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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잊고 있던 두 가지 중요한 점을 깨달았다. 첫번째, 지구 자원은 유한하다는 것.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지구의 생명도 언젠가는 끝이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두번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세대의 생존가능성을 훼손하고 있는 현 세대의 탐욕은 눈먼 질주를 계속하고 있다는 것. 오늘을 위해 내일을 희생시킨 대가를 내 아들이, 혹은 그 아들이 치르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두렵다.
도덕적 비판과 거부를 넘어서는 현실적 대안을 창조해야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자본주의의 파멸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높다. 단순한 경기순환적 위기가 아닌 '성장의 시대'가 종언을 구하는 대전환기에 들어섰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성장의 위기, 경제위기에 생태위기가 중첩된 현 상황은 인류의 생사존망을 건 새로운 결단을 요구한다. 대안을 외치는 목소리도 높다. 지구 전체를 파멸로 이끄는 자본주의 성장 경제 대신 생태와 지역순환 경제가 조화를 이루는 다른 미래를 구상하자는 것이다.
성장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것,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냉혹한 현실이다. 그러나 변화의 절박성 만큼 변화의 움직임은 아직 더디기만 하다. 주류 경제학의 신뢰도가 추락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고 대안경제의 새로운 모색들은 적극적으로 국가 정책에 반영되기 보다는 소수 집단의 실험 정도로 치부된다. '탈 성장'이 가져올 불안정과 두려움이 성장의 지속불가능성을 애써 외면하게 만들고 있다. 탈 성장은 소비 수요의 감소와 실업의 증가 경쟁력의 하락과 침체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공포다. 화석연료에 의존하던 기존 시스템의 끝을 코 앞에 두고도 구 시대적 성장의 기대에 매달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성장의 딜레마다.
팀 잭슨은 <성장없는 번영>에서 "이 딜레마를 회피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지속가능성을 실현하는데 맞닥뜨릴 수 있는 가장 큰 위험"(p92)이라고 경고한다. 그는 "성장의 딜레마는 경제안정을 유지하려는 열망과 생태 한계 내에서 머물 필요성 사이에 우리를 옭아맸다"(p158)며 "성장에 대한 거부는 경제와 사회 붕괴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반면에 지속적인 성장의 추구는 우리의 장기적인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생태계를 위험에 빠뜨린다. 대개의 주류 정책에서는 이런 딜레마가 계속해서 무시되고 있다" (p238)고 지적한다.
지구를 위험에 빠뜨리는 성장 그 자체를 거부해야 한다는 주장은 도덕적인 성찰을 제공할수는 있겠지만 현실의 위기를 극복할 구체적인 대안이 되지는 못한다. 그렇다고 구조와 시스템의 위기만을 역설하면서 성장을 부추기는 '소비만능주의'를 외면하는 것은 근본적인 처방이 되기에는 불완전하다. 지금의 경제구조와 우리를 소비주의 '철창'에 가두는 사회논리(p159) 모두에 맞서지 않고서는 더 이상의 진보란 있을 수 없다.
이 점에 관해 홍기빈은 <성장없는 번영>의 추천사에서 중요한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는 "생태문제를 해결할수 있는 21세기의 경제시스템에 대한 논의는 그야말로 지지부진이며 그에 근거한 효과적인 실천과 운동은 더더욱 찾아보기 힘들다"며 "이러한 현실의 이론적 실천적 답보상태의 원인중 하나는 생태와 경제 문제에 대한 극단적으로 단순화된 태도와 접근에 있다"고 지적한다. 한편에서는 이 문제를 탄소배출권시장을 형성한다든가 환경 관련 규제를 강화한다든가 하는 도구적인 합리성 차원에서만 접근하려고 하거나, 다른 한편에서는 산업문명에 대한 도덕적 비판과 거부로만 문제를 환원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편향에서 모두 빠져 있는 것은 '우리 삶의 방식'에 대한 성찰이다.
홍기빈은 "이를 바꾸지 않고도 과연 기술적 장치 몇개로 생태위기를 빠져나갈수 있을까. 또 우리 몸속 생활 깊숙이 뿌리박은 산업문명을 도덕적 비판으로 일거에 뽑아내는 것은 얼마나 가능한 일일까"라고 묻고 있다. 시대적 요구와 이에 따른 새로운 삶의 방식까지 포괄하는 진보의 재정립이 필요한 이유다. 비슷한 맥락에서 이 책의 저자 팀 잭슨도 "결정적으로 믿음직스러운 대안을 마련해야 할 진보의 대안은 덜 물질적인 방법으로 자기를 실현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p246)이라고 역설한다.
다른 경제학이 필요하다 : 생태거시경제학의 필요성
번영은 단순히 '물질적 부'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회의 영역에서 떨어져 나간 경제를 다시 제자리로 불러들이고 번영의 개념을 재정립하는 기초위에 새로운 경제학이 필요하다. 성장지상주의 경제학을 대체할 생태거시경제학이다. 생태의 한계 내에서 어떻게 경제 안정을 이뤄낼 것인가. 인류가 이제까지 축적해 온 모든 지적 능력을 총 동원해 이 숙제를 풀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경제는 생태 한계와 무관하게 경제의 무한 성장만을 위해 기획되어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생태적 요인들에 대한 경제의 의존성을 체계적으로 설명할 모델을 가지고 있지 않다. 생태거시경제학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지만 이론 실천적 발전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무엇보다 현실이 새로운 경제학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경제를 무엇으로 명명할 것인가. 사적 소유의 철폐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자본주의를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 다만 생태거시경제학은 다가올 새로운 경제가 지금보다 '덜 자본주의적'으로 될 수 있다는 청사진이다. 팀 잭슨이 말하는 이 책의 요지는 간단하다. 첫째, 인간 활동에 대해 생태한계를 설정해야 한다. 둘째, 성장지상주의의 경제학을 바로잡아야 한다. 셋째, 파괴적인 소비주의 사회논리를 변화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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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국가의 경제성장지표를 기준점으로 삼고 있는 것은 통상적으로 GDP를 기준으로 하지만 저개발국가 나 개발도상국가 같은 경우에는 이러한 것들이 실상 큰 의미를 갖지 못하고 있음을 잘 지적하고 있다. 아마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성장의 위험성만 경고하거나 환경오염이나 개발로 인한 무분별한 자연 파괴 등만을 고려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성장에는 반드시 쓰레기, 오존층 파괴, 뜨거워지는 지구 뿐만이 아니라 상위 10%가 독점하는 세계의 재편이 이루어짐과 동시에 극단적인 빈부격차가 따라 온다. 우리가 2013년을 살아가면서 소비를 통해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데에는 이런 물질적인 보상 만이 질적인 성취감을 안겨 줄 수 없다는 데 기인하지만 실상은 성장이 부를 책임지지 못해서이다.
MB정부 때 청계천이니 녹색정책을 많이 실천하려고 애쓴 것처럼 보일 수 있어서 많은 이들이 착각 할 수 있겠으나 책의 중심부 케인스주의와 뉴딜정책, 편을 통해서 저자가 한국의 이러한 정책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순진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 보여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는데 그래서 이 <흥미롭게도, 한국정부는 녹색 뉴딜을 21세기 경제의 최전선에 한국을 자리매김하는 방책으로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한국의 한승수 국무총리는 2009년 1월 6일에 경제정책을 발표하면서 다음 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전례 없는 세계적 경제위기에 처해 있다. 우리는 긴급한 태세로 이 상황에 대처해야 한다. 녹색 뉴딜이 그 방법을 제공할 것이다.>라고 말한 부분을 길고 주의깊게 인용하며 다음 면에서 선진국의 녹색부양정책에 대해서 언급하는 부분에서 불편을 느꼈다.
이 말에 깊이 공감할 한국인은 적어 보인다. 녹조라떼나 철새나 조류, 어류들의 서식지 파괴는 재앙수준이다. 인상적인 부분을 꼽자면 옮긴이 즉 역자인 전광철 씨가 이러한 극찬 비슷한 것에 부차적인 설명을 역주로 가하는 부분이다. 아무래도 외국에서 정보를 취합하는 방식에는 도표나 자료만이 전부일 터 번역을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용기있게(?) 적는 것은 역자의 철학이나 삶의 방식과는 맞지 않았을 것이기에 나는 과감하게 이 부분을 메모로 도드라지게 표현하고 싶다.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 정책이 녹색 패러다임 전환을 발 빠르게 표방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핵심은 4대강 사업과 핵발전 사업이었다. 두 사업과 관련한 위험성과 환경 악화 징후, 해결되지 않은 논쟁들, 비리 등에 비춰봤을 때, 많은 예산이 책정되었다 하더라도 진정한 녹색 부양책이라 보기 힘들 것이다. -옮긴이 148~150 번역자 <전광철>의 글을 주의깊게 들여다 볼 필요가 동시에 있는 글이다.
외국의 경제정책이나 성장과잉의 부작용들이 나라마다 동일하게 적용되기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겉으로는 올바른 정책인 것처럼 포장하며 뒤로는 예산을 빼돌리고 거시적으로 보자면 미래세대들의 등골을 휘게 만들고 환경 뿐만이 아니라 유한한 지구를 병들게 만드는 가속도에 기름을 끼얹는 경우가 될 그런 것들도 심미안으로 독자들은 발견할 수 있도록 잘 안배하고 배려한 책이기도 하다. 나는 책을 정독해 읽고 나서 역자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전광철 역자가 펴 낸 책들을 차후에 찾아서 읽어 볼 생각을 갖는 것은 그 분의 글 쓰기나 번역의 삶이 자신의 철학적 토대 위에 올곧 게 드러나 있다는 것을 글을 통해 발견했기 때문이다. 단순논리로 성장만이 살 길이라거나 번영 이 부와 행복을 가져다 준다거나 환경을 맹목적으로 지키자거나 극단적 개인주의의 탈피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서 좋았지만 보편타당해 보이는 겉치레를 걷어낸 역자의 안목을 높이 사고 싶다. 경제학은 비단 경제학자와 관료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 개인이 삶의 문제에서 직면하게 되는 더 고차원적인 사고로의 전환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을 <지속가능한 경제> 라는 말로 치환하여 쉽게 풀이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 책의 관점은 나라마다 다르다는 것과 그럼에도 지구자원은 유한하다는 보편타당한 사실을 주지하라는 것, 이 책을 번역한 전광철 씨의 이력에 더 관심이 많아졌다는 것이 수확이라는 점을 적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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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전광렬
현재는 출판기획, 번역 프리랜서와 기획번역 모임 마음물꼬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0년에 주민들과 함께 ‘용산도시농업공원추진위’를 설립해 마을공동체를 활성화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2012년부터는 역시 지역주민과 함께 설립한 ‘행복중심 용산생협’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협동조합과 사회적 경제가 새로운 대안사회를 위해 주요한 역할을 할 것이란 생각으로 지역과 출판 분야에서 협동조합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모색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번역한 책으로는《끝나지 않은 노예의 역사》《맘껏 우는 아이가 활짝 웃을 수 있다》 《연어 숲에서》《우리도 친구가 될 수 있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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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사회를 그린 영화들을 보면, 역사가 현재의 풍요를 낳았던 것 만큼 앞으로의 어느날을 밝고 희망차게만 그리지는 않는다. 미래의 어느 시점 더이상 아이가 태어나지 않아 도시들은 무정부 상태로 변하고, 유전자변형 괴생물체나 외계인들이 지구를 점령하거나, 로봇에게 생활 기반을 빼앗기고 노예가 되거나, 재앙적 기후로 인해 황폐해진 지구에 남겨진 인간의 고군분투를 소재로 한다. 비교적 최근의 영화로 멧데이먼이 오랜만에 출연한 엘릿시움이 있었다. 인구가 넘쳐나는 황폐한 지구엔 희망이 없다. 오로지 아주 극소수의 사람만이 오를 수 있는 엘릿시움만이 유일한 희망이지만 그곳을 갈 돈을 버는 건 애시당초 불가능하다. 미국의 건강 보험을 비유적으로 그린 엘릿시움의 치유의 기계는 그래서 죽어가는 어린 딸을 가진 지상의 한 엄마에게는 목숨과도 맞바꿀 수 있는 필사의 장소이다.
석유는 이미 최고점을 찍은 상태에서 30년 안쪽에 끝장날 조짐과 함께 세계 경제를 들썩들썩 주무르고, 사계절 밤낮 할 것 없이 극단적 무더위와 맹추위 홍수 등의 기상이변을 경험한다. 오존층은 뚫려가고 있고 바다는 신음하며 녹지대는 줄어들고 있다. 어쩌다 우리는 단순히 물건 하나에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고, 사회적, 심리적 기능을 표현하고 때로 인격까지 대변해주는 저차원의 세계에 살게 되었다. 인류 역사상 의식주에 뿐만 아니라 지식과 문화와 사회 모든 부분에서 가장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 진품 루이비똥 가방을 들었는지 아닌지에 따라 사람의 등급이 분류되고 행과 불행이 갈리는 시대에 살게 되었다. 어찌하여 절망적이지 않겠는가
나는 하나의 희망을 읽고 싶었다. 현재 자본주의가 처한 경기 침체라는 막다른 골목에서 눈에 띈 '성장없는 번영'이라는 책 제목에서, 인류에 단 한 줄의 희망이라도 읽을 수 있다면 경제에 문외한이지만, 가치있는 독서가 될 터였다.
가용 자원이 줄어들고 있고, 환경의 절대적인 한계와 마주한 채 '빈곤의 바다' 위에 '번영의 섬들'이 떠 있는 형국의 세계에서 이미 부유해질 대로 부유한 이들의 끝없는 소득증대가 진정 바람직한 기대인가에 대한 물음표로 이 책은 시작한다.
2008 년 금융위기 이후 영국이 가진 높은 소비자 부채 수준과 전 세계에서 두번째로 높은 외채 수준은 유동성을 증가시키고 소비를 진작시키려는 정책의 결과였다.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경제위기는 경제 팽창을 위해 전세계 각지에서 일사불란하게 진행된 신용거래 자유화와 맞닿아 있다. 경제성장을 자극하기 위한 정책들이 경제 침체를 불러왔고 성장 그 자체가 시장을 붕괴시킨 것이다. 금융부채와 더불어 우리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생태 부채는 끊임없는 소비성장 추구에서 방기되고 부축여진 결과이다. 오늘의 번영이 내일의 번영을 위해 필요한 조건을 손상시키는 금융위기의 대응은 의미가 없다.
소득이 일정 한도(1만5천불)를 넘으면 생활 만족도는 소득이 아무리 많이 늘어 나도 거의 변하지 않는 반면 소득이 아주 낮은 경우에는 소득이 증가함에 따라 큰 폭으로 생활만족도가 높아진다. 빈곤 국가는 성장이 진정으로 의미가 있다. 선진국은 빈곤 국가가 성장할 수 있도록 양보해야 된다.
2050 년이 되면 세계 인구는 90억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최고 예측치는 110억명이다. 90억 명의 인구가 오늘날의 유럽 연합만큼의 소득을 올리려면 40년 남짓 시간동안 6배 성장을 해야 한다. 선진국의 소득 증가가 포함되지 않은 상태에서 매년 3.6 프로의 소득증가를 의미한다. 이 경우 연평균 탄소배출량은 지금보다 55배 낮은 수준이 되어야 한다. 모든 곳의 소득이 유럽 연합 연평균 소득 증가율 2프로에 이른다면 세계 경제는 15 배 가까이 성장하고 탄소배출 농도는 해마다 11 프로 이상 감소해야 한다. 오늘 날의 평균 탄소배출농도보다 거의 130배 낮은 수치다. 2050 년부터 금세기 말까지 해마다 이프로씩 성장한다면 2100 년의 경제는 지금부터 40배가 더 큰 규모가 된다. 이때의 달러당 산소 배출 농도는 마이너스가 되어야 하며 탄소를 대기권 밖으로 내보내야만 할 수도 있다. 90 억 명에 세계를 위해서 지속적으로 소득을 증가시킬 수 있는 확실하고 사회적으로 공정하고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시나리오는 아직 없다.
2008 년 세계금융위기 때 모든 조직에서 한 목소리로 요구하는 것은 소비지출 자극하고 경제를 다시 성장시킬 메커니즘이었다. 경제를 다시 성장 가도에 올려 놓고 소비 의욕을 회복시켜 대중의 소비지출 자극해서 위기를 극복한다는, 지속 가능 하지 않은 생산을 계속해서 이어갈 동력을 재가동시키라는 한결같은 요구였다.
성장 부양을 위한 선택 중 하나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 녹색 뉴딜이다. 에너지와 탄소에 초점을 맞춘 경기부양은 노동집약적이라 효과가 크다. 웃긴 건 이명박 정부의 사대강 삽질을 국제적으로는 녹색 뉴딜로 선전해 댄 모양이다. 저탄소 차량, 청정 에너지와 재활용 등의 산업을 위하 투자가 고용을 창출하고 소비를 늘이면서 동시에 미래에도 지속가능한 삶의 동력을 구축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필수적인 전략이라고 할 수 있으나, 지속적인 소비성장에 토대를 두는한 끊임없는 성장의 추구는 자원의 사용을 계속해서 확대시킬 수 밖에 없기에, 생태 한계가 존재하는 이 세상에 적합한 경제구조를 찾아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는 지속적인 소비시장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안정을 실현하고 경제활동이 생태환경를 넘어서지 않는 거시경제학이다. 계속되는 자원소비의 증가 대신, 공해를 일으키지 않는 에너지 자원, 그리고 환경을 해치지 않는 비물질적 서비스 판매를 성장동력으로 삼을 것을 제안한다. 노동시간의 감소를 통해 일자리를 체계적으로 더 고르게 나누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인간이 모두 이기적인 동기로만 음직인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진화는 인간에게 선택이익을 제공하는, 도덕적이고 사회적이고 이타적인 행동을 배제하지 않는다. 수비 사회의 제도가 갈수록 물질 지상주의와 끊임 없는 소비를 추구하게 만드는 까닭은 그것이 성장에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소비 성장의 구조 속에 갇힌 거시경제를 물질중심의 개인주의에서 탈피시키고 공동체의 생태 한계 안에서 번영할 수 있는 본질적 목표를 추구하는 국가의 역할이 필요하다.
말기암 환자가 보이는, 그토록 몰두했던 소비의 황홀감이 그들에게 더이상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된 후 깨닫게 된다는 삶의 가치는, 나에게도 삶에 대한 작은 가치를 부여해 준다. 이 책이 제시하는 성장 없는 번영은 사회와 제도, 가치관과 철학, 개인의 의식에 걸친 전체의 시스템의 혁명적 변혁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아이들은 윗세대가 떠넘긴 빚과 소비생활의 쓰레기들을 치우며 지구상의 그 어느 때보다도 혼란스럽고 불행한 시대를 천천히 맞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본의 꽃인 기술이 모든 걸 해결해준다는 종교와도 같은 믿음은 이미 종말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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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현실에 너무 무감각하게 살고 있다. 항상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끼며 과잉소비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책의 추천사에 나오는 말처럼, 우리는 소비증대를 통한 경제성장이라는 강력한 마법의 주문에 걸려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굳이 사지 않아도 되는 물건을 소유하고 있고, 사실상 존재의 필요가 없는 물건도 탄생하고 있는 현실이다. 광고를 통해 끊임없이 소비하라고 권하고,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전혀 필요없는 물건임에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마법의 주문에서 깨어나기 정말 어려운 일이다.
말로는 지속가능한 성장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나 개인도 그러지 못하고, 인류 전체를 보아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성장 없는 번영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었다. 주기적으로 이런 책을 읽으며 경각심을 일깨우려고 한다. 개인의 작은 실천으로 지구의 황폐화가 유예될 수 있다면, 기꺼이 불편을 감수하고 살아가겠다는 생각도 했다. 이 책을 읽으며 미래에 이 땅에서 살아갈 사람들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이 책은 영국 지속가능개발위원회가 지속가능성과 경제성장 사이의 관계에 대해 진행한 광범위한 연구의 총결산이라 할 수 있다. 이 연구는 위원회가 획기적인 보고서 <번영 다시 정의하기>를 출간한 2003년에 착수되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웹사이트를 통해 볼 수 있다.
이 책에서는 막연하게만 짐작하며 알고 있던 사실을 명료하게 정리해준다. 관련 서적과 자료는 각주로 확인해볼 수 있다. 딱딱한 느낌으로 쉽게 책장을 넘기지 못하게 하지만, 읽어보는 데에 무리없고, 현실을 생각하는 데에 도움이 많이 되었다. 꼭 알아야할 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 가장 관심있게 보게 된 부분이 생태거시경제학 부분이었다. 현재의 거시경제학적 체제에서, 성장은 실업에 대한 유일하고도 현실적인 해답이다. 우리 사회는 성장이라는 올가미에 꼼짝없이 묶여있다. 더글러스 부스,2004년
우리는 성장이라는 올가미에 묶여있다는 점에 동의한다. 또한 이 책에서 생태학이 결합된 거시경제학이야말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바일 것이라는 점에도 동의하게 된다. 생태 경제로의 이행에 필요한 투자의 세 가지 주요 유형은 다음과 같다.(181쪽) 1.자원효율성을 높이고 자원비용을 절감시키는 투자 (에너지 효율성제고, 쓰레기 감소, 재활용 등) 2.청정 또는 저탄소 기술을 이용하여 전통 기술을 대체하는 투자 (재생가능 에너지) 3.생태계를 강화시키는 투자 (기후 적응성 제고, 조림, 습지회복 등) 생태거시경제학은 새로운 투자 생태학을 정립해야 할 것이다.(184쪽) 개인적인 노력도 물론 필요하겠지만, 사회적 제도상 장기적으로 추구해야하는 것도 필수적일 것이다.
변화를 위한 두 가지 핵심요소는 첫 번째, 경제학을 재정립해 새로운 생태거시경제학을 발전시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소비주의 사회논리에서 탈피하는 것이다. (204쪽) 이를 위해 이 책에서 정부의 역할을 제시한다.
소비사회가 지금 방식으로 지속되면 우리는 재앙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변화가 쉽지 않지만 지금부터라도 변화의 방향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는 현실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부분에서 해결책 제안을 해주기에 생각의 폭이 넓어지는 느낌이다. 무엇이 정답인 것인지는 판단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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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지속적인 성장을 통해 번영을 구가해 왔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더 이상 지속적인 성장이란 게 쉽지 않음을 깨닫기 시작했고, 환상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치기 시작한다. 바로 이런 문제 제기에서 출발한 게 성장없는 번영 희구이다. 우선, 고도성장을 줄곧 견지해 왔던 선진국들부터 자성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그런 가운데 영국의 지속가능개발위원회의 ‘번영 다시 정의하기’ 프로젝트는 그 구체적 행동지침에 대한 논의에 착수하여 보고서를 채택하였으며 이 책은 바로 그 내용을 담고 있다. 크게 네 가지 관점에서 진행된 프로젝트 내용을 들여다보면, 1) 번영의 전망을 내다보고, 2) 자원처리량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으로부터 경제발전을 디커플링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고, 3)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정상상태 경제에 대한 장애요인, 구조적 원인에 대해 알아보고, 4) 번영, 경제발전, 행복, 정신적 만족 사이의 관계에 대한 탐구를 표방한다. 이러한 기치하에 다루어지고 있는 게 이 책의 전반적인 구성이다. 성장없는 번영이란 지속가능한 모델을 만드는 것이며, 이를 위해 그 동안 성장중심의 소비주의, 자본주의 병폐등을 살피고 그에 대한 대안으로서 하나하나 기술해 나가고 있다. 이제부터 차근차근 살펴보고자 한다. 번영(prosperity)이란 우리의 희망과 거래대로 순조롭게 풀려나가는 것을 의미하는 데 굶주림, 무주택의 문제를 타개, 가난, 부정 척결, 안전과 평화로운 세상을 꿈꾼다. 그러나 행복한 삶을 바라는 우리의 열망과 유한한 지구가 지닌 한계가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과제가 놓여있다. 아직도 후진국은 GDP를 번영의 척도로 삼고 있지만 세계는 마치 빈곤위의 바다위에 번영의 섬들이 떠있는 형국처럼 위태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그리고 세계인구의 20%가 소득의 2%, 상위20%가 소득의 74%를 차지하고 있는 불평등은 점점 심화되고 있다. 한편 주 에너지원인 석유는 고갈 직전이고, 광물 가격 역시 고갈이 예측된다. 또한 기후변화와 관련하여 온실가스 배출량 감소 의지를 담은 교토의정서는 선진국에 의해 무력화되었고 허용치인 450ppm에 육박하고 있다. 이처럼 성장에 걸림돌이 되는 여러 문제와 직면, 해결책은 오직 성장 없는 번영을 추구하는 길이다. 번영은 유한한 지구의 생태 한계 안에서 우리가 인간으로서의 성취를 이루어 나갈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p.33) 번영의 개념을 세부적으로 들어가 보면, 번영과 행복 사이에는 연관성이 있다. 아마르티아 센은 번영에 대한 개념을 세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부유함, 효용, 자기실현(flourishing) 능력이 그것이다. 부유함은 물질적인 만족을, 효용은 양이 아닌 질적 효용, 다시말해 한계효용으로, 자기실현 능력은 철학자 마사 너스바움이 주장한 가장 중요한 인간 능력의 목록으로 신체건강한 삶, 폭력적 공격으로부터 안전도모 가능한 신체보존, 좋은 삶에 대한 개념을 형성할 수 있는 실천적인 이성, 다른 사람과의 관계 모색을 위한 소속감, 놀이, 주변환경에 대한 통제를 들고 있다. 이는 대체로 번영이란 자기실현 능력을 의미하며 결국 물질적, 사회적 조건의 제약을 받는다는 데 이의가 없다. 하지만 이런 번영을 갈망하지만 한계에 봉착해 그동안의 성장과정에서 노정되어온 다양한 문제에 직면한다. 자원고갈, 생태환경 파괴, 지구온난화, 빈부격차심화로 인한 대립구도, 생태관련 부채 만연등 더 이상 고도성장은 환상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러므로 번영에 대한 정의부터 다시 설정에 들어갔으며 성장의 딜레마에 빠져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의 신화가 탄생하기도 하고 소비주의 철창에 빠져 허우적대는 자본주의 모순도 발견하게 된다. 그러면서 서서히 녹색 뉴딜 방안이 마련되고 생태 거시경제학을 태동시킨다. 바로 한계를 인정하고 그 속에서 다시 번영을 생각하는 것이다. 정부의 역할은 거버넌스(governance:주민참여예산제)를 추구하고 지속가능한 경제로의 이행과 번영 지속을 위한 장치 마련의 과제를 안고 있다. 참고로 이 책에 등장하는 주요 개념 관련하여 정리하면, 1) 생태거시경제학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거시경제학의 방향은 서비스기반활동으로서의 구조적이행, 생태적 자산에 대한 투자, 안정화 메카니즘으로서의 노동시간정책을 표방하며, 생태거시경제학은 지속적인 소비성장에 의존하지 않고 안정을 실현하며, 생태 한계 안에서의 자기실현 능력을 성공의 척도로 삼는다. 생태기업을 표방하며 지역사회 에너지 계획, 가까운 농촌과 연계한 직거래장터, 슬로푸드협동조합, 스포츠클럽, 도서관, 지역사회 건강, 운동센터, 지역수거 정비서비스, 마을공방, 창작교실, 수상스포츠, 지역문화센터, 지역기능훈련소, 요가, 명상, 무술, 미용, 정원가꾸기등이다. 캐나다 피터 빅터 생태경제학자가 제시한 투자의 초점을 보면 자원생산성 향상, 재생가능에너지, 청정기술, 녹색산업, 기후적응성향상, 생태계 강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 2) 녹색뉴딜 관련하여 언급하면 녹색 부양책인 일자리 보호, 경제회복, 에너지 안보, 기술혁신, 지속가능한 미래보장의 기치하에 2009년 합의된 녹색 뉴딜은 공공부문의 투자방향을 에너지 안보로 전환하여 저탄소기반시설, 생태계보호에 투자한다. 그 효과로 에너지 비용, 재료비절감을 통해 얻어지는 자금을 가계지출과 기업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투자에 사용, 지정학적 불리함에 따른 에너지 공급 취약성 해결 및 수입의존도 줄이기, 환경산업부문 확대, 일자리창출, 지구대기 안정화를 위한 탄소배출량 감소 목표치 대폭강화, 다음세대위한 생태자산보호 및 생활환경질개선등 3) 지속가능한 경제로의 이행을 위한 과제로 한계 설정하기, 경제모델고치기, 사회논리변화시키기등이다. 한계 설정 관련해 자원이용 및 배출한도설정, 지속가능성 위한 재정개혁, 개도국 생태적 이행에 대한 지원 경제모델고치기 관련 생태거시경제학 개발, 일자리, 자산, 기반투자시설투자, 금융, 재정건전성 높이기, 국민계정 개선하기 사회논리변화시키기 관련, 노동시간 나누기정책, 구조적 불평등 없애기, 능력과 번영의 측정, 사회적 자본 강화하기, 소비문화 해체하기등 4) 성장없는 번영은 정원가꾸기, 걷기, 음악듣기, 독서, 자방적인 간소함, 외부의 소란 피하기, 목적있는 삶을 사려깊게 조직하기, 계획공동체(핀드혼 공동체, 영상수행공동체, 다운시프팅운동) 의식있는 가정과 공동체는 사회변화를 위한 실험실로서 생태 한계안에서 번영을 이룰 가능성을 찾아다니는 데 없어서는 안된다(p.197) 5) 번영을 위한 핵심요소, 거버넌스(governance:번영을 위한 거버넌스는 민주적인 위임을 확립하고 변화를 가져오는 가운데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야한다. p.217 주민참여예산제, 민관참여방식)는 경제학을 재정립해 새로운 생태한계 내에서 경제활동을 전개, 소비성장에 기대는 구조적의존성 약화시킬 메카니즘 발굴해야한다. 소비주의 사회논리에서 탈피하여 필수 재화에 대한 안정적 공급시스템 확보 및 지속가능한 방식 추구 6) 번영의 지속 관련해 소비주의 영향력 차단, 신상품 욕구 저지, 사회생활에 의미있게 참여할 수 있는 능력, 검소함, 간소함, 사회재도 재편, 공공재 투자, 자기실현가능성, 취업을 통해 얻는 생계수단, 사회생활참여, 안전확보, 소속감, 개인잠재력실현능력, 평등사회, 생태기업 활성화, 탄소배출농도감소 7) 변화를 위한 과제, 생태한계설정, 성장지상주의경제바로잡기, 파괴적인 소비주의 사회논리 변화 시간 없다는 핑계 속에서 1주일 동안 잡고 있었는 데 결국 어느 한계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지속가능한 성장을 구가하고 번영을 희구하는 게 이 책의 목표이어서 조금은 기존 관념으로 볼 때 씁쓸함 혹은 소박함을 느끼게 한다. 지구공동체, 지구인이란 개념이 와닿는 이 책에서 앞으로 나아갈 인류의 방향을 찾아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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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익숙한 경제적 가치체계에서 성장없는 번영이란 제목은 모순되기는 단어의 합치와 같지만, 책은 문제제기, 번영에 대한 철학적 의미의 재정립, 현재 성장중심이란 자본주의의 근간에 대한 한계점의 고찰,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경제정적책과 대안적 경제정책의 비교, 생태경제학의 필요성에 대한 논거, 다시 재정립된 번영을 위한 국가적 정책대안등에 대해서 상당히 잘 기술되어있다. 책을 보면서 멈출수 없는 자본주의를 상징한 설국열차가 다시 떠오르고, 마지막 북극곰이 책의 말처럼 생태경제학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면 책을 보는 재미가 더 있을 것 같다. 책이 발행된 2009년이 2008년 금융위기의 시점에, 각 나라의 리더들이 지적한 통찰을 보다 세밀하게 보았다는 점이 신선하고,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점에서 책을 본다는 것은 읽는 사람 스스로 세상에 요청되는 변화의 내용과 책의 내용을 비교하며 보기에도 적합하다. 약간의 수식자체가 껄끄러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덧셈, 뺌셈과 각 이니셜이 갖는 의미파악이 잘 설명되어있으며, 사회시간에 배우 경제관련 기초 상식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도록 읽는 사람을 더 많이 배려했다는 생각을 한다. 책의 목적인 개별적 자유방임에 입각한 성장중심의 경제에서 더 큰 통찰적 의미를 갖고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촌의 자원환경의 유한성(책에서는 decoupling 탈동조화로 설명됨)과 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일반적인 경제적 변영의 근간이 될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성장추구 속에 반영되지 않거나, 계량화되지 않는 많은 부분에 대한 통찰을 말하고 있다. 이것을 바탕으로 성장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기 보다는 금융위기란 역사적 사건을 반추하면서 생태경제학적인 통찰로 확장된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그럼으로 이 책의 이면에서는 자유와 평등사이에서 철학적 고뇌가 동시에 존재하기도 하고, 성장이 아닌 번영(prosperity)와 자기실현(flourishing - 번영이 사회적으로 확장된 개념)을 통해 케인즈주의에 대한 개선대안으로 녹색뉴딜(생태경제학적 정책)의 중요성을 동시에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설국열차를 세울만한 완벽한 대안의 어려움을 솔직하게 인정함과 동시에 이성적인 판단을 기준으로 우리가 고려해야만 하는 기초적인 핵심에 집중하고자 책임감을 말하고 있다. 현실에서 우리가 성장에 대한 동경과 안빈락도의 삶을 동시에 꿈꾸며 그 사이를 오가는 모습에서 방황보다는 하나의 방향성을 갖아보자는 의견이라고 판단된다. 이 책을 보면서 인간은 땅을 파먹고 사는 존재임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모든 자원은 땅으로부터 나오고, 경제규모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면서 무한하다고 생각하던 것들이 언제까지 사용이 가능한가 또는 한계비용에 대한(예를 들면 채굴비용이 막대한 증가) 고민이 시작되는 시대에 도달했다는 점이다. 사실 요즘은 과소비의 시대라기 보다는 낭비의 시대라는 생각이 든다. 수업이 폐기되는 팔리지 않는 제품, 반값에 팔리는 백화점 매대의 브랜드도 연장선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자유에 기반한 자유로운 경제활동과 욕구라는 본능과 이를 확장하고자 하는 욕망을 갖고 있다. 반면 사회적 동물이란 입장에서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평등에 대한 이성적 고려를 동시에 하고 있다. 비록 임금을 생산성을 위한 투자의 입장에서 접근할 것인가 비용으로 접근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차치하더라도..책에서 언급된 성장의 한계는 성장을 위해서는 소비가 늘어야하고 소비가 늘려면 임금이 늘어야하고 기업은 다시 비용이 상승하는 단순한 구조로 설명이 가능하며, 생산을 늘리기 위해서 보다 많은 자원을 소비할 수 밖에 없음으로(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신의 범위라 생각한다), 노동생산성(기술의 발달, 효율)의 증가는 노동력의 투입을 자연스럽게 축소하기 때문에 지속적인 성장은 한계를 갖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자유로운 활동을 계속 부양해야하는가 아니면 현재의 한계를 인식하고 자성적인 절제의 활동과 그 욕망을 보다 범인류적인 가치활동으로 전환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라고 생각한다. 경제활동인구의 범위에 포함된 입장에서 성장은 인간의 본성에 기반에 욕망이기에 더 많은 비율이 될수밖에 없다. 세상에 보편적인 보수주의가 진보보다 많은 것은 보다 본능적이라는 부분이며, 진보적이라는 것이 보다 이성적이기도하고 또는 통찰에 기반한 불편한 사실을 재잘거린다는 것이다. 역사속에서도 진보적인 인물들이 시대의 사고를 앞서는 것은 보다 스마트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속에 그들의 역할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경제가 인간과 같이 유기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고 가정해보면, 사람은 육신의 성장에 제한이 있다. 계속 성장한다면 거인병과 같은 부작용이 있고, 육체이 성장이 이루어진 후에는 지적소양 또는 질적 성장의 단계로 가는 것과 유사하다. 이솝우화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풍선을 계속 키우면 터지고, 흙을 계속 쳐서 조그맣게 하면 단단해 진다. 성장중심의 경제에 나는 아직도 손을 들어주고 싶다. 책의 말처럼 번영이란 신화속의 이데아나 고전속의 삼황오제시대로 회귀하고자 함이 아니다. 번영이란 물질적 성장의 가치인식체계를 보다 고차원적인 수준으로 이끌어 올리는 일이며, 이 과정에서 생태학적접근과 같은 통찰은 과도한 성장중심의 경제가 균형과 절제가 필요한지를 성찰하게 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과도한 자유가 타인의 안전을 위협하는 독제를 허용하지 않듯이 지나친 평등으로 모든 사람이 종교인과 같은 절제속에서도 살수도 없다. 어쩌면 풍요로운 시절에 자유의 발현이, 엄혹한 시대에 평등에 대한 자각으로 통해서 서로 또 상생하고 균형을 잡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꼭 책의 언급과 같이 생태경제학이 중요한 현재의 가치인식이란 점을 동의하면서 모든 것을 아우를것이라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이 책을 통해서 한가지 더 많이 배울 수 있는 점은 현재 사회에서 많이 부각되고 있는 주제들과 관련하여 그들의 대립이면에 흐르는 다양한 생각을 동시에 많이 접할 수 있다. 판단은 스스로 하는 것이지만, 하나만 알때보단 양쪽을 보고 판단하면 보다 지혜롭다는 생각을 하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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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 간 우리는 기존의 초강대국과, 동과 서의 역사가 통합되기 전 한쪽 반구의 정치군사적 패권, 문화, 경제적 주도권 그 모든 것을 지녔, 잠시 주춤했으나 지난 굴욕을 딛고 다시 패자(覇者)의 위치로 거듭나려는 다른 거인 사이에 벌어진, "전쟁"을 목격했습니다. 쑹홍빙이라는 이는 이를 두고 "화폐전쟁"이라는 타이틀 아래 네 권의 책을 잇달아 펴 내기도 해서, 진지한 독자와 그저 흥미만 추수하려는 독자 모두의 이목을 사로잡은 바 있습니다. "화폐전쟁"이란, 다름이 아닌, 누가 돈을 더 많이 찍어 내는가로 당장의 무역 수지를 개선하려는, 천박하고 유치한 치킨 게임이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힘이 강하다는 두 나라가, 눈 앞의 쌈짓돈 얼마에 눈이 멀어 체면이고 뭐고 다 집어 던진 채 골목 쟁패전을 벌인 것입니다. 강대국의 경솔한 행동을 비난하고 모럴이 땅에 떨어진 세태를 탄식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한편으로 국가가 추구해야 할 그 어떤 목표보다, 경제적 실리가 현 시점에서 우선이라는 냉엄한 진리를 반증한 대목이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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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를 통해 제공 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간서치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경제학 서적에서는 보통 “경기가 위축되었다”라고 말하거나 “성장둔화”, GDP(국내 총생산)지수가 낮아졌다고 말한다면, 이에 대한 해결책은 긴축재정(정부가 돈을 풀어야 한다)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를 반기가 드는 책이 나타났다. 그 책이 < 성장 없는 번영>이다. 조지 소로스는 <금융시장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는 책에서, 자신이 금융시장의 ‘슈퍼 버블’이라고 부른 현상이 나타난 것은 유동성을 증가시켜 소비를 진작하려는 일련의 경제 정책에 따른 것이라고 봤다. 미연방준비제도 이사회의 방만한 운영, 금융시장에 대한 규제완화, 복잡한 금융 파생상품을 통한 부채의 금융증권화 등은 의도된 조치였고 그 최우선 목표는 경제성장 촉진이었다는 것이다. (51쪽) 유동성을 증가시키는 것은 정부는 돈을 푼다는 이야기이고, 소비자가 더 소비하게끔 만든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미국의 버블이 터졌을 때 국가는 기업을 살려주고 그 돈은 분명 소비자가 낸 세금이었다. 세금은 또 오를테고, 그때마다 국가는 기업을 살려주겠지. 그것보다 ‘왜 저성장을 꿈꾸지 않는가? 회복이 필요하지 않는 가?’라고 저자는 묻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정말 국가까지도 망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요즘 텔레비전을 통해서 보고 있다. 우리나라도 국가 부채가 상상할 수 없는 범위 1조원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는 국가도 한 기업처럼 부채가 있으면 좋을 리 만무하다. 나라는 분명 세금이라는 것을 통해 또 이를 국민에게 대신하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긴축재정을 할 것이 아니라 회복을 위해서 덜 쓰는 것은 어떠한가. 왜 우리는 경기가 어려우면 더 쓰라고 강요하는가. 이 점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분명 이점은 내가 배운 경제학을 깨부수는 이야기였다. 언제나 정답은 긴축재정이라고 나와 있었는데 말이다.
자원투입은 생산자에게 비용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이윤 추구의 동기는 투입원가를 줄이기 위해 지속적으로 효율성을 향상시키는 노력을 하도록 자극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사례들이 있다. 예컨대, 세계에서 생산된 생산물 각 단위당 들어가는 주요 에너지의 양은 지난 반세기에 걸쳐 지속적으로 감소해왔다. 현재 세계의 ‘에너지 집약도’는 1970년보다 30%이상 낮아졌다. (95쪽) 상대 디커플링이라는 개념이 나온다. 환경을 덜 파괴하면서 더 많은 경제활동을 하는 것이다. 책에 나온 그래프에 따르면 상대디커플링은 지수가 낮아지고 있고 국가별 GDP대비 CO₂의 농도는 중국이 낮아지고 있지만 2000년을 기점으로 조금씩 다시 오르고 있는 추세이다. 그리고 다른 국가들 모두 낮아지는 추세보다는 일정한 추세를 보이고 있다. 저점에서 더 낮아지지도 않고 유지하는 형태인 것이다. 화석연료의 위험과 고갈은 익히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런데도 나라별로 노력하고 있으나 최대한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프가 말해주고 있다. 창조적 파괴의 순환 주기는 이전보다 더욱 빨라졌다. 소비재의 내구성을 외면하면서 상품의 수명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생산을 늘리는 데에만 열중하여 품질은 여지없이 희생되고 말았다. 마구 쓰고 버리는 사회가 된 것은 소비자의 탐욕보다는 생존을 위해 다른 방도를 찾을 수 없는 사회구조가 만들어낸 결과이다. 신상품은 경제성장을 이끄는 첨병이 되었다. (129쪽) 경제성장을 위해 정부는 기업을 장려한다. 경제성장은 정부의 목적인 것처럼 보일 때도 많다. 나도 경제성장을 해야 기업이 살아나고 기업이 살아나야 고용창출이 된다고 배웠다. 그런데 기계가 사람을 대신하는 시대이고 기업이 성장해도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을 양산한다. 외국은 비정규직이 정규직과 금전적 차이가 없다지만 우리나라는 차이가 월급에 2배에 달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또, 사람들은 신제품을 광고, 신제품을 구매한 사람들을 통해서도 유혹이 되는데 정책이 장려하고 있으니 이는 국가를 위해서라도 그래야 할 것같이 보인다. 그리고 우리가 가진 제품들은 아직 수명이 다하지도 않았는데 새로운 제품을 보니 그것을 사야할 것 같다. 나 또한 그래야 할 것 같아 신제품에 기웃거리게 된다. 각성하고 다시 보면 지금 집에 있는 텀블러로도 계속 사용해야 할 것 같다. 정부의 역할은 시민들이 생태 한계 안에서 번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주장하고 싶은 것은, 정부는 현존하는 제도와 기관을 물질 중심의 개인주의에서 탈피해 중심을 이동시키고, 사람들에게 가족과 우정, 공동체라는 본질적 목표를 추구할 수 있는 진정한 기회를 제공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217쪽) 결국, 정부가 움직여야 변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기업을 통제하는 것은 정부밖에 할 수 없다. 국민을 방향을 전환하는 것도. 정부를 움직이는 것도 국민인 것을 시사한다. 생각해보면 규제가 없다면 기업은 환경적인 제품보다 돈이 되는 제품을 생산할 것이다. 규제안에서 자유롭게. (지금도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정부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그리고 보다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야 국민이 안심하고 살 수 있을 것이다. 생태경제학은 사전적 정의로 경제학을 생태계의 일부로 바라보는 것이다. 생태계라고 한다면 지금은 생태불균형의 상태이다. 생태계는 깨졌다. 깨진 것을 바로 잡으려면 회복이 필요하다. 무조건 성장을 부르짖는 이론은 깨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성장을 부르짖다 망해버렸으니까. 이제는 회복을, 저성장을, 환경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는 알면서도 마치 안대를 쓴 것처럼 이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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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생태경제학자로 생태거시경제학을 주창한 저자가 쓴 책이라 그런지 주로 경제관련 통계들과 경제 이론들이 등장하고 있다. 허먼 데일리라는 사람이 30여 년 전에 주장한 이른바 정상 상태 경제라는 것이 생태거시경제학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데, 생태계의 재생능력과 자정능력 안에 머무르는 낮은 수준의 자원처리량으로 유지되는 경제 모델을 일컫는다. 즉, 일정한 물적 자본의 양을 유지하며 지속가능성을 실현하는 경제를 말하는 것인데,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이런 것을 배우지도 않았다고 설파하고 있다. 이 책의 부록에서는 케인스 모형을 사용하여 생태거시경제학을 따로 개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어쨌든 이 책은 현재 우리의 기술, 경제, 사회적 열망이 어느 것 하나 번영의 본 모습에 전혀 다가서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끊임없이 팽창하는 물질에 대한 욕구를 바탕으로 우리를 재촉하는 사회 진보 역시 근본적으로 지지받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책은 행복한 삶을 바라는 우리의 열망과 유한한 지구가 지닌 한계가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방법들을 여러 각도에서 고민한 이야기들을 펼쳐내고 있다. 많은 경제학자들에게 성장 없는 번영이라는 개념은 저주라면서 지금까지 GDP 성장은 매우 당연한 것이라 생각되어 왔지만, 성장은 그것이 가져다준 혜택을 아무리 잘 봐준다 해도 다른 한편으로 불평등을 수반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앞으로 세계 인구가 90억 명이 되는 시점에 그들 모두가 OECD 국가에서 기대하는 만큼의 풍요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경제규모는 2050년까지 지금보다 15배 이상, 금세기말에는 40배 이상이 되어야 하는데 이러한 규모의 경제성장은 불가능하다고 못 박고 있다. 이에 앞서 저유가 시대의 종말, 상품가격의 지속적 상승, 공기와 수질, 토질의 악화, 토지, 자원, 물의 이용과 임업권, 어업권 등 분쟁, 기후변화를 진정시켜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생태계 파괴와 사회 부정의를 기반으로 한 소수를 위한 번영으로는 문명사회가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러면서 모든 나라에서 성장을 포기해야 할 까닭은 없지만 선진국은 빈곤국가가 성장할 수 있도록 대폭 양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게다가 이 책에서는 자원효율성 제고, 재생가능 에너지의 활용과 자원처리량의 감소는 모두 경제활동의 지속가능성을 유지하는데 중요하지만 탄소 배출의 대폭적인 감축과 자원 절감이 시장경제 구조에 맞서지 않고도 달성될 수 있다는 가정은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유해한 소비 지상주의 논리에서 자유로워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가치, 생활양식, 사회구조가 바뀌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특히 본질적인 가치를 더 중요시하는 사람일수록 물질주의적 가치를 지난 사람들보다 더 행복하고 환경에 대해 더 높은 책임감을 지닌다면서 자발적 간소함을 실천하고 있는 공동체들의 사례를 들고 있다.
이렇게 소비주의 사회논리에서 탈피하려면 필수 재화에 대한 기본적이고 안정적인 공급시스템을 확보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매우 폭넓은 차원의 거버넌스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거버넌스는 한계를 설정하고, 경제 모델을 고치고, 사회논리를 변화시키는 순서로 진행되어야 하며, 자원이용 및 배출 한도 설정, 생태세 등 재정개혁, 생태거시경제학 개발, 생태투자를 통한 일자리 창출, 노동시간 감소 정책, 구조적 불평등 없애기, 사회적 자본 강화, 소비문화의 해체 등을 그 과제로 들고 있다. 이 책을 통해 경제적 산출 단위당 상태집약도의 감소를 나타내는 상대 디커플링과 자원소비량이 절대적으로 감소하는 절대 디커플링을 비롯해 다양한 셈법들을 접할 수 있었다. 특히 가장 녹색적인 부양방안으로 대한민국의 이명박 정부 사례를 들고 있는데, 옮긴이가 이는 진정한 녹색부양책이 아니라고 토를 달아놓았다. 전반적으로 성장 위주의 경제를 뒤집어 보는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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