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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리아는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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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의 여름 빙하가 극적으로 줄어들었던 2007년 12월, NASA의 기후과학자 제이 즈왈리는 "북극은 종종 온난화의 '탄광 속 카나리아'라고 불렸다. 지금은 온난화의 표식이었던 카나리아가 죽었다. 모두가 탄광에서 나와야 하는 시점이다."라고 경고했다. 너무나 적절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최근 선진국들이 배출하는 온실가수의 증가량은 1% 미만으로 낮아진 반면, 개발도상국들은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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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의 여름 빙하가 극적으로 줄어들었던 2007년 12월, NASA의 기후과학자 제이 즈왈리는 "북극은 종종 온난화의 '탄광 속 카나리아'라고 불렸다. 지금은 온난화의 표식이었던 카나리아가 죽었다. 모두가 탄광에서 나와야 하는 시점이다."라고 경고했다. 너무나 적절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최근 선진국들이 배출하는 온실가수의 증가량은 1% 미만으로 낮아진 반면, 개발도상국들은 2000년대 들어 중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매년 11~12%씩 증가하는 것과 더불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2005년에 중국은 이미 전 세계 온실가스 발생량의 18%를 배출했고, 2030년에는 33%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고 한다.

1990년대 이후 서구 사회의 높은 에너지 효율과 점진적인 저탄소 에너지로의 전환이 온난화 현상을 방지할 것으로 여겨졌지만 이런 희망은 중국, 인도, 브라질과 몇몇 개발도상국들의 경제발전으로 사라지고 있다. 2000년 이후 개발도상국들의 석탄 사용량은 매년 10퍼센트씩 증가하고 있다. 이처럼 세계는 탈탄소화가 아닌 탄소사회로 빠르게 이행하고 있으며, 석탄 발전을 멈춰야 하는 지금도 계속해서 탄소를 배출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300만 년 동안 지구의 대기는 이런 탄소 순환을 통해 다양한 생명체의 번성에 적정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300ppm 이하의 이산화탄소 농도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지난 2~3세기에 걸쳐 전개된 인류의 산업 활동은 그 균형을 무너뜨렸다.

마침내 올해 5월,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400ppm을 넘어섰다. 이를 더 자세히 살펴보면 1870년 280ppm이었던 이산화탄소 농도가 불과 143년만인 올해 400ppm을 넘어선 것으로 이 추세라면 기후 평형이 깨지는 시점은 2050년 전후가 될 것이라고 한다.

 


저자는 기후변화에 국제적으로 대응하거나 온실가스 배출량을 ‘안전한’ 수준에서 안정시키려면 탄소 순환의 피드백 효과를 고려한 절감 정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IEA(국제에너지기구)는 만일 세계 정부가 지금 하고 있는 수준 이상의 어떤 정책도 고려하지 않는다면 이번 세기 말까지 지구의 온도가 약 3.5℃ 이상 오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문제는 지구의 평균온도가 산업화 이전의 평균온도에서 약 2℃만 올라도 매우 위험한 상황이 펼쳐진다는 데 있다. 섭씨 2도의 온도 상승은 기후에 민감한 지구 시스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거나 비가역적 변화를 유발한다고 한다.

그런데 3.5℃라니? 어느 정도인 것일까? 최종적으로는 북극과 그린랜드의 빙하대륙, 남극의 얼음은 물론 그 어디에도 얼음이 없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한다. 해수면 상승에 따른 저지대 침수는 말할 것도 같고, 곤충 등 병원체매개 숙주의 변화로 질병의 대유행도 예상된다. 어디 이뿐인가? 히말라야의 빙하 유실은 기나긴 건기로 이어져 많은 지역의 물 공급이 끊어지고 기근이 이어질 것이다. 환경 적응에 실패한 생물체의 대멸종도 예상된다.

하지만 우리는 일찍이 프로이트가 말한 ‘부적응‘ 대응 방식을 취하며 애써 무관심하려 한다. 우리는 신문을 보거나 뉴스에서 지구온난화가 너무 많이 언급되면 당황스러운 나머지 차단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저자는 이를 좀더 세부적으로 분석한다. 정치 성향과 연관지어 보면(그림), 온난화가 현실적이고 심각한 위험이라고 생각하는 '경고' 집단의 48%는 스스로 정치적으로 진보적이라고 정의했으며, 14%는 자신이 보수적이라고, 나머지 38%는 중도적이라고 정의했다. 온난화를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고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충분한 정보가 있다고 생각하는 '무시' 집단은 76%가 스스로 보수적이라고 생각했다고 단 3%만 자신이 진보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림] 온난화 인식에 따른 보수적, 진보적 성향의 분포 (153쪽)


결국 지구 온난화 등 환경주의 관점에서도 좌파와 우파가 명확히 구분되는 것이다. 우리의 현실도 그렇듯이 미국에서도 경고 집단은 비용이 들더라도 경제성장보다는 환경보호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80%), 무시 집단은 환경문제가 발생해도 경제성장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90%). 하지만 그 부담과 피해는 저소득층과 빈국에 더 크게 전가될 것이다.

사실 나 역시 그렇지만, 우리는 은연중에 세계를 기계적으로 이해하고 기술의 진보에 기반한 성장이 지구온난화 문제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문제의 심각성은 지구온난화 등 환경 변화는 비가역적이어서, 되돌리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가령 생명체의 대멸종은 어떻게 할 것인가? '쥐라기 공원'처럼 복원하면 그만일까? 그렇다면 가뭄과 기근으로 고통 받을 동부와 남부 아프리카 지역은 어떨까? 선진국이 식량을 지원해 줄 리는 만무하다.

저자는 기후변화의 위험은 결국 지구온난화를 악화시키는 소비적 가치들을 더 부각시킬 것이라고 우려한다. 즉 물질주의는 기후변화를 악화시켰고, 기후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더 많은 물질주의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기후변화를 언급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아니라고 단정한다.


또한 지속되는 기후변화는 이제 우리의 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안정과 번영, 문명화된 공동체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고 우려하면서,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고 지구 파괴를 가속화하는 기후 재앙의 주범들을 보호하고 있는 법을 무너뜨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상적인 민주주의 과정과 윤리적인 행동을 통해 우리의 안전성을 회복하도록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 저자 클라이브 해밀턴이 책 발간(2010)과 관련하여 인터뷰하는 장면


나는 이 책을 통해 인류가 직면한 최대 위기의 하나인 지구 온난화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수 있었고, 그저 막연히 알고 있던 내용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었다. 저자의 말대로 뜻있는 시민들이 나서야 하지 않을까? 나도 투표를 통해 정치를 바꾸고, 환경 운동을 통해 우리 모두 함께 지구 살리기에 적극 동참해야겠다.
 

 

YES마니아 : 로얄 h*******c 2013.10.15. 신고 공감 16 댓글 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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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5] 죽어가는 우리 미래를 바꾸기 위해
"[14-45] 죽어가는 우리 미래를 바꾸기 위해" 내용보기
기후변화(Climate Change), 무엇이 진실인가?   인간에 의한 지구온난화(이하 지구온난화) 혹은 기후변화가 논란이 되고 있다. 보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이산화탄소에 의해 지구의 기온이 변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하되, 인간의 영향이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동인(動因)으로 작용할 만큼 큰가 아닌가에 대해 여전히 논쟁이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어쨌든 지구의 평균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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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Climate Change), 무엇이 진실인가?

 

인간에 의한 지구온난화(이하 지구온난화) 혹은 기후변화가 논란이 되고 있다.

보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이산화탄소에 의해 지구의 기온이 변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하되, 인간의 영향이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동인(動因)으로 작용할 만큼 큰가 아닌가에 대해 여전히 논쟁이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어쨌든 지구의 평균 기온이 상승한다면, 인류가 통제 가능한 범위는 어디까지 일까?

과학자들은 그나마 기후 재앙을 다스릴 수 있는 마지노선으로 잡고 있는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가 450ppm1)이라고 한다. 하지만, 저자는2007년에 온실가스 농도는 이미 463ppm에 이르렀고, 공기 속에 떠다니는 미립자의 냉각 효과까지 고려했을 때는 396ppm이었다.2)고 하면서, 대기오염이 없었다면 이미 우리는 기후변화를 통제할 수 있는 티핑포인트를 지나쳤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면서 사태 악화를 조금이라도 완화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삶의 질을 포기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다시 말하면, ‘경제성장’에 대한 집착(2장 성장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과학만능주의’에 대한 맹신(6장 기술이 우리를 구원할 것인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 인간이 지구온난화의 주된 원인이라는 주장이 진실이라고 확정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자료로 판단할 때 기온변화의 원인이 인간일 가능성이 그렇지 않을 가능성보다 높다고 한다. 따라서 우리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보다는 안전할 때 위기를 생각한다는 ‘거안사위(居安思危)’의 자세가 필요하다.

 

 

왜 기후변화(Climate Change)의 ‘진실’을 외면할까?

 

앞에서 지구온난화의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기후변화의 진실을 받아들이지 않을까 ’라고 의문을 던지고 있다.

일단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중반까지 소() 빙하기가 다가온다고 온갖 호들갑을 떨었다가 자료의 축적에 따라 180도 입장을 바꿔 지구온난화를 주장하고 있는 현실을 떠올릴 수 있다. 현재는 지구온난화 가설이 대세지만, 지구한랭화 가설처럼 자료의 축적에 따라 결론이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저자와 같은 지구온난화론자들의 책임이다. 지구온난화론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연구기관인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가 정치적 목적에서 보고서를 조작했다는 의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 이른바 '빙하게이트(2035년이면 히말라야 빙하가 모두 녹는다는 예측이 거짓으로 드러난 사건)', 그리고 기후게이트(대학 연구소의 책임자급 과학자가 지구온난화를 지지하지 않는 논문들은 고의적으로 배제하자고 동료에게 떠들어댄 내용이 적힌 이메일 유출) 등이 잇따라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빙하게이트가 충격을 준 기간에 실시된 여론조사는 지구온난화 대책에 대한 시급성에 대한 신뢰는 물론, 이론 자체에 대한 신뢰마저도 추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9 12 24~2010 1 3일 미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서 기후변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믿는 응답자는 2008 10 71%에서 14%포인트나 하락한 57%로 나타났다.

또한 지구온난화가 인간의 활동이 주된 원인으로 초래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10% 포인트 하락한 47%로 조사됐다. 지구온난화에 대해 '어느 정도' 또는 '상당히' 우려한다는 사람은 13% 포인트 하락한 50%에 그쳤다.

이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기후변화와 관련해 과학자, 정치인, 언론에 대해 불신이 늘고 있다. 과학자들에 대한 신뢰는 83%에서 74%로 하락하고, 기후변화를 보도하는 주류 언론에 대한 신뢰는 47%에서 36%로 떨어졌다.3)

 

심지어 저명한 환경보호론자이자 미국의 前부통령이었던 엘 고어의 이율배반적인 행동은  자신의 저서인 불편한 진실에 대한 진정성마저 의문을 갖게 한다. , 지구온난화가 인류에게 재앙이 된다는 것을 경고하면서 우리에겐 절약용 전구를 사고, ()에너지 냉장고를 구입하라고 외쳐대던 그가 미국 평균 가정의 20배에 해당하는 전기를 사용하는 등 에너지 과소비를 하였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저자가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들이 실망스러운 결론에 도달한다고 걱정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저자의 주장대로 인간이 지구온난화의 주된 원인이라는 주장이 진실이라고 해도, 미래를 위해 현재 자신이 누리는 안락함을 포기하고 싶은 사람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현재의 자료로 판단할 때 기온변화의 원인이 인간일 가능성이 그렇지 않을 가능성보다 높다는 점을 감안하여, 우리는 기존의 패러다임을 버려야 한다. , 지금까지 자연/환경을 길들이고 정복할 대상으로 보아왔던 관점을 버리고 자연/환경을 조화를 이루고 더불어 살아가는 동반자로 보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책임하게 지금까지처럼 기후변화에 대한 국제간 협의 혹은 국가에 지구온난화에 대한 대책을 떠넘기고 현재의 안락함을 누리는 것에만 신경 쓰는 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좌/우 혹은 진보/보수 모두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우리 모두 뼈를 깎는 심정으로 미래를 위해 현재의 ‘성장’과 ‘삶의 질(복지)’을 일부 포기해야 한다.

예를 들면 아마존의 대삼림을 원시 상태로 보존하는 대신 그에 해당하는 경제적 지원을 선진국에서 무상으로 해당국가에 해주는 것이다. 물론 선진국들은 자신들이 지금까지 지구온난화에 기여한 누적 지분에 해당하는 만큼 부담을 하고. 이런 방식으로 선진국은 현재의 ‘삶의 질(복지)’을, 후진국(개발도상국 포함)은 ‘성장’을 각각 포기한다면 인간은 자연/환경과 공존이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물론 이런 일이 현실화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자손들이 살아서 지옥을 경험하는 미래를 피하려면 더 이상 남의 일로 여기지 않고 행동해야 하지 않을까.



1) 클라이브 해밀턴, <누가 지구를 죽였는가>, 홍상현 옮김, (이책, 2013), p. 35

2) 클라이브 해밀턴, 앞의 책, p. 37

3) “‘신성한 과학’ 지구온난화 연구의 추락”, <프레시안>, 2010 2 12

w******f 2014.11.05. 신고 공감 3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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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지구를 죽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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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 지구의 종말,대재앙 등의 용어가 사회전반에 회자되고 있다.인류문명이 점진적으로 발전되어 오면서 인간의 삶이 나아지고 풍요로워진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넘어가면서 산업사회에 걸맞는 것들을 생산해 내기 위해 오랜 세월 지구에 매장되어 있던 각종 부존자원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오랜 세월 화석과 같이 매장되어 있던 석탄,석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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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터인지 지구의 종말,대재앙 등의 용어가 사회전반에 회자되고 있다.인류문명이 점진적으로 발전되어 오면서 인간의 삶이 나아지고 풍요로워진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넘어가면서 산업사회에 걸맞는 것들을 생산해 내기 위해 오랜 세월 지구에 매장되어 있던 각종 부존자원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오랜 세월 화석과 같이 매장되어 있던 석탄,석유,천연 가스 등을 비롯하여 광산물까지 인간의 손길에 의해 남용되면서 지구의 환경면에서는 부작용과 인류의 무궁한 삶을 이어가기 위해 대책과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이렇다하게 속시원한 해결책과 실천은 제자리 걸음인 것으로 보여진다.그것은 국가의 정치,경제의 역학관계를 비롯하여 나라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들의 파벌과 정파,기업인들의 이해관계,로비 등이 지구의 환경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게 되었다.

 

 자연은 산업과 개발이라는 명목하에 무참히도 짓밟히고 자원은 인류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한다는 미명하에 고갈(枯竭)될 날이 얼마 남지를 않았다.특히 한국과 같이 부존자원이 부족한 나라에서는 사회구성원 모두가 자원을 낭비하지 않는 현명한 삶의 방식과 자각이 우선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몇 년간 유가가 부동의 시세를 보이고 있는데 유류세가 유가(리터당)의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점도 서민들의 생활을 불안하게 하고 있으며 월세,전세를 살아도 자동차는 거의 보유하고 있는 실정이다.그리고 연비도 많이 나가는 고급차를 몰아야만 사회적인 신분,행세를 할 수가 있다는 그릇된 풍조와 인식도 사라지기를 바란다.수분지족(守分之足)의 생활을 구성원들이 이어나가야 한정된 자원을 그나마 사회의 전반적인 산업과 물질문명,개인의 생활에 이르기까지 유용할 수가 있지 않을까 한다.

 

 이 글이 지구의 대재앙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주된 내용은 '기후변화'에 관한 것이다.세계에서 석탄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나라가 중국이다.가채량도 세계 제1위이지만 그들은 화력발전소 및 산업용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대도회지는 세탁물을 밖에 내걸 수 없을 정도로 뿌연 안개 속과 같다고 한다.게다가 길을 걷는 행인들은 매연가스 등으로 인해 호흡기 및 폐질환에 이르기까지 신체적 고통도 이루 말할 수가 없다고 한다.기후온난화,이상기후 등이 이렇게 석탄의 과다한 사용으로 인한 것으로 기후변화에 대한 글로벌 의정서를 내놓고 있지만 경제적 발전을 내세운 선진국과 정치적 보수주의자들 및 기업을 영위하는 기업인들의 후박한 로비 활동 등으로 인해 대책과 실천이 지지부진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렇게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온실가스의 배출의 주범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고 있다.산업 공정에서 에너지원으로 화석연료를 태우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배출,산림의 벌채(伐採)와 소각으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배출,그리고 이산화탄소가 아닌 다른 종류의 온실가스 배출이다.이러한 상황이 계속 된다면 인류에게는 커다란 지구대재앙을 맞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과학자들에 의하면 남극의 서쪽 지역과 그린란드 빙하대륙이 녹아서 해수면이 수 미터 상승할 위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축소보고를 하는 바람에 정치적 지도자들과 환경론자간의 입씨름이 끊이지를 않고 있다.이산화탄소가 온실가스의 주범으로서 대기중에 출현하는 이산화탄소는 짧게는 1,000년 길게는 10만 년 이후에도 그대로 남아 인체 및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불문가지이다.근자 탄소 포집 및 저장 기술이 개발되어 온실가스 배출을 감소하는 방향으로 경제구조를 재편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 역시 개발비용 및 투자비용이 관건이어서 쾌척하려는 지각있는 자들이 많지 않다는 점이 안타깝기만 하다.

 

 게다가 인류는 기후온난화의 문제만 직면한 것이 아니다.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인구문제,산업화,환경오염,식량 생산,자원 소모가 이러한 상태로 지속된다면 향후 약 100년 안에 행성에서의 성장은 한계점이 이를 것으로 우려섞인 관측을 내놓고 있다. - 본문 -

 

 

 환경단체 및 의식있는 사람들에 의해 지구대재앙에 대한 문제를 거론하고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지만 환경문제를 개인행동에 의해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정부 역시 총대를 잡고 이 문제를 관련 기업인과 환경단체 등이 하나가 되어 지구의 기후변화에 대해 대처를 해야 하지만 실상은 경제적 성과,이윤창출 등에 혈안이 된 기업인들의 로비행각이 버젓하게 이루어지고 있는(미국 등) 가운데 이해관계를 놓고 줄다라기를 하고 있는 형국이다.그런데 이 문제는 이해관계를 떠나 인류전체가 공존공영을 하고 지구를 지켜 나가야 하는 숙명의 문제이므로 일반인의 입장에서 이 문제에 대처하는 이들의 태도와 자세가 불만스럽기만 하다.기후변화가 비록 과학과 산업혁명의 힘의 역학에 관련이 있고 성장에 대한 집착과 소비주의의 정치적,사회적 힘과도 관련이 있을지라도 자연과 인류는 하나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자세가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보여진다.가뭄,계절 변화,무더위,허리케인,(산호초 군락의)침강 이 모두가 온실가스배출로 인한 기후변화로 보여진다.이제는 기후변화에 대해 적극적이고 비전있는 지구촌을 만들어 가야 할 때라고 본다.

 

 

 

 



j******6 2013.10.29.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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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지구를 죽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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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한 것은 지구의 기온이 예전과는 많이 틀려졌다는 것이다. 가을은 느낄새도 없이 여름과 겨울이 교차되는것 같고, 소나기가 내리는 기간도 일정하지 않게 국지성 호우로 바뀌었으며 해수면의 상승으로 남태평양의 섬나라 투발루는 국토의 대부분이 물에 잠겼으며, 다른 섬나라의 운명도 비슷한 상황에 처해져있다. 녹아내리는 빙하로 인해 북극항로가 열렸지만 언론에서는 북극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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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한 것은 지구의 기온이 예전과는 많이 틀려졌다는 것이다. 가을은 느낄새도 없이 여름과 겨울이 교차되는것 같고, 소나기가 내리는 기간도 일정하지 않게 국지성 호우로 바뀌었으며 해수면의 상승으로 남태평양의 섬나라 투발루는 국토의 대부분이 물에 잠겼으며, 다른 섬나라의 운명도 비슷한 상황에 처해져있다.

녹아내리는 빙하로 인해 북극항로가 열렸지만 언론에서는 북극항로를 통한 엄청난 경제적 파급력만을 이야기하고 기후 이상으로 인한 지구의 몸살로 인해 러시아의 가뭄, 파키스탄의 홍수, 전 세계에 흐르는 거대한 강의 범람으로 매년 수백만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하고 있지만 그 상황에만 대해 이야기할뿐이지 기후이상으로 인한 원인에 대해 심오하게 분석하는 이야기는 들어본적이 없었던것 같다.

이 이야기를 쓰는 나 역시도 책에서만 환경위기에 대해 읽고 일시적으로 심각하게 생각할뿐 그 문제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적이 없다.

 

기후변화로 인해 발생되는 수많은 현상들은 바로 우리 인류가 직면한 위기이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가 대두되는것에 대해 꺼려하는 사람들이 있다. 수많은 개발론자들이다. 그들은 환경론자들의 이야기가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다고 비난한다.

정치인들 역시 기후변화에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 역시 경제적 성장률이 자신들의 재선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이 문제를 방치하고 개발론자들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고 저자는 강하게 비판한다.

 

현대인들은 은연중에 세계를 기계적으로 이해하고 기술의 진보에 기반한 성장이 사회문제뿐 아니라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p.230)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기후문제에 관심조차 없겠지만 조금이라도 기후문제에 관심을 갖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기후문제 역시 과학기술에 의해 어떻게든 해결될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맬서스가 <인구론>에서 인구폭팔로 인한 식량부족을 걱정했지만 질소의 개발로 식량문제를 일거에 해결했듯이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니 환경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수 없을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구의 다른나라에 비해 아직 한국에서는 지구온난화에 대한 문제가 그리 심각하게 다루어진적이 없는것 같다.

 

세계정상들이 기후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회담을 열고 각종 합의를 체결하지만 교토의정서를 멋대로 탈퇴한 미국의 사례에서 보듯 국가간의 약속은 자국의 이익에 의해 언제든지 파기될수 있음을 상기하자. 경제적인 문제로 먹고살기도 힘든데 이런 문제에 귀기울일 시간이 어디있겠냐고 반문한다면 나 역시도 말문이 막힐 것이다. 하지만 기후문제는 한국뿐만이 아니라 인류전체가 대처해야할 거국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니까 말이다.

 



b******n 2013.10.27. 신고 공감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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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기후변화의 진실을 외면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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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심리적으로 과학적 경고에 대해 저항하는 경향성을 가진 동물이다.  인간은 존재 자체가 도덕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존재할 수 없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과거에는 환경과 관련된 경고들이 대부분 종말론적이었다. 지금 환경운동, 캠페인 등에서도 여전히 그러하고, 공포를 조장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런 경고를 지루하게 여긴다. 또, 과학자들이나 환경운동가들 조차 환경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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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심리적으로 과학적 경고에 대해 저항하는 경향성을 가진 동물이다. 

인간은 존재 자체가 도덕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존재할 수 없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과거에는 환경과 관련된 경고들이 대부분 종말론적이었다. 지금 환경운동, 캠페인 등에서도 여전히 그러하고, 공포를 조장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런 경고를 지루하게 여긴다. 또, 과학자들이나 환경운동가들 조차 환경위기 중에서 유일하게 기후변화에 대해서는 그 위험을 축수해서 언급해왔다. 

지은이는 여기에 위기의식을 느껴, 이 책을 쓴다고 밝힌다. 기후변화의 진실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게 아니고, 온실가스 방출을 최대한 빨리, 그리고 많이 줄이면 최악의 상황을 조금은 늦출 것이다. 우리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 해야 할 일이다. 

 

지구온난화의 대재앙은 핵전쟁, Y2K와 비슷하게 생각한다. 

아직은 지구적 재앙을 막을 수 있다는 막연한 희망, 기대 속에서 지난 10년간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탓에 지금 당장 대처하더라도 기후변화로 인한 대재앙은 이제 기정사실이 됐다. 

 

비관적 종말론이나 낙천론 모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책은 세 가지 목적이 있다. 그 첫째는 지구의 기후변화를 막기에는 너무 늦었음을 증명하는 과학적 사실을 증명하며, 그 자세는 비관도 낙관도 하지 않고 과학적 분석만을 한다. 둘째로 왜 인류가 스스로 위기에 빠뜨리는지, 왜 지구 온난화에 대응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경제발전과 GDP에 대한 선입견, 소비가 개인의 정체성이 돼버린 사회현상, 불편한 진실을 누그러뜨리려는 인간의 다양한 부정과 회피하는 경향 등을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기후변화 및 기후의 혼란이 초래할 결과에 대해 설명한다. 대부분의 분석은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이유를 밝히는 데 초점을 둔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대응이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직접적인 이유 중에는 저탄소 또는 제로탄소 에너지 시스템으로서의 변화를 막고있는 기업들의 무자비한 정치적 로비도 포함됐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이들 기업들이 지구온난화에 대한 정부 대응을 가로 막는 것을 보고만 있다. 우리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국회의원들이 더 강력한 기후변화 관련법을 통과시키도록 압박할 수 있었다. 그리고 화력발전소를 점령하거나 도시의 중심 상업지구를 마비시킬 수도 있었다. 그런데 왜 그러지 않았을까? - 이 책을 통해서 답을 얻어야 한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m****h 2021.07.0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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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누가 지구를 죽였는가
"[서평] 누가 지구를 죽였는가" 내용보기
설국열차, 월 E, 워터월드 같은 영화를 보면서도 지구의 미래에 대해 심각하게 걱정을 해본적이 없는 것 같다. 지구 온난화의 주범은 수많은 공장을 돌리고 있는 중국에 있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중국이 자연보호 정책에 좀 나서야할텐데라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다. 책을 통해 가장 크게 깨달은 바는 지구 온난화의 문제는 일개국의 문제가 아니며 전세계를 컨트롤할 수 있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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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 월 E, 워터월드 같은 영화를 보면서도 지구의 미래에 대해 심각하게 걱정을 해본적이 없는 것 같다. 지구 온난화의 주범은 수많은 공장을 돌리고 있는 중국에 있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중국이 자연보호 정책에 좀 나서야할텐데라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다. 책을 통해 가장 크게 깨달은 바는 지구 온난화의 문제는 일개국의 문제가 아니며 전세계를 컨트롤할 수 있는 '자애로운 독재가'가 필요한 것임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저자는 기후학자가 아닌 호주의 경제학자이다. 기후변화와 복지, 민영화 같은 분야에서 진보적인 생각과 대안을 가지고 있는 진보주의자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기후문제와 정치, 경제가 어떻게 서로 긴밀히 얽혀있는지 통찰력있게 밝혀내었다.

 

세가지의 내용을 담고있다. 첫째, 지구의 기후 변화를 막기에 너무 늦었음을 경고하는 과학적 사실들이다. 둘째, 지구 온난화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대응이 않되는 이유로 정치적 권력단체와 온실가스 배출의 대표적 기업 로비스트들의 결탁과, 개발도상국을 비롯한 모든 국가들의 지속적인 경제성장에 대한 꿈, 지나친 소비성향을 들고 있다. 마지막으로 지구온난화가 초래할 우리 지구의 미래는 절대 낙관적이지 않다는 주장이다.

 

이산화탄소는 온실가스의 주요한 원흉인데, 순환을 하기도 하지만 상당량이 오랫동안 쌓이게 된다. 300만년간 300ppm의 이산화탄소 농도를 유지해 왔는데, 현재 지구파멸의 마지노선인 450ppm을 향해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이유는 산업화로 인한 화석연료 연소의 증가와 이산화탄소를 해소할 산림을 무모하게 채벌하는 것과 이산화탄소 이외의 가스 축적이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 증상은 서서히 나타나고 있는데, 가뭄, 태풍, 계절변화, 무더위, 침강, 홍수가 그 것이다.

 

지구온난화를 해결할 방법은 두가지인데, 원인을 제거하는 것과 인위적인 지구공학의 힘을 빌리는 것이다. 전자가 플랜A라면 지구공학의 힘을 빌리는 것은 최후에 선택하여야할 플랜B이다. 플랜A는 탄소를 포집하고 저장하는 기술, 재생에너지와 원자력 발전을 늘리는 것이며, 플랜B는 인위적으로 성층권에 황산염을 주입하여 지구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문제는 일단 황산염을 사용하기 시작하면, 중간에 중단할 수 없으며, 그렇게되면, 인류는 영원히 파란하늘은 볼 수 없게 된단다. 설국열차 초반에 등장한 지구가 꽁꽁 얼어붙게 되는 상황은 잘못된 지구공학의 결과이겠다.

 

기후학자들은 지구의 미래를 걱정하지만 각국의 정치가들은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먼 미래의 공포라 여기고 적극적으로 탄소배출량을 줄이고 대체 에너지원을 개발하여야하는 일련의 대책방안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다. 따라서 UN이나 전세계를 통괄해서 관리할 조직체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행동에 나서야할 때라고 강조한다. 그 것도 이미 늦은 상태라고한다.

 

한마디로 충격적이고 내 아이가 살아갈 지구의 미래가 걱정스럽다. 아이들에게도 교육을 통해 지구 온난화에 대한 경고를 지속적으로 알려야하고, 행동으로 옮길 때에 지구의 위기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낯선 어휘와 쉽지 않은 과학적, 경제적, 철학적 내용으로 만만하게 읽혀지는 책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꼼꼼히 읽으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은 번역이 상당히 매끄러웠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번역이 돋보이는 책이었다. 또한, 지구 온난화에 대한 이슈를 제기하면서 뒷받침하는 많은 이론은 설득력 있고, 나아가 대안을 제시하여서 행동을 강조하는 잘 구성된 좋은 책이었다. 

이달의 사락 b*****k 2013.11.0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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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지구를 죽였는가] 어쩌지, 인류가 직면한 위기는 이미 진행중인데...
"[누가 지구를 죽였는가] 어쩌지, 인류가 직면한 위기는 이미 진행중인데..." 내용보기
누가 지구를 죽였는가, 이 책의 제목은 어마어마한 충격을 준다. 죽이고 있는가, 라는 현재 진행형이 아니라, 이미 진행되어버린 과거형이다. 우리의 노력으로 살릴 수 있다면 살리겠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지구는 이미 파괴되고 죽어버린 것이다. 인류가 직면한 최대 위기에 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런 류의 책은 쉽게 읽히지 않는 불편함이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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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지구를 죽였는가, 이 책의 제목은 어마어마한 충격을 준다. 죽이고 있는가, 라는 현재 진행형이 아니라, 이미 진행되어버린 과거형이다. 우리의 노력으로 살릴 수 있다면 살리겠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지구는 이미 파괴되고 죽어버린 것이다. 인류가 직면한 최대 위기에 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런 류의 책은 쉽게 읽히지 않는 불편함이 있지만, 인간으로서 한 번 쯤은 관심을 가지고 주기적으로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필요가 있다. 그래서 두려운 제목이지만 이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이 책은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이 책의 서문에서 말하듯 때로는 진실을 마주하는 것이 너무 힘들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 진실이 너무 가혹하면 우리는 종종 그것을 외면하거나 왜곡하기도 한다. (9쪽) 때로는 진실을 마주하는 것이 힘든 일이겠지만, 그래도 진실을 아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더 이상 진실을 외면하지 말고 알아야겠다는 것도 이 책을 읽을 용기를 낸 이유였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최악의 시나리오보다 더 나쁜 상황에 대한 것이었다.

 

 2013년 5월, 300만 년 만에 처음으로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400ppm을 넘어섰다. (6쪽) 이 세상의 뉴스라는 것이 심각하게 생각하면 심각한 것이고,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가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된다. 이 뉴스도 마찬가지로, 우리는 심각성을 경계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곧 다음 뉴스에 귀를 기울였다. 전세계의 성장 신화에 눈멀고 귀먹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부분도 있고,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생각으로 외면하고 넘어가버리기도 한다. 어쩌면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지나칠 수 있는 부분이 있기에 전 세계적인 문제는 그 누구의 문제도 아닌 것이 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 보다 비관적으로 현실을 보았다. 예전에는 지금부터 나 하나라도 노력하면 속도를 늦출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이 책을 읽고 나서는 그런 생각 자체가 희망 고문이었고 상황은 무엇을 예상했든 그 이상으로 악화되었다는 현실적인 깨달음이 있었다. 경제 성장의 마법에 걸려 철저히 외면하고 무시한 것이 우리에게 뼈저린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 세 가지 목적이 있다고 밝힌다. 첫 째는 지구의 기후변화를 막기에는 너무 늦었음을 증명하는 과학적 사실들을 설명하는 것이다. 두 번째 목적은 인류가 왜 스스로 위기에 빠뜨리는지, 왜 지구온난화에 대응하지 않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다. 세 번째 목적은 이번 세기를 휩쓸 엄청난 기후변화 및 기후의 혼란이 초래할 결과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다. 이 책에는 저자가 말한 세 가지 목적에 부합하는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지구온난화에 대해 이 책을 읽으며 심각하게 온몸으로 느껴본다. 단지 여름에는 다른 해보다 무더위에 고생했고, 겨울에는 극단적 한파로 이러다가 봄이 오긴 올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보다 거시적으로 세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누군가는 지구의 심각성을 이야기해서 널리 알릴 필요가 있고, 지금부터라도 인간으로서 활동을 해야한다. 이미 늦었다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긴 하지만 말이다.



s*****a 2013.11.01. 신고 공감 1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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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속도가 붙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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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우리 솔직하게 툭 까놓고 얘기하자.   지구온난화가 오긴 하는가?   온다는 부류와 안온다는 부류.   누구의 말을 믿어야하는가?           솔직히 고등학생이라고 학교 수업시간에 배워서 알거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규제하는 회의가 열렸었고,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 나라가 미쿡이라고.   누구보다 많은 환경오염을 일으키고 있는 나라 미쿡.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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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우리 솔직하게 툭 까놓고 얘기하자.

 

지구온난화가 오긴 하는가?

 

온다는 부류와 안온다는 부류.

 

누구의 말을 믿어야하는가?

 

 

 

 

 

솔직히 고등학생이라고 학교 수업시간에 배워서 알거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규제하는 회의가 열렸었고,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 나라가 미쿡이라고.

 

누구보다 많은 환경오염을 일으키고 있는 나라 미쿡.

 

 

 

 

자동차공학을 업으로 삼고 있는 나는 늘 환경에게 참 미안하다.

 

자동차를 사랑하지만, 지구도 사랑하는 나는 정말 모순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

 

난 자동차 중에서도 스피드~를 즐길 수 있는 슈퍼차저, 터보차저 등을 달고 부릉부릉 끼익~ 이러는 차를 더 좋아한다.

 

그래서 내 눈에는 일반 차는 들어오지도 않는다.

 

내가 학교를 다닐 97년도만해도 친환경차(전기차, 하이브리드차, 수소차, 알콜차 등등)은 머나먼 미래의 이야기였다.

 

정말 말도 안되게, 08학번으로 편입한 2010년.

 

그러니까 15년도 되지 않은 그 기간동안 자동차 산업은 정말 눈부신 성장을 했다.

 

우리 때야 그런 친환경차는 미래과학서적에나 나오는 책이었는데, 이제는 동네 꼬마도 하이브리드차가 뭔지 전기차가 뭔지를 알고, 하물며! 집에 그런 차가 있는 아이들도 많다. ^^;;;

 

아...이 시대유감 ㅠㅡㅠ

 

 

 

 

나는 네버! 그런 미래는 내가 살아있는한 오지 않을거라며 "내연기관"인 그러니까 석탄 연료를 때야하는 엔진 엔지니어를 꿈꿨다.

 

솔직히 전기전자, 컴퓨터 쪽으로 약하다. ㅠㅡㅠ

 

기계는 정말 정직하다.

 

매커니즘이 눈에 보이고, 눈으로 보면서 유추할 수 있다.

 

뭐, 전기전자랑 컴퓨터도 그렇긴 하지만, 실제적으로 전류와 디지털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ㅡ,.ㅡ

 

그래서 내연기관을 더 좋아했지만, 실제로 나오는 친환경차들을 보면 또 이 녀석들 나름대로의 특징이 있어 반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친환경차가 많이 보급 되어야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왜 그럴까?

 

 

 

 

무튼... 어떻게 보면 세상에서 가장 환경오염의 주범이 바로 그런 석탄연료를 때는 자동차이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은 늘 지구의 안녕에도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소 방귀에 들어있는 메탄가스 때문에 한 때는 자동차로 환경오염을 줄일 수 없다면 소를 먹지않는 채식주의자가 되겠다며 풀떼기만 먹고 살았"었"다.)

 

 

 

 

사람들은 분명히 빙하가 녹아내리고, 현재의 기온이 예전같지 않게 점점 눈에 보이게 달라지고 있는데도 우리 시대에는 절대로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거라며 눈과 귀를 가린다.

 

그 대표적인 예가 미쿡이 아닌가한다.

 

저지르는데만 선수이고,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나쁜 강대국!

 

 

 

사람들은 누구나 뉴스에서 환경오염에 대한 심각한 뉴스가 나오면 공감을 한다.

 

그렇지만, "내"가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해서 "내" 돈을 쓰는 건 지극히 꺼린다.

 

누군가는 하겠지... 그렇게 떠들어봐야 아무 문제 없겠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직도 친환경차보다는 내연기관 차가 더 많이 팔리고 있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분명 내가 어렸을 때와는 확연하게 달라지고 있다.

 

기술은 물론이거니와 지구도 더 많이 아파하고 있다.

 

그렇지만, 일부러 지구온난화는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려는 수작이라며 거짓말이라고 오히려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무리가 있다.

 

이 책의 띠지에 나오는 것처럼 이 책은 정말 수작이고, 우리에게 경각심을 일으키기에는 충분한 책이다.

 

그렇지만, 힘 있는 강대국들에 의해, 그리고 대기업들에 의해 주목받지 못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금수강산이라며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하고, 각각의 계절이 어느 하나 빠지지 않고 모두 아름다운 것을 자랑으로 여겼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가을이 있기는한가?

 

내 손자들에게 과연 가을이라는 계절을 어떻게 설명할 수있을까?

 

 

 

누구하나 거들떠 보지 않지만, 우리 모두가 책임감 있게 지켜보고 관심을 갖고 적극 행동해야할 때다.

 

 

 

편집/구성에서 별 하나를 감점한 이유는....

 

주석이 맨 뒤에 따로 모여있기 때문이다.

 

독자의 편의를 위한 주석이라면, 해당 주석 아래에 있는게 가장 좋다는게 내 의견이다.

p*****r 2013.11.0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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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우리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남아 있다..'누가 지구를 죽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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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미래를 생각할 때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위기론은 늘 있었지만 현 국면은 전례 없는 상황인 듯 보인다.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상승함에 따라 생존의 위기에 내몰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거대 에너지 회사들 및 그들과 결탁한 기득권자, 무관심한 우리들이 모두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라는 말이 들린다. 맞는 말이지만 경중을 따져야 할
"아직 우리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남아 있다..'누가 지구를 죽였는가'" 내용보기

지구의 미래를 생각할 때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위기론은 늘 있었지만 현 국면은 전례 없는 상황인 듯 보인다.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상승함에 따라 생존의 위기에 내몰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거대 에너지 회사들 및 그들과 결탁한 기득권자, 무관심한 우리들이 모두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라는 말이 들린다. 맞는 말이지만 경중을 따져야 할 것이다. 현재 핵발전소를 대체해 태양열을 이용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전 세계적 추세라고 한다, 어떤 기대감을 가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문제는 생산과 소비의 무한 추구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마구잡이로 자원을 소모하고 그 과정에서 온실가스를 대량 배출하는 자본주의 체제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진보적 경제학자이자 실천적 지식인인 클라이브 해밀턴(Clive Hamilton). 그는 사람들이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지만 죽음의 순간에 직면해서야 그 의미와 마주하는 것과 같이 기후변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세계의 종말을 알리는 경고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말을 한다. 저자는 자신이 ‘누가 지구를 죽였는가’를 쓴 세 가지 의도를 설명한다.(이 책의 원제는 ‘종(種)을 위한 진혼곡’이란 뜻의 ‘Requiem for a Species’이다.) 1) 지구의 기후 변화를 막기에는 너무 늦었음을 알리기 위해 2) 왜 인류는 스스로를 위기에 빠트리며 왜 지구 온난화에 대응하지 않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3) 이번 세기를 휩쓸 엄청난 기후 변화 및 기후 혼란의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지구 상태가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시점이 오기 전에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는가가 가장 시급한 질문이라고 진단한다.(39 페이지) 섭씨 2도 이하로 온도 상승을 막기 위해서는 대기 중 온실 가스 농도를 450 ppm 이하로 유지해야 한다. 물론 450 ppm은 너무 높은 수준이지만 이 정도로 맞추려면 연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50년까지 300억톤에서 40억톤으로 줄여야 한다.(75 페이지) 그런데 1퍼센트 이상의 온실 가스 감축은 경기불황이나 커다란 변화의 시기에만 가능하다는 연구가 있다.(45 페이지) 저자는 지금 바로 단호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가 650 ppm까지 상승할 것이며 이는 이번 세기말까지 지구의 온도를 약 4도 올릴 수 있는 농도라고 말한다.(47 페이지. 1 미터의 해수면 상승으로 1억명 이상의 기후 난민이 생길 수 있다고 하니 사태는 심각하기만 하다.: 25 페이지)



저자는 지구의 세 가지 티핑 포인트를 언급한다. 1) 북극의 여름 빙하 유실 2) 히말라야 - 티베트의 빙하 유실 3) 그린란드 빙하 대륙의 해빙이 그것이다.(55 페이지) 티핑 포인트를 넘어서면 아주 작은 변화에도 큰 변화가 초래되거나 변화 속도가 빨라지는 양성 피드백(많으면 더 적게, 적으면 더 많게 조절하는 음성 피드백과 달리 많으면 더 많게 적으면 더 적게 만드는 현상)이 일어난다. 제 2장 성장에 대한 집착에서 우리가 알게 되는 사실은 이미 경제성장이 필요한 시점을 한참 지났음에도 성장에 집착하는 부유한 국가들의 실체이다. 저자가 말했듯 성장지상주의에 의문을 제기하는 행동은 인류의 삶을 석기시대로 되돌려 놓으려는 생각으로 취급받고 있다.(63 페이지) 성장지상주의는 오늘날 진보와 보수 모두를 사로잡고 있는 종교적 또는 마법적 믿음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경제성장이 환경을 악화시키는 원인이 아닌 그 해결책으로 받아들여지는 현실이다.(69 페이지) 저자는 국가별로 예상되는 탄소배출량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인구 성장만을 문제삼는 것은 전혀 타당하지 않다고 말한다.(74 페이지) 저자는 대기 중 탄소를 줄이는 것이 경제성장의 장애물이 아닐 뿐 아니라 지속적 경제성장을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하는 스턴 보고서를 언급한다.(84 페이지) 스턴 보고서는 온난화가 통제되지 않았을 때보다 온실 가스 배출을 감축할 때에 비용이 더 많이 든다는 취지를 강조한 보고서이다. 그런데 이 보고서는 기후 문제를 경제학적 문제로 환원해 분석한 한계를 지녔다. 지구 온난화는 인간의 실패가 아닌 시장의 실패이고, 사회윤리의 문제가 아닌 기술적 문제라는 잘못된 결론을 내린 보고서라는 의미이다.



제 2장 성장에 대한 집착을 통해 드러난 저자의 자유시장주의자들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데이비드 오렐의 ‘경제학 혁명‘을 연상하게 할 만큼 인상적이다. 저자를 소개하는 말로 선택된 진보적 경제학자라는 수식어는 이데올로기에 물들지 않고 객관성과 책임의식을 갖춘 경제학자라는 의미를 지닌 말이다. 저자가 말했듯 살만한 기후를 유지하려는 캠페인이 자아 정체성과의 전쟁이 되는 현대는 전형적인 의미에서의 소비사회이다.(110 페이지) 저자는 가장 큰 오염원인 기업과, 그들을 제어해야하는 정부의 의무를 개인 소비자의 어깨에 떠넘기는 친환경적 소비주의의 문제점도 지적한다.(115 페이지) 저자는 소비를 줄이고 싶다면 수입을 줄이고 그러려면 일을 덜 하면 된다는 충격적이지만 상식적인 말을 한다.(125 페이지) 소비를 줄이라니 하겠지만 서구인들은 검소한 생활로 돌아가는 것을 동경한다고 한다.(124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기후 문제에서도 신학자이자 SF 작가인 C. S 루이스가 말한 벌버리즘(Bulverism: 상대가 이미 틀렸다고 전제한 뒤 왜 그렇게 틀린 관점을 가질 수 있는지 설명하는 잘못된 논쟁 방법)이 작동한다. 저자는 생존과 관련한 온난화 문제는 질문을 할 수 있는 가치가 아닌 과학적 가치임에도 이념이라는 렌즈를 통해 걸러지고 있는 현실을 우려한다.(154 페이지) 저자는 이언 플리머(’지구의 기억‘의 저자)의 ’천국과 지구‘는 지난 20년 동안 수백명의 과학자들이 밝혀낸 기후 변화의 모든 증거를 부정한, 스스로 진실을 알고 있다고 믿는 광신도적 열정의 산물이라고 말한다.(160 페이지) 지구 온난화를 상대적 관점으로 간주한 ’지구의 기억‘을 읽고 느꼈던 혼란스러움을 ’누가 지구를 죽였는가‘를 통해 해결한 것은 다행스럽다.)



이언 플리머, 제임스 러브록, 프리먼 다이슨, 앨런 와이즈먼(’인간 없는 세상‘의 저자) 등은 저자에 의해 기후에 관한 한 문제적인 인물들로 거론된 사람들이다. 특히 자연 경관이 신재생 에너지보다 더 중요하다는 이유로 풍력발전소를 반대한 제임스 러브록의 사례는 씁쓸하게만 여겨진다. 저자는 우리를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망상에 빠트려 우리를 더욱 고통스럽게 하는 희망고문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174 페이지) 저자는 환상과 망상을 구분할 것을 주문한다. 전자는 현실에 대응하고 적응하게 하는 것이지만 후자는 외부세계가 자신의 믿음과 다르다는 증거가 있음에도 계속 유지되는 헛된 믿음이다. 저자가 우려하는 것은 근거 없이 진행되는, 공상으로 떨어질지 모르는 낙관이다.



저자에 의하면 석탄 발전소에서 탄소를 포집, 저장하는 것은 기술적으로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경제적이지는 않으며(213 페이지) 기후 변화에 대한 해답이기보다 오히려 그 적절한 대응을 늦추는 방식이다.(215 페이지) 기타의 재생 에너지 등은 저탄소 에너지이지만 빠르게 성장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221 페이지) 저자는 원자력 에너지를 긍정적으로 본다. 지구 온난화로 치닫는 위협에 비해 원자력 사고로 인한 환경과 인류 건강의 위협은 훨씬 작고 평범하다는 것이다.(222 페이지) 논의의 여지가 충분하지만 원자력 발전의 장점보다 지구 온난화의 위험에 더 착안한 결과로 보고 싶다. 저자는 우리의 행동이 초래할 결과를 고의적으로 무시하는 행동 역시 오만이라고 말한다.(230 페이지)



현재 3 - 4도의 온도 상승은 현실로, 5 - 6도의 온도 상승은 비관적으로, 7 - 8도의 온도 상승은 기우(杞憂)로 받아들여지고 있다.(245 페이지) 그럴 경우 시베리아와 캐나다의 동토에 묶여 있는 메탄은 어떻게 될까? 문제는 지금의 기후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것이다. 정녕 데이비드 캐롤리 교수의 말대로 “우리는 지구에 지옥을 만들고 있”는 듯 하다.(258 페이지) 또한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베르트랑 기욤의 말대로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 인식과 불가피하고 불가능한 재앙을 막기 위한 행동이 연결되지 않는 현실도 문제이다.(262 페이지) 이번 세기에 걸쳐 일어난 기후 변화가 우리의, 후손의, 가난한 나라의 힘없는 사람들의, 다른 동식물들의 죽음 뿐 아니라 문명과 진보의 죽음까지를 상기시킨다는 저자의 진단은 음미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275 페이지)



저자는 기후 재앙을 막기에는 이미 늦었지만 아직 우리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남아 있다고 말한다.(282 페이지) ’누가 지구를 죽였는가‘는 객관적이고 대안적이지만 기후 변화를 바라보는 저자의 대응 변화 양상도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진솔하다. 미래의 재앙을 인정하기 힘들었다는 고백(11 페이지), 때때로 고통스러워 보이는 새로운 재앙을 주목하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한다는 고백(165 페이지), 그럼에도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현실을 받아들이고 평정을 되찾고 행동해야 한다는 고백(285 페이지) 아니 호소 등등.... ’누가 지구를 죽였는가‘가 우리 모두 특히 진실에 무지하거나 진실을 무시하는 정치인들의 변화를 낳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오랜만에 접한 장중하고 진솔하고 균형 감각을 갖춘 경제, 과학, 정치, 인류 문명, 정신의학적 진실 등을 포괄한 책이라는 느낌이 든다. 저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달의 사락 m******1 2013.10.25.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아기야~ 어쩌면 너는 파란 하늘을 볼 수 없을지도 몰라.'
"'아기야~ 어쩌면 너는 파란 하늘을 볼 수 없을지도 몰라.'" 내용보기
오늘도 하늘이 희뿌옇다. 벌써 일주일째인 것 같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희뿌연 하늘을 보는 건 봄이었다. 중국으로부터 날아오는 황사가 한반도를 뒤덮으면 황사에는 삼겹살이 좋다느니, 뭐가 좋다느니, 갑자기 마스크가 불티나게 팔리고, 공기청정기가 불티나게 팔리고 그랬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미세먼지다. 어떤 보도들에 따르면 황사보다 몇 배나 사람 몸에 좋지 않은 온갖
"'아기야~ 어쩌면 너는 파란 하늘을 볼 수 없을지도 몰라.'" 내용보기

오늘도 하늘이 희뿌옇다. 벌써 일주일째인 것 같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희뿌연 하늘을 보는 건 봄이었다. 중국으로부터 날아오는 황사가 한반도를 뒤덮으면 황사에는 삼겹살이 좋다느니, 뭐가 좋다느니, 갑자기 마스크가 불티나게 팔리고, 공기청정기가 불티나게 팔리고 그랬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미세먼지다. 어떤 보도들에 따르면 황사보다 몇 배나 사람 몸에 좋지 않은 온갖 물질들이 섞인 것이 이번에 날아오고 있는 미세먼지라고 했다. 친절하게도 미세먼지에는 삼겹살이 효과가 없으니 어떤 음식들을 먹으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포털에는 그 음식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단번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일주일째 그러던 것이 어제 비가 오고 나면 그칠 줄 알았다. 그런데 오늘도 그렇다. 아내가 임신 중이라 가뜩이나 조심하고 또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시기인데, 미세먼지 덕에 또 다른 걱정거리가 하나 더 생겼다. 황사마스크를 사고 되도록 창문도 잘 열지 않고 생활하고 있지만 닫힌 창문 밖으로 보이는 희뿌연 안개 같은 미세먼지들이 창문 틈으로 문틈으로 조금씩 기어들어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서해안으로부터 직선거리로도 200km가 넘게 떨어진 대구에서도 이렇게 희뿌연 장관(?)을 연출하는 미세먼지가 독하다는 생각도 든다. 웬만해서는 날아가지도, 가라앉지도 않는 특수물질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미세먼지 예보를 하고 그에 대한 보도가 쏟아지지만 미세먼지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이유와 대책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것 같다. 몰라서 그러는 것인지,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 황사야 워낙 오랫동안 한반도로 불어와 이제는 없으면 허전한(?) 존재가 되었지만, 미세먼지는 아직 낯설다.

아주 조심스럽지만 노골적으로 중국 상해의 심각한 스모그를 보여주는 것으로 ‘혹시나 중국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요?’라며 슬며시 떠 본다.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국가 차원에서 항의라도 제대로 하던지, 공문이라도 한 장 보내 역학 조사를 요구하던지 하는 것이 아니라 뒤에 숨어서 눈치보고 있는 것 같다.

아무튼 뭔가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어린 시절에는 황사 같은 것은 아예 없었다. 스모그라는 단어도 아주 낯설게, 갑자기 듣게 되었고 황사도 그랬다. 그리고 느닷없이 미세먼지라며 호들갑을 떤다. 분명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 책 「누가 지구를 죽였는가?」의 제목이 도발적이다. 죽이는가? 도 아니고 죽였는가? 다. 원서의 제목보다 더 잘 붙였다. 이미 지구가 죽었다는 말이다. 그렇다. 그것이 핵심이다.

 

 

“우리는 과학자들이 제시한 극단적인 경고를 한 번도 믿은 적이 없다. 비합리적인 낙천주의는 인류의 가장 큰 미덕이기도 하지만 가장 위험한 약점이기도 하다.” (p.10)

 

재기를 노리던 황우석 교수에 대한 최종 대법원 판결이 내려졌다. 혐의가 인정되어 유죄가 되었다. 한마디로 사기꾼으로 공식 인증을 받은 것이다. 더불어 서울대 교수직도 파면되었다. 참여정부 시절 황우석은 신화와 같은 존재였다. 줄기세포, 배아복제, 난치병 치료 등으로 일약 영웅이 되었다. 한 입 베어 문 사과를 만든 고(故) 잡스 형님보다 몇 갑절 값진 일을 하고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이라고 모두가 기대했다. 실제로 그런 연구와 학문에 관심이 없는 일반인들도 ‘우리나라에서 저렇게 훌륭한 과학자가 나오면 다 좋은 거지 뭐.’라는 생각을 가졌을 것이다. 추호도 그가 거짓말을 한다거나 사기를 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런 대중의 집단적인 비합리적 낙천주의는 대단한 홍역을 초래했다. 느닷없이 영웅의 자리에서 사기꾼의 자리로 끌어 내려진 황우석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태도는 둘로 나뉘었다. ‘내 저럴 줄 알았지.’ 라며 애써 발을 빼려는 무리와 ‘뭔가 음모가 있어. 그러실 분이 아니야.’라며 아직도 황우석에게서 메시아의 페르소나를 발견해 내려는 사람들이 있다.

책에서의 지적처럼 적어도 과학에 대해 비합리적인 낙천주의는 위험하다. 한 순간에 훅 갈 수 있다.

미세먼지를 접근하는 태도도 마찬가지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황사도 중국에서부터 날아온 것이니까 당연히 미세먼지도 중국의 책임이다. 라고 말하는 것은 일반화의 오류다. 적어도 그에 선행하는 자료분석과 연구가 따르기 전에 단정 짓는 것은 과학도 아니고 미디어가 취해야 할 태도도 아니다. 그냥 쇼다.

 

 

“개발도상국들이 온실가스 증가에 절반의 책임을 갖게 되는 때는 아마도 몇 십 년 이후가 될 것이다. 게다가 부유한 국가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대부분은 불필요한 상품과 서비스를 소비하는 사치성 소비에서 나온 것이다.” (p.128)

 

책에서는 줄곧 온실가스 증가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한다. 1장의 제목부터 <탈출구는 없다>이다. 무시무시하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지금의 온실가스 증가와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의 주된 책임을 개발도상국, 그 중에서도 중국과 인도에게서 찾는다. 중국과 인도 중에서도 중국에 포커스를 맞춘다. 한반도 이남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들 같은 경우에는 워낙 예전부터 중국의 황사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왔던 터라 지금의 기후위기에 대해서도 당연히 중국의 무분별한 성장정책과 뒤쳐진 환경정책에 방점을 둔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당장 매년 봄마다 중국산 황사의 괴롭힘을 받아 왔고 그에 더해 듣도 보도 못했던 미세먼지가 봄도 되기 전부터 난리를 치니 당연히 중국이 가장 위험한 기후위기의 배후세력이라 보는 것이다.

그런데 책에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이미 대기 중에 있는 온실가스의 75퍼센트는 이미 경제성장을 종료한 이른바 부유한 국가들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 날씨예보를 보지만 실제로 믿지는 않는다. 몇 주 전 영동지방에 일주일 넘게 지속된 폭설에 대해서도 제대로 예보하지 못했다. 엄청난 성능을 자랑하는 최첨단의 과학 장비를 갖추고도 날씨하나 제대로 못 맞추냐고 사람들은 손가락질 한다. 하지만 그런 과학을 깡그리 무시하고 살 수는 없다. 그렇게 빗나가는 예측보다 들어맞는 예측이 실제로는 더 많기 때문이다. 기후과학자들이 내어 놓은 주장 또한 과학이다. 성장, 발전, 선진국에 대한 알레르기가 같은 좌파, 환경론자들이 만들어 낸 프로파간다가 아니다. 과학자들이 분석해 낸 데이터다. 그렇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미 할 만큼 최대한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그것을 지구의 대기 중에 띄어 올린 사람들은 이미 성장을 마친 선진국들이다. 성장의 뒷배를 타고 개도국을 넘어 선진국으로 올라서려는 중국과 인도는 그들을 보고 배운 것이다. 그런데 자기들은 이미 먼저 해 놓은 것을 따라한다고 주범으로 모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내가 하면 로맨스, 니가 하면 불륜 이라는 논리와 맥락상으로 일치한다.

 

 

“연간 온실가스 발생이 지금 멈춘다고 해도 지난 수십 년간 배출한 온실가스는 대기 중에 오랜 시간 남아 지구의 온도를 수 세기 동안 높일 것이다.” (p.27)

 

책에서도 지적하고 있는 것은 기후위기와 지구온난화, 온실가스 등에 대해 국제적인 협의를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일단 모이는 것 자체도 힘들도 모인다 해도 각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고 아무리 이상기후가 일어난다고 해도 당장 인류에게 재앙을 안길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누가 책임을 지거나 양보를 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모든 온실가스 배출이 다 같은 도덕적 바탕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배출량이 같다고 해도 어떤 배출은 더 많거나 다른 가치를 지닌다. 아프리카의 농부가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것과 미국의 피부과 전문의가 주말에 라스베거스로 놀러 가려고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것은 같을 수가 없다.” (p.112)

 

지구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거의 모두는 오늘도 온실가스를 배출하며 살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을 지금 멈추어도 이미 대기 중에 존재하는 온실가스로 인해 수 세기 동안이나 지구의 온도는 점진적으로 상승한다고 하는데, 오늘도 지구의 곳곳에서는 온실가스를 더하고 있다. 오늘 하루를 돌아보았다. 아침에 일어나 씻기 위해 보일러가 가동 되었다. 온실가스 배출. 밥을 먹기 위해 각종 조리도구와 주방기구를 사용했다. 온실가스 배출. 설거지를 했다. 온실가스 배출. 차를 타고 출근했다. 온실가스 배출.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컴퓨터를 하고 등등등등……. 나는 오늘도 줄곧 온실가스를 배출했다. 오늘도 다국적 기업의 OEM제품을 만들어 내기 위해 열악한 제조업 환경에서 근무하는 중국의 어린 노동자들은 온실가스를 배출했다. 시범경기가 한창인 미국 메이저리그 경기를 관전하기 위해 애리조나에 있는 야구장으로 간 관중들도 온실가스를 배출했다. 심지어 평일 오후에도 야구 경기를 관전할 수 있다니.

중국의 어린 노동자와 미국의 메이저리그 관중과 나의 오늘 하루를 직접 비교할 수 없다. 동일한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하지만 그것에 대한 가치와 도덕적 잣대는 달라야 한다는 책의 주장에는 동의 한다. 하지만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메이저리그 관중이, 라스베거스로 놀러가는 미국의 피부과 전문의의 소비성 온실가스 배출을 도덕적 잣대로 판단할 수 없다. 다만, 설득의 논리로는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더 이상 온실가스의 가파른 배출량을 묵과할 수 없다는 전제아래, 최대한 소비성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나가자는 전 지구적 설득과 합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분명히 국제적 협의나 협약에 대해서는 비관적이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지 않나. 미세먼지가 아무리 날아오고 그것이 일주일이 지나도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정부에서는 일언반구 말도 없고 미디어라 하는 것들은 중국만 보여 준다. 출산을 장려하는 정부에서 최소한 납 성분이 포함된 미세먼지를 최소한 방지하기 위해 현재 임산부들에게 황사마스크 하나 주지 않으면서 말이다.

 

 

“기술이 우리를 구원할 것인가?” (p.207)

“지구의 기후시스템은 변화된 과정을 따르고 미래에는 우리가 손을 쓸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법에 대한 복종이 아닌 윤리적 의무를 주장해야 한다. 법령집에 쓰여 있는 법보다 더 높은 법에 복종해야 한다.” (p.284)

 

기술이 우리는 구원할 수 있을까? 이미 죽어버린 지구를 부활시킬 수 있을까? 나는 비관적이다. 기술은 이미 충분하다. 기술과 첨단의 과학에 대한 낙관주의가 문제이다. 책은 윤리적 의무를 강조한다. 법조문, 규정 같은 것들 보다 상위에 있는 양섬의 법, 윤리적 책무를 이야기 하고 있는 것 같다. 전 지구적 공동체주의 담론은 분명 시작되어야 한다. 한 때 신자유주의 광풍을 미화하는 데 쓰인 <세계화> 같은 얼빠진 얘기 말고, 전 지구적 위기를 함께 직면하고 함께 머리를 맞대는 담론 형성이 필요하다.

 

 

“4도 더 뜨거운 지구는 2,500만 년 전 중신세 이후로 어떤 시기보다 뜨거울 것이며, 세계에는 이미 얼음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p.246)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의 가장 일선에서 발에 땀이 나도록 뛰고 있는 학자들의 공통된 주제는 <4도> 이다. 머지않은 시기에 지구의 온도가 4도 이상 상승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문명의 발전과 기술과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온실가스는 지속적이고 폭발적으로 상승했고 그것은 이미 지구의 대기에 존재한다. 중국과 인도에서 내일 당장 모든 차량의 통행을 멈추고 모든 발전소와 공장의 가동을 멈춘다 해도 지구의 온도 상승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진짜 심각하고 비관적인 예측이다. 지구의 온도가 4도 이상 상승하게 되면 일어나게 될 구체적인 재앙에 대해서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지금껏 본 온갖 재난영화 그 이상일 것이라는 것은 당연지사다. 얼음이 존재하지 않는 지구, 지금은 상상할 수 없지만 이미 근래 몇 년 동안 북극의 얼음이 엄청난 속도로 녹고 있다는 뉴스는 수많은 사람들이 봤다. 하지만 쉽게 변하지 않는다. 위기의식은 북극의 얼음이 녹고 있다는 뉴스를 본 직후에 잠깐! 그리고 바로 잊어버린다. 모르겠다. 어차피 변하지 않고 좋아지지 않을 운명 같은 것이라면 생각조차 하지 않고 현재를 즐기며 사는 것이 더 좋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사는 편이 오히려 스트레스를 덜 받을 것 같기도 하다.

 

 

“아직 지구는 살이 있다. 하지만 지금 이대로의 무관심은 정말 지구를 죽일 수도 있다.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이 온전한 지구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기후변화에 관심을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 (p.5)

 

하지만 이것이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내 아이, 내 아이의 아이, 그 아이의 아이들이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뭔가 필요하다. 책에서는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지 않는다. 구체적인 대안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뭔가 있을 것이다. 지금은 “도대체 어떤 놈이 지구를 죽였어?!!” 라며 범인을 색출하는 데 요점이 있지 않다. 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봉착한 위기를 함께 맞으며 방법을 찾아야 한다.



l****h 2014.03.03.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