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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이 선택적이고 보편적인 삶이 된 것이 그리 멀지는 않다. 이민은 각자 나름의 이유가 있어 생김새도 다르고 언어도 다른, 타국에서의 삶을 결정한 것이다. 그런 생각이 있다고 해도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런 선택을 했고, 이제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특별한 것도 아니다. 보통 학습을 위해 타국으로 건너가 개인적인 이유로 주저앉은 경우가 많다. 또 생계가 이유가 되어 다른 나라로 간 경우도 더러 있다. 이념이 달라서, 자국이 싫어서 떠나서 타국에 정착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여러 조건이 맞아야 하고 정착이 쉬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모두가 깨닫는 사실이다.
이민이라는 것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일이다. 아메리카 이민도 마찬가지다. 아메리카는 노동력이 필요했고 우리나라에서는 사람들이 살기가 힘겨웠던 시절, 미국에 건너가 고생을 했던 아메리카 이민 1세대들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런 것을 소재로 이야기를 만든 것도 본 적이 있다. 이민이라는 것의 어려움과 행한 사람들의 노력 그리고 고향에 대한 향수 등이 아프게 표현되어 있었다고 생각된다. 타국에서의 삶, 얼마나 아프겠나 하는 것은 지금 우리나라에 들어와 살고 있는 외국인들의 삶을 미루어 짐작해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내 주변에도 이민을 결정하고 시행에 옮긴 사람들이 더러 있다. 가장 가까이 아이들 이모가 가정의 문제와 생계, 그리고 아이들의 교육 및 나라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작용하여 아메리카 쪽으로 떠났다. 그리고 정착하는 과정 속에서 눈물도 많이 흘리고 어려움이 많았다. 학습 비자로 나갔기에 법적으로 정착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물론 각고의 노력으로 아이들을 키우며 열심히 일을 하고, 고국에 있는 우리들과 연락도 닿지 않는 숱한 시간을 거치면서 삶의 터전을 닦았다. 그 사이 말도 통하지 않고 생활 습관도 같지 않은 사람들과 섞여 살아가는 일이 쉬웠을 리가 없다. 나중에 그 과정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마음의 아픔 없이 들을 수가 없었다. 지금은 아이들도 다 성장했고, 어느 정도 정착해서 그 나라 국민 중의 한 사람으로 잘 살아가고 있다. 요즘은 가끔씩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형제들을 보려고 나오기도 한다. 아이들도 이모가 그곳에 있으니까 나가면 찾아뵙기도 할 수 있을 게다. 그 외에도 가까운 사람들 중에서도 아메리카로 건너가 정착한 사람도, 정착의 과정을 밟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이 책을 만나니 그들의 입장이 마음에 잘 다가오고, 그들의 마음을 헤아려볼 수 있는 기회가 되는 듯해 고마운 생각까지 든다.
책은 10대 때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간 청소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가게 된 경우이기에 그 쪽에서 정착하는 일에 포인트가 맞춰져 있는 글이다. 타국에서 정착하는데 가장 중요한 일이 타인들과의 소통이다. 이 소통은 언어로 이루어진다. 그러기에 아메리카로 가는 사람들은 필수적으로 영어를 학습해야 한다. 혼자서 땅만 빌려 살아가는 사람들이야 모르겠지만, 그곳에서 일을 하며 사람들과 소통을 이뤄야 하는 입장에서는 영어를 모르면 너무나 힘 든다. 주인공 태조는 학창 시절에 건너갔기에 언어를 배우기도 비교적 어른들보다는 쉬운 입장이었다. 이모의 자식들도 둘이 같이 건너갔는데, 언어 습득이 나이가 어릴수록 쉬웠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마찬가지이리라. 태조가 언어 습득을 소중한 요소로 생각하고 학습활동을 하는데, 어려움이 잘 표현되고 있다. 생김새야 세계화되어 가는 마당에 조금은 극복될 수 있다. 하지만 언어가 공통의 요소가 없을 때는 서로 소통을 생각할 수가 없다. 책은 그 소통의 어려움부터 얘기되고 있다.
태조는 이태원에서 성장했다. 학교 다닐 때 유령 취급을 받으며 존재감 없이 그렇게 자랐다. 단지 역사 선생님 한 분이 이름 때문에 관심을 가져주긴 했다. 이성계냐고? 그러나 고등학교 1학년, 16살 대 미국으로 건너가게 되었다. 엄마, 누나 이태리, 나 태조 3명이다. 미국 가기 위해 영어 학원에 2달 다녔으나 영어가 제대로 될 리 없었다. 지루한 강의를 들으면서 영어보다는 영어로 이루어진 환타지 세계에 머물기도 했다고 한다. 미국 이민을 생각할 때 이태원에서 얼굴을 익힌 토마스라는 흑인 아저씨가 도움이 되었다. 미국에 갔어도 우선은 그렇게 연결이 되어 LA 가까운 신도시에 머물게 되었다.
2006년 오렌지 유치원의 9학년에 등교했다. 9학년은 우리나라의 중학교 3학년 정도다. 민형이라는 아이를 거기서 만났고 수업 신청을 도움 받았다. 대학도 아닌데 스스로 수업을 신청하는 게 이상했지만 그렇게 해야 한다니까 따라서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사람들을 사귀고 학교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주로 한 살 적은 민형의 도움을 받으면서 생활했고,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르게 2주가 훌쩍 지나갔다. 그런 생활 속에 선생님의 말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는 게 문제였다. 전자수첩을 가지고 노력을 했으나 쉽게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소통이 될 리가 없었다. 나는 차츰 소외되는 학생이 되고 교포들 사이에서도 영어도 못하는 멍청이가 되었다. 누나 이태리는 영어를 좀 못해도 눈치껏 사람들 사이로 스며들어가는 오지랖이 있어, 놀림감은 되지 않았다. 태조만 의사소통 때문에 힘겨움을 겪고 혼자라는 인식을 하게 된 것이다.
태조는 영어를 위해 노력을 했다. 그 노력의 한 가지로 매일 밤 영어 일기를 쓰기로 했다. 이게 효과가 있어 영어를 쓰는 게 어렵지 않게 되었다. 어투는 좀 투박했지만. 11월이 가기 전에 문장이 술술 나왔다. 소통은 농구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농구를 하니 자연 타인들과 접하게 되고, 타인을 교류하게 되는 상황이 되었다, 루이와 마크는 그렇게 사귄 아이들이었고, 그것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게 되는데 도움이 되었다. 9월엔 유치원의 바보 의자였지만 11월엔 오렌지 유치원의 유명한 태조가 됐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친해지면 끝’이란 진리가 통할 줄이야. 하지만 유일하게 친해지지 않은 것은 수재며 민영의 누나인 민희였다. 태조완 달리 민희의 생각은 미국에서 살아가는 것인 쉬운 일이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미국에서도 다른 지역에 대한 관심이 생기가 되게 오렌지카운티를 벗어나 밖으로 나가보게 되었다. 마켓플레이스는 그런 곳이었다. 친구들과 같이 오렌지를 벗어나 다른 곳으로 향한 것은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기회가 되었고. 미국에 대해 더 알 수 있게 되었다. 운동도 하게 되었고 미국식 문화에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다. 일기는 태조 생활의 중심을 잡아주었고 능력을 길러 주기도 했다. 당시에 썼던 일기가 좋은 자료가 되어 이야깃거리가 되고 있다. 태조보다 늦게 유학을 온 테니와 누나 애니를 알게 되었고, 테니는 옛날의 자신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전자사전이 있어야 생활이 되었고, 어려움을 겪는 듯했다. 태조는 미국에서 살 것이니까 미국식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영어 공부에 열을 올렸고 능력은 일취월장했다. 민형이가 전략적 학습법이라고 명명해준 방법으로 내 영어 실력이 진보한 것이다. 다른 유학생들도 그런 나를 신기한 듯 보았다.
오렌지 유치원에 모여든 학생들은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보다 비영어권 학생들이 많았다. 언어로 인한 갈등도 일어났다. 영어를 쓰는 학생들이 오히려 따돌림을 당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이런 일은 학생들에게 영어 사용을 강요하게 되었고, 오렌지 학교는 이상한 영어들이 난무하는 곳이 되었다. 동양인들의 영어 발음은 기이하게 들리기도 하는 모양이고 듣기가 어려웠던 모양이다. 그러면서 영어 사용에 대한 갈등이 일어나고,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도 있었다. 태조는 미국식이 되어야 한다는 강한 집념으로 영어를 습득해 나갔다. 그리고 능력 있는 언어사용자가 되었다. 미국 생활에 적응해 나간 것이다.
연애 관계를 다루기도 했다. 같은 국적을 가진 사람들끼리 사귀는 것보다는 이국의 이성과 교재를 많이 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과의 사귐은 쉽게 지친다고 표현하고 있다. 외로움이 가중된다는 표현이 맞을까? 그럴 때 태조는 이태원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기도 했다. 프롬 파티 얘기도 있다. 졸업식이 있기 전 유치원에서 하는 파티다. 남녀가 정장을 하고 짝을 이뤄 선생님들의 인도 아래 유람선으로 향한다. 그해는 그렇게 선상에서 파티를 열었다. 밴드가 음악을 연주하고 참가자들은 음주 가무를 즐겼다. 그러면서 선상에서의 어울림을 가졌다. 각자가 다양한 경험을 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 외 소포모어, 핼러윈 놀이 등도 그려진다. 한 학생이 아메리카에 적응해 나가는 삶을 구체적으로 그려낸다.
저자는 이태원에 기거를 하면서 아메리카에서 온 M군과 만남이 있었다. 그것이 이 글을 쓰게 된 기회가 되었다. 이 이야기는 M군의 생활에서 가져왔다. 저자는 소설가다. 물론 M군의 이야기를 그대로 담지는 않았다. 거기에 살을 붙이고 각색을 해 보편적인 이야기를 만들었다. 완성된 작품인 글을 M군이 보고 “나의 얘기지만 나의 얘기가 아니라.”는 말을 한 것이 그것을 증명하는 듯하다.
이민이 쉬운 것은 아니다. 이민의 가장 아픔이 외로움의 정서가 될 것이다.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산다는 것은 군중 속의 고독을 느낄 수 있는 좋은 환경이다. 또한 물질적으로 어려움을 많이 겪을 수 있는 환경이다. 이 글은 학창시절 부모와 함께 아메리카로 건너가 학습을 하는 학생을 중심으로 그려진다. 이민의 아픔이라기보다는 이국에서의 생활에 적응하는 어려움을 그리고 있는 글이다. 어디든 어렸을 때 가면 적응하기가 그래도 쉽다. 나이가 들어 타국으로 간다면 더욱 어려운 삶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주인공 태조는 언어와 연계된 아메리카에서의 생활에 무척 노력해 적응해 나가는 삶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소재가 된 M군은 서울 이태원을 잊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이태원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를 하고 있다. 그만큼 어려운 이민 생활이라는 뜻일 게다. 우리는 이 글을 읽으면서 언어습득에 비교적 성공한 한 이민 학생을 통해, 이민 학습생활의 어려움을 인지해 볼 수 있다. 가능하면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삶을 영위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다시 생각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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