목사인 웨스트가 그랬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서펀트 마운드를 지목한다. 기묘한 형상을 보면 그의 주장을 믿고 싶어진다.

 

 

 

 

 신을 연구하고 복음을 전하는 이가 아닌 영국인 건축기사 윌콕스는 메소포타미아를 여행하면서 에덴동산에 살았을 이들을 생각한다. 건축기사답게 관개 시설을 완성하면 과거의 에덴동산을 복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성서에는 에덴 밖으로 네 강이 흐른다고 적혀 있는데, 그중 둘은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이라고 했다. 델리치와 세이스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메소포타미아 고대 문명이 법, 천문학, 문자 같은 많은 서양 문명을 낳았으며, 기독교 자체도 메소포타미아가 기원임을 밝혔다. 이제 에덴동산은 ‘문명의 기원’과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170쪽

 

 에덴동산을 찾는 단서로 사람들이 주목한 건 나무도 있었다. 선악과라는 열매를 맺는 나무다. 메소포타미아 지역 쿠르나 민간인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나무가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지혜의 나무가 부러져 죽어간다는 건 심각한 일이었다. 1차 세계대전으로 쿠르나는 영국의 소유였고 책임자 스터지스는 나무를 조사한다. 당시 영국인에게 쿠르나의 나무는 정치적 분쟁의 소지가 될지도 모르는 민감한 부분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에덴이 그렇듯 지혜의 나무는 모두를 하나로 만드는 역할을 했다.

 

 ‘신성한 나무는 신성한 사람이나 그 지역 성자와 관계가 있는 경우가 많다. 성자가 나무 밑에서 설교를 했을 수도 있고, 나무 근처에 묻혔을 수도 있고, 나무에 잠시 기대었다 갔을 수도 있다. 품종에 상관없이 모든 나무가 신성한 나무가 될 수 있고, 죽은 나무도 산 나무처럼 신성해질 수 있다. 그루터기만 있어도 상관없다.’ 208쪽

 

 에덴을 찾는데 그치지 않고 직접 에덴동산을 만든 사람도 있다. 법률가 캘레웨이는 플로리다의 비자나무가 생명(지혜)의 나무일지도 모른다 여기고 자신의 사유지에 에덴동산 공원을 만든다. 이제 에덴동산을 벗어날 이유가 없으니 이브로부터 내려온 원죄 역시 사라졌다고 믿고 싶었던 것이다.

 

 

 

 

 ‘에덴동산은 노아의 홍수를, 아니 노아 시대 있었던 전 지구적 재앙을 뒷받침하는 근거이다. 에덴이 아직 지구에 있다면, 그 장소가 깊은 바다 밑이건 높은 산 위건 간에 노아의 홍수는 지구를 완전히 박살내지는 못한 게 된다. 그러니까 신의 처벌이, 시련을 이기고 살아남은 생명체가 거의 없을 정도로 엄격하지는 않았다는 뜻이 된다.’ 337쪽

 

 무척 신선하고 흥미로운 책이다. 역사, 종교, 과학, 지리, 다양한 분야의 지식이 동원된 책이다. 그만큼 많은 이가 에덴을 간절히 원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누군가는 새로운 에덴에 도전할 것이다. 에덴동산에 대한 믿음은 각자의 몫이다. 우리가 여전히 에덴을 원하는 게 중요한지도 모른다. 누구나 태초의 삶과 평온이 시작된 그곳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으니 말이다.

 

r*********s 2013.10.07.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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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 추적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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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있어서 '에덴동산' 이라는 것은 기독교도들이 '낙원'이라는 성격의 것을 칭하는 단 어. 라는 정의에서 더 할 것도 덜 할 것도 없는 인식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을 보면서, 나는 오랜기간 크리스천의 영향력을 받았던 서양인들에게 있어서 만큼은, '에덴'이란 (제3자로 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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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있어서 '에덴동산' 이라는 것은 기독교도들이 '낙원'이라는 성격의 것을 칭하는 단

어. 라는 정의에서 더 할 것도 덜 할 것도 없는 인식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을 보면서,

나는 오랜기간 크리스천의 영향력을 받았던 서양인들에게 있어서 만큼은, '에덴'이란 (제3자로

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에덴이라는 것이 트로이나, 아틀란티스와 비교해서, 너무나도 허무맹랑한 느낌이 드

는 것은 어째서 일까? 기독교인들은 에덴이야말로 인류의 요람이자,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  라

는 기존의 믿음 (창조론)을 증명하는 최고의 이념적 가치라고 주장하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그

성서에 기록된 그 '낙원'의 존재에 대해서, 여러가지 의견을 가지고 있고, 또 그에 걸맞는 이론으

로 무장하고 있기도 하다.      때문에 이 책은 에덴 추적자라는 그 제목에 걸맞게, 에덴을 발견하

기 위해서 노력했던,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또 그들이 어떠한 생각과, 이

념적 가치를 가지고 에덴이라는 것을 발견하려고 하였는가? 하는 것까지 세세한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하려고 노력하는 모습도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그 에덴이라는 존재에 대한 증명을 위해서 노력했고, 그 노력의 증거는 수많은 가

설과, 주장으로 표면화 되었다.   에덴이 단순히 추상적인 이샹향을 칭하는 것이라는 주장과, 지

구상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주장 같은, 포괄적인 이념적 가설을 포함해서, 에덴의 존재를 과학으

로 증명 하려고 했던 것과 같이, 종교와, 과학, 그리고 철학, 역사학 으로 무장한 학술적 가치를

지니는 가설.  그리고 에덴이 북극 어딘가, 아니면 아프리카나, 심지어는 중국에 있었다고 믿었

던 지질학적 지식을 지녔던 사람들의 가설에 이어,  심지어는 외계인과 같은 초자연적인 매개체

와 접촉하여, 에덴의 존재를 증명하려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다. 

 

때문에 오늘날 (기정사실로 인식되는) 진화론으로 무장한 현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에덴을 찾아

다닌 그들은 그야말로, 바보들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절로든다.  그들이 행동하려는 동기라는것

은 단순히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 라는 단순한 그들의 믿음을 증명하려는 시도에 지나지

않다.   진짜로 그들은 아담과 이브라는 인류의 조상에 대한 이야기가 지구상에 실존했

진짜 역사라고 믿었단 말인가?  물론 그들에게 있어서는 오랜 통치수단이자, 문화&도덕

적 이념의 척도였던 그리스도의 가치를 '불멸' 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그러한 연구를 진행할

'이유'가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 그들의 주장은 마치 단군신화는 역사적

사실이라고 주장하며, 태백산 어느부분에 환웅이 내려왔는가? 우리는 정말로 곰의 유전자를 이

어 받았는가?  하는것을 진지하게 연구하는 것과 같은 느낌의, (비정상적인 노력의 결과들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때문에 이러한 창조론적 믿음은, 이제 진지함을 떠나, 오늘날의 '영화'나 '애니메이션' 같은 판타

지적 이야기의 주요한 소개로 즐겨 사용되는 문화적 가치에 만족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믿기 어렵겠지만,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그러한 창조론적 믿음은 서방세계의 많은 사람

들에게 뿌리깊은 (역사적)사실로 인식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았지

만, 미국 내에서는 창조론을 주제로 한 '창조 박물관'이 버젓이 운영 되고 있다.)   때문에 성서

와, 에덴의 존재를 발견하려는 움직임은, 아직도 현재 진행중이라고 보아도 무방 하다.

 

에덴을 발견하기 위한 이러한 인간의 노력... 과연 그 노력의 원천은 무엇일까?  어째서 그들은

'신화'라는 열차를 '역사'라는 레일에 놀려놓기 위해서, 그러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 것일까? 인간

이라는 종족의 우월성을 확립하기 위해선가? 백인민족의 우월성을 증명하기 위해서인가?  아니

면, 그저 단순히 그들의 탐구심을 만족시키기 위한 자위적 행위인가... 

 

q*******a 2013.09.29.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지상낙원 '에덴' 찾기는 아직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상낙원 '에덴' 찾기는 아직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내용보기
교회를 다니든 다니지 않든 에덴 동산과 그곳에서 거주하며 살았다는 아담과 이브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정말 에덴은 존재하며 우리는 아담과 이브의 후손들일까? 이 책을 선택해 읽으려던 이유가 바로 그것에 대한 궁금증 탓이었다. 에덴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곳은 말 그대로 지상낙원이라고 들었다. 노력하지 않아도 사계절 나무에서 과일이 열려있어 굶주
"지상낙원 '에덴' 찾기는 아직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내용보기

 

교회를 다니든 다니지 않든 에덴 동산과 그곳에서 거주하며 살았다는 아담과 이브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정말 에덴은 존재하며 우리는 아담과 이브의 후손들일까? 이 책을 선택해 읽으려던 이유가 바로 그것에 대한 궁금증 탓이었다. 에덴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곳은 말 그대로 지상낙원이라고 들었다. 노력하지 않아도 사계절 나무에서 과일이 열려있어 굶주릴 걱정이 없는 곳, 다시 생각해보니 에덴이 현대에 모습을 드러낸다해도 그곳이 지상낙원이라 칭송 받지는 못하겠지 싶다. 요즘 아이들에게서 컴퓨터나 스마트 폰 등의 전자기기를 빼놓고는 행복을 말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니. 다만 늙지도 병들지도 않고 건강한 모습으로 오래도록 살아갈수 있다는 점에서 보면 기대치가 높아지겠지.

 

구약성서 창세기 2장 10절에서 14절까지의 기록을 바탕으로 에덴을 찾으려는 사람들, 수많은 사람들이 에덴 찾기에 도전했고 에덴이 있었던 곳으로 유망한 장소를 찾아낸 사람들도 존재한다.《에덴의 추적자들》에 등장하는 14명의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장소를 에덴이 있었을 가장 유력한 곳이라 말한다. '미지의 땅 북극에서 에덴을 찾아낸 목사'를 시작으로 '에덴은 이라크 남부 쿠르나에서 영원하다'고 말하는 열네 번째 추적자까지, 에덴을 찾으려는 사람들에게 있어 에덴은 어떤 의미일까? 에덴을 찾으려는 사람들에는 윌리엄 페어필드 워런/ 에드먼드 랜던 웨스트/ 세이스/ 프리드리히 델리치/ 사찬태/ 윌리엄 위콕스/ 위리엄 새들러/ 엘비 에디슨 캘러웨이/ 토르 헤위에르달/ 조셉 스미스 외에 여러 사람들이 존재한다.

 

에덴이 무엇이길래 다양한 직업군을 가진 사람들이 에덴에 그토록 목매달고 있는 것일까? 에덴이 북극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보스턴 대학의 학장이자 감리교 목사인 윌리엄 워런, 보스톤은 영국을 떠나 새로운 신세계를 찾아온 이들이 가장 먼저 정착한 곳이다. 그들의 주장이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창조론이 맞을까 진화론이 맞을까? 창조론이 맞다면 아담과 이브가 인류의 조상이라는 말도 믿어야 할테고, 다윈의 주장인 진화론이 맞다면 창조론을 주장하는 것이 허무맹랑하다는 말이 되버리니. 이 책은 인문학이었어. 내가 책속에 빠져들어가기 힘든게 당연한 거야. 관심분야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용을 이해할 지식을 갖추지도 못하고 있으니. 또한 이해하지 못하니 재미를 느낄수도 없다. 다만 '창조론과 진화론 사이에서 길을 찾아낸 과학교사(열한 번째 추적자)의 말에는 약간이나마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것은 누군지도 모르는 고대 조상이 아니었다. 죄를 지은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었다.' (p.306) 여기에 비유할 말은 아니지만 우리 속담에 '잘 되면 내 덕이요 못되면 조상 탓'이란 말이 있다. 그처럼 아담과 이브(하와)의 원죄로 인해 후손들이 끊임없이 고통받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고 있겠지 싶다. 원죄에 더불어 새로운 죄가 자꾸 쌓여만 가는 것 아니었을까? 처음 쌓인 죄가 티끌이었다면 그 위에 덮개처럼 덮여가는 죄들로 태산이 형성된 것은 아닐런지. 지금도 사람들은 자꾸 새로운 죄를 만들어가고 있으니까. 사람이 힘들어지면 부모를 비롯한 조상들을 탓하는 것처럼 우리는 어딘가에 핑계를 떠밀어가며 살아가고 있다.

 

s*******1 2013.10.04.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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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에덴 추적자들 :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지식인들의 발칙한 에덴 탐험기
"[서평] 에덴 추적자들 :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지식인들의 발칙한 에덴 탐험기" 내용보기
성경책을 읽다보면 하나둘 믿음을 실험하게 하는 의문사항들이 생긴다. 노아의 방주는 성경책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과연 사실인지 알고 싶어지고, 에덴동산이 존재했었다면 지구의 어디쯤에 있는지 궁금해진다. <에덴 추적자들>의 지식인 14명도 이 문제를 놓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앞 내지에 나오는 지도엔 에덴의 위치로 추정되는 곳도 수십군데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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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책을 읽다보면 하나둘 믿음을 실험하게 하는 의문사항들이 생긴다. 노아의 방주는 성경책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과연 사실인지 알고 싶어지고, 에덴동산이 존재했었다면 지구의 어디쯤에 있는지 궁금해진다. <에덴 추적자들>의 지식인 14명도 이 문제를 놓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앞 내지에 나오는 지도엔 에덴의 위치로 추정되는 곳도 수십군데다. 그만큼 의견이 분분하다는 반증일 것이다. 에덴은 성경책에 나오는 꿈의 낙원일 뿐인걸까? 아니면 아직까지 찾지 못하고 있는걸까? 책에 소개된 에덴추적자들이 에덴을 찾아가는 과정을 함께 쫓아가면서 조각을 맞춰가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사람은 눈 앞에 당장 보이는 것만 믿는 존재들이다. 인문학적 관점에서 볼 것인가? 아니면 신학적 관점에서 볼 것인가? 그것은 개개인의 선택에 따른 문제일지도 모른다. 에덴을 마치 일반적인 탄생기원처럼 신화라고 치부하는 부류가 있다. 창조론과 진화론을 양분되는 시대에 나는 창조론을 믿는다. 대개 격한 토론으로 이어지는 문제인데 워런 목사는 일일이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진화론은 태생적인 한계점을 갖고 있으며, 설명할 수 없는 의문점이 많다. 진화가 사실이라면 자연 모든 만물은 우연의 산물이며, 지금도 새로운 종이 계속 나와야 맞지 않을까? 진화론 관점에선 원숭이로부터 인간으로 진화했다고 주장하지만 지금 오랑우탄이나 일본원숭이는 왜 인간이 되지 않는걸까? 그 원숭이와 인간 사이의 중간종은 과연 존재하는가? <에덴 추적자들>의 추적자들이 겪었던 일들은 지금도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




성경책에는 에덴동산의 위치를 알려주는 힌트가 있다. 창세기 2장 10절~14절 구절에 나오는 부분으로 "에덴에서 강 하나가 흘러나와 그 동산을 적신 다음 네 줄기로 갈라졌다. 첫째 강줄기의 이름은 비손이라 하는데, 은과 금이 나는 하월라 땅을 돌아 흐르고 있었다. 그 땅은 좋은 금뿐 아니라 브롤라라는 향료와 홍옥수 같은 보석이 나는 곳이었다. 둘째 강줄기는 기혼이라 하는데, 구스 온 땅을 돌아 흐르고 있었다. 셋째 강줄기의 이름은 티그리스라 하는데, 아시리아 동쪽으로 흐르고 있었고, 넷째 강줄기의 이름은 유프라테스라고 했다." 이 성경에 나온 말씀을 토대로 추적자들은 에덴의 존재를 찾기 위해 합리적으로 접근을 시도한다. 고고학적으로 접근해도 흥미로운 소재일 수밖에 없다. 목사, 건축기사, 법률가, 탐험가, 과학교사, 고고학 교수, 동방학자 등 사회에서 존경받는 위치에 있는 분들이 각자의 직업적 전문성을 활용하여 에덴의 위치를 추적하였다. 기독교인이든 비기독교인이든 편견을 버린 채 이들이 알고자 하는 바가 무엇이었는지 찾아가는 과정은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c******d 2013.10.1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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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 추적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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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창세기 2장 10절에서 14절에 기록된 말씀을 중심으로 에덴동산을 찾으려는 시도가 지금도 열심이다. 지금까지 에덴동산이 있다는 곳은 북극을 포함하여 아프리카의 잠비아에 있는 17 곳에 이르고, 이 책에서는 그 추적자들 중 14명의 이론들을 정리해 놓았다.   사실, 성경의 기록들이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는 진실한 기록이라는 전제하에서 당연히 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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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창세기 210절에서 14절에 기록된 말씀을 중심으로 에덴동산을 찾으려는 시도가 지금도 열심이다.

지금까지 에덴동산이 있다는 곳은 북극을 포함하여 아프리카의 잠비아에 있는 17 곳에 이르고, 이 책에서는 그 추적자들 중 14명의 이론들을 정리해 놓았다.

 

사실, 성경의 기록들이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는 진실한 기록이라는 전제하에서 당연히 인류의 시원인 무대인 에덴의 시튜에이션은 중요한 테마임이 분명하다.

과학의 발달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중요한 사건들이 하나씩 사실로 확인되는 것을 보면, 아마 에덴의 장소도 머지않아 확인되리라는 기대를 갖는 것도 무리한 시도가 아닌 듯하다.

 

예를 들어, 여호수아서에서 아말렉과 전쟁 중에 거의 하루 동안 해가 지지 않고 멈춘 기록이라거나 노아의 홍수 사건 등이 속속 발견되고 있음이 이를 증명한다.

이 책에 소개된 14명은 직업도 출신도 태어난 국가나 시대도 다 제각각이다.

단지, 에덴동산을 추적한다는 목적과 그 열정은 다 동일하다고 하겠다.

 

이 책을 쓴 저자가 에덴에 대하여 탐구욕이 발동한 것은 아버지로부터 그의 할아버지가 에덴동산을 찾으려 했다는 말을 듣고부터 시작되었다.

그 할아버지는 콜롬비아 대학교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유명한 알레르기 학자였다. 그리고, 그 증조할아버지도 같은 대학교의 교수를 지낸 분이셨다.

 

어쨋거나 이 선조들은 하나님을 믿는 분들이었고, 비행기를 타고 에덴동산을 추적하려는 구체적인 실행계획까지 세웠음을 알게 되었다.

그분들이 에덴을 찾겠다는 생각을 한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으리라는 판단에서 관련 자료를 수집하게 되었고, 해당 자료를 작성한 14명이 주장한 가설을 바탕으로 이 책을 만든 것이다.

 

14명의 추적자들은 크게 두 부류로 분류할 수 있다.

그 한 부류는 에덴동산을 중심으로 흘렀던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을 중심으로 삼는 사람들과 그 강과는 무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로 나누인다.

 

또한 이들 중에는 에덴은 이 지구상에 없다고 주장하는 학자까지 있었다.

프리드리히 델리치 같은 학자는 극단적으로 성경을 부정하고 에덴을 주장하기도 했으며, 이 학자의 아버지인 프란츠 델리치는 에덴은 지구에서는 찾을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던 것이다.

 

감리교 목사인 윌리엄 페어필드 워런 목사같은 사람은 성서 밖에 있는 신학 증거를 바탕으로 에덴은 북극에 있다고 주장했다.

보스턴 대학교의 학장이기도 한 그는 수 백 만 년 전에는 지구가 굉장히 따뜻했다는 가설에 근거해서 이런 주장을 했던 것인데, 이 주장은 황당하게 들린다.

그 당시 과학 형편으로는 북극은 탐험 불가능 지대임을 감안한 지극히 계산된 주장으로 보인다.

 

웨스트라는 미국 목사는 원주민의 자긍심 고취 등 인간적인 관점에서 미국의 오하이오 주에 에덴동산이 있었다고 교묘히 활용하기도 하였다.

헨리 세이스 같은 교수는 프리드리히 델리치와 일치하거나 서로 다른 주장을 펴기도 하면서 에디누를 에덴이라고 주장한다.

 

, 의사인 새들러부부는 30년 동안 400명과 함께 [유란시아서]를 만들고, 지중해 동부 해안에 에덴동산의 후보지로 선정했는데, 화산활동으로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모르몬교는 에덴은 미국 미주리 인디펜던스라고 주장하는 등 열 네 사람들은 각각 생각만큼 가설도, 장소도 다 다르다.

 

에덴에 대하여 많은 장소가 거론되어 있는 것은 결국 한 군데도 정확하지 않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한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하늘나라의 존재에 대하여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결국 에덴은 우리의 마음 곳에 있음을 확신한다.

 

 

h*******0 2013.09.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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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 추적자들-이성적인 바보들의 어리석은 에덴 추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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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 추적자들         난 한 번도 에덴이 실제로 존재하는 곳이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굳이 따지면 진화론자이며, 신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것도 믿지 않는다. 어쩌면 지금 인류가 일으킨 문명전에 먼 고대에 우리보다 더 번성한 문명이 있었을 지도 모르며, 혹은 상상력을 발휘하여 우리가 누리는 이 문명은 외계인이 전해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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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 추적자들

 

 

 

 

난 한 번도 에덴이 실제로 존재하는 곳이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굳이 따지면 진화론자이며, 신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것도 믿지 않는다. 어쩌면 지금 인류가 일으킨 문명전에 먼 고대에 우리보다 더 번성한 문명이 있었을 지도 모르며, 혹은 상상력을 발휘하여 우리가 누리는 이 문명은 외계인이 전해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하물며 에덴이야.

 

종교인이 시각은 어떨까. 그들에게 에덴이란 존재는 어떠한 곳일까. 신이 만든 동산에 직접 빚어 만든 남자와 그의 갈빗대를 뽑아 만든 여자란 존재. 그들이 살아가던 이상향, 그 너머 어떠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무엇인가가 있을까.

 

이 책에 나오는 많은 등장인물들에게 에덴은 어찌 보면 그들이 찾고자 한 이상향만은 아닌 것 같다. 어쩌면 그들은 에덴이 목적이 아니라 어떤 목적을 위해 '에덴'을 이용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자신의 지식, 명성, 지위를 이용하여 더욱 유명해 지거나, 스스로 돋보이기 위하여, 때로는 뻔뻔한 거짓말을 늘어놓고, 부풀리고 논쟁하고 싸우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때로는 싸움, 정쟁의 도구로 쓰기도 하고, 자신이 믿는 바를 억지로 주장하기 위한 근거로 쓰기도 하였다. 도저히 과학자로 보기 힘들만큼 비과학적인 근거를 대고, 때로는 그 근거를 진심으로 믿어버리기도 하는 등 정말 이해하기 어려울 듯 한 행동을 보였던 사람도 있었다.

 

책을 읽어가면서 에덴보다는 그 에덴을 추적한 사람자체에 집중이 되기도 하고, 그가 활동했던 시대상, 에덴 논쟁으로 그들이 얻고자 했던 것에 더 주목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나도 그 비슷한 상황 속에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바로 논쟁의 '주제' 보다 그런 논쟁을 벌이는 사람이 더 주목을 받게 되는 현상. 변희재, 진중권, 낸시랭의 트위터 설전 말이다. 어느 순간 논점은 사라져 버리고, 논쟁하는 사람들만이 남아 그 사건과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인데도 그 사건을 언급하는 것만으로 순식간에 이슈의 중심이 되어 버리는.

 

에덴의 느낌이 바로 그러했다. 처음에는 그들에게 '에덴'이 중요했는지 모르겠다. 그저 에덴을 찾는 가족 때문에, 외세의 위협에 빠진 자신의 조국을 구하기 위해, 새로이 대두되는 과학에게 신학의 힘을 내 주지 않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 보이기 위해, 처음에는 어떤 간절함에서 시작한 에덴 찾기는 어느 순간 그 가치를 잃어버리고, 그들의 가슴에서 떠나가고, 그 색이 변질 되었다.

 

 

 

책을 읽은 후 나의 느낌은 근대사의 한 귀퉁이를 둘러본 느낌이다. 그리고 그 느낌은 그리 상쾌하지 만은 않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류, 눈부신 업적을 쌓아 올렸다는 인류,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지구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권리를 지닌, 늘 과학적이고 진취적이며 합리적이었다는 그 인류가 걸어온 길은 어쩌면 모순과 실수, 아집과 이기심의 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어쩌면 과거에 국한된 모습이 아닐지도 모른다.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큰 의미가 없는 것을 두고, 자신이 조금 더 많이 가지기 위해, 자신이 가진 부족함을 인정하기 싫어서, 변화하는 세상에 뒷방 늙은이로 밀리지 않기 위해 늘 싸우고 악을 쓰며 살아가지 않는지.

 

이 책은 '에덴' 이라 표현되는 자신만의 '이상향'을 찾아 어리석은 모험을 하는 인간의 바보 같은 역사이며, 현재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다. 내가 찾아 가는 이길, 내가 살아가는 이유, 내가 꾸는 꿈이 과연 무엇을, 어디를 향해 있는 것인지를 늘 살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느 순간 그 목표는 잃어버리고 그저 어느 곳을 찾아 방황하는 '나' 만이 주인공이 되어, 눈과 귀를 닫고 아집과 이기심에 똘똘 뭉친 사람이 되어버리지 않도록.

 

 

r********a 2013.10.1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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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 추적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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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에덴은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에덴은 정말 어디에 있는 것일까?   어떤 결론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그 결론에 동조를 한다면, 그 많은 사람들 중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고 하는 지식인들이 동조를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별 의심없이 그 결론을 받아드릴 것이다. 그것이 허무맹랑한 거짓일지라도... 여러분은 에덴동산이 있다고 믿는가? 나는 성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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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에덴은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에덴은 정말 어디에 있는 것일까?

 

어떤 결론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그 결론에 동조를 한다면, 그 많은 사람들 중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고 하는 지식인들이 동조를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별 의심없이 그 결론을 받아드릴 것이다. 그것이 허무맹랑한 거짓일지라도...

여러분은 에덴동산이 있다고 믿는가? 나는 성서에서나 볼 수 있는 에덴동산을 믿지 않는다. 「창세기」편에 묘사된 대로 싸움이 없고, 평화로우며, 온갖 종류의 과일과 곡식이 풍성하여 배고픔이 없는 땅으로 묘사된 에덴동산, 즉 유토피아 같은 세상을 믿지 않는 것이다. 서로 할퀴면서 자신에게 이로운 것만 취하려고 하는 지금의 세상에서 에덴동산은 꿈속에서나 볼 수 있는 신세계인 것이다.

 

에덴을 추적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와는 반대로 이 세상 어딘가에 에덴동산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일게다.

그런데 에덴동산을 추적하는 사람들의 이력들이 대단히 흥미롭다. 목사에서부터 동방학자, 옥스퍼드 교수, 건축기사, 법률가, 과학교사, 고고학 교수 등 이 시대를 이끌어가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지성인들이 에덴동산을 추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어떤 이유로 에덴을 추적하고 있는 것일까?

 

감리교 목사이자 보스턴대학교의 학장으로 재직했던 워런에게 ‘북극’이라는 장소는 과거에 지구에서 생물이 가장 살기 좋은 곳이자 구원의 문제(북극은 멀리 떨어져 있기에 구원이 쉽지 않다)에 있어서 가장 합당한 장소가 ‘북극’이라는 것을 내세워 북극이 곧 에덴동산이었음을 말하고 있고, 역사와 성서를 결합해 에덴동산을 증명하려 한 세이스 교수와 델리치 교수를 통해선 온갖 논쟁과 비난을 받으면서도 서로의 주장을 굽히지 않음으로 인해 학문적인 갈등이 학자들의 영역을 떠나 전쟁터(제1차 세계대전)에서까지 갑론을박했다는 것을 읽으면서 씁쓸함을 감추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거기에 실제 측량을 통해 두 개의 에덴이 있다는 것을 밝혀낸 윌콕스와 페르시아만 바다 밑에서 에덴을 발견한 고고학 교수까지......

 

에덴을 찾는 사람들은, 아주 조용하게, 이제 막 창세기에 나오는 네 강의 이름을 읽었고, 놀랍게도 에덴의 위치를 찾았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 누구도 비손 강과 기혼 강을 찾지 못했다. 에덴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고 해도 저마다 에덴을 찾아야 하는 절박한 이유가 있었다. 에덴을 찾는 사람은 적어도 두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에덴은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에덴은 무엇인가?  (본문 20쪽 中에서)

 

성서에서는 비손, 기혼,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이 네강만 찾으면 낙원, 그러니깐 에덴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실제로도 성서에 이 네 강의 위치가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기에 에덴을 찾아 나선 사람도 많다고 한다. 이 책에 나온 14명의 에덴 추적자들도 모두 자신만의 가설과 함께 에덴을 찾아나선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 나온 14명 모두 비손과 기혼 강을 찾지 못한 채 자신이 상상하고 연구한 가설을 통해 에덴을 찾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이 책의 추적자들이 발견한 에덴은 정말 창세기에서 설명했던 에덴이 맞는 것일까? 은과 금이 나고, 향료와 보석이 나는 상상의 땅 하월라와 구스를 발견한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 책을 읽은 여러분이 해주었으면 한다. 정말 이 세상에 에덴이 존재하는지, 그 어덴은 무엇을 하는 곳인지......



n*******o 2013.10.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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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인문 교양] 에덴 추적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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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 추적자들] , 할아버지가 예전에 성서에 존재 했다라는 [ 에덴]을 찾아 나선적이 있다는 아버지의 말에 영감을받는 작가 -브룩 윌렌스키 랜포트-는  어느날 갑자기 도서관으로 찾아가 진화론이 대두 되엇던 18-19세기 기록을 토대로 에덴의 기원을 찾아 나섰던 ? 용감한 사람등의 기록을 하나 하나 찾아 가길 시작 하였다....-라고 시작되는 이책은  픽션인지 논픽션이지 약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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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 추적자들] , 할아버지가 예전에 성서에 존재 했다라는 [ 에덴]을 찾아 나선적이 있다는 아버지의 말에 영감을받는 작가

-브룩 윌렌스키 랜포트-는  어느날 갑자기 도서관으로 찾아가 진화론이 대두 되엇던 18-19세기 기록을 토대로 에덴의 기원을 찾아 나섰던 ? 용감한 사람등의 기록을 하나 하나 찾아 가길 시작 하였다....-라고 시작되는 이책은  픽션인지 논픽션이지 약간의 혼동이 오기까지 한다. 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그러한 기록상의 지명을 찾아 나섰다라는 근거 역사론적입장에서 보자면 논픽션적인 이야기 이지만 어디까지가  각각의 사람들의 상상의 산물인지는 픽션적인 스토리에 맞춰 재구성 해야만 할지도 모르겠다.

 

우선 이책을 읽으면서 처음 드는 생각은 , 아하 ,, 지구상에는 이런한 호기심으로 혹은 지적 충만함으로 직접 진실을 밝히려는 시도를 하려는 사람들이 꽤나 많았다는 것에 놀라움을 표한다..

 

우선 에덴을 찾는 키워드는 무엇이었을까가 궁금 해진다 당연히 [ 창세기] 에 나오는 6일동안 세상을 만드는 하나님이 나오고

마지막날 인간을 만들어 4개의 강이 흐르는 지류에 무화과 나무로 뒤덮인 그곳은 지상 낙원이었고 아담과 이브의 인류의 시초는 뱀의 사악한 악마적 꽴에 빠져서 [ 선악과]를 따먹으로면  [에덴]으로 부터 추방 당하고 난 이후로 거의 영원 히 그 곳에는 다시 돌아갈 일이 없는 미지의 장소가 되어 버렸고 ,, 이후카인과 아벨의 반목과  세기말의 위험에서 노아의 방주를 타고 떠난 여정은 신비롭기 까지 하다.. 

 

이러한 몇가지의 근거만으로 길을 찾아 나선 수많은 에던 추적자들은 지표상 곳곳에 그들만의 깃발을 내리기 시작 하였는데

주된 위치는 , 북극을 위시해서 , 지중해의 어느 섬, 이라크 , 터키 혹은 아르매니아 ( 이지역은 성서에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가 흐르는 강의 지류라는 기원을 찾아 올라간 지역이라 추정 된다. ) 세이젤 , 플로리다, 켈리포니아, 오하이오 , 스웨덴, 페르시아만, 이집트, 등 몽골과 중국 대룩에도 에덴의 기원이 있었다는 ? 용감한 학자도 있었다...

 

19세기 현존 하는 [ 과학과 ] [ 근거의 믿음] 만 가지고 풀기에는 어려운 난제들이  워낙 많아서 때때로 성서 이야기는 왜곡 되기도 하고 편향 된 해석을 내리는 집단도 생겨 나기 시작 한다... 종교적인 문제여서 뭐라고 말할수 없겠지만 서로가 서로에세

이단과 메시아의 차이를 구분 하려는 노력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는것만은 분명 한듯 하다... 칼뱅교든 , 미국 시골마을로 숨어든 [ 몰몬교] 등 ,  태생은 한 뿌리였는지는 모르나 인간의 해석의 다름으로 인해서 나름대로의 가지치기가 생겨난 점은 어찌 할수 밖에 없을 지도 모르겠다..

 

다시 책 내용으로 돌아 가지면 , 결국 수많은 시도를 행 했던 사람들은 이제 [ 무덤가] 에 저마다 조용한 비문을 가진채 잠들어 있고 그들의 흔적 만이 도서관 한 귀퉁이에서 전설로만 맴돌던 이야기를  간혹 전하기도 한다라는 점이다..

 

작가는 공지를 한다.. [ 이제라도 진정한 에덴을 ] 발견한 사람에게는 자신에게 알려 달라고 , 역사와 과학의 이름으로 그 간극을 매꾸고 성서의 기록을 정확히 부합 할 수 있는 그 땅 ,, 어쩌면 , 대 홍수 시기에 물에 잠겨 버려 찾을 수 없는 아틀란티스가

기록에서 말하는 [ 그땅 ] 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 인디에나존스의 [ 성배를 찾아서 ] 처럼 , 미지의 세계에 아직도 남아있는 궁극의 지리적 위치는 최 첨단 NASA 의  궤도 위성에서 아무리 찍어 지구로 전송을 해 주어도 표피 적인 흔적만 찾아 넬 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쩌면 , 신께서 , 아니 하나님께서 인간이 그토록 찾아 해매에는 [ 에덴] 이라는 곳은 다시는 결코 돌아갈수 없는 땅이기에 우리가 아는 물리적인 지구상의 그 어느곳에서도 발견의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만들어 버리지 않았을까라는  상상력을 동원해 보기도 한다..

 

하지만 , [ 오즈의 마법사 ] 의 마지막 장면 처럼 , 절대 대황을 찾아 나선 일행이 뚜겅을 열어본 사자상의 진실은 다른 면이었다면 너무나도 실망이 크지 않을까,    인간의 믿음은 영적인 존재를 위해서 필수 불가결한 것이라고 전제 한다면 , 우리가 찾아 나서고자 했던 , 혹은 미래에도 인공위성으로라도 찾고자 했던 그곳은 영원히 찾을 수 있는 지리적인 [ 지명] 이 아닐수 도 있다라는 다른 가설을 제기하는 사람들의 말에도 일리는 있다라는 생각을 해보는 < 책력거99 > 였습니다.

 

 

에필로그; 유년기의 사고로는 달표면에선 분명히 토끼가 살고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가설이 어른이 되어서 깨어진것에는 유감이지만 많은 시간동안 그러한 상상력으로 유년기의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 날아 올랐던 기억은 누구라도 가지고 있는 것이

인간의 조건이라면 , 인류가 바라고 희망적이라고 바라보는 [ 믿음] 또한 언제가는 깨어질 수도 있는 사실 일지도 모르지만 [ 현세]를 살아 나가고 있는 수억명의  [영혼의 안식처] 역할을 하고  그로인한 위대한 동기부여를 일으켜 낸 다라는 측면은  그 것의  진위 여부를 떠나서 [ 믿음] 자체로서 성립하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영적 채널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마음이 움직 이는것 또한 생각의 판단이나 믿음이 앞서서 신뢰한다는 신호를 보내야만 움직이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고민을 해봅니다..

 

 


 

 

 

 

 

 

 

 


 

 

r******9 2013.10.1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