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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제가 다른 사회의 구성원들의 이야기지만 어느 정도는 공감 가능 함 왜 그토록 작가는 정욕에 휩쓸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집요하게 반복하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답은 제목이었음 한걸음 밖에서 본다면 우숩고 경박하게 보이지만 계속 보게되는 이유는 우리 안에 존재하는 구차한 모습을 차갑지만은 않게 보는 시각이 있기에 경멸하지 않고 자조할수 있음 하지만 나를 그리고 우리를 끊임없이 돌아보게 하는 점이 작가의 능력으로 보임 그리고 바로 그지점이 휘발성 드라마와 문학의 차이점인 듯 아프고 부끄럽고 슬프지만 우리 현실을 감정을 직시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내가 이런 책을 보는 이유인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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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운 사랑들>은 밀란 쿤데라의 유일한 소설집이다. 말 그대로 우스운 사랑들이 등장하는 7개의 중,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밀란 쿤데라가 가장 애정하는 책이라고 한다. 내가 읽었던 밀란 쿤데라의 이전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단편들은 모두 '눈을 가린채 현재를 지나가기 때문에' 우리 삶이 농담인지 함정인지 알지 못하는 인간 삶의 희극성을 담고 있다. 첫 번째 단편 '누구도 웃지 않으리'는 <농담>과 굉장히 비슷한 내용의 소설이었다. 주인공 남자는 한 남자에게 자신의 논문에 대한 평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 그 논문이 너무 형편 없었기 때문에 평을 써주기 싫었지만 적을 만들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에 주인공은 계속 그 남자를 피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 남자와 맞닥뜨리게 됐을 때 주인공은 그 상황을 모면할 작정으로 왜 자신의 여자친구를 유혹해 놓고서 논평까지 써달라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물론 실제로 그 남자는 주인공의 여자친구를 유혹하지 않았다. 이 일은 주인공을 걷잡을 수 없는 삶의 모험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내가 이 소설집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단편은 '이십년 후의 하벨박사'이다. 요양을 하러 요양지에 간 늙은 박사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또한번 눈을 가린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희극적으로 풀어 놓는다. 여기에서 또 한번 '키치'의 개념이 나오게 되는데 이쁜 아내와 걷고 있다는 그 자체보다 그 모습을 보는 사람들의 부러운 시선이 더 좋은 박사의 기분이 살짝 이해가 되기도 한다. 사람은 어쩔 수 없이 키치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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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사랑관이 나오는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 읽으면서 각 단편에서 궁금했던 점들이다. 1. 누구도 웃지 않으리 왜 주인공은 마지막에 본인 상황이 비극이라기보다 희극이라고 느끼면서 위안을 느꼈을까? 2. 영원한 욕망의 황금사과 나와 마르틴은 근본적으로 무슨 차이가 있는거지? 3. 히치하이킹 게임 연기하는, 척인척 하는 내 모습은 사실 나도 모르는 나의 숨겨진 모습일까? 4. 콜로키움 병원에서 벌어지는 오해가 쌓이는 상황에서 제목이 갖는 의미는 뭘까? 5. 죽은지 오래된 자들은... 마지막에 주인공의 머릿속에서 아들이 화내면서 외치는 건 뭘 뜻할까? 6. 20년후의 하벨 박사 우리는 남을 인식할때 그의 지인들이 미치는 영향이 큰가? 7. 에드바르트와 하느님 주인공에게 하느님은 무슨 의미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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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의 두번째 작품으로 '농담' 보다는 두께가 얇다. 또한 이번 책에서는 하나의 장편이 아니라 여러개의 단편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으며 장르적인 면에서도 시나리오도 수록될 정도로 다양한 이야기들이 수록되어 있다. 각 이야기에서 주된 내용은 주인공이 생각하던 사랑이 무시되거나 변질되거나 하는 내용을 주로 다루고 사랑의 변덕스러움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제목을 우스운 사랑들이라고 지은것 같다. 수록된 단편 내용들이 저마다 다 좋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마지막에 수록된 이야기가 인상깊었다. 내가 무신론자여서 그런걸까? 하여간 정말 재미있게 읽었고 얼른 밀란 쿤데라의 3번째 책을 읽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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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를 읽다보니 내가 이 작가를 너무 몰랐구나 싶었다. 내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무게감이 너무 커서 다른 작품엔 크게 관심이 안갔는데 이번에 네 권을 읽다보니 더 읽고 싶어졌다. '우스운 사랑들'은 초기 단편집이다. 59년에서 68년 사이에 썼기에 첫 장편 <농담>보다 먼저 쓰여진 작품들이라 할 수 있어 과감하게 날이 서 있는 느낌이었고 그게 너무 좋았다. 쿤데라가 가장 사랑하는 작품이라더니 나도 그럴듯~^^ 총 7편이 들어있는데 전부 강렬하고 흡입력이 엄청나서 독자들 멱살을 쥐고 끌고가는 느낌이었다. <누구도 웃지 않으리> 웃다니, 이렇게 집요하게 쫓아다니는 진상은 생각만해도 소름 끼친다. <영원한 욕망의 황금 사과> _여자들을 쫓아다니는 영원한 추적의 깃발. <히치하이킹 게임> _상황 연극 잘못하다 관계 망친다 <콜로키움> _엘리자베스는 자살일까, 사고일까, 라쇼몽이 떠오르는 각자의 입장들. <죽은 지 오래된 자들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자들에게 자리를 내주도록> _늙어서 옛연인을 만나는 느낌. 늙어도 여자는 여자다. <이십 년 후의 하벨 박사> _인기남 하벨도 늙으니 찬밥신세. 아내의 후광에 힘입어 다시 카사노바로~ <에드바르트와 하느님> _진심을 다해 거짓말을 하다보면 진짜가 뭔지 헷갈린다. 밀란 쿤데라가 이렇게 재밌는 단편도 썼구나. 좀 더 읽기를 잘했다. “하지만 내가 거짓말을 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이 있어. 내가 깊이 알고 있는 것, 내가 의미를 알고 있는 것, 내가 사랑하는 것이 있어. 이런 것들을 가지고 난 장난치지 않아. 거기에 대해 거짓말을 한다는 건 나 자신을 비참하게 만드는 일이고 난 그럴 수 없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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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제가 다른 사회의 구성원들의 이야기지만 어느 정도는 공감 가능 함 왜 그토록 작가는 정욕에 휩쓸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집요하게 반복하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답은 제목이었음 한걸음 밖에서 본다면 우숩고 경박하게 보이지만 계속 보게되는 이유는 우리 안에 존재하는 구차한 모습을 차갑지만은 않게 보는 시각이 있기에 경멸하지 않고 자조할수 있음 하지만 나를 그리고 우리를 끊임없이 돌아보게 하는 점이 작가의 능력으로 보임 그리고 바로 그지점이 휘발성 드라마와 문학의 차이점인 듯 아프고 부끄럽고 슬프지만 우리 현실을 감정을 직시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내가 이런 책을 보는 이유인듯 |
: 정치인들이 하는 말, 발언이 그것 그대로의 의미를 위해 사용한다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대중의 주목을 이끌기 위해, 반대 편의 강한 반대에 대한 환기를 위해 등등 해당 정치를 지지하는 지지자들을 대변하기보다는 지지하는 자들의 표를 얻기 위해, 자신의 정치 생명 연장을 위해 외치고 있다고 의심해야겠다. 인간관계에서 위 내용을 이해하자면, 사람을 만날 때 신뢰를 무한히 제공하기 보다는 선을 지키며 적당히 믿어야 서로서로 힘들지 않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에 대한 나의 믿음이 강하면 강할수록 우리 사이의 신뢰에 조그마한 균열이 생기는 것에 대해 나는 크게 상처를 받을 것이고 나에게 믿음이나 신뢰를 굳건히 받는 사람은 그 신뢰대로 행동한다면 행동의 제약이 생기는 꼴이고 신뢰대로 행동하지 않는다면 '저 인간은 다른 사람의 신뢰나 믿음을 저버리는 놈이야' 라는 평을 듣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적당히 믿고, 적당히 신뢰하고, 적당히 의심하는 사이가 서로에게 상처 주지도 받지도 않는 아픔 없는 사이라는 사실. 한편으로는 서글프기도 하다. 2. "과연 나 자신은 젊음이 의미하는 이 행동들을 언젠가 포기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것들을 모방하는 데 족하지 않는다면, 내 바른 생활 속에 이 비상식적인 행동을 위한 작은 영토 찾기를 시도하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면 나는 다른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단지 아무 소용없다는 이유로 나는 이 게임을 포기할 것인가?" : 젊음, 아름다움 그리고 그것들을 열망하는 태도. 우리가 나이 먹고 병들고 늙어도 열망하는 마음을 포기할 수 있을것인가? 언제나 젊어보이고 싶고 예뻐보이고 싶고 아름답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심리를 멈출 수 있는가. 그것은 가볍고 가치 떨어지는 생각들일 뿐인가. 늙고 병든 이들이, 죽은지 오래 된 자들이 죽은지 얼마 안된 자들에게 비켜줘야할 자리인 것인가. 우리는 언제나 환타지를 꿈꾸고 있지는 않은가. 3. "제일 나쁜 것은, 그가 그녀를 사랑하기보다는 몹시 어여뻐하는 마음이 훨씬 컸다는 것이다. 그는 언제나 배신 없는 사랑과 순수성의 울타리 안에서만 그녀에게 실재성이 있다고, 그리고 그 울타니 너머에서는 그녀는 그냥 존재하지를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그녀가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사뿐히 그 가공할 경계를 넘어서는 것을 보면서 그는 분노가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 사랑에 관한 신념, 나의 가치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관념. 이 모든 것들에 대해 '장담할 수 있어? 안 바뀔 자신있어?' 라고 쿤데라는 끊임없이 의심을 하고 훼방을 놓는다. 글 속에 주인공은 겉모습이긴 하지만(속으로는 울고 있었다.) 사랑에 대해 가볍게 변한 것 같은 여자친구의 모습을 보고 '성에 대한 가치관, 신념이 어떻게 이렇게 한 순간 변해버릴 수 있나. 내가 알고 있던, 믿고 있던 모습은 거짓이었던가.'하고 배신감을 느끼는 남자친구의 모습을 보여준다. 여자친구의 신념이 바뀌었다기 보다는 남자친구의 성에 대한 신념이(정조를 지키고, 사랑하는 사람만을 바라보는 것이) 깨져벼렸고 (여자친구가 가벼워졌다는 자기 스스로의 착각에 의해) 신념이 깨져버린 것에 대해 스스로 분노했다고 본다. 쿤데라의 글들은, 쿤데라는 늘 독자에게 하여금 '네 생각이 100% 정답이야? 그게 유일한 결론이야? 장담할 수 있어?'라고 꼬집는다. 우리는 사랑에 관해 한없이 가벼울 수도, 한없이 무거울 수도 있지만 어느 한쪽에 강한 확신을 가지기 보다는 '가벼운 편이었다면 무거운 쪽도, 무거운 편이었다면 가벼운 쪽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끔 해준다. 1번 글에서 적은 대로 너무 강한 믿음의 결과는 최고의 배신감으로 오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기자신에 대한 생각, 스스로에 대한 믿음의 결과도... 4. "'죽음'같은 단어들이 플라이슈만의 가슴속에 소용돌이치면서 벅찬 기쁨으로 그의 가슴을 가득 채웠다. 그는 등에서 날개가 돋아나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우수에 찬 행복이 밀려드는 가운데 그는 자신이 그 어느 때보다 사랑받고 있음을 깨달았다. ...(중략)... 엘리자베트의 행위 옆에서 모든 것이 빛을 잃었다." : '진정한 사랑의 끝에는 죽음이 있으며, 오로지 죽음으로 끝나는 사랑만이 사랑이다.' 자기에게 사랑을 받지 못해 엘리자베트가 자살을 시도했다고 '착각'한 플라이슈만은 그 사건을 통해 엘리자베트에게 깊은 사랑을 느끼게 된다. 그 전에는 못 생긴 얼굴 때문에 그녀를 멀리 했던 플라이슈만은 죽음을 각오한 그녀의 결단에 깊은 감동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플라이슈만의 '착각'이다. 엘리자베트는 우연히 라면을 먹기 위해 가스를 켜놓았다가 잠들었을 뿐이다. 나는 작가가 이 이야기를 통해
사랑에 있어서 진지함, 사랑의 최종적인 모습, 엄숙함, 죽음 등의 단어를 제시하여 '사랑은 가볍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죽음을 각오한 무거움이다.' 라는 생각이 주인공의 '착각'이었음을 드러내어 (사랑에 관해)무거움에만 머물러 있는 것 역시 우습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5. "우리가 사랑의 쾌락에 달려드는 것은 추억 때문인데 말이지요. 그 상황 속에서 말해진 단 하나의 단어, 평범한 것 중에 가장 평범한 하나의 단어가 바로 그 상황을 환히 비추어 잊을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을. 나를 믿어요." : 제자는 스승의 꾀에 놀아나 평소 자기가 생각하는 이상형이 아닌 평범한 아줌마와 하룻밤을 보낸다. 그 아줌마는 하룻밤을 보내면서 제자가 자기의 아들과 닮아서 좋다는... 당혹스러운 말들을 내뱉는다. 다음 날 어제의 하룻밤이 잘한 것인지 궁금하여 스승에게 얘기해주고 평가를 듣는다. 스승은 그런 단어들이(아들) 그 사람과 다른 여자들을 구별해주는 특별한 단어임을 믿으라고 얘기하고 제자를 한 번 더 놀린다. 제자는 성에 관해, 연애에 관해 자신의 생각을 믿기 보다는 고수라고 알려진 스승의 의견에 전적으로 따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제자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스승도 사실을 별 볼일 없는 사람이다. 늙고 병든 자신을 무시하는 여자들에게 그는 자신의 예쁜 부인을 데려와서 순회공연을 찐하게 하였고 이를 통해 그들에게 '나는 너희에게 무시당할 그런 늙은이가 아니라 대단한 사람이다.'를 나타내려고 했다. 스승 역시 제자와 다를 바 없다. 다른 사람의 시선, 행동, 평가에 중심을 두고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내 옆에 있는 여자친구 혹은 남자친구의 외모가 예쁘다, 멋있다, 그러므로 나는 멋있는 사람이다.' 두 가지에 종속된 삶이다. 여자친구, 남자친구에게 종속된 삶이고 나를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실제로는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옆의 애인을 보고 있는) 종속되어 살아가는 삶이다. 그런데, 작가는 '외모는 중요한게 아니다. 스스로 만족하며, 자제하며 사는 법을 찾아야한다. 등 말로만 정신승리 하지말고 실제로 네가 늙고 병들어서 이성들에게 외면받는다면 너는 아무렇지않게 살 수 있어?' 라고 꼬집는다고 생각했다. 근본적인 사람의 본능을(예쁘고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애써 무시하거나 그런 마음은 추한 것이고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치부하는 사람들에게 '진짜 그렇게 생각해? 네가 가지지 못해서 그런거는 아니고?'라고 일침을 놓는다. 6. "또다시 그녀는 어리둥절한 채 그를 보았어요. '손을 모아! 안 들려?' 그녀는 손을 모았어요. '기도해!'그가 명령했어요. 그녀는 손을 모으고 뜨거운 눈길로 그를 올려다보았어요. ...(중략)... 그녀가 전에는 광적으로 숭배했던 그 간음 반대의 신을 그렇게나 쉽게 회환도 없이 배신한 것에 분개했어요. 그 어떤 욕망도, 그 어떤 사건도, 그 어떤 충격도 그녀의 평온함을 흔들어 놓을 수 없다는 것에 분개했어요. 이 모든 것을 내면의 고통 없이, 자신에 대한 의심도 없이 아주 쉽게 해치우는 것에 분개했지요. ...(중략)... 나는, 나는 미친 사람들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나 자신이 미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 거짓말을 해야만 해." : 공산주의와 더불어 종교가 금지된 시대에 살고 있는 주인공은 여자친구와의 하룻밤을 위해 애쓴다. 그러나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혼외정사금지'를 자신의 신념으로 믿고 있는 그녀와의 하룻밤을 가지기는 어렵다. 주인공은 여자친구와의 하룻밤을 위해 기독교를 공부하기 시작하고 교회도 빠짐없이 참석한다. 여자친구를 설득하기 위해 종교 교리를 이용한 여러 궤변을 만들어 얘기하지만 번번히 실패한다. 그 외 다른 시도들도 실패한다. 자포자기 할쯤, 자기 직장의 상사에게 교회 다니고 있는 것을 들키게되고 주인공을 해고하기 위한 윤리위원회가 열린다. 그곳에서 사실대로 말하기보다는 자신은 하느님을 믿고 있으며 이 믿음의 마음은 결코 아무도 해치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한다. 그 후 해고를 피하기 위해 (못생긴)직장 상사를 찾아가 예전부터 당신을 좋아하고 있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런데, 자신을 좋아하고 있었다는 거짓말을 믿은 (못생긴)직장 상사는 남자에게 하룻밤을 청하게 되고 결국 잠자리에 들게된 남자는 너무나도 혐오스러운 마음에 우리의 죄를 사죄하기 위해 하느님께 기도하라고 직장 상사를 무릎꿇게 만들고 기도하게 만든다. 또, 남자친구가 윤리위원회에서 해고를 각오하고 하느님을 믿고있다고 선언했다는 얘기를 들은 여자친구는 그 사건에 감명을 받아(남자친구의 독실함에 감명을 받아) 남자친구와의 하룻밤 제안을 수락한다. 여자친구와 하룻밤을 가지며 남자는 자신에게 그토록 엄격했던, 이데올로기에 갇혀 있던 상사와 혼외정사금지를 평생의 신념으로 가진 여자친구가 자신의 뻔뻔한 거짓말로 인해, 그 엄숙한 장벽들이 쉽게 무너지는 것을 확인하고선 사랑에 진심이라는 것이 있는가. 자신이 가진 신념에 있어서 절대적이고 엄숙한 것이 있는가. 한 없이 가벼워진, 자기가 한 말을 어기는 주위 사람들의 모습에 좌절하고 만다. '나는, 나는 미친 사람들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나 자신이 미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 거짓말을 해야만 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