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어 원서 30권 읽기를 계획하고 처음으로 읽은 단행본이 세오 마이코의 『도서관의 카미사마』다. 대략의 내용은 문예반을 만들어 활동하면서 거의 폐쇄된 학교도서관을 누구나 오고 싶은 곳으로 만든 키요와 가키우치 군이 엮어가는 따뜻한 이야기다. 좋은 기억으로 남았던 세오 마이코의 이 작품을 만나게 되었으니 어찌 반갑지 않으랴.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만큼 재미와 감동을 주었다.
표지에 ’처음 만나는‘ 아버지와 아들의 ’부자 재탄생‘ 프로젝트라는 부제를 보고 과연 일본스러운 소재와 캐릭터 설정에 재미는 보장하겠구나, 호기심을 안고 읽어나갔다. 도입부부터 코믹한 상황이 연출된다. 어느 날, 히키코모리 작가 가가노에게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스물다섯 살 아들 도모가 불쑥 찾아온다. 유일한 연결고리는 다달이 양육비로 보낸 10만 엔과 사진 한 장이 전부였다.
“친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하려니 이상하네. 그래도 처음 만났으니까 괜찮겠지. 뭐, 내 이름은 알고 있을 테지만 나가하라 도모라고 해. 만나서 반가워.”(P7)
첫 만남에서 생전 처음 보는 아버지에게 도모는 이런 말을 건넨다. 예닐곱 살 어린 아이도 아니고 스물다섯 살 청년의 넉살이 보통이 아니다. 시원하고 거침없이 늘어놓는 반말에 아무런 쑥스러움도 없고 원래 알던 사이처럼 느껴진다. 오히려 놀라고 당황스러운 것은 가가노다. 원래 천성이 밝게 태어난 건지 너무 천연덕스러운 태도에 깔깔 웃게 된다. 호칭은 끝까지 ’아저씨‘다. 사 가지고 온 간식을 내놓으며 함께 먹자, 실제로 아들을 보니 어떤 생각이 드셔? 하고 물어보자, 가가노는 어쩔 줄 모른다. 어떻게 이렇게 구김살이 없을까. 복잡한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데, 당분간 여기서 살게 해달라는 것이 아닌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얼마 뒤에는 새로 생긴 점포로 가게 될 테니 그때까지만 있게 해달란다.
대학 4학년 때 문학상에 응모했다가 덜컥 대상을 받게 되고 출판사에서 계속 새 작품을 요청해서 받아주다 보니 어느새 작가가 되었다. 소설가가 될 생각은 없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하다가 유일한 취미가 글쓰기였는데 직업이 된 것이다. 그러다가 학창시절 친구가 술자리에 나오라는 권유를 받고 나갔다가 미쓰키를 만나게 되고... 석달 후 미쓰키가 찾아와서 임신을 했고 아이는 낳을 거라고 한다. 이제 내 인생 끝났구나, 전혀 마음이 없는데 결혼을 해야 하나, 뒤숭숭한 마음을 읽었는지 미쓰키도 매달리지도 않고 쿨하다. 둘이 합의하에 ’아기를 낳아 미쓰키가 기르고 나는 양육비를 댄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하나 있는 친구한테 ’쓰레기 같은 놈‘이라는 소리도 들었다. 그렇게 양육비를 대고 자라나는 도모의 얼굴을 사진으로 건네받으며 20년을 계속하다가 5년이 더 지나고 도모가 난데없이 찾아온 것이다.
그래서 25년 만에 만난 아버지와 아들의 동거가 시작된다. 아무도 안 만나고 소설 쓰는데 정신이 팔려있다 보니 히키코모리가 되어있었다. 완벽하게 혼자 살다가 누군가가 있다는 건 분명 신경이 쓰일 것이다. 도모는 원래 천성적으로 서글서글한 성격인 것 같다. 말도 잘한다. 아무래도 아비인 나를 닮은 것 같지는 않다. 내 소설을 읽으면서 이건 어떤 의미냐고 물으며 말을 건다. 어렸을 때 모습을 사진으로만 보았고 목소리를 들어본 적도, 안아 본적도 없다. 하지만 분명히 내 아들이다. 아기 때 사진의 자신을 쏙 빼닮았다. 그렇다고 해도 갑자기 다 큰 어른이 되어 나타난 아들이라는 존재가 애틋한 정이 솟을 리 없다. 그런데도 둘은 마주하며 대화를 하고 먹는 시간을 보내면서 조금씩 익숙해진다. 물론 가가노는 아직도 당황할 때가 많다. 자기보다 어린데도 세상 물정을 더 잘 알고 청산유수인 도모가 신기하기만 하다. 더구나 독심술을 배웠는지 도모는 ’아저씨‘의 마음속에 맴도는 말까지 간파하여 말해주곤 해서 가가노를 놀라게 한다. 그래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는 건가. 얘기 도중 미쓰키 얘기가 나와서 ’기가 센‘ 여자라고 하자, 도모는 결코 기가 센 부류는 아니라고, 몇 번 안 만났으면서 기가 센지 어떻게 아느냐고 따지자 당황한다.
어느 날은 편의점 점장이 찾아오더니 도모에게 전해주라고 약을 가져온다. 감기에 걸려서 3일째 못 나오고 있다고. 그런데 가가노는 그것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집이 넓기도 하지만 2층의 방 하나를 쓰고 있으려니 하고 올라가 본 적이 없었다. 일에 파묻히기도 했지만, 누구와 함께 살아본 적이 없고 사회성 제로인 가가노는 아들이 왔다고 해서 단번에 달라지지는 않았다. 이렇게 둔감한 내가 소설을 쓰고 있다니 우습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어 도모에게 올라간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인사를 나눈 적이 없다. 도모는 자치회비 1년치를 내고 가입했으니 주민축제가 있으면 참여하자고 한다. 보통 70이 넘는 노인분들이 활동하는 걸 보고 가가노는 놀란다. 젊은 사람이 나와주어서 고맙다고 하자, 젊지 않습니다. 하다가 멀쓱해진다. 도모 덕분에 조금씩 행동반경이 넓어진다.
그리고 이제와서 도모가 왜 나를 찾아왔을까?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 역시 소설가의 촉수가 있었나 보다. 도모는 이런 상황이 소설이라면 어떨 것 같느냐며 대화를 이어간다. 그러다가 결국엔 죽음으로 귀결되는 캐릭터가 패턴화된 최근의 몇 작품을 보고 위태로움을 느껴서, 혹시 ’아저씨‘가 죽으려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어서 미쓰키가 가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한번도 연락을 주고받은 적이 없는 아들이 그런 사소한 일로 만나러 찾아오다니 나는 도모가 그런 상황에 처했다면 도모의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을까, 자문하며 자신의 어리석었던 지난날을 깨닫기 시작한다.
그리고 문득 부모님을 뵙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부모님을 못 본 지 28년이 지났다. 내 얼굴을 알아보시기나 할까, 역정을 내시지 않을까. 초인종을 누르고 문앞에 선 가가노는 불안했지만, 부모님은 금세 알아보신다. 그런데 너무 친절하게 대해주시는 부모님을 뵙고 어떻게 이토록 아무렇지도 않게 대해주는 걸까 당황스럽다. 그리고 놀라운 이야기들을 하나씩 듣게 된다. 여러 개의 반전으로 독자를 놀랍게 한다. 재미있게 읽을 독자를 위해 숨기고 싶지만 딱 한가지만 언급하고 싶다. ’예쁘기만 하고 머리가 텅빈 여자‘로 생각했던 미쓰키는 가가노의 열혈 팬이었다. 가가노가 데뷔할 때부터 팬이라서, 너의 소설을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더라는 말을 어머니로부터 듣는다. 어머니가 쏟아내는 얘기 하나하나가 모두 처음 듣는 이야기다. 아무것도 모르고 알려고 하지 않았던 자신이 끔찍하다. “네 최고 걸작은 네 자식이야.”라고 말하는 어머니의 말이 부끄러울 뿐이다.
이후의 이야기는 급반전을 이루며 행복한 장면들을 보여준다. 25년 동안 쌓인 이야기가 하루 이틀 밤에 끝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가족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는 코믹하고 쿨한 소설이다. 결국 히키코모리였던 가가노를 다시 가족과 연결시켜 준 것은 미쓰키와 도모였다. 아이를 떠맡았다고 해서 원망을 품거나 신파조로 흐르지 않았다. 어쩌면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을 인정해주려는 미쓰키의 슬기로운 지혜와 넉넉한 마음 덕분이 아니었을까. 역자의 말에서 ’결손 가정‘이라는 폭력적 용어가 쓰이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도 인상 깊었다. 겉으로 보이는 구조적인 결손만이 아니라 ’심리적 결손‘까지 포함한다면 이 세상에 결손 상태가 아닌 가족은 얼마나 되는지 묻는다. 이제 세오 마이코의 작품을 두 권 읽었지만, 따뜻하고 희망적인 그리고 재미와 감동까지 보장하는 작가가 되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
아버지와 딸, 아버지와 아들. 참 이상하다. 아빠인데, 가까이하기 너무 먼 당신인 경우가 너무 많다. 나 역시도 아빠가 마냥 편하지 않다. 아빠지만 가깝지 않고, 둘이 있을 때 별로 얘기할 것도 없고. 서먹해서 그 자리를 피하고 싶은. 나는 살가운 성격이 아니라서 더 그럴지도 모른다. 엄마와 아빠. 이렇게 3자가 함께 있으면 모를까 대화다운 대화를 할 수 없는. 하지만 나이 먹으니 아빠의 모습에서 남편의 모습이, 아들의 모습이 보이는 건 너무 앞서간 생각일까? 아빠라는 이름의 그 남자. 그 남자도 참 외로울 수 있겠구나 하는 이해 같은 걸 하게 되는 건
소설은 나름(?) 인기가 있는 히키코모리 작가 가가노에게 어느 날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스물다섯 아들 도모가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초면의 아들은 아버지에게 아저씨라 부르며 붙임성 있게 대한다. 아무렇지 않게 반말하는 아들과 이 상황이 난처한 아버지. 가가노는 양육비 10만 엔을 다달이 붙였고, 아이 엄마는 그때마다 아들 사진을 한 장 보낸다. 실제로 본 적 없는 아들과 함께 생활하게 된 가가노는 모든 상황이 당황스럽다. 부성애도 사회성도 제로인 가가노는 25년 단절되었던 아버지라는 역할에도 서툴다. 그리고 조금씩 서로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한다. 세상과 단절한 채 살아가는 아버지와 아버지가 사는 동네의 어른들과 넉살 좋게 어울리는 아들 도모. 두 사람은 진짜 가족이 될 수 있을까
연일 뉴스를 장식하는 동물보다 못한 부모들. 자신의 자식이지만 굶어 죽게 놔두기도 하고, 때려서 죽이기도 한다. 어떻게 사람이 사람한테 그것도 자신의 자식에게 그럴 수 있는지 그런 사람의 면상이 보고 싶다. 자신의 자식에게는 함부로 해도 어디 가서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는 평범한 우리네 이웃의 모습을 한 사람일 수도 있으니까. 나는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시끄럽고 지저분하고 정신없는 아이들. 나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아이가 옆에 앉으면 일어나 다른 자리로 가는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았을 때 죽을 만큼 힘들었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아이를 키운다는 걸, 아이를 위해 나를 희생하는 걸 해 본 적 없는 나는 모든 게 난감했고 두려웠고 무서웠다. 나 자신도 어떻게 못 하는데, 이런 내가 어떻게 아이를 키울 수 있는지. 이런 내가 아이를 키워도 되는지. 그냥 다 죽도록 힘들었지만,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부모들이 아이를 보며 내 인생 최고 걸작은 ‘아이’라는 말을 왜 하는지.
작가인 가가노는 인생 최고의 걸작을 쓰지는 못했다. 적당히 팔리는 작가지만 인생 작이라 할 만한 글을 쓰지는 못했다. 그런 가가노에게 아들 도모는 인생 최고의 걸작이었을 것이다. 아들 나이 스물다섯. 양육비를 주는 것으로 아빠의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했을지 모를 가가노에게 나타난 아이. 모든 아들이 도모 같지는 않을 테지만, 아버지 가가노와 도모가 가까워지는 모습은 책을 읽는 내내 미소짓게 만든다. 그리고 내 남편과 울 아이들을 생각한다. 남편은 참 좋은 아빠다. 아이들도 그걸 안다는 게 고맙고, 감사하다. 비록 남자들끼리는 서먹할지 몰라도. 나에게는 늘 아빠는 참 좋은 사람이라는 걸, 좋은 아빠라는 걸 아이들이 말해주니까. 4인 가족이라는 테두리. 앞으로 우리가 4인 가족이라는 테두리를 얼마나 유지할지 모르겠다. 아이들이 독립하거나 결혼하게 되면 지금처럼 끈끈한 그 무엇은 사라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족이란 서로에게 건강한 가족의 의미를 알게 하는 테두리는 아닐까 생각한다. 예전과는 다른 가족의 의미들. 같이 있다고, 같이 산다고 가족이 끈끈해지는 것도 아니고, 끈끈하다고 해서 그 가족이 화목한 것도 아니다. 가족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는 책이다. |
|
도 서 : 걸작은 아직 /저 자: 세오 마이코 /출판사:에디터
25년 만의 부장 상봉이라는 소재는 뭔가 어색한 두 사람이 가족으로 거듭나는(?) 뭐 이런 내용으로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것..오히려, 가족의 의미를 넘어 결손 가정이라는 점을 무겁지 않게 소개하고 있다. 더 나아가 타인과 관계를 거의 하지 않는 주인공을 내세우는 데 우울증 까지는 아니어도 그저 어릴 적 부터 대인관계가 힘들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딱히 살아가는 데 힘든 게 있지도 않다 그저, 타인에게 주는 상처나 또는 자신이 받을 불편한 감정이 오히려 없는 게 더 편하다고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소설가라는 직업도 우연히 대학 시절 쓴 글이 상을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현재 까지 이어져 왔을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25년 동안 보지도 통화하지도 못한 아들이 떡~하니 앞에 나타났다. 그 아들을 보고 놀라긴 커녕 갑자기 왜 찾아왔는지 궁금할 뿐이라는 점. 이는 대학 시절 우연히 만났던 미쓰키 여성과 하룻밤을 보내면서 덜컥 생긴 아이였다. 하지만 결혼이 아닌 각자의 삶을 살면서 마사키치는 매달 육아비로 돈을 보내라고 미쓰키가 먼저 제안을 한 것이다. 그는 과거나 지금이나 타인이 자신의 공간에 들어오는 게 어색해서 대처하는 방법을 모르는 인물로 미쓰키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매달 아들이 성장하는 사진을 받으면서 커 가는 모습을 간접적으로 알아갔다. 그런데, 느닷없이 나타났으니...무슨 일인가 싶겠지...
넉살스럽게 찾아온 아들 도모가 집 근처 편의점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이 집과 가까워서 찾아왔다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라는 호칭 대신 아저씨라고 부른다는 것. 그렇다고 불만이 있는 것도 아니다. 호칭만 다를뿐 너무 자연스럽게 그의 삶을 파고든다. 어쩌다가 조용한 곳을 찾아가 현재 사는 곳까지 이사온 그는 도모로 인해 마을 자치회를 알게 되고 이웃인 모리카와, 그의 부인 그리고 편의점 사장과도 말을 건네게 되는데, 사실 타인과 거의 접촉을 하지 않고 살아도 불편하지 않았는 데 도모로 인해 조금씩 달라지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음식을 같이 먹으려고 해도 냄비가 없고, 넓은 집에 2층에 도모가 잠깐 머물렀어도 어느 방에 있는지 몰랐던 . 그리고 이제 도모는 다른 편의점으로 근무를 해야하기에 잠깐 머물렀던 이곳을 떠나야 하는 데 그 순간 마사키치는 그냥 보내서는 안된다는 마음을 강하게 느낀다.
뭔가 애정을 보여주는 장면도 없다. 그저, 일상을 보여주는 데 바로 그런 '일상'이 주인공에겐 없었다는 사실이다. 소설가가 되겠다고 했을 때 부모와 사이가 틀어져 무려 20년 동안 소식도 끊고 살았던 사람이니, 타인과는 오죽할까. 하여튼, 이런 생활을 하던 그에게 도모의 존재는 기존의 삶을 흔들어 놓는 존재였고, 왜 자신을 찾아오게 되었는지 그 이유가 밝혀지는 데 전혀 생각지 못한 부분이었다. 또한, 도모의 친모 즉, 미쓰키 역시 보통 여성이 아님을 새삼 알게 된다. 오히려, 자신과 도모는 마사키치를 걱정하고 있었는데 이를 보면 도모의 친모 이전에 그녀는 마사키치의 팬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드러나면서 25년 동안 어떻게 살아왔고, 그 조차 연락하지 않던 부모와 인연을 맺어왔었다. 분명 소설은 부자 상봉을 예상하게 만들었지만 이건 부차원적이었고, 중요한 건 한 사람의 변화였다.
책을 읽다보면 타인과의 관계에선 좋은 것만 있지 않으니 한편으론 주인공의 행동에 공감이 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다른 이가 봤을 때 그 삶은 어땠을까? 아마 자신은 자각하지는 못하겠지만 더 고립된 시간을 가지게 됨으로써 인생이 망쳐졌을 것이다. 으흠, 도서를 다 읽고서 왠지 어둡다라는 생각이 들었는 데 이것을 또 그렇게만 표현하지 않고 작은 희망을 심어주었다. 여기서 만약 현실적이지 못한 갑작스러운 행복이 등장했다면 어색했을 텐데 독자가 이해 할 수 있는 감정선에서 빛을 보여주니 더 뇌리에 남은 소설이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
<걸작은 아직>이라는 제목이라 뭔가 작품을 쓰는 작가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한 책이었다. 일본소설을 한참 많이 읽다가 요즘은 드문드문 읽는데 늘 느끼는 게 재미있게 읽고 나서 적당한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가성비가 좋은 책"이지만 마음에 오래 남지는 않는 책이 많다는 것이었다. 이번 책은 어떨까, 약간의 기대를 갖고 읽었다.
시작은 너무 과감한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단도직입적이다. 갑자기 찾아온 아들. 그것도 한번도 마주친 적도 없는 아들이 자기 집으로 찾아와 "당분간 여기서 지내겠다"고 폭탄선언을 하는데서 시작한다. 뭐지, 이 무리수는. 그럭저럭 이십년간 작가생활을 하고 있는 가가노는 말이 좋아 작가지 히키코모리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가족과의 관계도 끊고 살아갈 정도로 혼자 살고 있는 그에게 아들이 생긴 것은 어쩌면 하루를 같이 보낸 미쓰키의 용기 때문이었을지도. 미쓰키는 혼자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가가노에게 매월 10만엔을 요구했다. 10만엔을 보내주면 도모의 사진을 보내주는 것으로 그들의 인연은 20년 동안 이어졌고 도모가 성인이 되면서 그나마도 끊어진지 5년. 도모의 나이 25세가 되어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이 기이한 관계에 이어 도모의 행동도 이상하기 그지없다. 갑자기 찾아와 가가노의 일상에 이것저것 참견하기 시작하고 이웃도 없이 살아왔던 아버지에게 이웃과의 관계, 타인에의 관심을 유도하게 한다. 집 근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맛있는 음식을 사다주기도 하고 함께 외출도 하며 "아버지의 사회화"를 이끌어주는 도모. 이쯤 되면 도모가 진짜 아들이 맞나 싶은 의문도 들고, 어쩌면 귀신인건가? 하는 장르전환적 발상을 하게되기도 한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러 도모가 있는 생활이 익숙해졌을 때 갑자기 도모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한다. 도모가 왔던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정상적이지 않는 가족의 이야기가 오히려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는 한줄의 정리는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렇다. 아버지에게 툭툭 타박하듯 말을 던지는 도모는 알고 보면 아버지가 걱정되어 본인 스스로도 무리인 줄 알면서 아버지를 찾아왔던 것이고, 책의 90%가 진행될때까지 등장하지 않던 미쓰키와 가가노의 부모와 도모는, 가가노는 몰랐지만 서로 연락을 하며 지냈던 사이였다. 아들, 연인 또는 배우자, 부모와 인연을 끊었다고 생각했던 가가노였지만 그 외의 가족은 항상 가가노를 지켜보고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알게 된 가가노는 앞으로 다른 분위기의 작품을 써낼 것이다. 그래서 제목이 <걸작은 아직>인걸까? 빠르게 페이지를 넘길 수 있으면서도 의미있는 반전이 있는 책. <걸작은 아직>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
와... 진짜 재미있게 읽었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정신 없이 읽은 것 같다. 가족 소설이라고 해서 어느 정도의 감동은 예상하고 있었만, 잔잔하지만 깊은 감동이 내 마음을 사로 잡았다.
|
|
부모와 자식은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고 한다. 쉽게 떼어 놓을 수 없는 운명적 관계라는 뜻이다. 하지만 부모와 자식의 관계처럼 어려운 게 없다. 부모 입장에서는 자식이 뜻대로 커주지 않고 자식은 부모가 너무 자신을 모른다고 여긴다. 처음부터 좋은 부모가 될 수 없는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서로를 향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 노력이 서로를 힘들게 하고 다른 방향으로 흐를지라도 말이다. 어쩌면 부모와 자식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성장하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25년 만에 처음 만나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세오 마이코의 소설 『걸작은 아직』 이야말로 진정한 가족소설이자 성장소설이다.
25년 만에 처음 만나는 아버지와 아들이라니. 아이를 잃어버렸거나 입양 보내고 긴 시간이 지나 우여곡절 끝에 만난 감동의 스토리가 아닐까 기대할지도 모른다. 전혀 아니다. 외부 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집에서 소설만 쓰는 아버지 가가노와 아들 도모는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가가노와 미쓰키는 한 번의 만남으로 도모가 생겼지만 결혼을 원하지 않았다. 미쓰키는 아이를 낳아 키우고 가가노는 양육비를 보내는 조건으로 한 달에 한 장의 사진을 받는 게 전부였다. 그러니까 가가노는 사진을 통해서만 도모를 만났다. 그런 도모가 자신을 찾아왔다. 아저씨라고 부르면서 말이다.
첫 만남으로도 당황스러운데 도모는 가가노의 집에서 지내겠다고 한다. 근처 편의점에서 일하는 동한 한 달 정도 함께 살게 된 것이다. 원고는 메일로 보내고 편집자를 만나는 일도 거의 없는 가가노에게 도모의 방문은 그의 일상을 흔드는 일이 되었다. 가가노와 달리 도모는 거리낌 없이 생활을 이어간다. 출퇴근을 하면서 만든 동네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편의점에서 먹거리를 가지고 와 가가노와 함께 먹는다. 늘 먹던 커피도 도모의 방식은 달랐고 가가노는 어느새 그 맛을 좋아한다. 편의점에서 사 온 음식을 가가노가 사러 나가기에 이른다.
도모는 가가노를 집안이 아닌 밖으로 이끈다. 아주 사소한 커피 주문부터 이웃을 만나고 동네 소식을 듣고 가을 축제에도 참여한다. 도모가 없었더라면 가가노에게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가가노는 조금씩 자신을 아저씨라 부르는 도모가 궁금해진다. 사진으로만 보았던 아이, 미쓰키는 한 장의 사진만 보내고 어떤 설명도 하지 않았다. 사진 속 이야기를 도모에게 들으면서 가가노는 자신의 부모를 생각한다. 소설가가 되겠다는 자신을 인정하지 않았던 부모, 그 뒤로 연락을 하지 않은 가가노다. 지난 25년 동안 어떻게 아들을 한 번도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처럼 아버지나 어머니를 찾지 않았다. 아무리 소설이라고 해도 가가노 같은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보다 더한 사정이 있으니 가가노와 도모는 양호한 상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속된 한 달의 시간이 지나고 도모는 가가노에게 집으로 돌아간다고 전한다. 가가노는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에 도모를 붙잡는다. 하지만 정작 도모의 성장과정이나 어머니인 미쓰키에 대한 건 하나도 묻지 못한다. 모두 알고 싶지만 말로 설명해서 알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기에.
나는 오랫동안 소설 속 대화만 들어왔다. 등장인물들은 쉽게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고민을 털어놓고, 빛나는 희망을 이야기하며, 풀이 죽어 한탄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가슴속에 간직한 진실, 돌아보고 싶지 않은 과거, 마음속 어딘가에 소망. 산다는 건, 나란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이다. 우리가 실제로 살아가는 세상에서는 아무도 그런 질문을 굳이 입에 올리지 않는다. 일상생활에서 나누는 대화는 더 현실적이다. 그렇지만 그런 대화가 겹쳐지면서 그 안에서 진실이 드러나게 된다.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더라도 도모가 잘 자랐음을 쉽게 알 수 있듯이. (199~200쪽)
한 달의 시간으로 지난 25년의 시간을 채울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을 통해 가가노와 도모 사이에는 뭔가 생긴 건 맞다. 도모의 방문으로 가가노는 28년 만에 자신의 부모를 찾아 나선다. 가가노는 아버지이자 아들이니까. 가족이라는 건 무엇일까. 단순히 한 공간에서 얼굴을 마주 보는 관계는 아닐 것이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를 응원하고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사이라면 괜찮은 가족일까.
25년 만에 처음 만나는 부자라는 설정은 뭔가 특별한 사건이 벌어지는 건 아닐까 기대와는 다르게 소설은 따뜻하고 유쾌한 일상으로 흘러간다. 잔잔하고 평온한 소설은 부모가 된다는 게 무엇이며 어떻게 가족이 탄생하고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25년 만에 시작된 아버지의 역할, 고독으로 가득했던 어른 가가노가 세상과 소통하는 성장소설이다. 이제 막 부모가 되는 이들에게, 부모로 살면서 여전히 자식이 어렵고 힘든 이들에게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선물한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
태어나서 한번도 만나본 적 없는 25세의 아들이 어느날 갑자기 불쑥 나를 찾아온다... 작가 <세오 마이코>는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하지 않은 상황에서 평범한 행복'을 찾아가는 담담한 이야기로 가족,가정을 그려낸다. 20대 초반 우연한 술자리에서 만난 한 여성과의 사이에서 생겨난 아이 '도모'.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삶을 이어가는 히키코모리 작가 가가노의 인생에 불쑥 들어온 아들의 존재는 그를 서서히 변화시킨다 20년동안 양육비를 보내지만 부성애는 손톱만큼도 없던 그.단지 그에겐 한달에 한번 보내오는 아들의 사진 뿐이다 하지만 도모가 찾아오고 그동안 241장의 아들 사진을 보며 조금씩 마음의 변화가 찾아온다. 혼자이고 싶으면서 외로운건 싫은 현대인들.. 그러나 사람은 다른 사람과 연결되고 소통해야만 온전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게 아닐까.. 혼자서는 알 수 없는 소통하며 정을 나누는데서 오는 기쁨은 결코 간과할 수 없다. p223 소설 주인공이 자주 죽어서 연락도 없었던 아들이 오고,이웃 할아버지가 쨈을 만들어 찾아온다.나 같은 인간의 집에 사람들이 편하게 찾아온다.슬리퍼쯤은 준비해 두는게 좋을지도 모르겠다.보기에도 스산한 현관에 서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p242 나는 알려고 하지 않았고,마음을 쓰려고 하지도 않았다.양육비만 주고 신경쓰지 않으면서 마음에 걸려하지 않았다. 그런 내가 끔찍하다. p246 내일이 더 멋지다는 사실을 넌 내게 가르쳐 주었다. 오늘은 분명히 너를 알게 되는 날이 될거야 p251 용기를 내어 작심하고 움직여도 이야기가 소설처럼 드라마틱하게 풀리지 않는다.현실은 우스꽝스럽고 답답하다 #서평단당첨 #개인적소감 |
|
아들 도모가 찾아왔다. 아들 도모는 거리낌이 없지만 무례하지 않다. 아버지 가가노는 인간의 추악한 면을 그리는 소설가이다 도모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편하게 다가간다. 후반부에서 제법 가족과 같은 따뜻함이 그려지나 싶었지만 역시 선을 넘지 않는다. 그런 적당한 거리감이 낯설지만 편안하다. #걸작은아직 |
|
‘처음 만나는’ 아버지와 아들의 ‘부자 재탄생’ 프로젝트라는 부제가 눈에 딱 들어왔다. 극적인 부자 상봉으로 얼싸 안고 엉엉 울고 회포를 푸는 그런 스토리를 기대했는데 부자상봉이 엄청 간결하다. 25년만에 통화도 한번 한적 없이 나타난 아들은 아버지를 아저씨라 부르고 고 아버지는 아들을 보고 놀라지도 않는다. 왜 찾아 왔는지 궁금하지만 묻지도 않는다. 아들은 다짜고짜 찾아와서 한달만 머무르자고 한다.
이 아들 도모는 주인공 가가노가 우연히 소개 받은 미쓰키와 술김에 하룻밤을 보내면서 생긴 아이였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는 걸 기뻐하지 않는 사람에겐 아빠가 될 권리가 없다면서 미쓰키는 가가노에게 경제적 지원만을 요구하고 가가노는 동의한다. 가가노는 매달 10만엔을 보냈고 미쓰키는 매달 ‘10만엔 받았습니다.’라는 글이 쓰인 쪽지와 함께 아이가 커가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냈고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그들의 교류는 끝이 났다. 그런데 몇 년만에 사진으로만 보던 아들 도모가 잠시만 머물게 해달라고 갑자기 찾아온다.
가가노는 그런대로 인기가 있는 작가이지만 히키코모리다. 일주일에 겨우 한번 생필품을 사러 나오는 정도이고, 방을 벗어나지 않고 글만 써서 사회성 제로이다. 그런 그에게 찾아온 아들 도모는 이웃들과 넉살좋게 잘 지내고 말도 걸어주며 가가노를 사회화시킨다. 이웃과의 교류 뿐 아니라 부모와의 관계조차 일체 끊고 별문제가 없더라며 무심하게 지내던 가가노가 도모에 의해 세상과 교류하기 시작하는 것이 재미있다. 가가노가 도모를 위해 다이후쿠, 가린토, 가라아게쿤 등의 음식을 사고 도모 때문에 알게 된 모리카와씨와도 교류하게 되는 모습은 흐뭇하고 따뜻하다. 그리고 주위와의 교류를 하지 않던 가가노가 어린아이처럼 서툴게 하나하나 배워가며 적응해 가는 과정이 우습고도 귀여웠다. 그런 걸 이제까지 왜 그렇게 살아왔는지 안타깝기도 하였다. 소설과 현실을 비교해보는 가가노가 자신과 도모가 처한 상황을 소설이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 보는 장면도 무척 재미있다. 아들이 떠나는 날 가가노의 대사가 인상 깊다. “아니야,예전으로 돌아가지 않아.너를 만난 적이 없던 나와 지금의 나는 달라.” 그리고 그의 마음. 깨닫는 것은 늘 끝을 맞이하고 나서라는 안타까움. 그이후 어두워지던 그의 소설이 밝아지는 것도 기쁜 일이었다.
거의 마지막 부분의 반전. 히키코모리 아버지가 자식을 버리고 미혼모 어머니가 아이를 혼자 키웠는데 원망과 눈물이 아닌 유쾌한 결말. 남들과의 관계에 익숙하지 못했던 안타까운 가가노가 변해가고 관계를 회복해가는 과정에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치며 응원을 하고 있었다. 혹시나 책을 읽어 보실 분들을 위해 결말은 살짝 숨겨둔다. 진정한 가족을 찾아가는 과정.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풀어갈 수도 있다는 것이 놀랍다. 그리고 결국은 해피엔딩. 정말 재밌고 기분좋게 읽은 책이다.
세코마이오는 <그리고 바통은 넘겨졌다>, <걸작은 아직>을 통해 결손가정을 다루는데 이 이야기들은 슬프게 흐르지 않고 담담하다 못해 쿨하다. 그래서 옮긴이 권일영님은 이 이야기들을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하지 않은 상황에서 평범한 행복을 찾아가는 담담한 이야기들’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결손’이란 말은 생명이 없는 인공적인 물체에만 쓰이면 좋겠다고 하면서 한부모 가정의 구조적 결손만이 아니라 심리적 결손까지 포함하면 이세상에 결손 상태가 아닌 가족은 얼마냐 되겠냐고 한다. 그러면서 ‘결손가정’이라는 폭력용어가 다시 쓰일 일이 없게 되기를 바란다고....
|
|
가가노 마사키치는 어렸을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해 독서에 빠져 지내다가 대학생이 되어 점점 읽기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 자신의 이런저런 생각들을 글로 옮겨 적게 되었다. 그러다가 대학 4학년이 되었을 때 그럴듯한 작품이 나왔고, 자신의 글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감상을 들어보고 싶어 응모했던 문학상에서 대상을 받으며 의도치 않게 소설가가 되었다.
원래부터 사교적이지 못했던 성격의 가가노는 소설가가 된 이후로는 거의 집밖에 나가지 않으며 사람들과 만나지도 않았다. 대학을 졸업한 지 2년째 되던 해, 몇 안 되는 친구 중 하나인 소네무라가 집 안에만 있지 말고 가끔은 나와서 사람들과도 어울려야 한다며 자신의 회사 동료와의 술자리에 가가노를 불러냈다. 소네무라가 데리고 나온 사람 가운데 나가하라 미쓰키라는 여성이 있었는데, 가가노는 처음엔 그녀의 예쁜 외모에 눈길이 갔으나 금세 그녀가 외모만 예쁜 속이 텅 빈 여자라는 인상을 받았다. 가가노는 그녀를 좋아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술자리가 끝난 뒤 미쓰키는 가가노의 집을 구경하고 싶다며 가가노의 집으로 따라왔고, 둘은 가가노의 집에서 한잔 더 마시며 그날 밤을 같이 보내게 된다. 다음 날 아침 둘 다 실수라는 생각에 서둘러 헤어졌고 가가노는 한동안 그날 밤 일을 후회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일을 까맣게 잊었다.
그런데 석 달쯤 지나 갑작스럽게 미쓰키로부터 임신했으니 아기를 낳겠다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 그는 전혀 좋아하지 않는 여자와 결혼해야 한다는 생각에 절망했지만 미쓰키도 같은 생각이라며 둘은 몇 차례 대화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대화를 할수록 서로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미쓰키는 아기를 낳아 기르고 가가노는 양육비를 대는 것으로 결론을 내린다. 그 후 합의에 의해 가가노가 매달 양육비로 10만 엔을 보내면 미쓰키는 '10만 엔 받았습니다'라는 쪽지와 아들의 사진을 보내왔다. 그것은 아들이 스무 살 성인이 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5년 4개월 후 자신이 아들이라며 나가하라 도모가 불쑥 가가노의 집에 쳐들어와 자신이 아르바이트로 일하고 있는 편의점이 가가노의 집에서 가까우니 얼마 뒤에 자신이 사는 곳에서 가까운 곳에 생기는 새 점포로 옮길 때까지 가가노의 집에서 다니겠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25년간 생물학적으로만 아들이었던 청년이 가가노의 삶으로 들어오는데….
『걸작은 아직』은 평범한 사람들의 시선에서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관계의 아버지와 아들이 만나 한 달 남짓 같이 생활하며 진짜 아버지와 아들 더 나아가 진짜 가족으로 거듭나는 이야기이다.
이 책은 크게 4장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처음 1장에서는 합의에 의해 결론난 도모의 출산과 양육에 관한 사항을 마치 가가노가 도리를 다 하지 않은 못된 인간으로 몰고 가는 것처럼 그려져 '아니, 웬 구시대 유물 같은 사고방식?'하며 읽으면서 짜증이 났다. 그리고 평온한 가가노의 일상에 아무런 양해 없이 뻔뻔하고 제멋대로 불쑥 쳐들어와 가가노의 생활 리듬을 깨는 아들 도모에 대해서도 어이가 없었다. 더군다나 생물학적으로는 아버지지만 태어나서 처음 만났는데 반말을 하는 것과 가가노의 개인적인 공간인 서재에 벌컥 들어가며 안부 인사랍시고 "죽지 않았어?"라고 거침없이 내뱉는, 예의를 밥 말아 먹어버린 듯한 도모의 모습을 보면서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2장에 넘어가면서부터 도모가 그렇게 격의 없는 행동으로 평범한 아버지를 대하듯 가가노를 대하고 약간 제멋대로인 듯하면서 자연스럽게 히키코모리인 가가노를 밖으로 이끌어내기 시작하는 모습과 그로 인해 가가노가 점차 자신만의 고립된 공간 밖으로 나와 주변 사람들의 삶에 녹아들어 어울리는 모습을 보며 1장에서 가졌던 생각이 희석되었다. 그리고 뒷장에서 도모가 가가노를 불쑥 찾아온 이유를 알게 되었을 때에는 가슴이 뭉클해지며 잠시나마 어이없어하며 욕하며 읽었던 나 자신을 반성했다. 앞부분만 읽고 소설책을 덮었더라면 정말 땅을 치고 후회했을 것이다.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밝혀지는 또 다른 형태의 큰 사랑과 도모의 이름에 대한 비밀이 밝혀지면서 벅찬 감동으로 눈물이 계속 나왔다. 25년이라는 세월을 자연스레 메워가며 진정한 부자로 거듭나는 모습과 이제 시작하고 앞으로 영원히 계속될 가가노의 평범한 행복의 이야기를 소설을 통해 꼭 만나보길 바란다. 그리고 『걸작은 아직』이라는 제목과는 다르게 소설 속에 나오는 가가노의 최고의 걸작의 이름을 소설을 통해 꼭 알아보길 바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