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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우리는 어린이를 ‘어린’ 사람, 곧 어리석은 사람으로 보고 가르쳐야 할 대상으로만 여기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어린이를 성인과 동등한 인격체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어린이가 태어날 때부터 깊은 내면에 갖고 있는 자신의 빛나는 씨앗을 자연스럽게 싹 틔워 활짝 꽃 피우게 환경을 만들어주고 기다릴 필요가 있다. 그렇게 환경을 만들고, 기다리고, 응원할 때 어린이는 비로소 자신의 본성대로 마음껏 자라지 않을까. 여섯 마리의 코끼리 이야기이다. 그렇지만 코끼리 이야기만은 아니다. 코끼리 이야기를 통해 어른이 어린이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어린이는 태어날 때부터 천부적으로 부여된 자신만의 본성대로 자라게 해야 한다는 작가의 뜻이 담겨져 있다. 라오스 메콩 강 근처에서 태어난 눔바는 태어나자마자 하늘에 떠 있는 달이무엇이냐고 물을 정도로 호기심이 강한 코끼리이다. 모계 사회인 코끼리 사회에서 눔바는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간다. 그러다가 비가 많이 와도 새지 않는 통나무집을 친구들과 함께 짓다가 그만 사냥꾼들에게 잡히고 만다. 눔바와 다섯 친구는 라오스 공연단에 들어가 혹독한 훈련을 받는다. 엄마나 친척들이라면 결코 가르쳐 주지 않을 우스꽝스런 놀이를 배우게 된 것이다. 사람들이 가르쳐 주는 코끼리 재주를 잘해야 배고프지 않게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눔바를 비롯한 코끼리들은 열심히 배워 멋진 공연을 하기에 이른다. 라오스 공연단은 멋진 공연을 펼치려고 한국으로까지 가게 된다. 그러나 코끼리들은 낯선 땅 낯선 공기 낯선 사람들 속에서 잘 적응하지 못한다. 코끼리들은 뭔가 다른 일을 하고 싶어 한다. 그저 배부르게 먹고, 사람들에게 재주나 보여 주고 박수만 받으면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코끼리는 코끼리다운 생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코끼리에게도 스스로 행동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자각을 한 것이다. 그리하여 코끼리 여섯 마리는 공연장 앞 광장에서 각자 자신이 생각해 두었던 방향으로 탈출한다. 강으로 달려가 물놀이를 하며 마음껏 자유를 누리거나, 커다란 음식점으로 갔다가 담장을 무너뜨리거나, 성당에서 코로 종을 치거나 한다. 이들의 탈출은 조련사와 경찰관, 소방대원에게 붙잡혀 실패로 끝나고 말지만 아주 실패인 것은 아니다. 살아가는 데 자신감이 생기고 자신의 본성대로 살아갈 꿈을 꿀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깨를 으쓱대며 친구들한테 말했어. “우리가 그저 사람들이 가르쳐 준 재주나 부리고 말 잘 듣는 코끼리가 아니란 걸 보여 줄 필요가 있어. 안 그래? 친구들!” 그러자 친구들도 어깨를 으쓱대며 합창하듯이 대답했어. “좋아! 그렇게 하자고.” “그래, 그러자!” “다음번에는 더 멀리 가 보자.” 그때 나는, 내가 건강하게 살아 있다는 걸 짜릿하게 느꼈어. (78-80쪽) |